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진이 회사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여운초는 계속하여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전이진은 지금 아마도 서둘러 돌아오는 길일 테니까.여운초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후회했다.‘회사에 없는 걸 알았으면 미리 전화하는 건데. 하지만 이러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잖아.’다행히 관성 호텔은 전씨 그룹에서 별로 멀지 않아 전이진은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그는 오는 내내 여운초가 왜 갑자기 찾아왔을지 추측했다.큰형인 전태윤은 여운초가 찾아왔다고만 말했을 뿐, 그녀가 무슨 원인으로 왔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날 여운초가 한동호의 차를 타고 떠난 후, 전이진은 며칠 동안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전화 연락은 있었지만, 매번 그녀에게 전화할 때마다 대부분은 그가 말하고 그녀는 들었다.그러다 여운초의 작은고모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고 싶었는데 여운초에게 저지당했다. 여운초는 어쩌다 놀러 온 작은고모랑 여자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 말에 전이진은 찾아갈 생각을 포기했다. 그녀는 지난 20년 동안 작은고모에게서만 약간의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작은고모 앞에서 어린 소녀처럼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자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라고 전이진은 생각했다.사실 전이진은 여운초를 아주 아끼고 배려했다. 다만 두 당사자는 이 점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차가 멈추자 전이진은 빠르게 내려와 여운초를 향해 달려갔다.“운초야.”여운초 가까이에 가자 그녀가 장미 꽃다발을 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이진은 가쁜 숨을 돌린 다음 손을 뻗어 꽃다발을 받아안으며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이 꽃다발 나에게 주는 거 맞지?”예전에 여운초가 준 꽃다발은 모두 전이진이 먼저 전화해서 주문한 후에 회사로 가져다 달라고 한 것이었다.이렇게 먼저 그에게 꽃을 선물한 것은 처음이었다.여운초는 전이진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한테 주는 게 아니면 누구한테 줄까?”그녀의 말을 듣고 전이진은 활짝 웃었다.“이 꽃 너무 이뻐, 마음에
“작은고모네의 장사도 차차 잘될 거야.”전이진은 이미 사람을 시켜 여운초의 작은고모 집의 사업 상황을 알아본 후 아는 사람에게 좀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그는 작은고모네의 사업이 곧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응,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여운초는 작은고모네가 자칫 파산할 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행히 사촌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상황이 호전되었고 경제적 압력도 완화되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들 집안의 장사가 예전처럼 잘되기를, 한 단계 더 나아지기를 바랐다.좋은 사람은 좋은 보답을 받아야 한다.가끔 작은고모는 여운초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 자기 집안의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어디 더 좋은 안과 의사가 있는지 수소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뛰어다니며 들인 정력이나 돈이 적지 않았다.혈연관계가 없는 작은고모부도 작은고모가 이렇게 10년 동안 뛰어다니도록 놔둔 것을 보면 좋은 사람이었다.“동호 형님은 언제 갔어? 가기 전에 함께 밥 먹으며 술이라도 한잔 권하고 싶었는데...”‘아쉽다, 주량이 어떤지 취할 때까지 술 권해보고 싶었단 말이야.’“새언니가 보고 싶어 해서 먼저 돌아갔어. 새언니에게 줄 선물도 많이 준비한 것 같아.”여운초와 전이진 사이에는 선물을 주고받은 적이 거의 없다.여태 전이진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던 여운초도 당연히 선물 줄 생각을 한 적이 없고, 전이진이 주는 선물을 받아준 적이 없었는지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달콤함을 느낄 수 없었다.전이진은 여운초를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안전벨트까지 매준 후에야 운전석으로 갔다. 그는 손에 들었던 꽃다발을 건네주며 말했다.“잠시 나 대신 꽃다발을 들고 있어. 뒷좌석에 놓기는 아까우니까. 운전할 때도 이 꽃다발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여운초는 꽃다발을 받아안으며 말했다.“그저 평범한 꽃다발을 가지고 왜 이래?”전이진은 오히려 보배처럼 여겼다.“꽃다발이긴 하지만 이건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 준 꽃다발이잖아, 나한테는 너무 소중해. 집에 가져가서 가장 비싼 골
