강지한은 미간을 꾹 누른 채 시선이 옆에 있는 심미연에게로 향했다.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심미연을 편애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이노하이브의 지분도, 강씨 가문의 가보도 툭툭 넘겨주었다.심미연 이 여자는 권모술수도 많고 악랄한데 뭐가 좋다고!“병원에 곧 도착하니까 만나서 얘기해요. 심미연이랑 같이 있어요.”심미연도 함께 있다는 말을 들은 강준형의 말투가 한층 누그러졌다.“그래, 기다리마.”전화를 끊으며 강지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강준형이 갑자기 온지유를 해외로 보낸다는 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심미연이 뒤에서 허튼수작을 부린 게 밝혀지면 그도 수단 가리지 않고 상대할 생각이었다.곧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고 강지한은 손을 뻗어 심미연을 차에서 끌어 내렸다.손목이 아프게 꺾이자 심미연은 얼굴을 찡그렸다.“강지한, 손 놔!”강지한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놓으면 도망가게?”그러면서도 손에 힘이 살짝 풀렸다.심미연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할머니 주치의가 전화해서 특효약에 대해 말해줬어. 당신이 약속 지켰으니까 나도 말한 대로 할 거야. 걱정하지 마, 억울하더라도 온지유에게 사과할 거니까.”강지한은 경성에서 손으로 하늘도 가릴 사람이라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는 건 쉬웠다.하지만 그가 진실을 알아내기보다는 온지유의 일방적인 말을 믿고 싶어 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차라리 순순히 온지유에게 사과하면 강지후가 좋게 봐줘서 다음 약을 얻는 게 더 쉬워질 수도 있었다.부부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건지, 마음이 씁쓸했다.강지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할아버지 앞에서 말 제대로 해.”심미연은 그 말의 뜻을 알아듣고 가슴이 아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알아.”강지한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할머니는 그의 손에 있는 약으로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강지한은 그녀를 슬쩍 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심미연은 단화를 신고 있었지만 그래도 강지한보다 다리가 짧아서 빠르게 걷는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박유진의 물음에 심미연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되물었다.“무슨 증거?”온지유 차 사고에 대한 증거를 말하는 건가?근데 그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신하린 조차 모르고 있을 텐데...“네 형님의 차 사고에 대한 증거 말이야.”순간 심미연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진짜네? 근데 이걸 박유진이 어떻게 알고 있지?“걱정하지 마. 증거들은 모두 합법적인 방식으로 알아낸 거니까.”심미연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박유진은 냉큼 그녀에게 해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증거들을 모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지금 내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이따가 다시 연락하면 안 될까?”심미연도 알다시피 지금 당장 모든 증거를 강지한 쪽으로 돌려도 이 일을 자신이 했다고 믿지 않을 것이고 그저 그녀가 증거를 위조했다고만 여길 것이다.강지한도 당연히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이다. “그래. 그럼 네 전화 기다릴게.”박유진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심미연은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문득 박유진이 알아낸 증거가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박유진이 뭐라고 했기에 이렇게 혼이 빠진 상태야.”강지한의 싸늘한 목소리에 심미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나랑 유진이는 거의 친남매 사이란걸 알잖아. 근데도 그렇게 질투하고 싶으면 말리지는 않을게.” 심미연을 믿는 사람은 그녀가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다 믿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해명해도 듣지 않는다. 하여 쓸데없이 구구절절 해명할 필요가 없다.“이 강지한의 여자라면 파멸할지언정 다른 남자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아!”강지한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박유진이 돌아온 뒤로부터 심미연은 이틀이 멀다 하고 이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참나...그의 말대로 그가 얻지 못하는 여자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심미연은 사실 이 말을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심미연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네!”강준형은 그제야 시름 놓고 밖으로 나갔다.강지한이 어떻게 행동하든, 그는 심미연이 기분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온지유는 강준형이 병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강지한에게 눈치 줬다.“지한 씨도 나가 있어. 나랑 미연 씨가 조용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강지한이 뭐라고 말하려던 순간 심미연이 말을 끊었다.“아니, 나가지 말고 여기에 증인으로 있어!”심보가 고약한 온지유가 자신이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강지한을 시켜 또다시 찾아와 난리 칠 것 같았다. 강지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이 여자가 대체 무슨 꿍꿍이지?심미연은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넘긴 뒤 사뿐사뿐 온지유의 침대 쪽으로 다가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미안해.”