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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Author: 십일
“이거 뭐야?”

“실험기기 같은데! 그것도 외국인 기술자들이 직접 배달한 거 있지!”

“그냥 배달만 하는 줄 알았어? 기기가 설치되면 디버깅도 해야 한다고.”

“이 실험실은 예전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대단한 기계를 추가한 거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당연히 누가 빌렸겠지!”

“정말 돈이 많네, 이 기기는 보기만 해도 비싼데!”

...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자, 진호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졌다.

지예는 맨 앞으로 비집고 나오더니 기계를 쳐다보았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CPRT는 맞지만 그들과 똑같은 기계가 아니었다.

학교에 있는 기존 두 대보다 크기가 절반이나 작은 데다가 심지어 버튼은 모두 터치만 하면 되었다. 디스플레이도 두 배 이상 컸다.

“이... 이게 최신형 CPRT라고?!”

진호는 삑사리 날 뻔했다.

그들의 기계보다 훨씬 더 고급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능도 더욱 완벽했다.

그는 달려가서 물었다.

“이 기계 어디서 난 거야?!”

정은이 말했다.

“너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민지는 과자를 먹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제 우리에게 혼자 사라고 하지 않았어? 짜잔, 이게 바로 우리가 돈 모아서 산 거야. 대단하지? 뜻밖이지? 너도 우리를 위해 기뻐할 거지?”

진호는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지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도착하다니. 정말 샀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해!”

서준이 말했다.

“넌 예약이라는 것도 모르나 봐?”

“그...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비싼 기계를 이렇게 쉽게 샀다니?’

그러나 이것은 가장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 처벌 공지가 학교 공식사이트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학년 남진일이 고의적으로 실험실을 독점하여 연구 자원을 심각하게 낭비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처벌을 내릴 예정이니, 우리 단과대학의 모든 교수님과 학생들은 이번 일을 반드시 교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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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1화

    재민은 아직 정식으로 실험과제를 접촉하지 않았기에 이 기계가 어떻게 특별한지 잘 몰랐다. 그러나 진일이 놀란 기색을 보이자, 그도 참지 못하고 곁눈질을 했다.“형, 이거 비싸요?”진일은 고개를 끄덕였다.“엄청 비싸지.”“얼마나 하는데요?”“3억 정도.”“네?!”‘이... 이건 너무 비싸잖아. 이렇게 비싼 물건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살 수가 있는 거지? 세 사람이 3억을 모았다니...’재민은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들은 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들이었고, 수확이 가장 좋을 때도 일년에 고작 수백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그리고 이 기계를 사려면 수억 원이 넘었다.재민은 제자리에 서서 멍을 때렸다.이때 복도에서 민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그들이 돌아왔어!’진일과 재민은 뒷문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나가기 전에 진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햇빛속에서 정은, 민지와 서준 세 사람은 웃으며 실험실로 들어갔다.정은은 손에 생수를 들고 있었는데, 아주 비싼 브랜드였다.민지는 간식을 한가득 안고 있었고, 포장에 영문이 가득 씌었기에 값도 엄청 비쌀 것이다.서준은 스포츠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것은 진일이 종래로 본 적이 없는 포장이었고, 그는 그게 어떤 맛인지조차 몰랐다.“형,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재민은 진일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정말 좋네.”재민은 감개무량했다.“그러게요, 새 기계이니 당연히 좋겠죠.”진일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그가 말한 것은 결코 기계가 아니었던 것이다.정은 그들은 반항할 용기가 있었고, 맞설 실력이 있었으며, 더욱 이 모든 것을 받쳐줄 수 있는 돈이 있었다.‘정말 행복하겠군.’이 순간, 실험실 안에서.정은이 말했다.“선생님들 먼저 물 좀 드세요.”민지도 맞장구를 쳤다.“여기 간식도 있어요!”...오미선은 새로운 CPRT가 들어온 지 사흘 만에 이 일을 알게 됐다.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송지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2화

