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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작가: 라이스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11 18:43:25
이런 생각을 하니 배수혁의 가식적인 얼굴에 뺨을 세게 때려주고 싶었다.

“당장 우리 딸 데리고 병원 옮겨서 다시 진단받을 거야! 절대 이 동의서에 사인 안 해!”

분노에 찬 내 얼굴을 본 배수혁은 얼굴을 찡그렸다.

“강연, 억지 그만 부려. 어젯밤에 당신이 가고 난 밤새 잠도 안 자고 여기 있었어. 응급조치하는 과정도 다 지켜봤다고. 당신이 괴로운 건 알겠지만 이게 현실이야. 일단 감정부터 추슬러, 응?”

나는 비웃었다.

“아이의 생사가 불투명한데 엄마한테 감정을 추스르라고? 어젯밤에 내가 왜 돌아갔는데, 당신 어머니 심장이 불편하다고 해서 챙겨드린 거잖아.”

배수혁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

“자꾸 엄마랑 내 탓 하지 마. 소원이 운명이 그런 거야. 동의서에 사인하는 것도 아까 동의했잖아. 갑자기 이러는 건 감정적으로 구는 게 아니고 뭐야?”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병원을 옮겨서 재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

내 눈앞의 배수혁은 더 이상 좁은 월세방에서 딸과 함께 맨발로 바닥에 물을 튀기던 남자가 아니었다.

나는 사무실 문을 힘껏 밀고 중환자실로 향하며 휴대폰의 익숙한 번호들을 눌렀다.

배수혁과 결혼한 지 7년, 가족들과 단절된 지도 7년이다.

부모님과 오빠가 결혼을 말리는 바람에 잘나가던 가업도 포기하고 배수혁과 함께 다른 도시로 옮겨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이제 나를 도와줄 수 사람은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 가족뿐이었다.

전화를 걸어 미처 앞뒤 설명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목이 메어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고 이미 흐느껴 울고 있었다.

“엄마, 아빠, 제 딸 좀 살려주세요. 지금 당장 전국에서 최고의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엄마와 아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재빨리 전국 최고의 의료진에게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끊고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이송팀이 도착하기까지 아직 2시간이 남아있었고 이때 배수혁이 서둘러 다가왔다.

“강연, 여긴 왜 왔어! 억지 그만 부리고 나랑 같이 가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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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지 않은 도시에서 다음날 스캔들은 일파만파 퍼졌다.장 원장은 신고도, 책임을 묻지도 못하고 조용히 넘어져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며 자기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고 간호사들은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누가 넘어졌는데 얼굴에 손자국이 나?”차마 얼굴을 들고 출근하지 못했던 유진은 배수혁의 지푸라기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나와 장 원장 사이는 장 원장이 강요한 거야. 내 상사니까 어쩔 수가 없었어...”나는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부족하다, 배수혁 저 쓰레기 같은 자식에겐 마지막 일격이 필요했다.다행히 난 진작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한 시간 후, 나는 배수혁의 차 옆에서 배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수혁의 얼굴에 있던 분노는 많이 가라앉았고 그의 뒤를 바짝 쫓던 유진이 나를 보며 수치심과 분노에 사로잡혔다.“목표도 달성했는데 뭘 더 원해?”나는 무심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원하는 게 뭐냐고? 배수혁, 아직 이혼 합의서에 사인 안 했잖아.”배수혁은 내 발 앞에 합의서를 던졌다.“강연, 난 너와 끝났어. 이제부터 난 너한테 빚진 것 없어.”나는 비웃었다.“나한테는 빚진 게 없지, 내 딸한테 빚진 거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윤아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고 안부 한 마디 묻지 않았어. 당신 마음속에 아끼는 딸은 윤아지? 나와 소원이는 아무것도 아니고!”배수혁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그게 뭐?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 그때 유진이가 출국하지 않았다면 내가 왜 너랑 만나? 너도 집에 돈 많으면서 그동안 나한테 숨겼잖아? 내가 밖에서 개고생하는 걸 지켜보면서 양심이 아프지도 않았니?”나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배수혁, 네가 지금 뱉는 말 잘 되새겨봐. 당신이 그깟 자존심 굽히지 않겠다고 나 데리고 고생하겠다고 우긴 거잖아... 자존심 때문에 난 내 가족과 7년 동안 연락도 안 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내 잘못이라고? 날 미워해도 상관없지만 소원이는? 당신 친딸인데 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야? 참