전이진은 생각지도 않고 얼른 대답했다.“진심이야! 하늘에 맹세해!”그는 처음부터 여운초를 아내로 보았다.전씨 일가의 남자들은 모두 아내를 끔찍이 총애하고 있다. 이건 전씨 일가의 어른들만 봐도 알 수 있다.때로는 부모도 아이들 앞에서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준다.아버지의 눈에는 항상 어머니가 가장 중요했고, 자식들은 주워 온 듯했다.만약 자식들이 아버지를 화나게 하면 기껏해야 몇 마디 꾸중을 들을 뿐, 만약 어머니를 화나게 하면 아버지는 직접 몽둥이를 들고 쫓는다.원인조차 묻지 않으면서 말이다.아버지는 늘 자신도 와이프가 화내지 않게 노력하고 있는데 자식들에 의해 와이프가 화내는 모습을 절대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셨다.전씨 일가에 시집간 여자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너 지난번에 출장 갔다고 했잖아, 정말 출장 간 거야? 아니면 A시에 신의를 만나러 간 거야?”전이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솔직하게 대답했다.“A시에 갔다가 예준일이 정겨울 의사를 데리고 돌아왔다고, 신의도 제자를 따라 함께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가게 된 거야. 네 눈을 치료해 줄 수는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거든. 신의 어르신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정겨울 의사가 있으니 부탁드려볼 생각이었어. 아쉽게도 정겨울 의사는 곧 출산할 모양이었고. 설령 정겨울 의사가 동의한다 해도 예준일이 동의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매일 예진 리조트로 찾아갔는데 내가 얼마나 밉겠어. 예준일은 개를 풀어 당장이라고 날 쫓아낼 모습이더라.”여운초는 조용히 전이진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정겨울 의사는 출산이 코앞이라 나도 도와달라고 할 생각이 없었어. 혹시라도 신의 어르신께서 나서주지는 않을까 하고 찾아간 거야. 하지만 신의 어르신은 여기저기 친구들을 만나러 가셔서 그곳에 며칠 동안 머물렀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 다행히도 정겨울 의사가 출산 후 몸조리가 끝나거든 제일 먼저 와서 네 눈부터 봐주겠다고 약속했어. 이제 정겨울 의사의 산후조리가 끝나거든 바로 찾아가 모셔
여운초는 전이진의 말대로 차에서 내렸다.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전이진은 그녀가 안고 있던 꽃다발을 차 좌석 위로 가져다 놓았다.다음 순간, 그녀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전이진은 여운초의 허리를 껴안아 위로 들어 올리더니 빙빙 돌면서 소리쳤다.“나도 이제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나도 약혼녀가 있는 사람이다! 운초야, 사랑해!”마침 조금 늦게 퇴원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다가 이 장면을 보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환희에 찬 전이진의 환호성을 들으며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앞장서서 손뼉을 쳤는지 여운초는 박수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들었다.구경하는 사람이 많은가?그녀는 약간 수줍었지만, 그보다도 강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전이진이 거절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전이진은 너무 기쁜 나머지, 이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아 이런 과한 행동을 하게 됐다.지금 이 순간, 여운초도 자신에 대한 그의 마음이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는 그녀 앞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그녀가 장님이라는 것을 꺼린 적이 없었다.더 나은 선택이 수없이도 많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선택했다.이 모든 것이 할머니의 선택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전이진은 처음부터 여운초를 자기 아내로 여겼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녀에 대한 감정도 점점 깊어졌다.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전이진은 여운초를 안고 몇 바퀴나 돌았고, 여운초가 어지러울까 봐 걱정되어 그제야 행동을 멈췄다.잠시 후, 전이진은 여운초가 어지러움에서 벗어날 때까지 몇 분 정도 기다렸다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올려 그녀의 정교한 이목구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여운초는 태어날 때부터 예뻤다.잘생긴 전이진과 아주 잘 어울렸다.“운초, 운초야...”전이진의 낮은 중얼거림이 그녀의 입술로 다가가 사라졌다.지켜보는 모든 사람 앞에서, 전이진과 여운초는 진한 키스를 나눴다. 이것은 그가 예전에 그녀에게 강제로 했던 키스와는 완전히 다른 키스였다.전이진은 열렬하게 키스했고, 여운초
