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윤도훈은 율이를 데리고 다시 단맥종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번 외출이 끝나면, 얼마 동안이나 이진희와 함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윤도훈은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고자 했다.이윽고 설만추의 집에 도착한 윤도훈은 간단히 임수철의 병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임수철의 병은 악성 질환이 아닌 만성 폐질환이었다. 그래서 윤도훈은 간단한 의술로 임수철의 병을 치료해 주었고, 설만추는 다시 한번 윤도훈의 신묘한 능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만추는 윤도훈이 강력한 실력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의술까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그리고 윤도훈이 다시 도운시로 돌아간다고 하자, 설만추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윤도훈이 곧 단맥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설만추는 하모완처럼 억지로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그날 오후, 중주시의 공항 대기실에서 윤도훈은 전화로 이진희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여보, 나 보고 싶었어?”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이진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응. 보고 싶었어요.]잠시 후, 이진희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훈 씨, 지금 어디에요? 단맥종에서 나온 거에요?]이진희의 목소리에서는 은근한 설렘과 조급함이 묻어났다.“응, 잠깐 외출했어! 율이 데리고 집에 돌아가려고.”이때, 옆에 있던 율이가 기쁜 목소리로 외치며 전화기를 빼앗았다. “엄마! 엄마, 나 율이야!”그동안 율이는 설만추와 같은 좋은 이모를 만났지만, 율이의 마음속에선 엄마인 이진희가 차지하는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진희와 통화한 후, 율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전화를 윤도훈에게 건넸다.이윽고 이진희가 윤도훈에게 말했다. [도훈 씨, 나 때문에 단맥종을 떠날 필요는 없어요. 난 괜찮아요. 도훈 씨도 말했잖아요, 상고 윤씨 가문이 언제든 도훈 씨를 찾을 수 있다고요. 이렇게 나오는 건 너무 위험해요.”이진희는 그리워함에도 불구하고 윤도훈을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러자 윤도훈
P시, 어느 다방에서.전화를 끊은 이진희의 고운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진희의 맞은편에는 P시의 최고 부호의 딸이자 P시 화시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미모의 대표인 성시아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번 천운시에서 이미 기본적인 협력 방향에 합의했기에, 이번에 이진희가 P시를 방문한 것은 본격적인 협상과 협력 사항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이진희가 전화를 마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은 같은 여자인 성시아조차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진희야, 누구한테 전화 온 거길래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거야? 혹시 남편?”성시아는 농담처럼 물었다. 두 사람은 이미 친구이자 절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맞아, 내 남편 윤도훈이야. 하지만 사실 우리 딸 율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어.”이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성시아의 장난스러운 어조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속으로는 윤도훈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걸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했다.“흥!”성시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진희를 쳐다보았지만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이어서 두 사람은 협력 조건을 조율한 후,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무렵,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한편, P시 외곽, 한 대기업 사옥 내, 이곳은 바로 SJ 의약 상인 협회 본부이다. 사무실 안에서 SJ 의약 상인 협회의 책임자인 주석훈은 한 젊은 남성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석훈은 눈가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했다. 나이답지 않게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아들이었던 주단성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모양이었다.주석훈은 한때, 은둔 윤씨 가문을 등에 업고 자신의 아들 주단성이 윤도훈과 대적하도록 시켰지만, 그것이 아들의 죽음을 불러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주단성을 죽인 것은 윤도훈이 아니라 오히려 윤민기였다. 그러나 주석훈은 은둔 윤씨 가문에게 따지러 갈 용기가 없어 그 원한을 묻어두었다. 대신, 그 분노와
