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2화

Author: 무안안
“사모님께 미리 알려드릴까요?”

성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미리 알려준다면, 드레스는 심미연이 직접 고르도록 하면 될 터였다. 게다가 그녀가 직접 고르는 편이 마음에 들 확률이 높았다.

강지한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때 가서 내가 직접 말할 거야.”

그는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상황을 직접 지켜보며 구경하는 재미를 놓칠 수는 없었다.

‘미리 말해버리면 어떻게 그런 장면을 볼 수 있겠어...’

성 비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연구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누군가가 큰돈을 주고 새로 개발된 신약을 사고 싶다고 했습니다. 구매자를 조사해 보니... 사모님이더군요.”

강지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외할머님의 병은 매달 지원받는 특수 지원금으로 충분히 치료받고 있지 않나? 필요한 약은 병원에서 바로 처방받으면 될 텐데, 왜 심미연이 직접 약을 사려고 하지?”

성 비서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 신약이 생산량이 적고 효과가 좋아서 늘 품절 상태라고 합니다. 아마 병원에서도 재고를 구하지 못해 사모님께서 직접 방법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성 비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모님이 자기 돈까지 써가며 약을 구하려고 했다니... 대표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걸 보면 이미 대표님께 크게 실망하신 모양이네...’

강지한의 얼굴에는 어두운 기운이 스쳤다.

“연구소에 미리 입김 넣어. 심미연에게 약을 사고 싶으면 직접 나를 찾아오라고 말이야.”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살아 있는 한, 심미연은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어. 이건 내 손안에 확실히 묶어둘 수 있는 카드야.’

다만, 강지한은 심미연에게 느끼는 이 소유욕이 단지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더 깊은 무언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성 비서는 대표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 일을 보고하지 말았어야 했어. 대표님은 이 기회를 이용해 사모님을 더 옭아매려고 하실 거야.’

그러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강지한은 손에 들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3화

    ‘하지만 심서연과 심씨 가문이 얽혀 있다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네. 만약 박유진이 아니라면, 새 대표이사님은 도대체 누구지?’그때 누군가의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심 변호사님, 얼굴이 왜 그렇게 안 좋아요? 혹시 새 대표이사님 오고 나면 지금 누리던 혜택을 못 누릴까 봐 속상하신 거예요?”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백현지였다.백현지는 심미연과 같은 날 로펌에 입사했지만, 단독으로 법정에 선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주로 맡았던 건 민사 사건 조정 업무뿐이었다.반면 심미연은 뛰어난 성과를 내며 ‘금메달 변호사’라는 별칭까지 얻은 인물이었다.백현지가 심미연을 질투하고 미워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백현지의 비아냥거림은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심미연이 만약 그 태도에 대해 따져 물으면, 사람들은 오히려 심미연을 비난할 게 뻔했다.평소 그녀를 질투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우며 그녀를 지적할 터였다.그래서 심미연은 백현지를 상대하지 않았다.대부분은 피하거나, 침묵으로 대응했다.그녀가 겁먹어서가 아니었다.‘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받는 건 시간 낭비야. 그리고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도 않아.’하지만 오늘 백현지는 선을 넘었다.“그러니까 몸으로 얻은 혜택은 오래가지 못하는 거야.”백현지는 비아냥거리며 한 발 더 나아갔다.“근데 뭐, 괜찮아. 내일 새 대표이사님 오시면 목표를 바꿔서 새 대표이사님 침대에 올라타면 되잖아? 어차피 남자 한 명이랑 자봤는데, 열 명이랑 자는 건 또 뭐가 다르겠어?”백현지의 말에 주변 사람들 몇이 소리내어 웃었다.심미연은 예쁘고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가졌지만, 이런 이유로 로펌에서 질투를 받았고,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다.이 상황에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백현지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로펌에 들어왔을 때 심미연만 없었더라면, 내가 지금 이 꼴은 아니었을 텐데. 다 그녀 때문이야! 몇 마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4화

