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아, 형인이는 출근도 해야 하고 업무도 바쁜 데다가 너와 우빈이 먹여 살려야 하잖아. 넌 형인이 와이프니 형인이 잘 보살펴야지. 어떻게 집안일을 시킬 수 있어? 형인이가 더치페이를 원하는 것도 네가 돈을 함부로 쓰는 거 방지하기 위한 거잖아. 부부 사이에 그렇게 다 따지면 어떻게 살겠어? 빨리 설거지 해놔. 형인이 화나게 하지 말고. 밖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네가 이해해.”주서인은 김은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그러니까, 출근도 안 하고 집에서 애만 보면서 형인이 월급 받아쓰는 주제에 형인이 일까지 시켜?”하예진은 주방에서 나와 장난감 바이크 앞에서 주우빈을 안아 올리며 무덤덤하게 말했다.“출근도 안 해 수입도 없이 전업주부로 우빈이를 키우는데, 분명 형인 씨 월급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거 다 알면서 더치페이하려는 건 무슨 의도죠? 그래요. 더치페이하죠. 돈이든 집안일이든 다 더치페이예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쉽다고 하셨죠? 나 아무 일도 안 한다고 하셨죠? 그럼 안 하죠, 뭐. 이 집안이 스스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 때진 옷도, 더러운 양말도 스스로 깨끗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형인씨도 알아야죠.”하예진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동생 부부가 가져온 선물을 들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쾅.’하고 문을 닫아버렸다.“저 버르장머리 없는 것!”주형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과일칼을 테이블에 던져버리고 소매를 걷으며 방으로 들어가 따지려 들었다.김은희는 또다시 주형인을 가로막으며 말했다.“너 뭐 하려고? 우빈이도 안에 있는데 우빈이 놀라게 하지 마. 따지려거든 우빈이 잠들면 다시 해. 손대려거든 절대 보이는 곳은 안 돼. 하예정이 알면 와서 따질 게 뻔하니까. 하예정 남편 만만한 사람 아니야.”주형인은 전태윤이 큰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느 회사인지는 자매가 말한 적이 없었다. 주형인도 처음에는 전태윤과 가깝게 지내고 싶었지만 나중에는 전태윤이 계속 쌀쌀맞게 대하니 한 회사의 사장으로서
주서인은 계속 말했다.“학교와 그리 멀지도 않으니 학군지에 속하기도 하고. 동서가 애들 돌보면서 빨래와 밥만 해주면 돼. 생활비는...”“누나, 조카 돌보는데 생활비는 무슨. 전학하는데 필요한 절차 다 밟아놓을 테니 그렇게 해. 픽업은 예진이가 하면 돼.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뭐.”주서인은 주형인이 통쾌하게 대답하자 기분이 좋아졌다.이때 김은희가 말했다.“형인아, 그래도 예진이와 상의하는 게 좋겠어. 어쨌든 가족이잖아.”그러고 주서인에게 말했다.“내가 듣기로는 여기서 초등학교 다녀도 호적을 옮겨야 중학교 입학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 게다가 너희 집 너무 시골도 아니잖아. 주위에 좋은 학교도 많고. 너희 두 사람 그런 학교 다녔어도 다 좋은 대학 붙었잖아.”김은희는 공부라는 건 아이한테 달렸지 학교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맞다, 엄마 말하니까 나 생각났어. 형인아. 나 애들 호적 너한테로 옮기는 건 어때. 아니면 너 집문서 내 앞으로 돌려놔. 애들 졸업하면 다 원래대로 돌려놓을게.”임수찬은 아이를 안고 수박을 먹느라 이 일에 대해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았다.주형인은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응낙하며 말했다.“이따가 예진이한테 말해 놓을게. 집안일은 내가 결정하지만, 엄마 말도 맞아. 어쨌든 가족이니 말은 해야지. 게다가 애들 픽업이며 밥 차리는 일은 예진이가 할 건데 의견은 물어보는 척이라도 하지 뭐. 예진이랑 상의하고 전화할게. 걱정하지 마, 우리 조카들 꼭 학교 다니게 해줄 테니까.”이들 남매도 사이가 좋았다. 주형인은 누나인 주서인을 조건 없이 믿었고 뭐든지 도우려 했다. 게다가 상대는 남이 아닌 친조카들이니 말이다.주서인은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이내 화제를 돌려 주형인을 다독였다.“이따 동서한테 뭐라 하지 마. 부부 사이에 트러블 생기는 건 당연한 거지. 두 사람 학교 다닐 때 동창이기도 하고 감정도 깊으니 우빈이 봐서라도 가만히 있어.”주서인은 두 사람이 다투기라도 하면 하예진이 홧김에 두 아이의 픽업을 거부하고 밥
