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그 한마디를 내뱉으며 주저하지 않고 남자의 앞에 달려갔다. “저 미연이에요. 스승님... 저 기억하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스승님이 살아 있었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분명 사부의 얼굴이었다. ‘틀림없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야. 절대...’ 남자는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며 목소리 속에 날카로운 분노를 담아 말했다. “비켜 주세요. 제 아내가 기절했어요. 여기서 막고 있다가 제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수 있겠어요?” 심미연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몸이 굳어가는 듯 모든 것이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스, 스승님...” 그 순간, 심미연의 심장은 마치 거대한 북처럼 울려 퍼지며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그 남자의 얼굴을 놓칠세라 집요하게 쫓았다. 마치 그 얼굴을 가슴 깊이 새기려는 듯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확신했다. 눈앞의 남자, 뚜렷한 윤곽과 깊은 눈빛을 가진 이 얼굴. 한때 그녀가 존경하며 따랐고 그 죽음을 직접 목격했던 사부, 진운혁의 얼굴이었다.기억 속의 장면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날, 하늘은 흐릿하고 어두웠다. 마치 하늘마저 비극을 애도하는 듯, 구름이 짙게 깔려있었다. 그녀는 군중 속에서 사부의 몸이 고층 빌딩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그대로 지켜봤다. 끊어진 줄에 매달린 연처럼 결국 아무 힘 없이 차가운 땅에 내팽겨쳐졌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 군중의 떠들썩한 소리, 그리고 그때 가슴 깊숙이 울려 퍼진 아픈 울음소리가 뒤엉켜 처참한 교향곡을 이뤘다. 그 해, 그녀는 사부의 시신이 하얀 천에 덮여져 장례차에 실려 떠나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부가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그런 낙하에 살아남을 리 없었다. ‘그럼 스승님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수많은 의문이 머
‘우울증은 거의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강지한을 마주할 때마다 발작이 일어날까?’ 심미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강지한과 자주 마주할수록 언젠가는 자신이 목숨까지 위협받게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강지한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린 아들이 있어. 네가 도망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야.”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심미연, 이제는 순순히 내게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박유진은 앞으로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할 테니까.” 그의 말은 비웃음을 품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농담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미연은 그의 말을 듣자 얼굴이 굳어졌다. “남자답게 앞에 나서서 직접 해. 뒤에서 비겁하게 움직이지 말고.”차가운 목소리 속에 날 선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싸늘하게 번뜩였고 단단히 다문 입술은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유진의 회사에서 벌어진 일들이 강지한의 손에 의해 조종된 것임을 그녀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강지한이 직접 그런 말을 꺼낸 순간, 심미연의 속에서는 끓어오르는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신이라도 된다고 착각하는 거야? 오만하기 짝이 없네.’ “내가 남자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강지한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지만 그 속에는 억누른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내가 직접 손 쓰게 만들지 마. 계속 건드리면 더 이상 참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그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강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이 강지한의 방식이었다. 심미연은 강지한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한 번 해봐. 네가 날 어떻게 끝낼 수 있을지 지켜볼게.”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강지한의 협박을 단호히
심미연은 책상 위의 서류를 재빨리 정리했다. 필통 속의 펜들이 그녀의 손길에 맞춰 부딪히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마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듯한 긴박한 배경음처럼 들렸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재빠르게 집어 들고 가방을 챙겨 급히 밖으로 향했다. 그녀의 동작에는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심미연이 문 앞에 도달해 손을 뻗어 문을 열려던 순간, 문이 가볍게 열리며 임현이 나타났다. 그녀는 자료 더미를 안고 바쁜 모습이었다. 심미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급한 일인가요?” 급한 일이 아니면 시간이 없었다. 임현은 급히 심미연 앞에 다가오며 손에 든 서류를 가볍게 흔들었다. 마치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는 듯했다. “심 변호사님, 그 도시를 뒤흔든 자식 살해 사건에 새로운 단서가 나왔어요. 우리 시골로 가서 다시 조사를 해볼까요?” 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네. 시골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 이렇게 하죠. 임현 씨가 먼저 다른 직원 몇 명과 함께 가서 조사를 시작하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주세요. 조심해서 움직이세요.” 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심 변호사님, 걱정 마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다은 씨의 이혼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이다은 씨가 제공한 증거는 부족해서 새로운 중요한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이 진전을 보지 못할 거예요.” 