    “짐작 가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송지혜가 물었다.백두강은 차갑게 웃었다.“묻지 마, 어차피 네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니까.”현빈이 이 일로 찾아왔을 때는 그래도 백두강과 예의를 차렸지만, 재석은 직접 문을 밀고 들어와서 질문을 했던 것이다.‘어쩔 수 없지 뭐. 그분은 학술계를 뒤흔들어 놓으신 분이니까.”서비대학교는 한 회사의 경제적 지원을 잃을 수 있지만, 학술 성과를 산출할 수 있는 과학자를 잃을 순 없었다.“그냥 돌아가. 썩어도 준치라고, 넌 오미선 교수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백두강은 냉소를 지었다.‘오미선 교수는 심지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잖아. 그런데도 말 한마디에 심 대표와 조 교수님이 바로 나서셨다니. 송지혜, 넌 쥐뿔도 아니야!’...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송지혜의 귓가에 여전히 백두강의 말이 울렸다.“넌 오미선 교수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아직 멀었어!”“멀었어...”화가 나서 컵을 던지고 싶었지만, 방금 나가기 전에 그녀는 이미 컵을 깨뜨렸다.그래서 손 옆에 필통 하나밖에 없었다.쾅.필통이 벽에 떨어지자, 안에 있던 펜이 바닥에 흩어졌다.이때 서지예가 마침 문을 밀고 들어왔다. 사무실의 우울한 분위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그녀는 인사를 하고 들어온 다음, 안쪽의 탕비실에 가서 음료수 한잔을 따랐다.그리고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목말라 죽는 줄 알았네... 참, 이모, 진일 선배는 논문을 언제 완성할 수 있는 거죠? 오늘 수업할 때 교수님이 물어보셨거든요. 제가 이번 주 안으로 바칠 거라고 했어요. 이모가 좀 재촉해 주세요!”송지혜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논문 쓰는 게 쉬운 줄 알아? 이번 주 안으로 완성할 거라고?! 넌 큰소리를 치기 전에 미리 생각도 하지 않는 거야?!”송지혜가 한바탕 욕설을 퍼붓자, 지예는 어리둥절해졌다.“이모...”“닥쳐! 학교에서는 날 교수님이라 부르라고 했잖아!”“그런데 여기 아무도 없잖아요...”지예는 억울하기 그지없었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3화

    “그냥 데이터가 일치하도록 고쳐. 더 이상 검증할 필요가 없으니까.”진일은 이미 예상했지만, 직접 이 대답을 들으니 여전히 충격을 받았다.“이건 학술 조작이에요!”그는 또박또박 말했다.송지혜는 안색이 돌변했다.“진일아, 넌 철이 든 아이잖아. 어떤 말은 해도 되고 어떤 말은 하면 안 되는지, 너도 다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 거야. 네 교수님으로서 나는 단지 너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을 제공할 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여전히 네가 스스로 결정해야 해.”진일은 고개를 들며 처음으로 예리한 눈빛으로 송지혜를 직시했다.“교수님, 이건 옳지 않아요.”‘이건 옳지 않아...’...진일이 떠난 후, 송지혜는 사무실 문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지금 납득이 안 가도 괜찮아.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성장할 테니까. 그때 가면 진일도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SCI를 얼마나 많이 냈는지, 얼마나 많은 학술 성과를 냈는지야.’과학연구가 단순하다고 하지만, 송지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인맥, 자원, 돈, 지위, 직함등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은 전부 학술 성과와 관련이 있었다.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솔직하게 말할 자격이 있지만, 그 전제는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송지혜는 핸드폰을 꺼냈다.“서정이 좀 불러와.”‘이제 드디어 강서정이 나설 차례가 됐군.’“서정아, 개학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적응 잘 하고 있는 거야? 선배들은 어때? 널 괴롭히진 않았지?”강서정은 송지혜의 관심에 깜짝 놀랐다.“아니에요, 선배님 모두 저에게 잘해 줬어요.”“어, 그럼 됐어. 오늘은 실험실과 관련된 일이 있어서 널 찾은 거야. 너와 상의하고 싶거든.”서정은 두 눈을 반짝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저도 이제 곧 실험실에 들어가서 연구를 참여할 수 있는 거예요?”“넌 내가 인정한 학생이잖아. 그러니 과제팀에도 당연히 네 자리가 있겠지. 하지만 지금 문제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4화