사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이 세 글자를 입 밖에 꺼내기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뱉고 나니 별것 아닌 것 같았다.그저 감정 없이 내뱉으면 되는 것이었다.온지유는 고개를 들고 한껏 창백한 얼굴과 아직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물었다.“미연 씨, 왜 그런 일을 벌인 거야? 내가 그렇게 미웠어?”심미연이 여기까지 와서 사과했다는 건 분명 그 일을 자신이 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온지유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당연했다.심미연은 허리를 다시 곧게 세우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되물었다.“사과했으니 이제 가도 되지?”사과만 하러 왔기에 굳이 다른 물음에 대답할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했다.또한 온지유의 이 두 가지 질문을 한 목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나중에 증거를 손에 넣고 나서 다시 온지유한테 따지리라 다짐했다.온지유는 한치의 죄책감도 없이 덤덤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대체 뭘 믿고 이리도 뻔뻔하고 당당한 걸까?“미연 씨, 요즘 지한 씨가 자주 나한테 와있어서 미연 씨가 많이 섭섭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근데 내가 임신하면서 몸도 안 좋고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강지한은 단번에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얌전히 누워있어. 그리고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사과까지 하는 거야?”그는 한껏 다정한 말투로 그녀를 탓했다.심미연은 자기 남편이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가슴 쓰라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온지유는 그녀가 떠나려는 모습에 재빨리 강지한을 밀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쿵!”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심미연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미연 씨, 내가 미안해.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말이야. 지한 씨한테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줘.”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하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심미연은 잠시 걸음을 멈칫했다가 얼굴을 찌푸린 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온지유, 저 여자는 워낙 불쌍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오늘 옆에 강지한까지 있으니 더 오바하는 것 같았다. 하여 여기서 입씨름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낀 심미연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강지한은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껏 차갑고 매서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심미연, 거기 서!”그의 목소리에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심미연도 짜증 났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온지유는 본 체도 하지 않고 오직 강지한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강지한 씨, 아까도 말했는데 분명 난 여기에 사과만 하러 온 거야. 그럼 이제 가도 되는 건데 여기서 뭘 더 바래?”심미연이 오늘 여기에 사과하러 온 건 오직 강지한이 외할머니의 일주일 치 약을 끊어줬기 때문이다.근데 온지유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무릎을 꿇은 걸 그녀더러 어쩌라고?설마 이 상황에 온지유를 위로하라는 건 아니겠지?“지유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사람이 말하는데 가버리는 건 무슨 매너야?”그러면서 냉큼 온지유를 일으켜 세웠다.“바닥이 차가운데 일단 일어서서 말해.”하지만 온지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
강지한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지금 배속에 태아가 아직 불안정해서 무슨 일이 있든지 다 양보해 주고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이러다가 혹시나 뱃속의 아기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땐 아주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명심해!”강지한의 단호한 말투에 심미연은 무섭기고, 또 서럽기도 해서 울음이 왈칵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애써 눈물을 삼킨 뒤 다시 남자를 보며 덤덤하게 답했다.“지한 씨, 날 한 번이라도 자기 아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 날 아내 취급해 준적이 있냐고. 어떻게 우리가 결혼한 지 3년이 되었는데 애인보다 더 못한 취급을 할 수 있어?”밖에 남자들은 자기 아내한테 꽃은 물론이고 집이랑 자동차까지 통 크게 선물하고 또 접대 자리에도 꼭 데려간다는데 심미연은 여태껏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강지한은 한껏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에게 되물었다.“왜? 사모님 소리라도 듣고 싶었나 보지? 심미연 씨, 너무 욕심이 많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심미연은 그의 말에 갑자기 모든 게 재미없어졌다.“내일 시간 있으면 동사무소에 가자. 이제부터 어차피 사모님도 아니니까 내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두 사람은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심미연의 존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여 별로 득 본 것도 없었거니와 하루가 멀다고 강지한에게 모욕이나 당하면서 살아왔는데 더 이상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게 너무 지겨웠고 일찍이 이혼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이혼? 꿈도 꾸지 마!”강지한은 차갑게 이 말을 내뱉은 뒤 온지유를 안고 다급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심미연은 두 주먹을 꼭 쥔 채 병실에 홀로 남겨졌다.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람과 이혼할 거야!이렇게 살다가는 언젠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미연아, 괜찮아? 지한이 저놈이 널 괴롭힌 건 아니지?”귓가에 강준형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심미연은 재빨리 표정을 감추고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전 괜찮아요. 할아버지!”그리고 그에게 다가갔는
