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겸 오빠, 제가 그런 짓을 한 것도 다 오빠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정말 오빠의 곁에 있고 싶어요. 그러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줄래요? 앞으로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도겸은 무뚝뚝하게 입술을 벌렸다. 연희가 당황해하며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며,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넌 이미 범죄를 저질렀어?! 날 사랑한다는 핑계 따윈 집어치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이게 바로 네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인 거야? 넌 다 너 자신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한 거잖아! 헤어지자, 이제부터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난 더 이상 너와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연희는 도겸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경고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아. 네가 날 구해준 것을 봐서, 이번에 이 일은 이대로 넘어가겠어. 그러나 매번 이렇게 운이 좋진 않을 거야.”말이 끝나자, 도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라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연희는 쫓아가려고 했지만 얼마 걷지 못하고 배가 은근히 아프기 시작했다.그녀는 몸이 건강해서 생리통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인지, 한 달이 되어갔지만 여전히 생리가 오지 않았다.다리 사이로 전해오는 축축한 느낌, 그리고 점차 멀어지는 남자의 차를 보면서 연희는 먼저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진료실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한 후에 연희에게 일반적인 검사를 해 주었다.30분 후, 연희는 검사 보고서를 들며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제가... 제가 임신을 했다고요?”“HCG 수치가 양성으로 나왔으니 임신한 게 맞습니다. 아직은 임신 초기라서, 출혈량이 많지 않다면 잘 휴양하면 돼요.”연희는 의사가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유독 '임신'이라는 두 글자만 머릿속에서 메아리를 치고 있었다.시간을 계산해 보면, 아마도 설날 그쯤에 임신한 것 같았다.연희는 보고서를 꽉 쥐더니, 망연하던 표정은 순식간에 확고해졌다. 그녀는 마치 방향을
연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남자의 말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가 있지? 나에게 만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난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야!’“도겸 오빠, 제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 이것 봐요, 우리 아이의 초음파 사진이에요. 정말 이 아이를 버릴 거예요?”도겸은 시선을 아래로 움직이더니 연희의 약간 떨리는 손에 있는 그 초음파 사진을 보았다. 사진은 검고 모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냉담하게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아이를 지우라고.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차라리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는 게 더 낫잖아.”게다가 도겸은 이것이 자신의 아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말을 마치자, 연희가 귀찮은 도겸은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연희는 남자가 매몰차게 돌아서는 것을 보고 두 손을 주먹으로 꽉 쥐었다. 분노와 질투심이 밀려왔다.‘지금 내가 그런 일을 했다고 날 버리려는 거야? 난 단지 나 자신의 남자를 지켰을 뿐인데,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 다 그 소정은 때문이야. 일부러 도겸 오빠를 꼬셨기에 오빠가 지금까지도 단념하지 못한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겠지!’여기까지 생각하자 연희는 이를 우두둑 갈았고, 아름답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안 돼, 난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이때 연희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이렇게 하면 어쩜 일이 해결될지도 몰라...’토요일, 정은은 경찰서의 전화를 받았다. 맞은편의 사과를 들으면서 그녀는 오히려 무척 평온했다.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정은은 이미 예상했다. 그리고 여전히 신고를 한 이유도 단지 자신을 위해서였다.‘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고.’전화를 끊은 후, 정은의 핸드폰에 영상 하나가 들어왔다.게시판에 올라온 루머는 이 일이 점차 커질 때 학교측에서 삭제했다.학교에서도 그 IP주소를 조사해 봤는데 외지에 있는 IP였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할
