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연은 남자의 음흉한 눈동자를 보며 심장이 욱신거려 한참이 지나서야 조용히 소리를 냈다.“”온지유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이인데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해. 나는 낳고 싶지 않으니 내가 호의를 모르는 거로 생각해.”말이 끝나자 그녀는 남자를 힘껏 밀치고 엘리베이터를 나갔다.그는 온지유가 임신으로 고생한 것은 안타까워하면서 그녀를 출산의 기계로 여겼다.차이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온지유가 아이를 낳아 줄 수 있는데 또 구태여 그녀를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강지한은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고는 차갑게 웃었다.“네 마음대로 안 돼!”기분이 좋지 않은 심미연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을 덥석 물고 남자가 아파서 손을 놓은 틈을 타 달아났다.강지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이 여자는 정말 갈수록 통제를 벗어나네?’휴대폰 벨 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강지한은 눈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지한 도련님, 우리 거래를 해.”스피커에서 남자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관심이 없어.”그는 한마디로 거절했다.“당신 부인에 관한 일인데도 관심이 없어?”남자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강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심미연이 찾아갔나?’보아하니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당신이 관심이 없다면 이 거래는 그만두어야지.”강지한이 침묵하자 상대방은 그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말해봐.”그는 심미연이 도대체 자기 몰래 무엇을 했는지 보려고 했다.“앉아서 이야기할 곳을 찾아. 두세 마디로 분명하게 말할 수 없으니.”“네가 찾아!”상대방이 곧 주소를 보내왔고 그는 심미연에 전화를 걸었다.여러 번 연속 걸어서야 심미연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말투가 귀찮게 들려왔다.“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어. 이따가 데리러 갈 테니 함께 밥 먹으러 가자.”강지한은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저녁에 박유진과 심서연의 일을 이야기할 테니 그는 당연히 그녀를
강지한은 이때 한참 달아올라 당연히 그녀 혼자 하게 놔두지 않았다.“얌전히 서 있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혼내는지 볼래?”그는 낮은 소리로 위협했다.심미연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조그마한 얼굴이 창백한 채 말했다.“배가 아파. 소란피우지 마.”강지한의 표정이 차가워졌다.“왜 또 배가 아파?”그녀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이 여자는 걸핏하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틀림없이 그를 속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심미연은 가슴이 조여와 강지한이 무슨 실마리를 알아낼까 봐 그를 바라보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네가 어제 너무 달려들어 아픈 거잖아. 아직 낫지 않았어.”강지한은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입술을 감빨더니 잘생긴 얼굴에 웃음기를 더했다.“너 나랑 처음 자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떤지 잘 알고 있지 않아?”심미연의 말은 결국 그의 흥취를 불러일으켰고 기분이 좋아진 그는 말투도 조금 전처럼 그렇게 냉담하지 않았다.심미연은 이 기회를 틈타 그를 밀쳤다.“나 다 나으면 다시 이야기하는 게 어때?”나긋나긋한 말투에 예쁜 두 눈으로 쳐다보니 얌전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너는 지난번처럼...”강지한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한마디 하자 심미연의 얼굴이 즉시 귀밑까지 빨개졌다.“빨리 나가. 나 옷을 갈아입어야 해.”지난번에 그녀의 손이 오랫동안 시큰거렸는데 더 하기 싫었다.여자의 수줍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강지한은 마음이 간지러워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고 고개를 숙이더니 입술에 뽀뽀하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보고 나도 보고하지 뭐.”그 모습은 횡포 적이고 멋있었다.심미연은 고개를 돌리더니 돌아서서 옷장을 열고 단아한 긴 치마 한 벌을 꺼내 곧장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강지한 앞에서 옷을 다 벗을 용기가 없었다.강지한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심미연, 어디 가?”심미연이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살
