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키는 대로 둘러댔다.“어젯밤에 일이 있어서요...”“거짓말하지 마. 내가 바보인 줄 알아?”원태웅은 죽어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넌 꼭 형이랑 잤어.”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와 말하는 것이 후회해서 그를 째려보면서 경고하였다.“계속 이러면 오빠에게 이를 거예요.”“쯧쯧. 난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나는 더 이상 원태웅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하였다.“오빠는 왜 상주시에 가신대요?”“형의 계획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원태웅은 나에게 되물은 뒤 일어서서 물을 한 잔 따르면서 탄식하였다.“형은 무슨 일을 해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아. 독고다이같아.”원태웅은 얼음물을 반 잔 마신 후 웃으면서 말했다.“가자. 형이 아침에 널 오피스텔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라고 했거든.”이에 나는 말하였다.“잠깐만요. 옷 갈아입고 올 게요.”나는 위에 올라가서 블루 원피스로 갈아입고 내려오는 도중에 갑자기 송이연의 전화를 받았다.그녀는 나에게 전화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했을 것이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녀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 씨, 저 너무 무서워요... 어서 병원에 와서 같이 있어 주세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요.”그래서 나는 급히 원태웅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송이연은 수술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그리고 뜻밖에도 수술실 앞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오혜원을 보았다.나는 놀라서 물었다.“넌 왜 여기에 있어?”오혜원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떠나기 전에 송이연 씨를 보고 싶었어.”나는 급히 그녀를 지나서 간호사에게 수술실 안의 상황을 물었더니 간호사는 설명해 주었다.“환자분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바람에 출혈을 많이 하게 되어 임산부와 아이는 모두 위험합니다.”어떻게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수가 있지?나는 얼른 여기에 나타나지 말아야 했을 오혜원을 바라보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내가 한 것은 아니야.
원태웅의 말에 나는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오혜원이 보육원을 떠날 때 신장이 두 개였다면 나중에 신장이 하나만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머릿속에 문득 대담한 추측이 떠올랐다.나는 원태웅에게 계속 묻고 싶었지만 간호사가 수술실로 들어가자고 재촉해서 호기심을 누르고 간호사를 따라서 수술실로 들어갔다.간호사는 안에 피투성이 된 장면을 보지 못하게 하였고 나를 송이연의 옆에 앉혀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면서 가르쳐 주었다.“환자분의 정서를 최대한 위로해 주세요. 잠들지 못하게 하고 평소에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송이연의 얼굴은 땀투성이 되었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녀는 흐트러진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 물었다.“제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수아 씨예요?”나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맞아요.”“오혜원이 저의 뒤꿈치를 밟아서 제가 똑바로 서지 못해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예요... 수아 씨, 제 아이는 괜찮아요?”나는 아이가 괜찮은지 몰랐다. 지금 송이연이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나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그녀를 위로했다.“방금 의사 선생님께 물었는데 아이는 살 수 있대요. 이연 씨가 버티기만 하면 돼요. 이연 씨, 의사 선생님이 딸이라고 하셨어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이는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송이연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다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거짓말을 하였다.“거짓말이 아니에요. 아이가 곧 나올 거예요. 이연 씨가 잘 버티기만 하면 아이는 꼭 무사할 거예요.”“네, 수아 씨를 믿을게요.”이 말을 하고 나서 송이연은 기절하였다. 나는 다급히 의사를 불렀고 간호사는 나를 데리고 수술실을 떠났다.수술은 모두 열세 시간이나 진행하였다. 저녁 9시9분에 아이가 태어났으나 송이연은 위독한 상황에 빠졌고 의사는 계속 응급처치를 진행하였다.11시가 되어서야 그녀의 활력징후가 안정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는 미숙아여서 ICU로 실려 갔다.지금 아이는
원태웅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그땐 내가 어려서 돈 쓰기가 불편했거든.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몇천만 원을 가져가서 기억에 남은 것 같아.”나는 속으로 많이 놀라워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분노가 더 많았다.나는 황급히 강 비서에게 전화해서 당시 연씨 가문을 떠난 집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그는 틀림없이 일부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집사가 내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 주기를 기대했다.나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말하였다.“셋째 오빠, 오혜원은 너무 가식적이고 사람을 자주 괴롭혀요! 저와 이연 씨가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모두 걔 때문이에요. 하지만 걔는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고 여기까지 와서 이연 씨를 괴롭혔어요. 