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침묵을 선택했다.그 사람은 다름아닌 나현철, P시에서 반테러 작전을 담당하는 경찰이었다.사고 당시의 CCTV 영상을 이미 보았기에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나현철의 입장상 이진희를 두둔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잠시 후 전우현과 함께 이진희를 몰아세우게 될지도 모른다.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우현은 나씨 가문 주인과 나 부인의 양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수술실 문이 열렸다. 몇 명의 의사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걸어나오자,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일그러졌다. 이윽고 성조현이 급히 앞으로 다가가며 긴장과 기대가 서린 얼굴로 물었다.“다니엘 박사님, 제 딸은 어떻게 됐습니까? 팔은 붙일 수 있는 겁니까?”이진희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의사들을 바라보았다.성시아의 팔은 방금 전에 절단되었고, 바로 이진희가 그 팔을 주워 병원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곳 병원은 P시에서도 최고의 의료 시설을 갖춘 곳이었기에, 혹시나 팔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의사들 중 선두에 선 금발의 외국인 전문의가 있었다. 다니엘 박사는 인체 절단 부위 접합 분야의 권위자로, MZ에서 초빙된 P시 병원의 최고 의료진이었다. 따라서 다니엘이 수술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사람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그러나 다니엘 박사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한 채 고개를 저었다. 다니엘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으며, 극히 난감한 상황에 처한 듯했다.“따님 팔을 붙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빠르게 의수를 장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다니엘의 말에 성조현은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이진희도 눈살을 찌푸리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붙일 수 없다고?’“왜? 왜 붙일 수 없는 겁니까? 당신이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 아닌가요? 제 딸 팔은 방금 전에 절단됐잖습니까? 정말 최선을 다한 겁니까?”성조현은 다니엘 박사의 어깨를 잡고는 다급하게 말했다.“돈이 얼마든 상관없어요. 제발 제 딸의 팔을 붙여주십시오. 얼마든지 드리겠습니
“아빠, 율이 너무 아파요! 율이 죽을 것 같아요...”“율이 나을 수 없는 거예요?”“율이는 이렇게 아픈 거 싫어요. 아빠 율이 때문에 돈 더 쓰지 마요.”“율이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율이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중환자실에는 작은 아이가 누워있었다. 아이의 예쁘장하고 귀여운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코와 입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며 온몸이 출혈점으로 뒤덮여 있었다.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은 아이는 작은 손으로 윤도훈의 손을 꽉 잡았다. 큰 눈망울에는 괴로움과 아빠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다.윤도훈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팠고 왼쪽 신장을 도려냈을 때보다 만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율이 착하지, 아빠가 율이 꼭 낫게 해줄게. 율이 다 나으면 아빠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아빠가 율이 위해서 닭강정 해줄게, 어때?”윤도훈은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아빠 거짓말하지 마세요. 율이 낫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돈 아껴 써요. 율이 죽으면 아빠 계속 살아야 하잖아요. 아빠, 율이한테 더 돈 쓰지 말아요...”아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이 하고 있던 용이 조각된 옥 목걸이를 뺐다.“이 목걸이는 율이가 하고 있어도 소용없어요. 아빠가 하고 있으세요. 목걸이가 아빠를 지켜줄 거예요!”옥으로 만들어진 그 목걸이는 윤도훈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었다. 윤씨 일가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그것은 병마를 물리치고 화를 피하게 해준다고 했다.율이가 앓게 되면서 윤도훈은 부디 목걸이가 아이를 지켜주길 바라며 그것을 아이에게 건넸다.하지만 지금 보니 병마를 물리치고 화를 피하게 한다는 건 그저 염원인 뿐이었다율이의 말을 들은 윤도훈은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는 율이의 체온이 남아있는 목걸이를 손에 꽉 쥔 채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율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그리고 아이가 철이 들수록 윤도훈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무거운 무언가가 심장을 꽉 짓누르
