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날 바보 취급해?”정윤하가 큰 오빠에게 투덜거렸다.정혁주는 소지훈을 힐끔 쳐다보고 나서 또 딱 봐도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여동생을 쳐다보더니 더는 꼭 집어 말하지 않았다.아니, 그는 아까 분명히 꼭 집어 말했었다. 소지훈이 여동생에게 미리 예방 주사 놓는 거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자 하니 참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참말로 이 방면의 눈치라곤 고물만큼도 없는 여동생이었다.“오빠, 이따 지훈 씨와 겨룰 때, 사정을 좀 봐줘야 해. 너무 세게 손 쓰지 말고.”정윤하가 큰 오빠에게 신신당부했다. 이참에 화제도 자연스럽게 돌려졌다.“그냥 겨룸일 뿐이지 목숨 거는 일은 아니야. 오빠가 알아서 사정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마.”정혁주가 여동생을 위로했다. 이에 소지훈은 정혁주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일행 네 명은 드디어 정합 도장에 도착했다.저녁이지만 코치가 아직도 학생들이 무술을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은 네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동작을 멈추었다.“자, 다들 잠깐 쉬면서 자리 좀 비워 주세요. 내가 소 대표님과 겨뤄 보기로 했으니 고수 사이의 대결을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하자 학생들은 신속하게 한가운데 자리를 비워주었다.옆에서 소지훈을 훑어보던 코치가 정혁주에게 물었다.“정 코치님, 이 양반은 어느 도장에서 오셨습니까?” 오자마자 정혁주에게 도전한다는 말을 들은 그는 어이가 없었다. 이 도장에서 코치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 중 정혁주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소 대표님은 그 어느 도장의 사람도 아닙니다. 이분은 내 여동생의 친구입니다. 관성에서 왔는데 무술을 좀 할 줄 아니깐 나하고 몇 수 겨루면서 배우려고 합니다.”정혁주가 자신만만해서 말했다. 그는 자신이 나서면 쉽사리 소지훈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정혁주만 자신이 넘쳤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소지훈과 정혁주가 대결하면
“지훈 씨가 지면 제가 이 돈으로 모두에게 야식을 사드릴게요. 그러나 지훈 씨가 이기시면 모두 저에게 그 돈을 주셔야 하고요.”정윤하는 소지훈의 체면을 세워주고 싶었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꼭 정혁주에게 베팅할 것이다.소지훈이 멀리서 왔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실력이 어떤지 몰랐다. 그러나 소지훈이 점잖게 생기고 또 정혁주가 조금 전에 그를 소 대표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면 사람들은 소지훈이 아마 어느 회사의 대표일 것으로 추측했다.그런 사람이 무술을 좀 할 줄 안다고 해도 단지 호신술만 할 줄 알 뿐 정합 도장의 미래 주인을 이길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현장에 있던 몇몇 코치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현금을 꺼내어 정혁주에게 내걸었다.도장의 10대 중반의 학생들은 주머니에 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서로 돈을 조금씩 모아 이 도박에 참여했다.“저도 윤하 누나를 따라 소 대표님께 베팅할게요.”그중 김민호라고 불리는 학생이 손에 2만 원을 쥐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정윤하에게 그 돈을 건네며 말을 했다.“윤하 누나, 우리 함께 소 대표님한테 걸어요. 만약 소 대표님이 운 좋게 이기면 우리 두 사람 모두 부자 될 거에요. 하하...”모두가 정혁주에게 돈을 걸었기 때문에 그 판돈이 미성년자에게 있어서 매우 많은 편이었다.만약 소지훈이 이기면 김민호는 정윤하와 그 모든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 대박 날 것으로 생각했다.정윤하는 웃으며 김민호가 건네준 돈 2만 원을 건네받으며 웃으며 말했다.“민호야, 네 원금을 잃고 야식도 먹을 수 없는 것이 두렵지 않아? 그런데 지훈 씨가 이기면 우리 두 사람 이 돈을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 있어. 그때 되면 우리 같이 야식 먹자.”김민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가끔은 좀 의외적인 일도 일어나잖아요. 어쩌면 소 대표님이 다크호스일지도 모르잖아요.”김민호의 말을 들은 정윤하는 그를 툭 치며 칭찬했다.“배짱 있는 녀석이네. 이따가 지훈 씨가 나오시면 우리 두 사람 모두 지훈 씨에게 큰소리로 힘내라고 외치자
