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진 언니, 방금 류머티즘이라고 하셨어요?”“너도 이 병을 알아?”“네. 오미선 교수님도 이 병을 앓고 계세요. 저한테 한약 처방전이 있는데, 근절할 수는 없지만 진통 효과가 좋은 데다가 부작용도 일반 약보다 훨씬 작아요.”미진은 이 말을 듣자 두 눈이 밝아졌다.“그럼 정말 잘 됐네! 이따가 그 처방전을 나에게 보내줘. 내가 퇴근하면 바로 약국에 가서 약을 사야지. 너무 고마워, 정은아. 넌 모르겠지만, 우리 시어머니는 아파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니깐. 진통제도 효과가 없어. 지금 나도 다른 방법이 있어야지. 만약 그 약에 정말 효과가 있다면, 내가 밥 살게!”정은은 웃으며 말했다.“밥 사실 필요 없어요. 마침 도왔을 뿐인데요.”진욱이 말했다.“너희들 발견했어? 정은이가 온 이후로 우리 매번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늘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 같아. 정은이는 우리 실험실의 복덩어리가 다름없어!”손태민은 금방 도착했다.“복덩어리요?”미진이 대답했다.“정은이 말이야. 예쁘고 또 만능이니 복덩어리와 다름없잖아.”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려고 했는데, 이수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황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누가 제 컴퓨터에 손을 댄 것 같아요!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실험 데이터가 모두 삭제되었단 말이에요!”“뭐야?”“또 바이러스에 걸린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진욱은 즉시 자신의 컴퓨터 앞으로 걸어가 살펴보기 시작했다.“지난번 IT 쪽에서 방어벽을 업그레이드했으니 바이러스는 아닐 거야.”미진도 바로 자신의 컴퓨터를 켰다.일시에 사람들은 긴장되기 시작했다.진욱이 말했다.“난 데이터를 잃어버리지 않았어. 미진아 넌?”미진이 대답했다.“내 것도 멀쩡한데.”두 사람은 동시에 태민과 정은을 바라보았다.태민도 말했다.“저도 문제가 없어요.”정은이 대답했다.“저도요.”그래서 수아 혼자만 데이터가 없어진 것이다.미진이 생각했다.“다시 한 번 찾아봐. 다른 곳에 저장해 둔 거 아니야?”수아는
태민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수아는 모두들 정은을 돕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필이면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소정은의 속셈이 도대체 무엇인지 누가 알겠어요? 만약 다 우리를 속인 거짓이라면요? 어제 아침에 체크할 때 멀쩡했던 데이터가 오늘 사라졌다니. 어제 오후, 미진 언니와 전 교수님이 먼저 떠나셨죠? 그리고 저와 태민 선배가 바짝 따라 떠났고요. 그럼 실험실에는 소정은과 소 교수님만 남은 셈이잖아요. 소 교수님은 이렇게 할 이유가 없으시니, 남은 건 오직 소정은일 뿐이에요!”수아는 기세등등하게 몰아쳤다. 언뜻 들으면 꽤 그럴 듯해 보였다.그러나 정은은 여전히 그 속의 허점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수아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어제 아침에 데이터를 체크했다고 했죠? 그럼 어제 떠날 때는 검사한 적이 있나요?”“물론이지! 그때는 데이터가 다 있었다고!”“확실해요?”“그럼. 넌 왜 이걸 물어보는데? 내가 일부러 너한테 누명을 씌웠다고 말하려는 거야?”정은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좋아요, 선배 말을 믿을게요. 그럼 데이터는 어제 떠난 후부터 오늘 실험실에 도착하기 전, 이 기간에 없어진 거란 말이죠?”“맞아.”“그럼 그동안의 감시 카메라부터 확인해 봐요.”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CCTV가 있다는 것을 깜박했네. 우리 실험실은 24시간 동안 CCTV가 켜져 있잖아.”“그래요.” 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소했다.“그럼 먼저 감시 카메라부터 확인해요. 저도 제가 고의로 누구를 겨냥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감시실에 오자, 진욱은 그들에게 최근 이틀 간의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겠다고 했다.그러나 그 결과, 감시 카메라가 사라졌단 것이다.미진이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CCTV가 왜 없어져요?”경비도 영문을 몰랐다.“최근 한 달의 CCTV는
진욱이 물었다.“너한테 방법이 있어?”“삭제된 실험 데이터를 직접 복구한 다음, 삭제 기록을 확인하는 거예요. 그리고 데이터가 삭제된 정확한 시간을 찾은 다음, 그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실험실에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거죠.”“그건 그렇지만, 누가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을까? 그 컴퓨터의 휴지통은 이미 비워져 있어서 복구하기가 어려울 텐데.”정은이 대답했다.“제가 한 번 해볼 수 있어요.”처음에 말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데이터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는 것은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이었다.그러나 지금, 이 문제는 이미 감시 카메라로 해결할 수 없었다.