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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작가: 동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7 19:00:00
하늘에서는 굵은 비가 퍼붓고 있었고 빗방울이 청석길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멀리 보이는 암흑은 나를 삼킬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석씨 가문은 깊고 어두워 무서울 정도였고, 복도에 걸린 등롱만이 희미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떨리는 내 몸은 본능적으로 석지훈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눈을 살짝 좁히며 물었다.

“어딜 다쳤다는 거야?”

“셋째 오빠가 그러는데, 오빠가 석씨 가문에 올 때마다...”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석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태웅이가 널 놀린 거야. 워낙 한가해서 장난치기 좋아하는 녀석이지.”

그 말을 듣자 나는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석지훈은 손을 들어 원태웅이 그랬던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치 나를 달래듯 행동했다. 그의 행동에 나는 멍해졌다.

그리고 물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다정해요?”

석지훈은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응?”

“태웅 오빠가 이렇게 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데, 오빠가 그러는 건 너무 이상해요! 석지훈 씨, 몇 달 못 본 사이 형이 많이 다정해진 것 같아요!”

석지훈은 손을 거두며 낮게 말했다.

“버릇없게.”

나는 멍해졌다. 버릇없다고? 그냥 이름을 부른 것뿐인데...

석지훈은 나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나는 고양이처럼 그를 졸졸 따라붙었다. 그가 가는 방향으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계속 따라갔다.

10분쯤 걸었을까, 우리는 어느 정원에 도착했다.

비록 어두운 밤이었지만 정원이 넓고 웅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원 안에는 인공 연못과 정자가 있었고, 곳곳에 꽃나무들이 심겨 있었는데 특히 무궁화가 유독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석지훈은 주위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가니, 비로소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을 마주했다.

