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은 심호흡하며 자신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했다.이 여자는 그가 화를 내든 말든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방금 그가 화를 내면서 나가라고 할 때, 그녀는 덤덤하게 침대 앞에 앉아서 그가 침대를 세게 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열 받아서 죽겠는데 그녀는 오히려 정신을 가다듬고 원숭이 공연 보듯 그를 쳐다보기도 했다.노동명은 그래도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다.아까처럼 하예진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하예진 씨.”노동명은 하예진을 보며 차갑게 말했는데, 눈동자 깊은 곳에서 그녀에 대한 정을 억누르고 있음이 보였다.“내가 어떤지 봤잖아요. 난 당신이 돌봐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얼른 나가요.” 하예진은 침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다음 미소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살이 빠진 후 결혼 전 비주얼을 되찾은 그녀는 웃을 때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미소에 담긴 위로를 보자, 노동명의 분노는 절로 누그러졌다.“동명 씨, 듣기와 이해력에는 문제가 없죠?”하예진이 그에게 묻자, 그는 서늘하게 답했다.“온몸이 다치긴 했지만 청력과 이해력에는 지장이 없어요.”다른 상처는 다 나아졌는데 심하게 다친 다리가 아직도 많이 아팠다.“좋아요. 동명 씨 청력과 이해력에 문제가 있다면 사모님께 돈을 더 주셔야겠네요. 들어올 때 이미 말했잖아요, 난 당신 어머니께서 주신 돈 때문에 당신을 돌봐주는 것뿐이에요. 날 간병인처럼 대해줘요.” “사모님께서 주신 일당은 200만 원이고 8시간 근무에요. 저녁에 출근할 필요가 없으면, 동명 씨가 쫓아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퇴근할 거예요. 지금 가면 사모님께서 돈을 깎으실까 봐 걱정돼요. 돈을 생각해서라도 난 여기에서 동명 씨를 지킬 수밖에 없어요.”“하루 일당 200만 원은 제 가게의 2, 3일 치 수입과 맞먹거든요.”“...”그녀는 아마 일 푼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어머니는 그녀에게 하루에 200만 원을 주겠다며 돌봐 달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컸다.“동명 씨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차갑게, 막무가내로, 거칠게 대한다면 그녀는 분명 떠날 것이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녀도 심리적인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겠지.이렇게 생각한 노동명은 하예진이 돈 때문에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찮게 굴겠다고 마음먹었다.병실 안에 인기척이 없자, 윤미라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아들은 고개를 돌려 가족 침대에 누워 잠든 하예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윤미라는 하예진을 불러 아들을 돌봐달라고 한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아들은 아직도 하예진을 사랑했다. 그녀가 손을 쓴다면 아들은 분명 잘 먹고 재활할 거라고 믿었다.누군가 온 것을 눈치챈 노동명은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를 보자,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에야 물었다.“어머니, 예진 씨에게 일당 200만 원을 주고 저를 돌봐 달라고 하셨습니까?”“그래. 네가 지금 이렇게 된 게 예진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니. 그러니까 예진이가 널 돌봐야지. 네가 회복될 때까지 한 달에 6000원의 돈이 든다 해도 엄마는 낼 수 있어.” 노동명은 말문이 막혔다.“어머니 아버지께선 연세가 많으시니 병원에 오래 계시면 힘드실 거예요. 간호인들이 있으면 돼요. 두 분은 매일 오실 필요 없어요.”그는 머리에 하얀 눈서리가 내려앉은 부모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동명아, 우리는 널 돌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야. 엄마는... 엄마는 이 일은 예진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윤미라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했다.“예진 씨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노동명이 하예진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 이유는 하예진에게 낭패한 그의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하지만 어머니가 그녀의 잘못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네가 예진이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잖아. 그것도 여러 번.” 노동명은 어머니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윤미라는 하예진이 이불을 덮지 않은 것을 보고 이불을 들어 하예진의 몸을 가볍게 덮어 주었다.그녀는 하예진의 잠든 모습을 보며 낮게 말했다.