오늘 이연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정말 배은망덕한 인간이에요!”오혜원은 자신의 체내에 있는 신장이 누구의 것인지 알면서도 어떻게 송이연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지?송이연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왜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지?나는 원태웅을 밀치고 다급히 아래로 내려가서 오혜원을 찾았다. 그녀는 이미 병원을 떠났다. 내가 원태웅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내가 틀림없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도망친 것이었다.나는 당황한 나머지 바로 병원을 나와서 그녀를 찾아 나섰다.그녀는 마침 도로 옆에 있었다. 바람이 불어서 가냘픈 그녀는 바로 쓰러질 것 같았다.그녀를 질책하려는 말이 갑자기 목에 걸렸다.어쨌든 그녀도 불쌍한 사람이었다.그러나 불쌍한 사람은 반드시 미운 데가 있을 것이다.오혜원은 위장을 너무 잘 해서 모든 사람을 속였다. 그녀가 운성시로 돌아온 후부터 지금까지 한 마디의 진담도 없었다.아니다. 진담 한 마디를 한 적이 있었다.그녀는 내 체내에 있는 신장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었다.나는 그냥 그녀를 놔주고 강 비서에게 이틀 후에 그녀를 스위스로 보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녀를
나는 내 몸 안에 있는 신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가 아는 사람인지 늘 궁금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거짓말쟁이인 오혜원을 믿지 않을 것이다.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였다.“필요 없어.”그러고 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로 말했다.“누구이든 상관없어. 지금 내게 있어서 네가 골칫덩어리야. 네가 이곳을 떠나야 나와 시혁에게 좋아.”오혜원이 이곳에 남으면 분명 다른 사고를 칠 것이다. 광풍을 맞으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가냘픈 몸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를 설득했다.“혜원아, 너도 말했잖아.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넌 운성시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 병세가 안정됐으면 스위스로 돌아가!”이에 오혜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불쌍하게 말했다.“싫어. 아직 미련이 남아서 떠나지 못해.”나는 쭈그리고 앉아 맑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누구에게 미련이 남은 거야?”그녀는 줄곧 고개만 가로저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정말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가 거짓말하고 있는 걸 알기에 동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녀가 연시혁에게 미련이 남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나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시혁이가 널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넌 왜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다치게 했어? 그리고 우리 연씨 가문이 너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고현성에게 유서정과 결혼하라고 강요한 거지? 넌 여러 커플을 헤어지게 했어. 네 마음은 철판으로 만든 거니? 너에게 아무리 잘 대해줘도 녹일 수 없는 거야?”오혜원은 고집스럽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냥 울면서 내가 그녀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나는 이런 그녀를 볼수록 답답해서 미간을 찌푸리면서 강 비서에게 전화했다.전화가 연결되자 나는 지시를 내렸다.“오혜원이 송이연을 계단에서 밀어내서 아이를 조산하게 하였고 위독한 상황에 빠지게 했어요.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변호사를 찾아서 인도하게 하세요...”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혜원은 내 다리를 안고 울면서 살려달라고 구걸하였다.나는 한순간에
나는 병원에 잠깐 있다가 원태웅과 같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밖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태웅은 수트를 벗어 머리에 뒤집어쓰고 재빨리 자신의 차를 찾으러 달려갔다.집에 도착하니 벌써 새벽 3시였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석지훈은 하루 종일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심지어 문자 한 통조차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았다. 예전에 그와 사귀지 않았을 때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유달리 걱정되었다.그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나는 샤워하고 나서 얇은 잠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서 연예계 메인 뉴스를 둘러보았는데 요새 이슈 거리가 없었다. 소파에 누워서 바깥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벨소리에 깨어났다.나는 얼떨결에 전화를 귀에 대고 소리쳤다.“오빠!”“그래. 문 열어.”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잠겨 있었다.나는 놀라서 물었다.“어디세요?”“말 듣고 문 열어줘.”그는 두 번이나 문을 열어달라고 말하였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오피스텔의 문을 열었으나 문 앞에서 석지훈을 보지 못했다. 