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아의 후회 지수가 100%에 달했고 그녀는 두 눈을 붉히며 경찰 앞에 무릎을 꿇고 꼭 손자를 찾아달라고 애원했다.나는 훔쳐 온 아이이다 보니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이연아는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경찰은 낮부터 밤까지 찾았다. 이연아와 공지훈은 불가마에 오른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하며 경찰서에서 소식을 기다렸다.도은하는 쌀쌀한 눈빛으로 얼굴이 빨개진 이연아를 바라봤다.“이게 바로 업보야. 내 아이를 훔친 업보야.”이연아는 매서운 눈빛으로 도은하를 째려봤다.“헛소리하지 마. 내 귀염둥이 손자는 잃을 수 없어. 그땐 네가 아이를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이를 잃은 건 네 탓이야.”도은하는 고개를 떨구더니 천천히 끄덕였다.“당신 말이 맞아. 다 내 탓이야. 하지만 당신 같은 악마는 내 딸이 하늘에서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나는 눈물범벅이 된 도은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만질 수 없었다. 지난 26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아마 나를 잘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겠지만 이건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내가 사탕에 눈이 멀어 이연아에게 유괴당했으니까.그래서 나는 도은하를 탓한 게 아니라 못된 이연아를 욕했다.도은하의 말이 맞았다. 나의 영혼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면 나는 결코 이연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이때 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호영이를 찾으러 갔던 경찰이 어두운 얼굴로 들어오자 이연아가 제일 먼저 뛰어갔다.“내 손자 찾으셨어요?”경찰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연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공호영의 시신은 이미 찾았어요. 교통사고로 추정해요...”이연아는 미친 듯이 경찰의 팔을 뿌리친 후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뭐라고요? 말을 할 줄 모르세요? 시신이라뇨, 저의 손자는 멀쩡히 뛰놀며 다녔는데 어떻게...”공지훈은 입을 크게 벌리고 뭔가 말하려 했지만 문밖에서 실려 온 시신을 보더니 말문을 잃었다.그는 들
도은하는 눈물을 머금고 나의 잔해가 담긴 흙을 가지고 내가 살던 셋방으로 왔다.집주인과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집주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비상 키를 건네주었다.그녀는 문 앞에 서서 여러 번 시도해서야 겨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힘껏 문을 닫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나도 그녀의 곁에 쭈그리고 앉아 익숙한 이 방을 둘러보며 가슴이 아팠다. 만약 내가 이연아에게 설쇠러 돌아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아마 내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간식을 먹으며 원하는 대로 살았을 것이다.한참 울고 난 후에야 도은하는 정신을 차리고 방 안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챙겨서 준비해둔 상자에 넣었다.“시영아, 엄마가 보러 왔어. 널 26년 동안 찾았는데 여동생과 같은 비행기에 탔을 줄은 몰랐어...”여기까지 말하고 난 도은하는 비통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또 울기 시작했다.도은하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고 가볍게 다독였다. 비록 그녀는 느낄 수 없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고 그저 소리 없이 그녀 곁을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도은하는 방에서 대부분 물건을 정리한 다음 거실의 테이블 앞에 앉아 손을 뻗어 서랍을 만졌다. 그녀가 서랍을 열려는 찰나 나는 제지하려고 신속히 달려갔지만 말리지 못했다.그 안에는 지난 5년 동안 화학요법과 수술에 대한 검사보고서가 있었다.집에 돌아가기 전에 나의 주치의는 두 달 후에 재검사받으라고 당부했지만 앞으로 더는 주치의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도은하는 한 페이지씩 검사보고서를 뒤적였다. 고통스럽고 놀란 표정으로 검사보고서를 움켜쥔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오열했다.“시영아, 엄마가 잘못했어. 네가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할 줄 생각지도 못했어...”“엄마가 나빴어. 