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다 먹고 난 후 윤도훈은 먼저 이진희를 별장까지 바래다주고 나서 율이와 함께 셋방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윤도훈은 별장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우리도 시간이 나면 집을 사야겠다. 장기적으로 셋방에서 지내는 건 아닌 것 같네. 그래도 우리만의 집이 있어야지...중요한 건 집을 살 돈도 있고.그날 송가네로 갔었을 때 윤도훈이 여러 번 사양을 했지만 끝내 송가네 가주의 뜻을 못 이기고 카드 두 장을 받아왔었다.그래서 지금의 윤도훈한테는 1억에 달하는 돈이 있고, 집 한 채를 사고도 남을 액수였다.미래의 집에 대한 계획을 짜며 셋방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저녁 여덟 시였다.집 앞에 누군가가 와있었다.차에서 내린 윤도훈은 단번에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봤다.그리고 알아본 순간 이마살을 찌푸렸다.아직 차 안에서 나오지 않은 율이는 잠깐 놀라더니 금세 기쁜 얼굴로 소리를 쳤다.“엄마! 엄마다!”“아빠! 엄마 왔어!”율이가 진심으로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며 윤도훈은 억지로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율이는 흥분한 나머지 직접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달려갔다.“엄마!”집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주선미였다.어린아이들은 참 단순하다.엄마가 아무리 매정하게 떠났어도 엄마라고 기억하는 걸 보면.윤도훈은 시동을 끄고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차 문을 닫았다.“엄마. 율이 보러 온 거예요?”율이는 주선미의 앞까지 달려가 두 팔을 벌리며 신나서 물었다.율이는 엄마와 아빠가 예전에 자주 다퉜었고 그래서 갈라진 것까진 알지만 이혼 한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엄마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고.그것도 그럴 것이 율이의 여린 마음을 지키기 위해 윤도훈은 주선미가 매정하고 잔인하게 율이를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었다.“우리 착한 율이.”두 팔을 벌리고 달려온 율이를 바라보며 주선미는 그냥 손을 들어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그러고는 윤도현과 그 뒤에 세워진 벤틀리에 시선을
윤도훈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오늘 주선미의 태도가 엄청 이상하다고 느꼈다.이혼하지 않았던 그 몇 해 동안에도 주선미는 이런 적이 없었다. "쳇, 아직도 숨기고 있어?"주선미는 말하면서 온몸을 윤도훈의 몸에 붙였다.윤도훈은 그녀를 밀치며 차갑게 말했다. “너 도대체 왜 찾아왔는데? 볼 일 없으면 그냥 꺼져!”이 말을 들은 주선미는 갑자기 언짢아졌고 미움이 찬 말투로 얘기했다. “여보, 왜 그래?” "너 왜 나보고 여보라고 불러? 우린 이미 이혼했고 지금 네 남편은 유현이야! 함부로 부르지 마!”윤도훈은 냉소하며 말했다."여보, 설마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사실 내 마음속에 있는 남자는 줄곧 자기뿐이었어. 여보랑 이혼한 것도 다 유현 오빠한테서 돈을 얻어서 우리 율이 병 치료에 쓰려고 한 거였어.”자기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건데? 자기가 할 수 없이 공장을 매각하고 우리 집이 파산됐을 때 내가 얼마나 자기를 안타까워했는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자기는 모르지? 그래서 나도 할 수 없이 모질게 자기랑 이혼하고 유현 오빠랑 결혼했어! 내가 요 며칠 동안 유현 오빠 앞에서 억지로 웃느라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자긴 알기나 해?"주선미는 눈물을 글썽이며 윤도훈의 팔을 잡고 애처롭게 하소연했다.윤도훈은 그런 주선미를 바라보며 마음이 흔들렸다. 비록 윤도훈은 주선미가 연기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마음속 어딘가가 조금 불편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주선미가 돈을 받아서 율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과 이혼했다고? "허허, 그날 내가 돈을 빌리려고 네게 전화했을 때, 너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윤도훈은 싱겁게 물었다.매정한 주선미 때문에 윤도훈은 할 수 없이 죽음을 무릅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돈을 갈취했다. "자기가 나한테 전화했을 때 유현 오빠가 바로 옆에 있었어! 나도…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주선미는 억울하다는 듯이 설명했다."그럼 그 후에 사람 불러 나를 때린 일은?