왜 강지한에게 스피커폰을 누르라고 했을까?그녀는 정말 스스로 학대를 찾는 것 같았다.“의사가 신신당부했잖아. 너무 흥분하지 마. 말 듣지 않으면 앞으로 나도 너를 상관하지 않을 거야.”강지한은 다시 한번 그녀를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온지유는 마음이 급하고 두려웠다.“지한 씨, 나 흥분하지 않았어. 의사의 말을 잘 들을게. 지한 씨가 나를 상관하지 않으면 안 돼.”강지한의 말에 그녀는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하고 목소리는 억눌린 울음을 띠고 있었다.“그래, 나 바빠. 너 좀 쉬어. 내가 시간이 있으면 너를 보러 갈게.”강지한은 결국 차마 모진 말을 할 수 없어 한 걸음 물러섰다.“그럼 몸조심해. 나 쉬러 갈게. 지한 씨, 기다리고 있을게.”온지유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는데 목소리에 웃음기가 조금 물들었다.심미연은 힘껏 심호흡하고 고개를 숙인 채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이미 손을 놓을 준비가 다 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 걷잡을 수 없이 괴로울 것이다.강지한은 심미연의 뒷모습을 보고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그는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심미연은 자신을 욕실에 가두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마음이 괴로웠고 위도 괴로워 토하고 싶었다.강지한이 다가와 문을 두드리자 심미연은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옷 다 갈아입었어?”강지한은 손을 뻗어 문을 두드리며 문에 비치는 그 영롱하고 우아한 그림자에 눈빛을 고정한 채 마음이 좀 조급해졌다.많은 경우 분명 심미연이 그를 유혹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통제할 수 없이 반응을 일으켰다.막 결혼했을 때 그는 그 방면의 수요가 매우 컸다. 또 자신이 방금 여자를 접했기에 육현성과 함께 벨라비타에 가서 특별히 여자를 몇 명 불렀는데 결국 그는 그 여자들에 반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향수 냄새에 질려 토하고 싶고 징그러워서 안 되었다. 그는 심지어 그 여자들을 앉히지도 않고 직접 내쫓았다.결혼 3
심미연은 목이 메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강지한을 정말 화나게 하면 그는 정말 의료진을 철수시킬 가능성이 있다.그렇게 되면 외할머니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눈 뜨고 죽을 수밖에 없다.“화나지? 나를 물어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지?”강지한은 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만지며 직설적으로 말했다.“결국, 네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에게 잡히는 거야.”심미연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강지한의 말대로 확실히 그녀는 강하지 못하다.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강지한을 떠날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떠나 지금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말했잖아. 순순히 내 곁에 있으면서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갖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의 외할머니는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강지한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예전에 그는 심미연과 잠자리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었고 심미연에게 뭘 시키든 그녀는 순순히 따랐다.지금 심미연은 그와의 스킨십을 거절하고 있다. 그가 심미연에게 뭔가 시켜도 그녀는 이리저리 미루고 있다.그는 심미연이 그 통제할 수 없는 사고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는 그녀가 영원히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비열한 수단일지라도 말이다.강지한이 외할머니로 위협하니 심미연은 울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만 울 수도 없었다.생각을 정리하고 그녀는 화장대에 가서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아래층, 차 안.강지한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차 문은 닫지 않았는데 남자의 얼굴은 반쯤 불빛 속에서 잘생긴 윤곽만 보였다.심미연은 그가 온지유와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온지유와 통화할 때만 이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멈춘 그녀는 다가가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면 좀 곤란할 것이다.강지한은 전화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다가 여자의 예쁜 눈동자를 마주했다.그 순간 마음속에 어느 정도 기쁨이 일렁이었다.마치 예전에 집에 돌아가면 여자의 모습을
