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바로 하예진이었다.하예진은 마스크까지는 아니었지만,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모자를 벗어 가방에 집어넣었다.이윤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그래요.”하예진은 이윤미를 유심히 살폈다.“무슨 일 있어요?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윤미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난 그저 가만히 있었어요. 내가 뭘 한 것도 아니고, 그녀가 내 손에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그리고, 기분이 좋아도 밖으로 드러낼 수 없잖아요.”“여기요.”이윤미의 말이 끝난 뒤, 하예진은 웨이터를 불러 커피를 주문했다. 웨이터가 돌아가고,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디저트를 한 입 맛 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여기 디저트 잘하네요. 너무 맛있는데요.”하예진의 말에 이윤미는 미소를 지었다.“그럼요. 여기가 어디 호텔인데.”그리고 그녀는 또 물었다.“듣자 하니, 전씨 집안 도련님들이 모두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하던데요?”하예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제가 잘 아는 건 저희 제부, 그리고 전이진이랑 전호영, 셋이 요리를 정말 잘해요.”“그리고,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호텔을 운영하니, 카페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가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하예진은 살이 찔까 봐 걱정되어, 디저트를 한 입 먹고는 더 이상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윤미는 하예진이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 디저트 접시를 하예진 앞으로 밀었다.“맛있으면 더 먹어요.”하예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니에요. 맛만 보면 됐어요. 단 음식은 쉽게 살찌잖아요. 저 1년 동안 매일 뛰면서 운동 유지하고, 식단 조절에 일도 많이 하면서 겨우 다이어트에 성공했어요.”그녀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후, 요요가 오는 것이 두려워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오고 있었다.“이제는 그 고생을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윤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도 난 사업으로 예진 씨와 한 판 붙고 싶어요. 예진 씨도 제대로 배워야 할 거예요.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언제든 판이 바뀔 수 있는 게 사업이에요. 아직 독하게 마음먹지 못한 것 같네요.”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윤미 씨만큼 못 하는 거 인정해요. 현재로서는 내가 윤미 씨를 따라갈 수 없어요.”하예진은 과거 직장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결혼 후 한동안 전업주부로 지냈다. 그녀가 다시 시작한 커리어도 작은 사업일 뿐이었다.하예진은 이번에 큰이모의 덕으로 강성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몇몇 가문들이 뒤에서 도와준다 해도, 그녀 스스로 능력과 인내가 없으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었다.그리고, 하예진이 사업 판에 발을 들인 시간도 이윤미보다 훨씬 짧았고, 무엇보다 강성에서는 금방 시작한 단계에 불과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지금 예진 씨 계약을 가로채고, 고객을 빼앗기 딱 좋은 타이밍이 아니겠어요? 그럼, 예진 씨한테는 큰 타격일 텐데. 미안하지만, 예진 씨가 일주일 동안 공들였던 계약, 내가 오늘 방금 따냈어요.”하예진은 눈빛이 번쩍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나도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우리 큰이모가 한 달 동안 성사하지 못한 계약, 내가 따냈거든요. 솔직히 윤미 씨랑 나는 친척이고, 또 이렇게 잘 통하는데, 저보다 어른인 윤미 씨의 사업을 가로채는 게 좀 미안했었거든요.”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덧붙였다.“윤미 씨가 제 걸 빼앗고, 나도 윤미 씨 걸 빼앗았으니, 이제 우리 서로 주고받는 셈이네요. 그러면 이제 미안해할 것도 없네요.”이윤미는 하예진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좀 하네요.”하지만, 하예진은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솔직히, 내가 두씨 그룹 계약을 성사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두씨 가문이 내 뒤에 있는 몇몇 대기업들을 봐서예요.”이윤미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그게 뭐가 중요해요. 결국 계약은 예진 씨