염량세태을 겪으면서 철저히 절망한 윤도훈은 아무래도 이성적일 수밖에 없었다.윤도훈은 방금 율이를 만났을 때 주선미가 보인 반응이 떠올랐다. 두 팔을 쫙 벌리고 신나게 엄마의 품을 향해 달려가는 율이와 달리 주선미는 그저 무덤덤하게 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그녀의 시선은 계속 이진희의 벤틀리 뮬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게 과연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치욕을 참은 어머니의 반응일까?잠깐 사이에 윤도훈의 흔들렸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다시 침착해졌다. 차가운 눈으로 방관하듯 주선미의 연기를 바라보았다."선미야, 너 유현한테서 돈을 얼마나 얻었어? 그거 얼른 나 줘!” 윤도훈은 주선미를 자기 몸에서 밀어내고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말이 떨어지자 주선미는 "어?" 하고 멍해졌다.엄청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윤도훈을 바라보았다. 주선미는 윤도훈이 벤틀리에 오르는 것을 보았고, 은표 무리 앞에서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가 돈이 부족한 상황일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윤도훈에게 무슨 기회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지위가 있는 대단한 존재로 되었다!그리하여 마음이 흔들린 주선미는 윤도훈를 찾아와 재결합을 제의하게 되었다. 물론 주선미는 아직 유현과 헤어지지 않았다. 윤도훈과 재결합이 결정될 때 주선미는 유현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다.그런데 그런 윤도훈이 예상 밖으로 자신에게 돈을 달라고 얘기하다니? 이놈 아직도 돈이 부족한가?"왜 그래? 돈을 모아서 율이의 병을 고치려고 유현한테 시집간 거 아니야? 그럼 돈은? "윤도훈은 초조함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너 돈 없어? 아니 그리고 율이 이젠 다 나았잖아?” 주선미의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다."아직 안 나았어! 특효약을 썼기 때문에 잠시 좀 나은 것뿐이야! 그리고 매치에 성공한 골수 증정자를 찾으면 그땐 또 큰 지출이 생기게 돼!”"선미야, 내가 계속 너를 오해한 것 같아”딸을 위해서 넌 홀로 이런 치욕을 참고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간 이원은 윤도훈을 보자 콧방귀를 뀌었다."다행이다. 너 여기에 있었네!"윤도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처남, 왜 이렇게 화내고 그래?"이원은 싸늘한 눈빛으로 윤도훈을 노려보았다. "꺼져! 누가 네 처남이야! 네까짓 게? 우리 누나가 네 쇼에 맞장구 좀 쳐줬다고 해서 나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씨발 넌 그냥 우리 누나가 찾은 꼭두각시일 뿐이고 심지어 다른 속셈을 가진 꼭두각시잖아!” 이 순간 이원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이진희는 이원과 가장 친한 누나였고 이원은 이진희를 엄청나게 잘 따르고 끔찍이 아꼈다.이가네 모두가 이진희를 허가네로 시집 보내려고 할 때도 이원은 여전히 확고하게 자기 누나 편에 섰다. 그 정도로 두 오누이의 사이는 아주 각별했다.그래서 누군가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누나에게 접근하는 것을 발견한 이원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하여 직접 사람을 데리고 야밤에 윤도훈을 잡으러 나왔다!"꼭두각시? 무슨 꼭두각시?"주선미는 이원의 말을 듣고 의문이 찬 어조로 윤도훈과 물었다. 윤도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얘기했잖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몸을 팔았다고. 그 사람이 바로 이씨 집안 아가씨야. 난 지금 이진희의 약혼자인 척하고 있어. 아, 맞다. 물론 그냥 사위는 아니고 데릴사위야.”“이 벤틀리도 이진희 거고 난 그냥 운전기사일 뿐이야.”이 말을 들은 주선미의 낯빛은 엄청 안 좋았다. 주선미는 무서운 눈빛으로 윤도훈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럼 전에 그 은표라는 사람은…”"아마도 이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겠지. 필경 이씨 가문은 도운시의 유망한 가문이니까!”윤도훈은 이렇게 얘기하면서 주선미의 어깨를 잡았다. “선미야, 이것저것 계속 물어보지 말고! 몸을 팔아 번 1억 6천만 원은 이미 다 써버렸어. 율이 앞으로의 치료는 네가 부담해야 할 것 같아! 어서, 너 유현한테서 돈을 얼마 가졌어?”"넌 아직도 가난뱅이였구나! 게다가 염치없는 기둥서방이었어! 데릴사위로 된 것도