  • 내 딸을 돌려줘   제8화

    “미인계를 쓰는 건 맞지만 내가 아니야.”말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701호 방 앞으로 도착했고 내가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이 카드를 꺼내더니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꺄악, 누구야!”순식간에 방 안은 조용해졌고 한참 후 유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배수혁은 당황했다.“유진이? 네가 왜 여기 있어?”배수혁이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유진이 사색이 된 채 타월로 자기 몸을 가리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뭐 하는 거야, 나 목욕하는 중이야.”배수혁은 방을 힐끗 쳐다보았다.“여기서 방은 왜 잡았어?”나는 나른하게 문틀에 기대어 물었다.“배수혁, 이 장면에 설명이 더 필요해?”유진은 나를 매서운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문 앞을 막고 곧바로 문을 닫으려 했다.“오늘 호텔에서 회의가 있어서 회의 마치고 여기서 묵으려고... 나 일단 옷부터 입을게.”나는 재빨리 그녀의 손을 막고 휴대폰을 꺼냈다.“됐어, 말로만 해선 소용이 없지. 직접 봐.”휴대폰에는 지난번 병원에서 받았던 카메라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지만 이번 장소는 장 원장의 사무실이었다.“자기 참 대단해. 이번 교수 자리도 당신에게 줘야겠어.”유진은 옷을 벗은 채 장 원장의 품에 기대어 가슴에 동그라미를 그렸다.“미워, 당신도 대단하잖아. 노련하고 힘도 세다니까.”장 원장은 유진의 얼굴을 음탕하게 만졌다.“너도 많이 희생했지. 배수혁 곁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늙은 내가 눈에 들어와?”유진은 삐죽거리며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건드렸다.“무슨 소리야, 당신이 이혼하지도 않으니까 나도 밖에서 할 말은 있어야지. 그리고 배수혁은 빈털터리라 그 남자랑 만나는 건 정말 힘들어. 방도 비싼 데는 못 잡는다니까.”뒤에 남은 대화 내용은 차마 들어줄 수가 없었고 나는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는 배수혁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껐다.“배수혁, 당신이 짐승만도 못한데 당신보다 더 독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어때, 재밌어? 남이 버린 쓰레기 주워 먹는 게 즐거워?”배수혁은 창백해진 유진을 믿

  • 내 딸을 돌려줘   제7화

    소원과 비슷한 또래의 윤아라는 아이는 배수혁의 차 뒷좌석에 앉아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었다.조수석에 있던 유진이 화난 척 배수혁의 가슴을 툭 쳤고 윤아가 깔깔 웃으며 손에 있던 아이스크림이 좌석에 흘러내렸다.배수혁은 화를 내지 않았고 세 사람은 더 크게 웃었다.평소 깔끔한 배수혁은 나와 딸이 차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했고 한번은 차가 막혀서 딸이 오랫동안 굶었기에 내가 참지 못하고 초코바 하나를 건네자 녹은 부스러기 몇 개가 떨어졌고 배수혁은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며 나와 딸을 차에서 내쫓았다.나는 소원이를 품에 안은 채 달리는 차들 속에서 어쩌지 못한 채 배수혁의 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소원이는 펑펑 울며 애원했다.“아빠! 저랑 엄마 두고 가지 마세요! 다 내 잘못이에요! 말 잘 들을게요, 다시는 아빠 차를 더럽히지 않을게요!”이 일을 떠올리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내가 멍청한 감정에 사로잡혀 배수혁에게 내 딸을 해칠 기회를 준 거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더없이 단호했다.“걱정하지 마, 오빠. 아직 안 끝났어. 내가 죗값 다 치르게 할 거야.”사흘 밤낮을 중환자실 문밖을 지키고 서 있던 나는 마침내 소원의 증상이 완화되어 일반 병동으로 옮겨 지켜보겠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그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은 나는 딸의 작은 얼굴에 생기가 도는 모습을 보며 이마에 살며시 입맞춤했다.“오빠, 소원이 며칠만 돌봐줘. 난 돌아가서 짐 좀 챙겨올게.”오빠는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이렇게 물었다.“같이 갈 사람 붙여줄까?”나는 고개를 저었다.“걱정하지 마, 오빠. 난 마음 약해지지 않아. 나 도와서 준비만 좀 해줘.”몇 시간 후 집으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식탁 위에 이혼 서류를 올려놓는 것이었다.배수혁과 시어머니 둘 다 없자 나는 캐리어를 들고 소원이와 나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그동안 배수혁을 따라 우리 모녀는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옷 같은 건

