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한은 심태하의 말에 얼굴이 굳어지며 화가 치밀어 오르려 했다.그때 딸의 귀여운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아빠, 분유 먹고 싶어요. 분유 타줄 수 있어요?” 강지한은 잠시 고개를 숙여 딸에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기다려. 아빠가 금방 타줄게.” 강상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좋아요. 고마워요, 아빠.” 그 후, 그녀는 싱긋 웃으며 심태하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심태하는 그 모습을 보고 긴장한 얼굴이 조금 풀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마치 여동생을 챙기는 다정한 오빠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강지한은 갑자기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워 끌고 나갔다. “아빠, 오빠 내려놓으세요.” 강상미는 심태하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급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목소리에는 분명히 울먹이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강지한은 뒤를 돌아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마. 아빠 금방 돌아올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심태하를 끌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이 녀석이 아빠 앞에서 이렇게 대들다니. 혼 좀 내줘야겠어.’ ‘앞으로 또 버릇없이 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거야.’ 곧 강지한은 심태하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내던지듯 밀어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반성해. 언제 네 잘못을 인정하면 그때 나와.” 심태하는 고개를 들어 강지한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눈빛은 마치 아기 늑대처럼 날카로웠다. “당신은 날 키운 적 없잖아요. 그러니 저를 벌 세울 자격도 없어요.” 그는 강지한이 아버지라는 이유로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이렇게 방에 가두고 밥도 안 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 잔인해.’ 강지한은 잠시 이마가 욱신거리며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나는 네 아빠다. 그러니까 내가 널 어떻게 다룰 자격은 충분히 있어. 심태하, 그런 태도로 계속 나
심태하는 전화를 더 오래 하면 참지 못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가 들으시면 걱정 할거야.’ 그는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강지한이 일부러 그를 가둔 것이라 아침도 안 줄 리 없다는 건 뻔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굶어야 했다. 하지만 엄마가 곧 올 거란 생각에 배고픔도 잊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태하는 점점 더 지루해졌다. 만약 컴퓨터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잠이 들었다. 식당에서는 강상미가 심태하를 찾지 못하고 계속 울고 있었다. 분유도 마시지 않고 강지한이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다. 임혜자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강지한이 화낼까 봐 말을 꺼내지 못하고 옆에서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사모님이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사모님은 언제나 웃으면서 몇 마디 말로 도련님의 기분을 풀어주셨는데.’ 강상미는 울다가 지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강지한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왜 내 말을 안 들어주지?’ ‘아빠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 강지한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차마 강상미를 보지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심태하는 내 아들인데 왜 나랑 잘 지내지 못하는 걸까?’“임 할머니, 저를 안고 오빠한테 데려다 주세요.” 강상미는 몸이 안 좋아서 빨리 걸으면 힘들어했다. 평소에도 잘 걷지 않아서 임혜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임혜자는 강지한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도련님, 아가씨 몸도 안 좋은데 부탁 들어주시는 건 어떨까요?” 임혜자는 결정을 내릴 수 없어 강지한에게 먼저 물어봤다. 강지한은 깊은 숨을 쉬고 입술을 움찔거리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서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시작하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강지한은 전화를 들고 화면을 확인했다. 이진영의 전화였다.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지?’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전화를 받았다. [강지한, 큰일이야. 한씨 가
[확인하고 바로 전화했어. 왜? 누구한테 말하려고 했어?]박시훈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강지한이 심미연을 팔지는 않겠지?’‘그럴 순 없어.’ 심미연은 그가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이 정보를 강지한에게 전달한 걸 후회했다. 강지한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일, 절대 외부에 퍼뜨리지 마.] 그의 첫 반응은 심미연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심미연을 이 일에서 어떻게든 떼어놓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건 내가 너한테 해야 할 말 아니냐?]박시훈은 코를 찡그리며 대꾸했다. [지한 도련님, 네가 전처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심미연 씨한테 해를 끼치지 마.] 박시훈의 말은 매우 당당했지만 그 속엔 감춰진 도전이 있었다. 강지한은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심미연은 내 전처가 아니야. 내 여자라고! 심미연에게 손대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그는 심미연과 심태하 모자에게 진짜 신경이 쓰였다. 