널 문 앞에 혼자 두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괴로워 손으로 코끝을 만졌지만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이 물건들을 보지 않기를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 나는 사실 별로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아쉬웠다.엄마 아빠와의 5년간의 벽이 마침내 깨질 날을 기다렸지만 나는 영원히 섣달 그믐날에 머물렀다.내 영혼은 멀리 날아가서 결국 5년 동안 돌아오지 않은 내 집 앞에 멈춰 섰다.집 대문과 창문에 예쁜 꽃무늬를 붙여 알록달록 장식했다.나는 손을 뻗어 대문을 열려고 했지만, 내 몸이 문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렇다.나는 이미 죽었다.몇 시간 전의 그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비행기에 탑승한 140명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나는 천천히 방안으로 날아 들어갔다.방안이 매우 경사스럽게 꾸며져 있고 복도의 벽에도 오색찬란한 조명이 걸려 있었다.엄마, 아빠는 올케와 함께 만두를 빚고, 동생은 안방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었으며 어린 조카는 새 옷을 입고 장난감 기차를 들고 신나게 뛰어다녔다.정말 행복한 모습이었다...엄마는 마지막 만두를 빚고 나서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누워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몇 시인데 효지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어제 서너 시면 집에 도착한다고 했잖아. 벌써 일곱 시인데 네가 전화해서 물어봐.”동생은 곁눈질로 엄마를 힐끗 쳐다보더니 투덜거렸다.“나 게임을 하고 있잖아요. 아마 비행기가 연착됐나 보죠. 좀 더 기다려요.”“오늘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변하겠어?”엄마는 동생을 흘겨보며 말했다.“5년 전에 네가 결혼하느라 집 산다고 해서 네 누나가 저축한 돈을 다 너에게 주는 바람에 누나가 나한테 토라져서 5년 동안 집에 한 번도 안 왔어. 이번에 내가 겨우 설득해서야 돌아오겠다고 한 거야. 이따가 돌아오면 살뜰하게 대해 줘. 올해 차를 살 수 있을지는 모두 네 누나에게 달려 있으니 말이야.”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천천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엄마가 전화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보고 싶다고, 지난 몇 년 동안 밖에서 고생했다고 집에 가서 설을 쇠라
이튿날 아침, 전화가 울리자 엄마가 바로 받았다.엄마는 전화기를 잡고 이상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더니 전화기에 대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한참 만에 전화를 끊은 엄마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효지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대. 사람도 없고 시체도 못 찾았대... 그래서 항공사 사람이 이따가 우리 집에 와서 피를 뽑은 후 무슨 검사를 해서 효지가 우리 딸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네.”“효지가 우리 딸인지 아닌지 내가 몰라? 왜 피를 뽑아야 하는 거야?”엄마가 한참을 울자 아빠는 허리를 숙여 그녀를 땅에서 일으켰다.아빠는 안색이 이상했다. 어쩐지 이상하다기보다는 눈빛에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오겠다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막아? 지금은 준비를 잘하고 있다가 그 사람들이 올 때 협조해서 효지를 찾으면 돼.”엄마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생을 돌아보았다.“지훈아, 이따가 항공사 사람들이 오면 숨어 있어. 나와 네 아빠의 피를 뽑으면 돼.”동생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난 누나랑 친오누이예요. 뽑아도 나랑 아빠 피를 뽑아야지 엄마는 나서지 말아요.”우리 엄마가 동생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손을 들어 때리려고 했다. 동생이 피하고 있을 때 마침 문 앞에서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엄마는 안색이 살짝 바뀌더니 동생을 향해 말했다.“빨리 숨어.”말을 마친 엄마는 그제야 걸음을 내디디고 나가 문을 열었다.항공사 사람들은 예의를 갖췄다. 엄마도 겉으로는 그 사람에게 공손하게 협조하는 척하지만 안색이 한껏 긴장한 채 두 손을 꼭 잡고 계셨다.평소 낯선 사람과도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던 엄마는 오늘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있었다.“아줌마, 오늘 아저씨랑 같이 현장에 가서 검사해야 해요. 결과가 두세 시간 안에 나올 건데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확인할... 아저씨 아줌마, 짐만 싸서 저희랑 가요.”엄마는 고개를 들고 항공사 사람들을 쳐다보더니 입술을 감빨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빠를 돌아보았다.“지금 갈까?