정은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려 할 때, 재석이 갑자기 그녀를 제지했다.정은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재석이 설명했다.“현재 정은이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잖아. 기존의 추론이든 의심이든 모두 수아 개인의 주장이고. 이것은 마치 길거리에서 지갑을 도둑맞은 것과 같아. 가장 도둑처럼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끊임없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의심을 뒤집어씌우고 있잖아.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도둑놈처럼 생겼다, 차림새가 건들건들하다는 이유로 말이야. 그럼 그 사람은 단지 남의 의심 때문에 자신이 도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까? 아마도 상대방이 정신병자라고 욕을 하겠지.”재석은 정은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정은아, 넌 사실을 증명할 능력이 있지만, 자칫하면 자신을 증명하려다가 남의 함정에 빠질 거야.”그 순간, 정은은 재석은 선보인 엄청난 이성과 논리사변능력에 충격을 받았다.“그래.” 미진은 이마를 두드렸다.“왜 정은이 스스로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건데? 의심을 한 사람이 증거를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이 말이 나오자, 모두들 수아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미소가 굳어졌는데, 일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됐는지 몰랐다.“저, 저도 단지 의심했을 뿐이에요.”수아는 침을 삼켰다.
재석은 정은이 자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저녁 8시, 재석은 모두에게 야식을 대접했다.“이 가게는 꼬치구이가 정말 싸고 맛있거든. 정은아, 이 간판 메뉴는 꼭 먹어야 해. 내가 소고기구이 더 시켜줄게.”자리에 앉자마자 미진이 열정적으로 말했다.진욱은 정은의 왼쪽에 앉아 먼저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날씨도 더우니 땀이 많이 날 거야. 일단 차부터 좀 마셔. 저쪽에 식욕을 돋우는 반찬도 있는데. 김치를 강력히 추천할게. 좀 먹을래?”정은은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열정에 놀랐다.‘수아 선배가 나한테 죄를 뒤집어쓴 일로 미안해서 그런가? 안 그래도 되는데.’수아는 묵묵히 이 장면을 보았고, 입술을 점점 더 세게 깨물었다.‘예전에 다들 에워싸며 챙겨줬는데, 소정은이 온 후부터, 사람들 조금씩 그 사람의 편을 들기 시작했어. 난 빤히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좀 답답해서요,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 좀 마셔야겠어요.”말하면서 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태민은 줄곧 수아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때 그도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근처의 골목은 인터넷에서 유명한 장소였는데, 골목 양쪽에 화려한 등불이 가득 걸려있었다. 수아는 목적없이 걷고 있었고, 태민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수아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귀찮아서 뒤돌아보았다.“대체 언제까지 따라올 거예요? 귀찮지도 않아요?! 전 나와서 숨 좀 쉬어도 안 되는 거냐고요?”태민은 잠시 침묵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수아야, 네 데이터 말이야, 정말 잃어버린 거야?”수아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그게 무슨 뜻이죠?”“요 며칠 우리는 퇴근하자마자 바로 실험실을 떠났잖아. 넌 언제 그 실험을 완성할 시간이 있었지? 데이터는 더 말할 것도 없고.”“선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수아는 약간 화가 나서 목소리도 절로 커졌다.“넌 정말 착한 여자아이잖아.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돼.”수아는 입술을 깨물
“비록 전 교수님과 미진 누나, 그리고 소 교수님은 모두 정은을 관심하고 있지만, 난 아니야. 내 눈에는 너 하나밖에 없거든. 난 영원히 네 편에 서서 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여길 거야. 난 네가 정말 너무 좋아. 나에게 널 보호하고, 네 곁에 서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줄래?”태민은 수아가 실험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그녀는 열정적이고 활발하며 재능이 있었고 또 집안까지 무척 좋았다. 아무튼 자신과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기에, 태민이 수아에게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그는 수아를 오랫동안 좋아해왔지만, 수아는 줄곧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태민은 갑자기 자신을 위해 다시 한번 노력해 보고 싶었다.수아는 남자의 다정한 눈빛을 무시했다. 그녀는 단지 놀라움과 의심이 들 뿐이었다. ‘지금 나에게 사귀자고 고백한 속셈이 도대체 뭐지! 일종의 협박인 건가? 이 틈을 타서 자신의 고백을 받아들이라고? 