여운초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빨개졌다.전씨 그룹의 직원들은 진작에 그녀를 사모님으로 보고 있었다.전이진은 기쁨에 겨워 운초를 차에 태운 후 안전벨트를 매주었고 그녀가 가져온 꽃다발은 여전히 그녀가 안고 있게 했다.그는 운전석으로 돌아온 후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널 데리고 서원 리조트로 돌아가고 싶은데, 넌 어때?”전이진의 부모님은 여운초 몰래 몇 번 보러온 적이 있다. 여운초가 줄곧 전이진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이진의 부모님도 감히 당당히 찾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여운초도 자신이 미래 시부모의 눈에 일찍이 친아들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전이진의 어머니는 딸이 없어서 여운초처럼 예쁜 며느리를 얻고 싶다고 했었다. 그녀는 여운초를 보자마자 마음에 꼭 들었다며, 첫눈에 곁에서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이번에 전이진이 직접 그녀를 데리고 서원 리조트로 간다는 것은 의미가 남달랐다.그녀를 데리고 정식으로 가족과 부모님을 만나는 셈이었다.여운초는 약간 긴장한 듯 말했다.“나 아무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는데.”방금 여자친구가 되겠다고 하자마자 곧 집으로 데려가 부모님을 뵈려고 하다니. 전이진은 마음이 여간 조급한 것이 아니었다.그의 가족들이 이미 그와 그녀의 사이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운초는 여전히 긴장했다.그냥 이렇게 가는 것은 아무래도 면목이 없었다.“선물은 필요 없어. 널 데리고 가기만 하면 선물을 받는 것보다 더 좋아하실걸.”“그건 아니야, 예의가 없잖아. 네 부모님을 처음 뵈러 가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갈 수 있겠어. 선물 사러 같이 가줘.”전이진은 웃으며 말했다.“알겠어, 그럼 당장 쇼핑하러 가자. 먹을 거나 마실 것 아무거나 사면 돼, 딱히 부족한 게 없으니까. 우리 엄마 말로는 제일 부족한 건 며느리라고 하셨어.”여운초의 얼굴은 또 붉어졌다.전이진은 휴대폰을 꺼내 가족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지금 운초를 데리고 서원 리조트에 가서 밥을 먹을 거예요.
전이진은 메시지를 보낸 후 바로 차를 몰았다. 채팅방이 아무리 시끌벅적해도 그는 방금 생긴 여자친구를 데리고 선물을 사러 가는 것에만 정신이 팔렸다.채팅방이 잠시 조용해지자 셋째 사모님은 갑자기 큰아들 전호영에게 물었다.[호영아, 넌 우리 예비 며느리하고는 어떻게 된 거니? 언제쯤 고현 씨를 데리고 와서 밥을 먹을 거야?]전호영은 아무 회답도 하지 않았다.아들의 회답을 받지 못하자 그녀는 화가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당신 아들 좀 보세요. 어머니는 호영과 이진에게 며느릿감을 거의 동시에 찾아주셨는데 이진이는 오늘 저녁에 운초 씨를 데리고 온다잖아요. 당신 아들은 언제 며느리를 데리고 올지도 몰라요.”“이런 일은 급해하면 안 돼. 호영이가 아직 생각이 없는데 우리가 급해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우리가 호영이를 대신해서 강성으로 가서 구애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어떻게 서두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진이가 아빠가 될 때까지도 호영이는 제자리걸음 할까 봐 무섭네요. 호영이랑 이진이 나이도 비슷한데... 호영이가 아직도 어린 줄 알아요? 호영이가 막내면 조금도 걱정하지 않을 거예요. 고현 씨처럼 훌륭한 여자는 인기가 많다고요. 당신 아들이 더 이상 행동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먼저 구애하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는 걸 몰라요? 그때 가서는 후회해도 늦었어요?”남편은 잠시 침묵에 잠기다가 입을 열었다.“내가 알기론 고현 씨의 추구자들은 모두 강성의 규수들이야, 다 여자라고. 영원히 고현 씨에게 시집가지 못할 거니까 안심해. 당신 아들의 아내감을 빼앗을 남자는 없어.”고현은 줄곧 남장하고 다녔기에 강성 사람들은 그녀를 고씨 집안의 큰 도련님으로 알고 있다. 또한 그녀는 강성의 젊은 세대들이 공인하는 가장 잘생긴 남자이기도 했다. 남자들은 그녀의 비범한 미모를 질투할 뿐, 절대 사랑하게 될 수는 없었다.그들이 좋아하는 여자들은 고현을 한번 만나기만 하면 빠져들었으니 어찌 질투하지 않을 수 있을까?남편의 말에 셋째 사모님은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셋째 사모님은 남편을 노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당신도 우리 전투력이 어머니보다 못하다는 걸 아시네요. 어머님에게 말할 필요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호영이를 재촉할 거예요.”그녀는 잠시 침묵에 잠기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참 어머니를 바쁘게 하네요. 