문밖으로 나가서 보니 로비 끝에 뒷모습이 매우 외로워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고 눈을 내리깔고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그의 온몸이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의 팔을 비집고 머리를 내밀어 보니 건물 밖에 어떤 귀부인이 빗속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검푸른 치파오를 입었고 꽃무늬 접이식 우산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머리를 들고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그녀의 시선이 정확히 어디에 두는지 모르지만 석지훈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석지훈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나는 석지훈의 허리를 꽉 끌어안자 석지훈이 비로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나를 바라보았다. 보기 드물게 그의 이마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고 멍한 모습으로 나를 불렀다.“아가야...”나는 남자의 의기소침한 정서를 느낀 것 같았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침대에 누웠고 석지훈은 욕실로 들어갔다.그의 샤워 시간이 너무 길어서 나올 때 나는 거의 잠이 들 뻔했다. 그가 내 허리를 껴안자 나는 비로소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나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그의 단단한 가슴에 묻었다. 피곤한 목소리로 물었다.“어제 어디에 갔어요?”그는 차가운 말투로 대답하였다.“상주시.”지금 이런 차가운 말투로 말하다니. 나는 입을 벌리고 그의 상처를 깨물었다.석지훈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비를 맞고 샤워하였다. 그는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내가 그를 깨무는 행위를 저지하지 않았고 아프다고 끙끙거리지도 않았다. 정말 참을성이 많은 남자였다.흥미를 잃은 나는 입을 떼고 그의 몸에 난 상처를 보았다. 그가 욕실에서 상처를 치료한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살살 그의 상처를 만지면서 가슴이 아팠다.“안 아파요?”그는 정말 아프지 않은 듯 말하였다.“안 아파.”“거짓말. 다쳤는데 어떻게 안 아파요?”석지훈은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아프지 않아. 예전에 이보다 더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어.”석지훈은 처음으로 ‘예전’이란 단어를 말하였다...나는 석지훈의 ‘예전’ 모습이 궁금했다. 나는 머리로 그의 날카로운 턱을 비벼대고 환심을 사려고 그의 쇄골에 뽀뽀하였다.“오빠의 예전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요?”석지훈은 워낙 말수가 적고 자신의 과거를 다른 사람과 쉽게 공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예전처럼 나의 질문을 무시할 줄 알았는데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순탄하지 않았어. 이후에 시간이 있으면 얘기해 줄게.”지금 시간이 있잖아!나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 그는 나에게 그의 과거사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눈치 있게 더 이상 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어젯밤에 왜 그렇게 열정적이었어요? 오빠답지 않게...”석지훈은 매우 피곤한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더 이상 내 질문에 대꾸하지 않았다.나는 섭섭해서 그
귀부인의 나이를 보면 나의 연적은 절대 아니었다.나는 병원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석지훈도 줄곧 연락이 없어서 갑자기 짜증이 났다.오피스텔로 돌아왔을 때 이미 저녁이 되었다. 운성시는 여전히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석지훈은 긴 창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위치에서 내가 단지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인기척을 듣자 그는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나는 냉담하게 그를 힐끗 쳐다본 다음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잠깐 누워있었는데 그는 문을 열었다.그의 머리는 거의 문틀에 닿았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물었다.“나한테 화났어?”그는 내가 화가 난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가식적으로 말했다.“아니에요.”“넌 지금 화가 났어.”그의 목소리는 아주 단호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어젯밤에 건물 밖에 있는 여자는 누구예요?”석지훈은 내 말을 듣고 한순간 묵묵히 있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차갑게 보여서 답을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하였다.“내 어머니이셔.”그는 냉혹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사실 그 전에 나는 석씨 가문의 여자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왜냐하면 치파오를 입은 모습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정말 사실일 줄은 몰랐다.“어제 상주시에 갔다면서요?”나는 물었다.그러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날 의심하는 거야?”석지훈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는 잠자코 있다가 냉랭하게 해석했다.“어젯밤에 운성시에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갈라진 후 계속 내 뒤를 밟을 줄은 몰랐어.”석지훈은 중간에 말을 잠시 멈췄는데 그사이에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그럼 x약은 도대체 누가 먹여준 거지?그를 노리는 자는 도대체 누구냐고?!나는 궁금해 죽을 것 같았다. 석지훈이 내 궁금증을 풀어 주기를 기대했다.하지만 그는 해명하고 싶을 생각은 없었다.내가 먼저 입을 열지 않는
