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25화

Author: 무안안
그러고는 서둘러 몸을 돌려 급히 자리를 떠났다.

신하린은 일어나 쫓아가려 했지만 심미연이 그녀를 붙잡았다.

“쫓아가 봤자 소용없어.”

조금 전 그 여자의 반응은 그녀가 바로 나윤미라는 걸 더욱 확실하게 증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렇게 당황하며 허둥지둥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우리 그냥 갈까?”

신하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카드까지 줘놓고는 구경도 안 하고 그냥 가겠다고?”

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조금만 기다려보는 게 좋을걸. 그 여자가 곧 너를 찾으러 올 거야.”

카드를 건넸으니 상대는 카드를 확인하려고 당연히 주인에게 연락할 것이다.

나윤미 쪽에는 따로 사람을 붙여 뒤를 쫓게 하면 된다. 다시 돌아온 이상 절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신하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난 그 사람 돈을 쓰고 싶지 않아. 근데 내가 돈을 안 쓰면 그 사람은 내가 사랑 같은 걸 원한다고 착각해. 그리고 자기는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그래.”

그녀와 그가 관계를 한 건 사랑과 상관없이 서로 원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가 준 돈을 쓴다면 이 관계는 변질될 것이며 거래로 바뀐다.

신하린은 그런 비참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이 준 돈이 그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면 그냥 써. 마음 놓고 써버려.”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사랑 따위는 아무 가치 없으니 바보같이 굴지 마! 나처럼 몇 년을 사랑하고 결국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말라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

그녀는 그저 가치 없다고 느꼈다.

신하린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감싸안았다.

“미연아...”

만약 그녀가 좀 더 강했더라면 심미연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괜찮아. 걱정하지 마!”

배 속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반드시 강하게 살아야 했다.

신하린은 마음이 아픈 듯 그녀를 더욱 꽉 안아줬다.

“미연아, 너 지금 휴직 중인데 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26화

    “나윤미, 왜 소리 질러?” 전화기 너머에서 날카롭고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진운혁!” 나윤미는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이 이름을 내뱉었다. 진운혁은 5년 전 뛰어내려 죽은 변호사이자 심미연의 스승님이었다. “그 자식은 5년 전에 죽었어!” 남자는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너 혼자 겁먹고 있는 거야!” “그 사람! 안 죽었어요. 아직 살아 있어요! 바로 내 앞에...” 나윤미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가 너를 속이고 겁을 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남자는 경고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진짜예요!” 눈앞의 나타난 그 사람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이라 나윤미는 순간적인 충격에 쓰러져 버렸다. 폰이 땅에 떨어지고 화면이 깨졌다. “나윤미! 대답해!”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가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지만 나윤미는 이미 기절한 상태였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나타난 남자가 나윤미의 앞에 멈추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떨어진 폰을 집어 들고 화면에 있는 번호를 확인한 뒤 옆에 있는 밀크티 가게로 향했다. 밀크티 가게 안의 여자들이 남자가 들어오자 모두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너무 잘생겼어!” “스타일도 너무 좋은 아저씨야!” 남자는 창가 자리에 앉아 밀크티를 주문했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나윤미는 빠르게 구급차에 실려 갔다. 남자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눈빛은 차가운 냉기가 서려 있었다. 주얼리 샵에서. 심미연은 두 개의 팔찌를 고른 뒤 하나는 신하린에게 선물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찼다. 디자인은 간단하지만 그녀의 손을 더욱 하얗고 아름답게 돋보이게 했다. 심미연은 매우 맘에 들었고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강지한과 결혼한 이후 분기마다 성무진은 옷과 보석 그리고 액세서리를 보내왔지만 그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것들은 공식적인 자리나 연회에서나 겨우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번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액세서리를 산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27화

    “하린아...” 심미연이 말하려던 찰나 휴게실 문이 열렸다. 심하린이 고개를 들어 남자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담긴 눈빛과 마주쳤을 때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미연이가 예상한 대로 빨리 왔네.’ “널 찾으러 왔어. 둘이 얘기해. 난 밖에서 기다릴게.” 심미연은 신하린을 살짝 밀며 일어섰고 손으로 옷을 정리한 뒤 몸을 돌려 남자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진영 도련님.” “강 부인.” 심미연은 잠시 멈칫하다가 목소리를 살짝 낮춰 말했다. “심미연이라고 부르세요.” 예전에 심미연은 ‘강 부인’이라는 호칭이 아주 좋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호칭이 혐오스럽고 웃음거리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고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을 나서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나윤미가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지금 응급처치 중입니다.”심미연의 얼굴에서는 미세한 변화가 일렀다. “어떻게 된 거죠?” “무언가를 보고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 같아요.” 심미연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윤미가 스승님을 봤나?’ 5년 전 스승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 그녀는 현장에 갔었고 그것이 분명히 스승님이었음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나윤미가 오늘 본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계속 지켜가고 있을게요. 새로운 소식 있으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심미연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아직 나윤미의 진짜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나윤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당시 그 소송은 또 어떻게 된 일일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며 그녀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있어?” “주얼리 샵에서 엄청 예쁜 결혼반지를 봤어. 지한 씨, 우리는 결혼했는데 결혼반지조차 없네.” 심미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일부러 말을 돌렸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강지한은 그녀에게 병원에 가서 온지유를 돌보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28화

