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은 아들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이미 가게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두 점원은 모두 깔끔히 치웠다. 그녀는 두 점원을 먼저 퇴근시키고 나서 강일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일구 씨, 또 우빈이를 데려다주셔서 고마워요.”“고맙다는 말 하지 마요. 이건 큰 도련님과 사모님이 저에게 주신 임무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뭐.”강일구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예진 씨를 도울 수 있어서 저도 기뻐요. 우빈이도 너무 귀여워서 이제 하루라도 못 보면 보고 싶어지는걸요.”우빈이는 강일구의 말을 듣고 턱을 치켜들고는 자신 있게 말했다.“일구 아저씨, 저 누구든지 좋아하는 귀여운 아이인 거죠?”강일구는 웃으며 말했다.“맞아, 우빈이는 내가 본 아이 중에 제일 귀여운 아이야.”하예진은 꼬마를 데리고 나가면서 웃으며 말했다.“일구 씨 칭찬 그만해요. 더 칭찬하면 코끝이 하늘을 찌를까 봐 무서워요.”“진심을 말한 걸 뿐인걸요. 우빈이는 제가 본 아이 중 가장 귀여운 아이예요.”강일구는 자신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물론, 몇 년 지나서 다른 아이에게 또 같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하예진은 관성중학교에 동생을 찾아갈 준비를 했다. 강일구에게 따라올 필요 없다고 말하자 그는 알아서 전태윤한테로 돌아갔다.30분 후.“예정 이모, 효진 이모.”우빈이는 내리자마자 가게에 들어오기도 전에 하예정과 심효진을 큰 소리로 불렀다.심효진은 카운터에 앉아서 소설을 읽고 있었다. 심심하여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하예정은 책장 앞에서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우빈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게를 나서자 우빈이가 쪼르르 달려왔다.그녀는 웃으며 조카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오늘따라 우빈이 엄청 기뻐하네? 무슨 기쁜 일이 있었어? 이모도 같이 기뻐하게 알려주라.”아까 음성 채팅을 할 때 우빈이는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꼬마는 이모의 얼굴을 보며 직접 얘기한 후 칭찬을 듣고 싶었다. 그건 또 음성메시지로 듣는 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하예정은 관심 조로 물었다.“언니, 무슨 일 있어?”“별일 아니야. 그저 급여 많이 주는 일자리를 구했어.”하예진은 쌀을 씻은 후 다시 물을 넣고 플러그의 스위치를 누른 후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러 밥을 안쳤다. 그다음에야 돌아서서 동생을 마주했다.“토스트 가게 잘 운영하고 있는데 왜 또 일자리를 구한 거야? 우빈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돼서 걱정돼서 그러는 거면 내가 우빈이의 학비를 내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태윤 씨가 매달 주는 용돈도 다 못 쓰고 있고 시댁에서도 매달 용돈을 주고 있어. 지금 가장 부족지 않은 게 돈이야.”하예정은 언니가 돈이 모자라서 일자리를 찾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아니야, 우빈이의 학비가 걱정돼서 그러는 게 아니야. 형인이가 처음에 나에게 나눠준 그 돈은 우빈이의 학비로 충분해. 나도 매일 수입이 있고... 돈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야.”밖을 내다보던 하예진은 심효진이 우빈이와 같이 노는 것을 보고 이어 말했다.“미라 사모님이 방금 찾아오셨어.”그 말을 듣고 하예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언니를 왜 찾은 건데? 설마 또 우빈이를 데리고 관성을 떠나라고 한 건 아니지?”노동명은 지금 두 자매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윤미라는 예전에 그런 일을 한 적이 있기에 하예정은 그녀가 아들의 말을 듣고 또 언니에게 우빈이를 데리고 관성을 떠나라고 말한 줄 알았다.“사모님이 나더러 병원에 가서 동명 씨를 돌봐달라고 부탁하셨어. 그리고 동명 씨가 퇴원하거든 재활치료 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셨어. 한 달에 6천만 원을 주겠다며... 난 그게 너무 많은 것 같아. 동명 씨도 나를 많이 도와줬었고 나도 동명 씨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 빨리 낫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기어코 돈을 주겠다는 거야. 만약 그 돈을 사양하거든 더 올려서 줄 거래. 돈에 관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너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어때? 동명 씨를 돌봐주는 게 맞는 일일까? 사모님에게도 말했어, 내가 이 일을 한다고 해도 감정과는 상관없는 일이
“국 끓여서 이따가 병원에 들러 동명 씨에게 줄 생각이야.”하예진은 몸을 돌려 주머니에서 사 온 돼지 뼈를 찾아 깨끗이 씻은 후 곰탕을 끓일 준비를 했다.“나 먼저 사모님께 답장부터 하고.”그녀는 사모님에게 답장하겠다고 했던 일이 생각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정을 전했다.윤미라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감사하다고 하며 그녀에게 보수를 지불하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이제 때가 되어 돈을 받지 않아도 사모님은 어쩔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자신의 결정을 알린 후 하예진은 점심 준비로 바빴다.점심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그녀는 점심을 다 해놓았다.“예정아, 나 먼저 동명 씨에게 국을 가져갈게. 우빈이를 부탁해.”