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빈은 매우 고집스럽다.애초에 주형인이 아이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할 때도 아이는 동명 아저씨가 아주 무섭긴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니 아빠가 어떻게 말하든 아저씨에 대한 인상이 바뀌지 않았다.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인 거고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을 좋게 말할 수 없고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엄마 기분 안 나빠. 방금 뭐 좀 생각한 거야.”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봐, 엄마 지금 웃고 있잖아.”아이는 똑똑하면서도 예민했다.엄마가 웃으니 방금 자신이 한 말 때문에 화난 게 아니라고 믿었다.“엄마, 동명 아저씨가 엄마랑 결혼하고 싶다는데 진짜예요?”아이는 마음이 놓이자 선뜻 이런 질문을 해댔다.“...”하예진은 어이가 없었다.노동명도 참, 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지. 우빈이가 고작 몇 살인데 이런 말을 알아들을 리가 있을까?아무리 아이가 노동명을 아빠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이의 결정이 그녀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그건 아저씨가 우빈이한테 장난친 거야. 마음에 새겨두지 마.”아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저씨가 장난친 거구나.”“가자. 엄마가 이모네 집으로 바래다줄게.”하예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하예정의 집으로 향했다.“네.”우빈은 이젠 매일 이모네 댁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에 적응됐다.전태윤의 피크 별장으로 가야 하니 그녀는 스쿠터를 타지 않았다. 배터리가 부족해 가는 도중에 멈춰서면 골치 아프니까.그녀는 아예 새 차를 타고 아들을 피크 별장으로 실어갔다.하예정은 이제 막 심효진과 통화를 마쳤다.심효진은 당연히 투자를 확대하고 땅을 사서 회사를 건축하는 일을 찬성했다.“예정아, 난 너랑 소현 언니 완전히 믿으니까 두 사람이 알아서 결정하고 나한테 얘기만 해주면 돼. 난 전부 찬성이야.”하예정과 그녀는 십여 년의 우정을 쌓아와 지피지기와 같은 존재이다.성소현은 성씨 일가의 따님이고 성품도 좋은 데다가 하예정의 사촌 언니이니 그녀가 파트너인
나오자마자 우빈이가 하예정의 볼에 뽀뽀하는 걸 보더니 아니 글쎄 세 살짜리 애와 질투하고 있었다.전태윤은 아이를 안고 먼저 방에 돌아가며 얘기했다.“이모부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아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이어서 이모부의 장편 연설이 시작됐다.아이는 마냥 한심할 따름이었다.이모부가 한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고 유일하게 캐치한 한 가지는 바로 우빈이도 남자기에 이모에게 자꾸 뽀뽀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다만 이모인데 대체 왜?이모는 우빈에게 뽀뽀할 수 있는데 왜?결국 아이는 어른들의 세계가 참 복잡하다는 결론밖에 못 지었다.전태윤이 아이에게 한 말은 하예정을 어이없게 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우빈이 데리고 올라가서 씻어요.”“그래.”전태윤은 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며 계속 말을 이었다.“오늘 밤엔 이모부가 씻겨줄 거야.”“우빈이 장난감 가지고 가서 씻을 거예요.”“물총 챙겨.”“네.”어른과 아이가 사이좋게 조건을 상의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이때 하예진이 동생에게 말했다.“제부 저러면 우빈이 버릇 나빠져.”“아니야. 많이 예뻐해도 원칙은 있어. 그냥 예뻐해 주는 건 아니야. 언니가 애 교육을 잘 시켜서 응석받이로 크지 않았어.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알아.”우빈은 지금 만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성씨 일가와 전씨 일가 모두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살핀다.“너한테 할 얘기 있어.”하예정이 언니를 쳐다봤다.“동명 씨 어머님이 아까 밤에 잠깐 만나자고 해서 얘기 나누고 왔어.”동생 앞에서 하예진은 굳이 뭘 숨길 필요가 없다.하예정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그녀와 상의하고 그녀의 의견을 묻는다.언니인 그녀도 마찬가지이다.“사모님이 몇백억짜리 수표를 쥐여주며 언니더러 동명 씨 멀리 떠나래?”하예진이 째려보자 그녀가 웃었다.“드라마에서 자주 나오길래.”하예정은 언니가 윤미라와 만났다고 하여 절대 손해 볼 거란 걱정은 없다.“사모님이 많은 얘기
