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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달빛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1-13 11:38:36
원래는 사라질 운명이었던 나.

하지만 백수지라는 변수의 등장으로 인해, 시스템은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수지를 찾기 전, 수지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

한 카페에서.

그곳은 이수혁과 수지가 자주 가던 곳이었고, 여기서 그들은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키스하곤 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수혁이 수지에게 무릎을 꿇고 청혼했다.

따라서 이 장소를 선택한 건 수지가 나에게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지는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 눈빛은 숲 속 사슴처럼 순수하고 애처로웠으며, 눈동자에는 은은한 물결이 일렁였다.

그러니 수혁이 수지를 잊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너 왜 아직 가지 않은 거야?”

수지는 팔짱을 낀 채를 책망했다.

나는 담담하게 반문했다.

“넌 이미 공략에 성공했는데, 왜 돌아왔지? 설마 진짜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니겠지?”

수지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비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소설 속 캐릭터를 좋아하겠어?”

“그럼 왜 돌아왔는데?”

수지는 순수한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악의적인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내 먹잇감을 다른 사람이 탐내는 게 싫었을 뿐이야. 내가 죽더라도, 수혁은 나만을 사랑해야 해.”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네가 돌아온 뒤로 수혁은 수많은 고통과 절망의 밤을 겪었고, 자해를 반복했어. 내가 곁에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죽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너는 수혁을 도대체 뭐로 여기는 거야? 수지, 네가 무슨 권리로 그럴 수 있지?

그저 종이 위에 그려진 인물이라는 이유로 네가 수혁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생각해? 아니면 너도 수혁에게 진심으로 마음이 있는 거니?”

나는 수지를 응시하며 수지의 눈에 비치는 감정을 찾으려 애썼다.

“내게는 있어.”

내가 답하자 수지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다면 너는 틀림없이 질 거야. 왜? 못 믿겠어? 내 한마디면 수혁이 네 뺨을 때리게 할 수 있어.”

내가 망설이는 동안 수지는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동시에, 수혁의 검은 구두가 문가에 나타났다.

수지는 수혁을 발견하고 울며 수혁의 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수혁의 가슴에 파묻혀 애처롭게 울며 말했다.

“수민 씨를 한번 보고 싶어서 불러냈는데,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바로 날 때렸어. 수혁아, 미안해. 내가 돌아오는 바람에 수민 씨 자리를 빼앗아 이렇게 된 거 같아.”

이 말을 들은 수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윽고 수혁이 내게 다가오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오른손으로 내 오른쪽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 힘은 강해서 얼굴이 뜨겁게 화끈거렸고,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났다.

“수민, 내가 너를 너무 많은 배려를 해줬나 봐. 너는 그저 수지의 대체품일 뿐이야. 이제 수지가 돌아왔으니 네가 자동으로 물러나는 게 당연하지 않아?”

눈물이 솟구쳐 나오자 나는 급히 얼굴을 감쌌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그 사람이 나를 품에 안고 달래던 장면이 떠올랐다.

[괜찮아, 왜 울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를 그곳에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안해, 울지 마. 그냥 날 때려, 네 마음이 풀릴 수만 있다면 난 어떻게 돼도 괜찮아.]

흐르는 눈물을 뒤로한 채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수혁은 절대로 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사람의 잔상마저도 이 뺨을 맞고 나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수혁은 곧장 수지를 끌어당기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마치 내가 위험한 존재라도 되는 듯이.

그러나 내가 상대할 사람은 수지만이 아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재빨리 내리쳤다.

팍-

나는 수혁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수혁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눈살을 찌푸렸다.