이원은 신뢰하는 부하 한 명을 남겨 두고 이곳에서 율이를 보호하도록 했다.윤도훈은 순순히 따라갔고 심지어 상대방더러 자신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도록 했다. 차에 올라탄 그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윤도훈은 이원과 이 총들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짐작 못 할 뿐이다. 다만 이원은 필경 이진희의 동생이기에 윤도훈은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여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원이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네 매형이야.”윤도훈은 수갑을 찬 채로 뒷좌석에 앉았다.차에 올라탄 이원은 윤도훈의 옆에 앉고선 칼처럼 예리한 눈으로 윤도훈을 매섭게 쳐다보았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날 원이라고 불러?"이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총을 꺼내 윤도훈의 이마에 들이댔다. “ 어서 말해!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우리 누나에게 접근하는 목적은 뭔데?”"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다 찾아낸 거 보면 이미 내 뒷조사도 다 끝낸 거 아냐? 그럼 내 정체를 잘 알고 있겠네. 아니야?”윤도훈은 담담하게 물었다.“당연히 네 뒷조사를 다 해놨지! 너 씨발 송영태 쪽 사람이더라? 걔가 시켰지? 너 보고 우리 누나에게 접근하라고.”이원은 매섭게 물었다.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멈칫하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남, 이상한 음모론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아니라고? 조사한 바에 따르면 너와 송가네 집안은 계속 은밀하게 왕래를 하고 있었어. 너 같은 일반인이 뭔 수로 송가네 집안과 같은 그런 급의 사람을 만나겠어?”이원은 총으로 윤도훈을 협박하며 기세등등하게 얘기했다. “그냥 순순히 인정하면 내가 봐줄 수도 있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제대로 괴롭혀 줄 테야.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말해봐. 우리 누나를 어떻게 해치려고 계획했어? 아니면 우리 누나의 힘을 빌려 나를 상대할 계획이었어?”윤도훈은 이원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내가 너를 상대할 계획이었음 굳이 너의 누나를 힘
이 말을 들은 이원은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런 젠장! 이젠 동생님에서 동생으로 됐어? 그러나 윤도훈의 이 말은 시간이 있고 장소가 있어 신빙성이 높은 것 같다.이씨 집안 도련님은 갑자기 정말 반신반의하였다."네가 송가네 할아버지를 구했다고? 그럼 너 의술도 할 줄 알아?“도박도 할 줄 알고, 무예도 할 줄 알고, 의술도 할 줄 안다니. 너 씨발 미쳤다?” 이원은 야유하며 물었다."칭찬 고마워! 아니면 너희 누나가 왜 나한테 반하겠냐?”윤도훈은 입을 헤벌리며 겸손함이라곤 하나도 없이 웃었다. "씨발!"이원이 보기엔 이 녀석은 칭찬과 디스를 구분 못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원은 윤도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안 믿어! 네가 의술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한 난 믿을 수가 없어. 증명해 봐. 못하면 난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우리 누나 곁에서 널 쫓아낼 거야!”윤도훈은 입을 삐죽거렸다 “이걸 어떻게 증명해? 네 불면증을 치료해 줄까? 이건 별로 어렵지 않은데!”이원의 낯빛을 통해 윤도훈은 이원이 요 며칠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원은 순간 멈칫하다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얘기했다. “어려운 걸 원해? 그래 좋아! 널 데리고 한 사람을 만나러 갈 테니 그녀를 치료해 줄 수 있다면 그땐 너를 믿어주지!”"너를 믿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넌 나의 매형이고, 난 너의 동생이 되는 거야. 네가 내 뺨을 때리더라도 난 찍소리도 안 하고 다 받아줄 수 있어!”윤도훈은"어?"라는 말을 하고 입을 헤벌리며 얘기했다. “그럼 넌 틀림없이 내 동생이 되겠네!” ............윤도훈은 이원이 자신을 데리고 도운시 교외의 군사 요지에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긴 도운시의 방위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 틀림없다! 이씨 집안 도련님 이원이라고 할지언정 이곳에 오면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들은 랜드로버를 몰고 들어왔고 몸에 지녔던 총은 모두 다른 부하들에게 맡겨 미리 가져가도록 했다.