만약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내가 한 모든 짓을 알려주는 거 아니야?’두려움을 느끼자, 수아는 몸서리를 쳤다. 만약 그녀가 실험실을 떠난다면, 재석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수아야? 날 거절해도 괜찮아.”태민은 머리를 긁적였다.“이 두 가지 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나도 갑자기 용기가 생겨 이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참, 난 네가 왜 정은을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해. 하지만 앞으로 정말 그런 짓 하지 마. 만약 소 교수님에게 알려지면, 넌 정말 엄중한 처벌을 받을 거야.”비록 태민은 진심으로 수아가 걱정돼서 이런 말을 했지만, 수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녀는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다.‘흥, 정말 날 협박하고 있었어.’“좋아요, 그럼 사귀어요.”“뭐, 뭐라고?” 태민은 이미 거절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수아가 이렇게 대답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수아는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사귀자고요.”“우와! 수아야,
강변을 따라 앞으로 걷자, 양쪽의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있었다.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도시가 갑자기 조용해져 정은은 시간과 함께 천천히 걷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침묵이 흘렀지만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척 화기애애했다.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사람 곁에 있으면 가장 편한 것 같았다.“다리에 가서 바람 좀 쐴래요?”정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잔머리를 뒤로 넘겼다.재석은 정은의 눈빛을 따라 멀리 바라보았다.“그래. 하지만 좀 먼 것 같은데.”정은은 농담을 했다.“벌써 힘이 든 거예요?”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대답했다.“그럼 시합해볼래?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말을 마치자, 재석은 자신의 말이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나이를 합치면 이미 50살이 넘었는데,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제안을 하다니.정은은 오히려 도전해보고 싶었다.“좋아요, 그럼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는지 봐요. 진 사람은 아이스크림 사기!”만약 수민이 있었다면 진작에 눈을 부라리며 야유했을 것이다.“야, 넌 머릿속엔 아이스크림밖에 없냐?”“달랑 아이스크림만 달라고 하다니. 우리 오빠 돈 엄청 많아. 비싼 걸 사달라고 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걸?”그러나 재석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럼 내가 셋 세면 바로 시작하는 거예요. 셋, 둘, 하나...”정은은 발을 빼며 달렸고, 재석은 그녀의 뒤에서 천천히 뒤쫓았다.달리는 과정에서 재석은 정은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했다.단숨에 다리로 뛰어간 정은은 힘들어서 숨을 헐떡였지만 눈빛은 무척 밝았다.잠시 후, 그녀는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았고, 작은 여우처럼 득의양양했다.“선배님, 내가 이겼어요!”재석은 이미 편의점 입구까지 걸어갔는데, 냉동고를 가리켰다.“어느 거 먹고 싶어?”“딸기 맛이면 돼요, 고마워요.”재석도 자신을 위해 아무 하나를 골랐다.그렇게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가에 나른하게 앉아 운
“매번 엄마가 찾아내시면, 나와 아빠는 이를 교훈으로 삼아 돈을 더 은밀한 곳으로 숨겼거든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마치 우리 몸에 카메라라도 장착한 것처럼 아무리 찾기 어려운 곳이라도 바로 찾을 수 있었...”말하면서 정은은 재석이 이미 오랫동안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선배님, 듣고 있어요?”그녀는 고개를 돌리자, 재석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쳤다.정은은 멍해졌다.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어깨까지 자랐는데, 방금 밥을 먹을 때 머리띠가 이미 느슨해졌다. 이때 밤바람이 스치자, 정은의 머리카락은 흩날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그 순간, 뜻밖에도 매혹적이었다.“응, 듣고 있어.” 남자의 목소리는 약간 잠겼다.“아주머니는 아주 똑똑하시고, 더욱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계셔.”정은은 시선을 돌렸다. 목이 좀 말라서 그녀는 침을 삼켰고, 한참 후에야 계속 말했다.“물론이죠, 우리 엄마는 미스터리 소설을 쓰시는 작가잖아요!”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추리하는 능력이었다.