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도 강요하지 않고 기사에게 먼저 떠나라고 분부했다.정은은 호텔 입구에서 차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다가와서 인사를 하자, 그녀도 일일이 대답했다.백지영은 정은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기사를 안배해주지 않았다. 재석도 확실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세미나에서 오는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2분 앞당겨 도착했다.하늘에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재석은 창문을 통해 멀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다.장막을 사이에 두고, 정은은 고운 한복을 입고 있었다. 마치 그림에서 나온 미인처럼, 그녀는 말이 안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재석은 잠시 멍을 때리다가 정신을 차리며 차를 옆에 세웠다.그리고 차에서 내려 우산을 폈다. 정은을 만난 후, 재석은 세심하게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었다.정은이 허리를 굽히자, 남자는 즉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가리며 부딪치지 않도록 했다.“고마워요.”정은은 자리에 앉은 후,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또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됐네요, 선배님.”원래 그녀는 재석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혼자 택시를 타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오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정은은 재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맑은 날씨가 눈 깜짝할 사이에 비가 내릴 줄이야. 이런 날씨에 차를 전혀 잡을 수 없었다.호텔 문 맞은편에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강서원은 바로 거기에 서서 웨이터가 자신의 차를 몰고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한복을 입은 정은이 검은 폭스파겐에 올라간 것을 보았다.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그녀는 남자의 모습을 똑똑히 보지 못했지만, 그가 손에 든 우산에 롤스로이스 로고가 찍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것은 롤스로이스 차 안에 든 우산이었다.강서원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곧바로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이젠 얼굴이 꽤 예쁜 아이들은 모두 부자의 애인이 되려고 애를 쓰는군. 이 아가씨는 겁도 없는 것 같아서, 다른 여자애들과 다른 줄 알았는데. 역시... 그런데 정말 납득이 안 가
밤이 깊어지자, 주위도 많이 고요해졌다.이때 두 사람은 실험기구를 조작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재석은 옆을 힐끗 바라보았다. 소녀는 한창 열심히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니, 코 옆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웠다.전에 재석은 줄곧 혼자 야근을 하고 밤을 새웠다. 오늘 누군가 자신과 함께 있으니, 그 느낌은 낯설면서도 뿌듯했다.두 사람이 실험실을 떠날 때, 시간은 이미 새벽이었다.아파트로 돌아와 서로에게 인사를 한 다음, 정은이 먼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재석은 정은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오후의 장막 속에서 한복을 입고 호텔 문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그림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예쁘고 우아했다.가녀린 허리, 하얀 피부...남자는 문득 정신을 차리며 가볍게 중얼거리더니 재빨리 집으로 들어갔다.마치 1초라도 늦으면,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숨길 수가 없는 것만 같았다....정은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같은 시각, 연희는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미 새벽 2시가 되었는데, 도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서영숙이 낮에 자신을 욕한 말들은 마치 그녀의 머릿속에 뿌리를 박은 듯 잊혀지지 않았다.연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아예 침대에서 일어났고, 잠옷 치마를 입은 채로 침실을 나섰다.넓고 큰 별장은 어둡고 텅 비었으며 아무도 없었다.“이모님? 대체 어디에 간 거예요?!”그녀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당장 나오지 못해요!”한밤중에 두 가정부는 한창 달콤하게 자고 있었다. 연희가 소리를 지르자, 그녀들은 또 무슨 상황이 생긴 줄 알고 서둘러 일어났는데, 외투를 입을 겨를조차 없었다“아가씨, 왜 그러세요?”“배가 아프신 거예요?”“의사 선생님 불러올까요?!”연희는 제자리에 서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어쩜 이렇게 돼지처럼 쿨쿨 잘 수가 있는 거예요? 복을 누리러 온 거예요 아니면 나와 아이를 챙기러 온 거냐고요?!”두 가정