이윤미는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다 먹지 못하면 포장하곤 하였다. 그녀는 누군가 비웃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농촌에서 자란 이윤미는 김현미의 집에서 잘 살지 못했기에 낭비하는 것을 싫어했다.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런 그녀가 당연하게만 느껴졌다.십몇 분 후.이윤미는 차를 운전해 이 씨 그룹에 돌아왔다. 회사 입구에 도착하자 몇몇 사람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들은 바로 김현미와 그녀의 아들들이었다.그녀가 외출한 걸 몰랐던 그들은 한참 동안 회사 입구에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고개를 돌려본 정지훈은 차에 탄 사람이 이윤미인 것을 보고 김현미에게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이윤미인 것을 확인한 김현미는 두 아들을 데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이윤미는 차를 멈춰 세웠다.그녀의 구역이었기에 이윤미는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그들이 이 씨 그룹 구역에서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이윤미는 그들이 가까이 다가서자 차창을 내리고 차가운 말투로 김현미에게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윤미야.”이윤미는 김현미가 간신히 짜낸 웃음이 우는 것보다 더 흉해 보였다.친딸이 어젯밤에 죽었는데 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윤미는 차분하게 말했다.“웃기 싫으면 웃지 마세요. 당신 딸이 어젯밤에 죽었는데 지금 웃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비록 윤정이는 당신 곁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당신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잖아요. 매번 당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 있는 모든 좋은 물건을 윤정이에게 보내줬으면서요.”“윤정이에게 감정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딸이 죽었으니, 엄마로서 슬픈 것은 당연한 거예요, 억지로 웃을 필요가 없어요.”수척해 보이는 김현미는 마치 열 살은 더 늙어 보였고 눈도 벌겋게 부어있었다.이윤미의 말처럼 친딸이 죽었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윤미야...”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양모는 울먹이며 말했다.“지난날...미안했어.”이윤미는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지난 일은 이미 지나갔어요, 다시 말하고 싶지
“엄마의 건강도 점점 더 나빠지셔. 매달 의사의 진료를 받으셔야 하고, 주사 맞고 약도 드셔야 하기에 돈이 많이 들어.”정지훈은 뻔뻔스럽게 그들이 이곳에 온 진정한 의도를 이윤미에게 말했다.“맞아, 나와 형은 수입이 높지 않고 또 가족도 부양해야 해.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지출을 아빠가 내셨어, 네가 돈을 벌고 나서 너도 돈을 좀 가져왔었지. 지금은 아빠가...엄마는 수입이 없으시고 너는 또 우리 집을 떠났어.”.“나와 형이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기도 어려운데 엄마를 부양할 돈이 어디 있겠어? 엄마는 주사를 맞고 약도 드셔야 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도 부담하기 힘들어.”이윤미는 김현미를 바라보았다.김현미는 이윤미의 눈길을 피하며 그녀를 마주 보지 못했다.이윤미에게 돈을 요구하러 온 것은 두 아들의 뜻이었다.사실 김현미는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윤미가 그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릴 때 이윤미가 그들의 집으로 온 후 잘 대해주지 않았었다. 예전에 이윤미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미워도 돈을 벌면 생활비를 조금 주었다.나중에 진실이 드러나고 이윤미는 자신이 어릴 때 학대당한 이유를 알게 된 후 그들 가족에 대한 정이 사라졌다.남은 것은 원망과 미움뿐이었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간 후 김현미는 그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윤미가 점점 강해지고 이은화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윤미의 강세는 이윤정의 약세를 예시한다.그렇게 된다면 이윤정은 이씨 가문에서의 삶이 점점 힘들어진다.이윤정이 다시는 가주 자리에 앉을 기회도 없을 것이다.이 일을 알게 된 김현미는 마음속으로 이윤미를 원망하고 미워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딸을 열세에 몰리게 했다고 생각했다.오늘날 이윤정이 사고로 추락해 죽은 것도 그들과 관련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이윤정을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흥분해서 실수로 추락해 죽지 않았을 것이다.두 아들은 이윤정이 죽었고 그들의 희망도 사라졌기에 이윤미에게 어떻게든 돈을 달라고 해야
