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아는 태어난 후 몸이 약해서 줄곧 병치레가 많았어요. 이 7개월 동안 거의 병원에서만 지냈죠. 나는 승아와 함께 끝까지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방금 의사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진단했어요."핸드폰 너머에서 송이연은 어쩔 줄 몰라 울먹이며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이렇게 어린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어야 한다니. 수아 씨,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송승아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나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송이연이 지금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은 달리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내가 먼저 당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침착하게 물었다."언제 진단받았어요?"송이연이 대답했다."조금 전에요."나는 차분히 물었다."그럼 의사가 또 뭐라고 했어요?"골수 이식이 필요하대요. 하지만 적합한 골수가 없어요.""함께 방법을 찾아봐요. 내일 내가 상주로 갈게요."나는 요 며칠간 계속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어젯밤에는 유산할 뻔한 일도 있었기에 지금 당장은 무리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송이연은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수아 씨.""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연 씨 딸이자 나의 조카잖아요."내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송이연은 나에게 주의를 주며 말했다."시혁 씨한테 알리지 마세요."연시혁이 송승아의 친아버지이기에 그와 골수가 일치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송이연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연시혁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이걸 보면 송이연이 연시혁에게 가진 원망이 예상보다 깊은 것 같았다."네, 비밀로 할게요."송이연은 원래 더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지만 핸드폰 너머에서 의사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급히 전화를 끊었다.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거실에서 게임 하고 있는 담현아를 발견했다.놀란 나는 담현아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언제 왔어?"담현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어제 나한테 놀러
동성의 겨울은 유독 차가웠다. 그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고정재의 마음마저 얼어붙게 했다.어젯밤, 고정재는 급하게 동성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의 댁에서 담현아와 그녀의 오빠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중에야 선생님의 아내가 담현아의 고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담현아는 고정재를 보고도 별다른 놀라움 없이 담담히 인사하고는 어린 조카와 놀기 시작했다.고정재는 담현아가 가족들 앞에서 무척 순수하고 어린아이처럼 밝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았다. 담현아는 고정재의 앞에서 차갑고 무관심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리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마치 가족들의 분위기에 녹아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연기하려는 듯했다.그제야 고정재는 담현아가 남들 앞에서 연기를 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과 뒤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고정재는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담현아의 고모는 고정재가 담현아와 함께 공연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두 사람이 친한 사이인 줄 알고 담현아에게 배웅하라고 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눈 내리는 밤길을 아무 말 없이 함께 걷다가 헤어질 때쯤 고정재가 물었다."현아야, 나 많이 싫어하니?"고정재는 31년 동안 살아오면서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쓴 적이 없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 눈앞의 이 사람만은 달랐다.담현아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고정재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정재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윤다은의 말처럼 이것이 바로 신경 쓰이는 마음일지도 몰랐다.고정재는 처음으로 담현아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했다.연수아에게 느꼈던 지켜주고 싶다는 단순한 감정보다 더 깊었고 담현아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그 순간 고정재는 최근 느꼈던 혼란의 이유가 바로 이 감정 때문임을 깨달았다.눈 내리는 밤 담현아의 곁에 서 있는 지금 고정재는 자신의 마음을 피하지 않고 인정했다.고정재는 담현아를 사랑하고 있었다.고정재는 자기가 언제부터 담현아를 신경
