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는 ‘이제 강지한과의 일이 이 사람들에게 다 보였으니, 나중에 우리가 사귀게 되면 따로 알릴 필요도 없겠네. 참 잘됐어.’ 라고 생각했다.온지유의 입꼬리는 얄미울 정도로 올라가 있었지만, 겉으로는 순진한 표정을 유지했다.“나도 모르겠어.”강지한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사실 강지한은 심미연의 생일인 줄 몰랐다. 할아버지가 전화로 케이크와 선물을 사 오라고만 했을 뿐, 누구의 생일인지까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강씨 가문의 모든 사람이 집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지한 씨, 우리도 들어가자!”온지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일부러 가슴을 펴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한발 한발 걸음을 뗄 때마다 신경 쓰이는 듯 머리를 한 번 만지며 누군가를 의식하는 모습이었다.그때, 김 집사님이 급히 안에서 뛰어나와 강지한 앞에 멈춰 섰다.“물건은 제가 들겠습니다!”김 집사님은 온지유와 강지한의 손에 든 케이크와 선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온지유는 기다렸다는 듯 물건을 그의 손에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감사합니다.”김 집사님은 허리를 숙이며 서둘러 대답했다.“큰 사모님, 감사는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심미연은 한 발짝 뒤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가서 한쪽에 조용히 선 그녀는 이미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강지한과 온지유가 이렇게 친밀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파 부엌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지금 나와 강지한은 전우 같은 관계일 뿐. 더 이상 그의 행동에 마음이 동요하지 않아!’그녀는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였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다.‘온지유가 이렇게 대놓고 강지한과 함께 나타난 건 둘 사이를 공식적으로 알리려는 거겠지. 그렇다면 나야 편하지 뭐. 이제 강지한이 외할머니를 핑계로 날 붙잡아 두려 하지 않을 테니, 빨리 벗어날 수 있겠네.’강준형은 멀리서 심미연을 흘끗 보았다. 그녀의 멍하니 선 모습이 안쓰러워 한숨을 깊게 삼켰다.‘강지
온지유는 순간 멍해졌다.문소영이 자신에게 집으로 들어와 살라고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러면 밤에 강지한과 따로 만나고 싶어도 불가능할 텐데.’게다가 지금처럼 몸이 아픈 척하며 강지한을 부르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그녀의 속은 점점 타들어 갔다.‘강지한을 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더군다나 문소영과 매일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면 자신의 비밀도 곧 들통날 게 뻔했다.“엄마 말씀대로 할게요.”강지한의 낮고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온지유는 절망했다.‘강지한도 전에는 분명히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었잖아. 외곽에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나를 내버려두는 거야? 설마, 아까 팔짱을 일부러 낀 게 문제였던 거야? 그 행동에 대해 경고하는 건가? 이제 어떡하지?’문소영은 옆에 서 있던 하인을 힐끗 보며 차갑게 말했다.“큰 사모님 좀 부축해라. 둘째 도련님 힘들게 하지 말고.”하인이 급히 다가와 온지유를 부축하며 말했다.“큰 사모님, 조심하세요.”온지유는 이를 악물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하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것뿐이었다.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강지한의 팔에서 자기 손을 천천히 뗐다.문소영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강지한에게 말했다.“지한아, 얼른 미연이한테 가봐. 오래 기다렸을 거야. 오늘 저녁은 직접 주방에서 네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었어.”강지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계단 위로 향했다.멀리 서 있는 심미연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표정은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풍기는 차분한 분위기가 묘하게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그 모습을 본 온지유는 이를 악물며 몰래 강지한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심미연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온지유의 속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심미연, 그 뻔뻔한 계집애! 일부러 저렇게 서서 강지한의
심미연은 강지한을 아예 공기 취급하며 완전히 무시했다.그가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을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든 것도 모자라, 온지유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강지한과의 관계가 단순히 협력 관계일 뿐이라 해도, 이제 더는 그와의 연극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다.강지한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심미연, 지금 뭐 하는 거야?”그녀가 일부러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망신 주려 한다는 생각에 분노가 서렸다.“강지한, 그만해!”강준형의 화난 목소리가 정원을 울렸다. 그의 분노는 강지한을 향한 실망과 심미연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네가 미연의 남편으로서 아내 생일을 몰랐다는 건 그렇다 쳐. 하지만 내가 분명히 케이크와 생일 선물을 준비하라고 특별히 당부하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준비한 케이크는 크림이 다 녹아 원래 모양도 알아볼 수 없고, 선물은 테무에서 9,900원짜리 무료 배송으로 산 것 같은 털인형 하나! 네가 돈이 없냐, 아니면 시간이 없었냐? 그렇게 찌질하게 굴고도 미연이를 탓할 자격이 있긴 하냐?”강준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질타했다. 처음 강지한과 온지유가 함께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지만, 김 집사가 들고 있는 케이크와 선물을 본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강씨 가문의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지한에게 쏠렸다.그들은 이미 강지한이 심미연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 번의 결혼 생활 동안 어느 정도 정이 생겼으리라 기대했었다.그럼에도 오늘 강지한의 행동은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의 냉담함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고, 반대로 심미연의 대범한 태도는 감탄을 자아냈다.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와 팔짱을 끼고 나타난 것을 보고도 태연히 대처하며 가족들에게 식사를 권유하는 그녀의 모습은 강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저런 여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강지한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강준형의 호
