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이 처음 노동명을 밀고 내려가서 산책할 때 노동명은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가 걸을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병원은 죽음에 익숙한 곳이다.죽음과 비교하면 휠체어를 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예진 씨, 여기요.”윤미라는 하예진이 병원에서 나오는 걸 보고 멈춰서서 하예진을 향해 손을 저었다.노동명은 몇백억을 빚지고도 갚지 않은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조금 전 하예진이 임수찬과 얘기할 때 노동명은 서로 인사하는 호칭을 듣고 하예진 전남편의 식구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주씨 가문의 사람은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하예진은 밖에서도 자주 주씨 집안 식구들을 만나게 되거나 그들이 하루 토스트 가게까지 가서 치근거렸다.결혼한 지 반년이나 넘었는데 주씨 가문은 정말이지 사람을 참 귀찮게 했했다..하예진은 주형인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지 주씨 집안은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 같았다.하예진이 아직 살이 빠지지 않았을 때도 노동명은 하예진을 싫어한 적이 없었다.다만 하예진을 보며 건강을 위해 살은 좀 빼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예진이 노씨 그룹에 출근했을 때 노동명은 오지랖 넓게 하예진에게 매일 몇 바퀴씩 회사에서 뛰도록 요구했다.절대 하예진을 싫어서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살을 뺀 하예진은 더 이뻐졌고 그런 그녀를 노동명이 더욱 싫어 할 리가 없었다.노동명은 자신이 언제 하예진을 좋아했는지도 몰랐다노동명은 하예진이 뚱뚱하든 말랐든 간에 줄곧 그녀를 좋아했다.하예진이 걸어왔다.“전 남편의 형부가 예진 씨한테 뭐라고 하던가요?”노동명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오므릴 뿐 먼저 물어볼 리가 없었다.대신 윤미라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주씨 집안 일이 생겼대요.”하예진이 답했다.“서현주가 주형인 남매를 찔렀는데 주형인은 부상 상태가 너무 엄중해 응급실에서 구급하는
하예진은 이내 대답했다.“사모님, 저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모님 말처럼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우빈의 친아빠인데 만약 형인 씨가 깨어나지 못하면 마지막 길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고 싶어요. 사모님, 동명 씨 부탁드릴게요.”“얼른 가봐요. 동명은 내가 돌볼게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떠났다.하예진이 떠나자 윤미라는 아들을 천천히 아들을 밀며 말했다.“주형인을 봐봐. 이게 바로 바람 피운 대가야. 동명아, 이후에 네가 결혼해서 얘기도 낳게 된다면 꼭 너의 혼인과 가정에 충실해야 해.”“혼인과 가정에 충실할 자신이 없다면 엄마는 네가 평생 혼자 살아도 지지해줄 거야. 네가 다른 집안의 딸을 불행하게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엄마는 딸이 없지만 나도 여자이기 때문에 그 마음 잘 알고 있어. 누구도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사랑하지 않게 되면 이혼하게 되고 또 싱글로 돌아오게 된다면 두 사람 사이 모든 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되지. 자유를 얻었지만 과거 제일 사랑했던 부부는 제일 먼 사이로 되는 거지.”노동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엄마, 난 평생 혼자 살 거야. 엄마 아들이 주형인처럼 그런 꼴 당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넌 회복 될 거야. 다리가 나아지면 하예진과 결혼도 하고 우빈의 새아빠도 되어야지. 엄마는 이제 반대 안 할 거야.”“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네가 행복하다면 엄마는 간섭 안 할 거야. 하예진이랑 결혼하고 평범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네가 원하는 거잖아.”“우빈는 너무 귀여운 아이야. 엄마도 이젠 우빈의 할머니가 되는 것이 너무 좋아.”노동명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멀쩡할 때 엄마는 저와 연 끊고 살겠다고 하시면서 우리 둘의 혼인을 반대하셨어요.”“하지만 제가 지금 혼자 서 있기도 힘든 폐인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하예진을 좋아해도 된다고 결혼해라 고요?”“예진