엄마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웃고 싶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나의 기억에 엄마는 늘 나에게 매우 불친절했다.엄마는 내가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의 물건도 만지지 못하게 했다.어렸을 때 공주가 되고 싶어 엄마의 하이힐을 신었는데 엄마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솔질을 계속하다가 구두의 가죽이 벗겨지고 나서야 그만두었다.그날부터 엄마는 모든 것을 잠그고 내가 엄마의 물건을 다시 건드리면 밥을 주지 않겠다고 경고했다.나는 엄마가 성격이 차가운 사람이라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꺼리는 줄 알았다.그런데 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 엄마는 달라졌다.그녀는 동생을 껴안고 신나게 마당에서 춤을 췄고 평소 애지중지던 스카프로 동생의 몸을 덮었다.동생이 스카프에 오줌을 싸도 엄마는 화난 척 엉덩이를 툭툭 친 뒤 동생을 품에 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그때 나는 엄마가 동생을 편애한다는 것을 알았다.동생이 좀 더 자란 후에 우리 엄마의 편애는 더욱 뚜렷해졌다.집에 맛있는 것이 생겨도 동생이 와야 먹을 수 있고, 내 생일에도 엄마는 동생 입맛에 맞게 케이크를 사주셨다.엄마는 동생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에게 의향을 묻는 법이 없고, 내 물건을 동생에게 직접 건네줬다.처음에 나도 반항하며 엄마랑 계속 싸우며 엄마가 편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하지만 엄마는 나를 매섭게 흘겨보더니 이 집안의 모든 것이 동생의 것이라고 하셨다. 만약 내가 눈에 거슬리면 꺼져도 된다고, 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그해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는데 비록 마음에 불만이 있었지만 나는 엄마가 나에게 인내심이 없으니 만약 내가 정말 집을 떠나면 엄마는 심지어 나를 찾으러 나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엄마와 대적할 수 없어서 모든 원한을 동생에게 돌렸는데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 일부러 괴롭히고 때리고 밥도 안 줬다.동생이 엄마한테 일러바치면 나는 기선 제압했지만 엄마는 매번 나를 매섭게 쏘아보고 동생이 용서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밥을 먹지 말
어머니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가족관계 증명서를 꺼내고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었다.“멀쩡하던 딸이 어쩌다 남의 자식이 됐어. 당신들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중요한 일도 틀리다니...”아버지는 어머니를 한 번 내려다보고 동생을 한 번 더 힐끗 본 후 허리를 숙여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집어 들고 화를 내며 직원들을 향해 걸어갔다.“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길래 내 딸이 남의 딸이 되었어? 이 가족관계 증명서를 봐. 공효지는 우리 집안의 장녀라고.”아빠가 가족관계 증명서를 높이 들어 올려서 직원 얼굴에 던지려 했다.직원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여러 번 확인했다.“공효지 씨는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도은하 씨의 유전자와 일치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공효지 씨는 또 다른 희생자의 유전자와도 맞아떨어졌는데 그분의 이름은...”“내 딸이 누구와 일치하든 간에, 공효지는 내 딸이야. 우리는 그 애를 30년 동안 키웠는데 당신이 다른 사람의 딸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딸이야?”“여기 책임자 나오라고 해. 책임자 어디 있어?”아버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원을 밀치더니 이 기회를 틈타 바닥에 드러누워 행패를 부렸다.“우리 딸을 잘못 인정했어. 다른 사람도 틀린 거 아니야?”“설날에 이런 일이 생겨서 슬퍼 죽겠는데 결과까지 틀리면 더 재수 없지.”다른 사람들은 아빠의 말을 듣고 친자확인을 새로 검사하겠다고 아우성쳤다.직원들은 어이없다는 듯 아버지를 보며 황급히 다른 사람들을 달래느라 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어머니는 동생을 몰래 구석으로 끌고 가셨다.“지훈아, 누나가 죽으면 얼마를 보상받을 수 있어?”공지훈의 크지 않은 눈은 온통 계산적인 눈빛으로 반짝였다.“글쎄요.”“항공사만 해도 보상이 적지 않은데, 누나가 다른 보험에 가입했다면...”공지훈은 엄마에게 두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최소한 이만큼이죠.”엄마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정말 이 돈이 나온다면