호영이를 낳은 건 우린데, 어머니에게 중요한 일들을 부탁만하다니. 어머님께서 최근에 뭘 좋아한다고 마씀하신 적이 있나요? 뭐라도 사드려요.”“뭐가 부족하시겠어, 어머니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셔. 재산이 우리보다도 더 많으신데. 가장 부족한 게 바로 손자며느리와 증손녀지.”아이 얘기를 꺼내자 셋째 사모님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예정이는 왜 아직도 소식이 없죠?”남편은 이 말을 듣자마자 아내를 툭툭 치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 말 자꾸 입에 담지 마, 예정이 들으면 괴로워하니까. 스트레스가 제일 클 거야. 아이를 가지는 것도 인연에 관계되는 거야,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으니까 조급해해도 소용없어. 지난번에 어머니가 모시는 대사님께서 태윤 부부의 팔자에는 아들과 딸이 있을 거라고 하셨으니까 분명 가지게 될 거야.”“그건 그래요.”셋째 사모님은 자신이 딸 하나 없이 세 아들만 가진 것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자식은 전생에 진 빚이라더니, 우리 세 아들은 빚을 받으러 온 게 분명해요. 세 번 다 아들일 것을 누가 알았겠어요. 어머님이 그렇게 증손녀를 안고 싶어 하는 마음, 저도 이젠 알 것 같아요. 우리 세 아들이 우리에게 아홉 명의 손자를 안겨줄까 봐 두렵네요. 지금 어머님은 아홉 명의 손자를 두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고 계셔요.”셋째 사모님은 혹시라도 아홉 명의 손자를 가지게 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 났다.어머님은 이제 연세가 많으시다. 아직은 건강에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이제 증손자를 보고, 또 증손자들이 자라 어른이 될 때면 이미 아버님을 만나러 가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셋째 사모님이 직접 나서야 손자들을 챙겨야 할 것이다.“여보, 우리 앞으로 손자가 생기거든
할머니는 걸으면서 우빈이와 얘기했다.“우빈아, 할머니는 널 하도 오래 보지 못해서 너무 보고 싶었어.”우빈이도 할머니와 같이 있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비록 친할머니는 아니지만 하예진은 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촌 동생의 할머니이니 그의 할머니와도 같다고 말했다.“할머니, 저도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우빈이는 말을 아주 잘했다. 사람마다 다르게 달콤한 말을 하곤 했다.그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입이 아주 달아 항상 어른들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예를 들어 전호영을 대할 때에는 생각하는 대로 말하곤 했다.“우빈이가 오는 걸 알고 부엌에 있는 아저씨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해 달라고 했단다. 이따가 많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자라서 학교에 가지.”할머니는 꼬마를 안고 가면서도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고 나는 듯이 걸었다.원래 할머니의 뒤를 따르던 장소민 등은 할머니가 우빈이를 안고 돌아가자 같이 따라갔다. 어른들은 당연히 30대 초반인 전태윤보다는 우빈이를 더 좋아했고 전태윤은 보는 것조차도 귀찮았다.차에서 내린 전태윤은 어르신들이 모두 우빈이를 에워싸고 도는 것을 보고 하예정에게 말했다.“우빈이를 데리고 돌아오니까 꼽사리를 끼는 데다 아예 모든 이의 관심을 다 뺏어가네. 예전에는 내가 돌아오면 모두 나를 둘러싸고 안부를 물었었는데... 지금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아.”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꼽사리 얘기는 그만해요. 우빈이가 들었다면 화낼 거예요. 자기 이름은 주우빈이지 꼽사리가 아니라고 했잖아요.”그녀는 일부러 남편을 놀렸다.“당신은 하루 종일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요. 우빈이의 웃음 가득한 귀여운 얼굴이 당연히 보기 더 좋죠. 우빈이는 하는 말도 달잖아요. 당신은 가족한테 인사하는 것조차도 무미건조해요, 달콤한 말 한마디 없이 누가 당신을 좋아하겠어요?”전태윤은 손을 뻗어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집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당신이 좋으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이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어.”하예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하지만 가난해 본 여운별은 자신에게 뒷길을 남겨두기 시작했다.용태호로부터 돈을 받을 때면 그녀는 몰래 저축해 놓았다.나중에 관계를 끊으면 수중에 재산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예전처럼 여천우에게 매달 수십만 원 생활비를 달라고 매달릴 필요 없을 것이다.