그들 가족은 사이좋게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각자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그들은 여기서 며칠 묵을 생각이다.어쨌든 하예정이 집에서 나갔으니 방도 비었고 그들이 있기에 딱이었다.하지만 지금은 하예정의 도움 없이 하예진이 혼자 아이를 돌보고, 음식을 차리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집안은 예전처럼 깔끔하지 못했다.방에 들어가기 전, 주서인은 주형인을 세워놓고 말했다.“하예정 부부가 뭐 가득 사서 왔던데 동서가 홧김에 다 가지고 들어갔어. 나 봤는데 다 좋은 물건이더라고. 비싼 술과 담배가 보이던데 너 형부한테 줘. 동서 술 담배 안 하잖아. 그거 뒀다 어디다 쓴다고. 너 형부 비싼 담배 돈 아깝다고 안 사. 아빠도 좋은 술 못 마셔 봤으니 술은 아빠 드리고.”주형인은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까짓 거 다 가져가도 돼. 빨리 유환이 씻기고 들어가서 일찍 자. 나 내일 별일 없으니 드라이브나 가자.”“그래.”주서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환히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주형인이 방에 들어갔을 때, 주우빈은 이미 잠에 들었고 하예진은 마침 욕실에서 씻고 나왔다. 하예진은 주형인을 보는 척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우려 했다.“예진아, 얘기 좀 해.”주형인은 살찐 하예진의 몸매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서현주를 떠올리더니 하예진과 멀리 떨어진 침대 변두리에 앉았다.주형인은 자상한 표정으로 주우빈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래도 아들은 끔찍하게 생각하나 보다.“무슨 일인데?”하예진은 쌀쌀하게 물었다.“누나가 큰애 둘을 관성의 초등학교로 전학시키겠다네. 중학교도 여기서 보내고. 그래서 말인데. 너 애들 픽업 다니고 밥이나 해줘. 어차피 맨날 밥은 해야 하니까 그냥 수저 더 올려놓는 것뿐이야. 생활비는 애들이 뭐 많이 먹지도 않을 텐데 내가 월 20만 원 더 줄게. 20만 원이면 충분할 거야. 우리 집도 학군지에 들어. 관성 제2중학교도 가까이에 있으니 조카들 호적 우리 아래로 옮기거나 아니면 집문서 누나 이름으로 돌리든가 해서 애들 졸업
하예진은 쌀쌀맞게 말했다.“주형인, 나 집에서 애만 본다고 네가 날 그저 먹을 줄만 알고 돈 쓸 줄만 아는 무용지물로 생각해도 내가 낳았으니, 내 아이를 위해 참았어. 하지만 네 누나의 두 아이는 나랑 상관없어. 내 책임이 아니니 내가 돌봐 줄 의무가 없다고! 호적을 옮긴다고? 그럼 누구한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생각 안 해 봤어? 그건 우리 우빈이 학교 갈 기회를 빼앗는 거야. 집문서 네 누나 앞으로 돌린다고? 그 집문서에 내 이름은 없으니 네가 어떻게 하든, 설사 집을 돌려받지 못한다 해도 네 문제야. 하지만 집문서 돌리기 전에 이 집 인테리어 비용부터 돌려줘. 만약 당신 누나의 집이 되어버리면 내가 쓴 인테리어 비용 한 푼도 돌려받기 힘들어.”주형인은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생활비 더 준다고 했잖아. 그걸로 부족해? 너 원래 집에서 애 보고 밥하고 그랬잖아. 하나 돌보는 거랑 둘 돌보는 거랑 뭐가 다른데. 더군다나 애들 다 커서 이젠 말도 잘 들어. 공부하는 거 좀 도와주면 돼. 20만 원이 적으면 10만 원 더해서 30만 원 줄게. 그럼 되지? 그리고 호적 옮기는데 우빈이 학교 다니는 거랑 뭔 상관이야? 우빈이 학교 가려면 아직 멀었어. 내 친누나니까 나 누나 믿어. 집 무조건 돌려줄 건데 뭔 인테리어 비용이야. 이 집은 내가 샀어. 너도 이 집에서 살고 있는데 인테리어 비용쯤이야 당연히 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뻔뻔스럽게 인테리어 비용을 돌려달라고, 없어!”하예진은 주형인을 노려보았다.이 순간, 하예진은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결혼 전 두 사람은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을 키워왔고 주형인은 하예진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결혼해서 첫 2년도 주형인은 그나마 하예진에게 잘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하예진은 주형인에게 점점 더 실망하고 있다.주형인은 늘 자기의 부모와 주서인의 편만 들었다.그녀 생각은 물론, 주우빈의 생각도 하지 않았다.주서인이 입만 열면 모든 걸 다 들어주었다.‘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집 문제로 원수가 되는데.’“
