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은 재빨리 병실로 들어왔다.“지금 환자분 응급 처치를 해야 합니다. 보호자분은 나가주세요!”심미연은 병실에 남고 싶었지만 강지한에게 이끌려 나왔다.병실 밖에 서 있는 심미연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했다.외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던 것이다.강지한은 휴대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심미연에게 말했다.“의료팀을 먼저 보내 할머니를 치료하게 하고 무진에게 다른 전문의를 찾아 함께 진찰하게 할 거야. 외할머니는 분명히 나으실 거야.”심미연은 붉어진 눈으로 강지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마워!”강지한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눈물 좀 닦아. 미연아, 넌 내 와이프이니 내가 돕는 건 당연한 일이지. 만약 네가 내 와이프가 아니었다면 난 네 외할머니의 생사에 전혀 관심 없었을 거야!”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었다.서울에는 심미연의 외할머니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가 외부인에게 선심을 쓸 리는 없었다.심미연은 그의 말 속 암시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이런 조건으로 그녀를 억지로라도 얌전히 강씨 가문의 며느리 자리에 붙잡아 두려는 것이었다.일단 그녀가 미르 파크에서 나가 이혼을 요구하면 그는 바로 의료팀을 철수시키고 외할머니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게 뻔했다.그러나 이혼을 안 하자니 억울하고 답답했다...“당분간 휴가 내고 병원에서 외할머니 곁에 있어.”강지한이 담담하게 말했다.휴가라는 말에 심미연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지한 씨, 방금 병실에 들어왔을 때 한 말은 무슨 뜻이지? 그리고 우리 외할머니는 원래 많이 좋아졌었는데, 오늘 온지유가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화가 나서 다시 기절하셨어. 전에도 온지유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 갔었는데! 지한 씨, 온지유 제대로 관리해. 미친개처럼 뛰쳐나와 사람 물지 못하게!”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온지유은 얼굴도 그렇게 맞고 몸도 안좋은데 어떻게 네 외할머니를 찾아왔겠어! 네 외할머니가
그래서 임신은 일단 강지한에게 비밀로 하기로 했다.“조금만 기다려. 지유의 일만 다 정리되면 더 이상 만나지 않을게. 알았지?”강지한은 온지유를 만나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몰랐지만 심미연이 이런 요구를 제기했고 자신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전제에서는 들어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아직 온지유의 미용실 자리도 못 구했고 사준 집은 아직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다...이것들만 해결되면 그도 온지유에게 더 이상 빚진 것이 없으니 그녀를 만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했다.하지만 심미연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온지유는 살아있는 한 사고를 칠 테고 이런저런 일로 강지한이 그녀를 모른 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자신은 외할머니 때문에 아직 강지한과 완전히 갈라설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심미연은 반박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그럼 온지유 일이 정리되고 나서 아이 얘기해.”그가 정말 온지유와 완전히 끝낸다면 임신 사실을 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숨길 수밖에 없었다.강지한은 인상을 찌푸렸다.“미연아 왜 지유랑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야? 나를 이런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하지 말아줘.”그는 심미연과 온지유가 왜 그렇게 사이가 나쁜지 꼭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심미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나왔다.“그 말은 온지유한테 가서 해야지!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 그쪽인데!”물론, 강지한이 그 말을 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좋아, 내가 물어볼게!”강지한은 즉시 대답했다.심미연은 그저 자신을 달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어쨌든 온지유와 관련된 일이라면 그가 공정하게 행동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을 리 없었다.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타났다. 의사가 입을 떼려는 순간, 강지한이 먼저 말했다.“곧 의료진이 올 겁니다. 환자 차트랑 검사 결과 넘겨주세요.”의사는 심미연을 슬쩍 쳐다봤다.예전부터 그녀가 뭔가 특별해 보이긴 했지만 설마 서울에서 그렇게 유명한 강
휴대폰 벨 소리가 강지한의 생각을 끊었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온지유의 번호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지한 씨, 누가 병실에 뛰어 들어와서 나를 때렸어. 너무 무서워!”온지유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일이야?”“나도 몰라. 갑자기 병실로 뛰어들어와서 나를 때리고 도망갔어!”강지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무진한테 전화해서 알아보라고 할게.”“여기 와서 나 좀 지켜주면 안 돼? 나 지금 너무 무섭단 말이야!”온지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는데 정말 무서운 것 같았다.“나 지금 일이 있어. 무진이를 보낼게.”그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수화기 너머 온지유는 병실 침대에 누워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빌어먹을 심미연이 대체 지한에게 무슨 약을 먹인 거야! 왜 나한테 이렇게 차가워진 거지? 안 되겠다. 심미연에게 꼭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야!’강지한은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 심미연을 찾아갔다.병실 안.지금 막 깨어난 양수청은 몹시 쇠약해져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심미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다.심미연은 그런 외할머니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외할머니, 몸 잘 추스르세요. 꼭 빨리 나으셔야 해요!”그녀는 입을 열고 나서야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양수청은 입술만 뻐끔거릴 뿐 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물만 주르륵 흘러내렸다.심미연은 마음이 아파 외할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할머니, 무슨 말 하고 싶은지 다 알아요. 저도 잘살 거예요. 그리고 아이... 나도 꼭 있을 거예요!”양수청은 심미연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손을 들었지만 반도 못 들고 금세 힘없이 떨어졌다.심미연은 고개를 숙여 할머니의 입에 귀를 가까이 대었다.“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콩이야, 여길 떠나!”양수청은 온 힘을 다해 몇 마디를 내뱉었다.심미연이 양수청을 보니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그녀는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힘주어 끄덕였다.“할머니