검은 정장이 수혁의 어두운 표정을 더욱 엄숙하게 만들었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수혁의 분노에 찬 눈을 바라보며 나는 오히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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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감정들은 모두 진실이었어. 다만 사랑은 아니었을 뿐이야. 수혁아, 우린 여기서 잘 마무리하자. 이제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해.”이수혁은 일어나려는 나를 붙잡으려 했고, 수척한 얼굴에 눈이 반짝였다.수혁은 울먹이며 물었다.“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지? 나를 버리고 떠나겠다는 거지.”나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수혁의 이불을 정돈해 주며 말했다.“내일은 네 생일이니까 선물 하나 줄게.”그 말에 수혁의 어두운 눈에 다시 한 줄기 빛이 비쳤다.“정말이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것이 내가 네게 베푸는 마지막 자비야.’돌아가는 길, 고소하는 말없이 운전했다.소하가 화난 줄 알았던 나는 수혁과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위로하려 했다.그런데 소하의 눈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소하는 얼굴이 빨개지며 울기 시작했다.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무슨 일이야, 소하야? 왜 그래?”소하는 울면서 외쳤다.“다 기억났어. 방금 전에.”“이수안 씨가 문 밖에서 네가 겪었던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말해 주었어. 미안해, 네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줄 몰랐어. 이 재회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희생했을까.”그래, 나는 많은 것을 희생했다.수많은 책 속을 떠돌며 온갖 수모를 견뎌냈다.그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상처 입히는 것을 받아들였다.하지만 상처는 결국 상처일 뿐.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해도 사랑이 될 수는 없다.나는 소하를 안았다.마치 예전처럼.“하지만 소하야, 오직 너만이 나에게 진정한 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시스템에게 물었다.“나에게 남은 포인트가 있지, 그렇지?”시스템은 그렇다고 대답했다.“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줘.”나는 작은 목소리로 시스템에게 요청했다.시스템은 의아해했다.“왜?”나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수혁도 한때는 내가 아끼던 사람이었어. 수혁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고, 나도 수혁을 이용했지만, 이제 나는 행복해졌으니, 수혁이 나로 인해 불

  • 너를 닮은 사람   제9화

    그 임무에 사실 고소하가 가지 않아도 됐었는데, 소하는 결국 지원해서 가기로 했다.이윽고 소하가 나를 꼭 안고 설명했다.“이 범죄 조직은 내가 계속 추적해온 거라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투입되면 저쪽에서 눈치챌 거야. 그렇게 되면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어.”마음속에 불안감이 가득했지만, 나는 소하를 보내주기로 했다.“무사히 돌아와.”하지만 소하가 나에게 약속했던 건 지켜지지 않았다.소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그리고 결국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나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무너져 내렸다.중증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다가 구해졌다.나중에 소하를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야 간신히 살아갈 힘을 얻었다.그래서 나는 이수혁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나는 수혁과 함께했고, 수혁도 나와 함께했다.우리는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치유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수혁이 나를 대체품으로 여겨 상처를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주말에 소하는 나를 차에 태우고 수혁에게 데려다주었다.그리고 이수안이 나를 수혁이 머무는 병실로 안내했다.병상에 누워있는 수혁은 아주 수척해 보였다. 수염이 덥수룩했고, 얼굴은 창백하게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수혁은 백수지를 잃었을 때보다 더 무너진 듯 보였다.“너 떠난 후 수혁 오빠는 한 번도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어. 방금 겨우 수면제를 먹고 이제야 잠들었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 문가에 서 있는 소하를 바라보며, 입 모양으로 걱정하지 말라고 전했다.“잠시 나가 있어 줄래요? 수혁이 깨어나면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수민의 말에 수안은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하고 방을 떠났다.수혁은 마치 악몽이라도 꾼 듯 갑자기 깨어났다.수혁은 내 이름을 중얼거리며 불렀다.나는 조금 어색했지만, 수혁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자 무심코 수혁이라고 불렀다.수혁은 숨을 멈추듯 조용해지며 손을 내밀어 내 뺨을 만지려 했다.수혁의 손이 내 얼굴

  • 너를 닮은 사람   제8화

    이수안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그럼 수민 씨랑 우리 오빠는 아직?”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절대 그럴 일 없어요.”그러자 수민의 얼굴에 잠시 실망이 스쳤다.“그럼 한 번만 만나줄 수 있어요? 그날 공항에서 수민 씨를 우연히 보고 나서 방에 틀어박혀 회사도 안 가고, 마치 술로 자기를 죽이려는 것처럼 지내고 있거든요.”“수민 씨도 알잖아요, 지금 수혁이 얼마나 약해졌는지요. 네가 떠난 뒤로 수혁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아요.”“생각해볼게요.”떠나기 전에 나는 수안에게 손수 짠 목도리를 건넸다.“내가 직접 짠 거에요. 밖에 추운데, 감기 들지 않게 조심해요.”수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받아들었다.“만약 수혁이 내 오빠가 아니었다면, 널 귀찮게 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리고 예전 일에 대해서는 미안해요.”그날 밤, 나는 고소하에게 수혁을 단둘이 만나러 가야겠다고 말했다.그러자 소하는 요리를 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응하고 대답했다.“그렇지만 내가 데려다줄게. 혼자 가는 건 좀 불안해.”나는 소하의 허리를 안고 얼굴을 살며시 부비며 말했다.“질투나지 않아? 화나지도 않아?”그러자 소하는 가볍게 웃으며 이 질문이 엉뚱하다는 듯 답했다.“뭘 질투해? 이제 우리는 같은 주민등록상에 있는 부부잖아. 내가 다른 남자 때문에 질투한다면,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거지.”수민은 내 손을 잡고 가볍게 입 맞췄다.“난 언제나 네 말을 믿어, 수민아.”나는 소하의 허리를 꼭 안고 소하의 등에 얼굴을 대었다. 마음 깊숙이 느껴지는 평온함이 나를 감쌌다. 소하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다.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소매치기에게 가방을 도둑맞았을 때였다.나는 소매치기를 끈질기게 쫓아가 그의 다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소매치기는 당황해서 결국 경찰에 자수를 했다.“제발요, 경찰관님, 제가 자수할게요. 이 여자 좀 떼어 주세요. 온 길 내내 계속 붙잡고는 절대 놓아주지 않았어요.”그때, 소하가