만약 소진헌이 정은에게 예의염치를 알게 하고,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이미숙은 정은 자신이 가장 되고 싶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그럼 선배님은요? 선배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책을 보고, 공부하고, 시험을 봤지.”“그게 다예요?”“다른 것도 있겠지만, 이미 기억이 잘 나지 않네.”오늘의 가로등 불빛이 너무 부드러워서인지, 아니면 정은의 눈빛이 너무 밝아서인지, 재석은 강 건너편의 네온등판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하소연하고 싶어졌다.“다섯 살 때였나, 난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물리에 관한 책을 하나 보았어. 이름은 이었고.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물리와 관련된 책을 접했던 거였어. 심지어 난 '물리'라는 두 글자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무척 재밌다는 것을 발견했어.”남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눈빛은 간절하고 뜨거웠다.“‘천지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려면 만물의 이치를 분석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 우주의 가장
정은은 발걸음을 멈추었다.“미진 언니, 전 교수님, 왜 저를 이렇게 보고 계시는 거예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미진과 진욱은 바로 이 말을 기다렸다!“정은아, 너와 상의할 일이 하나 있는데.”“무슨 일이죠?”미진이 말했다.“지금 내 손에 두 조의 데이터가 있거든. 양이 엄청 많아. 계산은커녕 정리하기도 어려워. 정은이 넌 프로그래밍을 잘하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생각해 줄 수 있어?”진욱은 얼른 보충했다.“우리는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라서 기껏해야 전통적인 속산법을 사용하고 있거든. 그러나 이번에 데이터 양이 정말 너무 많아서 그래. 인간은 결국 컴퓨터와 비교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에헴... 네가 우리를 도와 프로그래밍 같은 것을 써줬으면 좋겠어. 이 데이터를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으면 더 좋고.”30분 후.“미진 언니, 이 계산 링크와 운행 속도는 어떤가요? 조정해야 할 부분이 있나요?”정은이 자리를 비켜주자, 미진은 앉아서 마우스로 확인했다.원래 5일 넘게 걸려야 계산을 마칠 수 있었지만, 이런 속도라면 하루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정말 대단해! 고마워, 정은아. 정말 사랑한다! 어쩜 이렇게 대단한 거니!” 미진도 원래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정은은 그녀에게 엄청난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주었다!정은은 손을 흔들었다.“천만에요, 어려운 일도 아닌 걸요.”진욱은 얼른 다가왔다.“내가 한 번 해볼게...”재석은 수업이 끝난 후 평소대로 실험실에 들어왔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정은이 불편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억지로 의자에 앉아있었다.그리고 미진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고, 진욱은 방금 뛰어나가서 산 밀크티를 건네고 있었다.“정은아 수고했어. 내가 어깨 두드려 줄게. 우리 남편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어...”“정은아, 밀크티 좀 마셔. 설탕을 많이 넣지 않았으니 혈당에 아무 부담도 없을 거야!”재석은 영문을 몰랐다. 그의 ‘수하’들이
봉수진이 말했다.“이 작가님은 이름이 이미숙이라고 하는데, 우리 미숙이와 이름이 똑같잖아.”이것은 그녀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표지의 작가 이름을 보았을 때, 봉수진은 완전히 멍해졌다.이춘재는 한숨을 쉬었다.보아하니 그도 이것 때문에 이 책을 펼친 것 같았다.그 결과, 이춘재는 이 책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고 느꼈다.원래 봉수진은 그저 무심코 물었을 뿐, 현빈이 정말 알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알아요.”그는 이미숙과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이춘재는 지난번 서점에서 본 그 소녀가 바로 이미숙의 딸이란 것을 깨달았다.그날, 위층에서 마침 이 책의 사인회가 열렸다.그는 웃음을 금지 못했다.“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봉수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그 여자애를 떠올렸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듣기 좋아 그녀는 갑자기 정은이 보고 싶어졌다.“그 아이는 딱 봐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고 자란 게 분명해. 영리하고 철이 들었지, 또 예의가 바르지. 이렇게 우수한 부모만이 이렇게 우수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어.”‘언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겨울이 되기도 전에 유보영은 호주로 휴가를 갔다.그녀는 해마다 그랬기에 작업실 사람들도 모두 익숙해졌다.