하예진은 보온 도시락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다 된 음식들 냄비에 있으니까 이제 일이 끝나면 효진이랑 먹어.”“언니는 점심 먹었어?”하예정이 관심 조로 물었다.서점은 요즘 바쁘지 않았다. 곧 여름 방학이라 이제 방학하기 며칠 전에만 학생들이 문제집을 사러 오게 되면 좀 바빠질 것이다.“좀 먹었어.”하예진은 밖으로 나가며 대답했다.“엄마, 나도 갈래요.”우빈이는 엄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 달아가며 소리쳤다.“우빈아, 너 아직 밥 안 먹었잖아. 이제 밥 다 먹으면 이모가 데려다줄게.”하예정이 따라와 우빈이를 안으며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꼬마는 조금 억울했지만 이모의 달래임에 곧 억울함은 깔끔히 사라지고 말았다.병원에서 노동명은 여전히 음식을 거절하고 있었다.그는 형수가 직접 가져다준 점심을 모두 뒤집어 놓았다.형수는 시동생의 난폭한 행동에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야 엎어진 음식에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동명아.”형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되지, 왜 다 엎지르는 건데? 어머님과 아버님도 아직 밥 안 드셨어.”노동명의 성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그녀는 그런 노동명이 이해되었고 마음이 아팠지만 음식을 먹지 않는 건 그렇다
“아가, 동명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윤미라는 급히 맏며느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동명이를 탓하지 마, 이미 충분히 괴로워하는데.”그 말을 듣고 큰형수는 말했다.“어머님, 나도 도련님이 괴로워하고 있는 거 알아요. 하지만 우리도 괴롭긴 마찬가지잖아요. 우리 모가 도련님의 건강을 관심하고 있어요. 의사도 잘 회복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지금의 태도를 봐서는 스스로 사형을 선고한 거랑 마찬가지ㅇ예요. 어머님도 그냥 내버려두지 마시고 도련님이 기운 내게 하셔야죠.”노동명이 사고가 난 후 시어머니가 자책하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돌보는 것을 큰형수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매일 음식을 가져다주었다.하지만 가끔 노동명은 만나주지조차 않았다.큰형수의 남편은 노씨 일가의 사업을 이어받은 사람이라 매일 바쁘게 일하면서도 동생의 부상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노동명은 슬픔에 빠져있기만 할 뿐 가족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윤미라는 갑자기 눈을 붉혔다.그녀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나도 동명이를 기운 나게 하고 싶지만 우리가 하는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 매일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기만 하면 다리가 심하게 아파 나니까 짜증이 날 만도 하지. 동명이를 탓하지 마, 동명이의 잘못이 아니니까...”“어머님.”큰형수는 휴지를 가져와 시어머니에게 건네며 한숨을 내쉬었다.“탓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서라도 일깨우려고 한 것뿐이에요.”윤미라는 눈물을 닦은 후 말했다.“동명이가 기운을 낼 수 있도록 예진 씨에게 찾아가 동명이를 좀 돌봐달라고 부탁했어. 동명이가 예진 씨를 그렇게 좋아했잖아? 예진 씨를 봐서라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도련님이 이제는 예진 씨도 보기 싫다고 하지 않았어요?”노동명이 사고가 난 후, 하예진은 매일 병원에 찾아갔지만 한 번도 노동명를 만나지 못했다. 노동명은 하예진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예전에는 부르지도 않았던 경호원까지 찾아 24시간 교대하며 병실 입구를 지키게 했다.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막기 위
병실 밖의 작은 거실에 있던 윤미라가 노크 소리에 응했다.문을 열어보니 경호원이었다.“사모님, 예진 씨가 또 오셨습니다.”경호원이 윤미라에게 알렸다.윤미라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병실 안의 노동명은 귀가 어찌 밝은지 방금까지도 무관심했던 태도가 바로 변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돌아가라 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병원에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전해.”경호원은 도련님의 고함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예진 씨가 올 때마다 이런 반응이었다.도련님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하예진 뿐이었으니 바보라도 노동명이 하예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예진 씨를 들여보내세요.”윤미라는 아들의 말을 듣고도 오히려 들여보내라고 했다.두 사람 사이에 낀 경호원만 곤란해 났다.병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노동명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리려 했다.그러나 그의 다리 부상은 아직 낫지 않아 전혀 걸을 수 없었다. 몸을 돌려 침대에서 내리려 하니 몸 전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쿵 하는 소리가 났다.물을 마시려던 노진규는 물컵을 집어던지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아들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윤미라와 큰형수도 얼른 들어와서 노동명이 바닥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다가가 노진규와 함께 부축해 겨우 침대에 눕혔다.“예진 씨보고 돌아가라고 해요, 보고 싶지 않아요!”