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굳이 안 봐도 돼, 형님이 한 행동 여기 다 찍혔으니까.”일부러 형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하는 심미연에 온지유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져 갔다.심미연이 몰래 영상까지 찍을 줄은 몰랐는데, 상황이 자신에게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자 온지유는 급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쓰러지는 것과 배가 아프다고 하는 건 다 이미 쓴 수법이라 또 쓰면 누가 봐도 거짓말인 게 티 나서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결국 온지유는 아무런 방법도 생각해내지 못하고 배 째라는 식으로 영상을 확인하기로 했다.어차피 자신은 계속 혼자 넘어졌다고 주장해왔으니 딱히 걸릴 것도 없었다.심미연의 영상만 있다면 온지유도 더 이상 누명을 씌우진 못할 것 같아 신하린은 그녀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며 말했다.“역시 내 친구야, 잘했어!”눈을 가늘게 뜨고 그 영상을 보던 강지한의 주위에 한기가 맴도는 게 느껴지자 온지유는 점점 불안해졌다.당장이라도 강지한이 저를 외면한다면 저는 기댈 곳도 없어지기에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넌 일단 가서 앉아 있어. 혼자 갈 수 있지?”“지한 씨, 나 혼자 가기 싫은데...”온지유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애써 평온하게 말하는 강지한에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지 온지유는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나 혼자 가기 싫은데...”그때 심미연이 핸드폰을 그녀의 얼굴을 향해 들이밀며 말했다.“형님, 설마 도련님이랑 붙어먹으려고 했다는 거 온 세상에 다 까발려지고 싶은 거예요? 내연녀가 본처의 자리를 노린다는 것도 같이?”“지한 씨, 나 좀 도와줘!”그에 온지유는 일부러 더 놀란 척을 하며 소리 질렀지만 속으로는 온지유가 더 막 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 그녀가 쫓겨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역시나 강지한은 바로 온지유를 품에 가두고 심미연을 노려보며 말했다.“밥 먹으러 오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몰래 와서 나랑 지유가 밥 먹는 영상이나 찍고 있었어? 왜? 이혼할 때 재산이라도 더 가져가려고?”강지한은 3년 전에도 일을 꾸며 결혼
“사과해!” 강지한은 맞은 얼굴을 만지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그는 조금 전 그녀를 엄하게 벌하고 싶었다.하지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심미연을 보자 가혹하게 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무의식 속에서 그는 심미연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심미연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녀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전혀 사과하고 싶지 않았다.“사과해,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마!” 강지한이 언성을 높였다.그가 원하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 따위가 아니라 여자가 굴복하는 것이었다.신하린은 황급히 심미연을 떼어내고 강지한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미연이 대신 사과할게요, 죄송해요.”그런다고 강지한이 이대로 그냥 넘어갈지는 모르겠지만...심미연은 감동에 눈시울이 붉어졌다.신하린은 강지한이 일부러 자신을 힘들게 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를 대신해 사과한 거다.강지한이 어떤 사람인데, 작정하고 신하린을 난처하게 만든다면 신하린은 무사히 넘기기 힘들다.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신하린을 끌어당기고 강지한 앞에 서서 날카롭게 말했다.“하린이 난처하게 하지 마. 얘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강지한, 내가 사과할게, 미안해!”온지유는 담담하게 웃었다.“신하린 씨랑 미연 씨는 정말 좋은 친구네요. 사과까지 대신하는 걸 보니 지한 씨가 죽으라고 하면 같이 죽을 거예요?”신하린에게 하는 말이다.요즘 재벌가에선 다들 가식 떨기 바쁜데 신하린과 심미연이 진짜 우정을 나눌 리 없었다.강지한의 검은 눈동자가 심미연의 얼굴로 향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게 사과하는 태도야?” 길게 늘이는 말끝에는 약간의 조롱이 담겨 있었다.온지유의 속내를 알고 있는 신하린은 그녀가 일부러 그런 말로 강지한을 자극해 강지한이 심미연을 힘들게 할까 봐 서둘러 말했다.“강지한 씨가 나보고 미연이 대신 죽으라고 하면 기꺼이 죽을 거예요.”심미연이 구해준 목숨이니 기꺼이 그녀를 위해 죽으리라.심미연은 눈물이 맺힌 채 신하린의 손을 꼭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바보야.”신하