아빠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옆으로 드리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목을 꼿꼿이 세웠다.“내 딸의 사진을 당신이 왜 보려고 하세요.”도은하는 손에 번호판을 꼭 쥐고 천천히 아빠를 향해 다가가 휴대폰 화면에 뜬 사진을 보여주었다.“사진 속의 두 여자아이는 저의 쌍둥이 딸이에요.”“26년 전 저의 큰딸이 유괴당해 저는 여태껏 찾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어요.”“저는 항공사에서 이럴 때 친자확인 검사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연의 일치도 믿지 않아요. 저는 그저 공효지 사진을 보고 싶어요.”도은하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빠를 바라보자 그는 주먹을 쥐고 긴장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나는 도은하의 옆에 가서 그녀의 휴대폰 화면 속 사진을 바라보았다. 긴 비치 드레스를 입고 옆에는 똑같게 생긴 두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왼쪽에 선 여자아이는 포니테일을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오른쪽에 선 여자아이는 아마 머리숱이 너무 적어서인지 토끼 머리를 했지만 입을 벌리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사진을 쳐다보던 나는 문득 어릴 적 자주 꾸던 꿈을 떠올렸다.꿈속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애가 매일 나를 따라다니며 언니라고 불렀다. 성격이 나빠 화를 잘 내는 편이지만 매번 화를 낸 후 또 조심스럽게 나에게 사과했다.꿈에는 또 부드럽고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도 있었다.우리는 아주 큰 집에서 살았고 나는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여자는 부드럽게 나를 품에 안으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엄마와 나에게 여동생이 있는지 물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미친소리를 그만 하라고 욕했다. 가끔 질문을 많이 하면 엄마는 따귀를 때리며 나가라고 하기도 했다그때는 내가 질문을 많이 해서 엄마가 귀찮아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마음이 켕겼기 때문이다.엄마는 내가 어릴 적 일이 생각날까 봐 두려워 내가 다가가지 못하게 했고 그녀의 물건도 만지지 못하게
도은하는 눈물을 머금고 나의 잔해가 담긴 흙을 가지고 내가 살던 셋방으로 왔다.집주인과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집주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비상 키를 건네주었다.그녀는 문 앞에 서서 여러 번 시도해서야 겨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힘껏 문을 닫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나도 그녀의 곁에 쭈그리고 앉아 익숙한 이 방을 둘러보며 가슴이 아팠다. 만약 내가 이연아에게 설쇠러 돌아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아마 내 침대에 누워 드라마를 보고 간식을 먹으며 원하는 대로 살았을 것이다.한참 울고 난 후에야 도은하는 정신을 차리고 방 안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챙겨서 준비해둔 상자에 넣었다.“시영아, 엄마가 보러 왔어. 널 26년 동안 찾았는데 여동생과 같은 비행기에 탔을 줄은 몰랐어...”여기까지 말하고 난 도은하는 비통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또 울기 시작했다.도은하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고 가볍게 다독였다. 비록 그녀는 느낄 수 없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고 그저 소리 없이 그녀 곁을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도은하는 방에서 대부분 물건을 정리한 다음 거실의 테이블 앞에 앉아 손을 뻗어 서랍을 만졌다. 