하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도겸이 잘못을 깨달았어도 너무 늦었던 것이다.정은은 무뚝뚝하게 도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손은 문손잡이를 꽉 잡으며 방어하는 자세를 보였다.그녀는 또박또박 대답했다.“미안하지만 네 마음 거절할게.”정은은 용서하고 싶지도, 화해하고 싶지도 않았다.도겸은 욱해지기 시작했다.“왜?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전에 나와 화해하기 싫은 이유가 서연희 때문이었잖아? 지금 난 이미 그 여자와 헤어졌는데, 넌 왜 여전히 날 거절하는 거지?!”‘난 이미 그렇게 많이 양보했는데, 정은이는 도대체 언제까지 욕심을 부리고 싶은 거지?’버럭 화를 내고 있는 도겸에 비해, 정은은 훨씬 평온했다.“예전에 난 너밖에 없었으니, 나에게 있어 넌 나의 전부였어.”도겸을 위해서 정은은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것을 포기했다.두 사람이 가장 뜨겁게 사랑할 때, 도겸은 정은의 전부였고, 정은은 도겸에게 자신의 남은 인생을 맡기고 싶었다!도겸의 눈빛은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는 절박하고 거의 열광에 가까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지금도 똑같잖아? 네가 원한다면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정은은 시선을 드리우며 고개를 저었다.“영원히 제자리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너와 헤어진 후, 난 너 말고도 이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많고, 내가 추구할 만한 일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어.”도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추구할 가치가 있는 일이 뭔데? 대학원에 진학하는 거? 아니면 공부하는 거? 그러나 석사 과정을 마치더라도 넌 결국 일자리를 찾아야 하잖아. 돈을 벌어야 하니까. 난 네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는데.”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야.”도겸은 코웃음을 쳤다.“그 50억짜리 수표 이미 가져갔잖아? 그런데 지금은 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다니? 내가 믿을 것 같아? 아니면 처음부터 돈 때문에 나에게 접근한 거였어?!”분노가 극에 달한 남자는 말을 가리지 않기 시작했다.정은은 도겸이
”가져가서 읽어 봐. 9월에 정식으로 입학할 텐데, 그 전에 연구 방향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실험팀에 가입할 때, 갈피를 잡지 못할 거야.”정은은 그 자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안심하세요. 저는 가능한 한 빨리 이 자료들을 외울 테니 절대로 교수님의 발목을 붙잡지 않을 거예요!”오미선은 정은이 맹세를 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널 못 믿을까 봐 그래? 네가 면접 시험을 본 영상, 나도 다 봤어. 그동안 나도 네가 현재의 연구 작업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한 적이 있어.”그녀는 정은의 어깨를 두드렸다.“그러나 그 영상을 보고 나니, 난 네가 전에 배운 것을 하나도 잊지 않았단 것을 발견했어.”그리고 조재석이 물어본 그 문제는 오미선에게 놀라움을 가져다 주었다.대학원 3학년의 학생이라도 정은보다 더 잘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좋고 나쁨은 답안 자체에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은이 해답 과정에서 보여준 사고성과 논리 능력이었다.“넌 내 학생이니, 나보다 네 재능과 우수함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넌 그런 실력이 있단 말이야. 알았어?”...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오미선은 전화를 받으러 갔다.정은은 그 자료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오미선이 한 말을 생각하니 저도 몰게 넋을 잃었다.그동안 정은은 줄곧 확고하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그녀도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일을 망칠까 봐 두려워했고 망설이기까지 했다.특히 오미선이 요 몇 년 동안 줄곧 한 과제에 전념해 왔지만,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은은 자신의 가입이 새로운 성과를 가져오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논문을 열자, 정은은 이 자료들의 코드 순서가 뜻밖에도 연월에 따라 배열된 것을 발견했다.아래로 내려갈수록 연대는 점점 더 오래되었다.어떤 것은 심지어 지난 세기 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생물이 금방 하나의 학과로 독립되었을 때였다.전에 정은은 독자의 각도로 책을 보았기에, 생물학의 발
그 말을 듣자, 정은도 더욱 불안해졌다.‘수민 회사가 바로 성동로 근처에 있는데!’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더니 정은은 거의 토를 하고 싶었다.기사는 약속한 대로 일찍 도착했다. 정상이라면 30분 정도 걸려야 했지만, 그는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정은은 병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구급차의 경적 소리를 들었다.“빨리 이쪽으로 옮겨요! 성동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부상자들이니 얼른 응급실로 보내요...”정은은 구급차에서 옮겨진 부상자들이 의식을 잃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더니 발걸음을 재촉했다.프론트 데스크의 간호사를 찾은 다음, 정은은 얼른 수민의 이름을 말했다.“가족인가요?”“네, 전화 받고 찾아왔어요.”“그...”간호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안으로 들어가서 한 번 만나보세요.”정은은 가슴이 덜컹 가라앉았다.