그녀고 강준형이 이렇게 해야만 마음이 놓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저 말없이 들어줬다.로펌에 도착 후, 심미연은 강준형을 다시 돌려보냈다. 차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돌아섰는데 주아연이 멀지 않은 곳에서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아이고, 우리 심 변호사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언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까지 꼬셨대?”방금 심미연이 차 문을 열었을 때 분명 차 안에는 백발을 한 강준형이 있었는데 자기 실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벌이고 다닌다고 생각했다.나이가 한참 많아 보이는 늙은이를 어떻게 설득했는지도 의문이었다.하지만 심미연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직진했다.매번 주아연과 입씨름하고 나면 후회스러웠다. 저런 사람한테도 인정을 베풀었던 자기 자신이 매우 미련해 보였기 때문이다.주아연은 심미연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모습에 더욱 기고만장해서 말을 이었다.“혹시 제가 정곡이라도 찔렀나요? 미연 씨, 전 미연 씨의 그 가증스럽고 쿨한 척하는 모습이 제일 싫어요!”언제나 주아연의 앞에서는 담담하고 여유로운 모습만 보여줬기에 그런 심미연이 질투 나기도 했고 또 그녀의 진짜 면모를 언젠가 드러내게 만들고 싶었다.주아연의 듣기 싫은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리자 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저는 그쪽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지 않은데요? 하루 종일 저를 감시하고 제 잘못을 잡아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은데, 제가 아무리 리우에서 나온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지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네요. 제 자리는 언젠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주아연 씨, 예전에 그나마 당신에게 잘 대해줬던 것을 봐서라도 우리 이제 남남으로 지내면 안 될까요? 제발 인사도 하지 말아줘요.”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회사에는 친구보다도 적이 많아지기 마련이라 대부분의 사람이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다.그녀도 이해하지만 주아연한테만큼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주아연은 심미연의 단호함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임현은 심미연의 안색이 안 좋아진 모습에 재빨리 사무실에서 나왔다.그렇게 전화가 세 번이 울린 뒤에 심미연은 전화를 받았는데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누군가의 짜증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언니, 간이 부었네? 감히 내 전화도 안 받고!”심미연은 한껏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친여동생인 심서연이었다. 어릴 적 잃어버리면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다시 찾게 된 뒤로부터 계속 태클을 걸어왔다. 심미연이 시집가기 전, 심서연은 심씨 가문에서 아주 고통스럽게 지냈다.“방금 유진 씨가 우리 집에 와서 파혼하겠다고 하더라. 이 빌어먹을 계집애, 언제 나 몰래 또 박유진까지 꼬신 거야!”대갓집 규수다운 면모는 온데간데없이 심서연은 수화기에 대고 거침없이 욕설을 퍼부었다.심서연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날 박유진이 자신과 만나자고 했던 게 차 사고에 대한 증거는 미끼였고 진짜 그녀와 하려 했던 말은 파혼에 대해서였던 것 같았다.다행히 그날 박유진과 만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심서연의 성격에 찾아와 일을 더 크게 벌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유진과 심미연의 관계도 풀기 힘들어 지게 된다.사실 다른 사람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하지만 혹시나 강지한이 미쳐서 박유진을 찾아갈까 봐 두려웠다.“지금 대답하지 못한다는 건 너도 마음이 찔린다는 소리고, 찔린다는 건 맞다는 소리야!”심서연은 이를 악물고 다시 말을 이었다.“이 나쁜 계집애, 네 남자가 성에 안 차면 널린 게 남잔데 그 남자들한테 들이대지, 왜 하필 내 남자한테 꼬리 쳐!”열일곱 살의 심서연을 되찾은 뒤로부터 거의 매일 이런 심술과 투정을 받아줘야 했다. 3년 전, 박유진이 갑자기 출국하고 심미연이 뜻밖에 강지한과 결혼하게 되면서 그나마 소란이 잦아들었다.하지만 지금 박유진이 파혼을 먼저 제기하면서 또다시 심서연이 매일 찾아와서 괴롭힐까 봐 너무 걱정되었고 생각만 해도 짜증이 몰려왔다.“그런 짓을 벌이고도