담현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더니 기쁜 듯 말했다."나 오빠들이랑 내기했어요. 만약 내가 여기 와서 언니가 오빠들을 초대해 밥을 먹게 하면 오빠들이 각각 나한테 천만 원씩 세뱃돈을 준대요.이 말을 듣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너희 진짜 유치하다."담현아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내가 올해 세뱃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맞혀봐요."담현아는 돈을 잘 벌 줄 아는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잘 벌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이었다.나는 대충 추측하며 물었다."2억 정도 돼?담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1억도 안 돼요."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왜 그렇게 적어?"명문가의 자녀라면 설날마다 세뱃돈으로 엄청나게 많이 받을 것이다.담현아는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며 말했다."귀찮아서 친척들 안 찾아갔거든요. 그냥 부모님이랑 오빠들만 나한테 세뱃돈을 줬어요. 근데 정재는 진짜 짠돌이예요. 어젯밤에 일부러 고정재가 준 세뱃돈을 열어봤는데 안에 겨우 100만 원밖에 안 들어 있더라고요. 언니는 그래도 나한테 200만 원을 줬잖아요.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내가 준 세뱃돈 언제 열어봤어?"담현아는 손으로 돈봉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두께가 다르잖아요. 만져보면 알 수 있어요."나는 담현아에게 제안했다."내 방에 세뱃돈 봉투 하나 더 있는데 줄까?"담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돼요. 그러면 내가 너무 욕심이 많아 보이잖아요."나는 담현아의 정교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그럼 다음번에는 더 많이 줄게."담현아는 손에 들고 있던 스포츠카 키를 흔들며 말했다."이거보다 더 큰 게 있을까요?"최근 느껴졌던 답답함은 담현아와 함께 있으니 사라졌고 나는 모처럼 담현아와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담현아는 세뱃돈과 차 키를 소파 위에 놓고 계속 게임을 했다.이때 갑자기 고정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꼬마 아가씨, 동성으로 돌아가는 걸 잠시 미뤘어. 이따 너희 집으로
담현아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했지만 나는 급히 그녀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우리 이제 밥 먹자."내 말을 들은 담현우는 분위기를 알아차리고서는 입을 다물더니 주방으로 와서 도왔다.다들 식탁에 앉은 뒤 나는 맥주를 가져왔다. 담현아도 술을 마시고 싶어 했지만 나는 담현아가 술을 한 잔도 버티지 못한다는 걸 떠올리고 급히 막으며 말했다."넌 아직 어려."담현아는 순순히 내 말을 듣고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고정재를 제외한 남자들은 모두 말이 많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이어갔다.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주제로 흘러갔고 반경우는 결국 화제를 나에게로 돌리며 물었다."우리 아기, 너희 석지훈은 왜 안 와?"반경우는 나와 석지훈 사이의 구체적인 사정을 알지 못했다.나는 잠시 생각한 뒤 대충 둘러대며 말했다."핀란드에서 일하느라 바빠."내가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은 태도를 보이자 반경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대신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했다."우리 처음 만났을 때 넌 지금의 현아보다 세 살 더 어렸잖아.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렸고 또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네. 이제 몇 달 뒤면 엄마가 된다니. 믿어지지 않아."반경우가 엄마라는 두 글자를 언급하자 나의 마음은 따뜻해졌고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모습이 몹시 기대되었다.나는 과일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너도 이제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리 잡아야지."반경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비혼주의자야."옆에서 이 말을 들은 담현아는 푸아그라를 먹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진정한 비혼주의자가 어디 있겠어? 그냥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났거나 좋아해도 마음을 얻지 못했겠지."담현우는 웃으며 물었다."현아야, 네 말은 경우가 좋아해도 얻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거야?"반경우는 담현아를 살짝 째려보며 위협하듯 말했다."너한테 줄 천만 원 아직 안 준 것 같은데?"담현아는 순간 화제를 바꾸더니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경우
