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19화

Author: 동과
고현성과의 전화를 끊은 나는 선양 그룹 홈페이지로 들어가 공문을 발표했다.

“선양 그룹은 다른 회사에 인수인계될 예정입니다, 인수인계 수익은 전액 적십자회에 기부할 예정입니다. 백 년 동안 우리의 곁을 지켜온 선양과는 이게 마지막 인사일 것 같습니다. 선양, 고마웠고 잘 가 이제.”

선양의 일생을 담아 올린 글에 온라인에서는 바로 난리가 났고 그 댓글들이 거슬렸던 나는 바로 홈페이지를 나와버렸다.

저녁때쯤 되자 갑자기 연락 온 원태웅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훈이 형이 경찰한테 잡혀갔어.”

“장난치지 마.”

전에도 이런 거짓말로 나더러 오빠를 찾아가게 했던 원태웅이라 나는 당연히 믿지 않았는데 원태웅은 진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파브리 경유할 때 경찰한테 잡혀서 지금 감옥에 있어.”

“말도 안 돼요, 오빠가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윤아야, 누가 형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아.”

“그럼 어떡해요...”

원태웅의 말이 장난이 아니란 걸 눈치챈 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전에 이런 일이 생기면 해결은 늘 석지훈의 몫이었는데 지금은 석지훈이 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니 그를 도울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원태웅은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일단 핀란드 대사관 쪽에 연락해볼게, 형이 어쨌든 국적이 핀란드니까 거기서 나서주면 빠를 거야. 별일 없을 테니까 연락 기다리고 있어.”

그제야 나는 석지훈의 국적이 비아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쩐지 텅 빈 허허벌판 같은 국내의 별장과 달리 비아드의 별장은 화려하더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원태웅은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왔는데 별로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었다.

“비아드 쪽에서도 방법이 없대, 누가 일부러 움직이지 말라고 지시했나 봐. 파브리에서는 계속 아무 말도 안 하고 잡아두고만 있어.”

그때 나는 석지훈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가 혼자서도 일 처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진유겸에게 부탁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 순간 석지훈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주면서 석지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0화

    “네, 일단은 좀 기다려볼게요.”일을 너무 무모하게 처리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일단 원태웅의 연락을 기다려보기로 했다.새벽 3시쯤 되었을 때 원태웅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배후가 누군지 알려주었다.“누가 꾸민 짓인지 알아냈어.”“누군데요?”누가 감히 석지훈을 감옥에 넣을 생각을 했는지 나는 초조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었다.“진유겸.”“어떻게...”진유겸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까지 했던 나라서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진유겸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내가 당황스러워할 때 원태웅이 차분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유럽에서 지훈이 형이랑 이 정도로 맞붙을 수 있는 사람은 진유겸뿐이야. 몇 년 동안 둘 사이가 마냥 좋았던 건 아니라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동안 진유겸도 지훈이 형 능력이니까 서로 얼굴 붉힐 일은 하지 않은 거지. 이번에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그럼 어떡해요?”이대로 석지훈을 계속 감옥에 있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일단 변호사 말 들어봐야지.”원태웅은 한숨을 쉬며 나를 다독여주었다.“걱정 마, 네가 불안해한다고 해서 상황 나아지는 거 아니니까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어.”“뭘 기다려요?”“진유겸이 뭐 할지 지켜봐야지.”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 불안함은 가실 줄 모르고 커져가기만 했다.이튿날 원태웅이 변호사가 석지훈을 보지도 못해 그와의 거래도 물 건너갔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창문가에 앉아있던 나는 당장이라도 진유겸에게 연락해 석지훈을 건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하지만 진유겸도 유럽을 자주 오가는 석지훈처럼 공사다망한 사람이었고 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뼛속까지 자본주의인 사람들이었기에 내가 최희연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내 부탁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그들이 얻을 이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기에 나는 끝내 진유겸에게 부탁을 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그리고 석지훈도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1화