관성의 10월 날씨는 여전히 덥고 아침과 저녁에만 늦가을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하예정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언니네 세 식구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준 뒤 주민등록증을 챙겨 조용히 떠났다."오늘부터 우리 더치페이로 해, 생활비든, 주택 대출이든, 자동차 대출이든 모두 더치페이로 해! 여동생도 우리 집에 얹혀사니 절반쯤을 내놓으라고 해, 한 달에 30여만 원을 주면 뭐 해? 공짜로 먹고사는 거랑 뭐가 다른데? ”어젯밤 언니와 형부가 다퉜을 때 그녀가 형부에게 들은 말이다.언니 집에서 나가야 해!하지만 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 누군가에게 시집을 가는 것뿐....예정은 비록 남친도 하나 없지만, 단기간에 시집을 가기 위하여 우연히 구한 적이 있는 전씨 할머니의 부탁을 듣고 결혼이 어렵다는 큰 손자 전태윤에게 시집을 가기로 했다.20분 후, 그녀는 구청 입구에서 내렸다.”예정아.”차에서 내린 그녀은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는데 전씨 할머니셨다.”전 할머니.”빠른 걸음으로 다가간 예정은 전씨 할머니 옆에 서 있는 키가 크고 차가워 보이는 한 남자에게 눈길이 끌렸는데, 바로 그녀의 결혼 대상인 전태윤이 아닐까 싶다.가까이 다가간 그녀는 태윤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전씨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큰 손자인 태윤은 서른이 다 되도록 여자 친구 하나 없어 자신을 크게 걱정시킨다고 했었다. 예정은 아마도 매우 못생긴 남자이리라 추측했었다.들은데 의하면 어느 큰 그룹의 경영자로 수입도 아주 높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직접 만나보고 나서야 자신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차가워 보이는 성격으로, 전씨 할머니 옆에 서서 어두운 얼굴로 마치 낯선 사람 접근 금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시선을 살짝 돌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검은색 승용차가 한대 서 있었다. 다행히도 억대의 고급차는 아닌 보통 수준의 자가용이었다. 이를 본 예정은 그녀와 태윤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느껴졌
"약속하였으니 지킬게요."예정도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린 거라 다시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태윤은 이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주민등록증를 꺼내 앞에 내놓았다.예정도 마찬가지로 주민등록증을 꺼내 놓았다.두 사람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재빠르게 결혼 절차를 밟았다.혼인 신고가 끝나자 태윤은 바지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둔 열쇠를 꺼내 예정에게 건넸다. "주택은 발렌시아 아파트구에 있는데 할머니한테서 관성 중학교 입구에 서점을 차렸다고 들었어, 그쪽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깐 버스로 십여 분이면 갈 수 있을 거야.""운전면허증은 있어? 운전면허가 있으면 차 한 대를 제공해 줄게, 계약금은 내가 내줄 테니 매달 차 대출금을 갚아, 차를 가지고 다니면 출퇴근이 편할 거야.""나는 일이 바빠 보통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와, 그리고 때로는 출장을 가기도 하는데, 자기 절로 제 몸만 잘 챙기면 돼. 생활비는 매달 10일에 급여 받으면 넘겨줄게.""그리고 시끄럽지 않게 결혼한 사실은 잠시 비밀로 해줘."태윤은 회사에서 남을 부리는 게 습관이 됐는지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연달아 분부하였다.예정이 초고속 결혼을 한 이유는 언니가 형부와 다투는 것을 원치 않아 하루빨리 결혼하여 언니 집에서 나와 언니를 안심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녀에게 이 결혼은 그저 계약 결혼에 지나지 않았다.태윤이 집 열쇠를 주자 예정은 사양치 않고 열쇠를 건너 받았다."운전면허증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차를 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평소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고 다녔었는데 금방 새 오토바이로 바꿨어요."“저기...... 태윤씨, 우리도 생활비를 더치페이로 할까요 ?"언니와 형부는 좋은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형부가 더치페이란 말을 꺼내는 걸 보면...... 아마도 형부는 언니가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아이 하나 잘 돌보고, 장보고, 밥하고 거기에 집 청소까지 하는 데 시간이
"네, 할머니."비록 전씨 할머니가 평소 잘해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태윤이는 친손자이고, 자기는 그저 손자며느리에 불과한데, 혹여 갈등이 발생하면 며느리 편을 들어주기나 할까?예정은 전혀 믿지 않았다.마치 언니의 시부모들처럼 말이다.결혼 전에 그들도 언니에게 친딸이 질투할 정도로 엄청나게 잘해주었지만.... 결혼 후엔 태도가 확 달라지더니 언니랑 형부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시어머니는 언니에게만 아내노릇을 잘 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아들은 언제나 한집 식구이고, 며느리는 그냥 남인 것이다."이제 출근하러 가야겠네? 그럼 할머니는 그만 가 볼게. 그리고 저녁에 태윤이한테 데리러 가라 할게, 같이 밥이라도 먹자""할머니, 제가 가게 문을 늦게 닫아서 아마 식사는 어려울 것 같아요. 주말은 어떨까요?"주말에 학교가 쉬면 학교에 의존하여 먹고사는 서점들은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말엔 문을 닫아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전씨 할머니는 그 말을 자상하게 받아주셨다."그럼 주말에 다시 보자, 먼저 일 보거라."