“예정아, 이래서 우린 자매인가 봐. 나도 똑같이 반박했어. 왜 내가 떠나야 하냐고, 왜 내가 희생해야 하냐고 되물었어.”“언니, 피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야. 지금 있는 그 거리에서 이사하지 마. 가게를 연 지도 한동안 됐고 이제 겨우 단골이 쌓여가는데 지금 이사하면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언니 마음만 잘 단속하고 동명 씨한테 넘어가지만 않으면 동명 씨가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어. 만약 사모님 요구대로 우빈이 데리고 관성을 떠났는데 동명 씨가 평생 언니를 잊지 못하고 여생을 언니네 모자만 찾는 일에 전념하면 어떡할 거야?”“한동안 구애했고 아무런 대답도 못 들었어. 게다가 사모님이 계속 설득하고 말리고 계시니 시간이 지나면 포기하고 마음 접을 거야. 그땐 언니도 훨씬 홀가분해질 거고.”하예진도 똑같은 생각이었다.떠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동생도 같은 뜻이니 가게를 옮기지도 않고 관성을 떠날 일은 더더욱 없다.본인의 마음은 본인이 꼭 잘 단속할 테니까.동생에게 털어놓고 동생의 의견도 들으니 하예진은 더는 사모님과의 대화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았다.애쓰고 싶다면 윤미라 스스로 애쓰면 될 일이다.어차피 하예진은 이미 윤미라에게 맹세했다. 윤미라가 반대하는 한 절대 노씨 일가에 시집갈 일이 없다고 말이다. 설사 윤미라가 허락한다고 해도 하예진은 반드시 노씨 일가에 시집간다는 보장이 없다.“먼저 갈게. 내일 또 가게 문 열어야 해.”하예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생에게 말했다.“언니, 너무 늦었어. 그냥 여기서 자.”“이 길은 이젠 너무 익숙해졌어. 더 늦어도 혼자 운전해 갈 수 있어. 나 또 새벽에 일어나야 해서 너랑 제부 쉬는 데 방해돼. 특히 제부는 업무가 다망한데 제대로 휴식하지 못하면 다음 날 어떻게 일하라고 그래.”하예진은 동생의 호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한사코 동생네 집에서 밤을 지새우지 않겠다고 하니 하예정도 어쩔 수 없이 언니를 배웅했다.“우빈이 어느 유치원 보낼지는 정했어?”하예정이 조카 유치원에 관해 묻자 하
“알았어. 그럼 바로 태윤 씨한테 전할게.”하예정은 우빈의 학비 문제로 언니와 다투지 않았다.언니가 우빈을 관성 유치원에 보내겠다고만 하면 된다. 언니도 학비쯤은 부담할 수 있으니까.하예진의 말대로 우빈은 그녀의 아들이니 당연히 엄마가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만약 언니인 하예진이 학비를 부담할 능력이 못 된다면 아이를 관성 유치원에 보낼 생각도 없을 것이다.하예정은 언니를 너무 잘 안다.그녀가 지금 전씨 일가의 사모님이 되어 차고 넘치는 게 돈이라지만 언니는 끝까지 동생에게 돈 얘기를 언급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것이다.하예진은 동생에게 돈 얘기를 꺼냈다가 자신 때문에 동생이 시댁에서 지위가 흔들릴까 봐 늘 걱정이다.하예정도 돈만 받고 가족들의 일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보다 상대에게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더 나으니까.“예정아, 고마워들. 너희 부부 덕분에 우빈이가 좋은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겠어.”하예진은 동생 부부에게 너무 감격스러웠다.“언니, 또 이런 말 하면 나 진짜 화낼 거야. 언니가 없으면 난 무슨 지경이 됐을지도 몰라. 우린 친자매야.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자매라고. 우빈이도 내가 키워온 아이라 친자식이나 다름없어. 아이의 교육 문제에서 나도 언니만큼 중시해. 우리가 능력이 없고 조건이 안 될 땐 좋은 학교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지만 이젠 능력도 있고 기회도 생겼으니 당연히 제일 좋은 곳으로 보내야지, 안 그래?”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알았어. 이젠 그런 겉치레의 말은 안 할게. 늦었어, 너도 얼른 들어가서 자. 마중 나올 필요 없어.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이젠 이곳이 내 집 같아.”“언니는 말로만 자기 집 같다면서 몸이 나으니 가장 먼저 월세방으로 돌아갔잖아. 새집 사준다고 해도 기어코 싫다고 하고.”하예정이 투덜댔다.