    그 후 며칠, 이런 느낌은 더욱 강렬해졌다.재석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밤에 달리기를 했다.그때 정은은 복도의 동정을 듣고 방금 문을 열었지만, 남자가 이미 집에 들어간 것을 발견했다.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매달 재석은 하루 이틀 정도의 휴식을 취했는데, 정은은 한 번도 그의 집 문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또 한 번은 정은이 문을 열자마자 맞은편의 이미 살짝 열린 문이 다시 닫혔던 것이다. 아마도 재석이 소리를 듣고 다시 닫은 게 분명했다.정은은 영문을 몰랐다.‘내가 언제 선배님에게 실수를 했었나?’그러나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이유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재석이 자꾸 피하지만 않았다면, 정은은 직접 그를 찾아가서 똑똑히 묻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이렇게 피하는 것이냐고.다른 한편, 재석은 소녀의 발자국 소리가 갈수록 작아진 것을 듣고 시간을 추산한 다음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정은이 나가는 것을 보았다.소녀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재석은 복잡한 눈빛을 거두었다.그도 피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피하지 않으면 안 됐다.처음 그런 꿈을 꾼 것은 우연, 의외, 정상적인 생리적 반응일 수 있었지만, 그날 식당에서 정은을 만난 후, 재석은 또다시 그런 꿈을 꾸었다.심지어 처음보다 더 짜릿하고 자극적이며 수치스러웠다.꿈속의 재석은 마치 통제력을 잃은 짐승처럼, 여자의 불쌍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에 매섭게 올라탔다.그리고 지칠 줄도 모르는 듯 자신의 욕망을 발산했다.이번에 그 꿈은 더욱 선명했다.깨어난 다음, 모든 디테일은 머릿속에서 재생되었고, 끊임없이 반복했다.재석은 괴로워하며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를 세탁기에 넣었다.그는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어떻게 이렇게 한 여자를 모독할 수 있는 거지? 그래, 모독.’이런 강렬한 자아혐오 때문에 재석은 지금까지도 태연하게 정은을 마주할 수 없었다.‘만약 만난 다음 또 이런 꿈을 꾼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5화

    이순정과 서철봉은 줄곧 도겸을 미행하며 이곳에 찾아왔다. 도겸에게 들킬까 봐 두 사람은 감히 머리를 내밀지 못했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지금 손에 망원경이 하나 있었으면 얼마 좋아!”‘그러나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강도겸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거야! 그래서 내 딸을 차버린 것이었어!’이순정과 철봉은 한 달 동안 강씨 집안 덕분에 호강을 누리며 지냈다. 그들이 무슨 요구를 제기하면 서영숙은 거의 다 들어주었기에 생활은 그야말로 너무 편안했다.심지어 더 이상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어차피 돈만 손에 넣으면, 나와 우리 철봉이도 이제 평생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서영숙의 상태가 많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두 사람도 속이 후련해지더니 돈을 챙기고 떠나기로 결정했다.그러나 이순정이 100억을 달라고 했을 때, 서영숙은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그렇게 한참 뒤, 그들이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서영숙은 단번에 안색이 돌변하더니 차갑게 말했다.“100억이요? 가서 꿈이나 꾸지 그래요!”그리고 손을 뿌리치며 떠났다.그 후로 서영숙은 더 이상 이순정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호텔을 포함한 모든 비용도 전부 끊어버렸다.모자 둘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 요구가 너무도 지나쳤다는 것을.“엄마, 아니면 그냥 10억으로 바꿀까?”이순정은 며칠이나 망설인 후 이를 악물었다.“그래, 10억도 돈이지!”그러나 서영숙은 그녀의 전화를 전혀 받지 않더니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렸다.어차피 그룹의 주주총회도 끝났으니 욕심쟁이 모자를 잘 모실 필요는 없었다.이순정과 철봉은 서영숙의 태도가 강경한 것을 보고 그제야 도겸을 겨냥한 것이었다.그러나 그는 회사를 출입할 때 줄곧 경호원을 데리고 다녔다. 지난번에 이순정 그들이 소란을 피운 뒤, 출입문 관리는 더욱 엄격해져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그렇게 모자는 도겸을 미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6화