    백현지는 심미연의 말에 얼굴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참지 못한 그녀는 심미연에게 달려들어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려 했다.“닥쳐! 헛소리하지 마!”그녀가 소리쳤다.심미연은 몸을 살짝 틀어 공격을 피하고, 바로 손을 뻗어 백현지를 밖으로 밀쳐냈다.“제가 헛소리를 하는지 아닌지는 CCTV를 보면 알 수 있겠죠?”심미연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오늘 이 자리에서 백현지를 제대로 제압하지 않으면, 앞으로 로펌의 모든 사람이 나를 깔보고 짓밟으려 들겠지. 그건 절대 안 돼.’그때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백 변호사님이 헛소리라고 하셨으니, CCTV 확인하러 가야죠! 확인하면 진실이 나오겠죠?”순식간에 분위기가 고조되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리를 높였다.“그래요! 다 같이 가서 확인해 봐요!”“백 변호사님, 가시죠.”주변의 부추김에 백현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CCTV를 확인하면 모든 게 드러날 거야... 현지원도 곤란해질 게 뻔해. 그럴 순 없어!’심미연은 백현지의 변하는 표정을 보고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백 변호사님, 안 가시나요?”그녀는 백현지가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백현지는 입술을 깨물며 버티다 결국 한마디 내뱉었다.“심 변호사님, 당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예요!”그러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기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백현지가 사라지자, 심미연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봤다.예쁜 눈빛으로 사람들을 가볍게 훑은 뒤 부드럽게 말했다.“여기 계신 분들, 각자 자리로 돌아가셔야죠? 아니면 다른 가십거리가 궁금한 건가요? 어쩌면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오히려 사람들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잠시 후, 사람들은 어색한 분위기를 남긴 채 하나둘 흩어졌다.심미연은 차분하게 탕비실로 들어갔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새로 오는 대표이사님은 어떤 사람일까? 성격이 까다로우면 일하기 정말 힘들 텐데...’그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5화

    지금까지 현지원은 백현지에게 언성을 높여 본 적조차 없었다.현지원은 짜증이 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답답한 듯 말했다.“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만약 새로 온 대표이사님이 우리 중 한 명을 해고하려 한다면, 네가 날 유혹한 거라고 주장해. 그날 사무실에서 있었던 게 처음이었다고 말하고.”백현지는 현지원의 말에 충격을 받아 눈물조차 멈췄다.“뭐라고?”‘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내가 알고 있던 책임감 있고 의지가 되던 그 사람이 맞아? 아닐 거야.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현지원은 냉정하게 이어 말했다.“넌 어차피 수습일 뿐이잖아. 아직 정식으로 법정에 서 본 적도 없고, 로펌을 떠난다고 해도 네 미래엔 아무 영향도 없을 거야. 하지만 내가 품행 문제로 해고당하면, 이후에 변호사로서 설 자리를 잃는다고. 네가 직장을 잃으면 내가 널 먹여 살릴 수 있지만, 내가 직장을 잃으면 네가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어?”현지원의 간절한 눈빛은 그녀를 설득하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는 백현지가 늘 자기가 하는 말을 믿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백현지의 눈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그동안 나한테 수습 변호사로도 잘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와서 나를 희생시키고 네가 살겠다고?”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에는 분노와 실망이 가득했다.“내가 상사 유혹했다는 더러운 꼬리표를 달고 법무법인 리우를 떠나면, 내 변호사 경력은 끝이야!”‘변호사를 못 하면, 그다음엔 내가 뭘 할 수 있지?’현지원은 한숨을 내쉬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끊었다.“내가 심미연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왜 말을 안 듣고 괜히 나서서 이런 꼴을 당하냐고! 넌 항상 생각 없이 행동해서 문제를 만들어.”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왜 이렇게 멍청한 여자를 처음에 끌어들여서 내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거지?’백현지는 충격과 분노로 얼굴이 굳은 채 물었다.“지금 그게 할 말이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그날 네가 굳이 로펌에서 같이 야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6화