동성의 하늘에는 가벼운 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고정재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정재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내가 너무 많은 걸 묻는 건 부적절해 보였지만 또 그와 오해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나는 신중하게 설명했다."현아가 말한 그 사람은 석지훈이에요. 현아는 석지훈의 보호 아래 자랐거든요. 현아에게 석지훈은 평생 따를 사람이에요. 다만 현아는 석지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없어요. 그냥 일적으로 멘토이자 따르는 대상일 뿐이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고정재는 똑똑했기에 나에게 물었다."석지훈과 담현아가 어떻게 얽힌 거야?"모든 걸 캐물으려는 고정재의 태도에 나는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어 먼저 그에게 물었다."정재 씨는 현아에 대해 얼마나 알아요?"내 말을 들은 고정재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나는 고정재가 담현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나는 설명을 이어갔다."현아는 담씨 가문과 예전 석씨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소녀예요."예전의 석씨 가문은 석지훈의 세대를 뜻했다.고정재는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석씨 가문이 왜 현아를 보호했는데?""고정재 씨, 현아는 천재 소녀예요."고정재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뭔가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나는 간단히 말했다."많은 걸 어떻게 정재 씨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현아는 보통 사람보다 아이큐와 감성 지수가 높아요. 우리보다 훨씬 많은 걸 볼 수 있고 생각도 더 예민하죠."고정재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조금 곤란하네."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요?"고정재는 천천히 눈을 떠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낮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현아는 어젯밤 분명히 나를 거절했어."나는 순간 멈칫했다. 평소에 냉담하고 차가운 고정재가 정말 어린 소녀 담현아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수십 년 동안 고정재를 쫓아다닌 윤다은조차 고정재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는데 고정재는 몇 번 보지도 못한
고정재는 인내심을 갖고 다시 물었다."그 사람이 누군데?"나는 원태웅이 전화로 담현아를 핀란드로 초대한 것이 한민수의 지시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담현아는 아무 거리낌 없이 말했다."석지훈이죠. 원태웅은 석지훈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핀란드로 가야 해요."고정재는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담현아는 설명을 덧붙였다."석지훈은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대요. 내가 딱 적임자죠."나는 담현아의 기술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컴퓨터 분야의 얘기는 처음 들었다.그러나 담현아는 워낙 똑똑했기에 못 하는 게 없을 것이다.담현아는 지금 석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하지만 나는?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저 방관자일 뿐이다.고정재가 방을 나가자 다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영재반과 예전 석지훈의 사람들이 모두 핀란드에 모였어요. 원태웅의 말에 따르면 나도 그곳에서 몇 달 머물러야 한대요."석지훈은 그의 인맥과 세력을 다시 구축하려 했다.나는 갑자기 담현아가 석지훈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담현아가 물었다."언니도 나랑 같이 갈래요?"두 번이나 핀란드에 갔지만 석지훈을 만나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현아야, 나는 석지훈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담현아는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왜요?""나랑 석지훈은 싸우고 헤어졌어."담현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함께하자고 하면 함께하는 거고.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지고. 어른들의 감정은 왜 이렇게 장난 같아요?"나는 말문이 막혔다.담현아의 생각에는 내가 이미 여러 남자를 만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담현아가 나를 오해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고현성이든 석지훈이든 그 어느 관계도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석지훈에게 상처를 줬다."현아야, 나는 석지훈을 정말 사
의사는 다른 산모들도 20주쯤 되면 다 하는 검사라면서 기형아 검사를 추천했지만 나는 왠지 불안했다.물론 태아 기형 검사를 하고 나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건 아무 일이 없을 때 얘기고 만약 아이에게 문제라고 생긴다면 연수아는 정말 마지막 희망까지 잃는 것이었기에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망설여졌다.그래서 나는 의사에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현정우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와서 약을 먹으니 조금 가라앉은 통증에 나는 그대로 잠을 잤고 이튿날 아침 바로 상주시로 향했다.상주시에 도착한 나는 조민수와 새언니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일단 송이연이 있는 병원부터 갔다.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두 눈이 빨개진 채 계속 울고 있는 송이연이 보여 나는 다급히 그녀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승아는요? 아직도 수술 중이에요?”내가 승아라 칭하는 사람이 바로 내 조카인 승아였다.9시 9분에 태어난 걸 기념하기 위해 승구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다들 남자아이로 오해해서 송이연이 얼마 전에 개명한 이름이었다.송이연 뒤편으로 보이는 수술실의 등이 아직 꺼지지 않아서 물은 건데 그녀는 맥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승아 어젯밤에도 계속 토했어요.”“괜찮을 거예요.”