심미연은 이제 강씨 가문 사모님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간가?그녀는 그에게 협조하고 있다. 사랑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분명히 이것은 그가 원하는 결과인데 왜 그는 여전히 즐겁지 않은 걸까.심미연은 다리에 올려놓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감정에 조금도 기복이 없었다.그녀는 일에 대해 줄곧 진지한데 이 일은 외할머니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외할머니의 건강만 좋아지신다면 자기를 팔더라도 상관없었다.강지한은 기분이 좋지 않아 차를 빨리 몰았고 가는 내내 두 사람은 더는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강지한도 말을 하지 않고 심미연도 말을 하지 않았다.곧 차가 레스토랑 문 앞에 세워졌다.문 앞을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차 키를 던져주고 주차를 맡긴 강지한은 심미연을 향해 구부린 팔을 내밀며 많다.“팔짱 껴.”심미연은 그를 힐끗 보고 순순히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고 억지로 다정한 척했다.“울상 짓지 말고 미소 좀 지어.”강지한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잡고 힘을 주어 얼굴에 옅은 자국을 냈다.심미연 눈썹을 찡그린 채 다행히 옅은 화장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이 힘으로 화장이 모두 번졌을 것이다.“언니, 형부, 오셨어요? 빨리 들어가세요!”심서연의 목소리에 심미연은 들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심서연를 바라보았다.특별히 빨간 외투를 입어서 그녀의 피부는 더 검게 보였다.방금 외출할 때 그녀는 강지한이 어디로 밥을 먹으러 가는지 물어본 적이 없는데 뜻밖에도 그녀를 여기에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현재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알고 있어서 그녀의 마음은 매우 평온했다.이것은 단지 일에 불과하니 정서적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언니, 얼굴이 왜 안 좋아 보여? 아픈 거 아니야?”심서연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고 두 눈은 심미연 몸을 왔다 갔다 하며 훑어보았다.그녀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심미연이 예쁘고 다재다능하며 배우는 대로 할 줄 아는 천재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가끔 사람들은 심미연을 추켜세움과
박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손을 뻗어 심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제대로 앉아.”그와 심서연 사이는...거래일 뿐이었다.사랑하는 척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면 되는데 그러는 자신에게 구역질이 났다.“룸에는 모두 지인들이니 유진 씨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심서연은 박유진의 보기 흉한 안색을 보지 못한 척하면서 한쪽 팔을 다시 뻗어 그의 허리를 껴안고는 나긋나긋하고 매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심미연에게 어떻게 질 수 있겠는가.짙은 향수 냄새가 코에 파고들자 박유진의 부드러운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더니 심서연를 밀치고 일어섰다.“나가서 담배 피우고 올게.”더 있으면 그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온화한 가면을 직접 뜯어낼 것 같았다.“박유진! 가지 마!”심서연은 씩씩거리며 일어나 그의 팔을 잡아당겨 가지 못하게 했다.그가 가면 그녀의 체면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이미자의 안색이 좀 안 좋게 변했다.심서연은 횡포만 부리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니 앞으로 어떻게 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것인지 걱정스러웠다.박지훈은 침묵한 채 마음속으로 심서연이 박씨 가문에 시집오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박유진이 원한다니 그도 막기가 쉽지 않았다.심동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조은하에게 눈짓하자 조은하가 급히 일어나서 심서연을 말렸다.“빨리 앉아. 여기서 창피하게 굴지 말고.”“엄마...”심서연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조은하는 표정이 어두워진 채 그녀를 의자에 눌러 앉혔다.“조용히 있어.”그녀는 박유진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심서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이런 장소에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을 방임할 수는 없었다.박씨 가문은 아직 그녀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일단 사이가 틀어지면 박씨 가문은 여러 가지 구실을 찾아 결혼을 지연시킬 것이다.심서연은 엄마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얌전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조은하는 그녀를 힐끗 본 후 박유진에게 말했다.“유진아, 너 담배 피우러 가.”박유진은 강지한 앞에