“하지만 소 대표님께서 멀리서 오셨으니 형도 어느 정도 봐 드려야 해.”정혁진은 정혁주와 마찬가지로 정혁주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비록 정윤하 쪽의 판돈 액수가 모두 18만 원밖에 안 되지만 없는 것보다 나았다.소지훈이 웃었다.“그럴 필요 없어요. 저와 형은 단지 겨뤄보고 싶을 뿐이지 필사적으로 싸우지는 않을 거예요. 형도 저를 봐줄 필요 없어요.”“윤하 씨, 두 사람은 판돈을 얼마나 걸었어요?”정윤하는 18만 원을 쥐고 있던 손을 펼치며 대답했다.“이것밖에 없어요. 저의 바지 주머니에 있는 모든 현금과 민호의 돈 2만 원밖에 없어요. 지훈 씨, 모든 실력을 발휘해서 우리 형을 이겨야 해요. 저랑 민호가 한 번 이기게 해주세요. 누군가가 매번 우리 오빠에게 도전할 때마다 다들 우리 오빠에게만 돈을 걸거든요. 외의적인 결과가 없어서 너무 재미없어요. 이번에 지훈 씨가 한번 우리 오빠를 이긴다면 지훈 씨가 출장하러 와 있는 동안 제가 매일 지훈 씨께 맛있는 요리를 해드릴게요.”“제가 살이 찌면 보기 싫은데...”“몇 킬로 정도는 티가 안 나요. 지훈 씨가 이렇게 키가 큰데 살이 찐다고 해도 티가 안 날 거예요. 지금 너무 말랐어요. 조금만 살이 쪄서 관성으로 돌아가시면 제가 장담하건대 많은 여자가 지훈 씨에게 반할걸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좋은 일인 것 같은데 제가 최선을 다해볼게요.”소지훈은 자신의 지갑을 꺼내 그 안의 현금을 전부 정혁진에게 건넸다.“형, 저도 큰 형한테 돈을 걸게요.”정혁진이 웃으면서 물었다.“소 대표님, 자신 없나 봐요?”정혁진은 웃고 있엇지만, 소지훈의 돈을 재빨리 가져갔다.대충 보아도 적어도 수십만 원은 되었다.소지훈이 대답했다.“저는 이 판돈이 너무 적다고 생각돼서 그래요. 윤하 씨가 이겨봤자 수십만 원일 텐데, 제가 몇만 원 보태주어 윤하 씨가 이기면 수입이 짭짤하잖아요.”순간 판돈이 수백만 원으로 되었다.정윤하는 너무 기뻐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소지훈은 정윤하의
소지훈은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김민호는 정윤하를 툭 치며 물었다.“누나, 소 대표님한테 베팅한 거, 정말 자신 있어요? 저는 여기에서 무술을 배운 지 6년이 되었지만, 아직 우리 정 코치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정윤하가 대답했다.“난 자신 없어. 단지 지훈 씨가 내 친구라서, 누구도 지훈 씨가 이기지 못할 것 같다고 여겨서 편들어주고 싶었어. 내가 가진 현금도 얼마 되지 않기에 져도 상관없어. 야식을 사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사면 되지 뭐.”김민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정윤하는 그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봐봐, 이미 내기는 끝낸 상태야.”김민호는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이 돈은 원래 엄마가 저에게 주신 일주일 치 야식비에 불과해요.”매일 밤 무술 연습이 끝나면 야식을 먹지 않으면 그뿐이었다.정윤하는 그를 위로했다.“실망하지 마. 어쩌면 지훈 씨가 이길 수도 있잖아. 내가 지훈 씨 실력을 본 적 있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고. 우리 큰오빠처럼 대단하실 거야. 어쩌면 우리 큰오빠보다 실력이 더 뛰어날지도 몰라. 이제 시작한다. 우리 함께 큰 소리로 지훈 씨를 위해 응원하자!”두 사람이 겨루기 시작하는 것을 본 김민호는 실망을 뒤로 한 채 큰소리로 소리쳤다.“소 대표님! 힘내세요! 제 야식비를 위해서라도 힘내셔야 해요. 정 코치님을 이기셔야 해요!”정윤하가 피식 웃기 시작했다.소지훈도 정혁주의 주먹을 피한 후 김민호에게 웃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야식을 반드시 드시게 할 테니까요.”정혁진은 소지훈이 침착하고 당황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이상하다고 느꼈다. 소지훈은 주먹이 날아올 때마다 가볍게 피했다.정혁진도 질세라 학생들에게 말했다.“왜 다들 벙어리처럼 이러고 있어? 얼른 힘내라고 외쳐. 윤하의 판돈이 많지 않지만 우리가 이기면 야식 한 끼 정도는 충분히 먹을 수 있어.”하여 그 십 대 애송이들은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정 코치님