내가 그런 송이연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자 늘 강인하던 그녀는 버팀목이 생긴 사람처럼 나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수아 씨, 나 이제 더는 못 버티겠어요. 6개월밖에 안 된 저 아이가 아파할 때마다 내 가슴이 다 찢겨나가는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그때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승아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일도 없었을 텐데...”나는 온몸을 떨며 우는 송이연을 보니 덩달아 마음이 아파 난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고 말했다.“그런 말 하지 마요. 이연 씨도 승아한테 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잖아요. 그리고 승아도...”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던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승아 꼭 괜찮아질 거예요.”송이연은 그렇게 나에게 안겨 한참
“잘됐네요, 승아랑 이연 씨 같이 돌 볼 수 있어서.”내 손을 꽉 잡으며 말하는 송이연은 마치 힘내라고 나를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았다.“괜찮아요, 정우 씨랑 다른 경호원들도 있어서 난 알아서 잘 있을 수 있어요.”내 말에 송이연은 내 뒤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보며 말했다.“그래도 다 남자들이잖아요, 난 또 유경험자니까 도움 될 거에요.”“고마워요.”송이연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되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니에요, 수아 씨 그럼 나 대신 우리 승아 잠깐만 봐줄 수 있어요? 나 회사 가서 일 처리하고 승아 골수 이식해줄 사람도 구해봐야 할 것 같아요.”“당연하죠, 저도 사람 시켜서 알아볼게요.”송이연이 승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병실을 나가자 나는 바로 연시혁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도통 전화를 받지 않아서 결국 문자를 남겼다.[어디야?]연시혁의 문자를 받기도 전에 석씨 집안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가주님, 한민수 씨가 방금 돈 보내왔습니다.”“네, 강해온 씨는요?”“아직 집안 업무를 익히고 있습니다.”“그럼 저 대신 강해온 씨가 업무 빨리 익힐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함 집사님도 아시다시피 석씨 집안 가주들 옆에는 항상 믿을만한 비서가 있었잖아요. 강해온 씨는 제가 선택한 사람이긴 하지만 함 집사님 자리를 위협할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석씨 집안에서 저를 도와 비밀리에 일 처리를 할 사람이 필요한 것뿐이에요.”석씨 가문의 책임자로서 지위가 내 바로 아래인 사람이 바로 함승윤인데 강해온이 갑작스레 등장해서 권력을 나눠 가지면 혹시라도 못마땅한 감정이 생길 수 있으니 나는 그를 다독이기 위해 일부러 말을 길게 했다.하지만 함승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그런 말씀 마세요, 석씨 집안에서 오랫동안 있어 와서 저도 할 일 못 할 일 정도는 가릴 줄 압니다. 석만호 집사님이 강해온 씨가 가주님 따라서 집안에 들어올 테니 잘 가르치라고 당부도 하셨는걸요.”함승윤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연수아에게 자신의 충성
최욱현은 아이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였고 현정우가 입고 있는 검은색 군복에도 관심을 보였다.“우리 옷이랑 다르네. 여기 허리띠가 있네.”나: “...”나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현정우의 허리띠를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지만 현정우는 그를 무시했다.최욱현은 재미없다는 듯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고 대신 나에게 물었다.“석씨 가문 가주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 무기력해? 아까 왜 그 이씨 가문 사람들을 그냥 뒀어?”나는 설명했다.“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 권세로 억누르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다은이 시댁 될 사람들인데 예의는 지켜야지. 정재 씨도 의사 선생님 체면을 생각해서 고급 차로 데려오지 않고 검소하게 했는데 네가 나타나서 다 망쳐놨잖아! 이제 이씨 가문 사람들과 의사 선생님 동료, 친구들이 다 다은이가 돈이 많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앞으로 그녀를 귀찮게 할 일도 많아지겠지. 그 사람들 눈에 다은이는 졸부로 보일 거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돈은 다은이에게는 껌값일 테니 한 번 도와주고 두 번 도와주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뒷말이 나올게 뻔해.”최욱현은 내 옆에 앉아 말했다.“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구나. 네 말이 맞아. 앞으로 돈이 필요하면 신부를 찾을 거야. 신부는 시댁 식구들이나 친구들이니 분명 도와 줄것이고 그 사람들은 신부가 만만하니까 돈 뜯어낼 궁리만 하겠지.갈수록 더 심하게 말이야! 하지만 너는 한 사람을 간과했어. 바로 신랑이야. 신랑이 자기 쪽 사람들이 신부를 괴롭히는 걸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까? 게다가 오늘 일을 크게 벌인 건 앞으로의 많은 문제를 예방하는 거야. 아무도 신부를 얕보지 않을 테니, 자연스럽게 아무도 신부를 괴롭히지 않겠지.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의사의 동료 중에 신부를 괴롭혔던 사람도 있었어.”“나는 그런 일은 잘 몰라.”내가 말했다.나는 윤다은의 성격상 스스로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여러 사람들 속에서 혼자 나를 구해준 적도 있었으니까.“됐다, 그 얘긴 그만하자.”