  • 너를 닮은 사람   제7화

    고소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놀라움이 가득했다.“저도 그래요.”‘기억이 사라졌으니, 이제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다행히 나의 부모님은 가상 기억을 심어 놓았다.그들은 이 책 속에서 살아가지만, 내가 꿈속에서 무수히 보았던 모습 그대로다.심지어 외모까지 똑같다.이번에는 그들이 나를 구하려다 그 격렬한 지진 속에서 돌아가시는 일도 없을 것이다.그들은 나의 결혼식을 지켜보며, 내 손을 소하의 손에 건네줄 것이다.그리고 결혼식 현장에서 나를 꼭 껴안고 떨어지기 아쉬워할 것이다.이수혁을 다시 만난 것은 2년 후였다.내 옆에는 남편인 소하가 서 있었다.수혁은 눈가가 붉어진 채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달려와서, 고집스럽게 나에게 물었다.“이 사람 누구야?”나는 수혁의 손을 정중하고 냉정하게 밀어내며 미소 지었다.“미안하지만 전 당신을 모릅니다. 그리고 이 분은 제 남편이에요.”그 말에 수혁은 분노에 휩싸여 미친 듯이 소하와 몸싸움을 벌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소하의 체력은 수혁을 훨씬 능가했다.소하는 형사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몸이 기억하는 습관은 남아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소하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눌려 있었다. 소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수혁을 노려보며 비웃듯 말했다.“다음에 또 내 아내를 괴롭히는 걸 보면, 그땐 봐주지 않을 거에요.”수혁은 바닥에 누운 채로, 마치 숨이 막히는 듯 괴로워했다.잠시 후, 내가 떠나기 전에 수혁이 애절하게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수민 맞지? 너 맞지? 나는 너를 찾기 위해 3년을 헤맸어. 그런데 넌 계속 숨고 날 피했잖아. 이제 보니 결혼을 했던 거였구나. 그래서 이 사람은 누구야?”수혁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마치 스스로를 조롱하듯 쓴웃음을 지었다.“그럼 결국, 이 사람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거구나. 수지가 말한 게 맞았어. 넌 나를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어.”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수지가 죽기

  • 너를 닮은 사람   제6화

    나는 더 이상 이수혁에게 빚진 것이 없다.의심은 결국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자라나 마침내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다.수혁은 백수지과의 결혼식을 취소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백씨 가문 사업에 대한 투자도 모두 철회했다.수지는 조바심이 났고, 예전처럼 자신을 납치하도록 사람을 고용해 다시 한번 연극을 벌이려 했다.그러나 수혁은 더 이상 사랑에 눈먼 어리석은 소년이 아니었다.수혁은 수지를 구하러 가는 동시에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 납치범을 미행했다.결국 그 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냈다.그 일은 내가 보낸 영상이 사실임을 확실히 증명해주었다.수지가 수혁에게 느끼던 감정은 전부 연기였던 것이다.수지는 처음 이 세계로 돌아왔을 때부터 패배한 것이었다.반년 후, 수지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 갔다.나는 알고 있었다, 시스템의 공략 임무가 수지를 역습하기 시작한 것이다.수지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울며 수혁에게 말했다.“수혁, 제발 날 구해줘. 네가 나와 결혼하지 않으면, 난 진짜 죽을 거야. 제발 나를 한 번만 만나줘.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수지의 말이 사실이었지만,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수지는 이해하지 못했다.거짓말을 반복하면, 진실도 아무도 믿지 않는 법이다.결국 수혁은 수지에게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몇 번의 메시지를 보낸 뒤, 수혁은 수지를 차단하고 삭제했다.[우리가 함께한 정이 있으니, 널 해치지는 않을게. 하지만 더 이상 비열한 이유로 나의 죄책감이나 애정을 자극하려 하지 마. 네가 정말로 죽는다 해도, 난 전혀 아프지 않을 거야.]수지는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미친 듯이 나를 저주했다.수지는 자신이 어디에서 패배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내가 수지가 성공적으로 공략을 마쳤음에도 다시 이곳에 돌아온 이유를 알지 못했던 것처럼.마지막으로 수지가 죽기 전, 시스템은 수지에게 나에 관한 한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그리고 수지는 그 정보를 수혁의 여동생 수안에게 전해주었다.그렇게