심미연은 잠시 망설이다 그에게 물었다.“내가 휴가를 내는 건 온지유의 뜻이야 아니면 어머니 뜻이야?”온지유가 했던 말들을 그녀는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내 뜻이야!”강지한은 그녀의 뺨을 꼬집었다.“집에서 임신 준비하라고!”심미연의 동공이 수축했다.“정말 아이를 갖고 싶어?”왠지 강지한이 자신을 떠보는 것 같았다.마음이 불안했다.“아까 이야기하지 않았어? 우리 아이 갖자고.”강지한은 단순히 심미연이 아이를 낳으면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굳건해질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여자를 찾고 싶지도 않았다.설령 심미연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평생 같이 살고 싶었다.“아까도 말했잖아. 애 낳으려면 당신이랑 온지유가 완전히 끝내야 한다고! 당신들 아직 계속 만나고 있는데 무슨 애를 낳아? 그리고 나 내일부터 하린의 작업실에 출근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임신 준비는 아직 급하지 않아!”심미연은 무덤덤한 표정에 차분한 말투였다.강지한이 떠보는 건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그녀는 아이를 낳겠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없었다.첫째, 강지한과 온지유의 관계는 아직 애매했고 이대로라면 못 참고 이혼할 게 뻔했다.둘째, 강지한이 자신에게 휴가를 주려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장기 휴가라면 일자리를 구해야 할 것이고 임신 준비에 동의한다면 집에 있어야 할 텐데 그녀는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유의 일을 다 정리하고 나면 안 만난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애 낳는 거로 나더러 지유의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거야?”강지한은 화가 나서 얼굴이 좋지 않았다.심미연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 마음속에 아이는 단지 강씨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도구일 뿐이니 낳기만 하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거지?”“집에 가정부도 있고 아이가 태어나면 전문 육아 도우미, 영양사도 부를 거야... 네가 키우고 싶으면 키우고 싫으면 그들에게 맡기면 돼. 그때 네가 출근하고 싶다고 해도 난 말리지 않을 거야! 그런데 뭐가
심미연은 남자의 음흉한 눈동자를 보며 심장이 욱신거려 한참이 지나서야 조용히 소리를 냈다.“”온지유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이인데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해. 나는 낳고 싶지 않으니 내가 호의를 모르는 거로 생각해.”말이 끝나자 그녀는 남자를 힘껏 밀치고 엘리베이터를 나갔다.그는 온지유가 임신으로 고생한 것은 안타까워하면서 그녀를 출산의 기계로 여겼다.차이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온지유가 아이를 낳아 줄 수 있는데 또 구태여 그녀를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강지한은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고는 차갑게 웃었다.“네 마음대로 안 돼!”기분이 좋지 않은 심미연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을 덥석 물고 남자가 아파서 손을 놓은 틈을 타 달아났다.강지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이 여자는 정말 갈수록 통제를 벗어나네?’휴대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강지한은 눈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지한 도련님, 우리 거래를 해.”스피커에서 남자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관심이 없어.”그는 한마디로 거절했다.“당신 부인에 관한 일인데도 관심이 없어?”남자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심미연이 찾아갔나?’보아하니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당신이 관심이 없다면 이 거래는 그만두어야지.”강지한이 침묵하자 상대방은 그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말해봐.”그는 심미연이 도대체 자기 몰래 무엇을 했는지 보려고 했다.“앉아서 이야기할 곳을 찾아. 두세 마디로 분명하게 말할 수 없으니.”“네가 찾아!”상대방이 곧 주소를 보내왔고 그는 심미연에 전화를 걸었다.여러 번 연속 걸어서야 심미연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말투가 귀찮게 들려왔다.“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어. 이따가 데리러 갈 테니 함께 밥 먹으러 가자.”강지한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저녁에 박유진과 심서연의 일을 이야기할 테니 그는 당연히 그녀를
강지한은 이때 한참 달아올라 당연히 그녀 혼자 하게 놔두지 않았다.“얌전히 서 있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혼내는지 볼래?”그는 낮은 소리로 위협했다.심미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조그마한 얼굴이 창백한 채 말했다.“배가 아파. 소란피우지 마.”강지한의 표정이 차가워졌다.“왜 또 배가 아파?”그녀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이 여자는 걸핏하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틀림없이 그를 속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심미연은 가슴이 조여와 강지한이 무슨 실마리를 알아낼까 봐 그를 바라보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네가 어제 너무 달려들어 아픈 거잖아. 아직 낫지 않았어.”강지한은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입술을 감빨더니 잘생긴 얼굴에 웃음기를 더했다.“너 나랑 처음 자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떤지 잘 알고 있지 않아?”심미연의 말은 결국 그의 흥취를 불러일으켰고 기분이 좋아진 그는 말투도 조금 전처럼 그렇게 냉담하지 않았다.심미연은 이 기회를 틈타 그를 밀쳤다.“나 다 나으면 다시 이야기하는 게 어때?”나긋나긋한 말투에 예쁜 두 눈으로 쳐다보니 얌전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너는 지난번처럼...”강지한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한마디 하자 심미연의 얼굴이 즉시 귀밑까지 빨개졌다.“빨리 나가. 나 옷을 갈아입어야 해.”지난번에 그녀의 손이 오랫동안 시큰거렸는데 더 하기 싫었다.여자의 수줍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강지한은 마음이 간지러워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고 고개를 숙이더니 입술에 뽀뽀하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보고 나도 보고하지 뭐.”그 모습은 횡포 적이고 멋있었다.심미연은 고개를 돌리더니 돌아서서 옷장을 열고 단아한 긴 치마 한 벌을 꺼내 곧장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강지한 앞에서 옷을 다 벗을 용기가 없었다.강지한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심미연, 어디 가?”심미연이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살