    “이 권력들은 언젠가는 한 분께 집중될 겁니다. 그때가 돼서 모든 게 제 자리를 찾았을 때 저는 비로소 제 소임을 다 한 거죠.”내가 물어보는 말에 석만호가 곧이곧대로 답하자 나는 점점 더 그를 믿게 되었다.하지만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긴 했다.“나는 석씨 집안 사람도 아닌데 이걸 왜 나한테 준 거죠? 내가 들고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려고요?”“아가씨는 대표님의 여자시고 또 회장님의 며느리시니까요. 저는 그저 회장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웃으며 답하는 석만호에 궁금증이 다 풀린 나는 이틀 뒤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그 서류를 들고 구청에 찾아갈 생각으로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고마워요.”“아가씨, 제가 구청에서 기다릴게요.”“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석만호와의 통화를 끝낸 뒤에도 석지훈 쪽에서 오는 연락은 없었다.한민수에게도 연락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여자 꼬시는 중이니까 방해하지 마요.]아직도 담현아와 함께 있는 건가 문득 궁금해졌지만 지금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나는 서둘러 임신 유지에 도움 된다는 약을 먹고 가만히 앉아있었다.이렇게 한가할 때면 자꾸만 석지훈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들었던 담담한 긍정의 대답이 떠올라 나를 괴롭게 하곤 했다.도대체 왜 아이를 원하지 않는지 몇백 번을 생각해봐도 나는 답을 얻어낼 수가 없었다.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흘러가서 석지훈이 갇힌 지 4일째 되는 날이 밝아오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서류를 들고 구청으로 향했다.구청에는 현대인의 복장과는 사뭇 다른 하얀 도포를 걸친 석만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분명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왜 굳이 여기서 기다린 건지 의아했지만 나를 그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그때 갑자기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나며 소리쳤다.“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십 미터쯤 떨어져 있는 거리에 나는 그가 석지훈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어떤 어머니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2화

    내 손에 들린 것 말고도 석만호는 다른 서류를 하나 더 준비해왔었는데 나는 그게 무엇인지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내가 들고 있던 서류만 제출한 뒤 밖으로 나왔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석만호가 나를 부르더니 또 다른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사인에는 누구보다 민감한 내가 서류를 자세히 훑어보려 했지만 언어가 달라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봉투에만 짤막하게 쓰인 한글에 내가 당황하자 석만호는 차분하게 일러주었다.“별로 중요한 서류는 아니니까 사인하세요. 사인만 하면 석 대표님 구할 수 있어요.”석지훈을 구하고 싶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뭔지도 모르는 서류에 사인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펜을 쥔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내 걱정과 고집을 보아 낸 석만호는 결국 사람을 불러 서류를 번역하게 했다.“운산 양도권입니다.”“운산이 뭔데요?”“운성에 있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인데 회장님이 젊었을 때 사둔 산입니다. 회장님한테는 큰 의미가 있는 산이라 꼭 아가씨께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왜 저한테 주는 거죠?”“대표님의 아내 되실 분이니까요.”아무 대가도 없는 선물은 받으며 안되는 것이었지만 그 산은 가치가 그리 높은 산이 아니었기에 하루빨리 석지훈을 구하고 싶었던 나는 결국 거기에 사인을 했다.그때는 그게 석지훈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결정일 줄은 미처 몰랐었다.사인을 마치고 이제 석지훈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구청 밖에서 석만호를 기다리고 있었다.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적은 거리에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그때 한 여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수아, 너 방금 무슨 서류에 사인했지?”“누구세요?”나에게 말을 건 이는 석지훈의 엄마였지만 나는 생모가 맞는지 묻고 싶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서류야 그거.”아주 급해 보이는 여자에 나는 사실대로 알려주었다.“운산 양도권이요.”그러자 여자는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네가 지훈이를 해칠 거라고 내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3화

    석만호는 공손한 태도로 내 말에 답했다.“지금의 석지훈 씨는 사모님이 핀란드에서 거둬들인 버려진 아이일 뿐입니다.”어머니가 아이를 낳지 못해서 후계자 자리가 비어있으니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다른 여자들을 집에 들였다는 얘기는 전에 석지훈이 나한테 해준 적이 있는 말들이었다.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머니가 자신을 낳았다고 했는데 낳은 게 아니라 입양된 거였다니, 그렇게 되면 나랑 석지훈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는 뜻이었다.그건 다행이었지만 버려진 아이라는 말은 참 슬픈 단어였다.그에 나는 일전에 노르웨이의 초라한 집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석지훈을 떠올렸다.거기가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하더니, 아마도 석지훈이 노르웨이에 간 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그럼 내 어머니는 누구일까.눈앞의 여자는 나에게 지나치게 매정했기에 나는 그가 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내가 곤혹스러워할 때 석만호가 대뜸 뒤돌아 그 여자를 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사모님이 석씨 집안 안주인이라서 저는 늘 사모님을 존경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가 사모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석만호는 손을 들어 여자의 어깨를 누르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석씨 집안이 혈통을 얼마나 중요시하는 집안인지 알면서 회장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석지훈 씨를 어떻게 석씨 집안 후계자 자리에 올려놓습니까? 사모님은 회장님의 마음을 저버리신 겁니다.”석만호의 말에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마음? 그 인간이 나한테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 그 인간이 사랑하는 건 그 사람 버리고 떠난 그 여자였어. 집에 다른 여자를 들이는 순간 나랑 그 사람 사이는 끝난 거였다고! 난 절대 그 사람 용서 안 해.”그 말을 들은 석만호는 미간을 찌푸렸고 나는 애써 들은 정보들을 조합하고 있었다.“그럼 내 엄마는 누구예요?”한참을 고민하다 던진 내 질문에는 여자가 화를 내며 답했다.“네 엄마는 여우 같은 년이었어, 네 아빠랑 너를 낳고 나서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4화