하예진은 위로의 말도 내뱉지 못했다.하예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김은희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작은 티슈 한 봉지를 꺼내 김은희에게 건네는 일뿐이었다.주경진의 눈도 빨갛게 달아올라 시도 때도 없이 등을 돌려 눈물을 몰래 닦았다.주경진 부부에게는 아들 주형인 하나뿐일 텐데 만약 아들에게 뜻밖의 변고가 생긴다면 그들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김은희는 울음을 그쳤다.그러나 김은희는 감정에 북받쳐 여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하예진은 걱정하는 눈빛으로 주경진에게 말했다“형인 씨 어떻게 됐어요?”주경진은 목이 메어 겨우겨우 대답했다.“아직도 응급실에서 구조하고 있어. 다른 의사들만 계속 수술실로 드나들 뿐 주치의는 나오지 않으셨어. 피를 많이 흘려 혈낭도 한 봉지씩 들어가고 있는데 너무 걱정돼...”아들의 참혹한 과거를 되돌아보더니 주경진은 또 눈물을 흘렸다.주경진은 서현주가 자기 아들을 죽도록 찔러 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들이 인기척을 듣고 급히 여분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주형인은 그 자리에서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주서인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서현주에게 칼에 찔렸던 것이다.“참 독한 년이다. 너무 지독해!”주형인이 서현주한테 무척 잘해 주었는데도 그녀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이해가 안 갔다.그 당시 서현주가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올 때 생긴 일이다.서현주는 다리가 저려서 조심하지 않아 넘어졌는데 아이가 뱃속에서 떠난 것이다.주형인은 모두가 서현주를 욕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고 심지어 나서서 편들어 주면서 절대 이혼하지 않았다.주경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주경진의 생각은 하예진과 같았다.서현주가 사람을 죽이려면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은 서주인 그들일 텐데 왜 그녀가 주형인을 칼로 찌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덩치 큰 남자가 어떻게 서현주에게 역살당할 수 있을지도 이해하지 못했다.비극이 발생했을 때 주형인 부부는 방에서
주경진에게 욕설의 퍼부은 뒤 김은희는 눈물을 글썽이며 하예진에게 말했다.“예진아, 우리 우빈을 데리고 와줘. 우빈이는 우리 형인의 유일한 핏줄이잖아. 자기 아들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면 우리 형인이가 더 잘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몰라.”하예진은 또 김은희를 위로했다.“우빈이가 예정이과 소현이 따라 고향 집으로 돌아가 채소 사고 있을 거예요. 제가 예정이에게 전화해서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볼게요.”하예진은 전 시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주형인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우빈은 분명 그의 아들이고 병문안 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하예진과 주형인은 비록 이혼했지만 하예진은 아들 앞에서 주형인을 나쁘게 말한 적 없었고 주형인더러 아빠를 원망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더욱 없었다.주형인도 우빈의 양육비를 책임졌기에 아빠 노릇을 어느 정도 한 셈이다.김은희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김은희는 자꾸 아들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아들이 이겨내기를 기도했다.하예진은 이내 자리를 떠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바로 언니의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야?”이쯤 때면 언니가 병원에서 못된 노 대표를 돌보고 있을 시간인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하예정도 걱정스레 물었다. “우리 우빈이 너와 같이 있어?”“나는 소현 언니와 같이 고향으로 왔어. 여정이 너무 길어 우빈이는 태윤 씨 따라 회사에 갔어.”“알았어. 내가 제부에게 전화해볼게.”“언니, 노 대표가 우빈이를 보고 싶어 해서 그러는 거야?”하혜정은 노동명이 어린 녀석을 보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주우빈은 며칠에 한 번씩 하예진을 따라 병원에 있는 노동명을 찾아가곤 했다.노동명은 어른들에게는 무뚝뚝하지만 주빈에게는 아주 마음이 약했다.주우빈이 울음만 터지면 노동명은 마음이 약해져서 주우빈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 들어줬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답했다.“예정아, 주형인 씨 남매가 사고를 당했어.