그녀는 떨리는 오른손을 꾹 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문손잡이를 돌리자, 정은은 흰 천으로 덮인 사람이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순간, 정은은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하마터면 땅에 쓰러질 뻔했다.바로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해왔다.“정은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정은은 고개를 번쩍 돌렸다. 지금 수민은 멀쩡하게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깜짝이야! 그럼 저 안에 누운...”“저기요, 왜 여기로 오신 거예요?” 방금 길을 안내한 간호사가 지나가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아가씨 친구는 이 옆방에 있어요.”정은은 말문이 막혔다.간호사는 또 수민을 가리키며 말했다.“방금 문을 열 때, 이 분이 바로 뒤에 서 계셨는데. 어떻게 사람을 잘못 보실 수가 있죠...”복도에서.“아직도 삐진 거야?” 수민은 정은의 손을 잡았다.“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응? 화나면 주름이 생긴다는 말 못 들었어? 우리 정은이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주름이 생기면 안 되지.”정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진 것을 보고, 수민은 재빨리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너 잘났다! 됐지?”“병원의 규정에 따라, 교통사고 부상자는 가족들에게 연락해야 하는데, 난 부모님에게 괜한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네 번호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어.”수민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더니 투덜댔다.“핸드폰이 깨지지만 않았어도 네 전화를 받을 수 있었는데.”정은은 그제야 왜 수민의 핸드폰이 줄곧 전원이 꺼진 상태였는지를 깨달았다.“그럼 지금 좀 어때? 어디 아픈데 없어?”교통사고 현장을 지나간 데다가 또 이것이 대형 연쇄 교통사고였기에 정은은 수민을 걱정했다.“네가 오기 전에 해야 할 검사는 이미 다 마쳤는데, 모든 게 다 정상이야. 이제 가서 수속을 밟으면 퇴원할 수 있어.”정은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그럼 됐어.”수민은 가방 하나밖에 없어서 두 사람은 바로 1층에 가서 계산을 한 다음 떠나려 했다. 그러나 서영숙과 마주칠 줄이야. 그녀의 곁에는 심지어 서연희가 있었다.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서영숙은 눈웃음을 지었고,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아주 화목해 보였다.“그럼 앞으로 좀 주의해. 여기저기 부딪치지 않게.”“안심하세요. 꼭 주의할게요.”“풉.” 수민은 냉소를 지었다.“불여우가 이렇게 날뛰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네. 그 남자의 엄마를 믿고 있었구나!”서영숙은 반년 만에 정은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초라하지 않았고, 오히려 혈색이 아주 좋았다.연희는 멈칫하더니 마찬가지로 정은을 본 게 분명했다.그녀는 즉시 허리를 받치며 배를 내밀었다. 그리고 먼저 인사를 했다.“정은 언니, 정말 우연이네요. 병원에서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정은은 웃음을 거두며 바로 떠나려 했다.다음 순간, 연희는 무심한 척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요즘 배가 아파서 병원에 와서 검사를 했는데, 글쎄 임신한 거 있죠?”.정은은 발걸음을 멈췄다.“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정말 너무 의외였죠. 그러나 도겸 오빠에게는 아주 큰 서프라이즈였어요
그래서 서영숙은 수민을 뚫어지게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만약 눈빛이 칼이 될 수 있다면, 지금 수민은 틀림없이 갈기갈기 짖어졌을 것이다.“조수민 씨, 나에게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연희는 고개를 들며 억울한 표정으로 수민을 바라보았다.다만 이런 수법은 수민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무슨 오해? 넌 자존심이 있는 거야? 부끄러운 줄 아는 거야?”서영숙은 노발대발했다.“조수민, 너무 지나치게 굴지 마! 그래도 난 네 윗사람이야.”“어머, 말로 이길 수 없으니까 절 협박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여태껏 남의 협박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참, 지금 더 심한 말을 할 수도 있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됐어, 수민아, 더 이상 말해봤자지. 이 사람들과 다툴 필요 없어.”정은은 이런 말다툼을 하기가 귀찮았다.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뭐가 달라지겠는가?그녀의 담담한 말투, 평온한 눈빛에 서영숙은 바로 폭발했다.“너 지금 열등감 느끼고 있는 거지?” 서영숙은 냉소를 지었다.“우리 도겸이와 6년 넘게 사귀었는데도 임신한 적이 없잖아. 그런데 연희는 이제 겨우 몇 개월 만에 바로 임신을 했잖니? 아이도 낳을 줄 모르는 넌 애초에 젊고 철이 없던 도겸을 속일 수밖에 없었겠지. 내가 널 우리 가문의 며느리도 받아들일 것 같아? 꿈이나 깨!”서영숙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은은 그녀를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무시에 서영숙은 마음이 불편해졌다.예전에 서영숙은 정은을 무시했지만, 상대방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이 뒤바뀌면서 정은이 오히려 그녀를 무시했다.그러니 서영숙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이런 느낌은 마치 전에 자신의 발밑에서 기어다니던 개가 어느 날 갑자기 식탁에 뛰어올라 그녀를 향해 짖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입 깨문 것과 같았다.정은은 미소를 지었다.“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꿈을 꾸지 않을 거예요. 강씨 가문의 며느리는 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해요. 아주머니