“뭐라고요? 멀쩡한 데다가 이미 정신을 차렸다고요?”도시 중심부 병원 안, 이진희의 기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놀라서 물었다.“환자는 별일 없습니다. 외상을 조금 입은 것 말고는 멀쩡합니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리가요? 그 사람 차에 치였을 때 상태가 엄청 심각해 보였고 피도 많이 났어요.”기사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말씀하셨다시피 그냥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을 거예요.”이진희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의사의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확인한 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제가 가볼게요.”병실 문이 열리고 이진희는 멍한 얼굴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다.윤도훈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게다가 몸 상태도 어쩐지 이상했다.머릿속에 여러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용혼소울링, 용황경, 용안관천술...이게 다 뭘까?게다가 계속 은근히 아팠던 왼쪽 신장에서 한 줄기 열기가 흘러나와 사지로 퍼져나가는 듯해 불편했다.윤도훈이 제대로 살펴보려 할 때 이진희가 들어왔다.고개를 든 윤도훈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아름답다!과거 윤도훈의 혼을 쏙 빼놓았던 주선미도 눈앞의 미인과 비교하면 삽시에 빛이 바랠 것이다.“당신은...”윤도훈은 입을 뻐끔거리며 불확실한 어조로 물었다.이진희는 대답 대신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자해 공갈하려던 사람 맞죠?”잠시 넋을 놓고 있던 윤도훈은 한참 뒤에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상대방이 운전하는 차량을 향해 돌진했으니 자해 공갈단으로 여기는 게 당연했다.“아뇨...”윤도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 그러면 정말 죽고 싶었던 거예요?”이진희가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다.“네...”윤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죽지 못했으니 이제 어쩔 생각이에요? 계속 자살 시도할 생각인가요?”이진희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질
“헉!”조강인은 입을 떡 벌리며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옆에 있던 간호사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이럴 수가? 왜 갑자기 살아난 것일까?갑자기 시체가 벌떡 일어나다니?“아빠... 아빠예요? 아빠, 가지 마요!”바로 그때, 율이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전에 윤도훈이 돈을 모으러 가겠다고 해서 아주 불안했던 것 같다.율이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율이야, 정말 깨어났구나! 아빠 여깄어. 아빠 떠나지 않고 율이랑 함께 있을게!”윤도훈은 눈물을 왈칵 쏟으면서 기쁜 얼굴로 말했다. 열류가 끊임없이 율이의 체내에 주입됐다.율이가 깨어났다!정말 효과가 있었다. 율이가 살아났다.윤도훈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몸이 떨렸다. 한때 지옥이었다가 다시 천국에 온 기분이라 다 큰 성인 남자지만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는 온 세계를 손에 쥔 듯 율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이 모든 것이 환상이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았다.소중한 걸 잃었다가 다시 얻은 그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아빠 손이 엄청 따뜻해요. 기분 좋아요! 아빠,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 율이는 아빠 우는 거 싫어요.”율이의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고 아이는 다른 손을 뻗어 윤도훈의 젖은 뺨을 닦았다.“알겠어. 아빠 안 울게. 아빠 너무 행복해! 하하하, 율이 이제 괜찮아. 우리 율이 다시 살아났어!”작은 손으로 그의 뺨을 어색하게 닦아주는 율이의 손길에 윤도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웃었다.“아빠, 율이 집에 가고 싶어요.”율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아빠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게 싫었다.“그래. 아빠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윤도훈은 잠깐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말하면서 율이의 몸에 달려있던 장치들을 떼어내고 아이를 안고 떠나려 했다.“잠깐만요. 병원비 미납하셨거든요. 아직 떠나시면 안
“진짜 고마워요!”병실 밖에서 윤도훈이 진지한 모습으로 이진희에게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이제 당신은 내 사람이니까요.”이진희가 덤덤히 말했다.“아...”윤도훈의 표정이 이상해졌다.이진희는 여신급이었는데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그를 자기 사람이라고 칭하니 어쩐지 조금...바로 다음 순간, 이진희는 자신이 한 말이 이상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걸 자각했고 이내 화제를 돌렸다.“참, 의술을 공부한 적 있어요? 당신 딸 백혈병이에요?”조금 전 이진희는 문밖에서 똑똑히 들었다. 윤도훈의 딸은 활력징후가 전혀 없었다가 갑자기 살아났고 지금 상태를 보면 꽤 괜찮은 것 같았다.정말 신기한 일이었다.그래서 이진희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조금 알아요.”