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은 집사가 도우미들을 불러 선물을 들게 하는 걸 지켜본 후에야 여운초와 함께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도우미들은 두 손 가득 선물을 든 채 따라갔다.여운초가 걸음 수를 기억하면서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이진은 그녀가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천천히 걸었다.중앙 안채를 지나자 전이진은 여운초에게 알려줬다.“지금 우린 중앙 안채 문 앞에 서 있어. 문 앞에는 계단이... 여긴 우리 서원 리조트의 중앙 안채야. 할머니와 큰아버지의 가족들이 살고 있어.”여운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주차장에서 중앙 안채까지 가는 길을 기억했다.“우리 들어가는 거야? 먼저 할머니를 뵈어야 하는 거지?”여운초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평소 전이진이 전태윤에게 깍듯이 대하던 태도를 떠올리며 여운초는 먼저 중앙 안채로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다.“잠시 후에 다시 가자. 지금은 먼저 우리 집에 가야 해. 할머니와 다른 사람들도 지금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계셔.”전이진은 먼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후 다시 중앙 안채로 갈 생각을 했었다.게다가 차에서 내리면서 가족들이 모두 그의 집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여운초는 잠자코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우리는 아직 결혼하지도 않았는데...”서원 리조트에 이렇게 정식으로 찾아오는 것이 부끄러웠다.전이진은 그녀 가까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나는 너의 사진을 본 그 순간부터 널 내 가족으로 생각했어. 그러니 내 집이 바로 너의 집이랑 마찬가지야. 이곳은 우리의 집인 거야.”말을 마친 전이진은 여운초의 볼에 뽀뽀했다.여운초의 얼굴은 다시 빨갛게 물들었다. 그러다 집사와 도우미들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 급히 밀어내면서 말했다.“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전이진은 뻔뻔해서 창피한 것도 모르지만 여운초는 달랐다. 그녀는 보지 않아도 자기 얼마나 붉은지 알 수 있었다.전이진은 미소를 짓더니 다시 똑바로 서서 걸으며 말했다.“우리 집은 큰아버지 집에서 몇백 미터 거리밖에 안 돼. 역시 작은 마당이 딸린 큰 별장인데, 마당에는
전이진은 여운초를 자신의 집 앞까지 데리고 간 다음 멈춰 서서 입구에 몇 개의 계단이 있는지 알려줬다.그 후 여운초를 부축하여 계단을 올라갔다.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감히 빨리 가지 못했다.여운초는 집안이 시끌벅적한 것을 듣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전이진은 그녀에게 어른들과 형제들이 모두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여운초는 전태윤 부부의 말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우빈이의 목소리도 있는 듯했다. 하예진은 지금 노동명을 돌봐야 했기에 우빈이는 대부분 시간에 이모를 따라다닐 거로 생각했다.“운초 씨.”전이진이 여운초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하예정은 맏형수로서 일어나서 마중을 나갔다.“예정 씨.”여운초는 걸음을 멈추고 하예정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아직도 붉은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뜨거웠다.‘아마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일 거야.’여운초는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원인을 찾았다.“방금 도착해서 피곤하죠?”하예정이 관심하며 물었다.여운초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괜찮아요. 제가 눈이 안 좋아서 좀 늦었어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하예정은 웃으면서 둘이 잡고 있는 손에 눈길이 갔다.“형수님.”전이진은 하예정을 부르며 인사를 했다. 그는 여운초의 손을 잡은채로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가족들 모두 다 계셔요. 운초 씨를 데리고 들어가요.”여운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속으로 감동했다. 전씨 집안의 어른들이 모두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큰 사모님인 하예정은 그녀가 거실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일어나서 맞이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녀는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그녀를 중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전이진은 응하고는 여운초를 데리고 어른들 앞으로 갔다.“할머니.”그는 먼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여운초에게 말했다.“운초야, 우리 지금 할머니 앞이야.”여운초는 처