  • 내 딸을 돌려줘   제6화

    나는 당당하게 외쳤다.“배수혁, 네가 이렇게까지 몰아붙이겠다면 나도 원하는 대로 해줄게.”말이 끝나자 병원 밖 조용하던 대형 스크린에서 갑자기 유진의 애교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정말? 당신 참 독해, 난 조금 무서운데.”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고 대형 스크린에서 재생되고 있던 영상은 사실 유진의 개인 사무실에서 촬영된 감시카메라 영상이었다.유진이 배수혁의 목을 팔로 감싼 채 그의 다리 위로 올라타 말하며 관능적으로 허리를 돌리는 모습이었다.“알았어, 그만해. 불 지르고 책임질 거야?”배수혁은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보았다.“내가 소원이한테 잔인하지 않으면 어떻게 나와 네 딸 윤아를 살릴 수 있겠어? 중환자실은 하루에도 몇천만원 넘는 비용이 드는데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애와 망할 여자에게 전 재산 쏟아부을 바에야 우리 윤아에게 주지. 이렇게 하는 걸로 해. 윤아 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흔치 않은 기회니까 서둘러!”유진의 눈은 흥분된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잘됐어, 윤아가 살 수 있겠어. 좋아, 뇌사 판정서만 있으면 돼. 보고서는 내가 나중에 만들 테니까 당신은 가서 강연 씨를 설득해서 장기기증 동의서에 먼저 서명하게 해. 동의서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니까 꼭 성공해야 해!”배수혁은 유진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그 여자는 멍청해서 내가 말하는 대로만 해. 걱정하지 마!”영상이 여기까지 재생될 무렵 공간은 이미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유진의 얼굴이 붉어지고 온몸이 떨렸다.배수혁은 더욱 창백해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기자들이 나를 향했던 카메라를 곧바로 유진과 그의 일행 쪽으로 돌렸다.“장 원장님, 이 영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진 선생님, 영상 보면 환자 가족과 공모해 진단서를 위조한 것으로 나오는데 할 말 있으세요?”장 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자세히 조사하기 전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경비원에게 사람

  • 내 딸을 돌려줘   제5화

    유진은 그 말에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이해가 안 돼요, 가족들도 이미 동의한 일이고 우리 팀도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내면서 초대한 언론사 기자들도 애타게 기다렸을 텐데... 이제 가족들이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아가야 하나요?”주변의 후배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반격에 나섰다.“그래요, 우리 모두 유진 선생님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봤잖아요!”“열심히 일한 게 무슨 소용이에요. 갑질하는 환자 가족이 다 물거품으로 만들었는데!”“이분은 분명히 사인하는 것에 동의하셨어요. 장기가 필요한 가족들이 다들 기다리면서 이 소식에 얼마나 기뻐했는데 이제 와서 희망을 줬다가 뺏어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요.”배수혁도 유진의 곁에서 단호하게 그녀를 옹호했다.“같은 가족으로서 저는 유진 선생님의 진단을 의심하지 않아요. 강연, 그 정도면 충분해. 이젠 사람까지 불러서 몰아붙이는 건 너무했어!”혀끝이 쓰라렸고, 주변의 의문과 경멸, 원망의 눈빛이 전부 나를 짓누르며 숨도 못 쉬게 했다.오빠는 떨고 있는 내 손을 붙잡고 단호하게 물었다.“장 원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는 보고서를 기다리죠.”후배 간호사가 유진의 사무실로 갔고 소란스러운 가운데 사무실에서 기다리던 기자 몇 명이 모여 조용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그런데 그 순간 장 원장이 태연하게 유진에게 다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조용히 오빠를 툭 건드렸다.오빠도 그 광경을 눈치채고 잠시 생각하더니 뒤쪽 이송팀에 있던 젊은 청년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젊은 간호사가 뇌사 보고서를 가져왔고 장 원장은 보고서를 훑어본 뒤 오빠와 나에게 당당하게 건넸다.“보고서 나왔네요. 수치도 정상이고 진단도 정확합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송팀은 결론을 내렸고 오빠는 충격을 받은 표정에 나는 그만 소리를 질렀다.“말도 안 돼, 진단이 맞을 리가 없어!”배수혁은 긴장했던 몸을 풀고 냉소