    석만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나는 다급히 그의 옷소매를 부여잡으며 말했다.“지훈 오빠는 건들지 마세요!”“아가씨, 이렇게 너그러우시면 안 돼요.”석만호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을수록 나는 초조해졌다.“나랑 오빠는 연인이에요, 내가 오빠 아이를 가졌다고요. 그런데 우리 중 누가 석씨 집안의 주인이 된다 한들 달라질 게 있겠어요? 지훈 오빠를 망치는 건 내 아이를 망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만 해요 석만호 씨. 이건 내가 가주로서 내리는 명령이에요.”나는 가슴이 찢겨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말아주세요, 무서워요... 지금 석씨 집안 재산을 가진 것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생각 못 했는데, 오빠가 나를 탓할까 봐 나 너무 무서워요...”석지훈이 석씨 집안 자식은 아니지만 그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입양된 것이기에 잘못이 없는 피해자였다.얼마 전에 나웨이에 간 걸 보면 자신의 신분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된 것 같은데 그래서 그때 그렇게 혼이 반쯤 나가 있었던 것 같다.자신의 어머니는 어머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던 석지훈의 말이 이제야 이해되는 것 같았다.“아가씨, 저는 회장님의 사람입니다.”석만호는 자신의 옷소매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떼어내며 차분하게 말했다.“어젯밤 제가 한 말 기억하시죠? 석씨 집안의 모든 권력이 한 사람 손에 집중되었을 때 제가 비로소 퇴직할 수 있다던 말. 가장 좋은 시기에 석지훈 씨를 완전히 무너뜨리라는 건 회장님이 가시기 전 저에게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입니다. 아가씨가 동의하시든 안 하시든 저는 무조건 그 명령에 따를 겁니다.”어젯밤 석만호가 했던 모든 말들은 다 나를 이곳으로 유인해 내 손으로 직접 서류를 내게 하기 위함이었다.알아서 다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굳이 내 손을 빌려 나와 석지훈이 척을 지도록 한 것이다.내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자 석만호가 다급히 날 잡아 왔지만 나는 그의 손을 쳐내며 의자에 앉았다.석만호는 여전히 그 유전자 검사 결과 보고서를 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5화