여운초가 눈이 보이지 않아 듣고 기억함으로써 사람을 식별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전이진이 그녀를 소개하면 모두 조용히 들얻고 소리를 내서 말해야 할 때에만 말을 해 여운초가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그녀는 다시 한번 전씨 일가의 자상함에 감동했다.전이진은 정말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그의 가족들은 모두 매우 좋은 사람이었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고 그녀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여운초는 여태 열등감 때문에 전이진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러다 지금에야 용감하게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작은고모가 A시의 예진 리조트에 갔다가 전이진이 이미 그녀를 위해 신의를 찾아간 것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녀도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할머니는 전씨 집안의 가장 웃어른이지만 제일 온화한 사람이었다. 웃어른으로서의 거스름은 한 끗조차도 없었다. 전이진의 어머니인 둘째 사모님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다.여운초는 사람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진심인지 거짓인지 느낄 수 있었다.전씨 일가는 하나같이 진심이었고 그녀가 장님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둘째 사모님이 햇던말 그대로 그녀는 시댁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이 돈을 쓸 줄만 알면 되었다.여운초가 전이진을 따라 서원 리조트로 가서 그의 가족들을 만난 후 두 사람은 감정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작은고모와 한동호, 그리고 여천우는 친정 가족을 대표하여 전씨 일가의 어른들과 함께 두 사람의 결혼 날짜를 논의했다.여천우는 친부모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진상을 알게 된 후부터 친구 집에 빌려서 살았고 큰누나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사실 그는 여운초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볼 면목이 없었다.자기 친부모가 누나의 친아버지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둘째 삼촌이 누나에게 물려준 재산도 가로채 갔다고 한다. 또한 누나에게도 매우 나쁘게 대해 거의 죽일 뻔까지 했으니 아들로서 미안할 따름이었다.그러다 누나가 남자친구로 전이진을 찾
하예진은 엘리베이터로 위아래 층을 다니기 때문에 경호원들이 따라오지 않아도 스스로 노동명을 밀고 다닐 수 있었다.지금의 노동명은 아직 스스로 일어나서 걸을 수 없어 하예진이 주로 밀고 다니면서 산책하고 있다.매일 침대에 누워 짜증 내는 것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이 더 나았다.병원에서 한 달 가까이 입원한 노동명은 자신이 일어서서 걷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점점 더 초조해졌다.회복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자신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내쫓기도 했다.심지어 노동명은 하예진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매달 1억원을 지급하겠다고 심한 말까지 내뱉었다.하예진이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하예진이 노동명을 돌본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몸이 언제 나아질지 모르는 노동명은 하예진이 계속 자신을 돌보게 된다면 뼈밖에 남지 않게 될 것이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노동명은 살을 떼어내는 것보다 더 괴로워할 것이다.요 며칠 노동명은 휠체어에 앉아 하예진에게 밀려 밖에 나갔고 기분 전환 겸 산책한 덕에 정서가 안정될 수 있었고 마음도 더 편해졌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어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했다.엘리베이터 문 앞에 도착할 때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이때 윤미라 부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고 하예진과 노동명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예진 씨, 우리 동명을 데리고 검사받으러 가는 거예요?”윤미라 손에는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있었고 노진규의 양손에도 크고 작은 가방들로 가득했다.온 도시락 안에는 노동명과 하예진에게 줄 보신탕이 들어있었다.살이 많이 빠진 하예진을 보고 윤미라도 마음이 아팠고 또 미안했다.한 달이 지날 때쯤 윤미라는 하예진에게 6000만원을 지급했지만 하예진은 노동명에게서 진 빚을 갚고 있다며 그 돈을 받지 않았다.그런데 윤미라 부부는 또 연기를 통해 노동명으로 하여금 하예진이 확실히 돈 때문에 자신의 옆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게 해야 했다.하지만 노동