    심미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눈앞의 주아연을 바라봤다.로펌에 처음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은 함께 여러 회사를 찾아다니며 협력 논의를 이어갔다.그때는 정말 힘든 시절이었다. 술을 마시다가 토하는 일이 일상이었지만, 심미연은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그녀는 마음속으로 항상 주아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지난 2년간 가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협력했고, 함께 일할 때는 즐거운 순간도 많았다.심미연은 원래 감정적인 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쉽게 마음을 나누지도 않았다.하지만 주아연만큼은 조금 달랐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그런데 지금, 심미연은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임현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는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변호사님, 몸이 안 좋아 보이세요. 이 잔은 제가 대신 마실게요.”심미연이 말릴 틈도 없이 임현은 술을 비운 뒤, 목이 메여 기침했다.심미연은 급히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물 좀 마셔요.”주아연은 임현이 심미연 대신 술을 마셔준 것을 보고 예상치 못한 화가 치밀었다.그녀는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심 변호사님은 정말 인복이 많으시네요. 누가 대신 술까지 마셔주는 사람은 처음 봐요.”심미연은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주아연을 스치고 지나갔다.“사실 저는 지금껏 아연 씨에게 항상 고마웠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그 고마움을 접겠습니다.”그녀는 술잔을 집어 조용히 술을 따랐다.잔을 들고 옆에 앉은 대표이사님을 향해 말했다.“대표님, 그동안 저를 키워주시고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떠나신다니 마음이 아프지만, 분명 더 나은 길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 잔, 대표님께 올립니다.”심미연은 고개를 들어 잔을 한 번에 비웠다.대표이사님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다 결국 말을 삼켰다. 대신 술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저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계속들 즐기세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7화

    심미연은 강지한이 자신에게는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됐어. 너희들 나 부러워하지 마. 어차피 나도 상류층 부자 2세들을 많이 아니까, 나중에 지한 오빠한테 모임 하나 주선해 달라고 할게. 너희 다 같이 만나면 운 좋으면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도 생길지도 모르잖아!”온지유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는 은근한 자랑이 깃들어 있었다.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의 통증을 억눌렀다.강지한은 온지유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사람이었다.마치 하늘의 별이라도 따 줄 것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밖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온지유를 칭찬하며 한참 떠들더니, 마침내 자리를 떠났다.심미연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칸막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임현에게 메시지를 보내 가방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가방을 받은 그녀는 더 이상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그날 밤, 경성의 불꽃놀이 쇼는 큰 화제가 되었다.모두가 ‘온지유’라는 여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녀가 약혼자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도 깨달았다.심미연은 그날 밤 이불을 끌어안고 동이 틀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다음 날 오전, 심미연은 법정에서 승소하고 피곤한 얼굴로 로펌으로 돌아왔다.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임현이 작은 목소리로 다가왔다.“변호사님, 저희 팀에 새로운 팀장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런데 변호사님은... 아쉽게도 아닌 것 같아요.”심미연은 미소 지으며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에게서 받은 전화를 떠올렸다.“돌아가서 월요일 사건 자료를 정리해 주세요. 저는 잠깐 사장님 방에 다녀올게요.”심미연이 사장실에 들어가자, 뜻밖에도 강지한이 그곳에 있었다.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해하던 찰나, 사장이 그녀를 불렀다.“심 변호사, 이쪽으로 와서 인사해. 이분은 이노하이브 그룹의 총괄 대표님이시고, 오늘부터 법무법인 리우의 새로운 대표이사님이 되셨어.”심미연은 잠시 멍해졌다.‘강지한이 어젯밤 온지유의 생일 파티를 준비해 준 것 때문에 미안해서 나에게 로펌을 선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8화

    강지한의 눈빛이 사장의 손을 스치자, 사장은 얼굴이 새파래지며 급히 손을 뗐다.‘강 대표님... 눈으로 레이저를 쏘겠네! 손이 부러지는 줄 알았어!정말 무서운 분이시네...’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여성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한 씨, 나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먼저 올라오면 어떡해!”온지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미연은 몸이 굳었다. 그리고 어제 임현이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다.임현은 로펌이 약혼녀에게 선물로 넘어갔다고 말했었다. 처음엔 혹시 박유진이 법무법인 리우를 인수했나 싶었지만, 지금 보니 그 인수자는 강지한이었다.어제 온지유의 생일이었다는 점을 떠올리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역시나...’다음 순간 강지한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법무법인 리우는 네가 관리해. 인원 파트와 운영은 네가 전적으로 맡아서 해.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 사무용품 같은 건 성 비서에게 말해.”심미연의 가슴이 갑자기 무거워지며 불길한 예감이 밀려들었다.‘온지유는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잖아. 로펌에 와서 자리만 차지하면서 나를 괴롭히겠다는 건가? 강지한은 정말 그녀를 과하게 애지중지하는구나.’“지한 씨, 고마워. 생일 선물 정말 마음에 들어!”온지유는 강지한의 손을 잡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잘생기고, 돈 많고, 마음 넓은 이 남자가 하필 다른 사람의 남편이라니...’온지유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심미연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심 변호사님, 예전부터 명성을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온지유의 인사는 강지한과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았다.심미연은 억지로 화를 억누르며 강지한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단히 말했다.“강지한, 이게 무슨 뜻이야?”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멀리서만 지켜보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앞에 그들을 매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강지한은 그녀의 화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9화