다른 한편.성소현과 하예정은 각각 차를 몰고 성씨네 대저택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의 차가 방금 야외 주차장에 멈춘 즉시, 옆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준하가 다가왔다.그는 눈부시고 화려한 장미 다발과 보석 한 세트를 들고 있었다.성소현이 차에서 내린 후, 멀지 않은 곳에 익숙한 차가 주차된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누구의 차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개를 돌려 문을 여는 도우미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예준하가 꽃다발을 안고 붉은색 가방을 든 채 걸어오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도 걸음을 옮겨 예준하를 향해 걸어갔다. 도우미는 원래 대저택 문을 닫으려고 했다.사모님과 큰 도련님께서 만일 예준하 도련님을 봤다면 빨리 대저택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그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하지만 이제 아가씨가 준하 도련님을 보았으니 대저택 문을 다시 닫는 건 불가능했다.“준하 씨, 아직도 여기에 있었어요?”예준하가 A시에서 돌아온 후, 두 사람은 함께 식사했었다. 예준하가 한동안 바쁠 거라고 말하자, 성소현은 그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했다. 게다가 그녀와 하예정도 꽤 바빴으니까.사업에 푹 빠지니, 정말로 사랑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저도 방금 왔어요.”예준하는 성소현에게 다가가 그 눈부시고 화려한 장미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회사에서 오는 길에 꽃 가게를 지나갔는데, 장미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래서 사 온 거예요.”“만약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면, 사주지 않았을 거예요?”성소현이 꽃다발을 받으며 그를 놀리자, 예준하도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당신이 관성에 있는 동안, 매일 꽃을 보내줄 거예요. 내가 여기에 없더라도 꽃 가게에 전화해서 꽃다발을 예약시킬게요.”그가 A시에 있을 때도 그렇게 했다.비록 관성에 머물지 않았지만 그녀에 대한 구애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예준하는 보석 한 세트를 성소현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내 형수님께서 만성 차린 보석 가게에서 새롭게 디자인한 스타일이에요. 아
자녀는 모두 아내의 편이었다. 집에서 아무런 위신도 없는 남 회장은 전처럼 집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예준하가 그 부부에 대해 언급하자, 성소현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남씨 집안의 이야기였고, 그가 말하지 않는 한 아무도 감히 깊이 파고들지 못할 것이다.두 사람은 함께 별장으로 들어갔다.예준하는 우빈의 손을 잡은 채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예정을 보고는 웃으며 성소현에게 물었다.“또 전 사모님과 사업 얘기하러 갔어요?”“네, 투자를 늘렸으니 판매 방식을 늘려야죠. 며칠 후에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요. 관성 사람들 돈만 벌 수는 없잖아요.”열정으로 가득한 두 사람은 사업을 다른 도시로 확대할 생각이었다.이 말을 듣자, 예준하는 얼른 제안했다.“A시는 어때요? 그쪽 밭도 많이 황폐해졌어요.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에 일하러 갔고 노인들은 집에서 손자를 봐주느라 농사를 거의 짓지 않아요.”성소현이 웃으며 말했다.“A시는 관성에서 너무 먼데요. 저희는 우선 먼저 가까운 도시에서 발전해 보려고 해요. 그리고 천천히 더 먼 도시에 확장하고요.”“그래도 되죠. A시의 시장을 조사해서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라고 할게요.”성소현이 투자한 채소 시장만 있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도 채소 시장이 있었다.“고마워요.”성소현이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에이, 별거 아니에요. 실은 저도 사심 있어요.”성소현의 사업이 A시로 발전한다면 나중에 결혼했을 때, A시 있어도 지루하지 않게 사업을 돌볼 수 있었다.“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것도 생각해 봐요. 채소 회사를 설립했죠? 과일도 심어보는 건 어때요?”“과일은 이익을 얻기 쉽지 않아요.”과일의 수확량은 채소 재배만큼 보장되지 않았고, 때때로 날씨 문제로 수확이 줄어들 수도 있었다.“다른 투자도 생각해 볼게요.”성소현이 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자연히 한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말할 것도 없고 하예정도 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태윤도 때
“우빈이 참 착하네. 아저씨가 두 아기를 대신해서 고맙다고 인사할게.”우빈이는 해맑게 웃었다.예준하가 우빈이를 내려놓자 하예정은 조카의 손을 잡고 성소현과 함께 안에 들어갔다.이경혜도 하예정과 우빈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원래 매우 기뻐했다, 심지어 직접 입구까지 마중 나와 얼굴 가득 웃음을 띠었다.하지만 예준하도 함께 있는 것을 보다, 그녀는 웃음을 깔끔히 지웠다.한동안 방문하지 않아서 포기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야 예씨 집안의 큰 사모님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예준하는 삼촌으로서 조카들을 보러 간 거였다.그는 관성에 돌아오자마자 또 뻔뻔하게 찾아왔다.“이모.”“이모할머니.”하예정과 우빈이 그녀에게 인사했다.“아주머니, 안녕하셨어요.”예준하도 미소 지으며 안부를 물었다.이경혜는 예준하를 노려본 다음 허리를 굽혀 우빈이를 안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우빈이가 오랫동안 이모할머니 집에 놀러 오지 않아서 우빈이가 엄청나게 보고 싶었어. 