넘어진 충격으로 다리에 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여전히 하예진에게 돌아가라고 소리를 쳐댔다.자신의 낭패하고 쓸모없는 모습을 하예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또한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동정하는 모습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누구의 동정심도 필요하지 않았다.만약 불구가 된다면 남은 인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알았어, 알았어. 못 들어오게 할게. 어서, 예진 씨를 들여보내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세요.”윤미라는 서둘러 분부하여서야 아들의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그리고 돌아서
“동명아.”윤미라는 소리쳤다.아들을 돌봐달라고 하예진에게 부탁했는데 계속 밖에 서 있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노동명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감았다.윤미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아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것을 본 그녀는 또 가슴이 아파 휴지를 들고 식은땀을 닦아주었다.“네가 여전히 예진 씨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어. 또 무슨 고생을 이렇게 사서 하는 거니?”노동명은 여전히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하예진을 대하는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 괴로웠다.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자신이 이런 상황이니 하예진에게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멀쩡할 때도 그녀는 그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 다리가 불구가 되었으니 더더욱 마음을 줄 거란 희망이 없었고 오히려 동정할 것만 같았다.아들이 더는 말할 기색이 없자 윤미라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잠시 침묵에 잠긴 후 윤미라는 일어나서 나갔다.병실 문을 조용히 열자 문 앞에 서 있는 하예진이 보였다.“사모님, 동명 씨 괜찮아요?”문 앞에서는 병실 안의 인기척을 엿들을 수 있었다.윤미라는 다시 병실 문을 닫고는 하예진을 끌고 의자 앞으로 가서 앉으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예진 씨, 너무 마음에 두지 마요. 동명이는 지금... 괜찮아졌어요. 그저 침대에서 떨어져서 우리가 다시 침대로 옮겨줬어요.”어휴.노동명은 다리를 크게 다친 터라 침대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더 아플 것이 뻔했다.하예진은 그 장면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사모님, 저 들어가 볼게요.”윤미라는 하예진을 붙잡고 말했다.“예진 씨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들어갔다가 또 흥분하면 침대에서 다시 떨어질 수도 있어요.”하예진은 견고한 눈빛으로 말했다.“만약 또다시 침대에서 떨어지거든 제가 받아줄 거예요.”그 말을 듣고 윤미라는 잡았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하예진이 보온 도시락을 들고 병실로 다가오자 두 경호원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경호원 한 명이 난처해하
노동명은 겉으로는 냉담하기 그지없고 짜증을 내며 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막상 그녀를 보게 되자 눈빛은 탐욕스러워졌고 그녀의 이목구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모습을 마음 깊은 곳에 각인하려는 듯이.그는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목이 막힌 듯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니 부모님은 그녀가 못 들어오게 막아줬을 것이다.그러니 지금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노동명은 다시 눈을 감았다.부드러운 휴지가 피부에 닿자 노동명은 다시 눈을 떴다.꿈이 아니었다.진짜 하예진이다!어떻게 들어온 거지?누가 그녀를 들어오게 한 거지?노동명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하예진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차갑게 물었다.“누가 당신더러 들어오라고 했어? 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 당장 나가! 날 이렇게 해친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거야? 가, 빨리 가버려,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그녀는 담담하게 땀을 닦아주던 손을 내려놓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동명 씨 어머니가 매달 6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당신을 보살펴주라고 고용한 사람이에요. 기왕 돈을 받은 이상 일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동명 씨가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건 어때요? 눈을 감으면 안 보이잖아요.”하예진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린 후 물었다.“점심도 안 드셨죠? 곰탕을 끓여왔는데... 혼자 드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먹여드릴까요? 하루 일당 200만 원인 일이니까 어쨌든 좀 더 세심하게 돌봐야 해서요.”노동명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그리고 내가 당신을 해친 게 아니라 동명 씨가 차를 너무 빨리 몰아서 생긴 일이잖아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우빈이도 다 알고 있는 도리예요. 앞으로 운전할 때는 조심해 몰아요. 비행기를 몰듯이 하지 말고요.”하예진은 말을 하면서 일어나 침대 머리맡의 서랍에서