주형인은 화가 나서 하예진을 때리고 싶었는데, 하예진이 갑자기 돌아서서 그가 주먹을 치켜드는 모습을 본다. 하예진의 눈빛은 차갑게 말한다. "네가 감히 나를 때린다면 나를 때려죽이는게 낫지. 그렇지 않으면 넌 영원히 잠들지 마!"이전에 주형인이 그녀를 욕하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해도 그녀는 모두 참았다.이 집을 위해서,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니까 이전에 하예진은 모두 참았다. 하지만 주형인이 더치페이를 하자고 고집하자 하예진은 한심해진다.그녀는 이전에 주형인과 같은 회사에 다녔는데 그가 사장로서 얻을 수 있는 월수입이 얼마인지 하예진은 잘 알고 있다.한 달 월급이 몇 백만 원이나 된다.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준 생활비는 겨우 60만 원뿐이었고, 그 밖에 한 푼도 더 주지 않으려 했다!또 그녀와 더치페이를 하려고 하니, 그녀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겠니?기왕 마음이 삭았으니 하예진이 더는 이전처럼 순종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이나 다 주형인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주형인이 또다시 그녀를 폭행한다면 그는 잠들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그의 두 손을 잘라 버릴 것이다!주형인은 아내의 눈에서 나오는 매서움에 놀라서 아내의 독설 한마디에 주먹을 내려놓고, "넌 정말 어처구니없구나"라고 욕설을 퍼붓는다.그리고 그는 떠나간다.하예진은 방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나며 그 눈물이 멈추지 않아 그녀의 눈가를 따라 흘러내린다.언니와 형부가 또 모순이 생긴 것을 모르지만 하예정은 집에 돌아온 후 늘 마음이 답답하다.하예정은 베란다의 그네 의자에 앉아 별하늘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전태윤은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들고 나와 그 잔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저녁 반찬이 좀 짜니까 물 좀 마셔라"고 온후하게 말한다.하예정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물잔을 받는다. "고마워요.""무슨 걱정거리 있어?"전태윤이 그녀 곁에 다가앉는다.하예정은 미지근한 물을 두 모금 마시
하예정은 머리를 돌려 전태윤을 바라보았고 전태윤도 그녀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내 전태윤은 그녀의 이마를 튕기며 말했다.“내 말 못 믿어? 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하예정, 처형한테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나서서 처형 지켜줘야지!”전씨 가문은 분위기가 항상 좋았다. 부부 사이도 늘 깨가 쏟아졌으며 집안 남자들은 단 한 번도 여자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전태윤의 아버지인 전현림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에게 손을 대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다!“태윤 씨.”“응.”하예정은 눈치를 보며 물었다.“나 태윤 씨 어깨에 기대고 싶어요.”전태윤은 머뭇거렸다.“그냥 기대는 것뿐인데. 내가 뭐 흑심을 품은 것도 아니고.”하예정은 혼잣말하며 전태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전태윤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하예정도 사실 어색했지만, 기댈 곳이 필요했다.‘기댈 곳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네!’전태윤의 굳은 몸은 한참 뒤에야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자발적인 행동이 달갑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밀어내지는 않았다.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맴도는 전태윤의 손을 보고 하예정은 웃음이 나왔다.하예정은 갑자기 전태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전태윤은 하예정의 돌발에 깜짝 놀라 몸을 옆으로 옮겼다.하지만 하예정은 이 상황을 미리 예견했다.“하예정!”전태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계약 항상 기억해. 선 넘지 마!”전태윤의 진지한 모습에 하예정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 똘망똘망한 눈으로 전태윤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가 따라 준 온수를 홀짝였다.그녀의 눈빛에 전태윤은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아마 정말 빨개진 듯하다.전태윤은 얼굴이 후끈후끈했다.“태윤 씨 서른인데 여자랑 스킨십 해본 적 없죠? 그냥 얼굴만 만졌을 뿐인데 왜 그렇게 반응이 격해요? 누가 보면 내가 태윤 씨 어떻게 했다는 줄 알겠어요.”하예정은 도발하며 말했다.‘할머니가 결혼을 재촉하시는 데는 꼭 이유가 있을 거야. 태윤 씨 같
