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자신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신세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디렉터는 말은 끝낸 후, 그대로 출장을 떠나버렸다.신세희는 혼자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다.“신세희!” 디자인 팀 실세 주미영이 악독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주미영씨, 시키실 일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빨리해드릴게요.” 신세희는 냉정하고도 이성적으로 주미영을 쳐다보았다.그녀의 반응이 오히려 주미영을 놀라게 했다. “당신…”신세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미영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시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주미영은 차갑고도 악독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가요! 내가 거래처에서 받아온 샘플이랑 자료들 전부 들고 공사장으로 가요. 그 물건들 전부 기술자분들이 직접 확인하게 하세요! 디렉터님이 출장 가셔서 회사 차는 제공 못 해줘요. 버스를 타든 뭘 타든 알아서 들고 가세요!”“…”건축회사에서 다루는 샘플들은 모두 벽돌이나, 시멘트 그리고 설계도 등 잡다한 것뿐이었다. 신세희는 샘플들을 확인해보았다. 포대자루에 넣어가는 수밖에 없었다.이걸 들고 버스를 타라고?주미영은 음침한 표정으로 신세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말을 끝낸 후, 그녀는 창고에서 포대자루를 챙겨 물건들을 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녀는 포대자루를 밀고 끌며 천천히 디자인 팀을 빠져나갔다.그녀가 사무실에서 사라지자 디자인 팀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잘났다고! 디렉터님이 좀 봐줬다고 뭐 대단한 사람이나 된 줄 아나 봐!”“디렉터님도 없는데 뭐! 그냥 죽여버리자!”“그건 안되지. 쟤 없으면 잡일은 누가 하고?”“정말, 다들 그거 들었어? 쟤 엄청 가난하데. 밤에는 몸도 팔고 다닌다던데?”“진짜?”“부잣집 남자만 골라서 꼬신다는 소문이 있어. 근데 그 남자들은 쟤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한다던데?”“쟤를 마음에 들어 하면 우리 같은 모델들은? 그냥 나가 죽으면
조의찬은 튼실한 팔로 신세희를 단숨에 안아 올리더니 그대로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악한 미소는 여전히 그의 얼굴에 걸려있었다. “내가 크루즈에서 당신이 서시언을 꼬시고 싶어 한다고 한 말 때문에 그래요? 게다가 크루즈에서 구해주지도 않고? 그래서 나 미워하는 거예요?”“아니에요.” 신세희가 대답했다.그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녀가 조의찬이랑 무슨 상관이라고?내가 무슨 자격으로 조의찬을 미워하지? 신세희는 어떤 일이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촌년! 알려줄게요. 그날 당신이 돈에 눈이 멀어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장난감 취급하게 한 짓 말이에요. 그날 당신 구해줄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내가 당신을 살렸다면 지금쯤 남성에 내놓아라 하는 집안 자식들이랑 적이 되었을 거예요. 우리 사촌 형, 부소경 말고는 아무도 당신 못 구해요. 그리고 그건 그냥 게임이었잖아요. 당신이 한다고 민정연이랑 약속도 했고, 당신한테 돈도 주기로 했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이 억울할 거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조의찬이 매정하게 말했다.신세희는 다시 한번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조의찬씨, 나 진짜 당신 미워한 적 없어요.”“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물건을 비틀거리며 옮기면서도, 버스 하나도 제대로 못 올라가면서 나한테 데려다 달라고 전화도 안 하는 건데요?” 조의찬이 그녀에게 물었다.“…”“내가 말 했었잖아요.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연락 달라고.” 조의찬의 말투에는 기세가 넘쳤다.신세희는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녀의 말재간으로는 조의찬을 이기기 힘들었다. 그녀는 조의찬의 말을 조목조목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신세희는 그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차에 타요!” 조의찬이 그녀에게 명령했다.“네.” 신세희는 고분고분하게 그의 차에 올라탔다.차는 목적지로 출발했다. 가는 길 내내 조의찬은 목이 찢어져라 노래를 불러대기만 할 뿐 신세희랑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단지