말을 마친 뒤 심서연은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강지한의 목소리가 너무 무서웠지만 그가 심미연한테 가서 난리 치겠다고 생각하니 또 기분이 좋았다.모든 이야기를 들은 강지한은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심미연, 어디 두고 봐!바로 이때, 응급실 문이 열렸고 강지한은 재빨리 다가가 의사에게 물었다.“괜찮나요?”“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의사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뱃속의 아이도 지켜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하루가 멀다하고 넘어지고 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임산부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아직 임신한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이렇게 다치면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한테도 분명 안 좋을 것이다.강지한은 핏기 없는 얼굴로 누워있는 온지유를 한번 바라보더니 어렵게 대답했다.“제가 조심하겠습니다.”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자리를 떴다.뒤따르던 간호사는 그제야 강지한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에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헉!잘생겼다! 하지만 강지한이 차가운 눈빛으로 간호사를 쏘아보자 그녀는 냉큼 시선을 거두고 의사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온지유를 병실로 데려다주고 그녀의 침대 옆에 앉은 강지한은 또다시 아까 심서연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어쩐지 최근에 심미연이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있더니 진작에 박유진과 뭔가 있어 보였다.이때, 온지유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한껏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지한 씨...”“내가 간병인을 불렀는데 이따 올 거야. 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 할 것 같아.”강지한은 말을 마친 뒤 문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온지유는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다급히 그를 불렀다.“지한 씨!”강지한이 왜 그냥 가겠다고 하지?원래 옆에서 그녀를 간호해 줄 텐데?분명 심미연, 그 불여우가 또 옆에서 뭐라고 했겠지?강지한은 그길로 로펌에 갔다.주아연은 한창 로펌 사람들에게 심미연의 그 백발노인에 대해 헛소
[한 잠 자고 일어났을 때 위치 정보가 사라진 걸 알게 되었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위치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동생분의 핸드폰에 접근해 통화 기록을 확인했죠.][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강씨 사모님이었어요.] 심미연은 눈을 반쯤 감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심서연은 무슨 일로 문소영을 찾았을까?’ ‘두 사람 사이가 그렇게 친한 관계였나?’[보스, 지금 심서연 씨가 소식이 끊긴 상태인데 계속 추적할까요?] [네. 추적하세요.] 심미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느꼈다. ‘심서연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찾아서 추적하겠습니다. 그럼 신하린 씨 교통사고는 어떻게 할까요?] [제가 일이 끝나면 그 사람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진짜 신원을 정확히 파악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심미연은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 섰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때 병실 안에서 심태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빨리 와요!”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급히 생각을 정리한 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엄마, 빨리 와서 이모 다리 어디 갔는지 찾아봐요.” 심태하가 그녀를 보고 급하게 달려왔다.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들어 심미연을 애타게 바라봤다. 심미연은 허리를 굽혀 그를 부드럽게 안아 올리며 심태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말했다. “이모는 사고로 다리를 잃었어. 이제 의족으로 대신해야 해. 그러니까 이모 앞에서 다리가 없다고 말하면 안 돼.”심태하는 눈가가 갑자기 붉어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이모는 다리를 잃었어. 이모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서 이모가 요즘 그렇게 기운도 없고 얼굴이 안 좋았던 거구나.’ ‘다리를 잃은 거였어.’어린 아이는 마음이 먹먹하고 아픈 감정이 밀려왔다. “태하가 불어주면 이모가 안 아플 거야.” 신하린은 웃으며 말했다. 마음속에 슬픔이 밀려왔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간병인은 이미 출근해 신하린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고 있었다. 심태하는 병실 문을 열자마자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모, 나 왔어요!”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치며 병상으로 달려가자 신하린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간병인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침 준비해 주세요.” 간병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심태하는 침대 곁으로 뛰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침대에 누워 있는 신하린을 바라봤다. “이모, 저 보고 싶었어요?” 부드럽고 귀여운 목소리에 신하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엄청엄청 보고 싶었지.” 심태하는 까치발을 들고 침대에 올라가려고 애썼지만 키가 닿지 않자 포기하고 조그만 얼굴을 숙여 신하린의 손등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저도 엄청 보고 싶었어요.”심미연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시리게 아려왔다. 손에 든 죽을 옆의 서랍장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혹여 자신의 감정이 신하린에게 전해질까 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침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말했다. “전화 좀 받고 올게.” 