    심미연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감정을 추스르고 웃으며 대답했다. “미르 파크엔 하인들도 있는데 왜 그 얘기는 안 해? 그리고 지금 해커들이 IP 주소를 바꾸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나? 이걸로 나를 범인으로 몰겠다는 거야?”아침에 강지한이 이 말을 했을 때 그녀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 일이 아니었기에 당당했지만 지금 분명히 누군가가 뒤에서 예전처럼 그녀를 모함하고 있었다. 이전에 찾은 증거들을 강지한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집안의 하인들은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거 몰라!” 심미연의 피식 웃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런 걸 모른다는 건 누굴 무시하는 말인지 모르겠네.’“할아버지께서 빨리 결혼식을 준비하라고 하셨어. 그리고 내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결혼을 발표하라고 하셨어.” 강지한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 번의 실검으로 너는 공식적인 강 씨 사모님이 되고 웅장한 결혼식을 할 수 있어. 아무리 봐도 너야말로 최고의 승자 아니야?”심미연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지한 씨, 제발 이런 말도 안 되는 추측은 그만하고 나한테 누명 그만 덮어 씌어! 다시 말하는데 난 그런 짓 하지 않았어.”그녀는 그를 단순히 전우로만 여겼을 뿐인데 어떻게 뒤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게다가 둘은 비밀리에 결혼했지만 진짜 부부였고 두 사람의 관계를 굳이 폭로해 강지한이 그녀를 싫어하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강지한이 그녀를 싫어한다면 그녀의 삶도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증거까지 다 나왔는데 아직도 변명해? 이렇게 말 잘하는 거 보니 리우 가지 말고 집에만 있어!”강지한은 분노가 치밀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녀는 반박했다.‘왜 이 여자는 온지유처럼 온순하게 말을 듣지 않을까?’ 심미연은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꽉 쥐었다.이미 이런 결말이 올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강지한이 직접 말하는 걸 들으니 마음속에서 억제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인턴 생활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오기까지 그녀는 큰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29화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뒤에서 신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연아,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심미연은 감정을 억누르며 돌아서서 신하린과 마주했다. “하린아, 미안해. 나 병원에 좀 가봐야 해서 점심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다음에 내가 꼭 밥 살게!” 그녀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신하린은 단번에 그녀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미연아, 혹시 강지한...” 그녀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심미연이 서둘러 말을 잘랐다. “외할머니 쪽에 문제가 좀 생겨서 가보려고.” 그녀는 신하린에게 자신이 강지한에게 억눌려 조금의 자유도 없이 꼭두각시처럼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럼 얼른 가봐. 내일 다시 시간 잡아서 밥 먹자!” 신하린은 심미연이 외할머니를 핑계로 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녀가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면 그건 분명 진짜로 일이 있는 것이다. 심미연이 외할머니를 얼마나 아끼는지 심하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난 먼저 갈게!” 심미연은 신하린에게 손을 흔들며 그녀 옆의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은 분주했고 마음은 이미 외할머니에게로 향해 있었다. 신하린은 그녀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마음이 어쩐지 씁쓸했다. 심미연이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 게 느껴졌다. “심미연 씨와 강지한 사이의 일은 너무 깊게 관여하지 마. 내가 강지한하고 어느 정도 얘기할 수는 있어도 저 사람이 강지한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내가 나서도 내 말을 들을 리 없어.” 옆에 있던 남자가 낮게 말했다. 신하린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는 심미연이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강지한과 결혼했으니 어쨌든 강씨 가문 사모님이야. 강지한이 그녀를 사랑하든 말든 이혼만 안 하면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잖아. 뭐 때문에 그렇게 뭐가 그렇게 슬퍼하는 건데?” 남자는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으며 손끝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30화