윤도훈은 잠깐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일단 딸 일부터 처리하고 날 따라와요. 날 좀 도와줘야겠어요!”이진희의 눈빛이 반짝였다. 표정을 보니 무언가를 시도할 생각인 듯했다.뒤이어 윤도훈은 병실로 돌아왔고 한참 동안 율이를 달래서 재운 뒤 조심스럽게 자리를 떴다.이진희의 인맥 덕분에 황 원장은 직접 병원의 다른 전문가를 불러와 율이를 1대1로 치료하게 했다.현재 윤도훈은 용의 기운을 잘 응용하지 못했고 머릿속의 용황경 또한 흐릿했다.율이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병원에 있으면서 계속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더 나았다.30분 후, 윤도훈은 이진희와 함께 개인 병원에 도착했다.공립 병원에 비해 그곳은 의료 조건이 더 좋고 설비도 더 선진적이었다.물론 그곳의 비용은 일반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이었고, 그곳에서 치료받는 사람들도 전부 엄청난 거물이었다.“인 대표님은 내가 지금 쟁취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예요! 그의 아들도 백혈병을 앓고 있어요. 만약 당신이 아이를 치료하거나 아이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면 나한테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알겠어요?”고급 병실 입구에서 이진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최선을 다할게요!”윤도훈은 장담하지는 못하
“헛소리하지 마요! 당신이야말로 목숨이 위험할 것 같네요!”인광준은 완전히 화가 나서 무시무시한 얼굴로 말했다.흰 가운을 입은 유 닥터가 냉소하며 말했다.“저희 병원은 인 대표님 아드님의 병세를 안정시켰어요. 대표님 아들은 만성 과립구성백혈병에 걸렸고 지금은 만성기인데 갑자기 생명이 위험하다니요! 시비 거는 겁니까?”“전 백혈병 때문이라고 한 적 없어요! 이 아이는 독에 중독되었어요!”윤도훈이 설명했다.용의 기운을 두 눈에 주입한 윤도훈은 겸이의 체내에서 검푸른색의 독소가 유동하고 있는 걸 보았다.그것은 이제 곧 심맥에 침입할 것이다.“그게 무슨 말이죠? 저희 병원이 환자에게 독을 썼다는 말입니까?”유 닥터는 더욱더 화가 났다. 그는 윤도훈을 손가락질하며 호된 목소리로 물었다.“제 말은 그 뜻이 아닙니다. 어떤 음식들은 서로 상극이라 그 자체로는 독성이 없을지 몰라도 함께 먹으면 치명적일 수 있어요.”윤도환이 고개를 저었다.“장난해요? 우리 국인 사립병원의 레시피가 이런 저급한 실수를 저지른다는 게 말이 돼요?”유 닥터는 못마땅한 얼굴로 불만스레 인광준을 바라보았다.“인 대표님, 이 사람이 헛소리하는 걸 듣고만 계실 겁니까? 저희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럼 이 사람에게 아드님의 치료를 맡기시죠?”그 말에 인광준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유 선생님, 전 절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말하면서 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이진희 씨, 얼른 이 사람 내보내시죠.”도운시 상류층이라면 이진희가 데릴사위를 찾고 있다는 걸 대부분 알고 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조금 전 기사는 윤도훈이 이진희의 약혼자라고 했다. 그래서 인광준은 곧바로 윤도훈을 형용할 단어 몇 개를 떠올렸다. 쓸모없는 사람, 기생오라비, 수치를 모르고 허영심만 가득한 사람.그러니 그가 윤도훈이 한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아들은 계속해 이곳에서 치료받아야 했기에 절대 이곳 의사에게 밉보여서는 안 됐다.이진희는 자신을 부르
삐! 삐! 삐!10분 뒤, 기계에서 들리는 소리가 다시 안정적으로 변했다.겸이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서 나온 피는 푸른색이었다.닭 피를 마시자 아이의 상태가 기적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인광준은 너무도 기뻐서 눈물을 흘렸고 더할 나위 없이 감격했다.유 닥터는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금 전 그는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만약 인광준의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겼더라면 병원도 망하고 그도 큰일 났을 거다.“유 선생님, 정말 아이가 중독되었나요?”이진희가 물었다.인광준은 분통을 터뜨리며 유 닥터를 노려보았다.“병원 음식에 독이 있다니 말이 돼요?”“아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왜 독을 넣겠어요?”유 닥터는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그는 곁눈질로 옆 탁자 위에 놓인 도시락을 보았다.그 안에는 뱀탕이 들어있었다!“이 뱀탕은 어디서 난 거죠?”유 닥터는 무언가 떠오른 듯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이건 제 아내가 보양식이라면서 아이를 위해 만든 겁니다. 왜 그러시죠?”인광준이 물었다.“알겠어요! 바로 이 뱀탕 때문이에요! 오늘 병원에서 제공한 일반식에는 흰 무가 있었어요. 이 두 음식은 독이 없지만 같이 먹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유 닥터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아까 그 젊은이가 이걸 보아냈을 줄은 몰랐네요. 그 사람 말이 맞았네요. 전부 맞았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광준의 표정이 달라졌다.자신이 가져온 뱀탕 때문에 아들이 죽을 뻔했다.만약 윤도훈이 떠나기 전 당부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어떻게 됐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 순간, 인광준의 마음속에 두려움, 미안함, 감격이 한데 어우러졌다.그는 이희진의 앞에 서서 말했다.“이 대표님, 저 대신 그분께 감사 인사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 대표님 회사와 협력하겠습니다. 저번에 이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조건대로 며칠 뒤 계약서에 사인하시죠. 참, 다음번에 다시 만날 때는 그분과 동행하셨으면 합니다. 제 아들