방은 클래식한 유럽풍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한쪽에는 침대가 있었고, 반대쪽에는 욕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꽤 넓은 거실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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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손가락으로 우유를 가리켰다. 석지훈은 우유를 들고 와 내 몸을 부축해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그의 손에 기대 우유를 한 모금 마셨지만, 느끼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맛없어요.” 내가 투덜대자, 석지훈은 아무 말 없이 꿀물로 바꿔 주었다. 나는 꿀물을 두어 모금 마셨고, 속이 한결 나아졌다. 그러고는 계속 그의 어깨에 기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누군가 내 신발을 벗기고 조심스럽게 나를 침대에 눕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혼자 침대에 누워 눈을 떴다. 석지훈의 흔적은 없었고 침대에는 나만 있었다. 게다가 완전히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머리가 멍한 채로 일어나 욕조 쪽으로 갔더니, 새로운 칫솔과 수건이 준비되어 있었다. 석지훈은 언제나 세심했다. 그런데 그는 어젯밤 어디에서 잤던 걸까? 양치질을 마친 나는 내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굳이 풀어서 다시 묶지 않았다. 간단히 정리한 후 나는 방을 나섰다. 방 밖 복도의 처마 끝에 베이지색 등롱이 걸려 있었는데, 낮인데도 불구하고 불이 켜져 있었다.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지만 많이 약해져 있었다. 밤새 폭우에 시달린 나무 아래에는 무궁화 꽃잎이 떨어져 있었고, 그 옆의 붉은 단풍잎도 함께 깔려 있었다.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하며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석지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 있어요?” 그는 한참 만에 답장을 보냈다. “서재.” 나는 간단히 알겠다고 답했다. 핸드폰을 든 채 뜰로 나가려던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몇몇 사람을 보고 멈칫했다. “석지훈 씨를 찾으러 오셨나요?” 내가 선뜻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왠지 모르게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뜰로 돌아가려다 무례하다고 할까 봐 어색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차림의 여인이 등장했다. 그녀는 원피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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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지훈이 멀리서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표정은 어둡고 온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뒤에서는 누군가가 우산을 받쳐 들고 그를 따르고 있었다. 석지훈이 내 옆에 멈춰 서더니, 나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을 냉랭하게 쳐다봤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나를 놓아주었다. 석지훈은 두 손가락으로 내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가벼운 손길이었지만, 나는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더니 차갑게 명령했다. “방금 때린 그대로 갚아요.”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지훈아, 지금 이게 무슨 뜻이니?” 여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석지훈의 옷자락을 살짝 당기며, 굳이 나 때문에 가족과 다툴 필요는 없다고 눈치 줬다. 하지만 그는 내 작은 행동을 무시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여인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겁에 질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네가 석씨 집안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이 집안을 네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 네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 이 집안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어!” 그러나 석지훈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삼 초 줄게요.” 그 후의 결과가 어떨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온몸을 떨며 젖은 땅에 무릎을 꿇고 울먹였다. “미안해.” 석지훈은 냉정하게 말했다. “1초 남았습니다.” 짝!여인은 갑자기 자신의 뺨을 세게 때렸다. 그녀의 모습은 몹시 초라해 보였다. 나는 석지훈이 나를 위해 나섰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 여인은 석지훈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석지훈의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버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멀리 복도 모퉁이에 서 있던 또 다른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짙은 색 원피스로 옷을 갈아입고 무심한 표정으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와 무릎을 꿇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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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몸이 드러낸 채로 흰색 붕대를 감고 있는 그의 몸은 아주 탄탄해 보였다. 그는 다리를 쭉 뻗더니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왔다. 석지훈이 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같이 느껴졌다.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대충 얼버무렸다.“오빠, 정말 멋있어요.”내가 그 앞에서 여러 번 했던 말이었다.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일부러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멋있는 남자는 어떤 여자든 좋아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오빠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제가 선 넘지 않게 신경 쓸게요!”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번만 봐주는 거다?”‘정말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라니까.’석지훈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우동을 만들더니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자리를 떠나서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나 먹으라고 만들어준 건가?’나는 젓가락으로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국물은 매우 구수했고 파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 같았다. 우동을 다 먹고 나서 나는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설거지를 끝내고 나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침실로 돌아왔다.나는 문을 열고 석지훈에게 물었다.“오빠, 배 안 고파요?”그는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나도 읽어본 적 있는 책이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수필이었는데 복잡한 세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면서 차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항상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나는 석지훈이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왜냐하면 내가 아는 석지훈은 항상 차갑고 냉정하며 늘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생활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윤 비서의 말에 의하면 그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었다.이렇게 보면 석지훈은 클래식한 것들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그 시대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들이었다.석지훈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 배 안 고파.”천장에 달린 조명은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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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 석지훈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슬프기는 했지만 그 깊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심지어 그녀가 자신의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지금 석지훈의 슬픔을 보며 나도 점점 그의 감정을 공감하게 되었다.그가 방금 말했던 어머니 김혜정과 나를 증오하는 김윤정은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혜정은 석지훈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그를 자신의 친아들처럼 여겼고 그녀의 눈과 마음속에는 오직 석지훈만 있었다.그녀는 단지 그가 건강하고 평온하길 바랐다.심지어 석지훈이 나와 결혼하려 할 때 그녀는 이를 찬성하기까지 했다.석지훈은 방금 그녀가 늘 쉽게 양보했다고 말했다.문득, 내가 두 번째로 석씨 가문에 갔을 때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온화한 태도가 떠올랐다.그때 이미 그녀는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늘 한복 차림으로 석지훈만 바라보던 부드러운 여인은 결국 시들어버렸다.그녀는 분명 석지훈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혹시 그녀가 언니 김윤정에게 몰려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그녀가 죽기 전에 느꼈을 절망과 고통의 깊이를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심지어 그녀는 석지훈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이것 또한 석지훈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그는 이 아픔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분명히 그도 슬펐지만 여전히 나를 위로하려 했다.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힘을 주어 말했다.“내가 오빠 곁에 있어 줄게요.”석지훈은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응, 난 먼저 가서 빈소를 지킬게.”나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옷 갈아입고 바로 따라갈게요.”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방을 떠났다.나는 함 집사에게 상복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그에게서 상복을 받아 방으로 돌아와 갈아입고 방을 나서자 함 집사가 내 팔에 검은 완장을 채워주었다.함 집사와 함께 정원을 나서려던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앞쪽에 검은 상복을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29화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불렀다.“지훈 오빠.”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죽은 사람은 나의 어머니야. 평생 다른 신분으로 석씨 가문에서 살아가며 나를 아들처럼 키워준 분이야.”석지훈의 말투는 차분했고 마치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들렸다.나는 조용히 그의 옆에 있는 늘어진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나는 아홉 살 때 석씨 가문을 떠났어. 그전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 그 당시 나를 입양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건 알지 못했어. 그 아홉 해 동안 어머니는 나를 정말 잘 돌봐주셨어.”“그때 나는 후계자가 아니었고 위로 세 명의 형이 있었어.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했지. 작은 사모님들과 형제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어머니가 제일 먼저 나를 지켜주셨어.”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내가 석씨 가문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갔던 11년 동안 어머니는 항상 내게 편지를 보내주시며 버티라고 하셨어. 석씨 가문에서도 내 몫을 항상 챙겨주셨지. 내가 이렇게 빨리 성공해서 석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어머니 덕분이야.”석지훈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가라앉았다.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선 벗어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나는 어머니를 정말 존경했어. 어머니 역시 나를 매우 존중해주셨지. 내 평생 어머니가 반대했던 유일한 일은 너와 나의 관계였어. 하지만 내가 끝까지 고집하자 결국 허락하셨어.”“어머니는 나를 위해 언제나 쉽게 양보하셨고 단 한 번도 나에게 악한 마음을 품으신 적이 없었어. 얼마 전에도 너를 며느리로 잘 대하겠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어.”석지훈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의 내면은 산산조각 난 듯 보였다.나는 그의 허리를 가만히 안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괜찮아질 거예요. 어머니도 오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원치 않으셨을 거예요. 미안해요...혹시 우리의 약혼 때문일까요?”그의 눈가가 붉어지며 말했다.“잘못은 너에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28화