그러고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예정은 바로 가게로 가지 않고, 먼저 절친인 심효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점심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오기 전에 가게로 돌아간다고 했다.인생의 큰일을 해결한 예정은 아무래도 돌아가서 언니에게 말하고 나서 언니의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십여 분 후,언니의 집에 도착했다.형부는 이미 출근하였고 언니는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본 언니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예정아, 왜 벌써 돌아왔어? 오늘 가게 안 열어?""점심때 다시 갈 거야, 점심때가 가장 바빠. 우빈인 아직 안 깼어?주우빈은 예정의 조카로 이제 막 두 살이 된 장난꾸러기이다."아직이야. 그 녀석이 깨어나면 집안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어."예정은 언니를 도와 옷을 널면서 어젯밤에 일었던 일을 조심스레 물어봤다.“예정아, 형부가 널 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너무
"언니, 그건 태윤의 개인재산이야, 나는 한 푼도 내지 않았어, 공동소유라니 이건 말도 안 돼."혼인신고를 하지 마자 태윤은 집 열쇠를 주었고 이로하여 즉시 이사하여 더는 형부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게 된 예정은 이걸로도 아주 만족하고 있다.그녀는 태윤에게 먼저 공동소유를 제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일 태윤이가 먼저 제안하면 거절할 생각도 없고 말이다. 이제 부부인 만큼 평생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예진도 그저 한번 말해보았을 뿐이다. 동생은 이런 것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렇게 묻고 답하면서 잠시 뒤에야 예정은 언니의 집에서 이사를 할 수가 있었다.언니는 발렌시아 아파트까지 데려다주려고 하였지만 그때 마침 조카 우빈이 깨어나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언니, 먼저 우빈이부터 챙겨, 물건이 그리 많지 않으니 혼자 갈 수 있어"예진은 아들에게 밥을 먹여줘야 하고, 그러고 나서 또 점심 식사도 준비해야 했다. 남편이 점심에 돌아올 때 식사가 차려져 있지 않으면 또 집에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나무랄 것이다."그럼 조심해서 가 알았지? 점심은 어떡할래? 네 남편 불러다 같이 먹을까?""언니, 나 점심엔 가게로 돌아가야 해, 태윤인 일이 바빠서....오후엔 출장 가야 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나야 언니 만나러 올 수 있을 것 같아."예정은 거짓말을 했다.태윤에 대해 아직 잘 모르지만, 전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태윤은 일이 바빠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온다고 한다, 때로는 출장을 가는데 한번 출장을 가면 열흘이나 보름이 지나서 돌아온다고 한다. 예정은 태윤이 언제 시간이 될지 몰라 언니랑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오늘 혼인신고 하자마자 출장을 가다니...."예정은 태윤이 동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우린 그냥 신고만 하였지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잖아, 출장 가서 돈 많이 벌면 좋지 뭐....앞으로 돈 쓸데도 많아질 거야. 언니, 나 먼저 가
“엄마의 건강도 점점 더 나빠지셔. 매달 의사의 진료를 받으셔야 하고, 주사 맞고 약도 드셔야 하기에 돈이 많이 들어.”정지훈은 뻔뻔스럽게 그들이 이곳에 온 진정한 의도를 이윤미에게 말했다.“맞아, 나와 형은 수입이 높지 않고 또 가족도 부양해야 해. 예전에는 집안의 모든 지출을 아빠가 내셨어, 네가 돈을 벌고 나서 너도 돈을 좀 가져왔었지. 지금은 아빠가...엄마는 수입이 없으시고 너는 또 우리 집을 떠났어.”.“나와 형이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기도 어려운데 엄마를 부양할 돈이 어디 있겠어? 엄마는 주사를 맞고 약도 드셔야 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도 부담하기 힘들어.”이윤미는 김현미를 바라보았다.김현미는 이윤미의 눈길을 피하며 그녀를 마주 보지 못했다.이윤미에게 돈을 요구하러 온 것은 두 아들의 뜻이었다.사실 김현미는 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윤미가 그들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릴 때 이윤미가 그들의 집으로 온 후 잘 대해주지 않았었다. 예전에 이윤미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미워도 돈을 벌면 생활비를 조금 주었다.나중에 진실이 드러나고 이윤미는 자신이 어릴 때 학대당한 이유를 알게 된 후 그들 가족에 대한 정이 사라졌다.남은 것은 원망과 미움뿐이었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간 후 김현미는 그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윤미가 점점 강해지고 이은화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윤미의 강세는 이윤정의 약세를 예시한다.그렇게 된다면 이윤정은 이씨 가문에서의 삶이 점점 힘들어진다.이윤정이 다시는 가주 자리에 앉을 기회도 없을 것이다.이 일을 알게 된 김현미는 마음속으로 이윤미를 원망하고 미워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딸을 열세에 몰리게 했다고 생각했다.오늘날 이윤정이 사고로 추락해 죽은 것도 그들과 관련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이윤정을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흥분해서 실수로 추락해 죽지 않았을 것이다.두 아들은 이윤정이 죽었고 그들의 희망도 사라졌기에 이윤미에게 어떻게든 돈을 달라고 해야