2층 방에 오니 이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침대에 누워있는 한단비의 이목구비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얼굴색은 파랗게 질려 약간 무섭게 보였다.아예 인사불성이 된 식물인간처럼 눈을 꼭 감고 있었다.침대 옆에는 청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그녀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었다.옆에는 점잖고 품위 있는 중년 남성이 서 있었는데 평소엔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였으나 지금의 얼굴은 온갖 기대와 근심으로 차 있었다.이 중년 남성이 바로 도운시 방위사령부 사령관인 한영이었다.이 외에도 침대 반대편에는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청년은 애석함과 슬픔이 가득 찬 눈빛으로 침대 위의 사령관의 딸을 보고 있었다.청년은 심길이라고 하는데 한단비와는 대학 동창이었고 지금도 동료로서 도운시의 생물과학 기술연구소에서 함께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동시에 한단비를 좋아하고 있으며 이 둘은 호감의 관계로 발전하였다.이원은 들어온 후 먼저 침대에 있는 한단비를 한번 보았다.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를 보니 이원의 마음은 삽시간에 초조함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시선을 심길 쪽으로 돌렸는데 그 시선에는 미묘한 적대감이 들어있었다. 그 시선과 마주친 심길이 싱거운 콧방귀를 뀌었다."아저씨, 단비는 어떻게 됐어요?"이원은 관심과 걱정이 한껏 담긴 어조로 물었다. 사령관은 그를 한 번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이원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설령 한 성깔 하는 이씨 집안 도련님이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얌전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영은 무시할 수 없는 신분과 지위를 갖고 있었고 방위부대의 군사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원은 물론이고 이 씨 가문도 그의 안중에는 없었다.게다가 이원도 한단비를 좋아하고 있는 입장인데 어찌 감히 미래의 장인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굴 수가 있겠는가?그리고 이원은 한영이 많은 음지의 산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신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이런 자신이 한단비와 접촉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원, 좀 조용히 해 줄래? 손
한단비에게 완치 가능성이 생겼단 얘기를 들은 이원의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띠었다. 다만 그가 윤도훈을 데리고 온 의미가 없어졌다.심길은 더없이 뿌듯해하고 감격스러워하며 한단비의 손을 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단비야, 너무 잘 됐다! 너 드디어 깨어날 수 있게 됐어!”윤도훈은 그런 심길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심길은 비록 최선을 다해 즐거운 척을 했지만, 그의 표정에서 잠깐 비친 조롱은 윤도훈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조롱은 누구를 향한 조롱일까? 이때 손명의는 은침 한 벌을 꺼내 소독한 후 침을 놓으려 했다!그러나 바로 이때, 윤도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큰 소리로 만류했다."손 선생님, 안 됩니다! 선생님이 이 몇 군데에 침을 놓으면 아가씨는 깨어나지 못할뿐더러 생명 위험까지 생기게 될 겁니다!”윤도훈의 말이 떨어지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다 같이 그를 바라보았다."자네, 방금 뭐라고 얘기했나?"손명의의 낯빛은 어두워졌고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이원, 이 사람은 누군가?"한영은 좋지 않은 표정을 하며 물었다. 자기 딸이 깨어날 가능성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재수없는 말을 들었는데, 사령관의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다."음… 제가 찾아온 의사입니다! 단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나 싶어 데리고 왔습니다.” 이원은 어색하게 설명했다.그도 윤도훈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자신이 찾아온 의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사령관님과 이 녀석이 자기 매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허! 여긴 자네 둘은 필요 없네!"한영은 콧방귀를 뀌었고 그들을 쫓아내려고 했다."이원, 넌 어디서 이런 답 없는 녀석을 찾아왔어? 넌 도대체 단비를 구하려는 거야 아니면 해치려는 거야?” 심길은 야유하며 물었다.이원은 붉어진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뒤돌아서서 윤도훈을 노려보았다.'이 믿을 수 없는 망할 녀석 때문에 내가 사령관님 앞에서 이렇게 조롱을 당하다니!'"젊은이, 자네도 의산가? 그럼 자네
한연란의 반문을 들은 윤도훈은 순간 멍해졌다. ‘이곳에 무언가 안 좋은 것이 있을 텐데, 한연란은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설마, 이곳에 갇혀 있는 게 무슨 이득이라도 있단 말입니까?”윤도훈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한연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막 들어오셔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직 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 회장님을 만나 뵌 후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한연란의 다른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들 역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들을 도운 윤도훈조차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그들은 지하 통로를 따라 약 1리 정도를 이동한 후, 마침내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가 이곳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만든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수도원 같은 건물처럼 보였으나, 분명히 과거 흡혈귀 일족이 거주했던 지역인 만큼 일반적인 수도원은 아니었다.건물의 벽에는 각종 사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흡혈귀의 섬뜩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기괴했다.한연란은 윤도훈을 데리고 건물 안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르신 한 명과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어르신은 일흔을 넘긴 듯 백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년 남자는 차분한 기운을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김새는 왠지 모르게 윤도훈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윤도훈은 그들을 몇 번 훑어보며 생각했다.‘이상하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이윽고 윤도훈은 두 사람 모두 금단 후기 수준의 강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두 사람의 진기와 단전 안에는 흡혈귀 일족 고수들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 즉 기혈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은 분명 금단