”주형인 보호자분!”“선생님, 우리가 형인의 아빠와 엄마예요. 우리 아들의 상황은 어떤가요?”주경진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키는 김은희를 부축하며 다급하게 물었다.의사는 이내 답했다.“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너무 엄중한 탓에 아직도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일단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으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깨어 날 수 있을지는 환자의 의지에 달렸어요.”김은희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서 힘이 풀렸다.주경진과 하예진이 함께 부축한 덕에 김은희는 넘어지지 않았다.“의사 선생님,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형인이는 아직도 젊은데...꼭 살려주세요.”김은희는 의사 가운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아주머니.”하예진은 김은희의 손을 잡아당겨 의사에게 사과하고는 고맙다고 인사했다.의사는 보호자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말했다.“우리도 최선을 다했어요. 환자분이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주형인이 너무 많이 다쳐 의사가 노력했는데도 숨만 간신히 붙어있다는 말씀이다.주형인은 여전히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고 중환자실에 옮겨질 것이고 살아날 수 있을지는 주형인 의지에 달린 것이다.한 마디로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하예진은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인사드렸다.주경진은 아내를 달래며 위로했다.“여보, 그만 울어. 우리 형인이 아직 살아있잖아. 그만 울어.”김은희는 주경진에 의해 부축되어 의자에 다시 앉았다.김은희는 하예진에게서 휴지를 건네받아 눈물을 닦은 후 뭐가 생각났는지 하예진에게 급히 말했다.“예진아, 예정 씨에게 전화해. 우빈이를 데려올 필요 없다고 말이야. 형인이는 살아있고 중환자실에 들어갔기에 보호자가 들어갈 수도 없을 거야. 우빈이가 여기 와서 아빠도 못 볼 텐데 오지 말라고 해.”“병원이 좋은 곳도 아니고 게다가 애가 아직 너무 어려.”아들이 살아날 수 있을지 김은희는 몹시 걱정되었다.주형인이 없으면 주경진
서현주는 경찰에 잡혀가 감옥에 갈 예정이었지만 임신했기 때문에 옥외집행을 받았다.지금은 애가 없어졌고 게다가 칼로 사람을 상하게 했으니 죄에 죄를 더한 것이다.만약 주형인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죽는다면 다시 재판받아 사형은 금하지 못할 것이다.하예진은 입원 부에 가서 노동명 모자를 찾으려 했는데 마침 윤미라의 전화를 받고 그들이 병실로 돌아온 것을 알았다.하예진은 바로 노동명의 병실로 향했다.“예진 씨,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우리 넷째 도련님이 또 화를 내시고 물건을 함부로 부수고 있어요. 만져지는 물건은 죄다 부쉈어요.”하예진이 돌아 온 것을 보자 노씨 가문의 경호원은 그녀에게 노동명이 화내고 있다고 일렀다.“동명 씨가 왜 또 화내는 건데요?”하예진은 문을 열면서 물었다.경호원은 답했다.“저희도 잘 몰라요. 사모님이 도련님을 밀고 돌아온 지 몇 분 만에 저렇게 집으로 가겠다고 떠들고 있어요. 사모님께서 위로해도 쓸모없었어요.”하예진은 이미 병실에 걸어 들어갔다.“퇴원할 거야. 집에 갈 거야! 이제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일분도 여기 있기 싫어!”노동명은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손으로 휠체어의 바퀴를 움직일 수 있으니 잡히는 대로 죄다 부숴버렸다.그리고 지금 병실은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의사와 간호사는 노동명에게 진정하라고 권하고 있었다.윤미라는 이 광경을 보면서 조급해하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다.노진규는 습관 되었다는 듯이 차분히 땅에 쓰레기들을 청소하고 있었다.“동명 씨, 아직 퇴원할 수 없어요. 조금만 더 버티면 퇴원할 수 있어요. 보세요. 지금 많이 좋아졌는걸요. 더는...”“어디가 나아졌어? 말해봐! 혼자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에만 앉아 다니는 것이 좋아진 거야? 여기서 누워있을 바에는 집에 가서 누워있는 것이 나아!”사실 노동명은 기분이 안 좋았다.주형인 지금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 놓였다.하예진이 전남편이자 애 아빠인 주형인을 보러 간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도
노동명은 바로 하예진에게 퇴원 절차를 밟으라고 재촉했다.의사는 맘속으로 노동명을 원망했다.‘매일 이렇게 소란을 피워 우리 의사와 간호사들도 너무 피곤해. 조기 퇴원은 너에게 영향도 크지 않으니 퇴원을 원하면 제발 퇴원해!’노씨 가문은 돈도 많아 개인 주치의도 있다.노동명이 퇴원한 후에도 노씨 가문에서는 전문의를 청해 노동명을 돌보게 할 것이다.“의사 선생님, 제 아들이 정말 퇴원해도 될까요?”윤미라는 아들이 퇴원하면 의외의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환자분께서 퇴원을 고집하시면 퇴원하셔도 좋아요.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하면 기분도 좋아져 더 빨리 나아질 수도 있어요.”의사의 동의를 받은 윤미라는 경호원을 불러 병실을 정리하라고 지시했고 윤미라 부부는 퇴원 수속 밟으러 나섰다.화가 난 노동명은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하예진에게 맡겼다.드디어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노동명은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고 소란도 피우지 않았다.