그들만 떠올리면 화가 치밀고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 [다시 결혼한 것도 아니고 네 여자는 아니지. 강지한, 네가 심미연 씨에게 줄 수 없는 행복은 내가 줄 수 있어. 앞으로 그 여자에게 가까이 가지 마.] 박시훈은 원래 자유롭고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녀가 이혼녀라든지 아이를 키우고 있든지 그런 건 상관없었다. 두 사람이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강지한은 이미 기분이 나빴는데 박시훈의 말을 듣자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그의 얼굴은 마치 숯덩이처럼 검게 변했다. [박시훈, 그랬다간 네가 어떻게 될지 알지?] 강지한의 목소리는 위협적이었다. 박시훈은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강지한은 정말 미친놈이야.’ ‘자기가 버린 아내를 다른 사람도 가지지 못하게 만들다니. 어이가 없다.’‘앞으로는 다시 말 안 할 거야.’ 박시훈은 잠시 화를 내다가도 곧 기분을 풀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배고프게 굶을 수는
“걱정 마. 회사 일은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회사보다 너랑 태하가 나한테는 더 중요하니까.” 박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미연은 그의 진지한 눈빛을 바라보며 코끝이 간질해졌다.그의 진심 어린 말에 가슴 속에서 무언가 크게 울리듯 흔들렸다. 그동안 박유진이 쏟아온 노력들,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 잘해줄수록 그녀는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조용한 식탁에서 그 소리는 유난히 더 크게 느껴졌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비서가 무슨 일이지?’ 박유진은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큰일났습니다. 진성 프로젝트에서 사고가 발생했어요. 한 명이 사망하고 유족들이 회사 앞에 현수막을 걸고 제사까지 차렸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급하고 당황한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박유진의 마음을 세게 치는 듯했다. 박유진은 웃음을 억누르고 얇은 입술을 단단히 물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았어.]전화를 끊고 난 박유진은 얼굴에 얼룩진 표정을 숨기며 심미연을 바라보았다. 심미연은 그의 눈빛을 보며 순간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심미연은 조용히 그의 손을 잡으며 차분히 말했다.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 강지한이 바렐 그룹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박유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심미연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박유진의 허락 없이 나서면 그가 불편해할 걸 잘 알기에 선뜻 나설 수 없었다. 박유진은 심미연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되는 걸 느꼈다. 그는 그 온기를 감지
심미연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녀의 눈동자에 순간 놀라움이 스쳤다. 박유진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능력도 있고 결단력도 있는 남자. 그렇지 않았다면 바렐 그룹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저기 서서 전화를 받고 있는 남자는 온몸에서 피로와 무력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렐 그룹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알았어. 그럼 이만 끊을게. 짐 챙겨서 바로 갈게.” 심미연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박유진은 이미 전화를 끊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감정을 정리하고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불렀다. “오빠, 짐 다 챙겼어.” 박유진이 화들짝 돌아섰다. 그의 눈빛 속엔 순간적인 당황이 스쳤다. ‘혹시... 들었나?’ 심미연은 모른 척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며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박유진은 곧바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걱정하지 마.” 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걱정하게 두지 않으려 한다는 걸 심미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박유진은 망설임 없이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짐을 건네받았다. “나 급해서 먼저 가볼게.” 그 말을 남기고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려는 순간 심미연이 반사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오빠.”그녀는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방금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괜히 불안했다. 마치 그가 이대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섬뜩한 예감이 스쳤다. 박유진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도착하면 꼭 연락해 줘. 걱정돼서 그래.” 심미연의 예쁜 눈매가 희미하게 붉어졌다. 맑고 촉촉한 눈망울에 작은 얼굴까지 더해지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박유진의 가슴 한구석이 묵
괜히 아까 박유진이 그런 표정을 지었던 게 아니었다. ‘바렐 그룹에 이렇게 큰 문제가 생겼다니.’ 심미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자꾸만 박유진이 애써 웃어 보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을 안심시키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고 조용히 셋을 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안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곧바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한 그녀는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순간 손가락이 날렵하게 움직이며 빠르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마치 시간과 경쟁이라도 하듯 키보드 위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화면 속 코드들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엮이며 하나의 정교한 디지털 요새를 구축해 나갔다. 