현장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함께 김민호를 쳐다보았다.김민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저희 누나가 지금 남자 친구가 없어요. 소 대표님께서 정 코치님을 이기시면 저한테 중매 비용을 주시지 않아도 제가 누나와 소 대표님을 맺어드릴게요.”김민호의 눈에는 정윤하와 소지훈이 모두 잘 생겼고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자라면서 이토록 멋있는 남자를 처음 보았다.김민호는 소지훈이 그의 반 여학생들이 쫓아다니는 아이돌보다 더 멋있고 뭔가... 귀티가 난다고 생각했다.어쨌든 김민호는 소지훈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았다.물론 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겨서 정윤하와 함께 2000만 원이 넘는 돈을 가질 수 있다면 김민호는 소지훈이 더 좋을 것이다.정혁진이 웃었다.“이 녀석! 소 대표님, 힘내셔야겠어요. 민호 녀석이 소 대표님께서 이기면 무료로 윤하와 소 대표님을 맺어주겠다고 하네요.”“오빠, 민호가 헛소리하고 있는데 오빠까지 헛소리하면 어떡해!”정윤하는 두 사람이 너무 웃긴다고 생각했다.그는 김민호를 가볍게 걷어차면서 꾸지람했다.“너 이놈! 날 웃겨 죽일 작정이냐!”김민호는 또 히죽 웃었다.정혁주도 덩달아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제가 져드릴까요?”“형이 저한테 질 수도 있죠. 하지만 일부러 저에게 져줄 필요는 없어요. 제가 운 좋게 형을 이길 수도 있으니까요.”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정혁주는 소지훈의 자신감을 특히 좋아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십여 분 동안 겨루었다.정혁주도 소지훈을 더 이상 얕볼 수 없었다. 소지훈은 숨겨진 무술 고수였다.정혁주는 심지어 소지훈이 그를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의심까지 했다. 소지훈은 속전속결 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기면 소지훈이 가까스로 겨우 이겼다고 말하거나 정혁주가 양보했다고 말 할 수 있었다.이렇게 하면 정혁주가 너무 창피하지 않을 것이다.정혁주는 소지훈의 계획을 어느 정도 맞췄다.소지훈은 시간을 오래 끌어 가까스로 정혁주를 이기려고 한 의도를 현장
정혁진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코치도 소지훈이 틈을 타 간신히 이겼다는 것을 발견했다.아슬아슬하게 이겨도 이긴 것이다.정혁주가 일부러 소지훈에게 져 준 게 아니라 소지훈이 실력으로 정혁주를 이긴 것이다.소지훈은 손을 뻗어 정혁주를 바닥에서 끌어당긴 다음 정혁주에게 인사했다.“형, 양보해주셔서 고마워요.”정혁주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양보한 적 없어요. 소 대표님께서 제 약점을 발견하여 이기셨는데 제가 진 거죠.”소지훈은 여전히 겸손하게 말했다.현장은 조용했다.그리고 그때 두 사람의 외침이 들려왔다.“와!”김민호는 춤을 추다가 정윤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리쳤다.“누나! 누나! 우리가 이겼어요. 소 대표님께서 정 코치님을 이기셨어요. 우리 끝내 이겼어요. 그 2000만 원 모두 우리 거에요. 하하하... 저의 반년 야식비나 다름없어요!”다른 학생들은 펄쩍펄쩍 뛰는 김민호를 쳐다보았다. 너무 기뻐서 소리까지 치는 김민호를 보면서 그들은 너무 부러웠고 또 너무 질투가 났다.정윤하도 멍하니 있었다.그녀는 지난번 소지훈의 무술 실력을 본 적 있었다. 소지훈도 그가 무술을 할 줄 안다고 인정했다.그때 정윤하는 소지훈의 실력이 그녀보다 낮지 않으리라 추측했지만 소지훈이 정혁주를 정말로 이길 줄은 몰랐다. 비록 가까스로 이기긴 했지만, 정혁주를 이긴 것은 사실이었다.“누나! 누나!”돈을 따냈다는 생각에 김민호는 다시 정윤하를 툭 치며 웃었다.“누나, 빨리 가서 우리가 딴 돈을 가져와요.”김민호는 말하면서 소지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소지훈을 와락 껴안고 너무 기뻐 큰소리로 외쳤다.“소 대표님, 아니다. 형부, 정 코치님을 이기셨기 때문에 이젠 형부예요. 하하하... 형부, 정말 대단하세요. 정 코치님을 이기시다니! 제가 돈을 엄청 많이 벌었어요. 하하하!”소지훈은 기뻐하는 김민호를 밀쳐내며 웃으며 말했다.“큰형이 저를 양보해 준 덕분이에요. 제가 손님이라서 지면 제가 난처할까 봐요.”멍하니 있던 김민호가 이내 말했다.“정말요?