윤미라는 남편과 아들이 다툴까 봐 서둘러 아들을 오른쪽으로 밀었다.오른쪽은 휠체어 환자를 위한 전용도로가 있었다.하진윤은 윤미라와 함께 노동명을 밀고 내려갔다.일 층으로 내려갔더니 의료진이 환자를 밀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하예진은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전 형님의 남편, 임씨 가문의 형부였다.전 형부도 하예진을 보고 멈칫했다.“예진 씨.”임씨 가문의 형부가 하예진을 보며 불렀다.하예진은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려는데 상대방이 자신을 부르니 어쩔 수 없이 멈추며 인사했다.윤미라는 하예진이게 물었다.“아시는 분이에요?”“저의 전남편의 형부예요.”윤미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들을 밀며 하예진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릴게요.”이수찬은 하예진에게 할 말이 있는 것으로 보여서 더 이상 참견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윤미라가 노동명을 밀고 간 뒤 하예진은 임수찬에게 물었다.“수찬 씨, 병원에는 웬일이세요? 누가 입원했어요?”이수찬은 답했다.“형인 씨 누나가...”“언니가 왜요?”주서인처럼 생명력이 강한 사람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예진은 놀랐다.하예진 인상 속에서 주서인은 종일 활기가 넘치는 분이었다.심지어 평소 감기나 열도 적게 하는 편이었는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수찬은 답했다.“아픈 게 아니라 많이 다쳐서 입원했어요. 그 독한 서현주에게 칼로 찍혔거든요. 다행히 중요 부위를 찌르지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요. 금방 응급실에서 나와 입원부에 옮기면 돼요.”“형인 씨는 아직도 응급실에서 구급하는 중이에요 .형인 씨가 가장 많이 다쳤어요. 여러 번 찔려 구할 수 있을지 누구도 몰라요. 부모님은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시고 저는 서인 씨를 돌보러 왔어요.”이 소식을 듣자 하예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바로 물었다.“수찬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언니가 어떻게 칼에 찔려 다치게 된 거죠?”서현주가 김은희, 주서인, 하예진을 찌르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하지만 주형인을 여러 번
임수찬의 서현주에 대한 욕을 들으면서 하예진은 마음속으로 만약 주씨 가문이 서현주를 너무 심하게 괴롭히지 않았다면 서현주처럼 힘없는 여자가 칼로 찌를 생각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개도 급하면 담을 뛰어넘고 토끼도 급하면 사람을 물어뜯기 마련이다.정말 사람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는다면 누구나 반항할 것이고 심지어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서현주가 주서인을 찌른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주서인 그 이간질하기를 좋아하고 친정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은 제수씨한테 미움 사기 십상이었다.하예진이 주형인과 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하예진은 이미 주서인을 무척 미워했다. 하지만 그때 주서인은 매일 동생 집에 붙어살았기 때문에 하예진이 숨 쉴 틈이 있었고 이 정도로 미친 듯 사람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주서인은 서현주가 무척 싫었다.예전에 서현주는 외부 사람과 연합해 인정한을 빼앗을 뻔한 일이 있었다.그 뒤로 주서인은 사사건건 서현주의 일에 개입해 괴롭혔고 서현주가 친정에 머무를 때면 동생 부부의 감정을 이간질하고 부모님과 서현주의 갈등을 부추겨 주씨 집안이 조용할 날 없게 만들었다.누구나 과하게 괴롭힘당하면 날뛰기 마련이다.서현주는 주서인의 이런 일들을 참지 못했고 결국 주서인을 칼로 찍어 병원으로 입원하게 해버렸을지도 모른다.하예진은 시집간 딸이 친정에 자주 오면 친정 식구들이 반갑게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친정 식구의 형수나 제수 사이의 일에 자꾸 끼어들거나 부모님 앞에서 형수나 제수 시비를 거는 것은 몹시 가증스러운 일이다.언젠간 주서인 이 일처럼 사건이 터질 것이다.하예진은 서현주가 주형인을 칼로 죽도록 찌른 일이 너무 의외였다.주형인과 서현주는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금슬이 너무 좋아 부모와 누나가 주형인 앞에서 서현주를 욕하면서 이혼하라고 하면 그는 항상 흔들림 없이 서현주 편이었다.주형인은 양쪽의 갈등을 조정하려고 줄곧 노력했다.그러나 부모님과 누나는 고지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을 뿐이다
하예진이 처음 노동명을 밀고 내려가서 산책할 때 노동명은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가 걸을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병원은 죽음에 익숙한 곳이다.죽음과 비교하면 휠체어를 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예진 씨, 여기요.”윤미라는 하예진이 병원에서 나오는 걸 보고 멈춰서서 하예진을 향해 손을 저었다.노동명은 몇백억을 빚지고도 갚지 않은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조금 전 하예진이 임수찬과 얘기할 때 노동명은 서로 인사하는 호칭을 듣고 하예진 전남편의 식구들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주씨 가문의 사람은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하예진은 밖에서도 자주 주씨 집안 식구들을 만나게 되거나 그들이 하루 토스트 가게까지 가서 치근거렸다.결혼한 지 반년이나 넘었는데 주씨 가문은 정말이지 사람을 참 귀찮게 했했다..하예진은 주형인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지 주씨 집안은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 같았다.하예진이 아직 살이 빠지지 않았을 때도 노동명은 하예진을 싫어한 적이 없었다.다만 하예진을 보며 건강을 위해 살은 좀 빼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예진이 노씨 그룹에 출근했을 때 노동명은 오지랖 넓게 하예진에게 매일 몇 바퀴씩 회사에서 뛰도록 요구했다.절대 하예진을 싫어서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살을 뺀 하예진은 더 이뻐졌고 그런 그녀를 노동명이 더욱 싫어 할 리가 없었다.노동명은 자신이 언제 하예진을 좋아했는지도 몰랐다노동명은 하예진이 뚱뚱하든 말랐든 간에 줄곧 그녀를 좋아했다.하예진이 걸어왔다.“전 남편의 형부가 예진 씨한테 뭐라고 하던가요?”노동명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오므릴 뿐 먼저 물어볼 리가 없었다.대신 윤미라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주씨 집안 일이 생겼대요.”하예진이 답했다.“서현주가 주형인 남매를 찔렀는데 주형인은 부상 상태가 너무 엄중해 응급실에서 구급하는