    석지훈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드러냈다!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녀는 단호히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잘 모르겠어요.”우울한 마음에 나는 석만호에게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별장 뒤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 담현아 옆에 누워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번 일은 지훈 오빠에게 큰 충격이었을 거야.”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담현아는 조용히 말했다.“그래도 정이 있으니 당연하지 않을까요?”나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현아야, 우리 동성시에 돌아가자.”담현아가 대답했다.“정재 아저씨가 내일 지인들과 같이 캠핑한다면서 초대했어요. 나는 곧 운성시로 가야 해요.”‘고정재 씨가 운성시에 친구가 있다고?’아마도 담현아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핑계일 것이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나 먼저 돌아갈게.”말을 마친 뒤, 나는 나무에서 내려와 차 키를 들고 별장을 떠났다.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였다.나는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며 석지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집에 도착했어요. 걱정 말고 일 보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응, 잘 자.]석지훈은 아직 깨어 있는 것 같았고 아마도 여전히 바쁜 모양이었다.나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눈을 감았다.하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잠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나는 시간을 내어 석씨 가문 회사에 들렀다.석씨 가문의 업무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반년간 배운 경험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함 집사가 세심하게 가르쳐 주어서 모르는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저녁 무렵, 함 집사가 조심스레 말했다.“가주님, 석씨 가문의 안주인께서 어젯밤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시면, 석씨 가문의 다른 계파들에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나는 놀라며 물었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27화