    석만호는 석지훈의 최측근들이 나를 오해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나와 석지훈의 사이가 완전히 끝날 수 있을 테니까.그가 바란 대로 내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원태웅은 믿어주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지금 기댈 곳은 진유겸뿐이라 서둘러 그에게 연락하려 했다.“진유겸 씨한테 지금 연락할게요.”진유겸이라면 석지훈을 꺼내줄 수 있을 테고 그가 자유로워진다면 석만호도 이 정도로 그를 괴롭히지는 못할 테니까 여러모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석지훈을 사지로 몰아넣은 게 진유겸인데 지금 이런 상황에 누구보다 기뻐할 그가 나를 도와줄 리가 없을 것 같아 나는 결국 전화를 걸지 못했다.“네가 진유겸을 알아?”“네. 알아요.”“그러니까 형을 가둔 게 진짜...”“나 아니라고요!”“이딴 회사 너나 가져!”나는 아니라고 해명을 했지만 내 말은 들을 생각도 없는 원태웅은 회사에 나를 혼자 남겨두고 그대로 나가버렸다.“...”12월 23일, 나는 마침내 핀란드로 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그가 스물 일곱 살 생일을 맞기전 석지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다들 나를 안 믿는다 해도 상관없었고 다들 나를 오해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그 다들에 석지훈만 포함되지 않으면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내가 핀란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9시라서 그의 생일까지는 고작 세 시간밖에 남지 않아 있었다.생일 선물을 챙겨 든 나는 바로 한민수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그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설마 그도 원태웅처럼 나를 오해한 걸까?눈 내리는 핀란드의 겨울 속에서 나는 그렇게 절망에 빠져버렸다.나와 석지훈 사이에 마치 큰 강이 생겨버린 것만 같은데 그 강을 만든 건 나지만 어떻게 해봐도 건너지지 않았다.연씨 집안의 힘을 잃자 아무런 권력도 없던 나는 이 외진 핀란드에서 석지훈의 위치를 알 길이 없었다.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진유겸에게 연락을 했다.“진유겸 씨랑 아직 연락해?”“응.”“나 좀 석지훈한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줘...”최희연은 내 말이 무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6화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핀란드의 겨울은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고 있을지라도 추위가 온몸을 관통하고 있었다.하지만 육신의 추위보다 더 괴로운 건 석지훈이 나를 오해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그를 볼 생각을 하니 죄책감이 앞서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때 최희연이 나에게 석지훈이 갇혀 있는 감옥의 주소를 보내오자 나는 바로 택시를 불러 그곳으로 향했다.감옥 입구에 섰을 때는 아까의 충동과 달리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서둘러 그를 보고 싶으면서도 그를 보는 게 두려웠다.내가 입구를 서성이자 교도소 안에서 사람이 하나 나오더니 내 얼굴에 대고 플래시를 비추며 영어로 물었다.“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나는 선물 박스를 꼭 안으며 말했다.“연수아라고 합니다.”“누굴 만나서 온 겁니까?”“석지훈 씨요.”“수감자가 면회를 거절합니다.”“...”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석지훈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교도관의 팔을 부여잡으며 말했다.“그럼 말이라도 전해주세요, 나 만나겠다고 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라고!”달러 한 뭉치를 건네주면서 말하자 교도관은 돈을 챙겨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나는 매서운 추위와 마음속에서 자꾸만 크기를 키워가는 불안함을 견디며 한 시간이 넘게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간 교도관은 나오지 않았고 석지훈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석지훈이 나를 외면하는 게 제일 무서웠는데 실제로 일어나버린 일에 나는 흘러가는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며 열두 시 정각이 됐을 때 혼자 중얼거렸다.“생일 축하해요 오빠.”나는 눈물을 매단 채 에르크 별장으로 향했고 더 이상 나는 그 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눈이 소복이 쌓인 대문 앞에 선물을 놓아두었다.“미안해요, 다 나 때문이에요.”선물을 내려놓은 나는 눈이 하얗게 뒤덮인 그곳을 떠나 바로 공항으로 향했고 가장 빠른 새벽 3시 비행기로 운성에 돌아왔다.운성에 도착하니 이미 8시가 다 된 시각이었지만 나는 혹시나 고현성이 나를 찾을까 봐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27화

    석지훈이 나를 어떻게 대하냐에 따라서 그들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었다.그가 나를 거절한다면 그들도 사건의 진상이 어떻든 똑같이 나를 거절하는 게 당연했기에 나는 억울하지만 그 일은 입에 올리지 않고 다시 물었다.“왜 전화한 거예요?”“지훈이 형 세력이 전 세계적으로 무너졌어, 석씨 집안뿐만 아니라 진유겸 그리고 다른 집안에서까지 이 기회에 형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사자 한 마리가 우물에 빠지니 이때다 싶어 들짐승, 날짐승, 초식 육식 가리지 않고 모든 동물들이 모여들어 그에게 돌을 던지는 꼴이었다.그건 어느 정도 예측한 일이었지만 지금 나는 석만호를 막을 힘도 없었고 석지훈이 이뤄놓은 것들을 지켜줄 힘 역시 없었다.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원태웅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형은 석씨 집안에서 나온 뒤 한씨 집안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겨우 살아남았어. 형이 사람을 죽인 것도 형의 의도가 아니었어. 그때 형이 유럽 쪽 마피아들이랑 일을 같이하고 있었는데 마피아들이 형이 어리다고 계속 괴롭혀왔었어. 형은 그걸 계속 참고만 있었는데 조직 보스가 그런 형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잡종이니 기생충이니 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싸우라고 칼을 쥐여줬지. 말이 싸우는 거지 그 보스는 사실 형을 죽이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그날 형이 온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결국 보스 목을 그어버린 거야. 그게 첫 번째 살인이었어.”나는 항상 차갑고 남에게 곁을 주지 않는 석지훈을 보며 도대체 어떤 과거를 살아오면 사람의 심장이 저렇게 얼어붙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하지만 석지훈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자신의 과거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드디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는데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아파왔다.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그 느낌이 점점 내 목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아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원태웅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지훈이 형이 그렇게 살아남아서 유럽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온 건데, 석씨 집안에 가