오늘 여기서 밥 먹고 가. 응?”우빈이도 말했다.“저도 이모할머니 보고 싶었어요.”그러더니 이경혜한테 윙크를 하면서 그녀를 즐겁게 했다.그녀는 예준하를 무시한 채, 아이를 안고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예정은 예준하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전태윤이 아내에게 구애할 때, 얼굴엔 철판을 깔아야 한다고 했었다. 역시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잘 알고 있었다.하예정은 이경혜의 뒤를 따라갔다.이경혜는 작은 소리로 조카딸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아니, 예준하 저 친구는 정말 뻔뻔해.”하예정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준하 씨가 정말 언니를 좋아한다는 걸 말해주죠. 좋아하는데 체면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큰이모가 반대한다고 정말 오지 않으면 언니에 대한 감정이 거짓일 거예요.”“어휴, 저 친구 편 좀 그만 들어. 아무리 좋다 해도 둘이 함께 있는 건 찬성할 수 없어. 너무 멀잖아.“이모, 너무 심하게 막지 마세요. 언니는 어린아이가 아니니 다
“네 언니는...”이경혜는 큰 조카딸이 자꾸 감정에서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노 대표는 아직도 만나려고 하지 않아?”이경혜가 걱정된 듯 물었다.“저랑 태윤 씨가 가봤는데 만나려 하지 않았어요. 태윤 씨가 메시지 보내도 답장하지 않고, 전화도 안 받아요.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아요. 우리가 병문안 가는 게 동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어휴.”이경혜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예준하가 성소현의 손을 잡고 들어오다가 이경혜와 눈을 마주치자 얼른 손을 놓았다.미래의 장모가 아직 그들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경혜의 앞에서 성소현과 너무 가까이 지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성소현은 예준하에게 앉으라고 한 다음 꽃다발을 들고 큰 꽃병에 꽂아 두었다. 그가 선물한 보석 세트도 먼저 방에 가져갔다.그녀가 아래층에 내려갔을 때,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고 들려왔다.우빈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경헤는 심한 말을 하지 못했다.하예정과 우빈이는 성씨 집안에서 반나절 있은 다음 저녁을 먹고 돌아갔다.전태윤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저녁에 미팅이 있으니 열두 시가 돼서야 도착한다며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했다.하예정은 우빈이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논 다음 쇼핑했다. 그들은 저녁 아홉 시가 돼서야 별장에 도착했다.우빈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온 저녁 놀고 난 다음 체력이 딸려 씻자마자 잠들었다.하예정은 우빈이가 잔 다음 서재에 들어가 일 처리를 했다.전태윤이 먼저 자라고 했으나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싶었다.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되었고 보고 싶었다.전태윤은 지금도 관성 호텔에 있었다.그는 비서와 경호원과 함께 바이어 김 대표 부녀를 배웅했다.“전 대표님, 더는 배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시간 되면 다시 식사하죠.”김 대표는 관성에 별장을 사 놓았다. 간성에 출장 갈 때마다 그는 호텔 대신 자신의 별장에서 지냈다.김 씨 그룹은 사업은 매우 컸다. 요즘에 아주 좋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많은 회사에서
김이현은 덤덤하게 말했다.“전 대표님, 다음에 봐요.”전태윤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김이현은 그의 차가운 모습이 좋았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다니면서 많은 회장과 부잣집 도련님을 만났지만, 전태윤처럼 뛰어난 남자는 없었다.그녀는 전태윤의 사업 능력 대신 그의 외모만을 보았다.아름답고 차가운 모습은 한눈에 그녀의 정복욕을 자극했다.김이현는 전태윤이 말을 안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전태윤이 작별 인사를 나눈 후,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그들의 차로 향했다.기사가 문을 연 다음, 그들은 차에 올랐다.김 대표는 차창을 내리고 전태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했다.전태윤도 그의 인사를 받으며 손을 흔들었다.김 대표의 고급 차는 관성 호텔을 빠르게 빠져나갔다.“이현아, 아까 대표에게 무슨 짓 했어? 얼굴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던데.”차창을 닫고 난 후, 김 대표는 머리를 돌려 사랑하는 딸에게 물었다.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의 건강 상태 때문에 아내는 딸 하나를 어렵게 낳았었다. 그것도 수많은 의사를 보고 많은 약을 먹은 후에야 임신하고 아기를 가질 수 있었다.딸은 그를 많이 닮아 어린 시절부터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김 대표는 딸을 깊이 사랑했고 또 매우 믿었다. 김 씨 그룹은 나중에 딸애에게 맡겨질 것이다.그래서 사업을 위해 미팅을 할 때 딸을 데리고 나갔다.“아빠, 나는 전 대표한테 첫눈에 반했어요.”김이현의 말에 김 대표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딸의 이마를 쿡쿡 쳤다. “전 대표는 이미 결혼했어.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전태윤만 안 돼.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 잘생겼다고 푹 빠지지 마. 여자를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는 모양이야. 그의 아내 외엔 그 누구도 전 대표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고 하잖니.”“그리고 지금 전 대표는 유부남이야. 그는 결혼생활에 충실하고 아내를 극도로 사랑하지. 그런 남자를 좋아하는 건 고생을 찾아서 하는 거야.”김 대표는 딸을