‘그래, 어차피 무슨 일 생겨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임산부가 스스로 요구했으니까.’“네, 그럼 얼른 누우시죠.”연희는 소파에 누워있었다.“진작에 이랬어야지. 꼭 내가 욕을 해야 움직일 거예요? 정말 한심하네요. 따지고 보면 비천한 것들이라 더 그래!”가정부는 멈칫하더니 심호흡을 했다. ‘참자 참아!’“저녁에 밥 안 먹었어요? 왜 이렇게 힘이 없는 거예요? 힘 좀 쓰면 안 돼요?”“네.”“아! 힘 좀 쓰라는 거지, 날 죽이라는 게 아니잖아요. 나랑 맞서려고 작정한 거예요?”가정부는 다시 심호흡을 했다.“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괜찮으신 겁니까?”“응.”30분 후, 갈비탕이 올라왔다. 담백하고 향기로워서 딱 봐도 제대로 삶은 게 분명했다.가정부는 꿀을 조금 넣었는데, 이 순간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그러나 연희는 한 입만 맛보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눈살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맛이지? 왜 이렇게 이상한 거예요? 설마 안 익은 건 아니죠?”임강주는 이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랐다.“덜 익을 리가 어딨겠어요? 제가 그동안 갈비탕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데. 원래 이런 맛이에요. 다시 한 번 드셔보시지 그래요?”연희는 팔짱을 끼고 냉소를 지었다.“끓인 방법에 문제가 없는 이상, 갈비에 문제가 있다는 거네요? 그러나 아주머니께서는 최고급 갈비를 사줬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당신은 좋은 갈비를 숨겨 놓고 나에게 일부러 나쁜 갈비를 먹인 거네요?!”임강주는 연희의 말에 놀랐고, 정신을 차릴 때 얼른 억울함을 호소했다.“아가씨, 어떻게 마음대로 저에게 그런 누명을 뒤집어씌울 수 있습니까?! 저는 강씨 가문에 20년 넘게 일했고, 아가씨와 사모님을 위해 만든 수많은 음식을 만들었지만, 여태껏 실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손을 썼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경찰에 신고하세요. 저는 무조건 조사에 협조할 것입니다!”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연희는 마음이 찔렸다.그녀도 정말로 이 갈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를 빌
물을 끄고 가운을 걸친 도겸은, 그 검은 그림자가 문에 닿으려는 순간 재빨리 손잡이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연희는 바로 그에게 들켰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도겸의 눈빛에서 분노가 솟구치고 있었다.“내가 이 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귀 먹었어?! 어떻게 감히 이곳에 발을 들여놔?!”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을 느끼자, 연희는 두려움에 손발이 차가워졌다.“저, 해, 해장국을...”“내가 너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줄 알아?” 남자는 웃으며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 “나랑 몇 번 잤다고 자기가 재벌 집 며느리로 된 것 같지? 너 같은 여자, 난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봤어. 내가 손을 흔들면 개처럼 달려오는 주제에, 뭐가 그리 잘난 거야? 네가 홀딱 벗고 내 앞에 서 있더라도, 난 너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을 거야.”도겸은 냉담하게 연희를 바라보며 눈빛은 경멸로 가득 찼다.“왜 그런지 알아?”연희는 온몸을 떨며 귀를 막더니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듣, 듣기 싫어요, 그만해요, 제발 그만해요...”“못 듣겠어? 그럼 나 건드리지 마. 징그러우니까. 당장 꺼져!”연희는 울며 뛰쳐 나갔다.도겸은 그녀가 들고 온 쟁반을 아예 엎어 버렸다.그날 밤, 연희는 새벽까지 잠을 지새우며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온통 남자의 매정하고 냉혹한 모습이었다.‘왜? 난 이미 도겸 씨의 아이를 가졌는데, 마땅히 나에게 더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지금 줄곧 소정은을 생각하고 있어서, 그 여자와 다시 화해하려는 건가?’여기까지 생각하자 연희는 가만히 눕지 못하고 침대에서 뛰어내려 왔다. 그리고 화가 나서 침대 서랍을 모조리 걷어찼다.이른 아침, 왕미자는 안방을 치웠는데, 바닥에 국물이 쏟아진 것을 보고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그리고 이때, 옆방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대체 뭐야? 정말 지겨워 죽겠어! 다들 정신이 나갔네! 내 팔자는 팔자도 아니야? 정말 대걸레로 한 대씩 때리고 싶다!’그러
서영숙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돌렸다.“별일 없으면 됐어. 그럼 약을 먹어야 하는 건가?”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임산부는 멀쩡하시니 약을 먹을 필요 없어요. 얼른 데리고 돌아가서 잘 휴양하면 돼요.”서영숙이 입을 삐죽거렸다.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연희가 일부러 이런 소란을 피웠단 것을.병상에 누워 있던 연희는 마음이 좀 찔렸다.그녀는 그때 화가 나서 배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깜짝 놀랐는데, 병원에 오니 아무 일도 없을 줄이야.서영숙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내 손자를 봐서라도 참자.병실에 들어가자 서영숙은 참지 못하고 경고를 했다.“제발 좀 가만히 있어! 이런 소란을 피우지 말고! 그렇지 않으면, 너도 그 결과를 잘 알고 있을 텐데!”연희는 목을 움츠리더니 감히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다.