윤도훈은 이찬혁과 노차빈 등 봉화경비 소속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용안관천술의 기운 추적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그러나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서는 기운 추적법조차 무용지물이었다.“이런, 어쩔 수 없군. 일단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찬혁과 노차빈이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윤도훈은 눈빛을 번뜩이며 빠르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대 시체의 공격을 막아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앞장선 파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길고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며 빈틈없이 방어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고대 시체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윤도훈을 놀라게 한 점은, 그들이 모두 동양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용병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사용하는 무기도 냉병기였다. 또한, 움직임은 염하의 수련자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흡사했다.‘이런, 염하에서 온 모험가들이나 자유 수련자들인가?’윤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험가나 무파나 가문의 지원 없이 활동하는 자유 수련자들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떠돌며 기회를 찾아 나서곤 했고, 어떤 흥미로운 소문이 돌면 먼 곳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모두 진기를 운용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그 진기에는 희미하게 붉은 빛이 섞여 있었다. 그 붉은 빛은 흡혈귀 일족의 기운과 비슷해 보였고, 윤도훈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국외에 나와 이런 익숙한 동양인 얼굴들을 보자, 윤도훈은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윤도훈은 빠르게 달려가며 그들을 공격하는 고대 시체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 무리에 있던 파란 옷의 여인과 다른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며 윤도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윤도훈의 등장에 놀란 듯, 몇몇 사람들은 고대 시체와 싸우는 것을 멈추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윤도훈을 휘감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섰다.눈앞의 풍경은 한순간에 붉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사방이 핏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주변의 분위기는 마치 중세 MZ의 도시와도 같았다. 고풍스러운 성채와 중세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멀리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다. 시계탑의 커다란 시계추는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고, 그 위에는 어두운 붉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어 마치 피로 물든 듯한 인상을 주었다.바람이 휙 지나가며 희미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이곳이 바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인가?’윤도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환경 변화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확인을 마친 윤도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얼굴에는 조심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평소라면 윤도훈은 백 미터 내외의 모든 상황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의 감각은 마치 억눌린 듯 작동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변 10여 미터 정도의 상황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동시에 윤도훈은 자신의 피가 이상하게 들끓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의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며, 내면에는 폭력적이고 살육적인 충동이 점점 커져갔다.윤도훈은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해 이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는 용조의 검혼을 정련하며 정신력을 크게 단련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 제어에 유리했다.그러나 이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는 윤도훈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이 모든 것은 윤도훈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힘은 윤도훈을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살인 충동도 불러일으켰다. 이 힘은 그의 몸속에 있던 죽음의 힘과 유사했지만, 그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윤도훈조차 강제로 몰아낼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대해 윤도훈은 속으로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현재 윤도훈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적인 상고 윤씨 가문과,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단맥종과 같은 위협을 생각하면, 힘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기회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따라서 피의 조상의 심장을 얻으면 흡혈귀의 시조인 카인 마왕의 일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윤도훈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흡혈귀 황제 마리의 말 앞부분에는 아직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녀가 봉화경비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윤도훈의 표정이 확연히 변했다.“봉화경비? 봉화경비가 왜?”윤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전에 윤도훈은 이미 이찬혁과 노차빈이 고액의 임무를 수락하고 해외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가 봉화경비를 언급하다니, 혹시 이게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역시나, 잠시 후 히드 공작이 말을 이었다.