눈을 마주친 박지훈과 이미자는 마음이 서로 달랐다.박지훈은 박유진이 심서연과 결혼하면 앞으로 강지한과 한 가족인데, 만약 바렐 그룹과 이노 하이브가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바렐 그룹의 미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미자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건 박유진이 심서연과 결혼한 후에 심미연에 관한 생각을 완전히 끊으리라는 것이다. 아들은 그녀가 키웠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책임감이 있고 감정을 중시한다. 유일한 결점은 너무 감정이 한결같다는 것이다.그때 강지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밥을 먹어요? 심미연이 배가 고파요.”심미연은 식사 시간이 항상 규칙적이었는데 매일 저녁 6시 반에 식사를 시작했다.갓 결혼한 그 기간에 심미연은 매일 그가 집에 돌아와 함께 먹기를 기다리며 음식을 한 번또 한 번 데웠다. 후에 그녀는 그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밥을 먹고 바로 치웠다. 때로는 그가 집에 돌아와 조금도 먹지 못했다.지금 벌써 8시가 다 되어 가니 그녀는 틀림없이 배가 고플 것이다.가뜩이나 몸이 안 좋은데 조금만 더 굶으면 몸이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심미연은 눈을 들어 그를 한 번 보고는 마음속으로 어이없게 웃었다.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생사도 돌보지 않는데 그녀가 배고프든 말든 상관할 리 없지 않은가?강지한이 아무리 그녀가 배고플 거라고 해도 그들은 못 들은 척하며 얼버무릴 뿐이다.조은하는 심미연이 배가 고프다는 말을 듣고 조건반사처럼 욕설을 퍼부었다.“굶어 죽어도 싸!”어려서부터 심보가 사나운 사람인데 누가 그녀의 생사에 관심이 있겠는가.차가운 눈빛으로 조은하를 바라보는 강지한의 몸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흘렀다.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미연의 등에 흉측한 흉터가 있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심미연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고 심미연은 어머니가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그는 사람을 찾아 두 사람의 DNA를 조사했는데 모녀가 확실했다.그는 어떻게 딸에게 그렇게 독한 어머니가
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강지한을 바라보며 예쁜 두 눈에 의외라는 눈빛이 가득했다.‘이 남자 오늘 약 잘못 먹은 거 아니야?’온지유 앞에서는 한 마디도 안 해주던 사람이 계속 도와주다니?심서연은 화가 나서 손을 들어 심미연을 때리려 했지만 결국 누군가 손목을 가로챘다. 잡힌 손목은 부러질 것처럼 아파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아파, 놔! 심미연 너 이거 놔!”심미연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무슨 손을 놓는단 말인가.그러나 강지한의 행동은 정말 알 수 없었다.오늘 왜 계속 도와주는지 정말 의아할 나름이었다.“개도 주인을 보면서 때린다는데 심미연은 지금 강씨 가문 사모님이야. 감히 내 앞에서 미연이를 때리려 하다니. 겁대가리 없구나. 당장 사과해!”강지한의 눈에는 냉기가 감돌아 현장을 얼어 붙일 것 같았고 목소리는 뼈를 찔렀다.심미연 마음속에서 막 생겨난 그 한 가닥의 호감은 지금 깨끗이 사라졌다.그녀는 그를 생명의 지푸라기로 여겼는데 그는 그녀를 개로만 여겼다.심서연이 그녀를 상대하는 것은 강지한의 꼬리를 밟아서이지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나...”심서연이 막 말을 하려고 하자 남자의 매서운 눈빛이 그녀를 향했다.“사과해! 빨리!”‘이 여자가 내 앞에서 감히 이렇게 날뛰고 건방지다니. 흥!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심서연은 이를 악물고 아무렇게나 말했다.“미안해.”어쩐지 강지한이 오늘 줄곧 그녀를 겨냥하여 심미연을 대신해서 화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전에 인터넷에서는 이 두 사람의 불화설이 돌며 강지한은 밖에 애인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강지한은 심미연을 돕고 있는 거지? 일부러 연기하는 건가?’그런 생각에 심서연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자신이 진실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심미연은 그녀처럼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위로가 되었다.심미연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녀는 즐겁고 심미연이 행복하면 그녀는 화가 나서 죽고 싶었다.심미연은 입술을 깨물고 물었다.