    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회사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온지유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곧장 따라나섰다.두 사람은 나란히 사무실에서 나왔다.그 순간, 법무법인 리우의 전 사장이 다가와 공손히 말했다.“로펌 직원들을 모두 모아 자기소개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대표님과 온지유 씨께서 직원들을 빠르게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전 사장은 한순간 로펌을 매각한 것이 후회되었다.하지만 좋은 가격에 팔았으니 업무 인계만큼은 성실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강지한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끄덕이자, 온지유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뒤에 몸을 숨겼다.그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마치 사랑받는 사모님의 모습처럼 비쳤다.맨 뒤에 서 있던 심미연은 두 사람을 보며 손을 꽉 움켜쥐었다.‘온지유는 분명 불륜녀인데도 당당하게 저 자리에 서 있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반면 그녀는 강지한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숨어야만 했다.모든 직원이 자기소개를 마칠 때까지 심미연은 여전히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그때 임현이 다급히 팔꿈치로 그녀를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변호사님, 이제 변호사님 차례예요.”온지유가 심미연을 바라보았다.175cm의 키로 마지막 줄에 서 있었지만, 심미연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저녁노을이 유리창을 통해 그녀의 얼굴에 부드럽게 비치며 황금빛 아우라를 더한 듯 보였다.그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온지유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심미연이 있는 곳에선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냥 들러리처럼 보이게 돼. 심미연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강지한의 차가운 눈빛이 잠시 심미연의 얼굴에 머물렀다.임현은 긴장하며 다시 한번 심미연을 살짝 밀었다.“변호사님, 새 사장님이 보고 계세요. 어서 말씀하세요.”심미연은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혼팀, 심미연입니다.”온지유가 그녀의 팔찌도, 남편도 빼앗아 갔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0화

    “심 변호사님은 원래 냉정하고 사람을 잘 안 믿는 스타일이잖아. 누구한테나 똑같이 대했지. 오늘도 평소랑 별다른 거 없어 보이는데.”“원래 심 변호사님이 팀장으로 승진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낙하산’이 팀장 자리를 가로채서 화가 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아?”“근데 나만 본 거야? 대표님이 심 변호사님 얼굴을 1분 넘게 쳐다본 거? 혹시 대표님, 심 변호사님을 은근히 마음에 들어 하는 거 아니야?”“아니, 어쩌면 심 변호사님이 대표님 침대에 먼저 올라갔을지도 모르지. 지난 4년 동안 남자들 침대를 들락날락한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 경험도 많을 테니 뭐.”소곤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자, 심미연은 냉소를 띠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어제 백 변호사한테 줬던 교훈이면 다들 조용히 입 닫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내 사생활이 그렇게 궁금한 거예요? 그러면 누가 가서 팝콘 좀 사 와요. 다 같이 팝콘이나 나눠 먹으면서 얘기 좀 해보자고요.”그녀의 차가운 한마디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여자가 예쁘면 사람들 눈에는 그저 보기 좋은 꽃병 같은 존재로만 비춰지기 마련이었다. 예쁘기만 하고 쓸모는 없을 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여자가 예쁘면서도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때는 시선이 또 달라졌다. 마치 계산이 빠르고 남자들을 발판 삼아 성공을 쟁취한 사람처럼 여겨졌다.심미연이 4년 전 법무법인 리우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그녀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하지만 그녀는 그런 시선을 무릅쓰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녀의 노력을 보지 않았다.그저 그녀가 남자에게 기대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어제 이미 한 번 반격했는데, 오늘도 겁도 없이 나대네.’심미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아침에 백현지는 그녀를 보자마자 피했고, 주아연도 주저하는 눈빛을 보였다.그녀가 다시 한번 날을 세우자, 사람들이 서둘러 말했다.“심 변호사님,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화내지 마세요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9화