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먼저 시골로 가서 조사를 시작하세요. 이다은 씨의 사건은 제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게요.” “임현 씨, 제가 지금 가봐야 해요.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주세요.” 그녀는 급히 말을 마친 후 곧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심미연은 성무진의 말 속에서 피하는 듯한 뉘앙스를 느끼며 마음속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 ‘강지한이 도대체 태하를 데려가서 뭘 하려는 걸까?’ “당신은 강지한의 비서잖아요. 강지한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요? 지금 장난해요?” 심미연은 아들이 걱정돼 목소리가 날카롭게 떨렸다. 전화기 너머에서 성무진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결국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 없이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그는 강지한의 결정을 막을 힘이 없었다. 오직 심미연에게 미안함 마음만을 느꼈다. 강지한이 심미연을 돌려놓으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을 강지한에게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히려 심미연을 더 멀리 밀어내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었다. 4년이 지났지만 강지한의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심미연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에 당황하며 사방의 정적이 점점 더 숨 막히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의 머릿속엔 아들과 함께 보냈던 즐거운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들이 강지한에게 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빨리 태하를 찾아야 해.’ 결심을 굳힌 심미연은 즉시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마친 후 그녀는 다시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태하 위치를 바로 추적해서 나에게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보스.”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차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곧 차 시동을 걸고 길을 떠났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지만 여전히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차가 멀리 가지도 않았을 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화를 받자 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스, 큰일이에요. 태하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어요. 상대방이 신호를 차단했어요.” 심미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분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이제 강지한이 아들과 함께 사라진다고 말한 것이 진심인 것 같았다. ‘내가 키운 아들을 강지한이 뭔데 마음대로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에 냉기가 흘렀다. ‘이 자식이 감히 나에게 반항하다니.’ ‘대단한 배짱이군.’ 임혜자는 강지한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불안해했다. ‘큰일 났다.’ ‘도련님이 화나셨어.’ ‘이제 작은 도련님이 또 어떤 처벌을 받을지 걱정이네.’ 강상미는 아빠에게서 퍼지는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걱정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심태하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오빠, 나랑 손 잡아.” 심태하는 강상미를 한 번 쳐다본 후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강지한에게 끌려왔던 기억이 떠오르며 강상미의 손을 가볍게 밀어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당신들이랑 친하지 않아요. 손 대지 마세요.” 그 후, 심태하는 고개를 들고 강지한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강 대표님, 정말 못되었네요. 엄마와 제 선의를 이렇게 이용할 수 있다니. 앞으로 엄마랑 저는 상미에게 다시는 잘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의 어린 마음속에는 세상이 아직 아름다웠다. 하지만 강지한을 만나면서 점점 세상의 추한 현실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아직 너무 어렸기에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벅찼다. 그래서 그는 화가 났고 강지한에게 속았다고 느꼈다. 이제 그는 다시는 강지한의 말을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오빠, 그러지 마.”강상미는 그의 말을 듣고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심태하는 동생이 이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도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굳게 다짐했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돼.’ ‘나의 약함을 보여줄 순 없어.’ 엄마가 늘 말했었다. ‘밖에서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해.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괴롭히지 않아.’ 강지한은 딸이 우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어두워졌고 심태하를 향한 눈빛은 날카롭게 변했다. “심태하, 여동생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상미에게