Latest chapter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7화

    최욱현은 아이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였고 현정우가 입고 있는 검은색 군복에도 관심을 보였다.“우리 옷이랑 다르네. 여기 허리띠가 있네.”나: “...”나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현정우의 허리띠를 잡아당기는 것을 보았지만 현정우는 그를 무시했다.최욱현은 재미없다는 듯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고 대신 나에게 물었다.“석씨 가문 가주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 무기력해? 아까 왜 그 이씨 가문 사람들을 그냥 뒀어?”나는 설명했다.“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니 권세로 억누르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다은이 시댁 될 사람들인데 예의는 지켜야지. 정재 씨도 의사 선생님 체면을 생각해서 고급 차로 데려오지 않고 검소하게 했는데 네가 나타나서 다 망쳐놨잖아! 이제 이씨 가문 사람들과 의사 선생님 동료, 친구들이 다 다은이가 돈이 많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앞으로 그녀를 귀찮게 할 일도 많아지겠지. 그 사람들 눈에 다은이는 졸부로 보일 거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돈은 다은이에게는 껌값일 테니 한 번 도와주고 두 번 도와주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뒷말이 나올게 뻔해.”최욱현은 내 옆에 앉아 말했다.“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구나. 네 말이 맞아. 앞으로 돈이 필요하면 신부를 찾을 거야. 신부는 시댁 식구들이나 친구들이니 분명 도와 줄것이고 그 사람들은 신부가 만만하니까 돈 뜯어낼 궁리만 하겠지.갈수록 더 심하게 말이야! 하지만 너는 한 사람을 간과했어. 바로 신랑이야. 신랑이 자기 쪽 사람들이 신부를 괴롭히는 걸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까? 게다가 오늘 일을 크게 벌인 건 앞으로의 많은 문제를 예방하는 거야. 아무도 신부를 얕보지 않을 테니, 자연스럽게 아무도 신부를 괴롭히지 않겠지.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의사의 동료 중에 신부를 괴롭혔던 사람도 있었어.”“나는 그런 일은 잘 몰라.”내가 말했다.나는 윤다은의 성격상 스스로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여러 사람들 속에서 혼자 나를 구해준 적도 있었으니까.“됐다, 그 얘긴 그만하자.”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6화

    최욱현이 F국을 언급하자 F국에 정착한 나의 친어머니 안혜인이 떠올랐다. 고귀한 공작부인 말이다.나는 패딩을 여미며 거절했다.“시간 없어.”최욱현은 씩 웃으며 말했다.“네 엄마가 너 보자고 하셔. 지금 F국 성에서 기다리고 있어.”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우리 엄마 알아?”최욱현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내가 눈을 부릅뜨자 자기 머리 쓱 만지면서 말했다.“알지. 옛날부터 알았어. 너 지난번에 입은 드레스도 네 엄마가 보내준 거야.”“엄마가 그런 식으로 보내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야. 지난번 일 때문에 솔직히 너 못 믿겠어.”최욱현이 되물었다.“내가 네 엄마 아는 거 못 믿는 거야?”나는 아무 말 없이 헬리콥터 쪽으로 걸어갔다. 최욱현은 내 뒤를 따라오며 설명했다.“진짜야. 나 네 엄마 알아. 우리 삼촌 와이프거든. 어릴 때 네 엄마랑 몇 년 같이 살았어. 비록 숙모지만 난 어머니라고 불렀지.”나는 걸음을 멈췄다. 최욱현도 예전에 자기 엄마가 도라지 꽃을 좋아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도라지꽃을 좋아하셨는데.그렇지 않고서야 석 씨 저택 아래의 운산 기슭에 그렇게 많은 도라지꽃을 심어 놓았을 리가 없었다. 최욱현의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내가 동요하는 것을 보고 그는 휴대폰을 꺼내 곧바로 번호를 누르고 내게 건넸다.“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 봐.”나: “누구한테 전화하는 거야?”최욱현은 대답 안 하고 씩 웃으면서 나를 봤다.나는 휴대폰을 귀에 댔다. 수화기 너머에서 유난히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야, 나야.”나는 미간을 찌푸렸다.“누구...”묻자마자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최욱현이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수아야, 나 안혜인이야.”그녀는 감히 자신을 나의 엄마라고 칭하지 못했다.“네. 욱현 씨가 건 거예요.”나의 어조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매우 차분했다.“수아야, 널 만나고 싶구나.”비록 그녀는 나를 버렸지만 나에게 생명을 준 사람이었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5화