    담현아는 오두막으로 올라가 달빛 아래에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나는 낮은 목소리로 석나은에게 물었다.“나은 씨, 전화한 이유가 단지 이런 얘기 때문은 아니겠죠?”“수아 씨,”그녀의 쉰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그이는 항상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수아 씨를 약혼녀라고 발표했잖아요. 게다가 결혼 날짜까지 약속했어요.”그녀는 말을 이어갔다.“나는 수아 씨가 너무 부러워요. 당신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잖아요. 나는 뭐가 부족했던 걸까요? 당신보다 훨씬 일찍 그의 삶에 나타났고 석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는데. 수아 씨는 어떻게 내 자리를 빼앗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나는 그이를 사랑해요. 만약 지훈 씨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나는 오직 그를 위한 아내가 되기 위해 교육받았으니까요. 그를 잃으면, 나는 도대체 뭔가요?”그녀의 울적한 한탄은 이어졌지만 석지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도 불쌍한 사람이다.석씨 가문에서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주입받으며 살아온 여자일 뿐이니까.나는 고개를 들어 멀리서 다가오는 석만호를 발견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석나은을 달래듯 말했다.“나은 씨의 가치는 지훈 오빠로 증명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사랑은 먼저 나타났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죠. 솔직히 지훈 오빠가 왜 나를 선택했는지 나도 몰라요. 하지만 지훈 오빠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해요. 우리는 평생 함께할 거예요.”“나은 씨는 아직 젊고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니 때가 되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예요. 가끔은 손을 놓을 줄 알아야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올 수 있어요.”내 말을 들은 석나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수아 씨, 지훈 씨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언제요?”“방금 전에요. 두 분의 약혼 소식에 충격을 받아서...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26화

    원태웅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고 문득 낮에 받은 협박 문자가 떠올랐다.그 여자가 정말로 그런 엄청난 용기를 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석지훈이 약혼 소식을 발표한 후, 그의 어머니는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황급히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어둡고, 짙은 안개에 갇힌 듯했다.원태웅은 눈가가 붉어진 채 말했다.“사모님이 석씨 가문 본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대.”석지훈은 곧바로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향했고 나도 그의 뒤를 따라 서둘러 내려갔다.그는 별장을 나와 검은 벤틀리에 올랐다. 원태웅과 한민수도 그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나는 문가에 서서 불안한 마음으로 석지훈을 불렀다.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눈에 핏줄이 섞여 있었다.“집에서 기다리고 있어.”그의 말은 단호했다.비록 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석지훈에게 그녀는 여전히 애정을 주었던 존재였다.나도 곁에서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나는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알겠어요. 집에서 기다릴게요.”한민수가 옆에서 거들었다.“지훈아, 수아 씨도 이제 네 약혼녀야.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마주해야지. 수아 씨도 본가로 가는 게 맞아.”한민수는 그들 중 가장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석지훈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원태웅에게 말했다.“네가 운전해. 최대한 빨리 본가로 돌아가자.”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담현아가 다가와 위로했다.“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예요.”사실 나는 석지훈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를 싫어했으니 말이다.그리고 우리의 약혼 소식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으로 석지훈에게 큰 압박을 남겼다.그리고 그녀의 목적은 성공했다.나와 석지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문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누구였을까?내가 혼란에 빠져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25화

    석지훈은 그 반지를 간직했고 오늘 밤 나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로 끼워주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고 나는 그의 몸을 꼭 안은 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다.“윤아야, 시간이 되면 너와 함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일부러 나를 데려가려는 걸 보면 분명 중요한 사람이겠지.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좋아요. 누구예요?”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나를 살아있게 한 사람.”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허리를 감싸안으며 발코니로 나갔다.아래에서는 한민수와 원태웅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담현아는 오동나무 위의 작은 오두막에 올라가 엎드려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감회에 젖어 석지훈에게 말했다.“매일 집이 이렇게 시끌벅적하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담현아도...놀기 좋아하지만 사실 굉장히 조용한 사람이잖아요.”석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아이는 외로워.”나는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담현아가 외롭다고요?”“그녀는 어릴 때부터 똑똑했어. 똑똑한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기 마련이지. 그래서 제대로 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북적이는 걸 더 좋아하게 되지.”나는 그 말을 듣고 석지훈과 담현아가 비슷한 부류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물었다.“그럼 오빠는요?”“응?”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빠도 외로워요?”“아니. 네가 내 곁에 있으니까.”석지훈은 이제 달콤한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나는 일부러 그에게 물었다.“오빠는 내가 시끄럽다고 생각하죠? 시끌벅적하다는 말은 곧 말이 많다는 뜻이잖아요?”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스스로 잘 알고 있네.”“...”나는 손을 들어 그의 볼을 꼬집었지만 그의 몸이 살짝 굳는 것을 보고 웃으며 손을 거두며 말했다.“됐어요. 이번엔 봐줄게요.”나는 그의 팔을 끌어안고 아래쪽을 바라보았다.원태웅이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때 담현아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전화 왔어요!”원태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24화

