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끓여서 이따가 병원에 들러 동명 씨에게 줄 생각이야.”하예진은 몸을 돌려 주머니에서 사 온 돼지 뼈를 찾아 깨끗이 씻은 후 곰탕을 끓일 준비를 했다.“나 먼저 사모님께 답장부터 하고.”그녀는 사모님에게 답장하겠다고 했던 일이 생각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정을 전했다.윤미라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감사하다고 하며 그녀에게 보수를 지불하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이제 때가 되어 돈을 받지 않아도 사모님은 어쩔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자신의 결정을 알린 후 하예진은 점심 준비로 바빴다.점심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그녀는 점심을 다 해놓았다.“예정아, 나 먼저 동명 씨에게 국을 가져갈게. 우빈이를 부탁해.”하예진은 보온 도시락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다 된 음식들 냄비에 있으니까 이제 일이 끝나면 효진이랑 먹어.”“언니는 점심 먹었어?”하예정이 관심 조로 물었다.서점은 요즘 바쁘지 않았다. 곧 여름 방학이라 이제 방학하기 며칠 전에만 학생들이 문제집을 사러 오게 되면 좀 바빠질 것이다.“좀 먹었어.”하예진은 밖으로 나가며 대답했다.“엄마, 나도 갈래요.”우빈이는 엄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 달아가며 소리쳤다.“우빈아, 너 아직 밥 안 먹었잖아. 이제 밥 다 먹으면 이모가 데려다줄게.”하예정이 따라와 우빈이를 안으며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꼬마는 조금 억울했지만 이모의 달래임에 곧 억울함은 깔끔히 사라지고 말았다.병원에서 노동명은 여전히 음식을 거절하고 있었다.그는 형수가 직접 가져다준 점심을 모두 뒤집어 놓았다.형수는 시동생의 난폭한 행동에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야 엎어진 음식에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동명아.”형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되지, 왜 다 엎지르는 건데? 어머님과 아버님도 아직 밥 안 드셨어.”노동명의 성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그녀는 그런 노동명이 이해되었고 마음이 아팠지만 음식을 먹지 않는 건 그렇다
“아가, 동명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윤미라는 급히 맏며느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동명이를 탓하지 마, 이미 충분히 괴로워하는데.”그 말을 듣고 큰형수는 말했다.“어머님, 나도 도련님이 괴로워하고 있는 거 알아요. 하지만 우리도 괴롭긴 마찬가지잖아요. 우리 모가 도련님의 건강을 관심하고 있어요. 의사도 잘 회복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지금의 태도를 봐서는 스스로 사형을 선고한 거랑 마찬가지ㅇ예요. 어머님도 그냥 내버려두지 마시고 도련님이 기운 내게 하셔야죠.”노동명이 사고가 난 후 시어머니가 자책하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돌보는 것을 큰형수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매일 음식을 가져다주었다.하지만 가끔 노동명은 만나주지조차 않았다.큰형수의 남편은 노씨 일가의 사업을 이어받은 사람이라 매일 바쁘게 일하면서도 동생의 부상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노동명은 슬픔에 빠져있기만 할 뿐 가족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았다.윤미라는 갑자기 눈을 붉혔다.그녀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나도 동명이를 기운 나게 하고 싶지만 우리가 하는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 매일 침대에 누워서 움직이기만 하면 다리가 심하게 아파 나니까 짜증이 날 만도 하지. 동명이를 탓하지 마, 동명이의 잘못이 아니니까...”“어머님.”큰형수는 휴지를 가져와 시어머니에게 건네며 한숨을 내쉬었다.“탓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서라도 일깨우려고 한 것뿐이에요.”윤미라는 눈물을 닦은 후 말했다.“동명이가 기운을 낼 수 있도록 예진 씨에게 찾아가 동명이를 좀 돌봐달라고 부탁했어. 동명이가 예진 씨를 그렇게 좋아했잖아? 예진 씨를 봐서라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도련님이 이제는 예진 씨도 보기 싫다고 하지 않았어요?”노동명이 사고가 난 후, 하예진은 매일 병원에 찾아갔지만 한 번도 노동명를 만나지 못했다. 노동명은 하예진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예전에는 부르지도 않았던 경호원까지 찾아 24시간 교대하며 병실 입구를 지키게 했다.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막기 위