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내가 지면 진 거지. 핑계 같은 거 없어. 예전에도 너희가 늘 이겼으니 가끔은 지는 맛도 좀 느껴봐야지. 도박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지는 것이 두려우면 도박하지 마.”정혁진은 말문이 막혔다.정윤하는 한쪽으로 가서 앉아 돈을 세더니 돈의 절반을 김민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민호야, 이건 네 돈이야.”김민호는 그 돈을 받자마자 또 그중 절반을 다시 돌려주었다.“누나, 저는 단지 2만 원밖에 내지 않았어요. 똑같이 나누면 불공평해요. 저는 이만큼만 있으면 몇 달간 야식을 먹기에 충분해요.”“자, 얼른 가져가. 몰래 저축해 둬. 너의 새엄마 모르게 감추어둬.”김민호는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가 키우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이혼 후에는 더욱 과묵해졌다. 게다가 김민호에게도 별 관심이 없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버려졌다.그 뒤로 재혼하여 노처녀를 얻었고 김민호도 학교에 다녀야 했기에 아버지랑 계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계모는 김민호를 괴롭혔고 심지어 자주 계모에게 매를 맞았다.김민호가 반항하려고 해도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반항할 수 없었다.되려 더 호되게 얻어맞았다.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고 출장도 자주 가셨다. 게다가 아들에 대한 관심이 적은 탓으로 김민호가 후처에게 매를 맞는 줄은 전혀 몰랐다.김민호의 고모는 조카를 아끼고 사랑했기에 김민호 아버지에게 일러바쳤지만, 아버지가 출장을 가서 집을 비울 때면 계모가 더욱 심하게 김민호를 때렸다.하여 그 고모는 스스로 돈을 내서 김민호를 정합 도장에 등록해 주어 몸을 튼튼하게 할 겸 무술을 배우게 하여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올해까지 김민호는 6년째 정합 도장에서 무술을 배우고 있었다. 이제 김민호의 계모도 감히 김민호를 때리지 못했다.그러나 계모는 금전적으로 김민호를 푸대접했다. 김민호의 용돈은 이복동생만큼 많지 않아 수업이 끝난 후 김민호는 종종 종이 상자와 병을 주웠다. 그러다가 많이 모이면
“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을게요.”정윤하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돈을 넣은 다음 휴대전화를 꺼내 야식 가게에 전화를 걸어 정합 도장에 짜장면을 보내 달라고 주문했다.”“조금 있다가 짜장면을 먹으러 가요.”“저는 밤에 야식을 거의 먹지 않아요.”“드시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가끔씩 안 먹어요. 우리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밤에 야식을 안 먹으면 배가 고파서 잠이 잘 안 오거든요. 저는 집에 가서 많이 먹어요. 우리 엄마가 야식을 자주 해주시거든요.”정윤하는 전화해서 야식을 배달하라고 한 후 몸을 일으켜 소지훈에게 말을 건넸다.“우리 가요. 무술 수업에 방해하지 말고요.”소지훈이 정혁주와의 무술 싸움에서 이긴 사실에 학생들은 아직도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그러죠.”소지훈이 정윤하의 뒤를 따라갔고 정윤하는 두 오빠에게 말했다.“오빠들, 제가 지훈 씨와 함께 나가서 산책 좀 할게. 이따가 집에 가서도 우리 기다리지 마.”정혁주가 대답했다.“알았어. 소 대표님 모시고 쇼핑도 하면서 생활용품도 좀 사.”정윤하는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소지훈과 함께 정합 도장을 나섰다.도장에서 나오며 정윤하는 소지훈에게 부러워하면서 물었다.“지훈 씨, 누구한테 무술을 배웠어요? 실력이 너무 뛰어나세요. 적어도 20년은 배웠죠?”정윤하의 눈빛을 본 소지훈은 자신이 정혁주를 이기기로 한 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았다.정윤하는 강자를 좋아했다.“20년 넘게 배워서 사부님들도 많아요. 저의 아버지께서 저에게 무술을 배우라고 요구했거든요. 매번 제가 잘 못 배우면 아버지는 저를 집에 보내지 않으셔서 제가 엄청나게 노력했거든요. 그리고 제가 모시는 사부님들 제자 중에서도 제가 실력이 가장 뛰어난 학생으로 되었거든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그렇군요.”“제가 큰형을 이겨서 너무 놀라우세요?”“좀 뜻밖이에요.”“사실 정말 요행이거든요. 저도 윤하 씨가 그 판돈을 따내게 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웠어요. 큰형은 아마 절반의 힘도 안 썼을
전호영은 미래의 처남을 노려보며 꾸지람했다.“어쩐지 고빈 씨와 제가 이토록 대화가 잘 통하더라니, 우리 둘 다 같은 사람이었네요. 파렴치하고 뻔뻔하잖아요.”고빈은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었다.전호영은 고빈을 그대로 두고 떠나버렸다.고씨 그룹이 앞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누가 관리할지는 고씨 가문의 일이다. 전호영은 지금 고씨 가문의 사위가 아니지만, 설령 고씨 가문의 사위가 되더라도 이런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다.전호영은 다른 사람들이 그가 고씨 가문의 돈 때문에 장가왔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사실 전호영은 고씨 가문의 재산에 일도 관심 없는 사람이다. 