30분도 되지 않아 윤도훈은 서안구 시장에 도착했다.시장 입구 쪽 거리에 꽈배기를 파는 곳이 있었다.이렇게 먼 곳까지 온 이유는 그 가게가 좋은 기름을 쓰기 때문이었다.“사장님 1kg, 아니 1.5kg 아니, 5kg 주세요. 그리고 순두붓국 두 그릇 포장해주세요!”윤도훈이 사장에게 말했다.사장은 이상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혹시 장사 망치러 온 건 아니죠?”윤도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아뇨, 일단 돈부터 드릴게요.”왼쪽 신장에서 용의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육체를 강화하고 있었고 윤도훈의 몸은 마치 블랙홀처럼 대량의 양분이 필요했다.율이도 배가 고프겠지만 윤도훈이 훨씬 더 배가 고팠다.그는 지금 소 한 마리도 통째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윤도훈이 먼저 돈을 내겠다고 하자 사장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는 앞에 놓인 꽈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것뿐이에요. 여기에 하나 더해도 5kg는 안 될 것 같네요. 일단 무게 재볼 테니까 있는 만큼 가져가요.”“알겠어요!”운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그때, 한 무리 사람들이 그 가게로 왔다.맨 앞에 선 사람은 위엄있는 얼굴의 노인이었는데 그는 인형처럼 생긴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여자아이는 6, 7살 정도 돼 보였다.그들 외에도 잘생긴 청년 한 명과 기세가 남다른 중년 남성이 있었다.“할아버지, 손 선생님이 할아버지는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꽈배기를 먹었다는 걸 아시면 혼나실 거예요!”잘생긴 청년이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언제 꽈배기를 먹으러 왔다고 했어? 난 아침 운동하러 나온 거야. 알겠어?”어르신은 청년을 흘겨보며 말했다.“네! 네! 할아버지는 아침 운동하러 나온 거죠.”할아버지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잘생긴 청년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다들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더니, 한때 위세를 떨쳤던 그의 할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이 가게는 좋은 기름을 써. 순두붓국도 맛있고. 가서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침묵을 선택했다.그 사람은 다름아닌 나현철, P시에서 반테러 작전을 담당하는 경찰이었다.사고 당시의 CCTV 영상을 이미 보았기에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나현철의 입장상 이진희를 두둔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잠시 후 전우현과 함께 이진희를 몰아세우게 될지도 모른다.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우현은 나씨 가문 주인과 나 부인의 양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수술실 문이 열렸다. 몇 명의 의사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걸어나오자,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일그러졌다. 이윽고 성조현이 급히 앞으로 다가가며 긴장과 기대가 서린 얼굴로 물었다.“다니엘 박사님, 제 딸은 어떻게 됐습니까? 팔은 붙일 수 있는 겁니까?”이진희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의사들을 바라보았다.성시아의 팔은 방금 전에 절단되었고, 바로 이진희가 그 팔을 주워 병원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곳 병원은 P시에서도 최고의 의료 시설을 갖춘 곳이었기에, 혹시나 팔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의사들 중 선두에 선 금발의 외국인 전문의가 있었다. 다니엘 박사는 인체 절단 부위 접합 분야의 권위자로, MZ에서 초빙된 P시 병원의 최고 의료진이었다. 따라서 다니엘이 수술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사람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그러나 다니엘 박사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한 채 고개를 저었다. 다니엘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으며, 극히 난감한 상황에 처한 듯했다.“따님 팔을 붙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빠르게 의수를 장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다니엘의 말에 성조현은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고,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이진희도 눈살을 찌푸리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붙일 수 없다고?’“왜? 왜 붙일 수 없는 겁니까? 당신이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 아닌가요? 제 딸 팔은 방금 전에 절단됐잖습니까? 정말 최선을 다한 겁니까?”성조현은 다니엘 박사의 어깨를 잡고는 다급하게 말했다.“돈이 얼마든 상관없어요. 제발 제 딸의 팔을 붙여주십시오. 얼마든지 드리겠습니