그녀가 서랍을 열려는 찰나 나는 제지하려고 신속히 달려갔지만 말리지 못했다.그 안에는 지난 5년 동안 화학요법과 수술에 대한 검사보고서가 있었다.집에 돌아가기 전에 나의 주치의는 두 달 후에 재검사받으라고 당부했지만 앞으로 더는 주치의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도은하는 한 페이지씩 검사보고서를 뒤적였다. 고통스럽고 놀란 표정으로 검사보고서를 움켜쥔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오열했다.“시영아, 엄마가 잘못했어. 네가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할 줄 생각지도 못했어...”“엄마가 나빴어. 널 문 앞에 혼자 두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괴로워 손으로 코끝을 만졌지만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이 물건들을 보지 않기를
이연아의 후회 지수가 100%에 달했고 그녀는 두 눈을 붉히며 경찰 앞에 무릎을 꿇고 꼭 손자를 찾아달라고 애원했다.나는 훔쳐 온 아이이다 보니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이연아는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경찰은 낮부터 밤까지 찾았다. 이연아와 공지훈은 불가마에 오른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하며 경찰서에서 소식을 기다렸다.도은하는 쌀쌀한 눈빛으로 얼굴이 빨개진 이연아를 바라봤다.“이게 바로 업보야. 내 아이를 훔친 업보야.”이연아는 매서운 눈빛으로 도은하를 째려봤다.“헛소리하지 마. 내 귀염둥이 손자는 잃을 수 없어. 그땐 네가 아이를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이를 잃은 건 네 탓이야.”도은하는 고개를 떨구더니 천천히 끄덕였다.“당신 말이 맞아. 다 내 탓이야. 하지만 당신 같은 악마는 내 딸이 하늘에서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나는 눈물범벅이 된 도은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만질 수 없었다. 지난 26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아마 나를 잘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했겠지만 이건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내가 사탕에 눈이 멀어 이연아에게 유괴당했으니까.그래서 나는 도은하를 탓한 게 아니라 못된 이연아를 욕했다.도은하의 말이 맞았다. 나의 영혼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면 나는 결코 이연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이때 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호영이를 찾으러 갔던 경찰이 어두운 얼굴로 들어오자 이연아가 제일 먼저 뛰어갔다.“내 손자 찾으셨어요?”경찰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연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공호영의 시신은 이미 찾았어요. 교통사고로 추정해요...”이연아는 미친 듯이 경찰의 팔을 뿌리친 후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뭐라고요? 말을 할 줄 모르세요? 시신이라뇨, 저의 손자는 멀쩡히 뛰놀며 다녔는데 어떻게...”공지훈은 입을 크게 벌리고 뭔가 말하려 했지만 문밖에서 실려 온 시신을 보더니 말문을 잃었다.그는 들
경찰서에서 엄마는 울고불고 억지 부리며 소란을 피웠는데 그 모습은 마치 남편이 죽은 것 같았다. 경찰이 좋은 말로 타일렀지만 엄마는 더 심하게 욕설을 퍼부었다.결국, 경찰 두 명이 엄마를 의자에 앉혀놓고 심문했다.“이연아 씨, 계속 소란을 피우면 업무방해죄로 가둘 수 있습니다.”경찰의 말을 듣고 이연아는 마침내 잠잠해졌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경찰을 바라보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저는 정말 억울해요. 경사님, 저 여자가 제 딸을 빼앗으려 해요. 제 딸의 보상금을 차지하려고 하는 짓이니 꼭 저를 도와주세요.”도은하는 이연아를 바라보다가 핸드백 안의 물건을 경찰에게 넘겼다.“저는 26년 전에 딸을 잃었어요. 지난 26년 동안 저는 딸을 찾는 것을 포기한 적 없었어요. 이건 제가 딸을 찾아다녔던 자료와 증거예요. 오늘 신고한 것도 제가 딸의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인데 저는 당시 이 두 사람이 저의 딸을 유괴했다고 의심해요.”도은하는 예의 바르고 대범하게 말했다.경찰은 모든 자료를 다 훑어본 후 이연아를 쳐다봤다.