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미안해.”하예정은 그동안 언니를 속인 것이 미안했다.언니의 말대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았으니, 세상 누구를 속이더라도 언니를 속이면 안 되었다. 그것이 언니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하지만 많은 사람이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속이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일까?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지 물어보기는 했을까?“네가 나 걱정하는 거 알아. 네 탓 하는 거 아니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언니한테 숨기지 마. 이건 언니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넌 신경 쓸 필요 없어.”“응, 나 언니 믿어. 화이팅!”“그래, 고마워. 너 일 봐. 나 우빈이 데리고 한 잠 자야겠어.”“오후에 학생들 수업 끝나고 바쁠 때 지나고 나면 언니 보러 갈게.”“그래.”하예진은 전화를 끊고 아들을 바라보았다.우빈이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우빈아, 자야지.”하예진은 휴대폰을 다시 서랍에 넣고, 아들을 안아주려 했지만 우빈이가 거절했다.“엄마, 저 혼자 올라갈 수 있어요. 이모가 엄마 아직 안 낳았으니까 우빈이 안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빈이는 혼자 침대에 올라왔다.하예진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혼할 때 가장 잘한 일이 바로 아들의 양육권을 쟁취한 것이다.하예진은 오후에 링거를 맞을 필요가 없었고, 우빈이도 점심시간에 엄마의 침대에서 쉬었다.녀석의 생활 패턴은 아주 규칙적이었다. 엄마 옆에 누워 한 손으로 엄마의 얼굴을 만지다가 엄마의 팔을 껴안고 비로소 편안하게 잠들었다.하예진은 아들을 부드럽게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으로 노동명이 자신을 좋아하는 일이 생각났다.그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하예진은 동생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동명이 만약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중환자실 입구에서 밤새워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작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예진은 재혼할 수 없었다. 재혼에 실패할까 봐 두렵기도 했고, 우빈이가 괴롭힘과 학대를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전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 문제를 해결한 후, 하예진은 고향 가족들의 소식이 끊긴 지 오래였다.가끔 고향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녀와 여동생이 말하는 것은 모두 채소 농장 진행 상황에 관한 것이었다.하예정은 그들의 채소 농장이 6월 초에 심기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먼저 공심채, 배추, 청경채와 가지, 고추 등을 심을 계획이었다.어떤 채소를 심을지 하예정은 성소현과 심효진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의 역할은 확실했다. 하예정은 어떤 채소를 심고 어떻게 관리할지를 책임졌고, 성소현과 심효진은 마케팅에 열중했다.“들어오라고 하세요.”하예진은 고향 사람들과 더 이상 왕래하고 싶지 않았지만, 기왕 이렇게 찾아왔고, 또 웃어른이었으니 경호원더러 두 노인을 들여보내라고 했다.하지철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들어왔다.두 노인이 앞에서 걸었고, 하지철은 과일 한 봉지를 들고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우빈이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하예진은 작은 홀에 가서 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불렀다.“예진 누나.”하지철은 과일 봉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하예진을 불렀다.하예진은 간단히 응답하고 세 사람을 자리에 앉혔다.“예진아, 괜찮은 거야?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도 우리한테 말 한마디 안 했어?”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예진의 안부를 물었다.할머니도 걱정스러운 말을 몇 마디 하려고 입을 움직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만 삐죽거렸다.그녀는 하예진 자매와 정말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었다.그때 그 소란을 피우고, 지금은 일이 해결되어 두 노인이 셋째네 집에서 얌전히 살고 있지만, 하예진 자매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할머니는 여전히 두 손녀가 불효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하예정은 재벌가에 시집가서 친정 식구들을 보살펴주지는 않고 자기 행복만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아니라 다른 손녀가 재벌가에 시집갔다면 자신은 아마 귀부인으로 추앙받고 부귀영화를 누릴