“알았어요.”서영숙은 그녀를 노려본 다음 씩씩거리며 나갔다....실험실에서 한동안 바쁘게 일한 정은은 갑자기 오미선의 전화를 받았다.[다음 주에 짬을 내서 우리 집으로 와. 너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거든.]정은은 오미선의 목소리가 전처럼 정정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의심했다.‘이번 주에 시간이 있는데, 왜 꼭 다음 주에 오라고 부르신 거지?’“좋아요.” 정은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오후에 몰래 지하철을 타고 찾아갔다.지난번에 화초를 가꾸러 왔을 때, 오미선은 정은에게 집 열쇠를 주었는데, 갈 때 돌려주지 못하게 했다. 앞으로 오고 싶은 대로 오라고 하면서.마침 그 열쇠도 이제 쓸모가 생겼다.문을 열자마자, 옅은 한약 냄새가 풍겨왔다. 정은은 신발을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말을 하기도 전에 늘 교수님 집에서 밥을 해주던 가정부가 입을 열었다.“정은 아가씨? 여긴 왜 오셨어요? 교수님께서 다음 주에야 온다고 하셨는데?”“누가 왔어요?”안에 있던 사람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왔다.정은은 이 상황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래서 이번 주에 오지 못하게 하신
정은은 코끝이 찡했지만 오미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오미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영원히 과학 연구였다.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과학 연구의 미래에 더욱 신경 썼다.어쩌면 평생 연구를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전진하는 과정에서 쓰러질지도 모르지만, 그게 무슨 대수라고?오미선은 과학 연구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후배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게 비추고 싶었다.“왜 또 울어?”오미선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이런 정은만 보면 마음이 아팠다.정은은 코를 훌쩍거렸다.“누가 울었다는 거예요? 어차피 전 울지 않았어요.”“그래, 넌 안 울었어.” 오미선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제가 안마해드릴게요...”오미선의 고집과 결심을 이해한 정은은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다음, 정은은 종아리를 가볍게 마사지해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오미선은 다리가 훨씬 편안해졌다.“류머티즘이 심해진 것도 요 며칠 변덕스러운 날씨와 관련이 있을 거예요. 저는 이미 발을 담그는 약을 샀으니, 이틀 후에 택배가 올 거예요. 매일 밤 발을 담그면 많이 편해질 거고요.”“알았어.”오미선은 웃으며 책상을 가리켰다.“자, 그 전화번호 가져가.”“네?”“성달수 기억나?”“성 교수님이요?!”“응, 바로 그 영감이야. 네가 내 대학원생으로 됐다는 것을 이미 안 모양이야. 내가 미리 전화를 해서 알리지 않았다고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지금 이미 삐졌어. 난 그 영감을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네가 전화로 위로해줘. 그 영감은 네 말만 들었잖아.”‘성 교수님은 성격이 조금... 내가 무슨 능력으로 위로할 수 있겠어?’생물정보학은 컴퓨터를 도구로 삼아 생물학 빅데이터를 연구하기 때문에, 정보학 방면의 지식에 대한 요구가 비교적 높았다.심지어 프로그래밍까지 배워야 했다.이것은 또한 도겸이 집에서 쫓겨나 두 사람이 지하실에서 지내며 고생을 할 때, 정은이 프로그래밍으로 도겸을 위해 창업할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대학에
정은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눈을 뜨니, 시간은 이미 8시가 되었다. 정은은 재빨리 씻은 다음 곧장 실험실로 달려갔다.재석은 그녀가 오늘 30분 지각한 데다가 안색도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어제 잠을 잘 못 잤어?”정은은 고개를 저었다.“잠을 잘 못 잔 게 아니라 밤을 새운 거예요.”재석은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정은은 얼굴을 두드리며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이제 일해야지!’점심에 밥을 다 먹은 정은은 미친 듯이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재석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너무 빡세게 일하지 말고, 휴게실에 들어가서 좀 자지 그래?”정은은 확실히 졸려서 거절하지 않았다.재석은 계속 일했는데, 두 시간 후, 휴게실을 지나갈 때, 정은이 아직 안에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먼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정은아? 너 괜찮니? 들어갈게.”그는 정은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가볍게 문을 밀었다. 소녀는 한 곳에 몸을 웅크리며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보아하니 너무 깊이 잠든 것 같았다.재석은 한숨을 돌렸고, 다음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진짜 고양이 같네. 조용하고 예뻐.’...이틀 동안 병원에 입원한 연희는 도저히 못 있겠다며 퇴원하겠다고 떼를 썼다.두 가정부도 결정을 내릴 수 없어서 도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쪽은 직접 전화를 끊었다.