신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 숙여 묵묵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구마에는 여전히 껍질이 붙어있었다. 그녀는 조금씩 껍질을 뜯으며 고구마를 계속해서 먹었다.“고구마가 그렇게 좋아요?” 조의찬이 그녀에게 물었다.“네. 달아서요.” 신세희가 대답했다.“초콜릿도 아닌 게 달면 뭐 얼마나 달다고! 좀 줘요. 나도 한번 먹어보게! 거짓말이기만 해봐요! 가만 안 둘 거에요!”조의찬은 신세희 손에 들려 있던 도시락과 젓가락을 뺏어갔다. 그는 먼지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젓가락으로 고구마 하나를 집어 입 안으로 넣어버렸다.“…”신세희는 멍하니 조의찬을 쳐다보았다.조의찬은 고구마 또 하나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다 먹은 그는 한참이나 멍해 있었다. “와, 난 공사장 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은 몰랐네. 엄청 맛있네요. 고구마도 엄청 달고.”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과장스러웠고 또 조금은 천박하기도 했다.하지만 신세희는 그런 그의 모습에 웃어버렸다.그녀는 무척 달콤하게 웃었다.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그런 웃음이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이 조의찬을 멍하게 만들었다. 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는 신세희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담담한 그녀의 얼굴을 가장 많이 봐왔었다. 웃는다 해도 그냥 예의를 차리는 가벼운 미소일 뿐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녀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녀의 웃음은 마치…조의찬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시냇물이 흘러가는 장면이 떠올랐다.신세희의 달콤한 웃음은 산속의 맑은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와도 같았다.청순하면서도 어린애의 순수함이 묻어 있었다.그녀가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조의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조의찬보다 네 살이나 어렸다.그날 오후, 신세희는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다. 조의찬은 신세희의 도시락을 먹었다는 이유로 그녀를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가 테이블 가득 음식을 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젓가락질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의찬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부소경은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하숙민이 웃으며 말했다. “쟤가 원래 말이 없어. 세희야, 너네 결혼 엄청 급하게 했잖아. 그래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할 거야. 하지만 서서히 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알겠어요, 어머님. 그럼 저 소경씨랑 쇼핑하러 갈게요.” 신세희가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신세희는 바로 그를 따라 나왔다. 신세희는 바로 부소경을 따라 나왔다. 막 문을 나서려는 그때 등 뒤에서 하숙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경아, 밖에 있는 거 다 알아. 잠깐 들어올래? 엄마가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부소경은 진짜로 문밖에 서 있었다. 하숙민이 자신을 부르자 그가 엄선우에게 말했다. "먼저 쟤 데리고 차에 가 있어. 금방 갈게." "알겠습니다. 도련님." 부소경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하숙민은 부소경을 나무라며 손으로 그를 내려쳤다. "엄마 다 알고 있었어. 그동안 너 계속 세희한테 차갑게 굴었던 거. 너네 사이에 아무 감정 없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엄마가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던 거야." "세희가 착한 며느리라 다행이야. 네가 차갑게 군다고 나한테 고자질 한 번 안했어. 몸에 걸친 싸구려 옷들 보면서 내가 얼마나 답답했다고. 안다고 티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근데 오늘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세희한테 이쁜 옷 많이 사줘야 해. 세희 부씨 집안 사모님이잖아!" "알겠어요." 부소경이 대답했다. "빨리 가, 세희 기다리겠다." "네." 부소경은 하숙민의 병실을 빠져나왔다. 한편, 엄선우와 신세희는 차 안에서 부소경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부소경의 모습을 보자 신세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엄비서님…" "지금… 저 부르신 거예요?" 신세희는 엄선우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부르자 엄선우는 조금 기쁘기도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