오늘 이렇게 조용한 이유가 전 시어머니와 그 가족들의 소란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알고 보니 그녀의 여동생이 그녀를 도와 문제를 해결해 준 덕분이다. 게다가 이 방법이 좋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늘 불합리하고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또 연세가 많으시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주씨 가문 집 앞에 드러눕기만 해도 효과가 있었다.“예정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이미 오신 거 알고 있어요?”“알고 있어. 예정이가 이미 우리를 위해 사람을 보내 집을 마련해주고 생필품도 다 준비해 줬어. 우리 셋집은 주씨 가문의 셋집과 같은 층이고 그 집안 사람들이 드나들려면 우리 집 문 앞을 지나가야 해.”하예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그럼, 할아버지 할머니 잘 부탁드려요.”그녀는 전 시어머니와 그 가족들의 질척거림에 싫증이 났다. 항상 그녀를 주형인과 재결합하도록 설득했다. 주형인과 서현주는 이미 혼인신고까지 마친 상태였다. 현재 서현주가 잡혀들어갔지만 두 사람은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하예진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주형인과 서현주가 이혼하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그녀가 아직 주씨 가문의 며느리일 때 전 시어머니는 가족들과 힘을 합쳐 그녀를 비난했다. 주형인을 꼬드겨 그녀와 부부싸움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돈을 벌지 못한다고 괴롭히며 주형인에게 그녀와 더치페이하도록 강요했다.그녀에게 집안을 위해 나가서 돈을 벌어오길 강요하면서도 우빈이를 돌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딸의 아이 셋을 돌봐주었다. 주형인이 매달 부모님에게 준 생활비도 모두 자신들 딸에게 보태주었다.이제 이혼했고 그녀는 이미 이혼의 그늘에서 벗어나 작은 브런치 가게를 열어 돈을 벌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전 시어머니는 이제 와서 그녀가 다시 돌아와 주길 바랐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하예진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걸까?그들 주씨 가문이 그녀에게 며느리가 되어달라고 하면 그녀가 며느리 노릇을 해야 하고 필
“할아버지 할머니 이거 영양제인데 모두 비싼 거예요. 근데 어르신들에게 효과가 좋다네요. 두 분이 천천히 드세요. 다른 사람 나눠주지 마시고요.”그녀도 이렇게 많을 먹을 수 없었다. 두 분에게 돈을 드릴 수는 없었지만 이런 물건은 드릴 수 있었다.그 당시에 두 분이 자매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었다. 지금 이렇게 두 분이 그녀를 도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해도 하예진은 한순간에 바로 두 분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그녀의 여동생이 두 분을 설득해서 그녀를 돕게 했다는 것은 분명 두 분에게 그만한 이익을 주었다는 것이다.“예진아. 네가 지금 입원했는데 영양제는 네게 담겨두고 먹으렴. 몸 잘 챙기거라.”할머니는 입으로는 거절했지만 작은 손주를 앞세워 물건이 담긴 큰 비닐봉지를 가져오게 했다.하예진은 세 사람을 배웅하며 하지철에게 두 분을 잘 모시라고 당부한 뒤 병실로 돌아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노씨 그룹.노동명은 방금 한 고객과 계약을 협상한 뒤 고객을 아래층으로 배웅하려고 할 때 비서가 그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노 대표님, 어머님께서 오셨습니다.”“알겠어.”노동명은 이미 어머니가 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다.점심에 그는 병원으로 하예진을 만나러 갔다고 어머니를 마주쳤고 그는 어머니가 또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러 올 것이라고 짐작했다.아니, 단 3시간 만에 그의 어머니는 그의 회사로 들이닥쳤다.노동명은 고개를 직접 아래층으로 배웅한 뒤 1층에서 바로 어머니를 만났다.윤미라는 아들이 고객을 배웅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10분 뒤 노동명이 어머니 앞으로 다가와 부드럽게 말했다.“엄마 오후에 스케줄 없으세요?”“너희 젊은이들이 다들 바쁘겠지만 나와 네 아빠는 집에만 있는데 무슨 스케줄이 있겠어? 너희 아빠는 일찍이 골프 치러 가셨고 나도 심심해서 너한테로 온 거야.”“은경 씨는 오늘 바빠요?”“너는 은경이가 한가한 줄 아니? 은경이도 일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은경이가 무슨 신분으로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겠어?