고씨 가문은 강성에서 재력 순위가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재벌가이지만 전씨 그룹보다는 여전히 차이가 났다.고현이 일을 마치자마자 전호영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현이 씨, 일 끝났죠? 가요, 밥 먹으러 가요.”전호영은 성큼성큼 다가와 웃으며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알았다고 대답하면서 처리했던 서류들을 가지런히 쌓아둔 후 인터폰을 눌러 비서에게 들어오라고 알렸다. 비서는 곧 그 서류들을 가져갔고 고현은 그제야 일어나서 의자에서 일어났다.전호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고현이 바로 거절했다.“회사에서 제 손을 잡지 마세요.”“우리 두 사람이 서로 사귀는 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손 잡는 게 뭐 어때서요?”전호영은 투덜댔지만, 고현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걸어갔다.10분 후.차 여러 대가 고씨 그룹을 떠났다.공항에서 돌아온 이은화는 전호영 일행보다 몇 분 일찍 하루 호텔에 도착했다.이은화는 차에서 몇 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내렸다.“대표님.”경호원들은 이은화 뒤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은화가 왜 목적지를 바꾸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이은화는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두 사람은 나를 따라 들어가고 다른
고현은 아직 여자의 신분을 회복할 계획이 없었다.“아직 화려한 프러포즈는 하지 않았어요.”전호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고빈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저는 호영 씨가 청혼한 줄 알았잖아요. 이렇게 큰일을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았나 했는데 제대로 청혼하지 않았군요. 그럼 언제쯤 우리 형한테 청혼할 거예요? 꼭 성대하게 청혼해야 해요. 사람 많은 곳을 골라서 프러포즈도 하세요. 그러면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호영 씨한테 시집가라고 소리칠지도 모르니까요.”전호영이 공개적으로 화려하게 청혼하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분명 많은 사람이 구경하러 모여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현을 전호영에게 시집가라고 응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오히려 전호영을 욕하거나 심지어 달걀을 뿌리는 사람들, 그리고 전호영에게 두 사람이 국내에서 합법적인 부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나타날 것이다.고현이 여자의 신분을 회복하지 않는 한 전호영의 청혼은 모두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전호영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현이 씨가 저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저는 분명 성대하게 그녀에게 청혼할 거예요. 그리고 화려한 약혼식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릴 거고요. 저는 모든 것들을 전부 고현 씨에게 주어 그녀를 조금도 섭섭하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저는 호영 씨를 믿어요! 호영 씨는 정말 우리 누나한테 진심이네요. 그런데 우리 누나가 호영 씨에 대한 마음은 그렇게 깊지 못한 것 같은데 아직도 더 노력하셔야겠네요.”고빈은 싱글벙글 웃으며 전호영을 격려했다.전호영이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저는 늘 노력하고 있어요. 내년에 고현 씨가 저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게 된다 해도 저는 아주 기쁜걸요.”고빈은 또 전호영을 위로했다.“사실 호영 씨는 너무 대단하세요. 호영 씨와 저의 누나가 겨우 몇 개월밖에 지내지 못했는데도 이미 우리 누나의 마음을 움직였잖아요. 우리 누나가 고씨 그룹을 맡고 나서 많은 젊은 인재들을 만났지만, 누구도 우리 누나의 마음
“그러면 고현 씨도 저에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있잖아요. 제 이마에 피가 나도 저는 상관없어요. 제가 만약 입원하게 되면 현이 씨가 저를 책임지셔야 할 테니까요.”고현이 말을 이었다.“양아치 짓 좀 그만 해요!”전호영은 헤헤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현이 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안 보여요?”“네네네... 보이네요!”전호영은 웃기만 했다.“제 맞은편에 앉지 말고 멀리 앉으세요. 저는 일해야 해요.”고현은 자기 맞은편에 앉은 전호영을 내쫓았지만, 그 남자는 수다쟁이여서 쉽게 화제를 찾아 그녀를 끌어들였다. 설령 전호영이 조용히 앉아 있다고 해도 여전히 고현에게 방해될 것이다.전호영은 항상 희귀한 보물을 보듯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 때문이다..“소리 안 낼게요. 현이 씨 업무를 방해 안 할게요.”“호영 씨가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저를 방해하는 거나 다름없거든요.”전호영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물었다.