그래서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서영숙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서영숙은 전화로 연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아이를 임신했다고 제멋대로 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계속 네 몸을 들볶고 싶으면 그렇게 해. 만약 네 뱃속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난 절대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연희는 그저 조용히 듣고 있을 뿐, 감히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결국 서영숙은 그녀가 퇴원하는 것을 동의했고, 다시 경고했다.[다음은 없어. 아이 잘 챙기고!]연희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집
도겸은 머리가 아팠고, 따라서 점차 짜증이 났다. 그는 무음모드를 켠 다음, 핸드폰을 책상 위에 엎어놓으며 다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계속해.”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더니 감히 도겸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도겸은 핸드폰을 힐끗 보았는데, 화가 나서 되려 웃음이 나왔다.연희는 그가 준 가족카드를 사용했기에, 무엇을 사든 그 기록은 도겸의 휴대폰으로 발송될 것이다.문자가 끊임없이 들어오자, 도겸은 이마에 핏줄이 나타났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할 때, 연희가 톡을 보냈다.[도겸 씨, 이거 모두 제가 산 건데, 예뻐요? 그리고 당신을 위해 넥타이와 외투까지 샀어요.]도겸은 확인한 다음 냉소를 지으며 연희의 번호를 차단했다.그는 미간을 비비며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도로에서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도겸은 또다시 정은을 떠올렸다.‘요즘 자꾸 정은이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심지어 꿈에도 전부 정은이었어.’전에 도겸도 정은에 가족카드를 주었는데, 기본적인 생활지출과 서영숙에게 선물을 사는 것을 제외하고, 정은은 그녀 자신의 돈을 썼다.도겸은 그녀가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기에 줄곧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벌 수 있을지는 잘 몰랐다.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정은이는 명품을 거의 사지 않았지.’서랍 안의 주얼리며 명품 가방들도 다 도겸이 정은을 위해 산 것이었다. 필요한 상황을 제외하면, 정은은 거의 그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다.헤어진 후, 그 물건들도 자연히 별장에 남겨졌다. 조금의 미련도 없는 것처럼.마치 쓰레기를 버리듯이 도겸의 집에 버렸다.그러나 연희의 존재는 마치 저주와도 같았다. 시시각각 도겸에게 그가 잃은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완벽한 존재이고, 그에 비하면 연희는 얼마나 추악하고 역겨운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백화점에서.연희는 남자가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또 다른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문자가 전송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날 차
현빈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정식 형, 취하신 거 아니에요? 지금 아직 학생이니, 학업에 몰두해야지, 이런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면 안 되죠. 그러다 소문이 나면 누구에게도 안 좋잖아요.”임정식은 잠시 멈칫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나 좀 봐, 술을 좀 마셨다고 말이 많아졌군... 맞아, 학생은 공부에 전념해야지. 다른 일들은 나중에 얘기하자!”말을 마치고 다른 손님과 인사하러 갔다.재석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앞을 쳐다보았다.“방금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요.”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왜요? 교수님께서 무슨 의견이라도 있으세요?”“이 세상에 자신의 아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듣고 싶어 하는 부모님은 없을 거예요. 심 대표님은 당연히 거리낌이 없겠지만, 다음에 입을 열기 전에 남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부터 먼저 생각해봐요.”현빈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정은이를 위해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아니라고 할 건가요?” 재석은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직시했다.“심 대표님은 똑똑한 사람이니, 내가 굳이 안 밝혀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은데.”“세심하고 다정한 척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 교수님만 정은을 관심하는 것이 아니니까. 전 교수님보다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좋아요, 신경 쓰는 이상 정은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마요.”“위험이라고요?