“태호 씨, 연회의 주인은 제가 누군지 아세요?”“네 신분을 몰라. 나도 관성 지역의 명문가 사모님께 부탁해 널 데려가도록 했어. 잘 들어. 넌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지 여운별이 아니야. 너의 시댁은 조용하게 지내는 가문이라서 넌 남들을 몰라야 해. 옛날 지인을 보더라도 아무리 친해도 모른 척해야 해.”여운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용태호는 그녀의 턱을 풀어주었다.“날 따라와. 올라가자.”여운별은 어리둥절했다.용태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반항할 수 없었고, 감히 반항하지도 못했다. 얌전히 용태호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강성, 하루 호텔.식사를 마치고 여행 가방을 내려놓은 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아들과 함께 호텔에서 걸어 나왔다. 근처 거리로 쇼핑하러 갈 준비를 하려던 참이다.우빈은 너무 기뻐서 가는 내내 깡충깡충 뛰며 재잘거렸다.하예진은 강일구에게 우빈을 따라가라고 지시했다, 어린 녀석이 너무 빨리 달려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강일구와 다른 경호원은 우빈을 따르고 있었고 네 명의 경호원은 노동명과 하예진의 뒤를 따랐다.그러나 노동명과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의 말을 무심코 듣고 싶지 않았다.“우빈이가 너무 기뻐하네.”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우빈은 외출하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몇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매일 밤 제가 아파트 단지를 몇 바퀴 돌았거든요. 매일 시간이 되어 내려가지 않으면 어찌나 보채는지...”“하하, 그래? 우빈이가 어렸을 때 키우기 힘들었지?”하예진이 대답했다.“맞아요. 특히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달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기어오르다가도 뛰어내리고... 조금만 부주의해도
“태호 씨, 방금 태호 씨가 한 말 제가 전부 귀담아들었어요.”여운별도 여운초가 그녀를 보고 의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하예정이 허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여운초는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누가 뭐라고 해도 친자매이니까.여운초는 여운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여운별은 오히려 여운초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몇 번이고 여운초에게 짓밟혔다.가장 두려운 것은 여운별의 남동생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 점이다.여천우의 머리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도 모를 일이다.여천우가 여운별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두 고모도 사촌 오빠들을 데리고 관성을 떠나 어디로 갔는지 행방도 모른다.여운별은 이제 의지할 곳이 없어서 용태호의 눈에 들어 바둑판의 알로 사용되고 있고 심지어 용태호의 내연녀까지 되었다.용태호는 탁자 서랍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여운별에게 건네며 말했다.“잘 봐. 이 종이에 적힌 모든 내용을 잘 기억해.”여운별은 그 두 장의 종이를 받았다. 그 종이 위에는 전부 낯선 이름과 낯선 회사들, 그리고 그 회사들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혀있었다.빼곡히 많은 글이 붙어있었다.“태호 씨, 다 기억하여야 하는 거죠?”이는 용태호가 여운별에게 이어준 인맥임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이 사람들과 회사는 관성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여운별은 처음으로 용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연회에서 다른 사람이 시댁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지 물으면 적어도 대답을 해주어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관성이 이토록 큰데 몇몇 명문가 외에도 많은 새로운 기업들과 수많은 크고 작은 회사들이 있다.모든 사람이 서로의 회사 대표님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그녀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녀의 가족이 정말로 그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믿을 것이다.여운별은 이미 하예정에게 자신의 남편 사업이 관성에 있지 않고 관성에 정착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알려주었다.“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능숙하게 외워야 해.”용태호는 담담하게