주석훈은 그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 “두 년놈이!”전우현은 그 말에 잔인한 기색을 띠며 덧붙였다. “석훈 사장님, 우리 손을 써서 저들의 협력을 방해해 보는 건 어떨까요?”이전에 도운시에서 상업 교류회 중 당했던 굴욕으로 인해 전우현은 윤도훈과 이진희를 증오하고 있었다. 사랑보다는 집착과 소유욕에서 비롯된 원망이었다. 그런 만큼 전우현은 이진희와 그린 제약회사이 잘되는 것을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우현 전무님, 어떤 계획이라도 있습니까?”주석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전우현은 잠시 생각한 후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고, 주석훈은 듣고 나서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전우현의 계획이란 고작 상업적인 방식으로 그린 제약회사과 화시 바이오테크놀로지 간의 협력을 방해하고 타격을 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는 주석훈에게 닥친 상실감을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주석훈은 가슴에 맺힌 분노와 복수를 원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주석훈의 마음은 이미 피와 복수로 가득 차 있었다.“좋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제가 생각해 보겠습니다.”주석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석훈 사장님, 제발 빨리 손을 써 주십시오. 이진희와 성시아의 협력이 완전히 성사되기 전에 말입니다.”전우현은 일어서며 말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전우현은 속으로 이진희와 성시아 간의 협력이 무너지면, 그 틈을 타서 그린 제약회사과 협력할 기회가 있을지 계산하고 있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이진희와의 관계에도 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감을 품은 것이다.전우현이 떠난 후, 주석훈은 주먹을 꽉 쥐며 살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회색 로브를 걸친 마르고 창백한 중년 남자가 주석훈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 남자의 온몸에서 음산하고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마치 무덤에서 나온 듯한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음사, 이 일을 맡아주십시오! 이진희와 성시아, 반드시 내 아들과
이진희와 성시아가 타고 있던 아우디 A8 뒤로는 아무 차도 없었고, 거대한 시멘트 믹서 트럭이 무섭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 트럭은 A8과 2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왔고, 그 속도로는 2초도 안 되어 충돌할 터였다.그런데도 A8의 앞과 좌우측을 막고 있던 차량들은 여전히 느릿하게 움직이며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이 사고는 누가 봐도 정교하고 치밀했다. 트럭의 무게와 관성으로 인해 A8은 산산조각 날 것이 분명했고, 내부의 승객들 역시 온전치 못할 터였다.그러나 옆에 앉아 있던 성시아와 운전석의 기사 모두 위험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는 앞에 있는 소형 화물차에게 경적을 두 번 울리며 서두르라고 신호를 보냈을 뿐이었다. 그때, 이진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시멘트 믹서 트럭이 이진희의 눈에 들어오자, 이진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진희의 동공 속에는 트럭의 모습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그러나 이진희는 개혼체였다. 예전에 흡수한 악령왕의 영혼 에너지 덕분에 신체 능력이 원영 중기 강자 수준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진희가 트럭 아래 깔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을 터였다. 또한 위험을 감지한 이진희는 트럭이 닿기 전에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그러나 성시아는 다르다. 그리고 이제 막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친구가 된 성시아를 두고 혼자만 탈출할 수 없었다. 트럭이 이진희의 시야에서 점점 커져오자, 이진희는 고민할 새도 없이 성시아 쪽으로 몸을 날렸다.앞에 있는 기사를 돌볼 겨를은 없었다. 이진희는 속으로 미안하다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쾅-, 쾅-눈 깜짝할 사이에 시멘트 믹서 트럭이 아우디 A8을 덮쳤다. 한순간 트럭은 상대적으로 작고 약한 A8을 완전히 깔아뭉갰다. 그 모습은 마치 성인 남자가 어린아이를 짓누르는 듯했다. 육안으로 보아도 A8의 차체는 즉시 변형되었고, 창문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이때에도 A8의 세 방향을 막고
이진희와 성시아가 죽었다고 생각한 주석훈은 복수의 쾌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음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말도 안 돼. 젠장! 교통사고로도 죽지 않는다면 내 괴인 시체들을 상대해 보라지!”음사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러자 주석훈도 미간을 찌푸린채 물었다. “음사, 무슨 일입니까? 무슨 변수가 생긴 겁니까?”그러나 음사는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인을 더 빠르게 결하며 얼굴에 섬뜩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한편, 교통사고 현장.모두가 아우디 A8에 타고 있던 이들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변형된 차체 안에서 이진희는 몸을 움츠려 성시아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진희의 연약해 보이는 몸이 시멘트 믹서 트럭의 무시무시한 중량과 관성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진희야, 너. 괜찮아?”성시아는 몸을 웅크려 자신을 보호하는 이진희를 보며 두려움과 감동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만약 이진희가 남자였더라면, P시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아가씨인 성시아는 당장이라도 사랑고백을 했을 것이다.“난 괜찮아!”이진희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잠시 후, 아우디 A8의 찌그러진 차체가 쑥 올라갔다. 이진희는 성시아의 손을 잡고 차에서 뛰쳐나왔다. 한편, 이 광경을 본 주변 사람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했다.“저 여자들을 좀 봐요, 차에서 나왔어요!”“죽지 않았다고요?”“이게 가능해요?”“일생의 운을 다 쓴 거예요!”“하늘이 미인을 돌봐 주는 건가 봐요.”모두가 이진희와 성시아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성시아는 차에서 나온 후 운전석을 힐끗 보았다. 차에 갇힌 운전기사가 참혹하게 죽어 있는 모습을 본 성시아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스쳐갔다.“시아야, 보지 말고 빨리 이곳을 떠나자! 오늘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이진희가 성시아를 재촉하며 말했다.바로 그때, 연속으로 펑펑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우디