이윤미는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다 먹지 못하면 포장하곤 하였다. 그녀는 누군가 비웃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농촌에서 자란 이윤미는 김현미의 집에서 잘 살지 못했기에 낭비하는 것을 싫어했다.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런 그녀가 당연하게만 느껴졌다.십몇 분 후.이윤미는 차를 운전해 이 씨 그룹에 돌아왔다. 회사 입구에 도착하자 몇몇 사람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들은 바로 김현미와 그녀의 아들들이었다.그녀가 외출한 걸 몰랐던 그들은 한참 동안 회사 입구에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고개를 돌려본 정지훈은 차에 탄 사람이 이윤미인 것을 보고 김현미에게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이윤미인 것을 확인한 김현미는 두 아들을 데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이윤미는 차를 멈춰 세웠다.그녀의 구역이었기에 이윤미는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그들이 이 씨 그룹 구역에서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이윤미는 그들이 가까이 다가서자 차창을 내리고 차가운 말투로 김현미에게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윤미야.”이윤미는 김현미가 간신히 짜낸 웃음이 우는 것보다 더 흉해 보였다.친딸이 어젯밤에 죽었는데 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윤미는 차분하게 말했다.“웃기 싫으면 웃지 마세요. 당신 딸이 어젯밤에 죽었는데 지금 웃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아요. 비록 윤정이는 당신 곁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당신 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잖아요. 매번 당신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 있는 모든 좋은 물건을 윤정이에게 보내줬으면서요.”“윤정이에게 감정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딸이 죽었으니, 엄마로서 슬픈 것은 당연한 거예요, 억지로 웃을 필요가 없어요.”수척해 보이는 김현미는 마치 열 살은 더 늙어 보였고 눈도 벌겋게 부어있었다.이윤미의 말처럼 친딸이 죽었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윤미야...”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양모는 울먹이며 말했다.“지난날...미안했어.”이윤미는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지난 일은 이미 지나갔어요, 다시 말하고 싶지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윤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도 난 사업으로 예진 씨와 한 판 붙고 싶어요. 예진 씨도 제대로 배워야 할 거예요.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언제든 판이 바뀔 수 있는 게 사업이에요. 아직 독하게 마음먹지 못한 것 같네요.”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윤미 씨만큼 못 하는 거 인정해요. 현재로서는 내가 윤미 씨를 따라갈 수 없어요.”하예진은 과거 직장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결혼 후 한동안 전업주부로 지냈다. 그녀가 다시 시작한 커리어도 작은 사업일 뿐이었다.하예진은 이번에 큰이모의 덕으로 강성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몇몇 가문들이 뒤에서 도와준다 해도, 그녀 스스로 능력과 인내가 없으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없었다.그리고, 하예진이 사업 판에 발을 들인 시간도 이윤미보다 훨씬 짧았고, 무엇보다 강성에서는 금방 시작한 단계에 불과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지금 예진 씨 계약을 가로채고, 고객을 빼앗기 딱 좋은 타이밍이 아니겠어요? 그럼, 예진 씨한테는 큰 타격일 텐데. 미안하지만, 예진 씨가 일주일 동안 공들였던 계약, 내가 오늘 방금 따냈어요.”하예진은 눈빛이 번쩍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나도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우리 큰이모가 한 달 동안 성사하지 못한 계약, 내가 따냈거든요. 솔직히 윤미 씨랑 나는 친척이고, 또 이렇게 잘 통하는데, 저보다 어른인 윤미 씨의 사업을 가로채는 게 좀 미안했었거든요.”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덧붙였다.“윤미 씨가 제 걸 빼앗고, 나도 윤미 씨 걸 빼앗았으니, 이제 우리 서로 주고받는 셈이네요. 그러면 이제 미안해할 것도 없네요.”이윤미는 하예진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좀 하네요.”하지만, 하예진은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솔직히, 내가 두씨 그룹 계약을 성사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두씨 가문이 내 뒤에 있는 몇몇 대기업들을 봐서예요.”이윤미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그게 뭐가 중요해요. 결국 계약은 예진 씨