    수화기 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고서야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건 내가 너를 도울 수 없어.”설사 다시 그를 도와 심미연에게 돌아오라고 사정한다고 하더라도 심미연은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무엇보다 강지한이 한마음 한뜻으로 심미연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심미연에게 자신의 삶을 잘 살게 하는 것이 낫다.“미연이는 할아버지의 말을 가장 잘 듣잖아요? 할아버지가 얘기하면 틀림없이 들을 거예요. 3년 전에 할아버지가 나에게 미연이와 결혼하라고 강요했듯이 이번에 할아버지가 미연이에게 나와 결혼하라고 강요할 수 있잖아요.”강지한의 말투는 마치 어린아이가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면 되는 일인 것 같았다.“미연이는 너와 3년이 지냈는데 만약 이미 단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혼을 제기할 수 있었겠어?”할아버지는 냉담하게 중얼거렸다.“어렵게 이혼했으니 미연이는 틀림없이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강지한은 원래 할아버지에게서 위로를 구하려고 했는데 결국 할아버지의 의기소침한 말에 난처해졌다.“심미연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네가 정말 포기할 수 없다면 스스로 쫓아가서 자신의 실력으로 되돌려.”할아버지는 심미연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전에 강지한 앞에서 항상 다소곳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은 강지한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녀가 강지한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으면 절대 남에게 좌지우지될 그런 사람이 아니다.강지한은 심미연을 몰라서 더는 말하기 귀찮았다.“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만 끊어요.”강지한은 할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는 이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이번 주 안에 온지유의 일은 반드시 나에게 처리 결과를 주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을 쓸 거야!”할아버지는 강지한이 온지유를 감싸주느라 사람을 보내 조사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나중에 묻는다면 아무렇게나 핑계를 대고 얼버무리기 때문에 그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다.“알아요.”강지한의 머릿속에는 방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8화

    강지한은 입술을 감빨고 나서 말했다.“그럼 내가 찾아볼게.”요즘 메일이 너무 많아서 그는 다 열어볼 수가 없었다.“또 무슨 일 있어요?”“넌 먼저 나가 있어. 내가 일이 있으면 다시 부를게.”강지한은 말하면서 메일을 찾았다.하지만 귀신이 들린 듯 그는 [중독]이라는 발신자의 메일을 눌렀다.아마 이 이름이 특별해서일 지도 모른다.그러나 강지한의 예상과는 달리 이 메일에는 온지유의 범행이 모두 적혀 있었다.메일을 지우고 난 강지한은 검색창을 껐다.‘[중독]이 누구지? 어떻게 온지유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만약... 이 사람이 보낸 것들이 모두 진짜라면...’그럼 그가 3년 동안 심미연에게 했던 말들, 한 일들...강지한은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속으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삭이고 있을 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그의 생각을 끊었다.그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인터넷 검색어 봤어?”그는 어르신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억눌린 분노를 분명히 알아차렸다.“못 봤어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강지한은 모르는 척했다.“실시간 검색은 이미 취소되었지만 내가 동영상을 저장했으니 바로 너에게 보낼게!”할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이번에는 걔를 감싸주지 마. 반드시 처벌을 받게 해야 해!”강지한은 손을 뻗어 미간을 비볐다.“할아버지, 일단 흥분하지 마세요. 이 일은 제가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할 거예요. 진실을 밝힌 후 법정에 세울 거예요.”사실이라면...“조사할 필요 없어. 이 동영상이 진짜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할아버지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온지유처럼 악독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온지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억울하게 할 수는 없어요.”강지한은 감정을 억누르고 침울하게 말했다.“온지유를 향한 편견은 강지성과 결혼한 날부터 있었어요. 왜 그랬어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7화