강지한은 차를 잡고 있던 손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갑자기 움켜잡힌 듯 그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했다. 창밖의 밤은 깊고 먹물처럼 어두웠으며 실내의 조명은 흐릿하게만 그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 그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 일을 심미연에게도 말한 걸까?’‘그렇지 않다면 심미연은 왜 이렇게 단호하게 이혼을 결심한 걸까?”강준형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미 경고했잖아. 그 애 일에 너무 개입하지 말라고! 근데 넌 내 말을 그냥 흘려들었지!” 강준형의 목소리는 낮고 강렬했으며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강지한의 가슴을 거듭 내리치며 파고들었다. 강지한은 잘 알고 있었다. 강준형이 진성과 온지유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고 분명 예전부터 사람을 시켜서 조사를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는 일이면 심미연도 다 알고 있는 걸까?’강지한은 아무 말 없이 고요히 침묵을 지켰다. “온지유는 겉으로 보기엔 여린 듯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강준형의 말에는 약간의 무력함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젊은 후배의 일을 이렇게 뒤에서 평가하는 게 본의는 아니었지만 네가 그저 이 늪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미연이까지 잃었다는 걸 보고는 그냥 지켜볼 수가 없더라. 혹시 넌 생각해 본 적 있어? 그 애의 착한 모습이 어쩌면 그저 교묘하게 짜놓은 덫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 목표는 바로 너고”강준형은 그 말을 하던 중 가볍게 한숨을 쉬었고 그 한숨은 마치 세월을 넘는 깊은 한숨처럼 약간의 세월의 흔적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강지한, 그거 알아?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은 대부분 가장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져 있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걸 미리 읽을 수는 없단다.” 그 순간 공기가 마치 얼어붙은 듯했고 밖에서 가끔 들려오는 밤바람의 속삭임만이 이 공허함을 채우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강지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
심미연은 이미 구연궁에서 살기로 결심한 상태였고 강준형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알았어요. 이제 많이 늦었으니 먼저 돌아가서 쉬세요. 제가 자리를 잡고 나면 찾아뵐게요.”“알겠다!” 강준형은 그녀의 창백하고 피곤한 얼굴을 보며 가슴이 저렸다. ‘참 좋은 아이인데.’이렇게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고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그녀가 강지한에게 계속 상처받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결국 강지한은 후회하게 된다고 생각했다!심미연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짐을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떠날 결심이 이미 서 있었기에 그녀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심미연!” 강지한은 그녀를 따라가려 했지만 강준형이 지팡이를 들어 그의 다리를 쳤다. “거기 서라! 따라가면 안 된다!”“할아버지...” 예전에는 분명히 온전하셨던 정신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미련을 두는 걸까?강준형은 기사에게 심미연을 데려다주게 하고 강지한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강지한, 네가 무슨 면목으로 그 애를 붙잡고 있어? 미연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남편인 네가 소식 하나 없었잖아. 미연이는 홀로 외할머니를 보내며 3일 동안 잠도 안 자고 버텼단 말이다. 미연이의 마음속 아픔은 네가 상상도 못 할 거야.”그 3일 동안 그는 심미연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졌다. 그런 착한 아이가 이제는 무감각해졌으니.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딘 걸까. 강지한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결국 손을 내려놓았다. 강준형의 말을 듣고 나서 그는 자신이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그래도 그는 여전히 심미연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네가 정말로 착한 사람이라면 그애를 놓아줘라! 그 애가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 강준형은 강지한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끼며 더 이상 두 사람을 엮어주려 하지 않았고 그저 강지한에게 놓아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강지한은 말없이 몸을
“미연아, 내가 이번 일에 관해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 나가지 말고 내 말을 먼저 들어줄래?” 강지한은 억누른 화를 속으로 삼키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가 급히 진주에서 돌아온 게 심미연을 보내려 온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에 관해 설명하고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이번엔 그의 잘못이었다!심미연은 짐가방을 단단히 붙잡고 아무 감정 없이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그녀가 10년 동안 사랑해 온 사람이었고 평생 그를 사랑할 거라 믿었지만 결국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신이 그녀에게 좋은 길을 마련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지한 씨, 내가 당신에게 준 기회는 이미 다 끝났어.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떠날 거야.” 그녀의 표정은 아무 감정이 없이 가볍고 담담했다.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그녀는 강지한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정리했다. 사람은 한 번 마음을 놓으면 다시 맞닥뜨릴 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었다. 앞으로 강지한의 모든 것은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잘못했어. 네가 정말 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할아버지 생각은 해봤어? 건강도 안 좋은데 네가 떠난다고 그러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걱정되지 않아?”강지한은 심미연의 결단을 보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할아버지를 방패 삼아 막으려 했다. 심미연이 할아버지를 그렇게 아끼는 만큼 그녀는 그가 아프고 슬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강지한은 확신했다.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물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어. 할아버지는 내가 이혼하는 걸 지지하셔.”예전엔 할아버지의 건강 때문에 이혼 얘기를 꺼내지 못했지만 이번엔 강지한의 행동은 너무 지나쳤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혼을 반대하셔도 그녀는 할 것이었다. 더 이상 강지한과 그런 날들을 계속할 수 없었다. 이제 외할