    “너도 말하지 않고 나도 말하지 않고 온지유도 말하지 않으면 누가 네가 강 부인이라는 걸 알겠어?” 강지한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심미연,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당장 올라가서 온지유 돌봐.” 심미연은 온몸으로 그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애원해 봤다. “지한 씨, 제발 안 가면 안 돼?” 그녀가 만약 온지유를 돌보러 가게 되면 온지유는 더욱 그녀를 깔보고 무시할 게 뻔했다. “안 가도 돼. 그럼 네 외할머니 치료는 당장 중단될 거야.”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과 일들 때문에 강지한은 지금의 인간미 없는 사람으로 되어버렸다. 사람을 사랑하지도 못했고 사랑을 배워본 적도 없었다. 그는 양경자를 이용해 심미연을 압박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심미연은 분노에 휩싸여 온몸이 떨렸다. 온지유 하나를 위해 외할머니를 볼모로 삼는 강지한이 너무도 잔혹하다고 느꼈다. “온지유를 이틀만 돌봐. 그럼 성무진한테 퇴원 절차를 밟으라고 할게.” 강지한은 마치 협상하는 듯 말했지만 그 말은 사실 통보에 가까웠고 그녀가 선택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온지유를 돌보러 가는 건 좋아. 근데 만약 온지유가 당신에게 내가 괴롭혔다고 거짓말을 하면 그땐 누구를 믿을 거야?” 온지유가 일부러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모함할 거라는 걸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때 강지한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외할머니에게 압박을 가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억울함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외할머니가 피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강지한은 눈썹을 추켜올리며 검은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온지유는 절대 내 앞에서 네가 자기를 괴롭혔다고 고자질하지 않아! 심미연, 왜 항상 온지유를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해?”심미연은 마음의 아픔을 억누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31화

    하지만 지금 심미연이 그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도 왠지 모르게 짜증 났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자 강지한은 생각을 정리하며 전화를 받았다. “지한 도련님, 다른 두 명의 용병을 찾았어요. 그런데 이미 혀가 잘리고 팔과 다리가 끊어진 잔인한 상태예요. 완전히 살아있는 시체처럼 되어버렸어요! 말을 할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어서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 정말 잔인하더라고요!” 전화 속 목소리는 조금 비아냥거리는 듯한 톤이었다. “그나저나 지한 도련님, 지난번에 부인한테 그분 스승님에 관해 물어보라고 한 거 물어봤어요? 아직도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죠?” 마지막 말은 거의 놀리는 듯한 어조가 섞여 있었다. 강지한은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난 내 아내랑 관계가 아주 좋아. 언제부터 나쁜 관계였지?”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심미연과의 관계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나빠졌을까?’ 아마 그녀가 처음으로 이혼을 제안했던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네! 관계 좋다는 거 알겠어요. 제가 잘못 생각했나 봐요!” 남자의 목소리는 분명히 대충 얼버무리며 넘기는 듯했다. “큰 사모님 쪽은 조사가 필요해요?” “응.” 강지한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머릿속에는 겨울철 어머니와 함께 쫓기며 죽음을 피하려 도망쳤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어머니가 몸을 던져 그들을 막지 않았다면 죽은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몸 곳곳은 총알에 맞아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때 어머니가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픈 것을 두려워했던 사람이 그를 위해 그런 고통을 감수했다.“당신 부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자료를 조사해 봤어요. 관심 있나요?”전화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흘렀고 곧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한 도련님, 부인이 정말 흥미로운 사람이에요. 잘 붙잡으세요. 다른 사람한테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32화

    “제가 갈 입장이 아니에요! 그냥 안 갈려고요.” 남자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났다.“어머니 얼굴이라도 보러 가고 싶지 않아?”“어머니가 이씨 가문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걸 알고 있어요.”“왜 데리고 떠나지 않아? 넌 충분히 부양할 능력이 있잖아. 안 그래?”“이씨 가문에는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제 곁에는 없어요. 만약 제가 강제로 어머니한테 나와 함께 하라고 하면 그저 시들어버릴 거야.” 길은 어머니가 선택한 거였고 그녀는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을 거라 믿었다. 그가 그녀를 억지로 떠나게 한다면 그녀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그 삶이 길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강지한은 말없이 침묵했다.그는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어릴 적부터 그는 생존과 빼앗는 것만 배웠고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이란 대체 어떤 느낌일까?’“됐어요. 당신한테 이런 얘기해 봤자 당신은 이해 못 할 거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제가 오늘 한 말이 이해될 거예요!”전화가 끊어지자 강지한은 핸드폰을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지한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강지한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보았고 넉넉한 병원복을 입고 서 있는 온지유의 모습이 보였다. 코끝이 빨개져 서 있었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왜 내려왔어? 침대에서 푹 쉬라고 하지 않았어?”“너무 오래 내려가 있어서 걱정돼서 내려왔어.” 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여리여리해 보였고 지켜주고 싶은 느낌을 주었다.“가자. 위로 올라가자.” 강지한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심미연 씨는? 아직 안 왔어?” 온지유는 강지한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고 싶지 않아 하면 내가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할까?”강지한은 그녀의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33화