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굳이 이렇게 겁을 먹으실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은 말 한마디에 불과하지만 내일은요? 제멋대로 구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남의 사정을 신경 쓰지 않아요.”“정식 형은 마음이 넓어서 이대로 넘어가겠지만, 다른 가문이나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들었다면 정은이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현빈은 표정이 굳어지자 눈빛이 어두워졌다.“정말 정은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면을 고려해야죠.”말을 마치고 재석은 성큼성큼 떠났다....케이크를 먹은 정은은 손에 크림이 묻었다. 이미 휴지로 닦았지만 여전히 끈적끈적했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이렇게 컸는데도 부부의 감정은 여전히 달콤했다.임정식은 너무 아파서 가볍게 기침을 하며 표정을 굳혔다.“내 말은, 아들도 컸으니 사랑을 처음 깨닫는 것도 정상이잖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소녀와 소년이 어딨겠어?”장인화는 정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이 아이 정말 반듯하고 곱게 생겼네. 문제는 기질이 아주 좋다는 거야! 듣자니 이번에 스스로 실험실을 짓자고 아이디어를 낸 아이가 바로 이 아이라면서? 정말 리더십이 강한 아이군!”보면 볼수록 흐뭇한 장인화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서비대학교의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이 아이는 오히려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잖아. 결국 뜻밖에도 해냈다니! 우리 서준이가 이렇게 훌륭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면 나는 절대로 반대하지 않을 거야.”임정식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사실 지금의 임씨 가문에 있어, 그들은 이미 극치의 성공을 거뒀기에 정치적인 혼인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며느리가 정은이라면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임정식은 즉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나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우리 집사람 말 들어야지.”재석과 현빈은 바로 이 두 부부 옆에 서 있었다.‘우리가 보이지도 않나 봐?’재석은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고, 현빈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누군가 어깨를 부딪히자 재석은 바로 고개를 돌렸다.임정식은 손을 비비며 물었다.“재석아, 정은이 네 학생 맞지?”“에.”“방금 지켜보니까 두 사람 사이가 괜찮은 것 같은데?”“정식 형,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헤헤... 그냥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 정은이의 부모님은 J시 사람인가? 넌 알고 있어? 우리와 만나게 해줄 순 없을까? 그냥 친구 사귀는 셈으로 말이야.”“몰라요.”“그렇구나...”임정식은 실망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그럼 넌 정은이 이 아이가 어떻다고 생각하니? 서준이와 꽤 어울리는 것 같은데? 내 아들은 잘생겼지, 정은은 똑똑하고 예
“그건 아니죠.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심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조상은 친척 관계였으니, 촌수를 따지자면 서준이는 심 대표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한 것 같은데?”이것이 바로 현빈이 상인으로서 임씨 가문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양가는 친척이었다.재석은 담담하게 웃었다.“서준이의 동창들도 자연히 따라서 삼촌이라 불러야지.”이 말이 나오자, 현빈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심씨와 임씨 가문은 확실히 친척이지만, 그것은 이미 어느 세대의 일인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지금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석은 기어코 촌수를 따지며 호칭까지 바꾸었다.정은은 눈동자를 굴리며 바로 얌전하게 외쳤다.“삼촌, 안녕하세요!” 말을 마치자, 정은도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정말 열받네! 누가 정은이의 삼촌이 되고 싶다는 거지?! 젠장, 심 대표님도 삼촌보다 듣기 좋잖아! 조재석, 우리 두고 보자!’...밥을 먹은 다음, 음식이 다 내려갔다.이윽고 네모난 케이크가 올라왔다.임정식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었다.“서준아, 생일축하한다. 네가 이 케이크처럼 시종 모서리가 뚜렷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교활해지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계속 정직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감사합니다, 아버지.”장인화는 임정식 옆에 서 있었는데, 그가 말을 마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들아, 빨리 소원을 빌어야지!”예년에 서준은 집에서 생일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르지 않았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친지들이 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과 마음이 잘 맞는 두 친구까지 있으니, 서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소원 빌기도 이제는 적응이 잘 됐다.서준은 눈을 감고 잠시 사색에 잠겼고, 과장하게 두 손을 모으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눈빛은 매우 확고했다.그는 웃으며 촛불을 불어 껐다.민지가 앞장서서 박수를 쳤다.다른