전태윤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하예정을 한참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늦었으니 빨리 들어가서 쉬어. 여기서 잠들지 말고. 밤에는 추우니 감기 걸려. 감기 걸리면 너만 고생이야.”말을 끝낸 전태윤은 뒤돌아서 들어갔다.이내 하예정은 문 잠그는 소리를 들었다.하예정은 웃으며 중얼거렸다.“문까지 걸어 잠그고, 내가 위험해?”같은 시간, 전태윤도 중얼거렸다.“이 여자 너무 위험해.”방에 들어온 전태윤은 욕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서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아직도 후끈거렸다.‘나 진짜 얼굴 빨개졌어.’전태윤은 자기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하예정이 만진 곳을 몇 번이고 만져보며 그녀가 자기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느낌을 되돌려 보았다.그녀의 손은 말랑말랑하고 나긋했으며 마치 스쳐 가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전태윤은 물을 틀고 세수했다.전태윤은 아까 자기가 했던 반응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 혼자 중얼거렸다.“내가 기억이 있은 뒤로는 아무도 내 얼굴을 못 만지게 했어.”성인이 된 후로 전태윤은 항상 진지하고 차가운 얼굴을 유지하다 보니 아무도 감히 그의 얼굴에 손을 대지 못했다. 게다가 늘 경호원과 동행하다 보니 젊고 예쁜 여자들도 그에게 다가갈 기회가 전혀 없었다.여태 자기를 지켜왔는데, 오늘은 한 지붕 아래 여자에게 얼굴을 내주었다.전태윤은 첫 스킨십을 법적인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니 어찌할 수도 없는 데다가 격한 반응으로 그녀의 비웃음까지 사게 되었다.한참 뒤 씻고 나온 전태윤은 베란다에 두고 들어 온 하예정이 생각나서 방문을 나섰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가운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웃통을 벗고 나갔다가 하예정이 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전태윤은 이내 가운을 입고 자기를 꽁꽁 싸맨 채로 방문을 나서 베란다로 갔다.‘잠들지 않았겠지?’전태윤의 걱정대로 하예정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전태윤은 그 모습에 화나기도, 우습기도 했다. 분명 베란다에서 잠들지 말라고 당부했는데도 그녀는 쌔근거리며 잠자고 있었다.전
눈앞의 베란다를 보며 전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나중에 별장으로 이사 가면 정원에 장미 키워봐. 정원 가득 장미가 자라면 지금보다 훨씬 예뻐.”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데요. 돈 아무리 모아도 아파트 하나 사기 힘든데 별장은 무슨.”물론 하예정도 별장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단지 생각일 뿐이다.‘돈 많으면 다들 별장 살라 그럴걸. 널찍한 데다가 층간 소음도 없고 얼마나 좋은데. 이런 아파트는 층간 소음이 문제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전태윤이 하예정과의 결혼을 위해 임시로 장만한 것이다.전태용은 쭉 큰 별장에서 살았었다.“태윤 씨, 먼저 식사해요. 난 꽃에 물 다 주고 먹을게요.”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들어갔다.하예정은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하지만, 매일 다른 메뉴로 전태용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요리 솜씨도 좋았다. 제일 간단한 야채죽이나 반찬도 전태용의 입맛에 꼭 맞았다.매일 진수성찬을 먹던 전태윤은 하예정의 담백한 반찬과 요리가 아주 맘에 들었다.오늘은 전태윤이 먼저 집을 나섰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전태윤은 소정남과 마주쳤다.소정남은 전태윤을 향해 윙크를 날렸지만 전태윤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뭐야, 왜 그런 표정이야.”소정남은 전태윤의 옆에 바싹 붙어 걸으며 전태윤을 툭툭 건드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형수님 아직 못 달랬어?”전태윤은 머리를 돌려 소정남을 노려보더니 계속 앞으로 걸었다.“네 성질머리로는 절대 못 달래지.”“우리 사이 아주 좋아!”전태윤은 화가 나서 쌀쌀맞게 말했다.소정남은 대충 대답하고 나서 계속해 말했다.“그런데 왜 욕구불만 가득한 표정이야?”“너 눈 어떻게 됐어? 내가 뭐 욕구불만 가득한 표정이라고.”황홀함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 욕구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게다가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설렌 적도 없었고 그녀에게 충동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전태윤은 자기가 생각해도 무뚝뚝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