왜 강지한에게 스피커폰을 누르라고 했을까?그녀는 정말 스스로 학대를 찾는 것 같았다.“의사가 신신당부했잖아. 너무 흥분하지 마. 말 듣지 않으면 앞으로 나도 너를 상관하지 않을 거야.”강지한은 다시 한번 그녀를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온지유는 마음이 급하고 두려웠다.“지한 씨, 나 흥분하지 않았어. 의사의 말을 잘 들을게. 지한 씨가 나를 상관하지 않으면 안 돼.”강지한의 말에 그녀는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목소리는 억눌린 울음을 띠고 있었다.“그래, 나 바빠. 너 좀 쉬어. 내가 시간이 있으면 너를 보러 갈게.”강지한은 결국 차마 모진 말을 할 수 없어 한 걸음 물러섰다.“그럼 몸조심해. 나 쉬러 갈게. 지한 씨, 기다리고 있을게.”온지유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는데 목소리에 웃음기가 조금 물들었다.심미연은 힘껏 심호흡하고 고개를 숙인 채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이미 손을 놓을 준비가 다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 걷잡을 수 없이 괴로울 것이다.강지한은 심미연의 뒷모습을 보고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그는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심미연은 자신을 욕실에 가두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마음이 괴로웠고 위도 괴로워 토하고 싶었다.강지한이 다가와 문을 두드리자 심미연은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옷 다 갈아입었어?”강지한은 손을 뻗어 문을 두드리며 문에 비치는 그 영롱하고 우아한 그림자에 눈빛을 고정한 채 마음이 좀 조급해졌다.많은 경우 분명 심미연이 그를 유혹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통제할 수 없이 반응을 일으켰다.막 결혼했을 때 그는 그 방면의 수요가 매우 컸다. 또 자신이 방금 여자를 접했기에 육현성과 함께 벨라비타에 가서 특별히 여자를 몇 명 불렀는데 결국 그는 그 여자들에 반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향수 냄새에 질려 토하고 싶고 징그러워서 안 되었다. 그는 심지어 그 여자들을 앉히지도 않고 직접 내쫓았다.결혼 3
심미연은 목이 메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강지한을 정말 화나게 하면 그는 정말 의료진을 철수시킬 가능성이 있다.그렇게 되면 외할머니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눈 뜨고 죽을 수밖에 없다.“화나지? 나를 물어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지?”강지한은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만지며 직설적으로 말했다.“결국, 네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잡히는 거야.”심미연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강지한의 말대로 확실히 그녀는 강하지 못하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강지한을 떠날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떠나 지금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말했잖아. 순순히 내 곁에 있으면서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갖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의 외할머니는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강지한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예전에 그는 심미연과 잠자리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었고 심미연에게 뭘 시키든 그녀는 순순히 따랐다.지금 심미연은 그와의 스킨십을 거절하고 있다. 그가 심미연에게 뭔가 시켜도 그녀는 이리저리 미루고 있다.그는 심미연이 그 통제할 수 없는 사고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는 그녀가 영원히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비열한 수단일지라도 말이다.강지한이 외할머니로 위협하니 심미연은 울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울 수도 없었다.생각을 정리하고 그녀는 화장대에 가서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아래층, 차 안.강지한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차 문은 닫지 않았는데 남자의 얼굴은 반쯤 불빛 속에서 잘생긴 윤곽만 보였다.심미연은 그가 온지유와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온지유와 통화할 때만 이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멈춘 그녀는 다가가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면 좀 곤란할 것이다.강지한은 전화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다가 여자의 예쁜 눈동자를 마주했다.그 순간 마음속에 어느 정도 기쁨이 일렁이었다.마치 예전에 집에 돌아가면 여자의 모습을