“봉화경비의 몇몇 인원이 저희 히드 조직이 의뢰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 탐험 임무를 수락했습니다.”“다른 용병들과 함께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갔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윤도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그는 냉혹한 눈빛으로 히드 공작을 바라보았고,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이 순간, 히드 공작은 등골이 오싹해졌고, 마치 얼음동굴에 갇힌 것처럼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그는 서둘러 해명했다.“인정합니다. 히드 조직은 과거 선생님께 복수하기 위해 윤도훈 씨 주변 사람들의 정보를 조사했습니다.”“그래서 봉화경비의 배후가 바로 윤도훈 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이번 임무는 저희가 봉화경비를 유인한 것이 아닙니다.”“흥!”윤도훈은 크게 코웃음을 치며 공기를 흔들 정도의 낮은 음성을 냈다. 그 소리에 히드 공작은 귀가 아플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내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히드 조직은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고, 흡혈귀
“내가 하늘을 걸고 맹세하건대, 절대로 윤돈훈 씨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흡혈귀 일족이 현재 가진 자원 중에는 정말로 당신의 눈에 들만한 것이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흡혈귀 일족 영토로 가보세요.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열어드릴 테니, 마음껏 찾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세요.”“제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는 것은, 윤도훈 씨를 경외하며 우리의 원한을 완전히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피의 조상의 심장에 대해 말씀드린 거고요.” “만약 관심이 없다면, 평범한 다른 자원을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우리 흡혈귀 일족에서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입니다. 원하십니까?”마리는 약간의 체념과 억울함이 묻어난 표정으로 윤도훈을 향해 간절히 말했다.여자들은 본래 배우라는 말이 있듯, 흡혈귀 황제 같은 흡혈귀도 이 방면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이렇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더욱 빛을 발했다. 지금의 마리는 전혀 죄가 없는 순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진심이 담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마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마리도 숨을 깊이 들이쉬며 윤도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치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듯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가 더 이상 좋은 것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믿어보지. 네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먼저 내놔. 그리고 피의 조상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말해.”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른 듯, 그 자리에서 표정이 굳었다.‘뭐지? 이 녀석, 정말로 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원한단 말인가? 단순히 허세로 한 말인데, 이 자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다니?’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백 명의 대공 흡혈귀의 척추뼈와 피의 인내를 담은 강철이라는 특수 금속을 섞어 제작한, 매우 희귀한 성스러
이틀 후.서지현이 하이오스 그룹의 냉동 기지로 안전하게 돌아온 후, 윤도훈과 이진희는 이번엔 또 다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24시간 동안 그곳을 지켰다. 서지현이 해동된 후에는 더 이상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그날, 윤도훈과 이진희는 앨리스의 소개로 그녀와 성시아의 스승을 만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간 유전학의 권위자, 스타인 박사였다.두 사람은 윤시율을 데리고 이 학계의 거물을 만났다. 아이의 몸에 걸린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였다.윤도훈은 생각했다. 상고 윤씨 가문의 이 저주는 몇 세대 간 무작위로 나타나며 마치 유전적 성질을 가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가문의 손을 빌리지 않고,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스타인 같은 세계 최정상급 인간 유전학자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만큼, 윤도훈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운 좋게도 앨리스는 스타인 박사의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고, 그녀의 소개 덕분에 박사는 앨리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스타인 박사는 윤시율의 상태를 듣고 나서, 그 저주에 대해 큰 흥미를 보였다.이윽고 하이오스 그룹에 있는 앨리스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윤시율과 함께 스타인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은 허름한 옷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낀 노인이었으며, 외모로만 봐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일상적인 생활은 거의 무시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였다.잠시 후, 스타인 박사는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윤시율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윤시율의 혈액과 골수를 채취해 분석과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스타인 박사는 이 유전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 다. 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윤도훈과 이진희도 이 상황을 죽은 말을 살리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며, 스타인이 최선을 다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스타인 박사가 윤시율을 검사실로 데리고 가 여러 검사