    연희는 억울한 동시에 또 조금의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도겸 씨가 나에게 명분을 주라는 말을 듣고 뭐라 했는데?”지금 아이가 없어졌으니 그 천억도 바람처럼 사라졌다. 연희는 더 이상 아이를 이용해 돈을 얻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만약 강씨 가문에 들어가서 재벌 집 사모님이 될 수 있다면 앞으로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그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연희의 머릿속에는 가끔씩 예전을 떠올렸다. ‘내 몸이 멀쩡하고 아이도 무사할 때, 난 자주 병원에 찾아왔는데. 매일 도겸 씨와 말다툼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아줌마와 싸우기도 했지...’‘난 내 몸이 아주 튼튼하다는 것을 믿고 자주 들볶았는데.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평소에 밀크티를 마시고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한가득 먹었어...’생각할수록 연희는 자신의 뺨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가 정말 없어질 줄 알았으면 난 가만히 있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건데. 왜 자꾸 화풀이를 하고 싶은 거야? 아이를 다 낳은 후에 복수하면 되잖아?’이순정은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말을 했겠어? 강도겸 그 사람은 딱 봐도 태도가 딱딱한 사람이잖아. 한 번 만나기도 어렵다고.”철봉도 들으면서 마음이 답답해졌다.‘그 아줌마는 이미 돈을 주려고 했으니 그냥 10억 챙기고 가면 되잖아? 굳이 100억을 고집하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야...’이순정을 보는 철봉의 눈빛은 원망이 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고분고분 입을 열었다.“엄마, 그럼 우리 이제 어떡해?”이순정은 눈빛이 독해졌다.“우리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뭘 두려워하겠어? 강도겸이 동의하지 않으면 우린 다시 소란을 피우면 되지! 끝까지 한번 해보자고.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어!”이튿날, 모자는 다시 도겸의 회사에 찾아왔다.정문은 경비들이 엄격히 조사를 했기에 그들은 은근슬쩍 들어갈 수 없었다.다행히 철봉은 비상통로를 찾았는데, 은밀한 작은 문을 열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문에는 벽지와 어우러진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어, 언뜻 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7화

    모자는 눈을 마주쳤다.‘드디어 우리와 협상을 하려는 건가?!’이순정은 바로 창가에서 내려왔다.창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창문이었는데, 심지어 위아래로 열리는 디자인이었다. 성인은 전혀 몸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말이 안 됐다.이순정이 이렇게 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일 뿐이며, 도겸과 담판을 하기 위해서였다.‘다행히 성공했어.’그러나 이순정이 철봉과 뒤뚱뒤뚱 도겸의 사무실로 걸어갈 때, 뒤에 있던 비서는 처량하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들 모자를 바라보았다.그 속에는 심지어 동정이 깃들어 있었다....이순정과 철봉이 이 사무실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곳이 화려하다고 느꼈다.이순정도 에두르지 않고 들어온 후 직접 가격을 제시했다.“10억.”도겸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전엔 100억이라고 원하지 않았어요?”이순정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나도 100억을 갖고 싶지만, 너희들이 줘야 말이지!’그동안 이순정은 부자에게 돈이 많지만 가끔은 정말 인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수십억을 들여 말을 한 마리 사거나 골프를 쳤으며, 심지어 카지노에서 수천억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푼도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구두쇠야 뭐야! 돈이 그렇게 많으니 우리에게 좀 나눠주면 안 돼?!’그리고 이순정은 부자들이 허리를 굽힐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정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관건은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있어야 했다.예를 들면, 서영숙은 처음에 돈으로 이순정 그들을 해결하려 할 때, 그야말로 엄청난 ‘성의’를 보였다.그러나 정말 화가 났다면, 전화조차 받지 않은 채 그들을 무시했다.그러니 진정한 부자들과 소통할 때, 억지를 부려도 소용없었다.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대방을 화나게 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이순정은 들어온 후, 밖에 있을 때처럼 울고 보채지 않고 직접 가격을 불렀다.“요 며칠 나도 깨달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418화