짧은 말만 남긴 채 병실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신하린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에 담긴 쓸쓸함이 선명하게 느껴져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지금 심미연이 자신을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 신하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미연이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도록 신하린은 아픈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치료에 임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서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그래야 심미연이 더는 자신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을 테니까.심미연은 병실을 나온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보스, 신하린 씨 사고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심미연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누구예요?] [한유나 씨 아버지입니다.]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경비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박유진과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박유진은 심미연이 멍하니 있는 걸 보며 잠시 마음이 조금 씁쓸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띠고 말을 이어갔다. “농담이야. 결혼 강요하려던 건 아니었어. 이렇게 하자. 오후에 시간이 되면 같이 보러 가자. 마음에 들면 내일 바로 이사도 가능해. 어때?”그는 심미연의 마음속에 강지한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건 심미연이 그와 함께 평생을 살아갈 만큼 감정이 깊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심미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오빠...” 심미연은 박유진이 억지로 웃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 모습에 마음속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박유진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지금은 오빠한테 결혼을 약속할 수 없어.” 그녀는 아직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박유진을 평생 고통 속에 두고 싶지 않았다. “알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돼.” 박유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어.”심미연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고 말하며 그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박유진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진성에 있을 때였다면 이렇게 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경성에 돌아온 후 강지한이 언제든지 심미연과 심태하를 빼앗아 갈 것만 같아 점점 더 초조해졌다.“나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 받을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걸 확신시키려 애썼다. 매번 의사 말을 순순히 따르며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심미연은 이제 더 이상
어린 아이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심미연은 세수를 하고 간단히 준비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유진은 이미 아침을 준비해 놓고 거실을 정리하고 있었다.“일찍 일어났네? 조금 더 자.” 박유진은 청소기를 끄고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할 일이 많아서 더 이상 못 자. 정신없이 바쁠 거야.” 심미연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 먼저 아침 먹어. 나는 위층 가서 태하 깨울게.” 박유진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알겠어. 오빠가 태하 깨워줘.” 심미연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살짝 비벼댔다.박유진과 함께하는 시간은 평온하고 따뜻했다. 그저 이런 일상이 이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침 먹어. 난 위층 가서 좀 보고 올게.” 박유진은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으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심미연은 그의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걸 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식탁으로 향했다. 박유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깊은 숨을 내쉬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심미연의 방에 들어서자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심태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박유진의 마음은 저절로 따뜻해졌다. 심미연과 심태하를 돌보는 건 그에게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심미연은 식탁에 앉아 보온병을 열었다. 따뜻한 우유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향기가 퍼졌다. 빵은 부드럽고 입 안에서 살살 녹으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박유진은 예전엔 찐빵이나 만두 같은 것만 만들 줄 알았고 빵과 케이크는 나중에 배우게 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녀와 심태하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심미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심미연은 복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박유진이 심태하를 안고