“공효지가 당신 딸이라고 어떻게 증명해요?”이연아는 잠이 멍해 있다가 곧 울며 말했다.“내가 낳은 딸도 증명이 필요해요? 그리고 저희는 집에 가족관계증명서가 있는데 공효지는 출생해서부터 줄곧 우리 집에 있었어요. 믿지 못하겠으면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세요.”이연아는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려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귀먹었어? 빨리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지고 와. 효지가 우리 딸이라는 것을 증명해.”아빠는 가족관계증명서를 쥔 손에 힘을 꽉 주며 미간을 찌푸린 채 이연아를 바라봤다.아빠가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안색이 살짝 변한 이연아는 고개를 돌려 변명하려 했지만 경찰은 냉큼 아빠 손에 든 가족관계증명서를 빼앗았다.경찰이 가족관계증명서를 내가 있는 페이지로 넘기자 흰색 배경에 교복을 입은 나의 사진이 나타났다.사진 속의 내 얼굴은 노랗고 많이 야위었으며, 머리카락은 영양실조 때문에 푸석푸석했다. 심지어 입가는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아빠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옆으로 드리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목을 꼿꼿이 세웠다.“내 딸의 사진을 당신이 왜 보려고 하세요.”도은하는 손에 번호판을 꼭 쥐고 천천히 아빠를 향해 다가가 휴대폰 화면에 뜬 사진을 보여주었다.“사진 속의 두 여자아이는 저의 쌍둥이 딸이에요.”“26년 전 저의 큰딸이 유괴당해 저는 여태껏 찾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어요.”“저는 항공사에서 이럴 때 친자확인 검사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연의 일치도 믿지 않아요. 저는 그저 공효지 사진을 보고 싶어요.”도은하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빠를 바라보자 그는 주먹을 쥐고 긴장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봤다.나는 도은하의 옆에 가서 그녀의 휴대폰 화면 속 사진을 바라보았다. 긴 비치 드레스를 입고 옆에는 똑같게 생긴 두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왼쪽에 선 여자아이는 포니테일을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오른쪽에 선 여자아이는 아마 머리숱이 너무 적어서인지 토끼 머리를 했지만 입을 벌리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사진을 쳐다보던 나는 문득 어릴 적 자주 꾸던 꿈을 떠올렸다.꿈속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여자애가 매일 나를 따라다니며 언니라고 불렀다. 성격이 나빠 화를 잘 내는 편이지만 매번 화를 낸 후 또 조심스럽게 나에게 사과했다.꿈에는 또 부드럽고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도 있었다.우리는 아주 큰 집에서 살았고 나는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여자는 부드럽게 나를 품에 안으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엄마와 나에게 여동생이 있는지 물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미친소리를 그만 하라고 욕했다. 가끔 질문을 많이 하면 엄마는 따귀를 때리며 나가라고 하기도 했다그때는 내가 질문을 많이 해서 엄마가 귀찮아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마음이 켕겼기 때문이다.엄마는 내가 어릴 적 일이 생각날까 봐 두려워 내가 다가가지 못하게 했고 그녀의 물건도 만지지 못하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가족관계 증명서를 꺼내고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었다.“멀쩡하던 딸이 어쩌다 남의 자식이 됐어. 당신들 어떻게 된 거야? 이렇게 중요한 일도 틀리다니...”아버지는 어머니를 한 번 내려다보고 동생을 한 번 더 힐끗 본 후 허리를 숙여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집어 들고 화를 내며 직원들을 향해 걸어갔다.“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길래 내 딸이 남의 딸이 되었어? 이 가족관계 증명서를 봐. 공효지는 우리 집안의 장녀라고.”아빠가 가족관계 증명서를 높이 들어 올려서 직원 얼굴에 던지려 했다.직원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여러 번 확인했다.