시멘트 트럭에서 내달려온 괴인 시체가 마침내 성시아의 팔을 움켜잡았다.“진희야, 살려줘!”성시아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비명을 질렀다. 성시아는 이진희와 달리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때, 이진희는 인츰 뒤를 돌아보고는 순간적으로 성시아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이미 늦어버렸다.으드득-아악-끔찍한 뼈가 부러지고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성시아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성시아의 오른팔이 그 괴인 시체에 의해 단번에 뜯겨 나간 것이었다.이 괴인들은 이진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힘과 무서운 생명력으로 인해 무자비한 존재였다. 그렇게 성시아는 뼈를 찌르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그제야 이진희는 상황을 깨달았고, 성시아의 얼굴엔 놀라움과 함께 한동안 멍한 표정이 스쳤다. 성시아의 뜨거운 피가 얼굴에 튀자, 성시아는 정신을 되찾고는 마치 미친 듯이 시멘트 트럭 운전사에게 달려들어 한 방에 그 괴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한편, 민가 안에서, 네 구의 괴인 시체들이 모두 파괴되자 음사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음사의 얼굴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음사, 어떻게 된 겁니까?”주석훈은 얼굴이 잔뜩 굳은 채 물었다.“실패했습니다. 저 이진희가 고수일 줄은 몰랐네요!”음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가 조종하는 괴인 시체들은 철갑보다 단단하고 힘이 장사라, 일반적인 내공 강자를 능가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진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이윽고 음사는 주석훈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왜 미리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주석훈은 두려움에 급히 변명했다. “저도 몰랐습니다.”음사는 주석훈을 무자비하게 밀쳐내며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가문에 돈을 벌어다 주지 않았다면 당장 죽였을 것입니다.”주석훈은 억울함을 삼키며 연신 사과했다. 상대는 은둔 세력인 윤씨 가문에서 보내준 실력자일 뿐만 아니
전우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젠장, 저 주석훈이라는 자 완전히 미친 모양이네. 이 일에 날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군! 비록 나씨 가문을 등에 업고 있지만, 성씨 가문도 쉽게 당할 상대가 아니니까.”전우현은 비열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꼬여가니, 살짝 조작만 하면 이진희와 성시아의 협력은 무산될지도 몰라.”전우현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병원, 수술실 앞.P시의 최고 부자이자 성씨 그룹의 수장이며 성시아의 아버지인 성조현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무겁고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주변에는 P시 상업계의 유력 인사들과 성조현의 사업 파트너, 그리고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몰려들었다.“조현 회장님, 시아는 어때요?”“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죠?”“사고 책임자와 범인은 잡았습니까?”“시아는 그때 누구와 함께 있었죠?”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관심을 표했다. 그러나 성조현은 이들에게 일일이 답할 기분이 아니었고,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한편, 이진희는 한쪽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서 계속 전화를 걸었다. 곁에는 양유나를 비롯한 그린 제약회사의 직원들이 함께 병원에 도착하여 이진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전화가 몇 번이나 연결이 되지 않던 끝에,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 무슨 일이야? 이거 참, 우린 참 잘 통하네. 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화가 오다니. 하하.]전화기 너머 윤도훈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러자 이진희도 쓴웃음을 지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잘 통하다니, 내가 얼마나 전화를 했는데.’그러나 이상하게도 윤도훈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진희의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도훈 씨, 큰일이 났어요!”이진희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큰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여보, 괜찮아?]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급히 물으며 몹시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윤도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니, 이진희는 내심 안도감과 감동을 느꼈다.“난 괜찮아요!