나는 석지훈에게서 귀여움과 안전감을 얻을 수 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인제야 원래 감정에 대해 참을성이 있었던 내가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반응해 주기를 절박하게 갈망한다는 것을 알았다.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남자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석지훈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예전에 내가 고현성을 따라다니는 것과 뭐가 다른가?나는 예전에 고현성과 결혼해서 그 사람을 가졌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다.지금 나는 석지훈을 가졌지만 그는 예전처럼 냉담하게 대해주었다.석지훈은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로 차갑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집요하게 석지훈에게 사귀자고 요구하지 말아야 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나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결국은 나의 모든 자존심을 걸고 그가 날 사랑하는지를 묻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갑자기 차분해졌고 기쁘거나 억울한 감정이 없었다. 내가 자업자득한 것이 아닌가?나는 가식적으로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오늘 출근 안 했어요?”내가 조용히 묻는 것을 보자 석지훈은 눈빛이 번쩍거렸다.“이따가 본가로 돌아갈 거야.”그가 말한 본가는 운성시와 동성시 사이에 있는 대저택일 것이다.나는 알았다고 건성건성 대답하였는데 그는 같이 가자고 하였다.지금 나는 어떻게 그를 마주 봐야 할지 몰랐고 이 숨이 막히는 공간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그래서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거절하였다.“저는 이따가 일이 있어서 회사로 가야 해요.”석지훈은 묵묵히 있다가 한참 후에야 방에서 나갔다.나는 일어나서 창문 밖으로 바라보니 윤 비서는 이미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수트 차림을 한 석지훈이 나타났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윤 비서를 향해 걸어갔다. 차에 타기 전에 그는 살짝 곁눈질로 내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나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그
담현아는 지난번 일 때문에 계속 앙금을 품고 있었는데 이제 주민솔이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하니 순순히 넘어갈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녀는 나에게 카페에서 30분 동안 기다리라고 했다.30분은 금방 지나갔다. 검은 라이더 재킷을 걸친 담현아가 까만 머리를 땋은 채 캐리어를 끌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겨우 끝났어요!”나는 웃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힘들어?”“일찍 들어오려고 며칠 밤샜어요. 일단 카페에서 좀 자고 있을게요. 이따가 7시에 깨워줘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2층에 방 있어.”고양이 카페 2층은 며칠 전 내가 임대해 놓은 것이었다.담현아는 짐을 1층에 두고 2층으로 올라가 잠을 잤고 나는 그녀의 여행 가방을 끌고 그녀를 따라 올라가 방에 짐을 놓아주었다.내려와 보니 예지한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사장님 가게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자주 와요?”이상한 사람?어디가?그냥 다 그녀가 아는 사람일 뿐이지.나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며 말했다.“들켰네요!”그것도 내가 실수로 들키게 한 것이었다.이 말에 예지한은 표정 변화 없이 물었다.“내 정체를 알았어요?”“네. 방금.”내가 대답했다.“아, 여기 좀 더 있으려고 했는데.”예지한은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내가 물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에요?”“한 달 더 있을 거예요.”그녀가 말을 이었다.“여기 떠나기 아쉬워요.”예지한은 여기서 2년을 살면서 모든 것에 정이 들었고 또 여기는 한가로워서 떠나기 아쉬울 만도 했다.하지만 한민수의 말이 맞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책임이 있었다. 예지한이 아직도 저렇게 놀 수 있는 건 할아버지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었다.그리고 한민수, 예유진 그리고 진유겸, 심지어 나까지도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진 것을 굳건히 지켜야 했다.예지한도 마찬가지였다.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예 씨 가문이 있었다.예지한은 좀 시무룩해 하면서 다시 일하러 갔다. 나는 카운터를 보고
어젯밤 길바닥에서 자고 두 시간이나 걸었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감기 기운이 있었다.내가 막 나가려는데 원태웅의 문자가 왔다. [형이 방금 운성에 도착했어. 이틀 정도 여기에 머물 거야.]그는 바쁜 남자였다.항상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기에 이틀이나 머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석지훈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니 항상 만남은 짧고 헤어짐은 길었다. 며칠 함께 있으면 또 헤어져야 했고 헤어지면 한두 달, 길면 반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나는 운성으로 돌아온 후 진유겸의 결혼식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나는 그가 왜 결혼식을 연기했는지 잘 몰랐지만 최희연이 국내에 없으니 그녀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운성에 도착한 후, 나는 고양이 카페에 가서 최희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 답장이 왔다.[나도 방금 알았어. 원래 일찍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미룰 수밖에 없네! 수아야, 나 방금 수술을 마쳤고 얼굴의 흉터가 아직 회복 중이라 아이스랜드에 오랫동안 머물러야 할 것 같아. 하나한테서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가 시간이 된다면 카페를 좀 돌봐줘!]나는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후 다시 물었다.[흉터는 어때?]최희연이 답장했다.[아직 회복 중이지만 왕자현 씨가 흉터가 남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어. 나는 그를 믿어. 다 나으면 귀국할게!][그래. 그때의 너는 분명 아름다울 거야.]최희연은 바로 답장하지 않고 30분 뒤, 갑자기 슬픈 어조로 말했다.[왕자현 씨가 내가 그림을 배웠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싶어 해. 그는 그 분야에 조예가 깊거든. 근데 내 손목이... 수아야, 나는 붓을 잡을 수는 있는데 손이 떨려서 도저히 붓을 댈 수가 없어!]최희연은 그림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정성을 쏟았다. 그 노력으로 힘들게 성과를 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주민솔 그 여자는 정말 죽어 마땅했다.며칠 전에 진유겸은 그녀를 경찰서에서 꺼내주었다.나는 최희연에게 조심스럽게