전우현의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진희에게로 쏠렸다.성조현, P시의 최고 부자이자 성시아의 아버지는 이진희를 한 번 냉정하게 훑어보더니, 차갑게 코웃음 치고는 아무 말 없이 외면했다.성조현은 자신의 딸이 그린 제약회사의 미모의 대표인 이진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여 방금까지 사람들의 질문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성씨 가문과 관계가 좋다고 자부하는 P시의 상업계 인사들은 이진희에게 연신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이진희와 함께 있었던 게 맞다고요?”“이보세요,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실래요? 시아 아가씨가 그런 사고를 당하게 된 이유가 대체 뭔가요?”“이 일이 이진희 씨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어떻게 이진희 씨는 무사할 수 있었죠?”“그러게요, 시아 아가씨는 팔을 다쳤는데 왜 이진희 씨는 멀쩡한 겁니까!”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이진희를 추궁했다. 마치 성시아가 다쳤는데도 이진희는 무사한 것이 잘못이라는 듯이 이진희를 몰아세웠다. 이렇게 그들의 비난을 들으며, 이진희는 굳은 얼굴로 전우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꽉 깨물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그래요, 당시 저는 시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시아를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시아가 팔을 다친 건 저에게도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타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아무리 강인한 성격을 가진 이진희라도 견디기 힘든 억울함을 느꼈다. 마치 혼자서 모든 이들의 비난을 견디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비록 양유나 등 이진희의 직원들이 이진희를 변호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여론을 잠재울 순 없었다. 이 상황을 보며 전우현은 조소를 지으며 이진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이진희 씨, 시아 아가씨와 협력하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어떻게 이리도 우연히 너와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걸까?’“협력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고를 조작해 시아 아가씨를 해치려 했던 거 아닙니까?”전
전우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젠장, 저 주석훈이라는 자 완전히 미친 모양이네. 이 일에 날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좋겠군! 비록 나씨 가문을 등에 업고 있지만, 성씨 가문도 쉽게 당할 상대가 아니니까.”전우현은 비열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꼬여가니, 살짝 조작만 하면 이진희와 성시아의 협력은 무산될지도 몰라.”전우현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병원, 수술실 앞.P시의 최고 부자이자 성씨 그룹의 수장이며 성시아의 아버지인 성조현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무겁고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주변에는 P시 상업계의 유력 인사들과 성조현의 사업 파트너, 그리고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몰려들었다.“조현 회장님, 시아는 어때요?”“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죠?”“사고 책임자와 범인은 잡았습니까?”“시아는 그때 누구와 함께 있었죠?”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며 관심을 표했다. 그러나 성조현은 이들에게 일일이 답할 기분이 아니었고,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한편, 이진희는 한쪽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서 계속 전화를 걸었다. 곁에는 양유나를 비롯한 그린 제약회사의 직원들이 함께 병원에 도착하여 이진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전화가 몇 번이나 연결이 되지 않던 끝에,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 무슨 일이야? 이거 참, 우린 참 잘 통하네. 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화가 오다니. 하하.]전화기 너머 윤도훈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러자 이진희도 쓴웃음을 지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잘 통하다니, 내가 얼마나 전화를 했는데.’그러나 이상하게도 윤도훈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진희의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도훈 씨, 큰일이 났어요!”이진희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큰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여보, 괜찮아?]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급히 물으며 몹시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윤도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니, 이진희는 내심 안도감과 감동을 느꼈다.“난 괜찮아요!