    잠시 망설이다가 심미연은 결국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핸드폰을 꺼내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그녀는 아마 강지한이 온지유와 통화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결국 프런트에 가서 물어보았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서자 온지유가 강지한의 팔을 끌어안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심미연은 가슴 한편이 답답하고 불편해져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안전 통로로 발걸음을 돌렸다. 위층에 도착해 외할머니 병실 앞에 서자 그녀는 한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야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병상에 누워 있는 외할머니가 보였다. 호흡기를 달고 주변의 기기들은 고요하게 작동하고 있었고 그 소리는 심미연의 심장을 울리는 듯했고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한 걸음씩 병상으로 다가갔다. 외할머니는 평온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심미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저 혼자서 오랫동안 서서 울었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의사가 들어오더니 눈물을 흘리는 심미연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심미연은 급히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외할머니 상태는 어떤가요? 언제쯤 완전히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을까요?” 심미연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고 빨리 외할머니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이분은 나이가 많고 이 병을 오래 앓고 있어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완전히 회복하고 퇴원하려면 아마 시간이 많이 걸릴 거예요. 혹은... 아예 퇴원을 못 할 수도 있어요. 환자분의 가족으로서 마음 준비를 해야 해요.”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며 어떤 보장도 하지 않았다. “최고의 의료팀이 있지 않나요? 그들이 못하면 누가 할 수 있죠?” 외할머니의 몸 상태가 도저히 회복되지 못한다면 그녀는 다른 계획을 세워야 했고 계속 강지한 옆에 있을 수는 없었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04화

    “지한 씨가 날 사랑하는 거 너 예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땐 잘만 참더니 지금은 왜 못 참아?” 온지유는 심미연의 말에 단번에 반응했다. 두 사람이 강지한의 말을 오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늘도 내 편이야. 이건 기회야.’ 오늘 이 자리에서 심미연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했다. ‘지한 씨랑 재혼? 웃기고 있네.’ 온지유의 도발에 심미연은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강지한이 온지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뼛속까지 아끼고 감쌌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기억은 어제 일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예전엔 내가 눈이 멀었지. 하지만 지금은 눈이 멀쩡해. 그러니까 이제는 참을 이유도 없어.” 심미연은 담담히 웃으며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끝에 머릿결이 살짝 감겼고 그 모습은 어딘가 치명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참아줄 때 당장 꺼져.” 예전엔 강지한을 사랑했기에 온갖 수모를 참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아무런 관계도 아닌 남이었고 더 이상 스스로를 억누를 이유가 없었다. 심미연은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하지만 온지유가 계속 도발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순 없었다. 박시훈은 그런 심미연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역시 달랐다. 머리카락 한 올 넘기는 그 동작조차도 치명적으로 보였다. 예전엔 사랑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비웃었던 그였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보다 훨씬 심각했다. 문제는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상태하는 것. ‘이제는 미연 씨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지...?’ 박시훈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졌다. 온지유는 심미연의 여유로운 태도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몇 년 만에 마주한 심미연, 분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강지한 이름만 꺼내도 감정이 흔들렸을 텐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오늘의 목적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심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03화