흡혈귀 황제 마리는 흡혈귀 일족의 여왕으로서 윤도훈에게 충분한 경고와 함께 수백 구의 흡혈귀 일족 강자들의 시체를 남겨주었다. 그 후 윤도훈은 그렇게 흡혈귀 일족의 영역을 떠났다.흡혈귀 일족의 영토 전체는 비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 속에는 짙은 피비린내와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원래 흡혈귀 일족들에게 이런 냄새는 매우 황홀한 향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흡혈귀 일족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사냥감의 피비린내와 자신의 동족이 죽은 뒤 퍼지는 피비린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한편, 흡혈귀 황제 마리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경악을 넘어 깊은 슬픔과 증오가 자리 잡았다. 한 명의 대공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공작과 백작 등의 흡혈귀 일족 중추 세력도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흡혈귀 일족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모든 것은 염하에서 온 윤도훈을 건드린 결과였다.조금 전, 윤도훈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던 마리는 자신의 증오심을 잘 숨겼다. 하지만 이러한 피의 원한을 그녀가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윤도훈이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흡혈귀 일족의 영토 안에 위치한 한 밀실.흡혈귀 황제 마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묻은 피와 무력함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요염하고 위엄 있는 여왕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또한, 마리 앞에는 한 잘생긴 뱀파이어 공작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부츠에 입맞추고 있었다.“히드 공작,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의 상황은 어떻지?”마리는 자신의 발을 거두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마리 여왕님, 제가 은밀망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배포한 임무를 이미 많은 전 세계 용병과 모험가들이 수락했습니다. 지금 고대 지역으로 몰려든 인간들의 수가 이미 천 명에 달했습니다.”“그중에는 세계정화 교단과 늑대인간 무리 같은 멍청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그 신비로운 보물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제 생각에 두 달도 채 안 돼, 피의 조상 고대 시체에게 바칠 제물의 수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이 아직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윤도훈 씨, 도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거예요? 당신 장모님은 무사하시잖아요. 설마 지금 와서 말을 바꾸려는 거예요? 원한에는 원인이 있고, 빚에는 주인이 있죠. 오거스라는 사건의 주범은 이미 죽었어요.”흡혈귀 황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의 2미터가 넘는 키마저 분노로 인해 약간 떨리고 있었다.“네 흡혈귀 일족들이 외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암흑 조직을 지원하고, 내 장모를 납치하고, 내 아내를 끌어들이려 했지. 방금도 나를 죽이려 했으면서, 주범 하나 죽이는 것으로 끝내겠다도?”“내가 윤도훈이라 너무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모든 원한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너희 흡혈귀 일족이 나에게 배상을 해야겠지. 그렇지 않나?”윤도훈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강하게 마리를 압박했다. 이것은 국제 관례였다. ‘패배자가 승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도대체 어떤 배상을 원한단 말인가요?”흡혈귀 황제 마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분노 섞인 어조로 물었다.“너희 흡혈귀 일족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보자고. 내가 눈여겨볼 만한 걸 내놓아라.”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흡혈귀 황제 마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흡혈귀 일족의 가장 큰 보물이라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제가 윤도훈 씨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겠어요?”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를 상대하면서, 마리는 윤도훈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흠 하며 잠시 멈칫하더니, 흡혈귀 황제 마리의 몸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2미터가 넘는 키에도 전혀 투박하거나 둔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뿜어냈다. 1미터 이상의 다리, 매혹적인 허리와 골반의 곡선, 그리고 빠져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진희는 사실 흡혈귀 일족의 영토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전에 오거스는 단지 윤도훈을 이곳으로 유인해 흡혈귀 일족의 더 강력한 강자들이 그를 상대하게 하려는 계략을 꾸몄을 뿐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윤도훈의 강함은 흡혈귀 일족 전체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하이오스 그룹으로 돌려보내라니?”윤도훈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도훈 씨, 하이오스 그룹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어쨌든 장모님께서는 여전히 냉동 상태에 있으시니까요. 안심하세요. 하이오스 그룹과 히드 조직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단지 로이가 히드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오거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윤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약 30분가량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흡혈귀 일족 대전당 전체는 무거운 긴장감 속에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온몸이 피로 뒤덮이고 살기를 내뿜는 윤도훈이 그저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었다.잠시 후, 오거스가 부하들에게서 회신을 받은 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하이오스 그룹의 인체 냉동 기지에 가서 서지현이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확실한 답변을 들은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도훈 씨, 장모님은 이미 무사히 복귀하셨고, 도훈 씨도 아무련 부상을 입지 않으셨으니, 이제 그만 떠나주실 수 있겠습니까?”그 순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윤도훈은 마리의 능력조차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염하인이다. 따라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윤도훈을 죽일 능력은 없는데, 상대는 흡혈귀 일족을 멸망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는 윤도훈이 어서 떠나주길 바랐다. 이 재앙과도 같은 존재를 빨리 보내고 싶어 했다.“떠나라고? 내 장모를 함부로 납치하고, 내 아내를 잡으려 들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