시멘트 트럭에서 내달려온 괴인 시체가 마침내 성시아의 팔을 움켜잡았다.“진희야, 살려줘!”성시아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비명을 질렀다. 성시아는 이진희와 달리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때, 이진희는 인츰 뒤를 돌아보고는 순간적으로 성시아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이미 늦어버렸다.으드득-아악-끔찍한 뼈가 부러지고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성시아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성시아의 오른팔이 그 괴인 시체에 의해 단번에 뜯겨 나간 것이었다.이 괴인들은 이진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힘과 무서운 생명력으로 인해 무자비한 존재였다. 그렇게 성시아는 뼈를 찌르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그제야 이진희는 상황을 깨달았고, 성시아의 얼굴엔 놀라움과 함께 한동안 멍한 표정이 스쳤다. 성시아의 뜨거운 피가 얼굴에 튀자, 성시아는 정신을 되찾고는 마치 미친 듯이 시멘트 트럭 운전사에게 달려들어 한 방에 그 괴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한편, 민가 안에서, 네 구의 괴인 시체들이 모두 파괴되자 음사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음사의 얼굴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음사, 어떻게 된 겁니까?”주석훈은 얼굴이 잔뜩 굳은 채 물었다.“실패했습니다. 저 이진희가 고수일 줄은 몰랐네요!”음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가 조종하는 괴인 시체들은 철갑보다 단단하고 힘이 장사라, 일반적인 내공 강자를 능가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진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이윽고 음사는 주석훈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왜 미리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주석훈은 두려움에 급히 변명했다. “저도 몰랐습니다.”음사는 주석훈을 무자비하게 밀쳐내며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가문에 돈을 벌어다 주지 않았다면 당장 죽였을 것입니다.”주석훈은 억울함을 삼키며 연신 사과했다. 상대는 은둔 세력인 윤씨 가문에서 보내준 실력자일 뿐만 아니
이진희와 성시아가 죽었다고 생각한 주석훈은 복수의 쾌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음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말도 안 돼. 젠장! 교통사고로도 죽지 않는다면 내 괴인 시체들을 상대해 보라지!”음사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그러자 주석훈도 미간을 찌푸린채 물었다. “음사, 무슨 일입니까? 무슨 변수가 생긴 겁니까?”그러나 음사는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인을 더 빠르게 결하며 얼굴에 섬뜩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한편, 교통사고 현장.모두가 아우디 A8에 타고 있던 이들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변형된 차체 안에서 이진희는 몸을 움츠려 성시아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진희의 연약해 보이는 몸이 시멘트 믹서 트럭의 무시무시한 중량과 관성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진희야, 너. 괜찮아?”성시아는 몸을 웅크려 자신을 보호하는 이진희를 보며 두려움과 감동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만약 이진희가 남자였더라면, P시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아가씨인 성시아는 당장이라도 사랑고백을 했을 것이다.“난 괜찮아!”이진희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는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잠시 후, 아우디 A8의 찌그러진 차체가 쑥 올라갔다. 이진희는 성시아의 손을 잡고 차에서 뛰쳐나왔다. 한편, 이 광경을 본 주변 사람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경악했다.“저 여자들을 좀 봐요, 차에서 나왔어요!”“죽지 않았다고요?”“이게 가능해요?”“일생의 운을 다 쓴 거예요!”“하늘이 미인을 돌봐 주는 건가 봐요.”모두가 이진희와 성시아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성시아는 차에서 나온 후 운전석을 힐끗 보았다. 차에 갇힌 운전기사가 참혹하게 죽어 있는 모습을 본 성시아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스쳐갔다.“시아야, 보지 말고 빨리 이곳을 떠나자! 오늘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이진희가 성시아를 재촉하며 말했다.바로 그때, 연속으로 펑펑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우디