석지훈은 내가 생떼를 부린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멈춰 섰고 그는 내가 따라오지 않자 몸을 돌려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내 모습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아주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생떼 부리지 마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석지훈: “...”이번에 석지훈은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그는 별장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몸을 돌려 별장 밖으로 나가 길가에서 도라지꽃 몇 송이를 꺾었다.나는 꽃을 옆에 두고 길가에 옆으로 누워 눈을 떴다. 늘씬한 몸매, 아름다운 드레스, 그리고 꽃 한 송이. 2층에서 보면 아름다운 그림 같을 것이다.내 행동은 아주 이상했다.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지금 술에 취한 상태였다. 비록 대부분은 연기였지만 술에 취한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석지훈은 분명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 누워서 그를 기다릴 것이다.석지훈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참을성이 있었다. 나는 그가 2층 방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도 몸을 돌려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나는 별장 입구에 밤새도록 누워 있었고 그러다가 먼저 잠들어 버렸다. 깨어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술에 취한 척할 수 없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서 의식이 흐릿했다고 해도 하룻밤이 지나면 알코올은 이미 다 날아가 버렸을 테니 말이다.나는 재채기를 하고 일어났다. 원래는 함승윤에게 전화해서 나를 데리러 오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때야 내 가방이 석지훈의 차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초인종을 눌렀다.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내가 거의 포기하려고 할 때 정장 차림의 석지훈이 나왔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런 석지훈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그리움이 더 컸다.예전처럼 차갑
이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설명해 주는 목소리가 들렸다.“형, 이분은 석씨 가문 가주, 형의 석씨 가문을 빼앗은 여자야! 방금 보니까 술에 취했더라고. 곁에 비서도 없이 말이야. 전에 날 도와준 적이 있는데 차마 그녀를 혼자 둘 수 있어야지. 그래서 집에 데려다주려고.”남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했지?”원태웅: “...”석지훈이 지시했다.“이 여자를 네 차에 태워.”“형, 내 차 고장 났어. 우리 두 사람 좀 집까지 데려다줘! 얘는 술 취하면 얌전해. 절대 방해 안 할게.”석지훈: “...”석지훈은 결국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원태웅은 전화를 받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가야 했다. 정말 일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석지훈의 운전기사가 그를 길가에 내려주자 차에는 나와 석지훈 두 사람만 남았다.나는 일부러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는 신사답게 나를 밀어내지 않고 창문을 열었다. 나는 그의 팔을 껴안고 웅얼거리며 말했다.“정우 씨.”“허, 정우까지 네 손에 넘어간 거야.”남자가 갑자기 뜬금없이 말하자 나는 당황한 척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운전기사가 물었다.“아가씨, 어디 사세요?”나는 계속 당황한 척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남자는 무관심하고 간결하게 말했다.“주소.”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무슨 주소요?”그는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네 집 주소.”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정말 오랫동안, 거의 돌처럼 굳어 버릴 때까지 생각하다가 석지훈의 품에 쓰러졌다.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운전 기사에게 지시했다.“동성으로 돌아가.”2년 전 석지훈은 동성에 살았었다.동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보니 창밖에는 온통 도라지꽃이 피어 있었다. 여기는 석 씨 저택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석지훈은 몰래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나는 깨어난 후 계속 멍하니 차 안에 앉아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다행히 술에 취해서 그런지 그는 나를 심하게