  • 내 딸을 돌려줘   제4화

    배수혁이 서둘러 거들었다.“가족으로서 동의합니다.”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내가 절박한 심정으로 몸부림치며 소리쳤지만 주변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멈춰, 당장 그 여자한테서 손 떼!”갑자기 분노에 찬 외침이 주변 사람들을 압도했고 오빠인 강태호가 드디어 의료팀을 데리고 도착했다.경호원과 간호사가 한눈판 사이 나는 그들을 밀어내고 서둘러 오빠 곁으로 달려갔다.“오빠, 얼른 소원이 살려줘!”오빠는 나를 위로하며 토닥이더니 화가 나서 배수혁에게 쏘아붙였다.“남 도와주려고 자기 아내랑 아이를 해쳐? 소원이 뇌사 판정서 어딨어? 어서 꺼내!”나는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고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오빠가 일찍 도착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진정제를 맞았을 것이고 아마도 동의서에 서명하고 소원이를 완전히 잃었을 것이다.정신을 차린 유진이 오만한 얼굴로 오빠를 바라보았다.“당신 누구예요? 여긴 병원 중환자실이에요! 경호원 어딨어요? 환자의 직계 가족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다 내보내요.”오빠는 태연하게 비웃었다.“나는 소원이 삼촌이니까 직계가족이죠! 당신들 진단에 의문이 생겼으니 당장 보고서 가져와요.”배수혁과 유진은 잠시 당황했다.“소원이한테 삼촌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강연이가 가족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시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오빠의 손을 잡았다.“오빠, 미안해... 그때는 내가 어리석어서 짐승만도 못한 놈한테 속았어... 이제야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어.”오빠는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알았어, 일단 병원 옮기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이혼이고 뭐고 남은 건 돌아가서 내가 해결해.”배수혁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병원 옮기는 건 소원이 친부모가 결정할 수 있어요. 삼촌이 아니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다고요.”시어머니가 거들었다.“맞아, 이건 우리 배씨 가문 일이지 그쪽 집안과 상관없어”오빠가 굳어진 얼굴로 무슨 말을

  • 내 딸을 돌려줘   제3화

    우리 둘이 대치하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배수혁을 끌어당겼다.“아들, 아들 괜찮아?”시어머니였다. 이미 빨갛게 부어오른 배수혁의 얼굴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화가 잔뜩 난 채 나를 꾸짖었다.“강연! 네가 감히 수혁이를 때려? 이런 망할 것! 소원이 지금 상태로는 답이 없어. 이건 수혁이 잘못도 아닌데 왜 애한테 화풀이야! 그리고 동의서에 서명하는 게 뭐 어때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는 없잖아! 어차피 화장할 건데 뭐 어때, 집에 고이 모셔놓고 지키기라도 해야 해?”시어머니는 말하면 할수록 흥분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고 악에 받친 나는 붉어진 눈으로 손을 들어 배수혁의 왼쪽 뺨을 한 대 더 때렸다.두 대를 연달아 맞자 배수혁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예상치 못한 시어머니도 소리를 지르더니 아들의 얼굴을 만지며 안타까워했다.나는 그를 때려서 이미 빨개진 손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아프세요? 아프셔야죠. 원래 자기 자식이 아프면 엄마 마음도 아프거든요. 당장 여기서 꺼져요! 한 번만 더 말하게 하면 이번엔 보온병으로 때릴 거예요.”나를 노려보는 시어머니는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망할 것! 아주 남편 잡아먹을 년!”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배수혁은 화를 참으며 나에게 물었다.“강연, 때리고 욕했으니까 이제 충분히 화 풀었지? 가서 사인해. 더 얘기할 것 없어. 아까 진료실에서 이미 동의했으니까 말 바꾸지 마!”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내 손에 있는 휴대폰을 빼앗고 내 팔을 강제로 잡은 채 시어머니와 힘을 합쳐 나를 끌고 갔다.나는 이를 악물고 몸부림치다가 두 사람을 뿌리칠 수 없다는 생각에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의사 선생님! 간호사! 경비 어딨어요? 누가 나를 납치하려고 해요!”간호사 몇 명이 달려왔지만 익숙한 배수혁의 모습에 그들은 당황한 듯 다시 발걸음을 멈췄다.배수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아내가 좀 감정적이라서요, 괜찮아요.”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쳤다.“이 사람들이 나한테