  • 너를 닮은 사람   제5화

    시스템은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이번 기회는 시간의 제한이 없었다.나는 이 세계에 더 오래 머물며 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되었다.내가 보낸 녹음과 영상만으로는 이수혁이 백수지를 당장 포기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의심은 씨앗처럼 수혁의 마음에 심어져 서서히 자라날 것이다.수지를 완전히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이 세상에서 감정이란 가장 어려운 것이 깨진 거울을 다시 맞추는 것이다.설령 다시 맞춰진다 해도 수많은 균열이 남기 마련이다.더군다나 지금의 수혁은 예전처럼 수지만을 온전히 사랑하던 따뜻한 소년이 아니다.지금의 수혁은 부서져 있다.그리고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춰준 건 바로 나였다.난 내가 처음 수혁과 함께 있었을 때를 떠올렸다. 수혁은 매일 밤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고, 수지의 사진을 안고 구석에서 울었다. 처음에는 눈물만 흘렸다.그러다 지쳐가면서 수혁은 자해를 시작했다. 약을 먹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환각까지 나타나 수혁이 생각하기에 병들거나 죽어야만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그처럼 뜨거운 사랑이, 만약 수혁이 처음부터 수지가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과연 수혁이 여전히 수지를 사랑할 수 있을까?’사랑이 깊을수록 미움도 깊을 것이다.시스템은 내게 알려주었다. 한 달 뒤로 예정된 결혼식이 취소되었다고.그리고 이상하게도,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던 여자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여전히 매일같이 술집을 전전하고 있었다.수지에게 맹목적인 친구 중 한 명이 수혁을 찾아와 불만을 털어놓았다.“수혁, 너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이제 수지도 돌아왔는데 왜 또 여기서 술을 마시는 거야? 수민과의 결혼식도 취소하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그 친구가 반쯤 농담처럼 한마디를 던졌다.“설마 그 질 낮은 대체품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말이 떨어지자마자, 수혁은 차가운 얼굴로 자신의 친구를 노려보았다. 생각할 것도 없이 수혁은 손에 들고 있던 유리잔을 그

  • 너를 닮은 사람   제4화

    “네가 내 뺨을 때렸으니, 나도 네 뺨을 때려야 공평하지. 이제 서로 비긴 셈이야.”그리고 다시 백수지의 앞에 다가가 웃으며 물었다.“남의 공략 대상을 빼앗는 게 재밌어?”수지의 눈에 순간적으로 당황함이 비쳤지만, 나는 수지가 도망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수지의 뺨도 때렸다.수지는 충격으로 울 틈도 없었다.나는 돌아서서 그냥 떠나려 했으나, 갑자기 뒤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세게 미는 바람에, 중심을 잃은 나는 앞으로 쓰러지며 배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이윽고 아랫배에서 격한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수혁이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수혁의 눈빛에는 차가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나를 때리는 건 괜찮아. 하지만 수지를 때리다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나는 처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고마워. 덕분에 낙태할 필요가 없어졌네. 축하해, 네 손으로 네 아이를 죽인걸.”이 말에 수혁의 입술이 나만큼이나 창백해졌고, 수혁의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고,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피였다.끝없이 퍼져가는 피.귀가에 수혁이 놀라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수민아, 수민아.”수혁은 지금껏 나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았다. 오직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만 이렇게 불렀다.수혁은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그 사람과 정말 비슷했다.내가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난 수혁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수혁이 수지와 함께 지내며 나눈 모든 순간을 나는 보았다.그리고 수혁이 수지를 안고 다정히 속삭이는 장면도 봤다.“나중에 우리 아이도 많이 낳자. 아들은 나처럼 눈매가 또렷하고 성격은 성숙하고 차분하길 바래. 딸은 너처럼 예쁘고 활발하고 사랑스러웠으면 좋겠어. 적어도 셋이나 넷은 낳자.”시스템은 한때 수지에게 물었다.“공략에 성공하여 수혁이 너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으니, 너는 남거나 떠날 수 있어. 어느 쪽이든 보상은 이미 너의 계좌에 지