그녀의 시선이 키보드와 모니터를 오가며 날카롭게 움직였고 입력되는 모든 문자는 철저한 계산 끝에 선택되었다. 점점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방 안의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고 오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긴장감 속에서 울려 퍼졌다. 마침내 마지막 한 줄의 코드가 입력되었다. 심미연은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를 살짝 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새로운 고민이 그녀를 덮쳤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집중하던 그녀는 마지막 엔터를 힘껏 눌렀다.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완료됐다. 심미연은 화면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이걸로 박유진이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다면 이 밤을 새운 보람이 있었다.그 시각, 어두운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을 푸른빛의 모니터 화면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아래로 그의 오른쪽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측한 흉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갑자기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마우스를 힘껏 집어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말했다. “이게 뭐죠?” “지유가 당신이 보면 알 거라고 했어요.” 육현성은 앞에 있는 마스크를 쓴 남자를 바라보며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결국 그는 온지유를 구할 힘이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생각에 자신이 얼마나 쓸모없는 존재인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물건은 남기고 이만 돌아가세요.” 남자는 손에 든 물건을 옆에 있던 사람에게 넘기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육현성은 그와 눈이 마주쳤고 본능적으로 한기를 느꼈다. 그 눈빛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마치 숲속의 맹렬한 늑대처럼 그 눈빛만으로도 그의 몸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지유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알지?’ “왜 안 갑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육현성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해 자리를 떠났다. 그는 늦게 가면 남자에게 죽을까 봐 두려웠다. 지금은 죽고 싶지 않았다. 육현성이 멀어지자 남자는 옆에 서 있던 사람에게 명령했다. “열어봐.” 온지유가 그곳에 갇힌 지 몇 년이 되었으니 이제 와서 누군가를 통해 그에게 물건을 보낸 이유가 궁금했다. 그 남자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말라버린 손가락 하나가 들어 있었다. “강 도련님, 손가락 하나입니다. 위에는 반지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남자의 눈에는 어두운 먹물이 흘러 들어간 듯 깊고 차가운 색이 감돌았다. “조사를 해볼까요?” “온지유의 지금 상황을 조사해 봐.” 남자는 옷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감싸며 자세히 살펴봤다. 그것은 여성의 손가락이었다. 그가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 온지유의 손가락일 것이다. 감옥 안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해를 끼쳤다는 것은 분명히 누군가 그녀를 겨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가 이 손가락을 보내게 된 것은 그
그녀는 가정부에게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지, 일꾼처럼 부려먹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백선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신미연의 말을 이해하고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먼저 갈게요. 집에 일이 있으면 연락하세요.” 심미연은 말을 마친 후 집을 나섰다. 백선영은 눈물을 훔치며 바로 진은숙에게 다가가 심미연의 말을 전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서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들은 부유한 집에서 반 평생을 하인으로 일했지만 어떤 주인은 하루 종일 20시간 일해도 모자란 듯 요구하며 집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정리하도록 강요했다. 심미연처럼 이렇게 좋은 고용주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심미연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끝내고 문 앞에 도착했다. 경비원은 그녀를 보고 바로 경례를 하며 정중히 말했다. “박 부인, 밖에 당신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미연은 경비원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원래도 절세미인인데 웃을 때는 나라를 흔들 정도네.’ 경비원은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 너무 아름다워.’심미연이 대문을 나서자 입구에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멋지게 세워져 있었다. 굉장히 눈에 띄는 차였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이게 누구지?’ 그 순간, 차문이 열리더니 큰 뒤통수를 하고 요염한 얼굴을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그의 정장과 넥타이는 그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신미연은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이 얼굴,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심미연이 그를 누구인지 떠올리기도 전에 남자가 그녀 앞에 다가와 공작새처럼 자신을 드러내며 말했다. “심미연 씨, 안녕.” 비싼 정장을 입었는데 그 말은 그 옷이 너무 아깝게 보였다. “누구시죠?” 심미연은 그의 정체를 떠올리지 못하고 멍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박시훈은 살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