‘왜 이렇게 춥지?’재석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의외였다.조씨 가문의 어르신과 서준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사이가 엄청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후에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하나는 장사를 했고, 하나는 정치를 배웠다.그리고 모두 각자의 영역 내에서 성공을 이루었다.그동안 조씨와 임씨 두 집안은 줄곧 왕래가 있었지만, 임씨 집안은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자주 모이지 않았다.이번에 임씨네 초대장을 받은 소기봉은 이를 매우 중시해서 직접 오려고 했는데, 그저께 알레르기성 천식이 재발하여 입원했다.어쩔 수 없이 큰아들인 소지언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언은 상인으로서 최근 몇년간 임씨 가문과 친분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은 또 상인과 교제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언이 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그렇게 이 일은 조지훈에게 떨어졌다.그는 변호사였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장 적합했다.그러나 임정식은 검사 쪽의 지도자로서, 변호사인 지훈은 상인인 지언보다 신분이 더욱 예민했다.결국 재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마침 그는 임정식과 또 친분이 있어 재석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지언은 이 일을 제기할 때 재석이 거절할까 봐 걱정했다.그의 동생은 각종 학술 세미나를 제외하고 이런 접대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며, 가장 큰 취미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재석에게 이런 연회를 참석하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순조로웠다.“동, 동의한 거야?”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형, 입 좀 닫아요. 침이 다 흘러나오겠다.”“앗!” 지언은 즉시 입을 닫았지만, 여전히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리고 곧바로 거실로 나와 강서원과 얘기를 했다.“어머니, 재석이 많이 이상해요.”강서원은 영문을 몰랐다.“무당을 좀 찾아서 재석이 봐달라고 할까요?”“뭘 봐?”“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그래요. 정말이에요.”“어?”강서원이 은근슬쩍 물
정은은 평온하게 시선을 거두며 음식에 전념했다.임씨 가문이 손님을 접대하는데 만든 음식은 자연히 아주 맛있었다. 오늘 특별히 미슐랭 등급의 셰프를 청했는데, 정교하고 향기로우며 맛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중간에 간단한 디저트 하나조차도 유명한 휘낭시에도 있었다.이번 식사는 민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행복이었다.“정은 언니, 이거 맛있어요...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빨리 먹어요.”그녀는 먹으면서 정은을 챙겼다.정은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응, 먹고 있어.”두 사람이 음식을 즐기고 있을 때, 서준은 갑자기 일어섰다.“정은 누나, 민지야, 잠깐 나 좀 따라와.”두 사람은 영문을 몰랐다.민지가 물었다.“뭐 하려고?”그녀는 지금 밥을 계속 먹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서준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메인 테이블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하자고.”“인사 안 하면 안 돼?”그들은 정은과 민지를 몰랐으니, 인사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차라리 밥이나 먹는 게 더 낫지!’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니, 서준이 직접 초대한 데다가 또 만나러 갈 사람은 어른들이었으니 민지도 거절하기 어려웠다.만약 단지 친분이 별로 없는 일반 친구라면, 서준은 주동적으로 자기 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두 사람은 컵을 들고 그와 함께 메인 테이블로 갔다.병풍을 돌자, 비록 정은이 이미 예상을 했지만, 재석을 본 순간 여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서준의 할아버지는 중간에 앉았고, 좌우 양쪽에는 할머니와 임정식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재석은 임정식 옆에 앉았다.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현빈도 있었단 것이었는데, 지금 재석 옆에 앉았다.“서준아.” 노부인은 자신의 손자가 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어머, 이 두 아이는 네 친구지?”정은과 민지는 동시에 인사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그래, 안녕하고 말고. 정말 착하구나.”임정식은 얼른 일어서더니 웃으면서 서준의 곁으로 걸어갔다.