전우현의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진희에게로 쏠렸다.성조현, P시의 최고 부자이자 성시아의 아버지는 이진희를 한 번 냉정하게 훑어보더니, 차갑게 코웃음 치고는 아무 말 없이 외면했다.성조현은 자신의 딸이 그린 제약회사의 미모의 대표인 이진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여 방금까지 사람들의 질문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성씨 가문과 관계가 좋다고 자부하는 P시의 상업계 인사들은 이진희에게 연신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이진희와 함께 있었던 게 맞다고요?”“이보세요,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실래요? 시아 아가씨가 그런 사고를 당하게 된 이유가 대체 뭔가요?”“이 일이 이진희 씨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어떻게 이진희 씨는 무사할 수 있었죠?”“그러게요, 시아 아가씨는 팔을 다쳤는데 왜 이진희 씨는 멀쩡한 겁니까!”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이진희를 추궁했다. 마치 성시아가 다쳤는데도 이진희는 무사한 것이 잘못이라는 듯이 이진희를 몰아세웠다. 이렇게 그들의 비난을 들으며, 이진희는 굳은 얼굴로 전우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그래요, 당시 저는 시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시아를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시아가 팔을 다친 건 저에게도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타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아무리 강인한 성격을 가진 이진희라도 견디기 힘든 억울함을 느꼈다. 마치 혼자서 모든 이들의 비난을 견디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비록 양유나 등 이진희의 직원들이 이진희를 변호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여론을 잠재울 순 없었다. 이 상황을 보며 전우현은 조소를 지으며 이진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이진희 씨, 시아 아가씨와 협력하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어떻게 이리도 우연히 너와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걸까?’“협력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고를 조작해 시아 아가씨를 해치려 했던 거 아닙니까?”전
한연란의 반문을 들은 윤도훈은 순간 멍해졌다. ‘이곳에 무언가 안 좋은 것이 있을 텐데, 한연란은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설마, 이곳에 갇혀 있는 게 무슨 이득이라도 있단 말입니까?”윤도훈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한연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막 들어오셔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직 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 회장님을 만나 뵌 후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한연란의 다른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들 역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들을 도운 윤도훈조차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그들은 지하 통로를 따라 약 1리 정도를 이동한 후, 마침내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가 이곳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만든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수도원 같은 건물처럼 보였으나, 분명히 과거 흡혈귀 일족이 거주했던 지역인 만큼 일반적인 수도원은 아니었다.건물의 벽에는 각종 사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흡혈귀의 섬뜩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기괴했다.한연란은 윤도훈을 데리고 건물 안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르신 한 명과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어르신은 일흔을 넘긴 듯 백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년 남자는 차분한 기운을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김새는 왠지 모르게 윤도훈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윤도훈은 그들을 몇 번 훑어보며 생각했다.‘이상하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이윽고 윤도훈은 두 사람 모두 금단 후기 수준의 강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두 사람의 진기와 단전 안에는 흡혈귀 일족 고수들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 즉 기혈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은 분명 금단
윤도훈은 이찬혁과 노차빈 등 봉화경비 소속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용안관천술의 기운 추적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그러나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서는 기운 추적법조차 무용지물이었다.“이런, 어쩔 수 없군. 일단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찬혁과 노차빈이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윤도훈은 눈빛을 번뜩이며 빠르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대 시체의 공격을 막아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앞장선 파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길고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며 빈틈없이 방어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고대 시체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윤도훈을 놀라게 한 점은, 그들이 모두 동양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용병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사용하는 무기도 냉병기였다. 또한, 움직임은 염하의 수련자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흡사했다.‘이런, 염하에서 온 모험가들이나 자유 수련자들인가?’