신하린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스친 냉소는 차갑고 깊었다. ‘내가 멀쩡할 때는 단 한 번도 결혼 얘기 안 하더니. 이제 다리 하나 못 쓰게 되니까 그제야 날 데려가겠다고?’ ‘날 데려가서 네 부모한테 실컷 조롱당하게 하려고?’“왜 그렇게 봐?” 이진영은 신하린의 시선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숨을 삼키듯 숨을 들이마신 뒤에야 겨우 물었다. 신하린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이진영 씨, 난 예전에도 당신과 만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앞으로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고요.” “당신과 결혼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거예요.”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내뱉는 말들이 조금의 여지도 없이 이진영을 꿰뚫었다.이진영은 허리를 숙여 수건을 적셨다. 꾹 짜낸 뒤 조용히 걸음을 옮겨 신하린 앞에 섰다. 수건을 조심스럽게 들어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널 데려가겠다고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갈 거야.” “예전엔...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너한테 약속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모든 일 정리되는 대로 너랑 결혼할 거야.” “한 말은 반드시 지킬 거야.”지난 4년 동안 이진영은 많은 일을 해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만들어낸 적도 많았다. 그의 곁에 신하린이 있으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보고싶어도, 미칠 듯 그리워도 끝내 연락하지 않았다. “전 안 해요. 절대 당신이랑 결혼 안 해요.”“이진영 씨, 당장 나가세요.” 그날 갑자기 나타난 그 여자...억지로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이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쏟아졌다. 그녀가 견뎌온 모든 고통은 전부 이진영 때문이었다. 이진영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낸 뒤 손까지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네가 기분 안 좋다는 거 알아. 그럼 나 한 대 쳐서라도 기분 풀래?” 신하린은 그 손을 냉정하게 뿌
강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얼굴의 선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심미연은 분명 병실에 와서 강상미를 만났지만 의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말 독한 여자야.’“시간도 늦었고 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먼저 간다.” 이진영은 담배를 끄고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갔다. 강지한은 술을 따라 마시며 심미연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심미연은 언제 의술을 배운 거지?’ ‘이 3년 동안 이 여자는 도대체 뭘 했던 걸까?’이진영이 차에 올라타자 기사가 물었다. “도련님, 집으로 가시겠습니까?” 이진영은 미간을 문지르며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순간 마음 속이 답답해졌다. “병원으로 가자.”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엔진을 돌렸다.신하린의 병실 앞에 도착한 이진영은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이진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들어가서 잠깐 보고 올게요.” “신 대표님이 명령하셨습니다. 심미연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론은 한 마디였다. 그들은 명령을 따랐기에 규칙을 어길 수 없었다.이진영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여기는 내 병원인데 병실도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돌아가 주세요.” 경호원이 좋은 말로 타일렀다. 하지만 그때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이진영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급하게 말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어요. 들어가게 해줘요.” 경호원은 그를 막으려 했지만 그때 또 한 번 병실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경호원도 놀라서 급하게 병실 문을 열었다.이진영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하린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조명 아래서 그 모습은 다소 섬뜩하게 보였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다가가 신하린을 침대에 눕히고 몸에 상처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면서 옆에 멍하니 서 있던 경호원에게는 급히 소치쳤다. “의사
“너희 아버지가 최근에 한석훈과 많이 가까워졌다고 들었어. 내가 알기로 한석훈과의 관계가 간단하지 않다더라.” 강지한은 박시훈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이진영에게 전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알고 있어.” 사실 지난 4년 동안 그는 한석훈의 배후 세력을 조사해왔고 조사할수록 그 배후는 점점 더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너와 한유나 씨 사이의 일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 이진영은 조용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했다. “혼약을 해제할 생각이야.” 그는 이미 한유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한유나는 최근 들어 그를 피하는 듯했다. 그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구아정은 어떻게 할 거야?” 강지한이 다시 물었다. “네 첫사랑이라고 했지?”“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고 그 뒤로 그냥 끝났어.” 