    심미연은 그제야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한눈에 봐도 나오기 전에 꽤나 공을 들여 꾸미고 온 티가 났다. 하지만 얼굴 위엔 파운데이션이 지나치게 두텁게 발라져 있었다. 마치 밀가루를 덕지덕지 얹은 듯 자연스러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한 씨가 내가 안에서 고생하는 거 못 본다고... 날 꺼내줬어.” 온지유는 등을 곧게 펴고 얼굴 가득 자부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심미연, 지한 씨랑 재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그 말을 들은 박시훈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강지한이 직접 저 여자를 꺼냈다고?’ 그는 불과 얼마 전, 온지유가 출고했다는 사실을 강지한에게 직접 보고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결국 바보는 자신이었던 것 같았다. 심미연의 눈동자가 조용히 온지유의 얼굴에 닿았다.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건 비웃음처럼 느껴지는 섬세한 곡선. “그래?” 낮고 담담한 목소리. 마치 스스로에게 확인하듯 속을 들키지 않는 말투였다. 온지유가 풀려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심미연은 문득 의심했다. ‘혹시... 강지한이 뒤에서 손을 쓴 건 아닐까?’ 이제 이렇게 사실로 마주하니 심장이 조용히 찌릿하고 아려왔다. 그녀는 과거, 온지유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 그 여자가 평생 거기서 썩기를 바랐다. 하지만 겨우 4년. 너무도 빠른 재등장이었다. ‘강지한... 온지유한테 진심이긴 진심이었나 보네.’심미연의 눈빛에 눌린 온지유는 순간 몸이 움찔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이 덮쳐왔고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허리를 더 곧게 세웠다. “그럼.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든가.” 그녀의 말은 당당했지만 박시훈이 보내는 미묘한 시선이 계속해서 거슬렸다. ‘혹시... 이 남자, 뭐라도 눈치 챈 건 아니겠지?’‘아냐. 아닐 거야. 괜한 걱정 하지 말자.’하지만 박시훈은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는 몰래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02화

    ‘왜? 심미연을 보호하려고?’박시훈은 주저 없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바짝 다가온 그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알고 싶다면 알려줄게요. 미연 씨를 짝사랑하고 있어요. 고백했다가 차였고요.”심미연에게 거절당한 건 그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지유의 표정은 단숨에 일그러졌다. “그럴 리 없어요. 당신 지한 씨 친구라면서요? 심미연이 지한 씨한테 몇 번이나 안겼는지도 모르는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갈라졌고 시선엔 뚜렷한 분노가 일렁였다. ‘심미연이 뭐라고... 도대체 왜 다들 심미연만 좋아하는데?’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심미연이 있는 자리는 늘 그녀가 시선의 중심이 되었다.마치 그게 너무도 당연한 일인 양. 온지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한이랑 미연 씨는 이미 이혼했어요.”박시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미연 씨를 좋아하는 게 뭐가 문제예요?”심미연에게 거절당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 순간, 박시훈은 가슴 깊은 곳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미어오는 걸 느꼈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시선을 잠시 내리깔았다. 온지유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직감했다. 어딘가 모르게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심미연 같은 중고품이 이렇게 인기 많다고?’‘아니야... 뭔가 잘못된 거야. 말도 안 돼.’“딩.”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심미연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청아했고 단아했다. 말없이 걸어 나오는 짧은 그 순간마저 도도하게 빛나는 존재감으로 공간을 압도했다. 그건 단순한 외모가 아니었다. 그녀의 내면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절제된 기품, 고요하지만 단단한 아우라. 심미연이라는 사람. 그 존재 자체가 아름다움이었다.박시훈은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자신의 숨소리조차 그녀에게 방해가 될까 두려운 듯 조심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01화

    강지한의 목소리는 다소 불쾌하게 들리는 듯했다. “무슨 일이야?” 어조가 단호하고 차가웠다. 듣자마자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박시훈은 더는 망설일 여유도 없이 다급히 말했다. “온지유가 지금 은성 빌딩 로비로 들어갔어. 혹시라도 둘이 마주치면 싸움이라도 날까 봐... 너 빨리 와봐.” 숨도 제대로 못 고르고 내뱉은 말이었다. 급하게 말하다 목이 막힌 박시훈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너 먼저 막고 있어. 나 바로 갈게.” 강지한의 목소리엔 드물게 초조한 기색이 스쳤다. 박시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강지한은 온지유한테 여전히 똑같네. 참 미련한 놈이지.’ 하지만 그가 온지유를 막으라고 했으니 일단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지유가 정말로 위층까지 올라가서 둘이 마주칠 수도 있었다. 그건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박시훈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지금 당장 막아야 했다. 안 그러면 강지한에게 또 한 소리 들을 게 뻔했다. 온지유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침 그녀와 눈이 마주친 건 박시훈이었다.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 절 아세요?” 온지유는 낯선 남자의 시선이 불편했다. 그를 전혀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을 아는 듯한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강지한이랑 아는 사이면 당신도 알죠.”박시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는 온지유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딘지 얄밉고 교활한 구석이 느껴졌다. ‘강지한이 눈이 정말 많이 멀었지. 저런 여잘 좋다고...’“지한 씨 친구라고요? 근데 전 왜 처음 보죠?” 온지유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강지한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그의 주변 인물들도 대부분 익숙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처음이었다. ‘도대체 누구지?’ “지금 알면 됐죠. 그리고 지한이가 방금 전화했어요. 당신한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00화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99화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98화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97화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96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