생각할수록 화가 난 서영숙은 뜻밖에도 정은과 수민을 쫓아갔다.전에 서영숙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직 수준이 없는 사람만이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때의 서영숙은 그런 수준이 없는 사람으로 되었다. 정말 화가 난 게 분명했다.“안중에 사람도 없는 악독한 것.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바로 너희들을 말하는 것이었네!”수민은 이 말을 듣자마자 웃었다.‘날 욕해도 되지만, 정은이를 건드리면 절대로 안 돼!’“그 입 닥쳐요, 아줌마!”“왜, 내 말이 틀렸어? 이 여자는 내 아들과 6년 동안 함께 해도 임신한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 그럼 소정은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너 정말 웃기네. 반응이 왜 이렇게 커? 도둑이 제 발 저린 거지?”“허!” 수민은 냉소를 지었다.“6년 넘게 임신하지 않았다고요? 그럼 당신 아들의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자주 병원을 드나들면서, 술과 담배까지 했으니 얼른 그 귀염둥이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세요. 만약 정말 무슨 문제가 있다면, 큰일인데...”말을 마치자, 수민의 눈빛은 연희의 배에 떨어졌다.연희는 안색이 돌변하더니 황급히 변명했다.“난 남자친구라곤 도겸 오빠 하나밖에 없었어요. 난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예요...”아들 도겸을 언급하자, 서영숙은 갑자기 흥분해졌다.“감히 허튼소리를 하다니, 네 입을 찢어버릴 거야...”수민은 또 어떻게 그런 서영숙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녀는 즉시 소매를 걷고 말했다.“그래요, 도대체 누가 누구의 입을 찢는지 두고 봐요!”정은은 두 사람이 손을 쓰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수민을 말렸다.연희도 멍해졌는데,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몰랐다.그녀는 한쪽에 서서 서영숙과 수민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고, 정은이 다가오는 틈을 타서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그리고 땅에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내 배! 배가 너무 아파요!”서영숙은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고, 수민과 싸울 겨를도 없이 즉시 연희를 바라보았다.
정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험실 시정은 사실이고 진도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래서 따질 필요가 없었다.그녀가 다시 앉자, 마침 강서정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서정은 참지 못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소정은, 너도 이렇게 당하는 날이 있다니.”“인생에는 항상 기복이 있는 법이지. 사람이라면 다 운이 나쁠 때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러나 너희들도 조심해, 앞으로 무슨 일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뻔뻔하긴!”정은은 앞을 쳐다보며 얼굴에 노기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서정은 정은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엄청 화가 났다.“넌 송 교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젊었을 때의 오 교수님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 교수님은 이미 늙으셔서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넌 그런 교수님의 학생이 되었으니, 세력도 없고 그저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겠지.”“당초에 내가 너와 그렇게 싸우며 오미선 교수님의 학생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네가 이겼고, 내가 졌잖아. 그러나 지금 일이 또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한 번 이겼다고 해서 평생 이긴 것은 아니야. 졌다고 해서 앞으로 줄곧 지는 것도 아니고. 너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서정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대학원 시험에서 일등을 하면 또 뭐가 어때서? 면접 시험을 잘 봤다고 또 뭐가 달라지는데? 스스로 돈을 내서 CPTR을 샀지만, 결국 실험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경으로 전락했잖아?’“소정은, 넌 우리 오빠와 헤어진 후에 어째서 상황이 점점 더 나빠졌니? 대학원에 붙으면 아주 잘난 거라 생각했던 거야? 우리 오빠가 널 안중에 둘 줄 알았어? 우리 엄마가 너라는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냐고? 꿈이나 깨!”정은은 웃으며 눈가에 웃음기가 가득했고, 엄청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네 말의 뜻인 즉... 내가 대학원 시험에서 확실히 성공을 거둔 거잖아. 네 오빠는 확실히 내 성적에 놀랐고, 네 어머니도 나란 며느리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 맞지?”“너..