윤미라가 들어가려고 했으나 노진규가 그녀를 막았다.“예진이가 들어갔으니까 믿어봐.”두 명의 보디가드는 난처한 듯 말했다.“회장님, 저희가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 도련님께서 처벌을 내리실 겁니다.”회장님과 사모님은 도련님의 부모이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보디가드였다.“그럼 들어가 봐.”노진규는 보디가드 둘이나 보냈으니 아들이 하예진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노동명이 보기엔 하예진을 쫓아내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누군가 정말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한다면 그가 제일 먼저 뛰쳐나올 것이다.보디가드는 들어갔다.하예진은 침대 곁에 앉아 있었고 도련님은 침대를 두드리면서도 속수무책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를 내보내. 어서! 다시는 들어오게 하지 마!”보디가드가 들어온 걸 보자, 노동명은 침대를 두드리는 대신 하예진을 가리키며 빨리 내보내라고 했다.하예진은 보디가드를 보며 말했다.“날 기절시켜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면 해요. 대신 손을 못 쓰겠으면 곱게 나가요.”“...”보디가드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몰랐다.그들은 머뭇거리며 감히 하예진을 기절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도련님의 여잔데, 어떻게 감히 기절시켜!’“누가 할래요?”“쟤요.”“쟤요.”둘은 서로를 가리키며 말했다.하예진은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 가위바위보로 결정해요.”노동명은 썩은 얼굴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보디가드는 결국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기로 했다. 결국 진 보디가드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다가가 하예진을 기절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끌고 나가면 돼.”보디가드가 손을 쓰기도 전에 노동명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하예진 씨는 전 사모님 언니잖습니까. 감히 무례를 범할 수 없습니다. 전 사모님께서 저희가 하예진 씨에게 무례를 범했다고 하면 저흰 정말 억울합니다.”보다가드는 난처한 듯 말했다.“도련님, 전 대표님이 얼마나 사랑꾼인지 아시잖아요. 전 사모님께서 정말 저희에게 죄를 묻는다면 저희는 정말 끝장이에요. 도련님, 저희가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
하예진이 물었다.“예정이에게 없고 저한테 있는 게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동명 씨가 재활을 꾸준히 하시고 제가 관성에 없을 때 자신을 돌보고 시간이 나면 우빈을 돌봐 주세요. 우빈이도 동명 씨를 보러 자주 갈 거예요. 녀석이 지금 자기 아빠보다 동명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노동명은 의기양양하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우빈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그래. 우빈이 친아빠는 늘 우빈이 앞에서 내 험담만 하거든. 우빈이는 똑똑하니까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잘 알고 있어. 우빈이 친아빠가 내 험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친아빠를 더 싫어할걸.”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았다.주형인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자 하예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때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뭘 봐요? 내가 아직도 그 남자를 신경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단지 우빈이 아빠일 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죠? 그 사람을 언급하면 제 기분이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제가 어떻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직도 사랑했다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이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주형인도 약속한 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더는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관성은 우빈 뿐이었다.그러나 주형인은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지켜보지 못했다.그는 또 노동명이 친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나은 계부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했다.우빈이 아직 노동명을 두려워할 때,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우빈은 노동명을 대신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오늘날 우빈과 노동명의 사이가 매우 좋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주형인 부자가 만날 때마다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이 폐인으로 되었기에 하예진과 함께 한다면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노동명의 험담했다.