이윤미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바로 하예진이었다.하예진은 마스크까지는 아니었지만,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모자를 벗어 가방에 집어넣었다.이윤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그래요.”하예진은 이윤미를 유심히 살폈다.“무슨 일 있어요?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이윤미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난 그저 가만히 있었어요. 내가 뭘 한 것도 아니고, 그녀가 내 손에 죽은 것도 아니잖아요.”“그리고, 기분이 좋아도 밖으로 드러낼 수 없잖아요.”“여기요.”이윤미의 말이 끝난 뒤, 하예진은 웨이터를 불러 커피를 주문했다. 웨이터가 돌아가고,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디저트를 한 입 맛 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여기 디저트 잘하네요. 너무 맛있는데요.”하예진의 말에 이윤미는 미소를 지었다.“그럼요. 여기가 어디 호텔인데.”그리고 그녀는 또 물었다.“듣자 하니, 전씨 집안 도련님들이 모두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하던데요?”하예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제가 잘 아는 건 저희 제부, 그리고 전이진이랑 전호영, 셋이 요리를 정말 잘해요.”“그리고,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호텔을 운영하니, 카페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가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하예진은 살이 찔까 봐 걱정되어, 디저트를 한 입 먹고는 더 이상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윤미는 하예진이 디저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 디저트 접시를 하예진 앞으로 밀었다.“맛있으면 더 먹어요.”하예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아니에요. 맛만 보면 됐어요. 단 음식은 쉽게 살찌잖아요. 저 1년 동안 매일 뛰면서 운동 유지하고, 식단 조절에 일도 많이 하면서 겨우 다이어트에 성공했어요.”그녀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후, 요요가 오는 것이 두려워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오고 있었다.“이제는 그 고생을
정일호가 그런 정군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위로밖에 없었다. 사실, 정일호 역시 이윤정이 실족사인지, 친오빠에게 떠밀려 타살된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감히 조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이미 이은화가 그들한테 명확하게 뜻을 전달했기 때문이었다.“이윤정은 이미 죽었다. 이제부터 우리 집에서 그 애의 이름조차도 입 밖에 내지 마라.”정군호 역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아들 앞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밖에 없었다.“퇴원하거든 네 별장으로 가지 않을 거다. 대저택으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다시 네 엄마를 화나게 하는 일도 없을 거야. 아비는 이미 70살도 넘었다.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너희들을 끝까지 지킬 거야.”“내가 있으면, 네 엄마가 화가 나더라도 나한테 화풀이할 테니, 너희들은 그나마 덜 괴로울 거야.”그리고, 정군호는 정일호에게 당부했다.“일호야, 너희 형제들도 조심해야 한다. 물론, 너희를 낳고 기른 엄마이긴 하지만, 그녀에게 이씨 가문보다 중요한 건 없어. 이씨 가문을 위해서라면, 너희 형제쯤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정군호의 말에 정일호는 침을 삼켰다. 이은화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어떠한 가혹한 결정도 내릴 수 있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너희도 나와 윤정이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너희 힘으로 사업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이씨 가문을 벗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야.”정군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비 말을 명심하거라. 난 네 엄마와 50년을 함께 살았다.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뼛속까지 알고 있어.”“그리고 이윤미는 너희를 형제라고 생각도 하지 않아. 네 엄마가 움직이지 않아도, 언젠가 이윤미가 너희를 하나하나 쳐낼 거야. 그 애의 피에는 너희 엄마와 똑같이 냉혹함이 흐르고 있어.”정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빠, 저희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사업이 조금 어려워요? 저희도 여러 번 사업