최욱현이 F국을 언급하자 F국에 정착한 나의 친어머니 안혜인이 떠올랐다. 고귀한 공작부인 말이다.나는 패딩을 여미며 거절했다.“시간 없어.”최욱현은 씩 웃으며 말했다.“네 엄마가 너 보자고 하셔. 지금 F국 성에서 기다리고 있어.”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우리 엄마 알아?”최욱현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내가 눈을 부릅뜨자 자기 머리 쓱 만지면서 말했다.“알지. 옛날부터 알았어. 너 지난번에 입은 드레스도 네 엄마가 보내준 거야.”“엄마가 그런 식으로 보내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야. 지난번 일 때문에 솔직히 너 못 믿겠어.”최욱현이 되물었다.“내가 네 엄마 아는 거 못 믿는 거야?”나는 아무 말 없이 헬리콥터 쪽으로 걸어갔다. 최욱현은 내 뒤를 따라오며 설명했다.“진짜야. 나 네 엄마 알아. 우리 삼촌 와이프거든. 어릴 때 네 엄마랑 몇 년 같이 살았어. 비록 숙모지만 난 어머니라고 불렀지.”나는 걸음을 멈췄다. 최욱현도 예전에 자기 엄마가 도라지 꽃을 좋아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도라지꽃을 좋아하셨는데.그렇지 않고서야 석 씨 저택 아래의 운산 기슭에 그렇게 많은 도라지꽃을 심어 놓았을 리가 없었다. 최욱현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내가 동요하는 것을 보고 그는 휴대폰을 꺼내 곧바로 번호를 누르고 내게 건넸다.“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 봐.”나: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야?”최욱현은 대답 안 하고 씩 웃으면서 나를 봤다.나는 휴대폰을 귀에 댔다. 수화기 너머에서 유난히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야, 나야.”나는 미간을 찌푸렸다.“누구...”묻자마자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최욱현이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수아야, 나 안혜인이야.”그녀는 감히 자신을 나의 엄마라고 칭하지 못했다.“네. 욱현 씨가 건 거예요.”나의 어조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매우 차분했다.“수아야, 널 만나고 싶구나.”비록 그녀는 나를 버렸지만 나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었다.
지금의 최욱현은 마치 오지랖 넓은 할아버지 같았다.나는 다시 물었다.“금운에는 어떻게 온 거야?”“아까 말했잖아. 네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그가 말했다.나는 차갑게 말했다.“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 아니잖아.”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우리가 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나는 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잖아? 눈보라 속에서 너를 업고 몇 시간이나 걸었고.”나는 솔직하게 말했다.“지훈 씨가 네가 꾸민 일이라고 했어.”“진실을 알고 있었네.”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나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우리는 친구 아니야. 얼른 가.”최욱현은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흠칫 놀라 그의 손을 쳐냈다.“만지지 마.”“그냥 쓰다듬는 것뿐인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그는 어린아이처럼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차마 미워할 수 없었다.석지훈이 그에게 백혈병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병으로 나와 너무나도 닮았다.우리 둘은 다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허락 없이 만지는 건 성추행이야.”내 말을 듣자 그는 순순히 말했다.“그럼 앞으로 허락을 받고 터치할게.”12월의 날씨에 들러리 드레스만 입고 있으니 너무 추웠다. 담현아가 패딩을 가져다주자 나는 패딩을 받아 들고 웃으며 말했다“나는 이따 핀란드에 갈 거야. 너는 정재 씨랑 같이 동성으로 돌아가.”그러자 담현아가 말했다.“나랑 그 사람은 사는 도시가 다르잖아요.”나는 작게 말했다.“어쩌면 가는 길에 데려다줄 수도 있잖아.”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굳이 길을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담현아는 입술을 깨물며 한참 망설이다가 나에게 물었다.“언니, 아저씨에 대한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많이 망설여져요...”나는 차분히 물었다.“뭐가 망설여지는데?”내 옆에는 최욱현이 서 있었지만 담현아는 솔직하게 말했다.“내 인생은 이제 막 시작했잖