진정으로 용씨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는 없다.그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용씨 가문을 잘 다스릴 수 있다 해도 임시 대리인으로 될 수밖에 없다.용정이가 어른으로 되어 다시 가주의 증표와 토템을 가지고 돌아오면 용태호는 아무 말 없이 무조건 자리에서 물러나 열심히 운영해왔던 모든 것을 내줘야 한다.용씨 가문의 진정한 세력과 인맥도 그 녀석에게 충성할 것이다.하여 용태호는 상대방이 아직 어리고 복수할 능력이 없을 때 먼저 증표와 토템을 받은 후 입을 막으려고 했다.그래야만 진정으로 용씨 가문의 주인이 되어 용씨 일족을 호령할 수 있으니까.그러나 그가 막 용정이 모연정의 양자라고 의심하던 찰나에 단서는 끊어졌고 그 아이와 관련된 소식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마치 보호막이라고 생긴 것 마냥 예진 리조트에서 너무 잘 보호되고 있었다.용태호도 손을 내밀어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는 정겨울의 배후에 서 있는 노인네와 국내와 국외를 자유롭게 오가는 신비로운 조직 오제당을 감히 건드릴 담이 없다. 용씨 가문은 매우 대단한 가문이지만 용태호는 아직 진정한 용씨 가문의 가주가 아니었다. 따라서 오제당과 맞서지 못할 것이다.그는 먼저 모연정의 양자가 그가 찾는 녀석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야 했다.“태호 씨.”여운별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용태호를 불렀다.용태호는 눈빛을 돌려 여운별이 말하기를 기다렸다.“태호 씨, 하예정은 매일 조카를 유치원에 데려다줘야 해서 저도 시누이를 데리러 가는 척했거든요. 유치원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려고 늘 기회를 찾고 있었고요. 근데 하예정은 제가 늘 말하는 시누이를 본 적 없어요.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는 의심 살 수 있으니 제 일에 협조해줄 수 있는 아이를 배정해 줄 수 있을까요?”용태호는 웃으며 칭찬했다.“좋아. 진보 많네. 그럼 내가 아이 한 명을 찾아서 네 연기에 협조해주도록 하지. 그분 외조카가 유치원 소반이라고 했지? 넌 하예정 씨와 소개할 때 시누이가 몇 살이라고 알려줬어?”“네다섯 살 정도요.”용태호
여운별은 잠자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하긴, 여운초가 이미 제 목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제가 변성하면 더 의심할 거예요. 이제 다들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하지만 하예정은 어떻게 저를 의심했죠? 몇 번 만나보지 못했는데.”용태호는 여운별을 힐끗 쳐다보다가 대답했다.“기억력이 좋거든.”여운별은 말을 잇지 않았다.여운초의 기억력도 아주 좋다.여운초는 10년 가까이 눈이 멀어서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그리고 네 눈먼 장님 언니도...”“태호 씨, 여운초는 이제 장님 아니에요. 진작에 시력을 회복했거든요. 전이진 도련님이 신의의 제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눈을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어요.”여운별은 말하다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그 장님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을까!”전이진이 여운초에 접근했을 때 그녀 아직도 장님이었으나 전이진은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때 명해은을 만나러 서원 리조트에 찾아가 여운초의 눈이 멀어서 전이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들쑤시기까지 했다.그러나 명해은은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그녀의 두 고모를 울분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전씨 가문에서 미치광이처럼 떠들지는 못했다.이제 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고 또 전이진과 혼인 신고까지 했다. 그녀가 전씨 가문에서의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기만 할 것이다.내일 저녁에 여운초는 명해은을 따라 연회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예전에는 상류층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추미자는 여운별을 데리고 참석했지만, 여운초는 절대 데려가지 않았었는데...여운별이 여운초를 심하게 괴롭혔을 때 여운초가 평생 관성의 상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비꼬기까지 했다.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지금은 여운별은 상류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여운초는 전이진의 어머니가 데리고 다니며 접대하고 교제하고 있다!여운초는 지금도 여씨 가문의 모든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여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