병실 밖의 작은 거실에 있던 윤미라가 노크 소리에 응했다.문을 열어보니 경호원이었다.“사모님, 예진 씨가 또 오셨습니다.”경호원이 윤미라에게 알렸다.윤미라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병실 안의 노동명은 귀가 어찌 밝은지 방금까지도 무관심했던 태도가 바로 변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돌아가라 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앞으로도 병원에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전해.”경호원은 도련님의 고함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예진 씨가 올 때마다 이런 반응이었다.도련님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하예진 뿐이었으니 바보라도 노동명이 하예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예진 씨를 들여보내세요.”윤미라는 아들의 말을 듣고도 오히려 들여보내라고 했다.두 사람 사이에 낀 경호원만 곤란해 났다.병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노동명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리려 했다.그러나 그의 다리 부상은 아직 낫지 않아 전혀 걸을 수 없었다. 몸을 돌려 침대에서 내리려 하니 몸 전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쿵 하는 소리가 났다.물을 마시려던 노진규는 물컵을 집어던지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아들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윤미라와 큰형수도 얼른 들어와서 노동명이 바닥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다가가 노진규와 함께 부축해 겨우 침대에 눕혔다.“예진 씨보고 돌아가라고 해요, 보고 싶지 않아요!”넘어진 충격으로 다리에 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여전히 하예진에게 돌아가라고 소리를 쳐댔다.자신의 낭패하고 쓸모없는 모습을 하예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또한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동정하는 모습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았다.누구의 동정심도 필요하지 않았다.만약 불구가 된다면 남은 인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알았어, 알았어. 못 들어오게 할게. 어서, 예진 씨를 들여보내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세요.”윤미라는 서둘러 분부하여서야 아들의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그리고 돌아서
“동명아.”윤미라는 소리쳤다.아들을 돌봐달라고 하예진에게 부탁했는데 계속 밖에 서 있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노동명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감았다.윤미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아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것을 본 그녀는 또 가슴이 아파 휴지를 들고 식은땀을 닦아주었다.“네가 여전히 예진 씨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어. 또 무슨 고생을 이렇게 사서 하는 거니?”노동명은 여전히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하예진을 대하는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 괴로웠다.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자신이 이런 상황이니 하예진에게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멀쩡할 때도 그녀는 그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는데 이제 다리가 불구가 되었으니 더더욱 마음을 줄 거란 희망이 없었고 오히려 동정할 것만 같았다.아들이 더는 말할 기색이 없자 윤미라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잠시 침묵에 잠긴 후 윤미라는 일어나서 나갔다.병실 문을 조용히 열자 문 앞에 서 있는 하예진이 보였다.“사모님, 동명 씨 괜찮아요?”문 앞에서는 병실 안의 인기척을 엿들을 수 있었다.윤미라는 다시 병실 문을 닫고는 하예진을 끌고 의자 앞으로 가서 앉으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예진 씨, 너무 마음에 두지 마요. 동명이는 지금... 괜찮아졌어요. 그저 침대에서 떨어져서 우리가 다시 침대로 옮겨줬어요.”어휴.노동명은 다리를 크게 다친 터라 침대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더 아플 것이 뻔했다.하예진은 그 장면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사모님, 저 들어가 볼게요.”윤미라는 하예진을 붙잡고 말했다.“예진 씨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들어갔다가 또 흥분하면 침대에서 다시 떨어질 수도 있어요.”하예진은 견고한 눈빛으로 말했다.“만약 또다시 침대에서 떨어지거든 제가 받아줄 거예요.”그 말을 듣고 윤미라는 잡았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하예진이 보온 도시락을 들고 병실로 다가오자 두 경호원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경호원 한 명이 난처해하