“사실 현이 씨도 저를 사랑하죠? 얼굴이 두껍지 못해서 승인하기 싫은 거죠? 보세요. 제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데 현이 씨 기분과 업무에 영향 줄 수 있잖아요. 현이 씨는 분명 제가 매우 신경이 쓰이고 저의 행동을 항상 주시하고 있는걸요.”고현은 그를 노려보면서 또 경고했다.“멀리 가지 않으면 제가 전화를 걸어 경비원에게 호영 씨를 내쫓으라고 할 거예요. 앞으로 절대로 고씨 그룹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거예요!”“너무 가혹한 거 아니에요? 멀리 꺼질게요. 얼른 업무나 처리해요. 저는 고빈 씨를 찾아 허풍 좀 떨어야겠어요. 20분 뒤에 바로 데리러 올게요.”전호영은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던 전호영은 다시 되돌아오더니 책상을 에돌아 고현에게 가까이 가더니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고현은 발로 걷어 차버리고 싶었지만, 전호영은 이미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가버렸다.고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눈빛으로 전호영을 매섭게 쏘아보았다.전호영이 대표 사무실을 떠나자 고현은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해
“호영 씨, 또 저를 몰래 찍으면 휴대전화를 부숴버릴 거예요.”문득 고현이 경고하는 말이 들려왔다.전호영 고현을 찍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현이 씨, 왜 열심히 일하지 않으세요? 제가 몰래 사진을 찍는 것조차 알고 있다니. 혹시 현이 씨도 제가 신경 쓰이고 저를 훔쳐보는 거 아니에요?”고현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호영 씨가 저보다 더 잘생겼어요? 제가 왜 저보다 못생긴 호영 씨를 훔쳐보겠어요?”전호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전호영은 남자 중에서 잘생긴 편이지만, 남자 분장한 고현에 비하면 그녀만큼 잘생기지는 않았다.“만약 현이 씨가 여성 옷으로 갈아입고 긴 머리를 기르면 그야말로 경국지색일걸요. 아마 너무 아름다워서 제가 눈길조차 떼지 못할 거예요.”고현이 말을 잇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가 말을 꺼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더니 몇 분 동안 앉아 있다가 바로 일어나서 그녀의 책상 앞에 앉으며 물었다.“뭐 드실래요? 커피 마실래요?”“지금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와요.”고현은 일반적으로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곤 했다. 그러나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점심에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업무를 처리했다.“제 사무실에는 간식이 없어요.”고현이 한마디 덧붙였다.그녀는 어렸을 때 간식을 무척 좋아했지만, 어른이 되어 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주변의 성공한 남자들이 간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뒤로 더 남자답게 살기 위해 간식 먹는 습관을 끊어버렸다.“제가 사드린 간식은요?”“고빈에게 줬어요.”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고빈 씨는 남자인데도 간식을 좋아해요? 왜 고현 씨에게 남겨주지도 않고...”고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빈은 아마 그 간식들을 회사 직원들에게 나눠주거나 그의 아름다운 여성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가능성이 컸다.고빈은 모든 여성 지인들에게 무척 잘해주었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들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녀들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며 딴마음
“아직도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이 남았어요? 저를 믿는다면 제가 도와드릴까요?”전호영이 물었다.고현이 대답했다.“필요 없어요. 이 대표님께서 강성으로 돌아오셨다고요? 강성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떠나면 40여 분 걸릴 것 같은데.”전호영은 손을 들어 시간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30분만 더 일하고 호텔로 가면 시간이 딱 맞겠네요.”고현 일행이 호텔에 도착할 때쯤이면 마침 식사 시간이라 이은화는 그들이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것으로 생각할 뿐 전호영이 계획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갈래요?”전호영이 고현에게 다시 물었다.고현은 전호영을 노려보더니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다 말해줬는데 제가 안 보러 갈 수 있겠어요? 그렇게 재미있는 볼거리는 당연히 봐야죠. 제가 원래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인데, 호영 씨한테서 나쁜 짓만 배우네요.”고현은 다시 전호영을 노려보더니 투덜댔다.결국 고현은 전호영과 함께 구경하러 가기로 약속했다.