12월 금운의 날씨는 포근했고 부드러운 햇살이 쫙 쏟아져 짙은 색 군용 점퍼를 입은 남자에게 따스하게 내려앉았다.한 달 만에 만났지만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그랬다. 그는 아름다웠다.최현욱, 아니지. 그의 이름은 최욱현이었다.최욱현은 사람을 홀릴만한 미모를 갖고 있었다.선글라스를 손에 든 채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그의 긴 부츠는 반짝반짝 빛났는데 마치 인간 세상에 내려온 요정 같았다.이씨 가문 친척들과 하객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라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고급 차 수십 대가 한꺼번에 있는 모습을 본 적도 거의 없었다. 모두 경악과 부러움에 휩싸였다.이주원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구신지?”최욱현은 여전히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다만 화려한 분홍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나는 그가 왜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최욱현은 우리 앞에 와서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신부 친구입니다. 원래 신부 데리러 오려고 했는데, 좀 늦어져서 아쉽네요. 이 고급 차 수십 대를 활용하지 못했으니 사과의 의미로 신부에게 선물할게요. 다은 씨, 어때요?”최욱현과 윤다은이 아는 사이라고?윤다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니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혹시 도와주러 온 건가?윤다은은 재치 있게 대답했다.“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차는 뭐 하러 줘요? 나도 살 수 있는데.”신부의 당당한 말에 이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최욱현은 웃으며 물었다.“다들 왜 입구에 서 계시는 거죠?”윤다은은 시무룩하게 말했다.“수아 언니가 이혼했다고 내 들러리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그러자 최욱현은 나를 보며 물었다.“수아 씨는 어떻게 생각해?”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최욱현은 다시 이씨 가문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 거죠?”이씨 가문 사람들도 멍해졌다.“네?”최욱현은 허리에 손을 얹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날 비꼬는 척하며 말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고향에서 부랴부랴 달려오신 윤다은의 어머니는 나를 보고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수아야.”나는 정중하게 인사했다.“아주머니.”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맙다.”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때 윤다은도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었다.방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인터넷에서 화제였던 그 연수아 맞죠? 이혼한 사람이 어떻게 다은이의 들러리를 설 수 있죠?”맞다. 이혼한 내가 어떻게 들러리를 설 수 있겠는가?사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윤다은도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초대했고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지적하다니.윤다은의 결혼식이었기에 나는 그 사람과 논쟁하기 싫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윤다은은 내가 억울한 거 같았는지 립스틱 내려놓고 정색하면서 말했다.“수아 언니가 이혼한 건 맞지만, 지금은 미혼이에요. 왜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거죠?”그 여자는 고집스럽게 말했다.“불길해요.”하지만 윤다은은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길하다고 하면 길한 거예요.”“집안이 좋다고 우리 이씨 가문을 무시하지 마세요. 작은어머니께 말씀드릴 테니, 그때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요!”알고 보니 그녀는 이주원 쪽 친척이었다.그녀가 방을 나가자 나는 윤다은을 달래며 말했다.“저 사람 말이 맞아. 나는 이혼했으니 네 들러리로는 적합하지 않아.”나는 혹시라도 이씨 가문 사람들이 윤다은을 곤란하게 할까 봐 걱정되었다.윤다은은 고집스럽게 말했다.“나는 언니가 꼭 내 들러리를 서 줬으면 좋겠어요. 오늘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요!”나: “...”점심때쯤 이주원이 신부를 데리러 왔다. 이주원의 들러리들은 모두 같은 과 의사들이나 오랜 친구들이었는데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주원에게 들러리 중 한 명을 소개해 달라고 했지만 이주원은 나와 최희연에게 이미 남