“강일구, 아까 뭐 봤어?”침묵하고 있던 전태윤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강일구는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했다“김 비서가 대표님 손바닥을 스치는 것을 봤습니다.”이렇게 말한 후, 그는 뭔가 떠오른 듯 얼른 말을 바꾸었다.“아니요, 대표님. 전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대표님께서 이렇게 훌륭하시니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대표님은 오랫동안 그들을 곁에 두셨고, 그들의 주요 직책은 젊은 여성들이 대표님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김 비서가 대표님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주 뻔했다.“앞으로, 3m 이내에 가족 이외의 젊은 여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전태윤은 예전처럼 가족 이외의 젊은 여성을 3미터 이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결혼 소식이 모두에게 알려졌으니 다시는 그에게 흥미를 갖는 여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 유부남이라는 신분을 무시하고 그를 유혹하려는 이가 존재했다.만약 그런 수작에 넘어간다면 그는 전태윤이 아니었다. 그를 유혹할 수 있는 여자는 하예정 뿐이었다.“예.” 강일구는 빠르게 대답한 후, 절대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고 담보했다.“사모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전태윤은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벙어리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해야겠지.”강일구는 두피가 저렸다. 벙어리가 되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니 사모님 앞에서 절대 함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말한다 해도 대표님이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다.대표님은 사모님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단언컨대, 돌아가자마자 대표님은 가장 먼저 사모님께 이 일을 알려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엿보고 있으니 잘 단속해달라고 말이다.20분 후, 전태윤의 전용차가 별장으로 들어섰다. 2층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자, 전태윤은 아내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집사가 그를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
하예진이 물었다.“예정이에게 없고 저한테 있는 게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동명 씨가 재활을 꾸준히 하시고 제가 관성에 없을 때 자신을 돌보고 시간이 나면 우빈을 돌봐 주세요. 우빈이도 동명 씨를 보러 자주 갈 거예요. 녀석이 지금 자기 아빠보다 동명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노동명은 의기양양하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우빈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그래. 우빈이 친아빠는 늘 우빈이 앞에서 내 험담만 하거든. 우빈이는 똑똑하니까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잘 알고 있어. 우빈이 친아빠가 내 험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친아빠를 더 싫어할걸.”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았다.주형인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자 하예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때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뭘 봐요? 내가 아직도 그 남자를 신경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단지 우빈이 아빠일 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죠? 그 사람을 언급하면 제 기분이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제가 어떻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직도 사랑했다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이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주형인도 약속한 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더는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관성은 우빈 뿐이었다.그러나 주형인은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지켜보지 못했다.그는 또 노동명이 친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나은 계부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했다.우빈이 아직 노동명을 두려워할 때,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우빈은 노동명을 대신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오늘날 우빈과 노동명의 사이가 매우 좋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주형인 부자가 만날 때마다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이 폐인으로 되었기에 하예진과 함께 한다면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노동명의 험담했다.