심미연은 일어나 멀리 있는 곳을 응시했다. 그 시선은 마치 지금 자신이 가게 될 길이자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가득 찬 새로운 여정이 펼쳐지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한편 강준형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서서 그녀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음속 깊이 뭔가를 잃은 듯한 아쉬움과 함께 손녀의 앞날을 향한 무한한 기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은 다시 한번 고요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오늘 밤 심미연이 내린 결단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깊은 파문을 일으켜 새로운 삶의 여정이 시작될 것을 예고했다. 미르 파크로 돌아온 심미연을 반기며 임혜자가 서둘러 다가왔다. “사모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바로 준비할게요!” 심미연은 미소로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요.”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드실 때 말씀하세요!” “네. 그럼 저는 올라가 볼게요.” 임혜자는 그녀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더 말라가는 사모님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손바닥만큼 작아 보일 정도였고 그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심미연은 윗층으로 올라와 빠르게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보낸 3년의 세월 동안 짐이라고는 고작 하나의 여행 가방에 담길 만큼 간단했다. 짐을 끌며 문을 나서던 그녀는 잠시 멈추어 침실을 뒤돌아보았다. 그 방을 바라보는 마지막 시선이었다. 임혜자는 그녀가 가방을 들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다가갔다. “사모님, 어딜 가시려고요?” 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제 이 집을 떠나려고요.” “사모님, 왜 이러세요!” 임혜자는 눈가가 붉어진 채 울먹이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가지 마세요!” 하지만 심미연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단호히 짐을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마음속 결단을 전달하는 듯했다. 가방
온지유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그의 심장박동을 들으며 순간 마음 한편에서 감동이 살짝 밀려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만약 그녀가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육현성이 이런 말을 한 순간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다! 온지유의 침묵은 육현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는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조금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어쩌면 그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자신과 함께 하기로 결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결국 그것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성 오빠, 저는...” 온지유는 육현성이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알아요. 지유 씨,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요.” 결과를 알게 된 육현성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앞으로 자주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당연히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 “현성 오빠, 나랑 이제 아예 연락고 안 해줄 건가요?” “지유 씨, 미안해요. 그냥 내가 아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요즘 육씨 가문이 엉망진창이라 육현성도 정신없이 바빴기에 온지유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다. 온지유는 입술을 꽉 깨물며 갑자기 눈가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알겠어요!” 그녀는 육현성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육현성이 떠나자마자 강지한이 도착했다. 온지유의 붉어진 눈을 보고 또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하며 울었다고 생각했다. “유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눈에 안 좋다고 울지 말랬잖아.” 강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래야 했다. 온지유는 육현성의 다정함이 떠오르며 울음을 참지 못하고 더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강씨 가문의 저택에서. 심미연은 단정한 원피스를
‘차라리 돌아와서 직접 아는 게 낫겠어.’ “성 비서,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야?”강지한의 목소리가 예리해졌다. 성무진은 한숨을 내쉬며 결국 알게 된 사실을 모두 전했다. 강지한의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잠시 멈칫했다. 그날 전화로 심미연에게 온지유에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 그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었지만 그때 그는 뭐라고 말했지? 그는 심미연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심미연은 전화하지 않았고 그는 그저 그녀가 사과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토록 큰 일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아마 슬픔에 잠겨 있었겠지.’‘그래서 내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대표님.” 성무진은 전화기 속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부르며 물었다. “알았어. 그럼 여기까지 하자.” 강지한은 전화를 끊고 창밖의 차들이 가득한 거리를 바라보며 심미연이 혼자서 외할머니의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남편이었지만 아무것도 몰랐으며 이상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할아버지의 전화를 다시 떠올리니 아마 할아버지도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화가 너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던 거다. ‘할아버지는 나한테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강지한은 창가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 온지유의 전화가 다시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또 무슨 일이야?”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한 씨, 나 무서워.”온지유는 반쯤 진심이고 반쯤 아닌 듯 말하였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강지한은 신속하게 응답했다. “지한 씨, 내가 일 방해한 건 아니야?” 온지유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하던 강지한은 결국 그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전화기에서 울려 퍼지는 건 차가운 신호음뿐이었다. 