    지금의 최욱현은 마치 오지랖 넓은 할아버지 같았다.나는 다시 물었다.“금운에는 어떻게 온 거야?”“아까 말했잖아. 네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그가 말했다.나는 차갑게 말했다.“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 아니잖아.”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우리가 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나는 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잖아? 눈보라 속에서 너를 업고 몇 시간이나 걸었고.”나는 솔직하게 말했다.“지훈 씨가 네가 꾸민 일이라고 했어.”“진실을 알고 있었네.”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나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우리는 친구 아니야. 얼른 가.”최욱현은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흠칫 놀라 그의 손을 쳐냈다.“만지지 마.”“그냥 쓰다듬는 것뿐인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그는 어린아이처럼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차마 미워할 수 없었다.석지훈이 그에게 백혈병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병으로 나와 너무나도 닮았다.우리 둘은 다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허락 없이 만지는 건 성추행이야.”내 말을 듣자 그는 순순히 말했다.“그럼 앞으로 허락을 받고 터치할게.”12월의 날씨에 들러리 드레스만 입고 있으니 너무 추웠다. 담현아가 패딩을 가져다주자 나는 패딩을 받아 들고 웃으며 말했다“나는 이따 핀란드에 갈 거야. 너는 정재 씨랑 같이 동성으로 돌아가.”그러자 담현아가 말했다.“나랑 그 사람은 사는 도시가 다르잖아요.”나는 작게 말했다.“어쩌면 가는 길에 데려다줄 수도 있잖아.”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굳이 길을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담현아는 입술을 깨물며 한참 망설이다가 나에게 물었다.“언니, 아저씨에 대한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많이 망설여져요...”나는 차분히 물었다.“뭐가 망설여지는데?”내 옆에는 최욱현이 서 있었지만 담현아는 솔직하게 말했다.“내 인생은 이제 막 시작했잖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4화

    12월 금운의 날씨는 포근했고 부드러운 햇살이 쫙 쏟아져 짙은 색 군용 점퍼를 입은 남자에게 따스하게 내려앉았다.한 달 만에 만났지만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그랬다. 그는 아름다웠다.최현욱, 아니지. 그의 이름은 최욱현이었다.최욱현은 사람을 홀릴만한 미모를 갖고 있었다.선글라스를 손에 든 채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그의 긴 부츠는 반짝반짝 빛났는데 마치 인간 세상에 내려온 요정 같았다.이씨 가문 친척들과 하객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라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었고 고급 차 수십 대가 한꺼번에 있는 모습을 본 적도 거의 없었다. 모두 경악과 부러움에 휩싸였다.이주원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구신지?”최욱현은 여전히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다만 화려한 분홍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나는 그가 왜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최욱현은 우리 앞에 와서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신부 친구입니다. 원래 신부 데리러 오려고 했는데, 좀 늦어져서 아쉽네요. 이 고급 차 수십 대를 활용하지 못했으니 사과의 의미로 신부에게 선물할게요. 다은 씨, 어때요?”최욱현과 윤다은이 아는 사이라고?윤다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니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혹시 도와주러 온 건가?윤다은은 재치 있게 대답했다.“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차는 뭐 하러 줘요? 나도 살 수 있는데.”신부의 당당한 말에 이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최욱현은 웃으며 물었다.“다들 왜 입구에 서 계시는 거죠?”윤다은은 시무룩하게 말했다.“수아 언니가 이혼했다고 내 들러리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그러자 최욱현은 나를 보며 물었다.“수아 씨는 어떻게 생각해?”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최욱현은 다시 이씨 가문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 거죠?”이씨 가문 사람들도 멍해졌다.“네?”최욱현은 허리에 손을 얹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날 비꼬는 척하며 말했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3화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고향에서 부랴부랴 달려오신 윤다은의 어머니는 나를 보고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수아야.”나는 정중하게 인사했다.“아주머니.”그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맙다.”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때 윤다은도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었다.방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인터넷에서 화제였던 그 연수아 맞죠? 이혼한 사람이 어떻게 다은이의 들러리를 설 수 있죠?”맞다. 이혼한 내가 어떻게 들러리를 설 수 있겠는가?사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윤다은도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초대했고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이 이 사실을 지적하다니.윤다은의 결혼식이었기에 나는 그 사람과 논쟁하기 싫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윤다은은 내가 억울한 거 같았는지 립스틱 내려놓고 정색하면서 말했다.“수아 언니가 이혼한 건 맞지만, 지금은 미혼이에요. 왜 들러리를 설 수 없다는 거죠?”그 여자는 고집스럽게 말했다.“불길해요.”하지만 윤다은은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길하다고 하면 길한 거예요.”“집안이 좋다고 우리 이씨 가문을 무시하지 마세요. 작은어머니께 말씀드릴 테니, 그때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요!”알고 보니 그녀는 이주원 쪽 친척이었다.그녀가 방을 나가자 나는 윤다은을 달래며 말했다.“저 사람 말이 맞아. 나는 이혼했으니 네 들러리로는 적합하지 않아.”나는 혹시라도 이씨 가문 사람들이 윤다은을 곤란하게 할까 봐 걱정되었다.윤다은은 고집스럽게 말했다.“나는 언니가 꼭 내 들러리를 서 줬으면 좋겠어요. 오늘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요!”나: “...”점심때쯤 이주원이 신부를 데리러 왔다. 이주원의 들러리들은 모두 같은 과 의사들이나 오랜 친구들이었는데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주원에게 들러리 중 한 명을 소개해 달라고 했지만 이주원은 나와 최희연에게 이미 남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2화