어쨌든 그녀는 강지한에게 특효약을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그에게 밉보이면 약을 얻지 못할 테고, 그러면 할머니는 계속 시달려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래, 가자.” 강지한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걸어갔다.온지유는 심미연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서둘러 강지한의 뒤를 따랐다.심미연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강지한은 온지유 말이라면 다 해준다.신하린은 서둘러 심미연을 식탁 쪽으로 끌어당겼고, 자리에 앉은 뒤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미연아, 미리 말하는데 이따가 깜짝선물이 있어.”심미연은 생각을 정리하고 차 두 잔을 따라 신하린에게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깜짝선물이 뭔데?”강지한과 결혼한 지 3년, 그녀의 삶은 파문 하나 없이 고인 물처럼 흘러갔기에 딱히 무슨 서프라이즈를 기대하지 않았다.신하린은 일부러 말을 돌렸다.“맞춰봐!”심미연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신하린이 눈을 부릅떴다.“그냥 협조 좀 해 줘. 맞춰봐.”신하린은 심미연이 그저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삶에 대한 열정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이렇게 계속 사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심미연은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생일 선물 준비했어?”이틀 뒤가 그녀의 생일이었는데 신하린이 미리 생일 선물을 줄지도 모르겠다.“아니!” 신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야!” “무슨 사람? 남자 친구라도 소개해 주려고?” 말을 마친 심미연이 먼저 피식 웃었다.그녀는 유부녀였고 결혼 생활 중에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강지한은 젓가락을 들었지만 입맛이 없었다.그는 문득 지난 며칠 동안 심미연이 자신의 앞에서 많이 차분해졌고 예전처럼 줄곧 자신의 곁에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마치 두 사람이 매일 밤 같은 침대에서 자는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 그저 보통의 관계인 것처럼 말하는 것조차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런 생
심미연은 잠시 당황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본인을 가리키며 물었다.“내 거야?”박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며칠 후면 네 생일인데 내가 내일 출장을 가야 해. 네 생일 축하해주러 제때 못 갈 것 같아서 미리 생일 선물을 주려고.”심미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내 생일 기억해 줘서 고마워. 선물은 됐어, 마음만 받을게.”심서연이 박유진을 좋아했기에 박유진과 선을 긋지 않으면 심서연이 미쳐 날뛰며 난동을 부릴 것 같았다.현재 그녀의 신분은 강지한의 아내였고 남들이 모른대도 강지한과의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누구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박유진은 그녀의 말에 누군가 칼로 찌르는 것처럼 가슴이 몹시 아팠지만 얼굴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이건 내가 직접 만든 물건일 뿐이야. 비싼 선물도 아니고 별거 아닌데 받아도 괜찮아.”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두 손으로 만든 거다.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는 심미연에게 빚진 선물 하나를 기억했다.“오빠, 난...”심미연이 여전히 거절하려 하자 신하린은 손을 뻗어 박유진의 손에 들려 있던 보석 상자를 빼앗아 열어 보았다.별 모양의 다이아몬드 귀걸이였다.“미연아, 이거 귀걸이인데 받지 그래?”신하린은 고개를 기울여 심미연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심미연이 평소 별을 좋아했던 것을 알고 있었고 이번 선물도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았다.컵을 든 박유진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고 마음은 불안해졌다.그는 어렸을 때 한밤중에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부모님을 깨워 집에서 쫓겨난 심미연을 한참 동안 찾아 헤매다가 집 앞 잔디밭에서 발견한 적이 있었던 걸 기억했다.그때 그녀는 잔디밭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별님, 소원을 빌었으니까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요!”그러자 그는 말했다.“소원이 뭔데? 말만 하면 내가 들어줄게.”심미연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별 두 개를 줘. 그러면 매일 별님에게 소원을 빌 수 있잖아.”“왜 두 개야?”“하나면 나처럼 외