이진희와 성시아가 타고 있던 아우디 A8 뒤로는 아무 차도 없었고, 거대한 시멘트 믹서 트럭이 무섭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 트럭은 A8과 2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왔고, 그 속도로는 2초도 안 되어 충돌할 터였다.그런데도 A8의 앞과 좌우측을 막고 있던 차량들은 여전히 느릿하게 움직이며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이 사고는 누가 봐도 정교하고 치밀했다. 트럭의 무게와 관성으로 인해 A8은 산산조각 날 것이 분명했고, 내부의 승객들 역시 온전치 못할 터였다.그러나 옆에 앉아 있던 성시아와 운전석의 기사 모두 위험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는 앞에 있는 소형 화물차에게 경적을 두 번 울리며 서두르라고 신호를 보냈을 뿐이었다. 그때, 이진희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시멘트 믹서 트럭이 이진희의 눈에 들어오자, 이진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진희의 동공 속에는 트럭의 모습이 점점 크게 다가왔다.그러나 이진희는 개혼체였다. 예전에 흡수한 악령왕의 영혼 에너지 덕분에 신체 능력이 원영 중기 강자 수준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진희가 트럭 아래 깔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을 터였다. 또한 위험을 감지한 이진희는 트럭이 닿기 전에 충분히 탈출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그러나 성시아는 다르다. 그리고 이제 막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친구가 된 성시아를 두고 혼자만 탈출할 수 없었다. 트럭이 이진희의 시야에서 점점 커져오자, 이진희는 고민할 새도 없이 성시아 쪽으로 몸을 날렸다.앞에 있는 기사를 돌볼 겨를은 없었다. 이진희는 속으로 미안하다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쾅-, 쾅-눈 깜짝할 사이에 시멘트 믹서 트럭이 아우디 A8을 덮쳤다. 한순간 트럭은 상대적으로 작고 약한 A8을 완전히 깔아뭉갰다. 그 모습은 마치 성인 남자가 어린아이를 짓누르는 듯했다. 육안으로 보아도 A8의 차체는 즉시 변형되었고, 창문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이때에도 A8의 세 방향을 막고
주석훈은 그 말을 듣고 냉소를 터뜨렸다. “두 년놈이!”전우현은 그 말에 잔인한 기색을 띠며 덧붙였다. “석훈 사장님, 우리 손을 써서 저들의 협력을 방해해 보는 건 어떨까요?”이전에 도운시에서 상업 교류회 중 당했던 굴욕으로 인해 전우현은 윤도훈과 이진희를 증오하고 있었다. 사랑보다는 집착과 소유욕에서 비롯된 원망이었다. 그런 만큼 전우현은 이진희와 그린 제약회사이 잘되는 것을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우현 전무님, 어떤 계획이라도 있습니까?”주석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전우현은 잠시 생각한 후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고, 주석훈은 듣고 나서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전우현의 계획이란 고작 상업적인 방식으로 그린 제약회사과 화시 바이오테크놀로지 간의 협력을 방해하고 타격을 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는 주석훈에게 닥친 상실감을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주석훈은 가슴에 맺힌 분노와 복수를 원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주석훈의 마음은 이미 피와 복수로 가득 차 있었다.“좋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제가 생각해 보겠습니다.”주석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석훈 사장님, 제발 빨리 손을 써 주십시오. 이진희와 성시아의 협력이 완전히 성사되기 전에 말입니다.”전우현은 일어서며 말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전우현은 속으로 이진희와 성시아 간의 협력이 무너지면, 그 틈을 타서 그린 제약회사과 협력할 기회가 있을지 계산하고 있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이진희와의 관계에도 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감을 품은 것이다.전우현이 떠난 후, 주석훈은 주먹을 꽉 쥐며 살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회색 로브를 걸친 마르고 창백한 중년 남자가 주석훈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 남자의 온몸에서 음산하고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마치 무덤에서 나온 듯한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음사, 이 일을 맡아주십시오! 이진희와 성시아, 반드시 내 아들과