“나 혼자 살 수 있어. 네 마음만 받을게. 차 사는 것도 마찬가지야. 내가 쓸 일이 생기면 당연히 혼자 가서 뽑아. 너희한테 받을 필요 없어.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예정은 얼른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잡은 채 방으로 돌아갔다.전태윤은 이제 막 위층에서 내려오며 이모와 조카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녀석 빨리도 도망치네. 옷 갈아입히자마자 토끼보다 더 빨리 도망쳐. 처형은 갔어?”“네, 갔어요.”곧이어 부부가 소파에 앉았다.우빈은 두 사람 앞에서 혼자 장난감을 놀았다.“여보, 우빈이 유치원 말인데 언니가 당신더러 도와 달라요. 우빈이를 관성 유치원으로 보낼 수 있으면 그렇게 해줘요. 돈은 얼마가 필요하면 그때 가서 언니한테 말해주면 돼요. 언니가 비용을 부담하겠대요.”“내가 도울 수 없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어. 나한테 맡겨. 우빈이는 무조건 관성 유치원으로 보낼 거야. 비용도 신경 쓰지 마. 설사 비용이 생긴다고 해도 내가 대신 내면 돼. 학비는...”전태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예정이 덥석 가로챘다.“언니가 우빈이는 제 아들이니 학비는 반드시 자신이 부담하겠대요. 엄마로서의 책임이래요 이건. 언니도 학비를 감당할 수 있으니 우빈이를 제일 좋은 유치원에 보내겠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언니랑 학비로 다투면 분명 우빈이를 관성 유치원에 안 보내려고 할 거예요. 여보, 당신이 내준 미션 나 너무 어려워요.”전태윤은 처형의 성격을 되새기며 말했다.“그래, 우리도 다투지 말자. 처형께 드리는 별장은 무조건 드릴 거야. 시간 날 때 집 보러 다니자 우리. 인테리어 다 된 거로 봐. 처형이 또다시 인테리어에 신경 쓸 필요 없게.”“그래요.”하예정은 남편에게도 오늘 밤 윤미라가 하예진을 만난 일을 알렸다.이에 전태윤은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만약 전씨 일가와 성씨 일가가 없었다면 윤미라의 성격상 일찌감치 하예진을 관성에서 내쫓아버렸을 것이다.“처형과 동명의 일은 두 사람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 사모님이 강압적으로 처형을 대하지만 않으면 우리도 끼어들지 말자.”하예정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진은 홀로 월세방에 돌아오다가 의외로 전남편 주형인이 집 문 앞에 서 있는 걸 발견
병원에서 나온 후 주형인은 서현주와 함께 다른 백화점으로 가서 그녀가 사고 싶은 물건을 샀다.집에 돌아왔지만 줄곧 노동명과 우빈이가 친하게 지내던 장면이 떠올라 기분이 잡쳤다. 노동명이 진짜 아들을 뺏어가고 아빠 노릇을 할까 봐 걱정됐다.서현주가 잠든 후 그는 몰래 집에서 나와 간식거리와 장난감을 사서 바로 전 아내의 집으로 달려왔다.하예진의 마음은 되돌릴 생각이 없다.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으니 그와 하예진은 이번 생에 더는 불가능하다.하지만 아들은 그의 핏줄인데 어찌 전처에게 대시하는 남자와 그토록 친밀하게 지낸단 말인가? 노동명은 이젠 우빈의 아빠 자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당신 아내 뱃속의 아이는 괜찮지?”하예진이 차분하게 물었다.주형인은 난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응, 괜찮아.”“우빈이는 먹을 것도, 장난감도 부족하지 않아. 이렇게 많이 사 올 필요 없어.”“알아 부족하지 않은걸. 하지만 이건 아빠로서의 내 마음이야. 예진아, 내가 떠나고 우빈이 실망하지 않았어?”주형인은 아들에게 미안했다.전에는 아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적었다.그때 마침 서현주와 불타는 사랑을 할 때라 모든 신경이 그녀에게 꽂혔다.이혼한 후에도 아들과 함께한 횟수가 손꼽힐 만큼 적었다.“조금 실망했는데 금방 나아졌어.”주형인은 아들이 자신이 떠난 것 때문에 실망했다고 하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아들은 친아빠인 그를 신경 쓰고 있으니까.하예진은 전남편에게 온수 한 잔 따랐다.주형인은 잠시 침묵한 후 하예진을 바라보며 떠보듯이 물었다.“예진아, 너랑 동명 씨...”“왜?”하예진이 되물었다.“아니야, 아무것도. 난 왠지 너랑 동명 씨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네가 재혼하는 걸 말리진 않는데 우빈의 친엄마로서 재혼한다면 아이도 데리고 가야 하잖아. 만약 불행한 결혼을 해서 내 아들이 상처받으면 어떡할까 두려워.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주형인은 자신의 질투에 핑계를 둘러댔다.“예진아, 꼭 생각 잘하고 결정해야 해.