신하린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지한을 힐끗 쳐다보며 살짝 짜증이 났다.조금 전 심미연의 눈에서 놀라움이 번쩍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이 귀걸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강지한이 옆에 있어서 감히 가져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강지한 개자식이 정말 밉다.선물 해프닝이 끝나고 세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심미연은 음식을 먹으며 생각하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그녀는 황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했다.“화장실 좀 다녀올게!”그리고 서둘러 일어나서 자리를 떠났다.박유진은 따뜻한 얼굴에 허탈한 기색이 감돈 채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신하린은 가만히 심미연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당연히 심미연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도 알았다.일어나서 심미연에게 가려는데 박유진이 뭔가 눈치챌까 봐 두려워 고민 끝에 신하린은 그녀에게 가려는 생각을 접었다.심미연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할까 봐 임신 사실을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심미연이 화장실에 가는 모습을 본 강지한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나 화장실 좀.”온지유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다녀와요.”심미연은 그대로 화장실에 달려가 전부 토해버렸다.임신 사실을 안 후 이렇게 괴로울 정도로 토한 건 처음이었다.한참을 토하고 나니 담즙까지 나올 정도였다.구토 후 그녀는 수도꼭지를 틀고 입을 헹궜다.입을 다 헹구고 몸을 추스른 후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는데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담배를 피우고 있던 강지한과 마주칠 줄이야.심미연은 감정을 추스르며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그 결과...강지한 곁을 스쳐 지나갈 때 갑자기 손목이 덥석 잡히며 남자의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심미연, 우리 아직 이혼 안 했는데 벌써 박유진이랑 만나는 거야?”심미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들어 당당하게 그와 마주했다.“내연녀를 데리고 온 도시를 누비며 과시할 땐 당신이 유부남이라는 걸 잊었던 거야?”내로남불
심미연은 순간 당황하다가 작은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방금 실수로 입술을 깨물었어.”하지만 물린 것은 강지한의 입술이었다.“자, 닦아.” 신하린은 휴지를 건넸다.박유진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심미연은 티슈를 받아 입을 닦으며 화장실 밖에서 강지한의 무례한 행동을 떠올리고는 짜증이 밀려왔다.강지한은 대체 그녀를 뭐로 보고 틈만 나면 강제로 입을 맞추는 걸까.그녀가 남들에게 욕먹는 건 신경도 안 쓴다.온지유였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면서!“참 미연아, 박유진 씨가 나한테 큰 프로젝트를 소개해 줬는데 시간 있으면 와서 도와줘. 나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신하린이 밝은 어투로 말하자 심미연은 휴지를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고를 끄덕였다.“좋아, 마침 나도 요즘 한가해.”온지유가 리우로 오면 분명 그녀의 사건을 빼앗을 것이기에 앞으로 담당할 사건이 줄어들 게 뻔했다.“왜, 리우 망한대? 네가 한가할 리가 없잖아.”신하린은 리우에서 심미연이 얼마나 바쁘게 보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이혼한 부부가 왜 그렇게 많은지.“아니, 리우는 지금 강지한이 인수하고 온지유가 낙하산으로 내 상사가 됐어.”심미연이 웃었다.“그동안 소송으로 바쁘게 살다 보니 너무 피곤했는데 이제 좀 여유가 생기겠어.”몇 년 동안 이혼 사건을 맡으면서 이혼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히는 부부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그래서 자신은 강지한과 이혼을 하더라도 보기 좋게 헤어지고 싶었다.밑바닥까지 드러내는 건 너무 추하니까.“강지한 개자식이 망할 년한테 홀려서 앞뒤 구분도 못하네. 진짜 열 받아!”신하린은 씩씩거리며 달려가서 강지한을 두들겨 패고 싶었다.“괜찮아, 휴가라고 생각하지 뭐.”심미연이 웃었다.“마침 너 일 도와주면서 돈 벌 수 있잖아. 소송보다 훨씬 쉽지.”“너는 재능이 있는데도 왜 숨겨? 네가 회사 차렸으면 내건 진작 문 닫았겠다.”신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그 개 같은 강지한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었어.”“