수십 년 결혼생활 동안, 이은화는 세 아들보다 남편인 정군호를 더 치밀하게 관리했다. 그것은 이은화가 남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단지, 정군호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 애가 죽은 건 그애 스스로 초래한 거야. 마음속에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 애가 나한테 복수하려고 또 당신 장남을 꼬셨어. 군호 씨가 보기에 이게 뭐인 것 같아? 스스로 생각 좀 해봐.”“당신 큰며느리가 지금 집에서 이혼한다고 난리 치고 있어. 이윤정, 그 애가 우리 가정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당신 장남의 가정까지 망쳐놨어. 그 애는 죽어 마땅해. 그 애가 자살이든 타살이든,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그리고, 우리 누군가 이씨 가문의 인맥을 이용해 이 일을 조사하려고 한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야.”“누구든 내 허락 없이 이씨 가문의 세력을 이용하려는 자는, 가차 없이 벌받게 할 거야!”이은화는 단호하게 말을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높이 들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다.정군호는 멀어져 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는 무기력감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정군호는 이씨 집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은화의 앞에서 허리를 펼 수도,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아내의 기분이 좋아야만 정군호의 삶도 평온해질 수 있었다.분명, 두 사람에게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하지만 아내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냉랭해졌다. 언제나 남편인 정군호가 양보해야 했고, 그녀한테 맞춰야 했고, 그녀를 이해해야 했다.이은화가 병실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 아들 정일호와 마주쳤다. 이은화의 표정은 어두웠고 정일호는 엄마가 걱정스러웠다.“엄마...”“그래, 일호야. 네 아빠가 퇴원하면 이제는 네 별장에서 지내도록 부탁해.”이은화는 정일호에게 당부하고 급히 떠났다.‘아빠를 더 이상 이씨 가문 대저택에 들이지 않으시겠다는 건가?’정일호는 이은
“그건 단순한 우연이었어. 당신과 윤정이가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고. 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윤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윤미가 아무리 우리 곁에서 자라지 않았다고 하지만, 윤미야말로 우리의 딸이야. 우리의 피가 흐르고 있는 혈육이라고.”“어떻게 안 좋은 일이라고 하면 그저 온갖 누명을 윤미한테 다 뒤집어씌워? 당신이 그러고도 아빠라고 할 수 있어?”이은화의 말에 정군호는 말문이 막혔다.“...”한참 침묵 끝에, 정군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나와 윤정이가 그렇게 된 게 그저 단순한 우연이었단 말이에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민 일이 아니라?”“그래. 우연이었어. 만약 어떤 음모가 있었다면, 그건 당신이 제일 아끼는 장남이 당신을 속인 거야. 당신 장남이 속였다는 거 믿을 수 있으면 계속 음모라고 생각해. 나도 말리지 않을 테니.”정군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장남이 자신을 배신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는 이윤미가 자신의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네 명의 자식 중에서도 유독 장남과 딸 이윤정을 가장 아꼈다. 그리고 장남과 정군호, 부자 둘 사이도 매우 좋았다.‘우리 장남이 나를 속였다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정군호는 장남이 그랬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여보, 나와 윤정이가 그렇게 된 게 단순하게 우연이었다면, 왜 윤정이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였어요? 당신이 그렇게까지 하지만 않았어도 윤정이가 죽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이은화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친딸을 탓할 수 없으니, 이제는 아내인 나를 탓하기 시작하는 거야?”“뭐야, 당신이 그렇게도 아끼던 애첩이 죽어서 복수라도 하고 싶어? 지금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순간, 정군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그는 급히 손을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이은화는 냉정하게 말했다.“이윤정은 애초부터 내 딸이 아니었어. 우리 집안에서 자라며 원래대로라면 평생 겪어보지 못할 부귀영화