“우린 서로 잘 알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박시훈 씨, 이런 농담은 삼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은 소리는 안 나올 거예요.” 심미연의 말은 단호했고 표정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 사람에게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박시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화내지 마요. 농담 안 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살짝 겁이 났다. 정색한 심미연의 얼굴은 꽤 무서웠다. 강지한이랑 맞먹는 수준이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심미연은 노골적으로 그를 내보내려는 기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 진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때요?” 박시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연애도 해본 적 없고 야자 마음을 얻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심미연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제 가세요.”그녀는 주저함 하나 없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박시훈은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진심이었고 말 그대로 사실이였다. ‘난 능력도 있고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 마음만 맞으면 잘될 수 있는 거 아닌가?’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심미연은 이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시훈 씨, 조심히 가세요. 멀리는 안 갈게요.”그녀는 박시훈이 불쾌해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 그의 자기중심적인 말투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박시훈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이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뭔가 씁쓸하고 아쉽고 괜히 찬물 끼얹힌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심미연은 그가 심태하까지 조사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순간적으로 본능처럼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게 됐다. 겉보기엔 멋대로 굴고 책임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한량 같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지나치게 날카롭고 마치 사람의 속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그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눈이었다. ‘이 남자, 뭐지... 정말 이상한 사람인데.’겉모습만 보면 철없어 보이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의외로 능력 있어 보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찾아와 이런 말을 꺼내는가였따. ‘설마 진심으로 그냥... 내 정체가 궁금해서?’“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저 진짜 악의는 없어요.” 박시훈은 양손을 번쩍 들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하늘에 맹세할게요.”심미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온 목적이 뭐죠?”박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진짜 이유를 말해도 돼요?”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번쩍였고 그의 얼굴엔 순진해 보일 정도로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심미연은 속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돈 뜯어내려는 건가? 내가 그런 일에 쉽게 넘어갈 만큼 만만해 보였나.’“좋아합니다.”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좋아해도 될까요?” 심미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박시훈의 얼굴엔 서서히 불안한 기색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숨겨왔던 속마음을 한 번에 쏟아냈다. 망설일 시간 따윈 없었다. 그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강지한이 그녀를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컸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또박또박 물었다. “당신 지금 자기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요?”그녀는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서너 번 얼굴을 마주친 게 전부였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나타
심미연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심, 심 대표님... 아까 어떤 남자분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올라가셨어요.”프런트 직원의 목소리는 떨렸고 말도 더듬었다. “누구라고요?” 심미연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장미를 들고 자신을 찾아올 만한 사람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저를 찾은 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제가 막으려고 했는데 그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올라가셨어요...” 잘릴까 봐 겁이 난 프런트 직원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얼버무렸다. 그녀는 심미연이 이 거짓말을 영원히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심미연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장미를 들고... 누굴까?’그때 사무실 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났다.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조용히 말했다. “알겠어요. 일 보세요.”말을 마치기도 전에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갔다. ‘설마... 강지한? 다시 만날 일 없다고 말했는데 또 온 건가?’ 전화를 끊은 심미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 며칠 전, 하늘 하우스 앞에서 명함을 건넸던 그 남자였다.심미연은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화 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깜빡했네. 근데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일이 있나?’ ‘자, 받아요. 이거 당신한테 주는 거예요.” 박시훈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 장미꽃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할 말 있어서 왔어요.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심미연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할 말이 뭔데요?” “앉아서 얘기해요. 당신이 힘들면 안 되니까.” 박시훈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 옆을 지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공간.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박시훈은