유보영에게 돈이 많았으니 이렇게 즐기는 것도 당연했다.사실 유보영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 그녀의 직원들은 전혀 모른다.다들은 이곳이 출판사라는 것밖에 몰랐다.유보영은 매년 돈을 들여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과 계약했고, 그 다음은 없었다.계약한 이 작가들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새 책을 출판하는 경우는 더욱 없었다.마치... 문학계에서 사라진 것처럼.예전에는 분명히 그렇게 유명했는데, 왜 유보영을 만난 후에 재능이 떨어진 것일까?그럼 유보영은 왜 또 그들과 계약을 한 것일까?작업실은 또 어떻게 돈을 버는 것일까?수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좀 작작해, 이런 것들은 너와 나 같은 직장인이 걱정할 차례가 아니야.”“난 걱정하지 않
“이 시간이 됐으니까 그러지. 우리를 보러 와도 아침에 찾아왔을 텐데. 너답지 않게 왜 그래.”현빈은 웃으며 이춘재를 부축하고 거실로 향했다.“제가 오고 싶어서 그래요. 두 분이 무슨 손님이에요? 약속을 잡고 만나뵐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하하하, 넌 아주 바쁜 사람이니 시간을 좀 낼 수 있다는 게 쉽지 않아.”“할아버지, 지금 저를 헐뜯으시는 거예요, 칭찬하시는 거예요?”이춘재는 웃음을 터뜨렸다.현빈은 소파에 앉자, 엉덩이 아래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책 한 권이었다.표지에는 뜻밖에도 이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아, 이거 제가 차에 둔 책 아니에요?” 현빈은 한눈에 이 책이 자신의 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책 모서리를 접는 것에 익숙해져서 접힌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맞아! 지난번에 네 차에서 내릴 때 가져갔는데,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어!”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웠다.“읽어 보셨어요?”이춘재는 고개를 끄덕였다.“절반 봤지.”“그래서 제가 들어오기 전에 여기 앉으셔서 이 책을 읽고 계셨어요?”이춘재는 아직 벗지 않은 돋보기를 밀었다.“왜? 안 돼?”“눈이 아프지도 않으세요?”이때, 흔들의자에 앉아 있던 봉수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도 그렇게 말했다! 나처럼 다음 독서앱을 다운로드해서 읽어주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좋아. 스스로 볼 필요도 없잖아. 한 글자 한 글자 안경을 쓰고 보는 것보다 더 편리하지 않니?”이번에 현빈은 정말 깜짝 놀랐다.“할머니도 이 책을 읽어... 아니다, 이 책을 듣고 계셨어요?”봉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현빈아, 이리 와, 내가 말하는데,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잘 썼어!”“재밌어요?”“그럼. 제1화와 2화에서 쓴 묘사 좀 들어봐. 글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니깐.”현빈이 이어폰 하나를 받아 귀에 꼈다.[임수천은 온몸이 흠뻑 젖었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때, 그는 갑자기 앞에 별장 한 채가 있는
“그래요.” 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 먼저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언니! 저도 데리고 같이 가요! 저도 같은 방향이잖아요!”서준은 그녀를 잡아당겼다.“넌 왜 눈치 없이 끼어드는 건데? 이따가 내가 차로 데려다 줄게.”“그, 그럴 필요가 있을까?” 방금 민지는 너무 심하게 서준을 비웃었기에, 이따가 이 깍쟁이가 복수를 할까 봐 두려웠다.“당연하지.”현빈은 재석과 정은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좁고 긴 눈을 가늘게 떴다.차에 탈 때, 정은은 목도리를 벗었고 재석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정은이 뜻밖에도 정말 그에게 건네주었다니.임정식은 다가와서 현빈의 어깨를 두드렸다.“이 상태로 운전하려고? 방금 너 술 많이 마셨잖아. 법을 위반하는 일은 하지 말자...”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조 교수님은요? 술 안 마셨어요?”“아니.” 임정식은 손을 흔들었다.“그렇게 확신하세요?”“바로 내 옆에 앉았으니까. 그럼 나도 당연히 재석이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그런데 왜 옆에 술잔이 놓여 있었는데요? 안에 소주까지 따랐잖아요?”“소주? 난 재석이 사이다 따르는 것을 보았는데.”‘그래, 조 교수! 또 날 당하게 만들다니.’곧 기사가 차를 몰고 왔고, 현빈은 차를 타고 떠났다.창밖의 경치를 보면서 현빈은 턱을 매만졌다.‘정은이 집 근처에 집 하나 사야 되나? 다음에 또 이런 상황 생기면, 나도 조 교수처럼 핑계를 댈 수 있잖아!’그러나 이 생각도 잠시, 현빈은 바로 정신을 차렸다.‘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토끼가 무서워해. 겁을 먹으면 숨을 것이고, 다시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할 거야. 강도겸이 바로 그 예지. 그러니 난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돼. 하지만... 조재석 그 자식 정말!’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별이 밤하늘을 꾸미기 시작했고, 귓가에서 울리던 도시 소음도 조금 사라진 것 같다.평일의 일정에 따라 기사는 현빈을 본가로 데려다 주어야 했다. 그러나 현빈은 갑자기