노동명은 겉으로는 냉담하기 그지없고 짜증을 내며 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막상 그녀를 보게 되자 눈빛은 탐욕스러워졌고 그녀의 이목구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모습을 마음 깊은 곳에 각인하려는 듯이.그는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목이 막힌 듯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예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니 부모님은 그녀가 못 들어오게 막아줬을 것이다.그러니 지금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노동명은 다시 눈을 감았다.부드러운 휴지가 피부에 닿자 노동명은 다시 눈을 떴다.꿈이 아니었다.진짜 하예진이다!어떻게 들어온 거지?누가 그녀를 들어오게 한 거지?노동명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하예진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차갑게 물었다.“누가 당신더러 들어오라고 했어? 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 당장 나가! 날 이렇게 해친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거야? 가, 빨리 가버려,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그녀는 담담하게 땀을 닦아주던 손을 내려놓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동명 씨 어머니가 매달 6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당신을 보살펴주라고 고용한 사람이에요. 기왕 돈을 받은 이상 일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동명 씨가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건 어때요? 눈을 감으면 안 보이잖아요.”하예진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린 후 물었다.“점심도 안 드셨죠? 곰탕을 끓여왔는데... 혼자 드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먹여드릴까요? 하루 일당 200만 원인 일이니까 어쨌든 좀 더 세심하게 돌봐야 해서요.”노동명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그리고 내가 당신을 해친 게 아니라 동명 씨가 차를 너무 빨리 몰아서 생긴 일이잖아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우빈이도 다 알고 있는 도리예요. 앞으로 운전할 때는 조심해 몰아요. 비행기를 몰듯이 하지 말고요.”하예진은 말을 하면서 일어나 침대 머리맡의 서랍에서
윤미라가 들어가려고 했으나 노진규가 그녀를 막았다.“예진이가 들어갔으니까 믿어봐.”두 명의 보디가드는 난처한 듯 말했다.“회장님, 저희가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 도련님께서 처벌을 내리실 겁니다.”회장님과 사모님은 도련님의 부모이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보디가드였다.“그럼 들어가 봐.”노진규는 보디가드 둘이나 보냈으니 아들이 하예진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노동명이 보기엔 하예진을 쫓아내고 싶어 안달이었지만 누군가 정말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한다면 그가 제일 먼저 뛰쳐나올 것이다.보디가드는 들어갔다.하예진은 침대 곁에 앉아 있었고 도련님은 침대를 두드리면서도 속수무책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를 내보내. 어서! 다시는 들어오게 하지 마!”보디가드가 들어온 걸 보자, 노동명은 침대를 두드리는 대신 하예진을 가리키며 빨리 내보내라고 했다.하예진은 보디가드를 보며 말했다.“날 기절시켜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면 해요. 대신 손을 못 쓰겠으면 곱게 나가요.”“...”보디가드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쩔 바를 몰랐다.그들은 머뭇거리며 감히 하예진을 기절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도련님의 여잔데, 어떻게 감히 기절시켜!’“누가 할래요?”“쟤요.”“쟤요.”둘은 서로를 가리키며 말했다.하예진은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 가위바위보로 결정해요.”노동명은 썩은 얼굴로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보디가드는 결국 가위바위보로 결정하기로 했다. 결국 진 보디가드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다가가 하예진을 기절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끌고 나가면 돼.”보디가드가 손을 쓰기도 전에 노동명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하예진 씨는 전 사모님 언니잖습니까. 감히 무례를 범할 수 없습니다. 전 사모님께서 저희가 하예진 씨에게 무례를 범했다고 하면 저흰 정말 억울합니다.”보다가드는 난처한 듯 말했다.“도련님, 전 대표님이 얼마나 사랑꾼인지 아시잖아요. 전 사모님께서 정말 저희에게 죄를 묻는다면 저희는 정말 끝장이에요. 도련님, 저희가