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억지로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어머님, 저는 지성 씨만 사랑합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직 그 사람만요! 저는 강씨 가문에 남아서 지성이 곁을 지키며 평생을 함께할 거예요.”그러나 그녀의 속내는 정반대였다.‘만약 강지성이 그렇게 쓸모없는 인간일 줄 알았다면 진작에 목표를 강지한으로 바꿨겠지. 그랬다면 지금쯤 내가 강지한과 함께하고 있을 텐데, 심미연 따위가 어디 끼어들 여지가 있었겠어.’문소영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네 말은 일단 믿어 주마.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난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온지유는 억지로 밝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 반드시 약속 지킬 거예요. 지켜보세요!”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하인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아까 둘째 도련님한테 달라붙던 꼴을 보니, 속에 품고 있는 건 둘째 도련님일 텐데. 과부로 살겠다고? 웃기지 마라. 부인처럼 똑똑한 사람이 그걸 모를 리 없지.’문소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온지유의 손을 놓으며 차갑게 돌아섰다.문소영이 멀어지자, 온지유는 갑자기 옆에 있던 하인을 향해 쏘아붙였다.“네 더러운 손 치워! 누가 감히 나를 부축하라고 했어?”하인은 깜짝 놀라 급히 손을 뗀 채 고개를 숙였다.“작은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온지유는 문소영이 혹시 뒤돌아볼까 겁내며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냉랭하게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떴다.하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얼마나 더 잘난 척할 수 있을까 두고 보자.’온지유는 집 안으로 들어가 식당을 둘러보았다.큰 원형 테이블 두 개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심미연은 강준형 옆에 앉아 주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강지한이 앉아 있었다.모든 좌석이 이미 차 있었고, 명백히 온지유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온지유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노망난 늙은이가 일부러 저러는 걸 거야! 언젠가 반드시 내 손으로 끝
심미연의 말은 그녀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온지유가 강지한을 좋아하든 말든, 나는 더 이상 이들 사이에 엮이고 싶지 않아.’이 메시지는 단순히 온지유를 향한 것이 아니라, 강지한을 향한 경고이기도 했다.강준형은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속이 시원해졌다.‘미연이가 드디어 성장했구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그는 혹시라도 심미연이 속으로만 삭히며 대응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늘은 그녀가 이렇게 단호히 자기 뜻을 밝히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온지유는 심미연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자리에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일이야?’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강지한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애처롭게 말했다.“지한 씨, 난...”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럽고 약했으며, 마치 세상이 자신을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었다.강지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의 손에서 팔찌를 가져가더니, 심미연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그냥 성의 표시일 뿐이야. 네가 안 받으면, 그건 성의를 무시하는 거겠지.”심미연은 손에 들린 팔찌를 내려다보았다.차가운 감정이 온몸을 휘감으며 눈가가 뜨거워졌다.‘이 팔찌는 그저 성의라고? 온지유의 모욕을 눈감아 주는 것뿐 아니라, 나에게도 모욕을 주겠다는 거네.’강지한은 온지유의 기분만 신경 쓸 뿐, 이 상황이 그녀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그 순간, 강준형이 심미연의 손에서 팔찌를 낚아채더니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너희 둘 다 당장 나가!”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온지유는 팔찌가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애원했다.“할아버지, 제발 화 푸세요. 제 잘못이에요! 다 제가 잘못했으니 지한 씨는 쫓아내지 말아 주세요!”강준형은 냉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전에도 너더러 본가에 오지 말라고 했지? 네가 여기서 어떤 짓을 할지 뻔
온지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심미연은 순간적으로 당황해 머릿속이 하얘졌다.온지유가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얼굴에 계속 가져다 대며 스스로를 때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심미연은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강준형은 그 장면을 보며 속이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심미연이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기를 바랐다.‘속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진다면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지.’그는 이 상황을 일부러 막지 않았다.문소영은 강준형의 화살이 온지유에게 향하는 것을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이 기회에 온지유가 제대로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그래서 그녀 역시 아무 말 없이 상황을 방관했다.주변의 다른 가족들 또한 온지유의 행동을 어이없어하며, 심미연의 대응을 하나의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지켜봤다.