정은은 예의상 가볍게 조해민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곧 손을 뗐다.조해민은 생각하다가 다시 민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민지는 방금 에그타르트를 먹었기에 손에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이 상황을 보고 그녀는 난처하게 거절했다.“저는 그냥 사양할게요. 미안해요.”“괜찮아요.” 조해민은 손을 흔들며 이해를 표시했다.그때 조해민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소정은 씨는 좀 낯이 익은데?”정은은 고개를 들었다.서준이 이 사람들을 소개할 때 그녀는 먼저 상대방을 알아보았다.어쩔 수 없었다, 가끔 기억력이 너무 좋은 것도 고민이었다.남자는 서준, 조해민의 동갑내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고, 훨씬 성숙했으며 사람을 보는 눈빛도 많이 침착했다.그런데 하필이면 정은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니.‘어른들과 같이 앉을 자격이 없지만, 또 이번 연회에 참가하고 싶어서 이도 저도 아닌 이 테이블에 앉은 게 분명해. 방금 서준도 자신의 친구를 소개할 때, 이 남자를 소개하지 않았어.’조해민은 고개를 돌렸다.“형, 정은 씨를 알아?”조해봉은 입술을 구부렸다.“보면 볼수록 낯이 익네. 만약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강도겸의...”“해봉 형.” 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말투는 약간 강경했다.“오늘은 제 생일이잖아요. 제 동창들도 손님이고요.”그 뜻인 즉, 이런 장소에서 주인이 초대한 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실례란 것이었다.조해봉은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곧 감정을 가다듬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자세히 보니 그래도 차이가 있군. 내 입이 문제야. 무슨 말이든 밖으로 내뱉으니까. 미안해, 정은 씨.”서준은 그제야 안색이 누그러졌다.민지는 조용히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정은은 무척 침착했다.조해봉은 도겸과 친분이 있었는데, 예전에 술자리에서 정은은 상대방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매번 조해봉의 시선은 그녀에게 떨어졌고, 사람을 불편하게
임씨 가문의 저택은 최신 유행하는 서양식 저택이 아니라,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고택이었다.앞마당과 뒷마당이 서로 연결된 구조였고, 담장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일부 벽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벗겨져 있었다. 앞마당에는 청석이 깔려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설수록 아늑한 기운이 감돌았고, 짙은 암홍색의 기둥들은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냈다. 하늘을 향해 뻗은 처마는 마치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청석길 양옆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고, 그곳에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J시 도심, 그것도 옛 궁궐 바로 옆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니. 이 집의 주인은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서준이 두 사람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직접 마당으로 나와 맞이했다.“빨리 들어와요, 안이 따뜻하니까. 소개할게요, 이 두 분은 제 부모님인데...”서준 아버지 임정식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어 기질이 온화하고 우아하며, 미간 사이로 세월이 묻어난 진중함과 대범함을 드러냈다.서준 어머니 장려화는 베이지색 니트로 된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옅은 카키색 숄을 매치했다. 희고 윤기가 흐르고 있는 얼굴은 구체적인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젊었다. 긴 머리는 비녀 하나로 말아올리니, 그야말로 친화력이 넘쳐났다.정은의 머릿속에는 대범하고 정숙하며 우아하다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만약 이 두 사람이 가져다준 충격이 그리 크지 않다면, 서준 할아버지를 본 순간, 정은과 민지는 철저히 충격에 휩싸였다.민지는 멍하니 서준의 말대로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앉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정은의 소매를 잡아당겼는데, 이미 어불성설이었다.“정은 언니, 저... 아, 아니... 방금 봤어요? 할아버지의 그 얼굴 말이에요. 저는 제가 뉴스 방송 현장에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할 뻔했잖아요!”정은은 민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그녀를 위로했다.“침착해. 오기 전에 이미 마