    나는 석지훈과의 결혼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지금 내 가장 큰 소망은 그와 결혼해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간절히 말했다.“오빠랑 결혼하고 싶어요.”석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바보.”“너희 둘, 뭐 하고 있어?”한민수가 와인 잔을 들고 우리 대화를 방해하며 말했다.“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 그리고 내 솔로 탈출도 좀 빌어줘.”한민수의 시선은 담현아를 향하고 있었다.하지만 담현아는 스테이크 요리를 여유롭게 먹으며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그녀는 이 요리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나는 잔을 들어 한민수와 부딪치며 말했다.“고마워요.”석지훈도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넌 평생 솔로일 거야.”한민수가 순간 멈칫하며 말했다.“지금 나를 저주하는 거야?”석지훈은 그를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억울한 표정의 한민수가 담현아에게 다가가 말했다.“쟤가 나를 괴롭혀!”담현아는 그를 흘긋 쳐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내가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담현아는 석지훈을 이길 수 없었고 한민수도 진심으로 복수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그저 담현아에게서 조금이라도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다.하지만 담현아는 그런 한민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담현아의 무미건조한 반응에 실망한 한민수는 결국 식사에 흥미를 잃었다.그는 원태웅에게 물었다.“여기 노래방 기계 있어?”원태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있지. 내가 먼저 한 곡 부를게.”원태웅의 목소리는 매우 청아했고 그가 부른 두 곡 모두 훌륭했다.한민수는 마이크를 넘겨받으며 나에게 물었다.“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를 하나 말했고 한민수는 노래를 찾아 부르기 시작했다.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잘생긴 외모와 재력에 재능까지 겸비한 한민수는 정말 뛰어난 남자였다.한민수가 몇 곡을 연달아 부르는 사이 석지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떠났다.나는 따라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이 없는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23화

    나는 놀라며 물었다.“운산이요?”혹시 석지훈이 그 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한민수가 대답했다.“네. 원태웅 대신 유진이가 유럽에 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 원태웅과 석지훈이 별장에서 요리하고 있어요. 덕분에 저도 석지훈 요리를 처음 맛보게 생겼네요!”나는 살짝 질투를 자극하려는 듯 말했다.“오늘 점심도 오빠가 나한테 해줬거든요.”한민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자랑은 그만하시죠!”나는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열어 기사를 확인했다.석지훈의 게시물은 이미 ‘좋아요’가 백만 개 가까이 달렸고 내 팔로워 수는 10만을 넘어섰다.내 계정 아래에는 ‘원 대인’이라는 사용자가 댓글을 남겼다.“흑흑, 연수아 양이 제 댓글을 따라 하다니 감격이에요!”나는 낮게 웃으며 답을 남겼다.“셋째 오빠, 재밌어요?”잠시 후, 그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윤아야, 그렇게 대놓고 밝히면 어떡해!”그가 나를 ‘윤아’라고 부르는 걸 보니 이제 완전히 나를 용서한 것 같았다.나는 답장을 보냈다.“셋째 오빠, 이렇게 하면 팔로워 늘릴 수 있어요.”그는 요리하느라 바쁜 것 같았고 더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사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혹시 석지훈이 오늘 나에게 프러포즈하려는 걸까?그런 사람이 대중 앞에서 화려한 프러포즈를 할 것 같진 않았다.아마도 파티를 여는 것 자체도 큰 결심이었을 테고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한 거라고 생각했다.사실 이 정도로만 해줘도 나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고 그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운산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9시였다. 그곳에서는 석만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가주님.”그는 나를 별장 정원안으로 아내한 후 다시 밖으로 나갔다.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북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듯했다.별장 정원은 화려한 네온 조명으로 가득했다.네온 불빛 아래에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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