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바쁜 신호음만이 들려왔다. 강지한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심미연이라는 여자는 진짜 단 한 번도 그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잘못한 것도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다니. 그녀가 그의 번호를 차단했다면 그 역시 그녀를 찾을 필요 없이 돌아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강지한은 화면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 여자가 또 할아버지에게 고자질이라도 한 건가?’ ‘이젠 할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그를 혼내려는 걸까?’ 지난번에 매를 맞은 뒤로 최근 너무 바빠서 상처도 신경 못 썼더니 이제 염증이 나서 며칠째 고통스러웠다. 한참 후 강지한은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강지한! 너 요즘 어디에 가 있었냐? 왜 전화는 한 번도 받지 않는 거냐?”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거의 울부짖는 듯 분노가 그대로 드러났다. “저 요즘 진성에 출장 갔었어요. 핸드폰을 계속 켜놓고 있었는데 왜 안 받았겠어요?” 강지한은 늘 그렇듯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는 정말로 전화를 꺼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그쪽에 계속 있어! 평생 돌아오지 마!” 강준형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장을 갔을 뿐인데 전화가 계속 안 된다니. 그게 단순한 우연일까?강지한처럼 예리한 사람이 왜 이 정도는 생각하지 못한 걸까? 강지한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온지유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 그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무슨 일이야?” “지한 씨, 지금 어디야? 나 혼자 병실에 있으니까 너무 무서워. 와서 좀 같이 있어 줄래?” 온지유의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고 그 공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알았어. 금
“그럼 어머니가 계획한 대로 하세요.” 이진영은 어머니와 대립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의 모든 결정은 이씨 가문을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대로 그들은 이씨 가문의 명예를 누렸으니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택할 수 없었던 일이니까. “넌 먼저 한유나 씨와 연락하고 다시 전화해 줘. 저녁 식사는 취소할게.” “알았어요!” 이진영은 전화를 끊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웠다. 그 연기 속에는 그 여자의 눈부시고 매혹적인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담배 한 개비를 마저 피우고 나자 여자의 얼굴도 사라졌다. 그는 살짝 웃으며 비서에게 한유나의 번호를 찾게 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전화기에서 여자의 자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당신의 소개팅 상대 이진영이에요.” “무슨 일이죠?”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냉담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태도지?’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가?’ “별일 없으면 그냥 끊을게요. 바빠요.” “소개팅 상대로 만나려면 점심에 얼굴 한 번 봐야죠. 어디죠? 데리러 갈게요.” 이진영의 말투는 여전히 평온했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연구소로 와요.” 그녀는 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진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생각했다. ‘역시 대가문의 따님답게 감히 나를 명령하네.’ “제가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 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바쁜 신호음이 들려오자 이진영은 코웃음을 치며 미소를 흘렸다. ‘잘난 척은 끝내주네.’ 그때 강지한의 전화가 걸려 왔고 이진영은 잠시 응급실에 있는 심미연을 떠올리며 망설인 뒤 전화를 받았다. “구도심 사람들 다 동의했어. 지금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 강지한은 매우 지친 목소리였다. “내일은 안 돼?”그는 오늘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오늘 밤에는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강지한은 무의식
이진영은 신하린의 얼굴이 금세 빨개지는 것을 보고 살짝 눈을 좁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신하린,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 여자가 혹시 자기가 여기서 뭔가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이 병원이 자기가 소유하는 곳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무모하게 행동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는 건 비밀스러움이 주는 그 자극적인 느낌이 있어 확실히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오늘 밤 당신 집에 가야 되나요? 아니면 우리 집으로 올래요?” 신하린은 이제 거짓말도 입을 열자마자 술술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사실 남자도 그녀가 진심을 말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속마음을 말하면 상처가 될 테니까. “내가 네 집 하나 샀어. 일이 끝나면 같이 가서 보여줄게.”이진영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가 사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신하린은 그가 주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에게 뭔가를 받는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뿐이었다. “너 그곳 너무 좁아. 할 때 별로야.” 이진영은 손을 뻗어 신하린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그녀의 매혹적인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비서한테 큰 소파랑 넓은 침대로 바꾸라고 했으니까 오늘 밤 한 번 써보자.” 조금 조롱이 섞인 말투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기대가 치솟았다. 신하린의 얼굴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남자가 정말 끝까지! 하루 종일 그런 생각만 하는 거냐고.’ “너 밥 해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거기는 부엌도 넓고 기계도 다 새것으로 준비됐어...” 마지막 말은 그녀의 귀에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듯 말했고 신하린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었고 귀까지 붉어졌다. ‘이 남자는 정말 너무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고 신하린을 잠시나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이진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보며 번호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