임신 전에도 시댁 식구들이 우빈을 관심하는 걸 꺼렸는데 이젠 임신까지 했으니 더 질색한다.서현주를 언급하자 주형인은 역시나 좌불안석이었다.그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전남편을 보낸 후 하예진은 문을 닫고 안으로 잠그며 마음속으로 은은한 쾌감이 들었다.전남편이 재혼하고 난리법석인 나날을 보내서일까?한편 그녀와 우빈은 점점 더 나은 삶을 보내고 있다. 이게 바로 전남편에 대한 최고의 복수이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이어진 며칠 동안 하예정이나 하예진이나 전부 바삐 보냈다.노동명은 여전히 매일 아침 하루 토스트에 와서 아침을 먹고 하예진에게 꽃과 갖은 선물 공세를 했다. 하예진이 받지 않아도 그는 매일 견지했다.전태윤은 우빈을 성공적으로 관성 유치원에 등록시켰다. 9월이면 우빈은 관성 유치원으로 다닐 수 있다.날도 점점 무더워지고 곧장 6월에 접어들었다.관성의 6월은 그야말로 찜통더위였다.신혼여행 중이던 소정남, 심효진 부부는 이런 무더운 6월에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소정남은 아내와 신혼을 더 즐기려고 일부러 전태윤에게 신혼 휴가를 두 달이나 받았다.신혼여행을 떠날 때 이들 부부는 밖에서 두 달 동안 실컷 놀다가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한 달이 지나자마자 집에 돌아왔다.부부가 미리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에 하예정은 바로 수상한 조짐이 들었다. 그녀가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침 성소현도 본가에서 돌아와 이참에 두 자매가 함께 소씨 일가로 방문했다.소씨 일가에 도착하니 심효진이 침대에 누워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두 자매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아줌마, 저 올라가서 효진이 볼게요.”하예정은 초조한 마음에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싶어 최민주와 더는 격식을 차릴 새도 없이, 의자에 얼마 앉아있지도 않고 바로 위층에 올라가려 했다.이에 최민주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가정부랑 함께 올라가 봐.”소정남도 위층에 있었다.최민주는 가정부에게 분부하여 하예정과 성소현을 위
“처음 석 달은 각별히 조심해야 해. 여행하고 싶으면 나중에 애 낳고 나가 놀자. 네가 싫증 날 때까지 함께 놀게. 맹세해.”소정남은 아내에게 다짐했다.현재는 모든 중심을 그녀 뱃속의 아기에게 두어야 한다.심효진이 건강하고 이제 막 임신했다고는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소정남은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어 아내가 임신한 걸 알자마자 모든 여행 일정을 스톱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심지어 큰형에게 가정용 개인비행기를 빌려서 말이다.소지훈도 제수의 임신 소식을 매우 중시하며 소정남의 전화를 받자마자 그들 부부에게 개인비행기를 보내서 집까지 데려왔다.소정남은 그들 세대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한 사람이고 심효진 뱃속의 아이도 소씨 일가의 첫 후대이니 그녀의 임신 소식은 온 가족을 흥분케 했다. 부부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많은 친척들이 영양제를 보내왔다.일부 연장자 친척들은 아이가 태어난 후 사용할 생활용품까지 한가득 사 보냈다.다들 이토록 심효진의 아이를 중시하는데 소정남이 긴장을 늦출 수 있을까?“아이가 태어나면 또 애를 두고 나갈 순 없다고 여행을 마다할 거면서! 얼른 가서 예정이, 소현 언니 문 좀 열어줘.”심효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소정남이 재빨리 그녀를 말렸다.“누워있어. 금방 열어줄게.”소정남은 아내가 침대에서 내려올까 봐 얼른 가서 문을 열었다.“정남 씨.”소정남을 본 하예정과 성소현은 이구동성으로 그에게 인사했다.“예정 씨, 소현 씨, 오셨어요. 효진이 방에서 쉬고 있어요.”소정남은 웃으며 길을 내주었다.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갈 때 그는 나지막이 하예정을 불렀다.하예정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예정 씨, 저 대신 효진이 꼭 좀 잘 봐주세요. 침대에서 내려오면 안 돼요. 우리 몇 시간 동안 비행기 타고 이제 막 돌아와서 많이 피곤할 거예요. 효진이가 얌전히 있지 못하고 자꾸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해서 걱정이네요.”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알았어요. 제가 대신 잘 돌볼게요. 함부로 나다니지 않게 잘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