    “뭐?”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인터넷의 실시간 검색은 이미 처리되었고 동영상은 제가 대표님에게 메일로 보냈어요.”성무진이 낮은 소리로 말하자 강지한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성무진은 하늘이 곧 무너질 만큼 큰일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작은 일인 것처럼 말했다.“그럼 전 먼저 일하러 갈게요.”성무진은 강 대표님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도대체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분노인 걸까?’기왕 알아맞힐 수 없다면 추측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IP 찾았어?”강지한의 머릿속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어젯밤에 성미연이 그와 온지유가 동거한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이런 실시간 검색이 떴으니 데 우연인지 누가 일부러 그런 건지 의심이 됐다.“해외 IP 예요.”성무진은 잠시 멈칫하다가 갑자기 중요한 일이 떠오른 듯 말했다.“강 대표님, 오늘 아침에 실시간 검색에 오른 건 [나쁜 대표님과 그의 여자들]이라는 만화가 하나 더 있어요. 어제 올리자마자 바로 인기를 끌었는데 작가는 하룻밤 사이에 50만 명의 팔로워를 올렸어요.”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만화가 흥행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성무진이 너무 심심하지 않은 이상 그와 이런 가십을 떨리 없다.성무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그 만화의 첫 편은 나쁜 대표님이 만나고 있는 애인이 배우자의 외할머니를 죽이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배우자는 나쁜 남자와 그의 내연녀를 모두 고소했어요. 배우자는 나쁜 남자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나쁜 남자가 내연녀에게 이체한 돈을 강제로 돌려주었고 선물도 모두 절반을 회수했어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한은 말머리를 이어갔다.“이 만화가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저는 그런 말 안 했어요.”설령 그가 마음속으로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말할 수는 없었다.“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밤 CCTV 영상을 확인해 봐.”이 일에 대해 그는 줄곧 온지유를 믿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6화

    온지유는 놀라서 얼른 손을 내저었다.“물론 아니야! 나는 줄곧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어!”그녀는 두 사람이 일찍 이혼하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어떻게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겠는가!“지난번에 진성에서 내 휴대폰을 건드린 적이 있어?”강지한은 평온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아주 평범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온지유는 강지한이 갑자기 이것을 물어볼 줄을 예상하지 못하고 몸을 바짝 조였다.강지한이 이 일을 조사할 것이라고 여태껏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지금 갑자기 물어보니 조금의 준비도 없었다.“왜 내 휴대폰을 건드려?”강지한의 표정은 조금 더 차가워졌다.심미연이 그의 합법적인 아내라고 해도 그는 그녀가 자신의 휴대폰을 만지는 것을 허락한 적 없는데 하물며 온지유는 오죽하겠는가.온지유의 행동은 이미 그의 인내심을 도전했다.온지유는 마음이 잔뜩 긴장되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지한 씨, 내 설명을 좀 들어줘.”“말해!”강지한이 내뱉은 한 마디는 소름 끼치게 차가웠다.온지유의 심장은 두근두근 빨리 뛰며 그녀의 가슴을 힘차게 두드렸다. 주먹을 꽉 쥐어 그녀의 손가락은 하얗게 변했지만 눈빛은 강지한의 그 깊고 예측할 수 없는 눈동자에서 감히 떠나지 못했다.방 안의 공기는 굳은 것처럼 호흡이 유달리 무거워 보였다.한참 후 온지유는 이를 악물고 큰 결심을 한 듯 말했다.“지한 씨, 나... 나 그때 부주의로 잘못 눌렀어.”이것은 이미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핑계였다.사실 이런 말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온지유, 그 말이 나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강지한의 목소리는 낮고 힘이 있었는데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공기를 가르고 온지유의 취약한 심리적 방어선도 무너뜨렸다.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는데 마치 당장이라도 모든 수수께끼를 해결할 것 같았다.온지유는 목이 말라 마른 침을 삼키며 탈출할 틈새를 찾으려 했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5화