”…”신세희는 의식적으로 부소경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담담했다.한편, 임지강은 여전히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여기로 와! 안 오면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네.” 신세희는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엄선우와 부소경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저기…” 신세희는 손톱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오늘 오후에 공사장에 샘플만 가져다주고 바로 아줌마한테 갔거든요. 그래서 지금… 디렉터님이 회사에 오라고… 겨우 찾은 일자리라…”“옷은 내일 사자.” 부소경이 말했다.“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신세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엄선우가 데려다줄 거야.”“아… 아니요, 됐어요.” 신세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우리 회사랑 가까워요.”말을 끝낸 후 그녀는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병원을 벗어나 버스에 탄 그녀는 다시 임지강에 전화를 걸었다. “난 당신한테 빚진 거 없어요!”“네가 내 딸 남편을 뺏어갔잖아!” 임지강이 악독하게 말했다.신세희는 말투는 무척이나 평온했다. “그 일은 저랑 상관없는 일 같은데요. 아저씨 사람 잘못 찾아오셨어요. 당신 딸 보고 부소경한테 찾아가라고 해야죠. 아 맞다, 당신 딸 임서아 부소경 자주 찾아오지 않던가요? 난 두 사람 사이 방해한 적 한 번도 없는데.”“너…”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는지 임지강이 이를 빠득빠득 갈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수정 커피로 와! 안 오면 후회하게 될 거야!”“그렇게 하죠.” 신세희는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반 시간 뒤, 그녀는 수정 커피 문 앞에 도착했다. 창문 너머로 자리에 앉아있는 임지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지강은 악독한 눈빛으로 신세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세희는 그에게 다가가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용건만 말하세요.” 그녀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3일 줄게. 남성에서 사라져!” 임지강은 아무 맥락도 없는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왜요!” 신세희가 대답했다.“왜냐고?
"......"부소경은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신세희도 하루 세끼를 밖에서 해결하기에 전 씨 아주머니는 자주 오지 않았다.하여 그녀는 전 씨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자신이 식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부드럽게 미소 지은 전 씨 아주머니는 뚝배기를 주방에 가져가며 말했다."이건 제가 시골에서 구해온 토종닭인데 온 오후 푹 고았어요. 데우고 나면 한번 드셔보세요. 엄청 맛있을 거예요."신세희도 미소로 화답했다."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그녀는 오랫동안 집밥을 먹지 못했다. 푹 고아낸 토종닭이라니, 배 속 아이에게 좋을 듯싶었다. 그녀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였다. 임지강과 싸울 땐 배고픈 줄도 몰랐었는데 말이다.저녁을 푸짐하고 맛있게 먹으니 속상했던 마음도 가셔지는 것만 같았다. 오늘 식사 때문인지, 아니면 낮에 부소경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유해져서인지,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신세희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 수 있었다.다음 날 아침, 신세희는 여전히 방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다. 부소경과 마주치기 두려웠던 것이다. 서로 차갑게 대할 때는 그래도 나름 괜찮았었다. 그가 늘 그녀를 무시했으니 그녀도 매일 사근사근 웃으며 그를 대할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부소경이 태도를 바꾼 지금, 그녀는 부소경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망설여졌다.그러나 아무리 어색하더라도 일어나야 했다. 씻고 병원에 들렀다가 회사도 가야 했으니까.나와 보니 거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주위를 힐끔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나간 듯싶었다.F그룹 최고 권력자였지만 절대 한가하진 않았다.이날 아침, 신세희는 하던 대로 병원에 가서 하숙민을 살핀 뒤 회사로 갔다. 디자인 디렉터도 자리에 없었고, 어제 그녀가 모든 팀원 앞에서 신세희에게 했던 말들 때문에 디자인 팀에서의 생활은 괴롭기만 했다. 잡일을 도맡아 하는 것 외에도 공사장에 다녀와야 하는 업무가 추가되었다.동료들은 오늘도 신세희를 공사장으로 보냈지만, 그녀는 조의찬에게 전화를