담현아와 나는 호텔에서 근처 야시장까지 걸어갔고 배가 고파진 그녀는 꼬치구이를 먹자고 했다. 그녀가 이것저것 엄청 많이 시키는 걸 보자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둘이서 다 먹을 수 있겠어?”그녀는 등을 돌린 채 말했다.“희연 언니에게 전화해서 같이 먹자고 해요. 희연 언니는 술도 잘 마시니까 오늘 취할 때까지 마셔보자고요.”나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누군가는 술 한 잔에 취했던 것 같은데?”담현아는 투덜거렸다.“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나는 웃음을 참으며 휴대폰을 꺼내 최희연에게 카톡을 보냈다. 곧 그녀의 답장이 왔다.[미안. 유겸 씨가 왔어.]나: ...진유겸은 꽤 집착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최희연이 금운에 오자마자 바로 따라온 걸 보면 말이다.문득 나도 석지훈이 보고 싶어 졌다.그는 떠난 지 한참이 되었고 그동안 나는 그 사람이 너무 그리웠다.나는 휴대폰을 들고 석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잘 자요.]하지만 그는 답장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오빠, 자요?]잠시 후, 그의 답장이 왔다.[어?]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듯했다.그는 최소한의 안부 인사조차 없었다.나는 더 이상 그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담현아가 메뉴를 고르고 내 옆에 앉자 나는 그녀가 주문한 맥주를 보며 물었다.“취하지 마. 난 너 호텔까지 못 업고 가니까. 그럼 정재 씨를 불러야 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담현아는 겁도 없이 대답했다.“아저씨는 완전 신사예요.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진작 일어났겠죠! 그 사람은 보수적이라 그의 신혼 아내 외에는 누구에게도 선을 넘지 않을걸요. 그런 사람한테 뭘 하기를 바라겠어요?”나는 숨은 뜻을 알아채고 물었다.“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얘기 같은데?”담현아는 나를 흘겨보았다.“내가 언제요?”나는 진지하게 말했다.“너 지금 그런 뜻으로 말한 거잖아.”“수아 언니, 나이 들면 다 이렇게 생각이 구려지는 거예요?”나: “...”내가 늙었나?갑자기 좀 서운했다.
그는 두 사람의 표정 차이가 워낙 커서 분간할 수 있었다. 고정재는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고현성은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윤다은과 고정재는 강가를 따라 그의 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윤다은은 평소랑 좀 다른 느낌이었다.뭔가 겁먹고 참는 듯한 기색이었다.이주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때 윤다은의 긴장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오빠, 미안해. 이제야 결혼한다는 얘기를 해서. 난 그저... 미안해... 많이 보고 싶었어.”고정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어떤 위로를 담고 있었다.“다은아, 네가 결혼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었는데 분명 아름답고 행복할 것 같아.”“오빠, 난 수십 년 동안 오빠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심지어 수아 언니를 놓치게 만들었어... 미안해. 내 사랑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아. 사실 오래전부터 오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오빠, 난 이제 오빠를 놓았고 내 행복을 찾았어. 그러니 오빠도 날 축복해 줬으면 좋겠어.”그 말을 듣고 이주원은 마침내 윤다은이 마음속에 숨겨온 비밀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 행복은 진정한 행복일까?윤다은은 한 남자를 수십 년 동안 사랑했고 그를 따라 전 세계를 누볐다.하지만 그 남자는 그녀에게 마음이 없었다.이런 생각을 하니 이주원은 그녀가 안쓰러웠다.“다은아, 네 행복을 빌어.”고정재는 손을 들어 윤다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윤다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내가 성인이 된 후로 오빠는 더 이상 이렇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았어. 내가 그동안 오빠에게 짐이 되고 불편하게 했지?”고정재는 그녀를 불렀다.“다은아.”“오빠...”“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야.”윤다은은 고정재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고 연수아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다.그렇다, 그는 그녀를 가족으로 여겼다.담현아는 고정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유일한 여자였다.“오빠, 지금까지 날 지켜줘서 고마워.”고정재는 웃으며 말했다.“오빠는 평생 너를 지켜줄 거야.”