    빌딩에서 나올 때, 이순정과 철봉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비록 100억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이순정이 평생 노력해서라도 벌 수 없는 돈이었다.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가려 했고, 이때 화물차 한 대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처음에 그 화물차의 속도는 정상이어서 두 모자는 아무도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차가 먼저 양보할 테니까.그러나 쌍방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 때, 화물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더니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엄마...”철봉은 놀라서 본능적으로 이순정을 불렀다.이순정은 반응이 빨라서 바로 아들을 잡아당기며 옆으로 피했다.“너 뭐야?! 사람 있는 거 못 봤어?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눈이 먼 거야 아니면 뭘 잘못 먹은 거야? 지금 일부러 우릴 죽이려고 작정했어?! 배상해! 이건 반드시 돈으로 배상해야 된다고!”이순정은 두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길 중간에 서서 욕설을 퍼부었다.“이 일을 잘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떠날 생각하지 마! 방금 내가 반응이 빠르지 않았더라면 이미 저 멀리 날아갔을 거야. 우리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서 모든 검사를 받을 거야.”“일단 어디 다쳤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니까. 하지만 이상이 없어도 넌 여전히 책임을 져야 해. 우리가 너 때문에 충격을 받았으니까. 그러니 정신적 손해 배상금을 내야지...”철봉은 바로 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기 시작했다.“엄마! 나 정말 깜짝 놀랐어! 너무 무서워! 나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지금은 낮이야 밤이야? 왜 내 눈앞이 이렇게 캄캄하지?”모자는 그야말로 천상의 호흡을 선보였다. 딱 봐도 전에 자주 이런 일을 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캡모자를 쓴 기사는 이 장면을 보고 차갑게 웃더니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았다.이순정의 목소리가 뚝 그쳤다.철봉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커다란 창문 앞에서, 키가 훤칠한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도로에서 차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도겸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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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2화

    처음엔 진영매도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아이고... 또 오타네... 이걸 또 지우고 다시... 에구구...’속도도 느리고, 자꾸 엉뚱한 단어가 입력돼서 정말 진땀을 뺐다.하지만 어느 날, 자판 옆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눌러봤고, ‘음성 입력'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어머, 말만 하면 글자가 나오네? 이거 진짜 신기하네...’그 뒤로 점점 익숙해지면서 진영매는 ‘두부 단톡방’을 직접 관리하게 되었고, 주문 확인도 척척 해냈다.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서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는 이웃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언니도 공동구매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요즘 동네 맘카페나 톡방에서 다 그걸로 부수입을 벌어요.”“공동구매요?”“네, 단톡방에 링크만 올리면 되는데, 그 링크로 누가 주문하면 언니한테 수수료가 떨어져요. 요즘 그런 플랫폼이 많아요.”그 말에 진영매는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은 물건 몇 개부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무작정 링크만 던져놓는 식으로 하지는 않았다.직접 샀다. 직접 써봤다. 직접 먹어봤다.그리고 진심 담긴 후기를 함께 적어 올렸다.[이건 제가 직접 삶아봤는데, 식감도 쫄깃하고 가격도 괜찮아요. 혹시 필요하신 분만 구매하시고, 안 맞을 것 같으면 굳이 안 사셔도 돼요.]‘괜히 민폐 되기 싫으니까... 무조건 좋다고는 못 하지.’그런데 이렇게 정성껏 올린 글이 톡방 안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처음엔 몇 개, 그러다 열 개, 스무 개... 요즘은 많을 땐 하루에 백 개 넘는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하루 수익만 몇만 원 되는 날이 생기자, 남봉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진짜? 당신 하루 종일 집에 앉아서 그렇게 번 거야?”그는 아침마다 두유를 끓이고, 비지 짜고, 순두부 포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단지 세 군데씩 배달을 돌곤 했다.‘점심엔 다시 나가 광장에 작은 천막을 치고 두부 요리 판매, 해 질 무렵에야 집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1화

    어느새 정은이 실험실에서 지낸 지 거의 2주가 되었다. 이번 집중 실험은 처음 계획대로라면 이틀 정도 일찍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불꽃 열정 모드로 돌입했다.“정은 언니! 우리 이참에 2차 실험안도 다 밀어붙여요! 타이밍 완벽하잖아요! 이왕 하는 김에 끝까지 가보자고요!”진일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어차피 난 어제도 오늘도 실험실에서 잘 운명인데... 집에서 자나 여기서 자나... 거기서 거기지 뭐.’서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민지 편. 민지가 하자고 하면, 그냥 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 뭐.정은은 그런 셋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 그렇게, 예정보다 이틀 더 실험실에 갇혀 살며 2차 실험안까지 초안 작업을 마무리했다.민지의 슬로건은 이랬다.“오세요! 같이 말아봐요! 끝없는 연구의 늪!”그리고 마침내 모든 걸 정리한 날.“정은 언니! 헤헤. 저요... 연차 쓸게요! 푹 쉬어야겠어요!”‘뭐야, 이 모든 열정의 뿌리는 결국... 편하게 놀기 위한 전주곡이었어?’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승인.”오후엔 서준이 조용히 다가왔다.“누나...”“혹시 너도 연차 쓰려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둘이 같이...? 이건 무슨 흐름이지?’그렇다면 정은은 결단을 내렸다.“그냥 모두 이틀씩 쉬자. 다들 수고했으니까.”‘일도 일이지만, 쉬는 것도 중요하지. 그래야 오래 가지.’특히, 실험복을 벗지도 않고 앉아 있는 진일을 보며 정은은 단호히 말했다.“진일 선배는 특히 금지! 쉬는 날에 실험실 들어오면, 바로 벌금이에요!”진일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벌금...? 아니, 요즘은 연차 쓰라고 협박하는... 그런 시대인가...?”정은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그럼... 집에 좀 다녀올게. 이맘때쯤이면 우리 집은 옥수수 수확 시즌이라... 도와야 하거든, 헤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0화