    담현아와 나는 호텔에서 근처 야시장까지 걸어갔고 배가 고파진 그녀는 꼬치구이를 먹자고 했다. 그녀가 이것저것 엄청 많이 시키는 걸 보자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둘이서 다 먹을 수 있겠어?”그녀는 등을 돌린 채 말했다.“희연 언니에게 전화해서 같이 먹자고 해요. 희연 언니는 술도 잘 마시니까 오늘 취할 때까지 마셔보자고요.”나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누군가는 술 한 잔에 취했던 것 같은데?”담현아는 투덜거렸다.“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나는 웃음을 참으며 휴대폰을 꺼내 최희연에게 카톡을 보냈다. 곧 그녀의 답장이 왔다.[미안. 유겸 씨가 왔어.]나: ...진유겸은 꽤 집착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최희연이 금운에 오자마자 바로 따라온 걸 보면 말이다.문득 나도 석지훈이 보고 싶어 졌다.그는 떠난 지 한참이 되었고 그동안 나는 그 사람이 너무 그리웠다.나는 휴대폰을 들고 석지훈에게 문자를 보냈다.[잘 자요.]하지만 그는 답장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오빠, 자요?]잠시 후, 그의 답장이 왔다.[어?]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듯했다.그는 최소한의 안부 인사조차 없었다.나는 더 이상 그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담현아가 메뉴를 고르고 내 옆에 앉자 나는 그녀가 주문한 맥주를 보며 물었다.“취하지 마. 난 너 호텔까지 못 업고 가니까. 그럼 정재 씨를 불러야 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담현아는 겁도 없이 대답했다.“아저씨는 완전 신사예요.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진작 일어났겠죠! 그 사람은 보수적이라 그의 신혼 아내 외에는 누구에게도 선을 넘지 않을걸요. 그런 사람한테 뭘 하기를 바라겠어요?”나는 숨은 뜻을 알아채고 물었다.“무슨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얘기 같은데?”담현아는 나를 흘겨보았다.“내가 언제요?”나는 진지하게 말했다.“너 지금 그런 뜻으로 말한 거잖아.”“수아 언니, 나이 들면 다 이렇게 생각이 구려지는 거예요?”나: “...”내가 늙었나?갑자기 좀 서운했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1화

    그는 두 사람의 표정 차이가 워낙 커서 분간할 수 있었다. 고정재는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고현성은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윤다은과 고정재는 강가를 따라 그의 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윤다은은 평소랑 좀 다른 느낌이었다.뭔가 겁먹고 참는 듯한 기색이었다.이주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때 윤다은의 긴장한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오빠, 미안해. 이제야 결혼한다는 얘기를 해서. 난 그저... 미안해... 많이 보고 싶었어.”고정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어떤 위로를 담고 있었다.“다은아, 네가 결혼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었는데 분명 아름답고 행복할 것 같아.”“오빠, 난 수십 년 동안 오빠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심지어 수아 언니를 놓치게 만들었어... 미안해. 내 사랑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아. 사실 오래전부터 오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어. 오빠, 난 이제 오빠를 놓았고 내 행복을 찾았어. 그러니 오빠도 날 축복해 줬으면 좋겠어.”그 말을 듣고 이주원은 마침내 윤다은이 마음속에 숨겨온 비밀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 행복은 진정한 행복일까?윤다은은 한 남자를 수십 년 동안 사랑했고 그를 따라 전 세계를 누볐다.하지만 그 남자는 그녀에게 마음이 없었다.이런 생각을 하니 이주원은 그녀가 안쓰러웠다.“다은아, 네 행복을 빌어.”고정재는 손을 들어 윤다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윤다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내가 성인이 된 후로 오빠는 더 이상 이렇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았어. 내가 그동안 오빠에게 짐이 되고 불편하게 했지?”고정재는 그녀를 불렀다.“다은아.”“오빠...”“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야.”윤다은은 고정재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고 연수아는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다.그렇다, 그는 그녀를 가족으로 여겼다.담현아는 고정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유일한 여자였다.“오빠, 지금까지 날 지켜줘서 고마워.”고정재는 웃으며 말했다.“오빠는 평생 너를 지켜줄 거야.”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40화