또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돌아오면 요리들이 올라오게끔 미리 준비해 놓았다.그들은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후 고현은 곧 자리를 떠나 고성 호텔로 박 대표를 만나러 갔다.다행히도 하루 호텔과 고성 호텔은 가까웠다. 두 호텔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볼 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해 주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처 거리를 거닐며 강성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노동명이 뒤에 있는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일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거에요. 만약 이번 일조차 직면할 수 없다면 제가 강성에 있을 필요도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 계속 저의 레스토랑을 돌보는 게 나을걸요.”그렇게 하면 이경혜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다행이네.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선물로 사줄게.”하예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제가 사면 돼요. 선물할 필요 없어요.”“난 지금 네 남자 친구거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남자라고.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준 적 없는데. 사실 우리 집 객실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러 선물로 가득 차 있거든. 전부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들이야. 어떤 것은 너에게 선물했지만 네가 받지 않은 물건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너에게 미처 선물하지 못한 것도 들어있어. 네가 받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방에 넣어두었거든. 앞으로 우리가 한 가족으로 되면 그 물건들은 어차피 너의 것으로 될 테니까. 네가 가지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돈이 낭비되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너도 우리 가정의 돈이 낭비되는 게 싫지?”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과거에 그녀는 노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혼하고 싶지 않고 돈만 벌고, 사업을 일으켜 우빈을 잘 키워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두 사람을 1층으로 안내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에서 고현에게 뽀뽀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그는 고씨 그룹에서 고현에게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어쨌든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님이니까.전호영이 차를 몰고 고현과 함께 고씨 그룹을 떠났고 고현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식사를 마치고 나면 고현은 또 박 대표와 약속이 있었다.전호영은 그들이 하루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진과 노동명은 아직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예진 일행은 약 30분 뒤에야 호텔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어두운 얼굴로 노동명을 호텔로 밀고 들어갔다. 노동명은 계속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못 듣는 체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예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명도 더는 위로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위층으로 올라가 전호영이 안배해 준 식사하는 룸에 도착해서야 하예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동명이 형.”전호영은 하예진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하예진을 도우려고 했다.“호영 씨, 동명 씨가 혼자 몇 걸음 걸을 수 있어요.”하예진은 전호영의 도움 없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식탁 앞에 세웠고 노동명은 스스로 일어나 두 걸음 걷다가 다시 탁자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고현도 일어섰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하예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괜찮아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 일은 다 처리했어요?”모두 자리에 앉은 후 고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며 관심 있게 하예진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요.”하예진이 대답했다.“잘됐네요. 노 대표님, 내일 돌아가시려고요?”고현은 나지막이 물었다.노동명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예진이 보러 온 것뿐이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