“그 사람은 누구야? 너한테 뭘 요구했어?”내가 다그쳐 묻자 윤다은은 어물거리며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담현아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는 다가와서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며 조용히 물었다.“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얼굴이 어두워진 윤다은을 보고 나는 그녀가 너무 난처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더는 캐묻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감돌았다.그러다가 갑자기 고현성이 떠올랐는데 그의 머리가 공백이 된 것을 생각하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야.”나는 화제를 바꾸려고 물었다.“정재 씨는 아직 안 왔어?”담현아는 담담하게 말했다.“저야 모르죠.”1년 시간이 지났어도 고정재에 대한 태도가 여전한 담현아를 보며 나는 그녀의 속마음이 궁금했다.내가 담현아의 머리를 톡톡 치자 그녀는 두 손으로 나의 허리를 감싸 안고 웃으며 말했다.“수아 언니, 저랑 내려가서 산책할래요?”담현아는 어리지만 눈치가 빨랐다. 나와 윤다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우리 둘을 갈라놓아 냉정함을 되찾으려는 것이다.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나는 그러자고 대답했다.담현아와 아래층에 내려오자마자 마침 호텔 문 앞에 주차하고 있는 고정재를 만났는데 그도 나와 담현아를 보고 멍해졌다.“나를 마중하러 온 거야?”담현아가 발끈해서 말했다.“아저씨는 망상이 심하네요.”이 말을 듣고 고정재는 부드럽게 웃었고 나도 웃으면서 설명했다.“우린 산책 중이에요.”“먼저 다은이 보러 갈게.”......고정재는 호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우람지고 곧은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담현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고정재는 내가 어렸을 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어. 너무 눈부셔서 탐욕이 생겼지만 빛은 여전히 빛이었을 뿐 난 다가갈 수 없었어...”오늘따라 금운시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였다. 담현아는 나의 팔을 잡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다가갈 수 없어요?”나는 담현아의 예쁘고 어린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빛은 너무 뜨거워서 사람은 그 빛에 다칠 수 있거든. 내가 그
하물며 그의 친척이나 친구들은 모두 평범했다... 내가 이렇게 경호원을 데리고 결혼식에 나타나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웠다.현정우는 기타 경호원은 대기시키고 그만 나를 따라다녔다.마침 내려와 보니 문준혁이 지인들과 이야기하고 있어 우리는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그는 내 곁으로 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다은 씨는 안전감이 부족하지만 또 독립적인 여자예요. 저는 왠지 다은 씨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나는 대뜸 그 말을 알아들었다.“다은이의 속마음을 물어보는 거죠?”“아마 연수아 씨는 알 것 같아서요.”문준혁이 말했다.문준혁은 잘 생겼고 외모로 보면 윤다은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윤다은을 배려했으며 태도도 비굴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괜찮아 보였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건 잘 모르겠지만 임신으로 인한 우울증이 아닐까요? 임산부라면 다 그럴 겁니다.”윤다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람은 고정재였다. 물론 이건 이전의 상태였고 지금은 잘 모른다.의사는 멍해졌다.“임신이요?”나는 미간을 찌푸렸다.“몰랐어요?”“죄송해요. 저도 방금 들었어요.”“아니. 남편과 아빠가 될 분이 어떻게...”“연수아 씨, 전 다은 씨를 만지지 않았어요.”나는 거의 도망하다시피 떠났고 방에 돌아와 윤다은에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도 몰랐다. 윤다은의 어른으로서, 또 그녀를 관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일은 꼭 물어봐야 했다.나는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있는 윤다은을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아이의 아빠가 누구야? 닥터 문을 아빠로 만들어줄 생각이었어?”윤다은은 나에게 진심을 알려주기 싫어 건성으로 대답했다.“수아 언니, 묻지 마세요. 제가 선생님에게 설명할게요.”나는 눈을 감고 말했다.“닥터 문은 호텔을 떠났어.”윤다은은 말이 없었다....오후 3시쯤, 최희연과 담현아가 도착했고 기타 세 들러리도 도착했는데 보아하니 문준혁은 결혼식을 계속할 계획인 것 같다.내가 윤다은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