그리고 10살 된 서준의 사진이었다.“이렇게 뚱뚱했어?!” 정은은 놀라서 외쳤다.사진 속의 서준은 어릴 때처럼 귀엽지 않았는데, 마치 작은 곰처럼 뚱뚱해졌다.그렇다, 뚱뚱할 뿐만 아니라 엄청 까맸다.눈은 볼살에 의해 실눈으로 변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마침 여름이었는데, 상반신은 셔츠, 하반신은 반바지를 입고 있어 웅장하고 건장한 사지를 드러냈다.정은은 기침을 하며 엄숙하게 현빈을 제지했다.“보지 마요. 남의 프라이버시를 훔쳐보는 것은 좋지 않잖아요.”“너도 봤잖아?”“난 고의가 아니었어요. 그리고 지금 더 이상 보지 않았어요.”“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여기에 놓은 거 아니야? 아! 이 뚱뚱한 아이가 서준이었구나?! 어쩜 이렇게 부풀어 오른 풍선과 똑같니?”“정말 못됐어요.”현빈은 맞받아쳤다.“너도 마찬가지야. 지금 왜 활짝 웃고 있는데?” 정은은 재빨리 입술을 오므렸지만 여전히 참지 못했다.평소에 그렇게 관리를 잘하고, 탄산음료를 일절 건드리지 않는 서준이 뜻밖에도 이런 쓰라린 기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정은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어쩐지 몸매 관리에 그렇게 열중하더라니. 어릴 적 뚱보로 고생을 한 적이 있었구나.’현빈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괴로워하는 정은을 보고, 따라서 웃기 시작했다.이때, 재석의 담담한 목소리가 두 사람 뒤에서 울려 퍼졌다.“무슨 일이 그렇게 웃겨요?” 정은은 웃음을 뚝 그쳤다.“선, 선배님이 여기 왜 왔어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재석을 보았다.재석은 담담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다, 정은이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무슨 재밌는 일이길래 그래? 나에게 말해줄 수 있어?”정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현빈이 먼저 말했다.“죄송하지만 이건 우리 사이의 비밀이에요.”그러나 재석은 아예 현빈을 보지 않았고, 시선은 오직 정은에게 떨어졌다.“그래?”정은은 즉시 눈을 부라렸다.“비밀은 무슨. 말도 참 이상하게 하네요... 선배님, 이것 좀 봐요.”재석은 여유
현빈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정식 형, 취하신 거 아니에요? 지금 아직 학생이니, 학업에 몰두해야지, 이런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면 안 되죠. 그러다 소문이 나면 누구에게도 안 좋잖아요.”임정식은 잠시 멈칫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 좀 봐, 술을 좀 마셨다고 말이 많아졌군... 맞아, 학생은 공부에 전념해야지. 다른 일들은 나중에 얘기하자!”말을 마치고 다른 손님과 인사하러 갔다.재석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방금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요.”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왜요? 교수님께서 무슨 의견이라도 있으세요?”“이 세상에 자신의 아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부모님은 없을 거예요. 심 대표님은 당연히 거리낌이 없겠지만, 다음에 입을 열기 전에 남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부터 먼저 생각해봐요.”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정은이를 위해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아니라고 할 건가요?” 재석은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직시했다.“심 대표님은 똑똑한 사람이니, 내가 굳이 안 밝혀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은데.”“세심하고 다정한 척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교수님만 정은을 관심하는 것이 아니니까. 전 교수님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좋아요, 신경 쓰는 이상 정은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마요.”“위험이라고요?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굳이 이렇게 겁을 먹으실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은 말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내일은요? 제멋대로 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남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아요.”“정식 형은 마음이 넓어서 이대로 넘어가겠지만, 다른 가문이나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들었다면 정은이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현빈은 표정이 굳어지자 눈빛이 어두워졌다.“정말 정은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면을 고려해야죠.”말을 마치고 재석은 성큼성큼 떠났다....케이크를 먹은 정은은 손에 크림이 묻었다. 