12월 말, J시는 겨울에 들어선 후 두 번째 눈을 맞이했다.이번 눈은 첫눈보다 더 많이 내렸고, 이틀 연속 내렸기에 J시 전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이른 아침, 정은은 미안함을 안고 재석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 정은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재석은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여전히 헝클어져 있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가슴이 조여졌다.“무슨 일이야?!”“그런 거 아니에요!” 시간이 확실히 이르고 너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정은은 더욱 미안해지더니 또 좀 부끄러워했다.“나 때문에 깬 거죠?”“아니야, 원래 일어날 시간이거든.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지난번에 그 눈놀이 도구 말인데요... 아직 있어요?”재석은 멍해졌다.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눈은 확실히 그쳤다.“이렇게 일찍 내려가서 눈놀이를 할 거야?” 재석은 생각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정은은 두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네! 일찍 내려가야 밟힌 흔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깨끗하잖아요.”재석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꼭 어린아이 같아.”“눈놀이에 어른과 아이가 있나요? 놀고 싶으면 노는 거죠.”“잠깐만 기다려.”말이 끝나자 재석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안에는 전에 둔 오리, 공룡, 곰돌이 그리고 삽 등이 있었다.“고마워요 선배님! 나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정은은 통을 받고 몸을 돌려 재빨리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10분 뒤, 단정하게 차려입은 재석이 아래층에 나타났다.정은은 한 무리의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하얀 패딩, 크고 빨간 모자, 주위의 눈과 하얗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오직 그 빨간색만 선명하고 눈부셨다.“선배님! 이리 와요.”정은이 재석을 향해 웃었다.재석은 손을 흔들었다.“너희들끼리 놀아.”정은은 가볍게 흥얼거리며 몸을 돌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파헤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무언가를 세게 던졌다.손바닥만 한 눈덩이가 재석을 향해 날
인훈은 말을 하지 못했다.정은이 입을 열었다.“심 대표님, 이제 손 놓아도 돼요.”현빈은 웃으며 마치 그제야 알아차린 듯,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섬세하고 얇은 어깨는 패딩을 사이에 두고도 여전히 뼈를 만질 수 있었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도 현빈의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현빈은 온몸이 오그라들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정은은 몸을 돌려 현빈에게서 유연하게 벗어났다.현빈은 반응이 빨랐는데, 정은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긴 팔을 뻗어 다시 그녀를 잡아당겼다.한 사람은 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갔다.하나는 도망가고 다른 하나는 쫓아갔다.정은은 화가 났다.“심현빈 씨! 작작 좀 하면 안 돼요?!”남자는 눈가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좋아, 드디어 날 심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네.”...두 사람이 밀당을 하는 사이, 재석은 멀지 않은 가로등 아래에 서 있었고, 손에 종이주머니를 들고 있었다.불빛 때문인지, 그의 반쪽 얼굴이 그늘 속에 숨어 있어서 지금 표정을 분명하게 볼 수 없었다.“선배님?” 정은은 바로 재석을 발견했다.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걸음을 들어 다가오더니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에 시선이 떨어졌다.인훈은 자신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것이 아니었다.현빈은 코트에 양복을 입고 있었지만, 목도리를 하지 않았다.“조 교수님!” 인훈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여기서 만났다니, 정말 공교롭네요!”“공교롭긴요. 일부러 찾아온 거예요.”“네?”재석은 주머니에 든 목도리를 꺼내 앞으로 다가갔고, 정은의 목에 있는 남자 목도리를 벗긴 다음 현빈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정은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방금 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네 두 친구를 만났는데, 너에게 목도리를 돌려주려고 했던 거야. 나도 마침 오는 길이라 대신 너한테 주겠다고 했어. 두 사람 야식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거든.”“고마워요, 선배님! 또 귀찮게 했네요.”정은은 목도리 안으로 움츠러