그들은 이미 온지유의 얄팍한 행동에 반감을 품고 있었고, 강준형이 심미연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온지유를 변호하거나 심미연을 비난하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강지한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심미연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차갑고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심미연, 그만해라.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심미연은 손목이 아파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냈다.“아프잖아... 손 놔!”하지만 강지한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내려다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아까 네가 그녀를 때릴 땐 아플 거란 생각은 안 했나?”그의 차가운 말투와 날카로운 시선은 심미연의 마음을 무참히 찔렀다.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그녀는 비틀거렸고, 가까스로 의자를 붙잡아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봤잖아. 그녀가 내 손을 잡아서 자기 얼굴을 때린 거야. 그런데 내가 때렸다고? 강지한, 너 눈이 멀었어?”심미연의 목소리는 격해진 감정으로 떨렸다.‘늘 그렇듯, 강지한은 온지유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언제나 내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거야.’그녀는 자신이 어떤 증거를 내밀어도, 심지어 영상 자료를 보여줘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당장 나가!”문소영은 매서운 눈빛으로 온지유를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러면서도 눈짓으로 그녀에게 빠져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문소영의 속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지만, 온지유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강지성의 아이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만약 오늘 강준형이 그녀를 때려 아이까지 잘못된다면, 아들을 잃은 데 이어 손주까지 잃게 될 것이었다.그런 비극은 문소영조차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러나 김 집사가 부드러운 채찍을 들고 와 강준형에게 건네는 순간, 문소영은 속으로 매우 놀랐다.‘이번엔 정말로 강준형이 손을 대겠다는 거야!’온지유가 지금 나가지 않으면 정말로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문소영은 다급히 그녀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나가라니까! 못 알아듣겠어?”온지유는 강지한의 손을 붙잡고 간청하기 시작했다.“지한 씨, 제발 손 놔. 다 내 잘못이야. 미연 씨를 벌주지 마!”그녀는 문소영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강지한 곁에 남아 함께 벌을 받는 척하며 그에게 동정과 미안함을 끌어내려 했다.그렇게 하면 강지한이 자신에게 더 잘해 줄 것이고,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거라 믿었다.강지한은 온지유의 울먹이는 목소리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고, 대신 그는 심미연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가슴 한쪽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이게 뭐지?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그러나 그는 그 감정을 억누르며 자신을 다잡았다.가족들 모두가 온지유의 뻔뻔한 행동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정말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군. 강씨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하더니, 이제는 우리의 상식까지 무너뜨리는구나.’강준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채찍을 높이 들어 그녀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강씨 가문에 너 같은 뻔뻔한 사람은 필요 없어! 당장 나가! 그리고 잘 들어라. 앞으로 이 집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 누구 집에도 네가 들어오지 못하게 할
강씨 가문의 둘째 부인은 남편을 재빠르게 흘겨보며 눈치를 주었다.“아버님이 전화하라면 그냥 하라고 해요!”강준형은 이미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반항했다가는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다.둘째 부인은 셋째 부인을 향해 손짓하며 심미연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라고 지시했다.그러나 셋째 부인이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다가 실수로 구겨진 휴지까지 함께 끌어내고 말았다.휴지가 풀리면서 그 안에 감춰져 있던 흰 약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셋째 부인은 순간 얼굴이 새파래지며 황급히 사과했다.“아버님,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전화부터 걸고 약은 바로 치우겠습니다!”그녀는 급히 신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준형은 바닥에 떨어진 약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차갑게 강지한을 향해 물었다.“미연이 어디 아픈 거냐?”강지한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몰라요...”그의 대답은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강준형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넌 미연이의 남편이란 놈이면서, 아내의 상태를 전혀 모른단 말이냐? 강지한, 너 이혼할 준비가 다 된 거야?”강준형은 원래 두 사람이 계속 함께하길 바랐다. 그러나 오늘의 일을 겪으며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미연이 같은 예쁘고 착한 아이가 이런 결혼 생활 속에서 점점 망가지는 걸 더는 지켜볼 수 없어...’강지한은 대답하지 못했다.강준형의 말은 뼈아프게 와닿았고 심미연에 대해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예전에는 그녀가 집에 돌아오면 사건 이야기나 의뢰인들에 대해 종종 얘기하곤 했다.그러나 그는 늘 짜증스럽게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대화가 줄어들면서 그녀의 얼굴에서 기쁨이나 슬픔도 점차 사라졌고, 그는 그 변화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그저 일이 많고 항상 바빴기에, 집에서는 머리를 비우고 싶다는 이유로 그녀의 존재를 외면했을 뿐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관심했는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