대표 이사 전용 엘리베이터에 모자가 단둘이 타게 되자 윤미라는 더 거침없이 말했고 그녀는 화를 냈다.“너 은경이랑 결혼 안 해도 돼. 엄마가 다시 너와 어울리는 집안 딸로 찾아줄게. 어찌 됐든 넌 반드시 재벌가 딸을 만나야 해. 하예진은 절대로 안 돼! 노동명, 엄마 지금 너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농담이 아니라고. 엄마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하예진과 네가 만나는 걸 절대로 동의할 수 없어.”어머니의 강경함에 노동명은 화를 내지 않았다.“엄마 지금 저한테 이 문제를 얘기하려고 오신 거예요? 더 이상 우리 모자 사이에 이 문제를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 일이고 제 결혼이에요. 엄마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요. 제가 하예진을 포기하길 원하시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살려내요. 할머니께서 저와 예진이가 만나는 걸 반대하시면 그땐 저도 예진이를 포기할게요.”윤미라는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네 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몇 년인데. 그리고 할머니가 살아 돌아오신다고 해도 틀림없이 널 혼내실 거야. 너와 하예진이 만나는 걸 할머니가 아셨다면 너무 화가 나셔서 저승에서 벌떡 일어나 돌아오셨을 거야.”“그럼 전 예진이와 더 함께 있어야겠네요. 할머니가 보고 싶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는 절 가장 사랑해 주셨어요. 제가 뭘 하든지 제가 기쁘기만 하다면 할머니는 모두 절 응원해 주셨죠. 할머니는 인생을 살면서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아야 후회가 없다고 하셨어요.”노씨 가문의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막냇손자 노동명을 가장 사랑했다.윤미라는 연달아 아들 네 명을 낳았기 때문에 아들이 너무 많아 막내아들을 딱히 소중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노동명에 관한 관심이 조금 부족했다.“다 네 할머니가 널 버릇없이 만든 거야.”윤미라는 욕을 뱉어냈다.“점심에 너 병원으로 가서 하예진을 보러 간 걸 왜 하예진은 모르게 하는 거야? 노동명, 너도 마음속으로 하예진이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잖아. 그 여자는 널 단지 건물주이자 친구
[솔로인 것도 좋지. 너무 서두르지 마라.]소정남은 친구를 위로했다. 좋아하는 여자가 없을 때는 노동명도 솔로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니 그도 소정남처럼 빨리 솔로 탈출을 해야겠다고 느꼈다.퇴근 후 집에 돌아 가면 서로 관심해 주고 따뜻한 안부를 전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하예진은 분명 좋은 아내가 될 것이다.주형인이 소중함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노동명은 하예진과 함께한다면 그녀를 반드시 소중하게 대할 것이다.“동명아 누구한테서 온 문자야? 태윤이니? 동명아 태윤이하고 하예정은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았으니 사이가 좋을 거야. 당연히 두 자매를 위해 더 생각할 테고. 너 은경이랑 결혼하기 전까지 태윤이와 거리를 좀 둬.”윤미라는 전태윤이 처형인 하예진의 편에 설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소정남의 약혼녀도 하예정의 친한 친구라도 했다. 심씨 가문은 꽤 괜찮은 집안이었다. 관성의 부동산 재벌이니 빌딩도 몇 채와 핫한 거리의 상가들을 임대하고 있었다. 그러니 소정남과도 어울렸다. 그리고 소정남과 심효진은 전태윤 부부가 이어준 것이었다. 윤미라는 전태윤이 자기 막내아들인 노동명과 그의 처형인 하예진을 결혼하게 만들어 세 사람의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엄마 뭐라고 하셨어요? 태윤이랑 예정 씨가 아직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아서 사이가 좋은 거라뇨? 태윤이 바람피울 남자 아니에요. 예정 씨를 평생 사랑할 남자예요. 태윤이 집안에서도 예정 씨를 다 받아줬고요. 어머니도 뒤에서 이런 얘기 그만하세요. 전씨 가문이나 태윤이 귀에 들어가면 저희 두 집안 사이의 우정에 영향만 미칠 뿐이니.”“그리고 저 은경 씨하고 결혼 안 해요. 전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요. 그러니 더 이상 은경 씨 오해하게 만들지 마세요. 저도 은경 씨한테 분명하게 말할 거예요.”손은경은 그와 비즈니스 외에는 사적인 대화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똑똑한 여자였다. 고집스럽게 매달리지 않으니 하예진에게 졌다고