윤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험가나 무파나 가문의 지원 없이 활동하는 자유 수련자들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떠돌며 기회를 찾아 나서곤 했고, 어떤 흥미로운 소문이 돌면 먼 곳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모두 진기를 운용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그 진기에는 희미하게 붉은 빛이 섞여 있었다. 그 붉은 빛은 흡혈귀 일족의 기운과 비슷해 보였고, 윤도훈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국외에 나와 이런 익숙한 동양인 얼굴들을 보자, 윤도훈은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윤도훈은 빠르게 달려가며 그들을 공격하는 고대 시체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 무리에 있던 파란 옷의 여인과 다른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며 윤도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윤도훈의 등장에 놀란 듯, 몇몇 사람들은 고대 시체와 싸우는 것을 멈추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윤도훈을 휘감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섰다.눈앞의 풍경은 한순간에 붉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사방이 핏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주변의 분위기는 마치 중세 MZ의 도시와도 같았다. 고풍스러운 성채와 중세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멀리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다. 시계탑의 커다란 시계추는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고, 그 위에는 어두운 붉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어 마치 피로 물든 듯한 인상을 주었다.바람이 휙 지나가며 희미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이곳이 바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인가?’윤도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환경 변화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확인을 마친 윤도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얼굴에는 조심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평소라면 윤도훈은 백 미터 내외의 모든 상황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의 감각은 마치 억눌린 듯 작동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변 10여 미터 정도의 상황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동시에 윤도훈은 자신의 피가 이상하게 들끓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의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며, 내면에는 폭력적이고 살육적인 충동이 점점 커져갔다.윤도훈은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해 이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는 용조의 검혼을 정련하며 정신력을 크게 단련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 제어에 유리했다.그러나 이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는 윤도훈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이 모든 것은 윤도훈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힘은 윤도훈을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살인 충동도 불러일으켰다. 이 힘은 그의 몸속에 있던 죽음의 힘과 유사했지만, 그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윤도훈조차 강제로 몰아낼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대해 윤도훈은 속으로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현재 윤도훈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적인 상고 윤씨 가문과,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단맥종과 같은 위협을 생각하면, 힘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기회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따라서 피의 조상의 심장을 얻으면 흡혈귀의 시조인 카인 마왕의 일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윤도훈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흡혈귀 황제 마리의 말 앞부분에는 아직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녀가 봉화경비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윤도훈의 표정이 확연히 변했다.“봉화경비? 봉화경비가 왜?”윤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전에 윤도훈은 이미 이찬혁과 노차빈이 고액의 임무를 수락하고 해외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가 봉화경비를 언급하다니, 혹시 이게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역시나, 잠시 후 히드 공작이 말을 이었다.“봉화경비의 몇몇 인원이 저희 히드 조직이 의뢰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 탐험 임무를 수락했습니다.”“다른 용병들과 함께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갔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윤도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그는 냉혹한 눈빛으로 히드 공작을 바라보았고,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이 순간, 히드 공작은 등골이 오싹해졌고, 마치 얼음동굴에 갇힌 것처럼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그는 서둘러 해명했다.“인정합니다. 히드 조직은 과거 선생님께 복수하기 위해 윤도훈 씨 주변 사람들의 정보를 조사했습니다.”“그래서 봉화경비의 배후가 바로 윤도훈 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이번 임무는 저희가 봉화경비를 유인한 것이 아닙니다.”“흥!”윤도훈은 크게 코웃음을 치며 공기를 흔들 정도의 낮은 음성을 냈다. 그 소리에 히드 공작은 귀가 아플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내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히드 조직은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고, 흡혈귀