그래서 박유진은 가족 몰래 심미연을 가르칠 전문 선생님을 모셔 왔다.피아노, 체스, 서예, 그림, 글쓰기, 격투기까지 다 해냈고 그의 눈에 그녀는 항상 반짝반짝 빛났다.그해에 강지한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쯤 그의 아내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안타까운 일이다.신하린은 어렸을 때 심미연이 겪은 일을 알고 있었기에 심미연이 박유진에게 고마워해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때로는 심미연이 박유진을 만난 덕분에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자신도 다행히 심미연을 만났기에 살 수 있었다.“재능은 무슨. 오빠가 돈을 쓰니까 오빠 성의도 있고 돈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배운 거야.”과거를 떠올려보면 심미연이 행복하다고 느낀 유일한 순간은 박유진과 함께 있을 때였다.그해 강지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박유진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박유진의 아내였으면 무척 행복하게 살았겠지.하지만 이건 현실이었고, 만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자, 과거 얘기는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신하린은 심미연의 눈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박유진은 그릇을 들고 국을 한 그릇 떠서 심미연에게 건넸다.“먹어봐.”“고마워, 오빠.”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넨 심미연은 박유진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둘은 이미 엇갈렸고 다시는 접점이 생겨선 안 된다.강지한은 박유진을 향해 미소 짓는 심미연과 박유진의 부드러운 눈빛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유난히 짜증이 났다.아직 이혼도 안 한 여자가 다른 남자를 꼬시고 있었다.온지유는 찢어진 그의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는 심미연을 찢어버리고 싶었다.조금 전 강지한이 화장실에 갔을 때 심미연도 화장실에 간 것을 보았다.분명 심미연이 강지한의 입술을 깨문 거다.‘감히 화장실에서 강지한을 꼬시다니, 빌어먹을 것!’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마쳤다.식사 후 심미연이 쇼핑을 가자며 신하린
심미연의 작은 얼굴이 붉어졌고 신하린은 고개를 기울여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입술에 묻은 피가 저 남자 깨물어서 생긴 거구나.”어쩐지 물어봤을 때 심미연의 얼굴이 붉어지더라니.온지유는 너무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었다.전에는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짐작만 하고 괜한 생각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강지한의 말을 직접 들으니 질투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심미연 망할 년! 감히 화장실에 강지한을 꼬드겨? 뻔뻔한 것!’강지한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입가를 누른 채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심미연을 바라봤다.“왜, 책임지기 싫어?”심미연은 이를 악물고 신하린에게 말했다.“먼저 작업실로 가서 협업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줘. 다 보고 통화로 얘기할게.”“근데 너...”신하린은 심미연이 강지한과 단둘이 있는 것이 불안했다.“괜찮아, 보배둥이가 옆에 있으니까 나한테 무슨 짓 못 해.”심미연은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신하린에게 말했다.“알았어, 그럼 조심해!” 신하린은 낮게 당부하며 자리를 떠났다.심미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심미연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신하린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벤틀리 쪽으로 걸어갔다.성무진은 차 문을 열고 일찌감치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다가오자 정중하게 손짓하며 말했다.“타세요, 사모님.”심미연이 그를 향해 담담하게 웃었다.“고마워요.”그러고는 허리를 굽혀 차에 타자 성무진은 차 문을 닫았다.심미연은 창가 자리에 앉아 중간에 앉은 온지유를 조용히 바라봤다.온지유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이 년이 진짜 타?’온지유의 매서운 눈빛을 받은 심미연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형님께서 여기 계시니까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없네.”남자의 입가에 난 상처는 조금만 지나면 아물 테지만 온지유를 불쾌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너!”온지유는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빌어먹을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