    정은은 순간 멈칫했다.“조 교수님? 그분이 여길 다녀가셨어?”“네, 두 시쯤 오셨던 것 같아요. 한참이나 언니를 기다리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한 시간 넘게 앉아 계시다가 10분 전에 그냥 가셨어요.”‘10분 전...?’정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가 돌아오기 직전...’“언니, 조 교수님... 요즘 스트레스가 좀 많으신 것 같지 않아요? 혹시 다른 실험실에 새로운 과제라도 시작한 걸까요? 지난번 과제 마무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시작이라니... 진짜 무서워요, 그 열정...”정은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런 생각이 들어?”“그게... 오늘 조 교수님 상태가 좀 이상했어요. 뭐랄까... 눈 밑 다크서클이 거의 좀비 수준...? 적어도 이틀은 연달아 밤을 새우신 것 같았어요.” “게다가 표정도 되게 딱딱하고... 그냥 누가 봐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그런... 음... 미간 주름으로 모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그랬구나.’정은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뭐, 늘 바쁘시잖아.”정은은 애써 담담하게 넘기려 했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복잡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민지는 입을 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숙였다.‘근데 진짜... 이상하게 느껴졌단 말이지...’‘그냥 피곤해 보인 게 아니라, 뭔가... 속이 무너진 느낌?’...한편, 재석은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몰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그리고 차를 멈춰 세우자,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정은이는 오늘 차를 가져갔었네.’‘그럼... 차를 가져갔으면서, 왜 장은혁 차를 타고 왔지?’입술이 아주 얇게 다물어졌다.표정 하나 없이, 그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 건 사람은 진욱이었다.[나, 어제 분명히 퇴근 전에 분석 리포트를 너한테 넘겼었잖아? 그런데 지금 보니 없어졌어. 어디 간 거지?] 재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기본적인 실수는 애초에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9화

    은혁은 뭔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느낌. ‘이런 게 설렘인가...?’“은혁 씨, 고마워요.”멀리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넨 정은은 조용히 걸어가며 귀걸이를 착용했다. “정... 정은 씨!”그 순간, 정은이 멈춰 서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네? 무슨 일 있어요?”은혁은 당황해서 말이 꼬였다.“저, 그게...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식사 한번...” “아니면,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되실 때... 제가 꼭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정은은 순간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식사요...? 왜요?”“그게...”은혁은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잽싸게 핑계를 떠올렸다.“아! 제 사촌 여동생이요, 예전에 정은 씨가 보내준 시험 대비 정리자료를 되게 잘 봤다고...”“꼭 밥 한번 사드리라고... 신신당부해서요! 감사 인사 겸해서요!”정은은 시선을 실험실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죄송해요. 오늘은 당장 들어가서 실험해야 해요... 그리고 요즘은 계속 이 안에서 지내느라, 언제 시간이 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은혁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정은은 살짝 웃으며 말을 끊었다.“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말이 끝나자마자, 정은은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해 실험실로 들어갔다.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혁. 문 옆에 붙어 있는 간판을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무한 실험실?”차로 돌아온 은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무한 실험실... 설립, 소정은, 연구 성과...]‘정은 씨... 서비대 대학원을 나왔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였다고?’논문 게재 수, 영향력 지수, 직접 설립한 실험실, 정부 과제 주도...은혁은 화면을 스크롤 하며, 점점 입꼬리가 올라갔다.‘이 정도면... 그냥 똑똑한 수준이 아니네. 완전 대단하잖아...’그렇게 넋을 놓고 화면을 보고 있던 찰나, 갑작스러운 경적이 들렸다. 빵!까맣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8화