하예진은 이내 대답했다.“사모님, 저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모님 말처럼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우빈의 친아빠인데 만약 형인 씨가 깨어나지 못하면 마지막 길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고 싶어요. 사모님, 동명 씨 부탁드릴게요.”“얼른 가봐요. 동명은 내가 돌볼게요.”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 떠났다.하예진이 떠나자 윤미라는 아들을 천천히 아들을 밀며 말했다.“주형인을 봐봐. 이게 바로 바람 피운 대가야. 동명아, 이후에 네가 결혼해서 얘기도 낳게 된다면 꼭 너의 혼인과 가정에 충실해야 해.”“혼인과 가정에 충실할 자신이 없다면 엄마는 네가 평생 혼자 살아도 지지해줄 거야. 네가 다른 집안의 딸을 불행하게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엄마는 딸이 없지만 나도 여자이기 때문에 그 마음 잘 알고 있어. 누구도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사랑하지 않게 되면 이혼하게 되고 또 싱글로 돌아오게 된다면 두 사람 사이 모든 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게 되지. 자유를 얻었지만 과거 제일 사랑했던 부부는 제일 먼 사이로 되는 거지.”노동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엄마, 난 평생 혼자 살 거야. 엄마 아들이 주형인처럼 그런 꼴 당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넌 회복 될 거야. 다리가 나아지면 하예진과 결혼도 하고 우빈의 새아빠도 되어야지. 엄마는 이제 반대 안 할 거야.”“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네가 행복하다면 엄마는 간섭 안 할 거야. 하예진이랑 결혼하고 평범한 생활을 보내는 것이 네가 원하는 거잖아.”“우빈는 너무 귀여운 아이야. 엄마도 이젠 우빈의 할머니가 되는 것이 너무 좋아.”노동명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멀쩡할 때 엄마는 저와 연 끊고 살겠다고 하시면서 우리 둘의 혼인을 반대하셨어요.”“하지만 제가 지금 혼자 서 있기도 힘든 폐인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하예진을 좋아해도 된다고 결혼해라 고요?”“예진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
사실 전호영은 차를 세울 때 고현이 평소에 자주 타는 그 마이바흐 차를 보았다.“집 안에 있어. 들어가 봐.”진미리는 물건을 들여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전호영의 손에 물건을 전호영 손에 쥐여주었다.“난 꽃에 물을 좀 주고 들어갈게. 날도 어두워질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봐.”전호영은 자주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왔고 진작에 고씨 가문을 그의 두 번째 집으로 생각했다.전호영은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한 여자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그 여자는 고현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만약 고현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쓴다면 저렇게 예쁠 것이다.고현은 원래 긴 가발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전호영이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재빨리 가발을 쓰고 앉아 있었다.전호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그녀는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은 적 있었다.당시 고현은 그날이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고현은 지금 또 치마를 입고 있다.그녀는 전호영을 위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늘 그녀의 원칙을 깨뜨렸다.아니, 눈앞의 여자가 바로 그의 고현이었다.전호영은 씩 웃었다.그는 다가가더니 먼저 손에 들고 있던 가방들을 내려놓고 꽃다발을 고현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신님,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릴게요.”고현의 시선은 꽃다발에 가려져 더는 휴대전화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전호영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는데, 호영 씨 표정을 보니 놀라지 않은 것 같네요.”“현이 씨가 저를 위해 치마를 한 번 갈아입었을 때 제가 재빨리 현이 씨 도도한 모습을 기억해 버렸죠.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꽃다발을 받기를 기다렸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나가려고요? ”고현은 지금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착용