P시, 어느 다방에서.전화를 끊은 이진희의 고운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진희의 맞은편에는 P시의 최고 부호의 딸이자 P시 화시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미모의 대표인 성시아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지난번 천운시에서 이미 기본적인 협력 방향에 합의했기에, 이번에 이진희가 P시를 방문한 것은 본격적인 협상과 협력 사항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이진희가 전화를 마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모습은 같은 여자인 성시아조차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진희야, 누구한테 전화 온 거길래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거야? 혹시 남편?”성시아는 농담처럼 물었다. 두 사람은 이미 친구이자 절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맞아, 내 남편 윤도훈이야. 하지만 사실 우리 딸 율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어.”이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성시아의 장난스러운 어조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속으로는 윤도훈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걸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했다.“흥!”성시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진희를 쳐다보았지만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이어서 두 사람은 협력 조건을 조율한 후,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무렵,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한편, P시 외곽, 한 대기업 사옥 내, 이곳은 바로 SJ 의약 상인 협회 본부이다. 사무실 안에서 SJ 의약 상인 협회의 책임자인 주석훈은 한 젊은 남성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석훈은 눈가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했다. 나이답지 않게 세월의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아들이었던 주단성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모양이었다.주석훈은 한때, 은둔 윤씨 가문을 등에 업고 자신의 아들 주단성이 윤도훈과 대적하도록 시켰지만, 그것이 아들의 죽음을 불러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주단성을 죽인 것은 윤도훈이 아니라 오히려 윤민기였다. 그러나 주석훈은 은둔 윤씨 가문에게 따지러 갈 용기가 없어 그 원한을 묻어두었다. 대신, 그 분노와
머지않아 윤도훈은 율이를 데리고 다시 단맥종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번 외출이 끝나면, 얼마 동안이나 이진희와 함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윤도훈은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고자 했다.이윽고 설만추의 집에 도착한 윤도훈은 간단히 임수철의 병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임수철의 병은 악성 질환이 아닌 만성 폐질환이었다. 그래서 윤도훈은 간단한 의술로 임수철의 병을 치료해 주었고, 설만추는 다시 한번 윤도훈의 신묘한 능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만추는 윤도훈이 강력한 실력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의술까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그리고 윤도훈이 다시 도운시로 돌아간다고 하자, 설만추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윤도훈이 곧 단맥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설만추는 하모완처럼 억지로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그날 오후, 중주시의 공항 대기실에서 윤도훈은 전화로 이진희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여보, 나 보고 싶었어?”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이진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응. 보고 싶었어요.]잠시 후, 이진희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도훈 씨, 지금 어디에요? 단맥종에서 나온 거에요?]이진희의 목소리에서는 은근한 설렘과 조급함이 묻어났다.“응, 잠깐 외출했어! 율이 데리고 집에 돌아가려고.”이때, 옆에 있던 율이가 기쁜 목소리로 외치며 전화기를 빼앗았다. “엄마! 엄마, 나 율이야!”그동안 율이는 설만추와 같은 좋은 이모를 만났지만, 율이의 마음속에선 엄마인 이진희가 차지하는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진희와 통화한 후, 율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전화를 윤도훈에게 건넸다.이윽고 이진희가 윤도훈에게 말했다. [도훈 씨, 나 때문에 단맥종을 떠날 필요는 없어요. 난 괜찮아요. 도훈 씨도 말했잖아요, 상고 윤씨 가문이 언제든 도훈 씨를 찾을 수 있다고요. 이렇게 나오는 건 너무 위험해요.”이진희는 그리워함에도 불구하고 윤도훈을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러자 윤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