    명주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들켰네요... 좋아요, 그럼 제가 0.1% 더 양보할게요. 이게 정말 마지막 양보입니다.”정은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0.3이요. 저도 그게 최선이에요.”명주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정은은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딱 알맞게 비워진 컵.“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연락드릴게요.”정말로 가려는 발걸음이었다.명주는 예상치 못한 정은의 단호한 태도에 급히 따라 일어났다. “아, 잠깐만요! 가격이라는 게... 원래 대화하면서 맞춰가는 거잖아요!”정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저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잡담은 별로 안 좋아해요. 0.3이 괜찮으시다면 바로 계약서 쓰시고, 아니라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요.”‘이 분위기, 진짜다... 장난 아니네, 이 사람...’명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은이 진짜 나갈 기세라는 걸 느끼자,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요. 그렇게 하죠.”정은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계약 성사네요.”서류는 빠르게 정리됐다.두 사람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장비 납품 일정과 설치 세부 사항까지 깔끔하게 조율했다.완벽한 비즈니스 매듭이었다.서류를 챙겨 일어서려던 정은은 명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은 씨!”“혹시...사람들한테 ‘심리 꿰뚫는 거 잘한다’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명주는 씁쓸하게 웃었다.“사실, 장비를 오늘 꼭 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은 씨는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태도로 딱 버티시더라고요.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계약이 끝나고 난 다음이었어요. 하하...” 정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아뇨, 그런 말은 들은 적 없어요.”“거짓말.”정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대신,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뭔데요?”정은은 돌아서며 미소를 흘렸다. “먼저 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7화

    ‘아니지. 정은 언니 원래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 으앙, 괜히 비교돼!’“무슨 생각 그렇게 골똘히 해?”정은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사람이야, 쇳덩이는 아니란 뜻이지. 급하지도 않은 일정인데 밤새우는 게 뭐 그렇게 재밌겠어.” “맞아요! 근데 언니는...”“너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야.”민지는 안도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조금’이... 얼마나 조금인데요?”“음...”정은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두 시간.”민지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하... 내가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었네.’ 바로 그때, 건너편 검사용 실험실 문이 열리며 서준이 샘플 봉투와 리포트를 들고나왔다.“서, 서준아... 언제 일어났어...?”민지는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서준은 솔직하게 답했다.“6시. 왜?”민지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나만 8시까지 잤네. 이럴 거면 알람은 왜 맞췄냐고... 으악...!!!’그렇게 오전 내내, 민지는 그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르게, 집중력도 세 배로 끌어 올렸다.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민지는 실험대에서 털썩 내려와 길게 숨을 내쉬었다.같이 집중 근무에 들어간 팀원이 많으니, 정은은 미리 모두의 하루 세 끼 도시락을 예약해 두었다. 밥 짓고 반찬 할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가 가득한 냉장고를 털어 요리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민지는 반찬을 한 입 먹고는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스러운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헐, 이거 SAMES 거다... 가격 꽤 나가는데...”남진일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와, 밥 진짜 맛있다. 이거 쌀도 좀 다르지 않아? 완전 길고 쫀쫀한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일은 밥을 세 그릇이나 비웠다. 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실험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민지.‘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 쉴 땐 좀 쉬라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6화

    장마가 시작되자, 날씨는 마치 기분이라도 있는 듯 변덕을 부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살 좋던 하늘은 오늘 아침부터 부슬비로 젖어 있었다.재석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귀가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옷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기에, 그대로 샤워실로 향했다.뜨거운 물로 몸을 데운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휑한 침대를 바라보며 손을 멈췄다.며칠 전, 침구를 몽땅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새로운 걸 깔지 않은 채로 며칠 밤을 그냥 잤다.그는 말없이 장롱에서 깨끗한 시트를 꺼내어, 이불까지 정돈했다.‘그날 정은이가 그랬지... 아버님이 장조림이랑 김치까지 챙겨주셨다고. 가지러 오라고 했었는데...’그때, 재석은 머리를 말렸고, 내복을 갈아입은 후 맞은편 정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정은아, 안에 있어?”“정은아...?”대답은 없었다.재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평소 같으면 실험실에서 돌아왔을 시간인데...’그 후로 두 시간. 재석은 몸은 집 안에 있었지만, 신경은 늘 현관 쪽에 쏠려 있었다.작은 인기척만 나도 바로 고개를 들어 도어락을 확인하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현관문 앞에 섰다.하지만 그 누구도, 정은은 아니었다.새벽 1시. 정은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오늘도 실험실에서 자려나...’재석은 조용히 불을 끄고 침실로 향했다.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뭐랄까... 괜히 허전하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단순한 우연이겠거니,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실험실로 출근했다.그날 저녁. 재석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야간 러닝을 나섰다.8시부터 10시까지. 아파트 단지 아래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그 사이, 정은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재석은 또다시 시간을 더 보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리는 동안, 몇몇 이웃들과 마주쳤다.“조 교수님, 오늘도 러닝하세요?”“운동을 정말 꾸준히 하시네요. 올해에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5화