이미 휴지로 닦았지만 여전히 끈적끈적했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이렇게 컸는데도 부부의 감정은 여전히 달콤했다.임정식은 너무 아파서 가볍게 기침을 하며 표정을 굳혔다.“내 말은, 아들도 컸으니 사랑을 처음 깨닫는 것도 정상이잖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소녀와 소년이 어딨겠어?”장인화는 정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 아이 정말 반듯하고 곱게 생겼네. 문제는 기질이 아주 좋다는 거야! 듣자니 이번에 스스로 실험실을 짓자고 아이디어를 낸 아이가 바로 이 아이라면서? 정말 리더십이 강한 아이군!”보면 볼수록 흐뭇한 장인화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서비대학교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이 아이는 오히려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잖아. 결국 뜻밖에도 해냈다니! 우리 서준이가 이렇게 훌륭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면 나는 절대로 반대하지 않을 거야.”임정식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사실 지금의 임씨 가문에 있어, 그들은 이미 극치의 성공을 거뒀기에 정치적인 혼인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며느리가 정은이라면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임정식은 즉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나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우리 집사람 말 들어야지.”재석과 현빈은 바로 이 두 부부 옆에 서 있었다.‘우리가 보이지도 않나 봐?’재석은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고, 현빈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누군가 어깨를 부딪히자 재석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임정식은 손을 비비며 물었다.“재석아, 정은이 네 학생 맞지?”“에.”“방금 지켜보니까 두 사람 사이가 괜찮은 것 같은데?”“정식 형,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헤헤... 그냥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 정은이의 부모님은 J시 사람인가? 넌 알고 있어? 우리와 만나게 해줄 순 없을까? 그냥 친구 사귀는 셈으로 말이야.”“몰라요.”“그렇구나...”임정식은 실망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그럼 넌 정은이 이 아이가 어떻다고 생각하니? 서준이와 꽤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내 아들은 잘생겼지, 정은은 똑똑하고 예
“그건 아니죠.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심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조상은 친척 관계였으니, 촌수를 따지자면 서준이는 심 대표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한 것 같은데?”이것이 바로 현빈이 상인으로서 임씨 가문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양가는 친척이었다.재석은 담담하게 웃었다.“서준이의 동창들도 자연히 따라서 삼촌이라 불러야지.”이 말이 나오자, 현빈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심씨와 임씨 가문은 확실히 친척이지만, 그것은 이미 어느 세대의 일인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지금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석은 기어코 촌수를 따지며 호칭까지 바꾸었다.정은은 눈동자를 굴리며 바로 얌전하게 외쳤다.“삼촌, 안녕하세요!” 말을 마치자, 정은도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정말 열받네! 누가 정은이의 삼촌이 되고 싶다는 거지?! 젠장, 심 대표님도 삼촌보다 듣기 좋잖아! 조재석, 우리 두고 보자!’...밥을 먹은 다음, 음식이 다 내려갔다.이윽고 네모난 케이크가 올라왔다.임정식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었다.“서준아, 생일축하한다. 네가 이 케이크처럼 시종 모서리가 뚜렷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교활해지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계속 정직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감사합니다, 아버지.”장인화는 임정식 옆에 서 있었는데, 그가 말을 마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들아, 빨리 소원을 빌어야지!”예년에 서준은 집에서 생일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르지 않았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친지들이 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과 마음이 잘 맞는 두 친구까지 있으니, 서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소원 빌기도 이제는 적응이 잘 됐다.서준은 눈을 감고 잠시 사색에 잠겼고, 과장하게 두 손을 모으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눈빛은 매우 확고했다.그는 웃으며 촛불을 불어 껐다.민지가 앞장서서 박수를 쳤다.다른