잠시 후, 진미리가 말했다.“됐어. 나도 상관 안 할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몇 년 더 살고 싶어.”“엄마, 저는 효녀거든요.”진미리가 입을 열었다.“난 네가 불효녀라고 말 한 적 없어. 네가 여자 신분을 회복하는 일에 엄마가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야. 더 관여하면 내가 열 받아서 죽을 것 같아. 내가 몇 년을 더 살아서 네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 것을 보려면 너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가 여자로 살든 남자로 살든 네가 개의치 않는데 나도 더는 상관하지 않을래. 내가 진작에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어.”말을 마친 진미리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엄마, 어디 가세요?”“엄마 바람 좀 쐬면서 기분 전환 좀 할게. 네 아빠한테 잔소리 좀 해야겠어.”고진호는 밖에서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그러자 고현이 말을 건넸다.“그럼 나가서 아빠에게 몇 마디 잔소리하고 오세요. 잔소리하시고 나면 그래도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실걸요.”진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꽃에 물을 주던 고진호는 진미리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현이가 연습 잘하고 있어요?”“휴, 말도 마세요. 지금에야 와서 가르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 오후 몇 시간 만에 20년이 넘는 습관을 고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고진호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그럴 줄 알았어요. 됐어요. 내버려 둬요. 현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현이가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든 상관없잖아요.”갑자기 고현이 여자라는 일이 드러나게 되면 아마 강성 전체가 뒤흔들릴지도 모른다.전화 폭격을 당할 장면을 미리 생각한 고진호도 미리 전원을 끄려고 계획했다.“현이가 드레스는 입고 싶지만, 하이힐 대신 구두를 신겠대요. 휴... 진작 알았다면 애당초 현이가 소란 피울 때 반대했야 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러 멀쩡한 딸이 아들로 변하게 되다니...”“현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게 놔둬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현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고진호는 고현이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하고 계세요. 저랑 함께 연회에 가요.”고현이 말을 이었다.“그럼 집에서 기다릴게요.”“좀 이따가 봐요.”그는 고현이 왜 반나절 휴가를 냈는지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전호영은 먼저 서둘러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간 다음 다시 얘기하려고 했다.전호영과의 통화를 마친 고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미리를 보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전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척했다.“메시지 보내는 척 하지 마.”진미리는 일어나서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고현의 휴대전화를 가져다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엄마, 저는 핸드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회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찾아야 하거든요.”고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방패막이로 삼고 싶어 했다.“회사 일 전부 고빈에게 맡겼잖아. 고빈이가 처리하게 놔둬. 빈이가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빈이는 너보다 어리지 않아. 너보다 겨우 10분 정도 어릴 뿐이야. 게다가 남자로서 빈이는 당연히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해. 남존여비라고 당연히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지.”고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그 생각은 너무 보수적이에요.”“남들에게는 보수적인 사상일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딸이 가볍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진미리는 고현 옆에 앉았다.고현은 진미리와 논쟁하려 하지 않고 바로 머리를 수그렸다.“네네, 우리 엄마는 가장 예뻐요. 우리 엄마가 하신 모든 말은 다 정확해요.”진미리는 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엄마, 또 왜요? 오후 내내 저를 노려보신 횟수가 지난 20여 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요.”진미리는 딸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꾸지람했다.“똑바로 앉아! 사나이처럼 앉지 마. 넌 지금 우리 가문의 딸이야. 고씨 가문의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리고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지 마. 어느 집 딸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는 것을 봤어?”고현은 투덜댔다.“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