노동명은 병실 홀에 앉아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며 부모님이 퇴원 절차를 밟아 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의 옆에 앉아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해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노동명은 느닷없이 물었다.“전 남편이 살아계셔?”“살아있어요.”노동명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팔자가 정말 세군.”하예진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의사 선생님께서는 형인 씨가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중환자실로 옮겨져 깨어날 수 있을지는 본인 의지에 달렸다고 하셨어요.”“웬일이래? 서로 무척이나 사랑한다더니. 칼을 들고 사람을 찌르다니...”노동명은 비웃으며 말했다.노동명은 주형인과 하예진의 이혼 과정을 모두 목격했다.주형인과 서주인은 관계가 매우 좋았고 심지어 하예진이 입원했을 때 그녀를 보러 올 때마저도 서현주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였다.주형인 친아들의 생명이 위험할 때조차도 서현주를 보호하려 한 것을 보면 진심이었던 모양이다.“몰라요. 갑자기
전태윤은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제야 노동명에게 말을 건넸다.“축하해, 동명아. 내가 마침 때맞춰 왔네. 마침 널 집에 데려다주면 되겠어.”노동명은 답했다.“집에 누워있는 게 더 편해. 이젠 링거도 맞지 않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서 누워 있을 거야. 집에 가면 기분도 많이 나아질 것 같아.”가능하다면 노동명은 평생 병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아저씨, 다 나아진 거예요?”주우빈은 노동명 곁으로 다가가서 걱정스레 물었다.“아저씨는 오늘 퇴원할 거야.”노동명은 주우빈을 끌어당기며 안아 올려 자신의 허벅지에 앉히려 했다그러나 주우빈이 발버둥 치며 앉지 않으려 했다.주우빈은 꼬마 어른처럼 말했다.“ 저 아저씨 다리에 앉지 않을래요. 아프시잖아요.”하예진은 노동명의 다리를 다쳐 아프니 당분간 노동명의 다리에 안지 말라고 당부한 바 있다.주우빈은 엄마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다.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우리 우빈이가 가만히 앉아 기만 하면 괜찮을 거야. 감당할 수 있어.”사고 당시 통증에 비하면 이만한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노동명은 다시 주우빈을 안아 그의 다리에 앉혔다.주우빈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내내 노 동명에게 물었다.“아저씨, 다리가 아파요? 아프면 우빈이 내려갈게요.”“알았어.”철이 든 주우빈을 보고 노동명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같이 있는 내내 웃고 있었다.전태윤은 한쪽에 앉아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하예진은 옆에서 노동명의 물건을 정리해 주었다.가끔 노동명은 하예진이 짐 정리하는 모습을 힐끗 보다가 또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하예진에 대한 감정을 감추고 싶은 것이다.“태윤아, 지금 우리 회사 상황은 어때?”노씨 그룹은 지금 노동명의 둘째 형님이 잠시 맡고 있었다.노동명의 형님은 필경 노씨 그룹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아주 바빠 보였다.가끔 노동명이 전화해서 회사의 상황에 관해 묻기도 했다.노동명의 형의 대답은 항상 노동명을 어이없게 만들었다.전태윤에게 물어보는 것이 오
모두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소 대표님한테 매수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에요. 소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윤하에게 잘 어울려요.”코치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 대표님도 우리 윤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주로 만나본 젊은 남자들이 우리 말고는 좋은 남자가 없어서 그래요. 게다가 사장님과 사모님도 얼마나 걱정하세요. 만약 소 대표님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도 반대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소 대표님과 윤하가 잘 지내고 있거든요. 근데 우리 윤하가 왠지 소 대표님께 남녀 간의 정이 없다고 느껴져요. 윤하가 우리를 대한 것처럼 똑같이 소 대표님을 대하는 것 같아요.”정혁주는 코치들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도장에는 여성 후배들도 많지만 유독 정윤하가 정혁주를 무척 걱정시켰다.정윤하는 습관적으로 남자들과 형제 사이로 지냈기에 그들도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그들도 정윤하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상대방이 무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받을 남자들은 정윤하의 “명성”을 듣더니 심지어 몰래 도장에 가서 정윤하를 지켜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막강한 실력을 보더니 정윤하를 다스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결국 투항하게 되었고 다른 맞선남들과 마찬가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이로 하여 뒷부분의 맥락은 그대로 뚝 끊기게 되었다.정혁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너희도 사실 소 대표님의 재력에 넘어간 거야. 나조차도 좋게 느껴지는데 너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소 대표님의 재력이 정말 좋은 건 사실이야. 우리도 자기도 모르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런데 소 대표님은 꽤 좋은 사람이긴 해. 우리 윤하와도 너무 잘 어울리고. 너희들도 장난치고 있는 걸 알기에 나도 너희들 탓하지 않아. 우리 전부 윤하를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 내가 소 대표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그분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을 거야.”“너희들의 말처럼 윤하 계집