“너...”오미선은 또박또박 말했다.[제 제자들이니 제가 지켜야 합니다. 그런 허울뿐인 명예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힘들게 한 사람들이 그 덕을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더 이상 할 말 없네요. 이번에도 제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올릴 생각 없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미리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처럼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송영한은 이미 앞으로 정은 그들이 아무리 많은 성과를 거두어도 학교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한중기는 순식간에 새파래진 송영한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때요? 되돌릴 여지가 있나요?”“있긴 개뿔! 백두강의 처분을 12개월로 연장해!”말을 마치고 송영한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펑 하고 문을 닫았다.한중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총장님이 이렇게 큰 화를 내신 것을 본 적이 없는데...’...탁!실험실 레저 구역에서, 서준은 다시 한번 과녁 중심을 명중했다.그는 아예 남은 다트를 모두 던졌는데, 빠르면서도 정확해서 모두 중심을 맞추었다.“와...” 민지는 어안이 벙벙했다.“쮼, 너 연습했니? 이 정확도 정말 대단해!”“몇 달 정도 연습한 적이 있어.”“몇 달 정도? 지금 장난해?”민지는 화제를 돌렸다.“지금 학교도 이미 소식을 받았겠지?”서준은 생수 한 병을 열었다.“아마도.”“그럼 왜 이렇게 조용해?”정은은 핸드폰을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교수님 덕분이야. 이미 총장님과 교섭을 마치셨거든.”“총장님은 뭐라고 하셨는데요?” 민지는 눈을 크게 떴다.“당연히 할 말이 없으시지.”“하긴요. 그때 저희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저희의 덕을 보려고 하다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결정했어요. 제대로 한 끼 먹어야겠어요.”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다이어트 안 한다며?”“그건 그렇지만,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나한테 지방간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체중 좀 통제하려고!
“뭐야? 어떻게 그럴 수가?!”정은과 친구들이 서비대학교 학생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의 교수님이자 교신저자인 오미선은 여전히 학교의 교수님이었다.“우리 학교 명의로 되지 않으면? 누구의 명의로 된 건데?”“무한 실험실이요.”한중기는 무엇을 떠올렸는지 얼른 마우스를 들고 논문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찾았지만 오미선의 이름을 보지 못했다.그는 중얼거렸다.“교신저자가 없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규정에 따라 교신저자가 없으면 제1저자를 교신저자로 묵인하기 때문에 소정은 학생이 이렇게 하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문제는 없지만 오미선은 왜 이를 동의했을까?‘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면 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데, 왜...’이때 송영한이 빠른 걸음으로 총장 사무실에서 나왔다.한중기는 그의 표정이 이렇게 무거운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총장님, 왜 그러세요?”“잘 됐네, 나랑 같이 K시에 한 번 다녀오자!”“네? 갑자기 왜 K시에 가시려는 거죠?”“오미선을 찾으러!”커팅식 끝난 후, 오미선은 박애영을 데리고 K시로 돌아가 계속 요양했다.한중기는 갑자기 멈춰 섰다.“총장님도 소식을 들으신 거예요?”송영한은 안색이 보기 흉했다.“전화로 소통할까요? 직접 다녀가실 필요는 없잖아요?”“너는 아직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한 것 같군. 오미선은 일부러 이렇게 한 거야.”송영한의 감정이 점차 흥분될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오미선이었다.그는 즉시 받더니 목소리가 차가웠다.“오 교수, 지금 설명을 잘 해야 하는 거 아니야?!”[설명이요?]오미선이 웃었다.[무슨 설명이요?]“오 교수가 임의로 저자명을 포기하고, 학생들까지 자기 실험실 이름으로 성과를 발표하도록 유도한 건, 명백히 학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잖아!”[허...]오미선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녀는 학교 측이 자신을 찾아 책임을 따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송영한이 이렇게 흥분될 줄은 몰랐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저 그런 일반 학술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