  • 너를 닮은 사람   제3화

    원래는 사라질 운명이었던 나.하지만 백수지라는 변수의 등장으로 인해, 시스템은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그리고 내가 수지를 찾기 전, 수지가 먼저 나를 찾아왔다.한 카페에서. 그곳은 이수혁과 수지가 자주 가던 곳이었고, 여기서 그들은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키스하곤 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수혁이 수지에게 무릎을 꿇고 청혼했다.따라서 이 장소를 선택한 건 수지가 나에게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수지는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 눈빛은 숲 속 사슴처럼 순수하고 애처로웠으며, 눈동자에는 은은한 물결이 일렁였다.그러니 수혁이 수지를 잊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너 왜 아직 가지 않은 거야?”수지는 팔짱을 낀 채를 책망했다.나는 담담하게 반문했다.“넌 이미 공략에 성공했는데, 왜 돌아왔지? 설마 진짜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니겠지?”수지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비웃음을 터뜨렸다.“누가 소설 속 캐릭터를 좋아하겠어?”“그럼 왜 돌아왔는데?”수지는 순수한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악의적인 미소를 지었다.“단순히 내 먹잇감을 다른 사람이 탐내는 게 싫었을 뿐이야. 내가 죽더라도, 수혁은 나만을 사랑해야 해.”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네가 돌아온 뒤로 수혁은 수많은 고통과 절망의 밤을 겪었고, 자해를 반복했어. 내가 곁에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죽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너는 수혁을 도대체 뭐로 여기는 거야? 수지, 네가 무슨 권리로 그럴 수 있지?그저 종이 위에 그려진 인물이라는 이유로 네가 수혁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생각해? 아니면 너도 수혁에게 진심으로 마음이 있는 거니?”나는 수지를 응시하며 수지의 눈에 비치는 감정을 찾으려 애썼다.“내게는 있어.”내가 답하자 수지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래? 그렇다면 너는 틀림없이 질 거야. 왜? 못 믿겠어? 내 한마디면 수혁이 네 뺨을 때리게 할 수 있어.”내가 망설이는 동안 수지는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동시에, 수혁의 검은 구두가

  • 너를 닮은 사람   제2화

    그 모습에 나는 다소 초조해졌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이수혁을 재촉했다.“수혁아.”수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때, 교회 문가에서 슬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혁아, 저 여자는 누구야? 설마 나 몰래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거야?”거의 동시에, 수혁의 턱선이 팽팽히 긴장되었다. 결혼 반지를 들고 있던 수혁의 손가락마저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반지는 수혁의 손에서 미끄러져 딩동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참으로 맑고 청아했다.나와 수혁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수혁의 첫사랑, 백수지가 돌아온 것이다.수지의 예술 사진은 아직도 수혁의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다.“수지야, 돌아온 거야? 설마 이거 꿈이야?”수지는 나를 한번, 수혁을 또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단호한 표정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나는 너를 영원히 떠날 거야.”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지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내가 기억을 잃고 다시 찾고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내가 없는 동안, 너는 나를 이렇게밖에 추억하지 않은 거야?”그러자 수혁은 망설임 없이 내 손을 뿌리치고 수지에게 걸어갔다.“수혁아, 오늘은 우리의 약혼식이잖아. 일단 마무리하고 나서 얘기해, 응?”내 말에 수혁은 걸음을 잠시 멈췄지만, 뒤돌아보지 않은 채 나에게 말했다.“수민아, 너도 알잖아. 너는 그저 대체품일 뿐이야. 충분한 보상을 해줄게, 하지만 오늘 약혼식은 더 이상 불가능해.”나는 간절히 수혁의 손목을 붙잡았다.“수혁아, 나 임신했어.”그 말에 수혁은 나를 돌아보았지만, 그 눈빛에는 기쁨이 아닌 냉담함만이 서려 있었다.“어떻게? 매번 피임약 먹으라고 했잖아.”그 순간, 내가 쌓아온 용기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눈물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설명했다.“한 번은 너가 술에 취한 날이 있었잖아. 그래서 준비를 못 했어.”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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