이진영은 핸드폰을 쥔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아무리 뒤져도 끝내 밝혀내지 못한 아버지의 비밀. ‘설마... 한석훈이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건가?’‘아니면 그냥 떠보는 소리일까?’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머릿속을 뒤엉켰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찾고 싶은 충동이 다시 치밀었지만 이진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의 병실로 향했다. ...이노하이브 대표실. 강지한은 막 성무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소영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쫓기다 결국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은 심하게 어질러졌고 문이 잠겨 있어 그녀는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결국 팔과 다리가 부러진 채 119에 실려 갔다. 강지한은 메시지를 닫고 입술을 천천히 매만졌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음에도 제멋대로 날뛰면 그땐 진짜로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막 서류를 집어 들려는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자 박시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한아, 큰일 났어!” 강지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해.” “온지유가... 나왔어.” 박시훈은 말끝을 떨며 믿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어떻게...?’ 믿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무슨 수로 온지유를 꺼낸 거지?’ 강지한의 눈빛이 서서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된 거냐.” 그 말을 뱉는 순간, 심미연과 심태하가 본능처럼 떠올랐다. ‘온지유가 풀려났다고? 그럼 미연이랑 태하가 위험할 수도 있어.’‘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나도 방금 들었어. 지금은 육현성 별장에 있다는 것 같아.” 박시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기에 곧장 강지한에게 알린 것이었다. “확실해?” 강지한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성무진을 시켜 교도소 내부를 철저히 관리하게 했었다. 온지유가 아무리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이진영은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더니 곧장 의자에 앉아 이다은의 창백한 손끝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곤 한 톤 낮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육현성 그 자식은 아버지 자격 없어. 네가 그 인간 아이를 낳으면 평생 끌려다닐 거야. 정말 그걸 바라는 거야?” 이다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육현성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이진영의 말처럼 그 인연은 평생 끊어낼 수 없었다. 반면 아이가 없다면 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다은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 마음을 다잡은 듯 결심이 담긴 목소리가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알았어. 오빠, 지금 바로 수술 예약해줘.”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래. 병실에 얌전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알았지?” 이진영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미 진운혁과 연락을 마친 상태였다. 진운혁은 이다은이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할 수 있도록 돕겠다 했고 육현성의 재산 절반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말했다. 이진영은 믿고 있었다. 동생이 건강만 회복하고 이혼만 잘 마무리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육현성 같은 쓰레기는 다은이 앞에 다시는 나타나선 안 돼.’ “알겠어. 오빠, 이제 가봐.” 결정을 내린 이다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마음 한쪽이 가볍게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언젠가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날 테니까. 이진영은 병원 접수처로 향해 곧바로 수술 일정
“오빠,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온지유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애교가 섞여 있었다. 지금의 온지유에게 육현성은 유일한 의지처였다. 그를 잃는다면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육현성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됐다. ‘심미연, 기다려. 복수할 기회는 반드시 만들 거야.’“세상에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온지유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유야, 그런데 만약 네가 날 배신한다면 그때는 나도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겠어.”육현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경고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너무 깊어서 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더더욱 만약 온지유가 그를 배신한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팔이 점점 더 세게 조여오는 걸 느낀 온지유는 잠시 두려움이 스쳤다.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죽음보다 더 끔찍하게 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그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 난 절대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이번 생엔 오빠만 사랑할 거고 영원히 오빠 곁에 있을 거야.” 온지유는 속마음을 감추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으로 육현성 앞에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에 몸이 떨렸다.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도 너를 끝까지 사랑할 거야.” 그의 말은 무엇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유야, 이제 좀 쉬어. 나는 아래층 좀 보고 올게. 밥 먹을 때 부를게