임혜자는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도련님이 화가 나셨군.’ ‘작은 도련님도 정말 고집이 세다.’ ‘아버지와 아들이 참 닮았네.’ 심태하는 목이 점점 더 조여오며 숨이 가빠졌다. 작고 귀여운 얼굴이 점차 푸르고 보라색으로 변해갔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 간신히 입을 열어 강지한에게 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이미 마음속 깊이 깨닫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부탁을 해도 강지한은 절대 그를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는 자신이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지를 떠올렸다. 그 생각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덜 아프게 느껴졌다. 임혜자는 뒤에서 초조하게 따라가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혹시 도련님이 실수로 작은 도련님을 더 조여버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녀가 심태하를 살려 달라고 부탁한다고 해도 강지한은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임혜자는 매우 난감하고 마음이 불안했다. 다행히 그리 긴 거리는 아니었다. 임혜자의 걱정 속에 강지한은 심태하를 소파에 던져놓았다. 심태하는 소파에 쓰러지자마자 계속해서 기침을 내뱉었다. 임혜자는 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것을 보고 급히 돌아서서 물 한 컵을 가득 채워 그에게 건넸다. 그녀는 물컵을 아이의 입에 가져다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도련님, 물 좀 드세요.” 하지만 심태하는 얼굴을 돌리며 거절했다. “괜찮아요. 필요 없어요.” 아이의 눈은 붉어져 있었고 금세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보였다. 그 모습은 정말로 안쓰러웠다. 강지한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며 강상미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 자식, 정말 고집이 세네.’ ‘이 상황에서 사과할 생각은 안 하고 버티기만 하네.’그는 이 아이가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강지한이 식당으로 들어가자 임혜자는 급히 물컵을 테이블에 놓고 심태하를 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작은 도련님, 괜찮아요. 도련님은 절대 작은
심태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를 버린 그날부터 당신과 저는 아무 관계가 아니에요. 엄마가 저를 낳을 때 거의 죽을 뻔했다고요! 그때 강 대표님은 어디 계셨어요? 엄마 곁에서 끝까지 함께 버텨준 건 우리 아빠예요.”“이제 와서 제가 똑똑하고 귀엽다고 데려가겠다고요? 강 대표님, 세상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평소에는 귀엽기만 한 어린 목소리가 지금은 단호하고 날카로운 질책으로 변해 있었다. 임혜자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세상에. 작은 도련님이 무슨 말을...’ ‘도련님이 이대로 가만있으실 리가 없는데...’ 한편, 강상미는 멍하니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와... 오빠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저렇게 많은 말을 술술 할 수 있지?’ ‘내가 했으면 분명 버벅거리기나 했을 텐데...’ 강지한은 얼굴이 굳은 채 눈앞의 어린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정말 세 살짜리가 할 말인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아니야. 분명 심미연이 가르친 거겠지. 대체 나를 얼마나 미워하면 내 아들까지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거야?’ ‘정말 냉혹한 여자군.’“도련님, 작은 도련님이 한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직 겨우 세 살짜리 아이잖아요.” 임혜자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순간 강지한의 차갑게 번뜩이는 눈빛과 마주쳤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살기에 온몸이 굳어버린 그녀는 결국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강지한은 손을 뻗어 심태하의 옷깃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며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거 네 엄마가 가르쳐준 거냐?” 그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여자, 정말 가관이네.’그는 심미연을 찾아 제대로 따져볼 작정이었다. “아니에요. 엄마는 그런 말을 가르쳐준 적 없어요. 저는 인터넷에서 혼자 배웠어요.” 심태하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이였다. 그는 종종 인터넷에서 ‘악덕 아버지가 아이를 빼앗는’ 장면을 봤고 그 대사를 몇 번이고 기억해
“내가 한 거면 어때? 그 여자는 진영 씨에게 약혼녀가 있는 걸 알면서도 뻔뻔하게 다가갔잖아. 우리 사이를 망쳐 놓은 건 신하린이야.”“그 여자, 죽어 마땅해.” 한석훈이 물러난 뒤 한씨 가문은 몰락했고 한유나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으며 그녀는 연구소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그 이후로 한유나는 점점 더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해져 갔다. 이진영 앞에서는 예전 한씨 가문의 고상한 아가씨처럼 온순하고 점잖은 척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 우아함은 사라지고 본능적인 거칠음만 드러났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고 남은 건 비난과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다 잃었는데 우아함과 점잖음이 무슨 소용이야?’ 심미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하린이가 건드린 게 아니라 오히려 이진영 씨가 하린이에게 매달린 걸 수도 있잖아. 넌 그냥 이진영 씨를 차지하지 못한 원망을 하린이에게 떠넘기고 있는 거야. 그게 하린이한테 공평하다고 생각해?” “그 여자가 진영 씨를 건드린 게 아니라면 왜 자꾸 만나고 다니는 거야? 그 여자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진영 씨와 부부였을 거야.”한유나는 이진영 얘기만 나오면 감정이 격해졌다. “나는 한씨 가문의 아가씨야. 학식도 있고 배경도 좋다고. 그런데 진영 씨는 그런 나와는 잠자리를 안 가지면서 이미 더럽혀진 신하린과는 계속 관계를 이어갔어. 내가 그 여자보다 못한 게 뭔데?”한유나는 모든 불행이 신하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이 신하린 때문에 생긴 일이라 여겼고 그로 인해 자신이 겪은 아픔만큼 신하린도 반드시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건 너를 아내로 맞지 않는 이진영 씨한테나 물어봐야겠지.”심미연은 눈을 날카롭게 좁히며 차갑게 말했다. “왜 아무 죄 없는 하린이에게 그런 짓을 한 거야? 대체 왜 하린이를 건드린 거냐고!”그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그 어떤 말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한유나는 갑자기 웃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