  • 내 딸을 돌려줘   제2화

    이런 생각을 하니 배수혁의 가식적인 얼굴에 뺨을 세게 때려주고 싶었다.“당장 우리 딸 데리고 병원 옮겨서 다시 진단받을 거야! 절대 이 동의서에 사인 안 해!”분노에 찬 내 얼굴을 본 배수혁은 얼굴을 찡그렸다.“강연, 억지 그만 부려. 어젯밤에 당신이 가고 난 밤새 잠도 안 자고 여기 있었어. 응급조치하는 과정도 다 지켜봤다고. 당신이 괴로운 건 알겠지만 이게 현실이야. 일단 감정부터 추슬러, 응?”나는 비웃었다.“아이의 생사가 불투명한데 엄마한테 감정을 추스르라고? 어젯밤에 내가 왜 돌아갔는데, 당신 어머니 심장이 불편하다고 해서 챙겨드린 거잖아.”배수혁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자꾸 엄마랑 내 탓 하지 마. 소원이 운명이 그런 거야. 동의서에 사인하는 것도 아까 동의했잖아. 갑자기 이러는 건 감정적으로 구는 게 아니고 뭐야?”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빨리 병원을 옮겨서 재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내 눈앞의 배수혁은 더 이상 좁은 월세방에서 딸과 함께 맨발로 바닥에 물을 튀기던 남자가 아니었다.나는 사무실 문을 힘껏 밀고 중환자실로 향하며 휴대폰의 익숙한 번호들을 눌렀다.배수혁과 결혼한 지 7년, 가족들과 단절된 지도 7년이다.부모님과 오빠가 결혼을 말리는 바람에 잘나가던 가업도 포기하고 배수혁과 함께 다른 도시로 옮겨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이제 나를 도와줄 수 사람은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 가족뿐이었다.전화를 걸어 미처 앞뒤 설명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목이 메어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고 이미 흐느껴 울고 있었다.“엄마, 아빠, 제 딸 좀 살려주세요. 지금 당장 전국에서 최고의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엄마와 아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재빨리 전국 최고의 의료진에게 연락을 취했다.전화를 끊고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이송팀이 도착하기까지 아직 2시간이 남아있었고 이때 배수혁이 서둘러 다가왔다.“강연, 여긴 왜 왔어! 억지 그만 부리고 나랑 같이 가서 동

  • 내 딸을 돌려줘   제1화

    딸의 연약한 몸에 온갖 기기와 튜브가 삽입되고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불규칙하게 드러나 있었다.나는 눈을 비볐다. 익숙한 상황으로 돌아와 전생에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장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떨리는 마음으로 딸의 따뜻한 손을 만지니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가슴이 저릿했다.“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엄마가 미안해...”남편 배수혁이 옆에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애 방해하지 말고 나가자, 시간 됐어.”간호사의 재촉에 나는 다 풀린 다리를 움직여 배수혁과 함께 중환자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비좁은 사무실에 앉자 그는 내 손에 펜을 쥐여주었다.“뇌사 상태인 딸이 살아 있는 매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다 봤잖아. 이 장기기증 동의서에 서명하고 아이를 자유롭게 해주자.”그 태연한 목소리를 들으니 순식간에 증오가 치밀어 올랐고 눈물마저 바싹 말랐다.나는 펜을 탁자 위에 팽개치며 내 어깨에 얹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난 사인 안 해! 내 딸은 절대 뇌사 상태가 아니야!”배수혁은 당황했다.“방금 얘기 다 끝났잖아, 의사 진단도 다 봤고. 여긴 이 지역에서 제일 좋은 병원인데 뭘 의심하는 거야?”의심?순진한 척, 놀란 척하는 배수혁의 눈을 마주하며 난 그 속에 숨은 잔인함을 꿰뚫어 보았다.전생에 지나치게 그를 믿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딸 소원이는 폐렴으로 이곳 최고의 병원에 입원했지만 배수혁이 데려온 주치의 유진이 그와 오랫동안 인연이 끊겼던 첫사랑일 줄은 몰랐다.폐렴은 그리 위험한 병은 아니지만 딸은 내가 하룻밤 자리를 비운 사이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응급실에 실려 갔고 내가 급히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딸이 뇌사 상태라는 유진의 말만 들었다.거대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배수혁은 나를 이끌고 장기기증 동의서에 서명하게 했다.“소원이는 어렸을 때부터 착했고 이제 소원이의 생명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으니까 하늘에 있는 소원이도 분명 동의할 거야.”나는 이미 한참을 울고 난 뒤였고 배수혁은 강요 반, 권유 반으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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