    온지유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눈에서 계산이 스치더니 재빨리 따라갔다.계단을 내려갈 때 그녀는 일부러 발을 헛디디고 아래층으로 굴러떨어졌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안고 비명을 질렀다.“지한 씨, 나 좀 구해줘!”강지한은 몸을 돌려 굴러떨어지는 그녀를 보고 다리를 틀어 막았다.온지유의 몸이 멈추자 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지한 씨, 너무 아파!”온지유가 그의 다리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자 강지한은 허리를 숙여 그녀를 안았다.온지유가 이마를 부딪쳐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본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강지한이 침묵하는 것을 본 온지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감히 말할 수도 없었고 묵묵히 눈물만 흘렸다.참고 있는 그 모습은 보기에 참 불쌍했다.강지한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조심해서 걷지 그랬어.”“난... 지한 씨를 빨리 따라가려다가 조심하지 않아 발을 헛디뎌 떨어졌어. 지한 씨, 걱정하지 마. 나 이미 안 아파. 정말이야.”그녀는 매우 급하게 말했는데 마치 강지한이 믿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내가 의사에게 와서 검사해 달라고 할게.”강지한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말했다.“아주머니, 전화해서 의사를 불러와요.”곧 임혜자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둘째 도련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저 아니에요.”강지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계단 입구에 나타나 고개를 들어 강지한이 온지유를 안고 있는 것을 본 임혜자는 멍해졌다.‘둘째 도련님과 사모님이 이렇게 다정하니.’“전화해서 의사 불러요!”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심미연이 떠나니 그가 말하는 것을 임혜자조차 알아듣지 못한다니.임혜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네, 제가 바로 전화할게요.”큰 사모님은 어제저녁에 오셨다. 다들 둘째 도련님이 집에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둘째 도련님의 침실로 달려갔다.원래 그들은 그녀가 둘째 도련님의 침실을 보러 가서 둘째 도련님이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떠나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4화

    “여기까지만 말할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강지한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그는 이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 다른 것은 이진영 자신이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그는 그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릴 수 없다.휴대폰을 내려놓자 그는 이미 잠기가 완전히 가셨다.방금 이진영이 한 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심미연 이 여자, 내가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그는 고개를 저으며 심미연 모습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고 싶었다.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을 수록 그녀의 모습은 더 선명하게 변했다.괜히 마음이 초조해진 그는 아예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 외투를 걸치고 서재로 갔다.그동안 회사와 심미연의 관계가 어색해지며 그는 일의 효율이 낮아져 많은 일이 쌓여 있었다. 어차피 잠이 오지 않으니 그는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문을 밀고 서재에 들어서자 책상 위의 꽃병에 꽂힌 안개꽃이 한눈에 보였다.그의 생각은 단번에 이전으로 되돌아갔다.심미연이 그와 결혼해 미르 파크에 들어온 후부터 매일 집에 신선한 꽃이 있었다. 공기 중에는 떠다니는 꽃향기가 폐로 흡입돼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또 각양각색의 아침 식사가 있었는데 매일 반복하지도 않았다.그 외에도 그는 매일 옷차림도 여러 스타일로 바뀌었으며 옷과 바지가 영원히 검은색과 회색이어도 심미연은 생동감 있고 생기발랄한 셔츠로 매칭할 수 있었다.심미연과 결혼한 지 3년이 되니 이런 것들은 이미 그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지금 심미연이 사라졌어도 그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무런 차이도 없지만 사실 그만이 알고 있다. 모든 것이 변했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미간을 누르며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파일 처리를 시작했다.바쁜 시간은 언제나 빨리 지나간다.곧 날이 밝아 따뜻한 아침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강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최근 그의 담배도 점점 잦아지고 있는데 매일 적지 않은 양을 피우고 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3화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화를 낼 것이다.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멀리해야 한다.“할 말 있으면 빨리해!”한밤중에 잠에서 깼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너 새 애인이랑 동거한다며?”이 말은 어차피 심미연이 한 말이고 그는 단지 그대로 뱉었을 뿐이다.“왜? 이씨 가문이 무너질 것 같아? 너 가십거리나 듣고 다닐 만큼 한가한 거야?”강지한이 차갑게 웃었다. 쌀쌀한 목소리는 이런 밤에 유난히 소름 끼치게 들렸다.“이 말은 네 전처가 알려준 건데 나랑 무슨 상관이야!”정말 그가 말했더라면 강지한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심미연이 어떻게 너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 두 사람 아주 잘 알아?”이혼하더니 누구든 남자면 모두 강지한의 눈에는 연적일 수 있었다.“미연 씨가 나를 훈계하자마자 너를 언급했어.”이진영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허튼소리를 했다.어차피 강지한이 심미연에에 물어볼 수도 없을 테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자신만 알 것이다.“허, 이혼했는데도 나를 지켜보는 거야?”강지한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기분이 좋아졌다.그는 심미연이 아직 그를 잊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네가 새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던데 정말이야?”이진영은 사실 본인이 더 궁금했다.그의 인상 속에서 강지한은 그렇게 빈틈없이 여자를 곁에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내 새 애인이 누군데?”강지한은 의아해하며 심미연 이 여자가 뒤에서 그의 명성을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가 모르면 난 더 모르지.”이진영은 심미연이 일부러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했다.어쨌거나 그는 그때 그녀가 임신한 일을 강지한에게 알리겠다고 했으니 그녀는 그가 강지한에게 말하는 것을 막으려고 일부러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나도 모르는 일을 전처가 잘 알고 있다니.”강지한은 실눈을 뜨고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한 가지 의심이 스쳤다.오늘 저녁에 온지유가 미르 파크에 머무는데 집안의 아줌마가 심미연에게 말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그 여자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2화