“내가 하늘을 걸고 맹세하건대, 절대로 윤돈훈 씨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흡혈귀 일족이 현재 가진 자원 중에는 정말로 당신의 눈에 들만한 것이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흡혈귀 일족 영토로 가보세요.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열어드릴 테니, 마음껏 찾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세요.”“제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는 것은, 윤도훈 씨를 경외하며 우리의 원한을 완전히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피의 조상의 심장에 대해 말씀드린 거고요.” “만약 관심이 없다면, 평범한 다른 자원을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우리 흡혈귀 일족에서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입니다. 원하십니까?”마리는 약간의 체념과 억울함이 묻어난 표정으로 윤도훈을 향해 간절히 말했다.여자들은 본래 배우라는 말이 있듯, 흡혈귀 황제 같은 흡혈귀도 이 방면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이렇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더욱 빛을 발했다. 지금의 마리는 전혀 죄가 없는 순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진심이 담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마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마리도 숨을 깊이 들이쉬며 윤도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치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듯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가 더 이상 좋은 것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믿어보지. 네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먼저 내놔. 그리고 피의 조상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말해.”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른 듯, 그 자리에서 표정이 굳었다.‘뭐지? 이 녀석, 정말로 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원한단 말인가? 단순히 허세로 한 말인데, 이 자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다니?’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백 명의 대공 흡혈귀의 척추뼈와 피의 인내를 담은 강철이라는 특수 금속을 섞어 제작한, 매우 희귀한 성스러
이틀 후.서지현이 하이오스 그룹의 냉동 기지로 안전하게 돌아온 후, 윤도훈과 이진희는 이번엔 또 다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24시간 동안 그곳을 지켰다. 서지현이 해동된 후에는 더 이상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그날, 윤도훈과 이진희는 앨리스의 소개로 그녀와 성시아의 스승을 만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간 유전학의 권위자, 스타인 박사였다.두 사람은 윤시율을 데리고 이 학계의 거물을 만났다. 아이의 몸에 걸린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였다.윤도훈은 생각했다. 상고 윤씨 가문의 이 저주는 몇 세대 간 무작위로 나타나며 마치 유전적 성질을 가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가문의 손을 빌리지 않고,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스타인 같은 세계 최정상급 인간 유전학자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만큼, 윤도훈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운 좋게도 앨리스는 스타인 박사의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고, 그녀의 소개 덕분에 박사는 앨리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스타인 박사는 윤시율의 상태를 듣고 나서, 그 저주에 대해 큰 흥미를 보였다.이윽고 하이오스 그룹에 있는 앨리스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윤시율과 함께 스타인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은 허름한 옷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낀 노인이었으며, 외모로만 봐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일상적인 생활은 거의 무시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였다.잠시 후, 스타인 박사는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윤시율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윤시율의 혈액과 골수를 채취해 분석과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스타인 박사는 이 유전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 다. 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윤도훈과 이진희도 이 상황을 죽은 말을 살리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며, 스타인이 최선을 다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스타인 박사가 윤시율을 검사실로 데리고 가 여러 검사
흡혈귀 황제 마리는 흡혈귀 일족의 여왕으로서 윤도훈에게 충분한 경고와 함께 수백 구의 흡혈귀 일족 강자들의 시체를 남겨주었다. 그 후 윤도훈은 그렇게 흡혈귀 일족의 영역을 떠났다.흡혈귀 일족의 영토 전체는 비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 속에는 짙은 피비린내와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원래 흡혈귀 일족들에게 이런 냄새는 매우 황홀한 향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흡혈귀 일족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사냥감의 피비린내와 자신의 동족이 죽은 뒤 퍼지는 피비린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한편, 흡혈귀 황제 마리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경악을 넘어 깊은 슬픔과 증오가 자리 잡았다. 한 명의 대공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공작과 백작 등의 흡혈귀 일족 중추 세력도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흡혈귀 일족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모든 것은 염하에서 온 윤도훈을 건드린 결과였다.