‘왜 이렇게 춥지?’재석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의외였다.조씨 가문의 어르신과 서준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사이가 엄청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후에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하나는 장사를 했고, 하나는 정치를 배웠다.그리고 모두 각자의 영역 내에서 성공을 이루었다.그동안 조씨와 임씨 두 집안은 줄곧 왕래가 있었지만, 임씨 집안은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자주 모이지 않았다.이번에 임씨네 초대장을 받은 소기봉은 이를 매우 중시해서 직접 오려고 했는데, 그저께 알레르기성 천식이 재발하여 입원했다.어쩔 수 없이 큰아들인 소지언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언은 상인으로서 최근 몇년간 임씨 가문과 친분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은 또 상인과 교제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언이 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그렇게 이 일은 조지훈에게 떨어졌다.그는 변호사였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장 적합했다.그러나 임정식은 검사 쪽의 지도자로서, 변호사인 지훈은 상인인 지언보다 신분이 더욱 예민했다.결국 재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마침 그는 임정식과 또 친분이 있어 재석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지언은 이 일을 제기할 때 재석이 거절할까 봐 걱정했다.그의 동생은 각종 학술 세미나를 제외하고 이런 접대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며, 가장 큰 취미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재석에게 이런 연회를 참석하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순조로웠다.“동, 동의한 거야?”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형, 입 좀 닫아요. 침이 다 흘러나오겠다.”“앗!” 지언은 즉시 입을 닫았지만, 여전히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리고 곧바로 거실로 나와 강서원과 얘기를 했다.“어머니, 재석이 많이 이상해요.”강서원은 영문을 몰랐다.“무당을 좀 찾아서 재석이 봐달라고 할까요?”“뭘 봐?”“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그래요. 정말이에요.”“어?”강서원이 은근슬쩍 물
정은은 평온하게 시선을 거두며 음식에 전념했다.임씨 가문이 손님을 접대하는데 만든 음식은 자연히 아주 맛있었다. 오늘 특별히 미슐랭 등급의 셰프를 청했는데, 정교하고 향기로우며 맛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중간에 간단한 디저트 하나조차도 유명한 휘낭시에도 있었다.이번 식사는 민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행복이었다.“정은 언니, 이거 맛있어요...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빨리 먹어요.”그녀는 먹으면서 정은을 챙겼다.정은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응, 먹고 있어.”두 사람이 음식을 즐기고 있을 때, 서준은 갑자기 일어섰다.“정은 누나, 민지야, 잠깐 나 좀 따라와.”두 사람은 영문을 몰랐다.민지가 물었다.“뭐 하려고?”그녀는 지금 밥을 계속 먹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서준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메인 테이블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하자고.”“인사 안 하면 안 돼?”그들은 정은과 민지를 몰랐으니, 인사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차라리 밥이나 먹는 게 더 낫지!’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니, 서준이 직접 초대한 데다가 또 만나러 갈 사람은 어른들이었으니 민지도 거절하기 어려웠다.만약 단지 친분이 별로 없는 일반 친구라면, 서준은 주동적으로 자기 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두 사람은 컵을 들고 그와 함께 메인 테이블로 갔다.병풍을 돌자, 비록 정은이 이미 예상을 했지만, 재석을 본 순간 여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서준의 할아버지는 중간에 앉았고, 좌우 양쪽에는 할머니와 임정식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재석은 임정식 옆에 앉았다.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현빈도 있었단 것이었는데, 지금 재석 옆에 앉았다.“서준아.” 노부인은 자신의 손자가 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어머, 이 두 아이는 네 친구지?”정은과 민지는 동시에 인사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그래, 안녕하고 말고. 정말 착하구나.”임정식은 얼른 일어서더니 웃으면서 서준의 곁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