그 집안은 흡혈귀나 다름없었다.이윤미가 아니라 이윤정이야말로 이씨 가문의 친딸과 같은 존재이다. 이윤미에게 그런 짓을 하는 건 상관없지만 어려서부터 이씨 가문에서 귀하게 자란 이윤정에게 그런 짓을 했으니 어찌 그런 굴욕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결국 그들은 이윤정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뜻밖의 추락사라고? 정일호는 절대 믿지 않았다.그는 이윤정이 친오빠에게 밀쳐 떨어졌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다.병실에서 이은화는 막내아들이 따라준 미지근한 물을 두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인 후, 컵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을 바라보았다.“여보, 윤정이 죽었어. 알고 있지?”정군호는 초췌한 얼굴과 부은 눈을 감출 수 없었다. 거짓말할 수 없는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어젯밤에 알았어요. 셋째가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윤정이는 머리가 깨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더군요. 의사가 도착해서는 응급처치도 없이 사망 선고를 내렸대요.”이미 사망한 상태였기에 응급처치는 무의미했다. 의사들은 현장에 도착해 검사를 마친 후, 이윤정의 사망을 선고했고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옮겼다.“여보, 윤정이는 절대 사고사가 아니에요. 친엄마와 친오빠가 윤정이를 밀어 떨어뜨렸다고 확신해요. 윤정이는 자살할 아이가 아니에요.”이은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군호는 계속 말을 이었다.“여보, 윤정이와 20년 넘게 모녀로 지낸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윤정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세요.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채로 남겨질 수는 없어요. 당신이 윤정이를 원망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윤정이는 당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조차 한 적 없어요. 윤정이가 당신을 얼마나 공경했는지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윤정이는 계략에 빠졌어요. 점점 몰리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 거예요.”정군호는 분노를 터뜨렸다.“윤미 때문이에요, 다 이윤미 때문이에요! 이윤미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윤정이는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 거예요. 저와 윤정이를 계략에 빠뜨린 건 분명 이윤미예요. 친아버지인 나에게 애정도 없고 내가 윤정이를 귀하게
이은화는 이윤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이틀 후면 퇴원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정군호는 마치 부모를 잃은 사람처럼 온몸이 축 처져 있었다. 눈은 붉게 부어 있었고 오랜 시간 울었던 흔적이 역력했다.어제 그의 곁에 함께 있어 준 사람은 막내아들이었다.정일호는 한때 여동생이었던 이윤정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명지 빌리지로 달려가 그녀의 친오빠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이은화는 그런 부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깊은 눈빛 속에 어떤 감정이 스며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가주의 시선이 닿자 부자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극도로 긴장했다.정군호는 막내아들에게 눈짓으로 이 무거운 침묵을 깨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러나 정일호는 선뜻 나설 수 없었고 그는 오히려 아버지가 먼저 말하기를 바랐다.눈빛으로 주고받은 대화가 한참이나 이어지다, 결국 정일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는 어머니를 위해 조용히 의자를 가져와 뒤에 놓고는 나직이 말했다.“엄마, 앉으세요.”이은화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고 정일호는 서둘러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어머니에게 건네고는 곧장 과일을 씻으려 했다.“과일은 괜찮다. 그냥 네 아버지랑 할 얘기하고 곧 회사로 돌아가야 해.”이은화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과일을 씻으려던 막내아들을 불러 세웠다.“그럼 아버지랑 이야기하고 계세요. 저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요.”정일호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아들들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두려워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엄격했고 집이든 회사든 단 한마디로 결정을 내리는 법이었기에 그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반면 아버지는 온화한 사람이었고 아이들을 아꼈다. 무슨 부탁이든 가능한 한 들어주려 했고 때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어머니를 설득하다가 크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그렇게 형제들은 자연스레 아버지와 더 친해지게 되었다.하지만 여동생은 이제 세상을 떠났다.정일호의 마음속에서 이윤정은 언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