예지한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은 한민수는 화가 나서 카페를 나가버렸다. 그러자 예지한은 한민수가 두려운 듯 서둘러 앞치마를 벗고 그를 쫓아 나갔다.나가기 전에 나에게 카페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카페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문득 현정우가 생각났다.그의 휴가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나는 일어나 카운터에 앉았다. 아직 연회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이런 옷을 입고 여기에 앉아 있으니 너무 어색했다.한참을 앉아 있었지만 손님은 한 명도 오지 않았고 따뜻한 물을 달라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앉아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어떻게 하면 석지훈을 빨리 무너뜨릴 수 있을까?석지훈은 보수적이고 깔끔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남자였다. 예전의 그는 높은 곳에 있었고 주변에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다가온 이유는 내가 강에서 그에게 키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동생처럼 여기고 평생 지켜주겠다고 말했었다.그러나 지금의 석지훈은 2년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잊어버렸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첫 키스가 남아 있고 자신이 숫총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니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키스하고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그에게 키스하면 다른 여자들은 끼어들 틈이 없을 테니까.하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한단 말인가.나는 예전에 몇 번 술에 취했거나 정신 잃었을 때 그의 입술을 훔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술을 많이 마실 수도 없고 최음제를 먹을 수도 없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나는 원태웅에게 문자를 보냈다.그는 내 생각을 듣고 매우 찬성하며 말했다.[가능해. 네가 술에 취하면 돼. 내가 지금 바로 너를 데리러 가서 그에게 데려다줄게!]나는 답장을 보냈다.[나는 술을 많이 못 마셔요!]원태웅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누가 진짜로 취하래!]나는 순간 원태웅의 뜻을 이해했다. 예지한이 돌아오자 나는 서둘러 나갔다. 차에 타자
그와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했는데도 본 적이 없었다.게다가 내 남자의 초라한 모습을 왜 그들에게 보여 줘야 하는가?나는 한민수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석씨 가문 쪽에는 지훈 씨에게 어떻게 설명했어요?”한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솔직하게 말했죠.”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떻게 솔직하게 말했다는 거죠?”“부상 때문에 머리가 잘 안 돌아가고 기억이 좀 뒤죽박죽 해졌을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설명했죠. 그는 석씨 가문의 진짜 후계자가 아니고 오히려 당신이 적통이며 지금의 그는 석씨 가문에서 쫓겨난 거나 다름없다고요. 그런데 지훈이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리고 바로 의사에게 언제쯤 완전한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지 묻던데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나는 그에게 되물었다.“지훈 씨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요?”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다만 석지훈 본인도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아까 의아하게 물었을 것이다. 너도 알고 태웅이도 알고 유진이도 아는데 왜 자기만 모르는지. 아마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나를 잊어버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그는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한민수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지훈의 부상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요. 그러니 꼬시려면 서둘러야 할 거예요. 한성범은 당신들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을 테니까. 그는 며칠 후면 지훈이를 핀란드로 불러들일 거예요.”석지훈은 항상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한성범은 그를 구해 줬으니 만약 한성범이 핀란드로 부른다면 그는 분명 거절하지 않을 것이었다.나는 정말 서둘러야 했다.그리고 한성범도 경계해야 했다.나는 차를 한 잔 마시고 말했다.“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요!”한민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어떻게 할 건데요?”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한성범은 지금 어디 있어요?”이 말에 한민수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석지훈의 성격상 그는 절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몇 걸음 빠르게 걸어 그들을 앞질러 갔다. 복도에서 모퉁이를 돌기 직전에 나는 갑자기 몸을 돌려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손목에 있는 몇 개의 가느다란 팔찌가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나는 갑자기 밝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민수 씨, 이따가 고양이 카페에서 만나요. 내가 커피 살게요~”한민수는 마치 큰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수아 씨, 본인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 그래요? 나한테 웃지 말아요. 정신 못 차리겠잖아요!”내 아름다움은 고혹적이고 치명적이었다. 석지훈도 예전에 내가 아름답다고 말했었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일부러 석지훈의 시선을 끌려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이었다.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그 남자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하지만 괜찮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나는 몸을 돌려 연회장을 나와 고양이 카페로 갔다. 한창 손님들을 맞느라 정신없던 예하나는 나를 보자 바쁘게 말했다.“혼자 알아서 해요. 나는 좀 바빠서!”최희연은 아직 귀국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벌써 영업을 시작했다.