“들어가요. 밖이 너무 추워요.”정윤하는 꽃다발과 보온도시락을 들고는 소지훈을 도장으로 가자고 말했다.소지훈은 그녀를 따라갔다.도장의 사람들은 정윤하가 꽃다발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두 사람이 썸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그 꼬맹이들조차 정윤하가 안고 있는 그 꽃다발이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정윤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코치님, 이 꽃다발이 정말 아름다워요.”“코치님, 바비큐 드실래요? 우리 거의 다 먹었어요.”“코치님, 지훈 아저씨가 선물한 꽃이죠? 왜 코치님께 꽃을 주세요?”정윤하가 웃으며 대답했다.“많이 먹어. 다 먹어도 돼. 지훈 아저씨가 나에게 따로 준비해 줬거든. 너희 지훈 아저씨가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에 있는 꽃이 너무 예뻐서 나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선물해줬어. 어때? 예쁘지? 나도 이 꽃다발이 너무 예뻐서 좋아.”학생들은 꽃다발이 예쁘다고 연신 칭찬했다.정윤하의 사제들은 헤벌쭉한 정윤하를 보고는 또 여우처럼 웃고 있는 소지훈을 보더니 결국 모두 정혁주를 일제히 쳐다보았다.정혁주는 정윤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평소에 앉던 테이블에 앞에 앉아 바비큐를 먹으며 보이차도 곁들여 마셨다.“선배님.”몇몇 코치들이 정혁주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궁금한 듯 물었다.“소 대표님이 우리 윤하에게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또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정윤하의 표정을 보면 고백받은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소 대표님이 꽃집을 지나다가 꽃집의 꽃이 예쁜 것을 보고 윤하에게 선물했다고 하던데, 이런 어설픈 이유도 윤하가 믿다니, 참! 저렇게 멍청한 꼴을 보니 사람들에게 팔려가도 돈을 세어줄 기세인데.”“윤하가 종일 우리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답고 털털해서 그래요. 소 대표님만큼 신중하지 못하잖아요. 소 대표님이 윤하에게 직접 고백하지 않는 한 윤하는 분명 별생각 하지 않을걸요.”“어휴, 윤하가 소개팅마다 실패하고 시집을 못 가는 데는 우리 책임도 있어요
정혁주는 아예 보이차 한 병씩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보이차를 나누어 주면서 소지훈은 학생들이 정윤하 앞에서 좋은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매번 큰돈을 퍼부었다.소지훈은 도장으로 올 때마다 도장의 사람들에게 맛 나는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또 각자의 몫도 전부 챙겨주었으며 심지어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사 올 때도 있었다.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면 돈도 많이 들었도 또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정윤하의 말대로 그녀의 수입으로 전체 도장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주면 몇 번이나 사줄 수 있겠는가!정혁주는 도장의 여러 코치 중에서 수입이 가장 높지만, 소지훈처럼 돈이 많지 않았다.역시 대기업 대표답다!정혁주가 보이차를 나누어 줄 때 밖에 서 있는 두 바보를 유의하여 보며 마음속으로 소지훈은 아마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연성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서 왔을 것이다.소지훈은 지금 출장 중이지만 저녁에 약속도 없이 도장으로 온 것을 보면 아마 출장할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다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정씨 저택에 남아서 설을 쇠려고 하는 모양인데...정윤하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그리고 소지훈은 정윤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서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소지훈은 기어코 그녀가 자신의 은인이라고 외치며 다녔다.정혁주는 정윤하가 오지랖이 넓고 너무 빨리 움직여 소지훈을 도와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소지훈의 실력으로 그날 밤 그 건달들 정도는 아주 쉽게 때려눕힐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소지훈의 상대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게 정윤하는 소지훈의 생명의 은인으로 되었다.그리고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연애사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본 소지훈은 천 리 길을 달려와 그녀를 데리고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다.