그러나 부소경은 달랐다. 신세희는 매우 차분한 상태였다. 그러나 부소경은 그녀보다 더 차분했다.부소경은 마치 신세희가 공기라도 되는 것처럼 전혀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신세희는 저도 모르게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하필 이때 부소경이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을 걸었다."담배 피워도 돼?"깜짝 놀라 옷자락을 놓친 신세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창문을 연 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매끄러운 동작으로 담배를 입에 문 그는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였다. 신세희는 그가 담배 연기를 내뱉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놀란 신세희가 다시 곁눈질해보니 그는 연기를 내뿜지 않는 게 아니었다. 연기가 서서히 호흡처럼 창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그는 차분하고 느긋했다.신세희는 이렇듯 고고하게 담배 연기를 내뱉는 사람은 본 적 없었다. 왠지 성숙한 남성미가 느껴졌다.신세희는 조금 멍하니 쳐다보다가 얼굴을 붉혔다.담배 냄새가 그녀의 콧속으로 스며들자 신세희는 저도 모르게 가벼운 기침을 했다. 부소경은 즉시 태반이나 남은 담배를 끄고 창문을 전부 열었다.엄선우가 자꾸 백미러를 흘끔거렸다. 부소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래?""도련님, 누군가 미행하는 것 같습니다."특수 기관 출신인 엄선우는 일당백의 역할을 할 만큼 뛰어난 자였다. 그는 겉으로는 부소경의 비서이자 기사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부소경의 경호원이었다."인적이 드문 간선도로 가."부소경이 차분하게 결정했다."알겠습니다!"엄선우가 재빨리 핸들을 돌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차체는 시내를 벗어나 외진 도로로 향했다.부소경은 옆에 있는 신세희를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눈빛은 호수처럼 잔잔했다."무서워?"그가 물었다."아니요."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해명했다."난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이에요. 감옥도 잔인한 곳이라... 본 게 많아요."부소경은 즉시 운전석의 엄선우에게 말했다."누가 보냈는지 알아봐. 필요하면 바로
부소경의 품에 답삭 안긴 신세희는 반쯤 내지르려던 비명을 뚝 멈췄다. 부소경은 한쪽 팔로 그녀를 꽉 안으며 그녀의 시야를 자신의 품으로 가렸다. 신세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에 없던 안정감이 느껴졌다.이윽고 그녀의 청각조차도 부소경의 큰 손에 의해 차단되었다. 신세희는 먹먹하지만 꼭 마치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서너 번쯤 들은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부소경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얼마 후 부소경은 그녀의 귀를 막았던 손을 떼며 엄선우에게 말했다."출발해."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했다.신세희는 서서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 바로 앉았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는 부소경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백미러를 흘끔 쳐다보니 방금 차가 멈췄던 곳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방금 들었던 먹먹하고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는 사실 총성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부소경에게 향했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같았다.차 안에서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머릿속에 방금 그 사람을 처리했던 때가 떠올랐다. 한쪽 팔로 그녀를 감싸고 눈과 귀를 막아주던 부소경, 그는 그녀가 두려워할까 봐 이런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졌다.부소경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지만 그녀는 통 입맛이 없었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놀라지 않은 것 아니었다. 그도 더는 묻지 않은 채 먹는 둥 마는 둥 듯하더니 곧 그녀를 데리고 쇼핑했다.대학 다니던 시절에 이런 백화점에 와본 경험은 있었지만, 물건을 산 적은 없었다. 이런 옷들을 살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저 둘러보다 보면 눈이 즐거웠을 뿐이었다.부소경이 그녀를 데려간 곳은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의 의류 매장이었다. 안목이 뛰어났기에 고르는 스타일은 모두 신세희에게 잘 어울렸다.매장 직원도 당연히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부소경에게 다가가 아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