전호영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왜 그렇게 진지하게 살아요? 인생은 겨우 수십 년밖에 없는데 가볍고 즐겁게 생활해야죠. 정남 씨처럼 이런 볼거리가 있으면 가장 먼저 나서서 보잖아요. 정남 씨는 마음가짐이 좋아서 분명 100세까지 살 수 있을 거예요.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정남 씨는 항상 태연한 자세로 임할 텐데 현이 씨는 너무 엄숙해요.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이 씨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대범하게 인정하세요. 그래야 앞으로의 삶이 더 편안해질걸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제가 몇 마디 좀 했다고 또 저와 인생의 도리를 가르치는 거예요? 빨리 저리로 가서 앉아요. 제 일을 방해하지 마시고.”전호영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알겠어요. 제가 저쪽에 가서 앉을 테니 일단 먼저 일 보세요.”전호영은 몸을 돌려 사무실 입구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혹은 저처럼 현이 씨가 대답도 채 하기 전에 문을 열고 들어온
정군호는 말하다가 결국 불만을 토로했다.이은화는 짜증스럽게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돌아가면 그때 다시 말하자.”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이은화는 즉시 자신의 비서에게 정군호가 지금 어디에서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이은화는 먼저 집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집사는 정군호가 분명히 집에 없다고 말했다.정군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핸드폰에 배터리가 없으면 1층에 충전기가 있기 때문에 정군호가 굳이 2층에서 핸드폰을 충전할 필요가 없다.요즘 사람들은 단 1분도 휴대전화를 떠날 수 없는데...비서가 곧 이은화에게 답장했다.[지금 하루 호텔에 있어요.]하루 호텔은 전씨 그룹이 강성에서 운영하는 호텔로 맞은편에 고성 호텔과 자주 경쟁을 치르는 호텔이었고 강성의 최고급 호텔이었다.이은화는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고 그녀의 안색도 따라서 점점 어두워졌다.하루 호텔은 소비가 높기 때문에 정군호의 능력으로 그런 고급 호텔에서 소비할 능력이 없을 것이다.지금 정군호가 하루 호텔에 묵고 있는 돈은 아마는 이윤정이 준 돈이 아니면 분명 정일범 형제가 준 돈일 것이다.이게 무슨 일인가!이은화가 집에 없을 때 전부 그녀에게 미안한 짓들만 벌이고 있었다!이은화는 차갑게 택시기사에게 말했다.“기사님, 하루 호텔로 가주세요. 요금을 두 배로 드리겠습니다.”택시기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사실 하루 호텔로 가는 것이 이씨 그룹으로 가는 거리보다 더 가깝거든요.”이은화는 아무 말도 하지 잇지 않았다.그와 동시에 전호영은 또 고씨 그룹으로 달려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전호영은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현은 고개를 들어 전호영은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일을 했다.“고현 씨, 바쁘세요? 일단 일은 내려놓고 저랑 연극 보러 가요. 엄청 재미있는 연극이요.”고현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시간이 없어요.”그러나 고현은 멈칫하더니 되물었다.“무슨 볼거
이은화가 대답했다.“알았어. 내가 집에 없는 동안 윤미 뜻대로 움직여. 누가 감히 윤미에게 무례하게 굴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거나 다름없는 거라고 전해.”집사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급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그럼 먼저 끊을게.”이은화는 전화를 끊은 후 공항에서 나왔다.그녀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사람들에게 공항에 마중 나오라고 알리지도 않았다.이은화가 일찍 돌아온 이유는 바로 자신이 집에 없는 동안 이윤미의 일 처리 능력이 어떤지 보기 위해서였다.하여 사람들에게 공항으로 그녀를 데리러 오라고 미리 알리지 않았다.비행기에서 내린 이은화 일행은 공항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러 이씨 그룹 주소를 알려주었다.이은화는 집에 가지 않고 회사로 가려고 했다.택시에 앉은 지 십여 분 정도 지나서야 이은화는 정군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군호는 한참 지난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뭐 하고 있었어? 왜 이렇게 늦게 받아?”이은화가 남편에게 물었다.정군호는 헐떡거리며 대답했다.“집 2층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전화 소리를 듣고 빨리 뛰어 올라왔거든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계단 좀 뛰어올랐다고 숨이 차네요.”이은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당신이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린 이미 일흔이 넘은 사람이야.”정군호가 물었다.“여보, 언제 와요? 결혼식에 가는 것 뿐인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예요? 거의 한 달 돼 가는데... 저를 데려가지도 않고.”“난 결혼식에 참석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해야 하거든. 따라와서 뭐 하게? 아직도 볼 일이 좀 있어서 며칠 후에 집으로 돌아갈 거야. 집안일은 당신이 좀 신경 써줘. 윤미가 아직 어려서 다들 윤미를 잘 따르지 않으니까.”“알았어요. 윤미가... 여보, 내가 우리 딸한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윤미는 정말 우리와 한마음이 아닌 것 같아. 어쨌든 우리와 감정이 없으니까 그런... 휴, 그만 말해요. 더 말하면 사람들이 또 우리 부부가 윤정이를 더 예뻐한다고 수