또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돌아오면 요리들이 올라오게끔 미리 준비해 놓았다.그들은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후 고현은 곧 자리를 떠나 고성 호텔로 박 대표를 만나러 갔다.다행히도 하루 호텔과 고성 호텔은 가까웠다. 두 호텔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볼 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해 주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처 거리를 거닐며 강성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노동명이 뒤에 있는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일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거에요. 만약 이번 일조차 직면할 수 없다면 제가 강성에 있을 필요도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 계속 저의 레스토랑을 돌보는 게 나을걸요.”그렇게 하면 이경혜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다행이네.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선물로 사줄게.”하예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제가 사면 돼요. 선물할 필요 없어요.”“난 지금 네 남자 친구거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남자라고.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준 적 없는데. 사실 우리 집 객실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러 선물로 가득 차 있거든. 전부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들이야. 어떤 것은 너에게 선물했지만 네가 받지 않은 물건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너에게 미처 선물하지 못한 것도 들어있어. 네가 받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방에 넣어두었거든. 앞으로 우리가 한 가족으로 되면 그 물건들은 어차피 너의 것으로 될 테니까. 네가 가지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돈이 낭비되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너도 우리 가정의 돈이 낭비되는 게 싫지?”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과거에 그녀는 노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혼하고 싶지 않고 돈만 벌고, 사업을 일으켜 우빈을 잘 키워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두 사람을 1층으로 안내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에서 고현에게 뽀뽀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그는 고씨 그룹에서 고현에게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어쨌든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님이니까.전호영이 차를 몰고 고현과 함께 고씨 그룹을 떠났고 고현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식사를 마치고 나면 고현은 또 박 대표와 약속이 있었다.전호영은 그들이 하루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진과 노동명은 아직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예진 일행은 약 30분 뒤에야 호텔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어두운 얼굴로 노동명을 호텔로 밀고 들어갔다. 노동명은 계속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못 듣는 체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예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명도 더는 위로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위층으로 올라가 전호영이 안배해 준 식사하는 룸에 도착해서야 하예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동명이 형.”전호영은 하예진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하예진을 도우려고 했다.“호영 씨, 동명 씨가 혼자 몇 걸음 걸을 수 있어요.”하예진은 전호영의 도움 없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식탁 앞에 세웠고 노동명은 스스로 일어나 두 걸음 걷다가 다시 탁자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고현도 일어섰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하예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괜찮아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 일은 다 처리했어요?”모두 자리에 앉은 후 고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며 관심 있게 하예진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요.”하예진이 대답했다.“잘됐네요. 노 대표님, 내일 돌아가시려고요?”고현은 나지막이 물었다.노동명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예진이 보러 온 것뿐이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