가로등 아래에서, 정은 그들은 걸으면서 계속 말을 했다.찬바람이 쌩쌩 불자, 내쉬는 숨결은 순식간에 안개가 되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정은아, 밀크티 마실래? 오빠가 쏠게.”인훈은 흰 이빨을 드러냈다.정은이 말을 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남자가 그녀 앞에 와서 멈추었다.세 사람의 의혹을 맞이하며 그 사람은 마술사처럼 뒤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꺼내 정은에 건네주었다.“안, 안녕! 난 이 학교 대학원 3학년의 학생이야. 그, 그동안 널 주목해 왔어... 이 꽃은 너에게 줄게.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그, 그리고, 우리 서로 연락처를 교환할 수 있을까? 널 처음 봤을 때 난 너에게 첫눈에 반했거든. 매우 갑작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나 자신도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도무지 막을 수가 없었어. 나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학교 밖에서 이런 일에 부딪쳤다니.정은은 가게에서 나올 때, 오늘 마침내 ‘우연히’ 도겸과 경혜를 만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지만, 뜻밖에도 남의 고백을 받았다니.인훈은 반응하여 가장 먼저 현빈의 표정을 살폈다.‘이야, 완전 열받은 표정이네. 어쩔 수 없지, 우리 정은이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도 당연하잖아? 밥을 먹으러 나오다가 고백까지 받다니. 헤헤...’정은은 앞에 있는 꽃을 보며 한순간 침묵했다.“꽃은 정말 예뻐요...”남자는 바로 웃으며 눈에서 빛이 났다.“그럼 받...”“하지만 난 받을 수 없어요, 미안해요.”“왜, 왜?”“우선, 나는 그쪽을 모르고, 우리도 친한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아무 이유없이 나에게 꽃을 주다니, 난 그 꽃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자격 같은 거 필요 없어.”남자는 다급히 설명하려 했다.“이거 그냥 너에게 주는 거야.”“그럼 더 받으면 안 되죠. 장미는 사랑을 대표하고, 오늘 내가 이 꽃을 받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누구나 다 알잖아요. 미안해요.”“이게 아니라, 내가 너에게 꽃을 선물한 것
“다 심 대표님의 그 두 공사팀 덕분이야...”원래 그들은 기초 토목 건설을 책임졌지만, 인훈은 곧 자신이 상대방의 실력을 얕잡아 봤다는 것을 발견했다.기초 토목 건설을 제외하고, 이 사람들은 인테리어, 자재 감식까지 훌륭했다.그래서 토지 건설이 완료된 후, 인훈은 당분간 공사팀을 돌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이어서 공사팀으로 하여금 내부 인테리어와 스마트 배치 제어까지 완성하게 했다.“심 대표님, 무슨 문제 없죠?”정은은 이 말을 듣고 인훈과 함께 현빈을 바라보았다.현빈은 정은의 눈빛을 마주하며 살짝 웃었다.“당연히 없죠.”정은이 입을 열기만 하면, 현빈은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올 수 있었다.“고마워요, 심 대표님!”“현빈 오빠라 불러.”‘또 시작이네.’인훈이 말했다.“헤헤... 현빈 형 고마워요.”현빈은 깜짝 놀랐다.다 먹자, 인훈은 계산하려고 했다.현빈은 이미 먼저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사장님, 계산이요.”“심 대표님, 식사 끝나셨어요? 오늘 꽃등심 맛은 어때요?”현빈은 고개를 돌려 정은을 보았다.“맛 어때?”사장님은 빙그레 웃으며 정은을 바라보았다.정은은 사실대로 말했다.“맛있어요.”“그럼 됐어요! 최근 이 요리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저희 예전의 간판 메뉴보다 더 잘 팔리고 있어요. 장사도 많이 좋아졌고요. 말하자면 심 대표님의 소중한 제안 덕분이기도 하죠.”현빈은 돈을 지불하고 핸드폰을 거뒀다.“정은이 덕분이죠.”사장님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애매한 눈빛으로 정은과 현빈을 바라보았다.“그럼요! 다 고맙죠!”문을 나서자, 찬바람은 옷 안으로 파고들어갔다.정은은 재빨리 패딩 지퍼를 당겼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다음 순간, 현빈은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그녀의 목에 둘렀다.정은은 멈칫하더니 얼른 벗으려 했다.“아니에요, 지퍼를 높게 당기면 바람을 막을 수 있어요...”그러나 현빈은 듣지 않았다.“그냥 두르고 있어.”...이웃 대학교 문 앞에서, 민지와 서준은 실험실에서 떠