“공효지 씨는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도은하 씨의 유전자와 일치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공효지 씨는 또 다른 희생자의 유전자와도 맞아떨어졌는데 그분의 이름은...”“내 딸이 누구와 일치하든 간에, 공효지는 내 딸이야. 우리는 그 애를 30년 동안 키웠는데 당신이 다른 사람의 딸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딸이야?”“여기 책임자 나오라고 해. 책임자 어디 있어?”아버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원을 밀치더니 이 기회를 틈타 바닥에 드러누워 행패를 부렸다.“우리 딸을 잘못 인정했어. 다른 사람도 틀린 거 아니야?”“설날에 이런 일이 생겨서 슬퍼 죽겠는데 결과까지 틀리면 더 재수 없지.”다른 사람들은 아빠의 말을 듣고 친자확인을 새로 검사하겠다고 아우성쳤다.직원들은 어이없다는 듯 아버지를 보며 황급히 다른 사람들을 달래느라 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어머니는 동생을 몰래 구석으로 끌고 가셨다.“지훈아, 누나가 죽으면 얼마를 보상받을 수 있어?”공지훈의 크지 않은 눈은 온통 계산적인 눈빛으로 반짝였다.“글쎄요.”“항공사만 해도 보상이 적지 않은데, 누나가 다른 보험에 가입했다면...”공지훈은 엄마에게 두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최소한 이만큼이죠.”엄마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정말 이 돈이 나온다면
엄마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웃고 싶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나의 기억에 엄마는 늘 나에게 매우 불친절했다.엄마는 내가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의 물건도 만지지 못하게 했다.어렸을 때 공주가 되고 싶어 엄마의 하이힐을 신었는데 엄마는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솔질을 계속하다가 구두의 가죽이 벗겨지고 나서야 그만두었다.그날부터 엄마는 모든 것을 잠그고 내가 엄마의 물건을 다시 건드리면 밥을 주지 않겠다고 경고했다.나는 엄마가 성격이 차가운 사람이라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꺼리는 줄 알았다.그런데 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 엄마는 달라졌다.그녀는 동생을 껴안고 신나게 마당에서 춤을 췄고 평소 애지중지던 스카프로 동생의 몸을 덮었다.동생이 스카프에 오줌을 싸도 엄마는 화난 척 엉덩이를 툭툭 친 뒤 동생을 품에 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그때 나는 엄마가 동생을 편애한다는 것을 알았다.동생이 좀 더 자란 후에 우리 엄마의 편애는 더욱 뚜렷해졌다.집에 맛있는 것이 생겨도 동생이 와야 먹을 수 있고, 내 생일에도 엄마는 동생 입맛에 맞게 케이크를 사주셨다.엄마는 동생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에게 의향을 묻는 법이 없고, 내 물건을 동생에게 직접 건네줬다.처음에 나도 반항하며 엄마랑 계속 싸우며 엄마가 편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하지만 엄마는 나를 매섭게 흘겨보더니 이 집안의 모든 것이 동생의 것이라고 하셨다. 만약 내가 눈에 거슬리면 꺼져도 된다고, 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그해 나는 겨우 열두 살이었는데 비록 마음에 불만이 있었지만 나는 엄마가 나에게 인내심이 없으니 만약 내가 정말 집을 떠나면 엄마는 심지어 나를 찾으러 나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나는 엄마와 대적할 수 없어서 모든 원한을 동생에게 돌렸는데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 일부러 괴롭히고 때리고 밥도 안 줬다.동생이 엄마한테 일러바치면 나는 기선 제압했지만 엄마는 매번 나를 매섭게 쏘아보고 동생이 용서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밥을 먹지 말