보통이라면 그녀가 화를 내면 강지한은 한 발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성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성무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소영은 성무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지며 공포에 휩싸였다. 이번엔 정말 끝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강지한에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차갑고 무표정한 시선만이 머릿속에 반복되었다. 성무진은 그녀 앞에 서서 공손히 손짓하며 말했다. “큰 사모님, 모시겠습니다.”문소영은 강지한을 향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을 보냈다. “강지한! 너 계속 이렇게 나를 몰아붙인다면 정말 당장 죽어버릴 거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책상 쪽으로 달려가 머리를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려 했다. 그러나 강지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명령했다. “성 비서, 데려가.”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는 문소영의 모습이 점점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성무진은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큰 사모님.” 그 말과 함께 그는 차가운 손길로 문소영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놔! 당장 놔!” “손 떼! 지금 당장!” 문소영은 크게 외치며 저항했지만 성무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거칠게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운 후 성무진은 팔을 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문소영은 재빨리 차 문을 열려 손을 뻗었다. “큰 사모님, 죄송합니다.”성무진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문소영은 그대로 기절했다. 성무진은 그녀를 차 안에 눕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 밖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역시 대표님을 화나게 하면 끝이 좋을 리가 없지.’‘어쩔 수 없군.’ 그 순간, 성무진은 갑자기 떠오른
도진혁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는 진지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신하린 곁에 이렇게 오랜 시간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어제 하린이를 하늘 하우스로 데려갔어요. 한 번 들러보세요. 하린이 곁에 조금 있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미연은 서류봉투를 흘깃 바라본 뒤 덧붙였다. “이 서류는 제가 꼼꼼히 검토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릴게요.”도진혁이 직접 합작 제안서를 들고 찾아온 이상 함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익이 보장된 일이라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이상 놓쳐선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도진혁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심미연은 그가 사라진 문 쪽을 한참 바라보다 방금 전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쪽에서 조용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린이 목에 남은 상처가 아직 그대로일 텐데...’‘진혁 씨가 그걸 보면... 혹시 이진영 씨에게 따지러 가는 건 아닐까?’강지한 사무실.성무진은 문소영을 데려다주고 서둘러 떠났다. 강지한의 얼굴엔 냉기가 서려 있었고 성무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사무실 안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문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섰고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느긋하게 쏘파에 앉았다. “비서한테 차 좀 가져오라 해. 괜찮은 차로.” 그녀는 비서부가 꽤 유능하단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웬만한 건 다 알아서 해줄 정도로. 하지만 강지한은 말없이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와 그 봉투를 그녀의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직접 보시죠.”“뭘 보라는 거야?” 문소영은 그를 향해 냉정하게 시선을 던졌다. “보면 알아요.” 강지한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뭐가 들어있길래...?” 문소영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봉투를 들었다. 무
심미연은 박유진이 수년 동안 마음을 다해 사랑해온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박유진이 쉽게 놓을 리 없었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비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정말 모든 걸 걸고 계시는군요... 제발 심미연 씨가 그 진심을 외면하지 않기를...”한편,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조심스레 열린 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도진혁이었다. 그는 마치 급히 돌아온 듯 피곤하고 바쁜 기색이 역력했다. “도 비서님...?” 심미연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휴가를 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있는 거지?’그의 뒤에서 따라 들어온 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심 대표님, 실례하겠습니다. 이분은 저희 도강홀딩스의 대표, 도진혁 대표님이십니다.”비서는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서류는 도강홀딩스와 은성 그룹이 합작할 프로젝트에 관한 제안서입니다. 먼저 검토 부탁드립니다.”심미연은 비서가 놓고 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도진혁을 천천히 되돌아보며 눈썹을 살짝 올렸다. ‘도진혁 대표님...?’ ‘그렇다면 도진혁 씨가 휴가를 낸 이유는... 회사를 물려받기 위한 준비였던 건가?”그때 도진혁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 심 대표님과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도진혁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신경 쓴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말투와 행동은 여유롭고 예의 바르며 그에게서 흐르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 엘리트의 품위였다. “네. 대표님.” 최세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조심스럽게 심미연을 한 번 쳐다봤다. ‘이분이 대표님이 좋아하는 여자분인가... 정말 예쁘다. 대표님이 회사를 물려받은 이유가 이분 때문이라면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