    순간 심미연은 어리둥절했지만 곧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난 강지한이랑 이미 이혼했어요.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는 내가 결정해요. 게다가 강지한은 지금 이미 새 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꼭 알고 싶을 것 같지 않아요.”“네? 강지한이 새 애인과 함께 산다고요? 누군데요?”이진영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강지한은 그런 사람 아니지만 강지한의 이 전처는 독한 사람인 것 같았다. 아이에게 강지한을 인정하게 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진영 씨가 알고 싶으면 강지한에게 물어봐도 돼요. 강지한은 당사자니 나보다 더 잘 알겠죠. 다 물었으면 이제 미연이를 위층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요?”겨울이 되어 밤 온도는 매우 낮았다. 심미연도 조금 쌀쌀하게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외투를 꼭 잡았다.이진영은 눈빛을 그녀의 외투로 향하더니 눈썹을 실룩이며 두 사람이 이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걸 강지한이 알면 미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진영 도련님?”심미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몇 데시벨 높였다.이진영은 정신을 차리고 인사하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심미연과 박유진 사이는 강지한이 고민할 문제지 아무 상관 없는 그가 많은 걱정을 할 필요 없다.신하린을 안고 차에서 내린 이진영은 박유진이 차 옆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심미연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그의 눈 밑에 비치는 사랑은 숨길 수 없었다.이진영은 강지한 대신 자기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었다.이대로 가면 강지한은 아웃될 것이 확실하다.“진영 도련님, 가요.”심미연의 목소리에 이진영은 비로소 생각을 접고 발걸음을 내디뎠다.박유진은 줄곧 제자리에 서서 심미연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담뱃를 한 모금 들이켜니 머릿속이 온통 심미연의 모습으로 가득하였다.휴대폰 벨 소리가 그를 생각에서 끌어냈다.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확인한 그는 연결 버튼을 눌렀다.“기한성이 내일 비행기로 경성에 도착해.”박유진은 무덤덤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31화

    “언제 검사하러 가? 내가 같이 갈게.”박유진은 화제를 바꾸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가자!”심미연이 거절하려고 할 때 박유진이 입을 열었다.“내가 줄 서는 거나 비용을 내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너 임산부인데 이리저리 뛰어다니려면 너무 피곤할 거야.”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침묵했다.예전에 이진영과 신하린이 사귈 때 이런 우대를 받아도 괜찮으나 이제 이진영은 결혼 상대도 있고 신하린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없으니 그녀는 더는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이 주는 우대를 받을 수 없다.하지만 검사를 받으려면 줄을 서야 하고 또 위층과 아래층을 오르내려서 심미연 혼자서는 확실히 매우 피곤하긴 했다.박유진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그녀가 다시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그럼 다음번 검사 때 부를게.”박유진은 그녀의 대답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전에 넥타이에 넣었다고 했던 카드를 가져왔어?”심미연은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차에 있어.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네 차는 내가 비서에게 가져가라고 할게.”박유진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유난히 부드럽게 들려 마치 여자를 달래는 것 같았다.심미연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1시가 되였다. 이렇게 늦게 혼자 차를 몰고 집에 돌아가는 것은 확실히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유진을 따라 차에 올랐다.“넌 임산부야. 앞으로 이렇게 늦게 다니지 마.”박유진은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며 말했다.“너 먼저 좀 자. 도착하면 내가 깨울게.”그는 잔소리하고 있었지만 심미연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강지한과 결혼한 3년 동안 할아버지는 가끔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 했다.지금 그녀가 이혼했으니 그녀가 할아버지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어 잔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이미 졸음이 밀려온 심미연은 차가 시동을 건 지 얼마 가지 않아 잠이 들었다.여자의 얕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박유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일부러 차의 속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