조금 전, 윤도훈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던 마리는 자신의 증오심을 잘 숨겼다. 하지만 이러한 피의 원한을 그녀가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윤도훈이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흡혈귀 일족의 영토 안에 위치한 한 밀실.흡혈귀 황제 마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묻은 피와 무력함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요염하고 위엄 있는 여왕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또한, 마리 앞에는 한 잘생긴 뱀파이어 공작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부츠에 입맞추고 있었다.“히드 공작,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의 상황은 어떻지?”마리는 자신의 발을 거두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마리 여왕님, 제가 은밀망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배포한 임무를 이미 많은 전 세계 용병과 모험가들이 수락했습니다. 지금 고대 지역으로 몰려든 인간들의 수가 이미 천 명에 달했습니다.”“그중에는 세계정화 교단과 늑대인간 무리 같은 멍청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그 신비로운 보물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제 생각에 두 달도 채 안 돼, 피의 조상 고대 시체에게 바칠 제물의 수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이 아직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윤도훈 씨, 도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거예요? 당신 장모님은 무사하시잖아요. 설마 지금 와서 말을 바꾸려는 거예요? 원한에는 원인이 있고, 빚에는 주인이 있죠. 오거스라는 사건의 주범은 이미 죽었어요.”흡혈귀 황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의 2미터가 넘는 키마저 분노로 인해 약간 떨리고 있었다.“네 흡혈귀 일족들이 외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암흑 조직을 지원하고, 내 장모를 납치하고, 내 아내를 끌어들이려 했지. 방금도 나를 죽이려 했으면서, 주범 하나 죽이는 것으로 끝내겠다도?”“내가 윤도훈이라 너무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모든 원한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너희 흡혈귀 일족이 나에게 배상을 해야겠지. 그렇지 않나?”윤도훈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강하게 마리를 압박했다. 이것은 국제 관례였다. ‘패배자가 승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도대체 어떤 배상을 원한단 말인가요?”흡혈귀 황제 마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분노 섞인 어조로 물었다.“너희 흡혈귀 일족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보자고. 내가 눈여겨볼 만한 걸 내놓아라.”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흡혈귀 황제 마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흡혈귀 일족의 가장 큰 보물이라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제가 윤도훈 씨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겠어요?”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를 상대하면서, 마리는 윤도훈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흠 하며 잠시 멈칫하더니, 흡혈귀 황제 마리의 몸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2미터가 넘는 키에도 전혀 투박하거나 둔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뿜어냈다. 1미터 이상의 다리, 매혹적인 허리와 골반의 곡선, 그리고 빠져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진희는 사실 흡혈귀 일족의 영토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전에 오거스는 단지 윤도훈을 이곳으로 유인해 흡혈귀 일족의 더 강력한 강자들이 그를 상대하게 하려는 계략을 꾸몄을 뿐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윤도훈의 강함은 흡혈귀 일족 전체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하이오스 그룹으로 돌려보내라니?”윤도훈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도훈 씨, 하이오스 그룹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어쨌든 장모님께서는 여전히 냉동 상태에 있으시니까요. 안심하세요. 하이오스 그룹과 히드 조직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단지 로이가 히드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오거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윤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약 30분가량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흡혈귀 일족 대전당 전체는 무거운 긴장감 속에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온몸이 피로 뒤덮이고 살기를 내뿜는 윤도훈이 그저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었다.잠시 후, 오거스가 부하들에게서 회신을 받은 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하이오스 그룹의 인체 냉동 기지에 가서 서지현이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확실한 답변을 들은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도훈 씨, 장모님은 이미 무사히 복귀하셨고, 도훈 씨도 아무련 부상을 입지 않으셨으니, 이제 그만 떠나주실 수 있겠습니까?”그 순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윤도훈은 마리의 능력조차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염하인이다. 따라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윤도훈을 죽일 능력은 없는데, 상대는 흡혈귀 일족을 멸망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는 윤도훈이 어서 떠나주길 바랐다. 이 재앙과도 같은 존재를 빨리 보내고 싶어 했다.“떠나라고? 내 장모를 함부로 납치하고, 내 아내를 잡으려 들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