이진영은 무의식적으로 신하린의 얼굴을 떠올렸다.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실 지금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신하린이었다.이제 그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확실히 느꼈다. 그녀의 다리가 이렇게 된 지금 그녀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녀를 돌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구아정, 그 여자에 대해 조사해본 적 있어?” 강지한이 상기시키듯 말했다.“조사 중이야.” 이진영은 숨기지 않고 답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겠어.”구아정은 분명 그를 찾으러 온 거였다.‘왜일까?’“신하린 씨의 일은 잘 해결됐나?” 강지한은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었다.“하린이 오른쪽 다리가 절단됐어.” 이진영은 말하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흡입했다. 연기가 흩어질 때 그는 다시 한 번 신하린의 분노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강지한은 잠시
문소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살려주지 않으면 우리가 두 명의 아들을 뒀다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거야. 그럼 당신도 명예를 잃고 끝장날 거라고.” 그녀는 지금 이 남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가 두 아들을 뒀다고? 증거 없이는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며 눈빛은 강렬하게 빛났다. “당시 내 임신 검진서도 여전히 남아 있고 병원에 가면 내 출산 기록도 확인할 수 있어. 그 아이들의 혈액형은 당신이랑 똑같아.” 문소영은 그동안 이 모든 것을 철저히 보관해 왔다.“문소영, 나를 망치려고 하는 거야?” 남자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나는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래.” 문소영은 감정을 정리한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나에게 유리해.” “내가 원칙을 깨고 너를 돕기를 바란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남자는 술잔을 비운 후 탁자 위에 쿵 하고 내려놓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소영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에게 경고만 준 것뿐이다. 그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한 대로였다.잠시 후 문소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모님, 지시하신 대로 사람을 공해에 던졌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해외로 잠시 숨어 있어. 여기 상황이 정리 될 때까지 기다려.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된다.] 문소영의 얼굴엔 차가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쯤 심서연의 죽음은 이미 잠잠해지고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는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문소영은 전화를 끊고 술을 따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진영은 술을 많이 마셨고 잠간 밖으로 나왔다. 그때 한 남자의 뒷모습이 아버지를 닮은 듯해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멈칫하며 발걸음
문소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말없이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TV 뉴스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미칠 듯했다. 문소영은 자신이 더 이상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믿어왔다. 남자는 그녀의 침묵을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문소영은 깊은 생각을 떨쳐내고 몸을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필요해서 왔어. 우리 아들에 관한 일이야.”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우리가 아들이 있다고? 그럴 리가...” “쌍둥이였어. 작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납치됐고 큰 아이는 강지성. 몇 년 전에 사고로 죽었어.” 문소영은 눈물을 훔치며 말을 급히 이어갔다.이건 그녀가 삼십 년 넘게 숨겨온 비밀이었다. 그녀는 이 생에서 절대 말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 이렇게 쉽게 입 밖으로 내뱉게 되었다. 문소영의 말은 마치 폭탄처럼 남자의 가슴 속에 떨어졌고 남자는 동공이 급격히 축소되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문소영과 자신이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사실 처음 내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당신에게 말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에서 강제로 나를 강우석과 결혼시키려 했고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러자 부모님은 나를 감금하고 내 핸드폰도 압수했어.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어.” 문소영은 말하면서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강씨 가문에 보내졌었다. 강우석과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석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강우석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그 상대가 바로 강지한의 어머니였다. 7개월 후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그 중 한 명이 사라졌다. 그녀는 30년 동안 그 아이를 훔쳐간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그 사람이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