정은은 오미선을 위로한 다음 또 직접 그녀의 몸을 닦아주었다. 마지막에는 링거를 다 맞아야 퇴원할 수 있다고 신신당부했다.떠나기 전에 정은은 또 박애영을 한쪽으로 불렀다.“전 이미 교수님과 얘기를 마쳤으니, 내일 요양원에서 차를 보낼 거예요. 밖에 있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박애영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그래도 정은이 너밖에 없구나! 나도 말렸지만 효과가 없었어. 네가 나서니 바로 해결됐잖아. 안심해, 교수님을 잘 돌볼 테니까!”“그럼 수고 많으세요.”“수고는 무슨...”정은이 간 후, 박애영은 문을 밀고 병실로 들어갔다.오미선은 그녀의 뒤를 쳐다보았다.“정은이 갔어?”“네, 갔어요. 가기 전에 특별히 저에게 교수님 잘 챙겨드리라고 했어요. 정은이도 정말 정성을 다했어요.”오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은이는 참 좋은 아이지. 다 내가 쓸모없어서 그래. 늙어서 아이들을 위해 자원을 쟁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송지혜의 괴롭힘을 받게 하다니.”“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정은은 교수님을 탓한 적이 없어요. 하물며 정은이도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니잖아요.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한 이상, 틀림없이 계획이 있을 거예요.”“정은이는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지...”박애영은 흠칫 놀랐다.“핸드폰 줘. 전화 한 통 좀 할게.”...시간은 쏜살같이 지나며 어느덧 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시간이 되었다.세 사람은 여전히 학교 밖의 그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현빈은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미리 음식을 시켰다.인훈과 정은은 하나는 공사장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실험실에서 왔으며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오빠!”“어, 정은아, 넌 왜 목도리도 안 하고 나왔어? 안 추워?”“목도리를 실험실에 두고 왔어. 괜찮아. 지퍼를 당기면 얼굴을 다 가릴 수 있거든.”식당에 들어간 두 사람은 단번에 현빈을 보았다.양복 차림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꼿꼿했고, 어깨가 넓어서
“그래서 어제 아침에 도대체 누구의 전화를 받으셨어요? 화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니.”“흥!”정은도 서두르지 않았다.“제가 한 번 맞춰볼게요... 학장님은 아닐 텐데. 줄곧 이런 사소한 일들을 상관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럼 백 부총장님? 그런데 최근 스폰서의 고소로 방금 처벌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오랫동안 꼬리를 숨기셔야 할 텐데...”여기까지 말하자 정은은 잠시 멈추더니 눈알을 굴렸다.“이 두 사람을 모두 배제한다면, 생명과학대학에서 교수님을 이렇게 도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송지혜 교수님일 뿐이겠죠?”이 이름을 듣자마자 오미선은 눈을 부릅떴다.“그 사람 언급하지 마!”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심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그 교수님밖에 없는 것 같네요.”“심심해? 만약 송지혜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속고 있겠지! 나한테 어떻게 실험실이 소방대 시정 요구를 받았다는 이렇게 큰 일을 속일 수가 있니?!”“속이지 않으면요? 교수님께서 먼 M국에서 날아와 학원 측, 심지어 학교 측을 찾아가서 따지는 것을 지켜보라고요? 그러다 결국 저희의 실험실이 확실히 소방 규정에 맞지 않아 시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실 거예요. 이 시정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빠르면 2, 3개월, 느리면 1년 정도 걸릴 거고요.”“이쪽도 똑같이 처벌하고, 저쪽은 교수님이 이유 없이 세미나를 결석하고, 자의로 팀을 떠난 일로 학교 측의 문책을 받으시라는 거예요?”“이번 일로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겠어요? 당연히 송지혜 교수님 아니겠어요?”오미선은 화가 나서 되려 웃음이 나왔다.“그럼 나란 교수님은 조금도 쓸모가 없겠구나?”정은은 경탄하며 천천히 말했다.“그거 알고 계세요? 이번 소방검사는 시에서 조직한 것이었어요. 만약 일반적인 교내 검사일 뿐이라면, 저도 두말없이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사람을 찾아 평정하게 하라고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요. 시 소방대가 주도하고 학교 측은 협조만 하면 됐거든요.”오