    “그 사람은 누구야? 너한테 뭘 요구했어?”내가 다그쳐 묻자 윤다은은 어물거리며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담현아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는 다가와서 머리를 나의 어깨에 기대며 조용히 물었다.“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얼굴이 어두워진 윤다은을 보고 나는 그녀가 너무 난처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더는 캐묻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감돌았다.그러다가 갑자기 고현성이 떠올랐는데 그의 머리가 공백이 된 것을 생각하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아무것도 아니야.”나는 화제를 바꾸려고 물었다.“정재 씨는 아직 안 왔어?”담현아는 담담하게 말했다.“저야 모르죠.”1년 시간이 지났어도 고정재에 대한 태도가 여전한 담현아를 보며 나는 그녀의 속마음이 궁금했다.내가 담현아의 머리를 톡톡 치자 그녀는 두 손으로 나의 허리를 감싸 안고 웃으며 말했다.“수아 언니, 저랑 내려가서 산책할래요?”담현아는 어리지만 눈치가 빨랐다. 나와 윤다은 사이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우리 둘을 갈라놓아 냉정함을 되찾으려는 것이다.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나는 그러자고 대답했다.담현아와 아래층에 내려오자마자 마침 호텔 문 앞에 주차하고 있는 고정재를 만났는데 그도 나와 담현아를 보고 멍해졌다.“나를 마중하러 온 거야?”담현아가 발끈해서 말했다.“아저씨는 망상이 심하네요.”이 말을 듣고 고정재는 부드럽게 웃었고 나도 웃으면서 설명했다.“우린 산책 중이에요.”“먼저 다은이 보러 갈게.”......고정재는 호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우람지고 곧은 뒷모습을 보며 나는 담현아에게 부드럽게 말했다.“고정재는 내가 어렸을 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어. 너무 눈부셔서 탐욕이 생겼지만 빛은 여전히 빛이었을 뿐 난 다가갈 수 없었어...”오늘따라 금운시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였다. 담현아는 나의 팔을 잡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다가갈 수 없어요?”나는 담현아의 예쁘고 어린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빛은 너무 뜨거워서 사람은 그 빛에 다칠 수 있거든. 내가 그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39화

    하물며 그의 친척이나 친구들은 모두 평범했다... 내가 이렇게 경호원을 데리고 결혼식에 나타나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웠다.현정우는 기타 경호원은 대기시키고 그만 나를 따라다녔다.마침 내려와 보니 문준혁이 지인들과 이야기하고 있어 우리는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그는 내 곁으로 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다은 씨는 안전감이 부족하지만 또 독립적인 여자예요. 저는 왠지 다은 씨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나는 대뜸 그 말을 알아들었다.“다은이의 속마음을 물어보는 거죠?”“아마 연수아 씨는 알 것 같아서요.”문준혁이 말했다.문준혁은 잘 생겼고 외모로 보면 윤다은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윤다은을 배려했으며 태도도 비굴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괜찮아 보였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건 잘 모르겠지만 임신으로 인한 우울증이 아닐까요? 임산부라면 다 그럴 겁니다.”윤다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사람은 고정재였다. 물론 이건 이전의 상태였고 지금은 잘 모른다.의사는 멍해졌다.“임신이요?”나는 미간을 찌푸렸다.“몰랐어요?”“죄송해요. 저도 방금 들었어요.”“아니. 남편과 아빠가 될 분이 어떻게...”“연수아 씨, 전 다은 씨를 만지지 않았어요.”나는 거의 도망하다시피 떠났고 방에 돌아와 윤다은에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도 몰랐다. 윤다은의 어른으로서, 또 그녀를 관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일은 꼭 물어봐야 했다.나는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있는 윤다은을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아이의 아빠가 누구야? 닥터 문을 아빠로 만들어줄 생각이었어?”윤다은은 나에게 진심을 알려주기 싫어 건성으로 대답했다.“수아 언니, 묻지 마세요. 제가 선생님에게 설명할게요.”나는 눈을 감고 말했다.“닥터 문은 호텔을 떠났어.”윤다은은 말이 없었다....오후 3시쯤, 최희연과 담현아가 도착했고 기타 세 들러리도 도착했는데 보아하니 문준혁은 결혼식을 계속할 계획인 것 같다.내가 윤다은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