    정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재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선배님, 아빠가 장조림을 잔뜩 가져왔어요. 선배님 것도 있는데, 언제 집에 계세요? 가져다드릴게요.]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반찬 봉투, 가지런히 담긴 장조림, 그리고 열무김치 세 통.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근데 요즘은 계속 실험실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휴... 병원 간 건 아니구나.’정은은 마음을 놓고는, 바로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공기 샘플 분석 결과 나왔어요.]그리고 곧바로 분석 리포트 파일도 함께 전송했다. 하지만 이번엔 곧장 답장이 오지 않았다.정은은 씻고 오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10분 전 도착한 메시지.정은은 손에 수건을 쥔 채 그대로 메시지를 열었다.[경찰 측 보고서랑 거의 일치해. 환각이나 각성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어.]‘그래... 그래서 미제 처리된 거구나.’M시 경찰은 결국 사건을 입건하지 않았다. 재석이 수아를 바로 해고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린 건, 바로 이 수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정식 수사가 들어갔다면, 이수아가 마주할 건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겠지.’정은은 머리를 닦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정은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전화를 받았다.“그 약, 기존에 유통되던 제품이 아닌 것 같아요. 성분이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기에서도 검출이 안 될 정도라면...”“제작한 사람도, 유통한 사람도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인맥이나 자금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선배님, 조심하셔야 해요.”[응. 알겠어.]말이 끝난 후, 찰나의 정적. 전화 속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렸다.“선배님...”정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요즘... 아예 집에 안 들어가세요?”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짧게 대답했다.[응...]‘그냥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4화

    5월 말, 이미숙은 원작 소설 영화 제작 발표회 참석차 J시에 왔다. 주말 일정이라 남편 소진헌도 함께였고, 겸사겸사 정은에게 나눠 줄 장조림 한가득과 직접 담근 김치 여섯 통도 챙겨왔다.“완전 유기농! 방부제 제로! 아, 조 교수 것도 좀 나눠줘. 혼자 다 먹지 말고.”말을 끝내기 무섭게, 소진헌은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바빴고, 떠날 땐 미련도 없었다.이번 일정은 주최 측에서 식사며 숙소까지 전부 제공했는데, 행사 장소가 이춘재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던 탓에 소진헌 부부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래도 짬을 내어, 오후 한나절을 이춘재, 봉수진 부부와 보내며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 한 끼는 함께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딸이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사위는... 뭐, 그냥 딸을 따라다니느라 바쁜 걸로 치부하고 이해해 줬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두 노인도 L시로 내려갈 텐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당에 굳이 소진헌 부부를 집에 머물라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정은은 아버지의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밑에 놓인 장조림 봉투를 내려다봤다.‘이걸 내가 다 먹을 순 없지.’정은은 장조림 반 정도를 덜어, 다른 봉투에 담았고, 김치도 세 통 넣었다. ‘재석 선배님 오면 같이 주자.’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녀가 이미 논문 세 편을 다 읽을 때까지도 맞은편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은은 혹시나 놓쳤나 싶어 직접 문 앞으로 가서 노크했다.“선배님, 집에 계세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또 실험실에서 밤샘 중이겠지.’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요즘 정은도 실험실에서 자는 날이 부쩍 늘었고, 남진일은 아예 실험실을 제 집처럼 쓰고 있었다.민지는 심지어 진지하게 조언까지 했다.“진일 선배, 옷장 두 개 더 넣고, 정은 언니가 냄비랑 밥그릇만 좀 들고 오면 그냥 자기 집 완성인 거 알죠?”‘진짜 그렇게 될까 봐 무서울 정도라니까.’며칠 지나지 않아, 진일은 정말로 중고 옷장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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