“왜? 왜 날 이렇게 보는 건데?”“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선배님이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요.”‘진짜 엄청 좋은 사람이야.’“가자, 이렇게 서 있으면 안 추워?” 재석이 웃었다.정은은 손을 비비며 대답했다.“좀 춥네요.”...또 토요일이 찾아왔다.정은은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또 두유를 마셨다.재석이 외출할 시간에 맞춰, 정은은 샌드위치와 두유를 봉지에 담아서 그에게 건네주었다.“아침밥이야?”“네!”“마침 안 먹었는데. 고마워.”재석은 실험실에 가려고 했고, 정은도 가려고 했지만 먼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싶었다.바닥을 다 닦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정은아! 나 애영 아주머니야! 얼른 병원에 와서 오 교수님 좀 보러 와...]병실에서.정은은 황급히 문을 밀고 들어왔다.“교수님?!”오미선은 병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고, 박애영은 옆에서 초조하게 머리채를 붙잡고 있었다.정은을 보고서야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정은아, 왜 이제야 왔어!”“아주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교수님이랑 같이 요양하러 갔잖아요?”매년 서비대학교는 외지에 나가 요양하는 정원이 있었는데, 교직원 복지라고 할 수 있었다.대선배인 오미선은 이미 명단에 있었지만, 예년처럼 그녀는 스스로 포기했다.올해도 정은이 말렸던 것이다. 학교에 아무 일도 없고, 자신이 민지와 서준을 데리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게다가 시일내에 아무런 중요한 세미나도 없었기에 오미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했다.“그래, 어제 출발했어야 했는데, 아침에 교수님이 전화를 받으신 거야. 누가 전화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어차피 전화를 받고 나서 교수님이 쓰러지셨는데, 난 재빨리 병원으로 데려다준 거야.”“의사 선생님은 뭐래요?”“너무 흥분해서 그런 거래. 이틀 동안 입원해서 관찰을 받아야 하는데, 오늘 아침, 교수님이 퇴원하시겠다고 난리를 부리신 거야. 난 교수님에게 남은 두 링거를 다 맞고
기사는 차를 몰고 온 다음, 길가에 천천히 멈추었다.“사모님.”강서원은 차에 올라탄 다음, 실망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집으로 가요.”차가 떠나는 순간, 재석과 정은은 쇼핑백을 들고 길을 건너고 있었다.그들은 마침 어깨를 스쳤다.재석이 말했다.“그냥 다 줘.”말하면서 그는 정은에게서 쇼핑백을 받았다.정은도 거절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좀 무거웠다.두 사람이 골목 어귀로 걸어가자, 재석이 갑자기 물었다.“요즘 이웃 대학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거야?”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실험실은 설비가 완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넓어요. 마 교수님도 엄청 친절하시고, 그 선배님들도 아주 다정해요. 소모품을 수령할 때, 꼭 우리를 도와 기록해 줬거든요.”그러나 이 소모품들도 다 정은이 견적서에 따라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원래 실험실을 무료로 빌려 쓰는 것 자체가 쑥스러웠으니, 또 어떻게 공짜로 남의 소모품을 쓰겠는가?재석은 멈칫하더니 계속 물었다.“무슨 문제 없어?”정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한동안 밀렸던 진도도 점점 따라잡고 있었다. 전공 과목에서도 정은은 크게 어려움 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지난번 수행평가에서 ‘A+’를 받지 못하고 ‘A’에 그친 것이 아쉬웠지만, 그것은 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어 반 전체가 만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머릿속에서 최근의 큰일을 모두 한 번 생각한 다음, 정은은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는 갑자기 무엇을 떠올렸다.“지금 망설이고 있잖아. 학교 식당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정은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오늘 오전에 참석한 회의에서 마 교수님을 만났거든.”정은은 마음이 다급해지더니 이어서 미안함을 드러냈다.“미안해요, 뜻밖에도 마 교수님께서 그 소란을 듣게 되실 줄이야. 선배님에게 다 말한 거예요?”말을 마치자, 정은은 고개를 푹 숙였다.부끄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