과연 참을성이 없었다.나는 직접 최고급 작설을 꺼내 차를 우리고 창가에 앉았다. 벌써 8시였다. 바깥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카페는 운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었는데 주변은 유럽풍의 복고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게 눈부셨다. 그리고 창밖에는 차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이런 생활도 나쁘진 않았다. 예하나가 왜 여기서 2년 동안이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차를 따라 막 한 모금 마셨을 때 한민수에게서 문자가 왔다.[어디에요? 차를 몰고 갈 건데.]나는 바로 그에게 위치를 공유했다.카페에 도착한 한민수는 바쁘게 일하는 예하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예하나도 그를 보자마자 숨으려 했지만 한민수는 거침없이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말했다.“유진이가 2년 동안이나 너를 찾았는데 여기에 숨어 있었던 거야! 지한이 너 숨는 실력 하나는
한민수는 내게 연회에 참석하라는 뜻이었다.“갈게요.”전화로 그렇게 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지훈 씨는 왜 운성에 돌아와서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그전에도 나에게 안부를 전하지 않았을까?’이 점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하지만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이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저녁에 나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한민수가 말한 연회장으로 갔다. 내가 한민수를 찾았을 때 석지훈은 2층에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고 한민수는 그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남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정교한 디자인의 정장은 그의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냈고 흰 셔츠 소매의 금색 단추는 그에게 고귀한 분위기를 더했다. 닿을 수 없는 별처럼 말이다.지금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얼마나 더 이야기할 거예요?”내 목소리를 듣고 석지훈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너무나 낯설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지훈 씨.”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관심한 눈빛으로 내 옆에 있는 한민수를 바라보았다.한민수는 웃으며 소개했다.“이분은 석씨 가문 가주야.”한민수의 말은 마치 날벼락처럼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나는 당황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석지훈을 바라보았다.나는 충격에 빠진 채 물었다.“이게 무슨 말이에요?”한민수는 황급히 나를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지훈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한민수는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기억상실이에요. 지난 2년간의 기억을 모두 잃었어요. 의사 말로는 일시적이고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서 그렇다는데 한두 달 안에 회복될 가능성이 높대요. 하지만 한성범은 그 한두 달 사이에 민영과 지훈의 결혼을 서두르려고 할 거예요! 기정사실을 만들어서 지훈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거죠.”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물었다.“그가 나를 잊었다고
중환자실에 들어서니 온몸에 붕대를 감은 한민수가 보였다. 그는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농담처럼 물었다.“그 사람 걱정하느라 속이 타 죽겠죠?”당연한 거 아닌가?!나는 먼저 물었다.“상태는 어때요?”“괜찮아요. 지훈은 왜 안 물어봐요?”나는 가볍게 말했다.“민수 씨 안부부터 물어야 덜 외로울 거 아니에요.”한민수는 한 씨 가문에서 별 존재감이 없었다. 한민영이 병원에 온 것도 그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그도 불쌍한 사람이었다.한민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마음도 착하셔라.”나는 그제야 초조하게 물었다.“지훈 씨는?”“나도 아직 잘 몰라요.”그가 말했다. “아직 잘 모른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한민수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초조해서 말했다.“난 지훈 씨가 걱정돼요. 그러니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으면 말해 줘요. 내가 사람을 보내서 알아볼 테니까!”한민수는 한숨을 쉬고 천천히 말했다.“우리는 습격을 당했어요. 그리고 궁지에 몰렸을 때 누군가가 우리를 구해 줬지요.”나는 서둘러 캐물었다.“누군데요?”“한성범.”자신의 할아버지를 한성범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현재 한민수와 한씨 가문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어디로 데려갔는지 알아요?”“생명에는 지장 없을 거예요.”석지훈은 한성범이 점찍은 손녀 사윗감이었으니 그를 위험하게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하지만 석지훈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를 빨리 에르크로 데려오고 싶었다.서둘러 병실을 나와 보니 한민영은 아직 그곳에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흘겨보며 물었다.“지훈 씨가 네 할아버지한테 있지?”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으니 그저 그녀를 시험해 본 것이었다.하지만 한민영의 표정은 어리둥절했다.정말 모르는 눈치였다.나는 함승윤을 데리고 곧장 한씨 가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씨 가문 사람들은 한성범이 집에 없다고 했다. 나는 함승윤에게 전화를 걸어 연락하게 했다.한성범은 전화를 받고 웃으며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