노동명이 썩은 표정으로 명령했으나 하예진은 기분 좋게 대답했다. “좋아요.”그녀는 일어나서 보온 도시락을 침대 옆 테이블에 다시 놓은 다음 노동명을 부축하려 했다.노동명은 요즘 살이 빠지긴 했으나 덩치는 여전히 컸다. 그는 의도적으로 힘을 주지 않으면서 하예진이 대신 힘을 쓰게 했다.하예진은 지난번 다친 다음 완전히 나아질 때까지 쉬다보니 힘이 이전만큼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노동명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다. 노동명도 힘들었다.하예진은 힘이 부족했고, 그는 다리가 아파서 힘을 쓰기 어려웠다.처음에 의도적으로 힘을 주지 않았지만, 나중에 빨리 일어나고 싶었던 그는 하예진이 힘을 쓸 때마다 함께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품었을 때 반응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동명 씨, 이렇게 하면 다리가 아파요?”하예진이 이렇게 묻자, 노동명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프지 않을 리가. 움직이면 아프죠.”“미안해요, 내가 힘이 부족해서 한 번에 동명 씨를 들지 못했어요. 아, 일으키지 못했어요.” 하예진은 몇 번 숨을 돌린 후, 침대 맨 끝에서 테이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서 보온 도시락을 그 위에 올렸다.“동명 씨, 이 수프 맛있는지 한 번 먹어봐요.” 노동명은 무심하게 말했다. “숟가락 줘요.”하예진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방금 그릇을 찾을 때 숟가락을 봤었다. 숟가락을 찾은 후 그녀는 깨끗이 닦아서 그에게 주었다.오랫동안 화를 낸 노동명은 이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가 수프를 다 마신 후에는 당장 나가 줘요.”“네, 나갈게요.” ‘한 번만 나갔다가 들어올게요.’하예진은 속으로 말했다.“동명 씨, 수프는요 뜨거울 때 마셔야 해요. 식으면 맛도 없고 배탈 나요.” 하예진은 그를 재촉했다.살이 이렇게 많이 빠졌는데 얼른 몸보신해야 했다.노동명이 수프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 하예진이 부드럽게 말했다.“동명
노동명은 심호흡하며 자신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했다.이 여자는 그가 화를 내든 말든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방금 그가 화를 내면서 나가라고 할 때, 그녀는 덤덤하게 침대 앞에 앉아서 그가 침대를 세게 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열 받아서 죽겠는데 그녀는 오히려 정신을 가다듬고 원숭이 공연 보듯 그를 쳐다보기도 했다.노동명은 그래도 체면을 유지하고 싶었다.아까처럼 하예진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하예진 씨.”노동명은 하예진을 보며 차갑게 말했는데, 눈동자 깊은 곳에서 그녀에 대한 정을 억누르고 있음이 보였다.“내가 어떤지 봤잖아요. 난 당신이 돌봐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얼른 나가요.” 하예진은 침대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다음 미소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살이 빠진 후 결혼 전 비주얼을 되찾은 그녀는 웃을 때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미소에 담긴 위로를 보자, 노동명의 분노는 절로 누그러졌다.“동명 씨, 듣기와 이해력에는 문제가 없죠?”하예진이 그에게 묻자, 그는 서늘하게 답했다.“온몸이 다치긴 했지만 청력과 이해력에는 지장이 없어요.”다른 상처는 다 나아졌는데 심하게 다친 다리가 아직도 많이 아팠다.“좋아요. 동명 씨 청력과 이해력에 문제가 있다면 사모님께 돈을 더 주셔야겠네요. 들어올 때 이미 말했잖아요, 난 당신 어머니께서 주신 돈 때문에 당신을 돌봐주는 것뿐이에요. 날 간병인처럼 대해줘요.” “사모님께서 주신 일당은 200만 원이고 8시간 근무에요. 저녁에 출근할 필요가 없으면, 동명 씨가 쫓아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퇴근할 거예요. 지금 가면 사모님께서 돈을 깎으실까 봐 걱정돼요. 돈을 생각해서라도 난 여기에서 동명 씨를 지킬 수밖에 없어요.”“하루 일당 200만 원은 제 가게의 2, 3일 치 수입과 맞먹거든요.”“...”그녀는 아마 일 푼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어머니는 그녀에게 하루에 200만 원을 주겠다며 돌봐 달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컸다.“동명 씨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