정씨 가문은 관성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성 전씨 가문의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몇 번만 뒤져봐도 관성 전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날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사실 시간은 아직 이르다. 다만 겨울에는 낮이 짧고 밤이 길어서 빨리 어두워질 뿐이다.정윤하의 수업도 마침 끝났다.“지훈 아저씨 오셨어.”한 학생이 소지훈의 차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밖으로 나오지 마. 바람이 많이 불어.”소지훈은 웃으면서 소리쳤지만, 학생들은 모두 뛰쳐나갔다.소지훈은 이내 사 온 간식 몇 봉지를 큰 학생들에게 건네고 포장된 바비큐는 조금 작은 학생들에게 건네주어 도장 안으로 들여보냈다.정윤하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면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소지훈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아저씨가 오시기 전에는 제가 도장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이제 아저씨가 가장 인기가 많네요.”정혁주도 따라 나와 정윤하의 말을 이었다.“너무 인색한 거 아니야? 소 대표님처럼 시원스럽게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다들 다시 널 좋아하게 될걸.”“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월급이 쥐꼬리밖에 안 되는데 음식을 몇 번 정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는 회사의 대표잖아. 난 절대로 이 방면에서 아저씨와 다투지 않을 거야. 이런 일들은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 음? 눈이 오는 것 같아.”정혁주도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눈이 오는 것 같긴 하네. 근데 뭐가 이상해? 겨울이 되면 눈이 자주 올 텐데, 정상이잖아.”“형님, 얼른 오세요. 보이차 몇 상자 드릴게요. 바비큐를 사 왔는데 혹시라도 학생들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될까 봐 몇 상자 사 왔어요.”소지훈은 보이차 상자를 들면서 정혁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정혁주는 차를 향해 다가갔고 조수석에 놓인 꽃다발을 보더니 눈이 번쩍 뜨였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소지훈이 그들 정씨 가문의 저택에 오래 머문 덕분으로 정씨 집안 가족들이 소지훈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게 되었다.소지훈은 냉혹한 면과 부드러운 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냉혹한 면을 정씨 가문의 가족들 앞에서 보여준 적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그들도
소지훈은 잠시 일을 멈추고 비서를 올려다보았다.비서가 꽃다발을 안고 걸어왔다.“저기 탁자 위에 올려 주세요.”“알겠습니다.”비서는 꽃다발을 안고 돌아서서 소파로 가더니 그 꽃다발을 탁자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는 몸을 곧게 펴고 소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소 대표님, 또 분부하실 일이 있으십니까?”“당분간 없어요.”“그럼, 일 보러 나가겠습니다.”비서는 소지훈이 머리를 숙이고 서류를 처리하는 것을 보더니 사무실에서 나왂다.소지훈은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컴퓨터를 꺼버린 뒤 휴대전화와 자동차 키를 챙겼다. 그의 정윤하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새로 차 한 대를 뽑았다.그는 다가가서 장미 꽃다발을 집어 들고 잠시 바라보더니 그가 이전에 성소현에게 아무렇게나 샀던 꽃다발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꼈다.다음에 그는 직접 꽃을 사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꽃 한 다발만 샀는데 부족하지 않을까?”소지훈은 소정남이 평소에 심효진에게 꽃다발과 액세서리를 자주 선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하지만 지금 정윤하에게 보석을 선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고 또한 정윤하도 그런 선물을 받지 않을 것이다.소지훈은 별장과 차를 정윤하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정윤하가 받아줘야 말이지...“먼저 시험해 보지 뭐.”소지훈은 혼자 중얼거렸다.먼저 꽃다발을 선물하여 정윤하의 반응을 보고 그녀가 기뻐하면 천천히 다른 선물을 주려 했다.천천히 다가가야 한다.비록 소지훈과 그의 부모님은 모두 마음이 조급해 정윤하를 빨리 소씨 가문에 데려가고 싶어 하지만 마음이 급하면 아무 일도 성사시키지 못할 게 뻔하다.소지훈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을 나섰다.“소 대표님.”“퇴근할게요. 저녁때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전화하지 마세요.”소지훈과 정윤하가 친분을 쌓는 데 영향을 주지 말라는 의미였다.일이 아무리 중요한들 그의 결혼에 관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점이다.다른 사람들은 연인과 헤어져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소지훈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