이튿날 아침, 전화가 울리자 엄마가 바로 받았다.엄마는 전화기를 잡고 이상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더니 전화기에 대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한참 만에 전화를 끊은 엄마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효지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대. 사람도 없고 시체도 못 찾았대... 그래서 항공사 사람이 이따가 우리 집에 와서 피를 뽑은 후 무슨 검사를 해서 효지가 우리 딸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네.”“효지가 우리 딸인지 아닌지 내가 몰라? 왜 피를 뽑아야 하는 거야?”엄마가 한참을 울자 아빠는 허리를 숙여 그녀를 땅에서 일으켰다.아빠는 안색이 이상했다. 어쩐지 이상하다기보다는 눈빛에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오겠다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막아? 지금은 준비를 잘하고 있다가 그 사람들이 올 때 협조해서 효지를 찾으면 돼.”엄마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생을 돌아보았다.“지훈아, 이따가 항공사 사람들이 오면 숨어 있어. 나와 네 아빠의 피를 뽑으면 돼.”동생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난 누나랑 친오누이예요. 뽑아도 나랑 아빠 피를 뽑아야지 엄마는 나서지 말아요.”우리 엄마가 동생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손을 들어 때리려고 했다. 동생이 피하고 있을 때 마침 문 앞에서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엄마는 안색이 살짝 바뀌더니 동생을 향해 말했다.“빨리 숨어.”말을 마친 엄마는 그제야 걸음을 내디디고 나가 문을 열었다.항공사 사람들은 예의를 갖췄다. 엄마도 겉으로는 그 사람에게 공손하게 협조하는 척하지만 안색이 한껏 긴장한 채 두 손을 꼭 잡고 계셨다.평소 낯선 사람과도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던 엄마는 오늘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있었다.“아줌마, 오늘 아저씨랑 같이 현장에 가서 검사해야 해요. 결과가 두세 시간 안에 나올 건데 검사 결과가 나오면 바로 확인할... 아저씨 아줌마, 짐만 싸서 저희랑 가요.”엄마는 고개를 들고 항공사 사람들을 쳐다보더니 입술을 감빨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빠를 돌아보았다.“지금 갈까?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 나는 사실 별로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아쉬웠다.엄마 아빠와의 5년간의 벽이 마침내 깨질 날을 기다렸지만 나는 영원히 섣달 그믐날에 머물렀다.내 영혼은 멀리 날아가서 결국 5년 동안 돌아오지 않은 내 집 앞에 멈춰 섰다.집 대문과 창문에 예쁜 꽃무늬를 붙여 알록달록 장식했다.나는 손을 뻗어 대문을 열려고 했지만, 내 몸이 문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렇다.나는 이미 죽었다.몇 시간 전의 그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비행기에 탑승한 140명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나는 천천히 방안으로 날아 들어갔다.방안이 매우 경사스럽게 꾸며져 있고 복도의 벽에도 오색찬란한 조명이 걸려 있었다.엄마, 아빠는 올케와 함께 만두를 빚고, 동생은 안방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었으며 어린 조카는 새 옷을 입고 장난감 기차를 들고 신나게 뛰어다녔다.정말 행복한 모습이었다...엄마는 마지막 만두를 빚고 나서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누워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몇 시인데 효지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 어제 서너 시면 집에 도착한다고 했잖아. 벌써 일곱 시인데 네가 전화해서 물어봐.”동생은 곁눈질로 엄마를 힐끗 쳐다보더니 투덜거렸다.“나 게임을 하고 있잖아요. 아마 비행기가 연착됐나 보죠. 좀 더 기다려요.”“오늘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변하겠어?”엄마는 동생을 흘겨보며 말했다.“5년 전에 네가 결혼하느라 집 산다고 해서 네 누나가 저축한 돈을 다 너에게 주는 바람에 누나가 나한테 토라져서 5년 동안 집에 한 번도 안 왔어. 이번에 내가 겨우 설득해서야 돌아오겠다고 한 거야. 이따가 돌아오면 살뜰하게 대해 줘. 올해 차를 살 수 있을지는 모두 네 누나에게 달려 있으니 말이야.”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천천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엄마가 전화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보고 싶다고, 지난 몇 년 동안 밖에서 고생했다고 집에 가서 설을 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