몇 시간 후.강성.비행기가 땅에 무사히 착륙했다.이은화는 휴대전화를 꺼내 비행 모드를 껐다.곧이어 이은화의 휴대전화에 낯선 메시지가 도착했다.[당신 남편이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침대에서는 꽤 대단하더군요. 당신은 군호 씨를 더 만족시킬 수 있기나 하겠어요?]그 메시지를 본 이은화의 얼굴은 새까맣게 변했다.이은화는 그 나이에 진작 잠자리에 관한 일을 중히 여기지 않았다.이은화는 바빠서 매일 돌아오면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남편과 그런 일에 대해 논의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이은화는 정군호와 스킨십하지 않은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정군호가 나이가 들었지만, 마음이 늙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용돈이 적지만, 집에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방 아주머니와 한마디만 하면 이내 먹을 수 있었다.하여 보양식을 그렇게 많이 먹은 덕에 신체가 매우 좋았다.젊었을 적 정군호가 바람을 피우려고 했을 때 그는 이은화에게 호되게 혼난 뒤로 겉으로만 얌전한 척했다. 적어도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군호의 몸은 정말 바람을 피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은 이은화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은화는그녀가 관성에 간 지 보름밖에 안 됐는데 정군호의 정신과 몸이 모두 바람을 피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은화는 그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집사가 전화를 받았다.이은화가 물었다.“군호 씨는 집에 안 계셔?”“안 계세요. 왜 어르신께 직접 전화해보지 않으셨어요?”이은화가 관성에 가서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가한 뒤로 보름이란 시간이 지났다.정군호는 이은화가 떠난 지 세 번째 날부터 저녁마다 늦게 들어왔고 매일 외출하기 전에 더욱 젊고 멋지게 꾸미곤 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집사는 이런 것들을 유심히 보더니 정군호에게 말을 빙빙 돌리며 이은화에게 절대로 미안한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정군호는 친구들과 모임만 할
“정현숙이 얼마 전에 관성을 떠났어.”전태윤은 운전하면서 말했다.“하지만 그 사람이 데리고 온 경호원 중 한 사람이 바뀐 거 같아.”“한 사람 바뀌었다고요? 내 기억 속에 그 사람은 여러 명의 경호원을 달고 온 거 같은데요.”“맞아, 그 사람이 여러 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왔는데, 강성에 돌아갈 때는 경호원의 인수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중 한 사람은 낯선 얼굴이었어. 한 사람을 잘랐든지, 아니면 관성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일부러 남겼을 수도 있어.”전태윤이 사람을 붙여서 정현숙을 감시하니 정현숙도 당연히 사람을 남겨서 그들을 감시할 것이었다.하예정은 남편의 옆얼굴을 지켜보았다.전태윤도 그녀를 흘끔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앞을 보면서 운전했다. 아내를 태운 차를 운전할 시에 그는 한눈도 감히 팔지 못했다.“여보, 자기 눈썰미는 진짜 장난이 아니네요.”하예정이 계속해서 남편을 칭찬했다.“당신이 정현숙을 몇 번 봤다고, 그 여자가 달고 다니는 경호원의 얼굴까지 다 기억해요?”그녀는 정현숙의 얼굴과 달고 다니는 경호원이 몇 명인가만 기억했을 뿐, 그 경호원들의 얼굴이 어떻게 생긴 것까지는 정말 기억하지 못했다.“난 그냥 기억력이 뛰어날 뿐이야.”“나도 기억력이 좋아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당신 임신했잖아. 다들 임신 한번 하면 뒤 3년은 머리가 둔해진다고 하지 않았어? 당신 지금 기억력이 무조건 나보다 못해.”“나는 하나도 둔하지 않거든요. 그럼 우리 앞으로 정현숙을 계속 감시해도 되나요? 그 사람이 진짜 경호원을 바꾸기까지 하면서 관성에 남겨뒀다는 것은 이미 무슨 기미를 알아채고 우리가 무슨 단서라도 찾아낼까 봐 두려워하는 거 같은데요.”“우리 외할머니도 십중팔구 그 사람이 해쳤어요. 그 자리에 오르려고 친형제마저 깡그리 해쳤어요.”하예정은 자신과 언니가 십여 년 동안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왔는데 언니에 대한 감정이 엄마에 대한 감정과 같을 정도로 깊었기에 자신더러 언니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거로 생각했다.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