띠리리링...노동명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전태윤에게서 온 전화였고 그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저녁에 정남이가 밥 먹자고 하더라.”전태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노동명이 먼저 말했다. 노동명은 전태윤이 그에게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한 줄 알았다.세 사람의 우정은 아주 깊었다. 소정남이 솔로 탈출을 축하하는 의미로 두 사람에게 밥을 사는 것이니 아무리 바빠도 참석할 것이다.“나도 알아, 정남이한테서 이미 문자 왔어.”전태윤은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서 다른 한 손에는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는 틈에 노동명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내 와이프가 이미 네 속셈을 꿰뚫어 보던데.”“꿰뚫어 보다니?”노동명은 한동안 반응하지 못했지만 이내 알아차렸다.“눈치챘어? 그럼 잘됐네. 나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사실 노동명은 자기의 감정을 정확하게 확인한 뒤에 행동하려고 했다. 전태윤이 그에게 하예진이 상처를 입어 몸과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하예진에게 그의 마음을 전하기에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니 기다리라고 했었다.그는 묵묵하게 하예진의 옆에서 그녀가 유명해질 때까지 지켜줄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다시 그녀에게 고백할 생각이었다.그때가 되면 두 사람이 함께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질 것이다.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 잘 드러나게 된다. 그가 묵묵히 옆에서 지켜주고 함께 해주면 하예진도 분명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옆에서 함께 하는 것이 가장 긴 사랑의 고백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하예정이 그의 마음을 눈치챌 줄은 몰랐다.노동명은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분명 하예진을 또 찾아갔을 것이다. 하예진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어머니는 분명 이상한 말들을 했을 것이다.하예진은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자기 여동생에게 말했고 아마도 이때 하예정이 그의 마음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었다.“그래, 알겠어.”하예진이 그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그도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전태윤은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오후에는 그의 아내가 회사로 그를 찾아왔다. 그런 다음 함께 소정남과 심효진의 솔로 탈출을 축하 파티에 참석하려고 했다.전태윤은 다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노동명은 그럴 수가 없었다.그의 어머니는 전태윤과의 통화가 끝나자 그에게 물었다.“동명아, 태윤이가 무슨 얘기 했어?”“엄마, 통화 내용까지 말씀드려야 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열정적으로 챙겨주신 적 없었는데 이제 서른이 넘으니까 엄마가 절 챙겨 주시네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윤미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엄마 하실 말씀 끝났죠. 저 일해야 해요.”그의 말은 어머니에게 이만 떠나달라는 뜻이었다.윤미라는 침묵을 지킨 후 다시 입을 열었다.“정남이가 저녁에 밥 산다며 넌 은경이 데려가. 은경이도 이제 천천히 너희 친구들하고 어울려야지.”“아니요!”노동명은 바로 거절했고 이에 윤미라는 흠칫했다.“... 너 그렇게 은경이가 싫으니? 은경이가 하예진보다 못한 게 뭐야? 출신이며 외모며, 심지어 나이도 하예진보다 어리고,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어. 그리고 능력도 하예진보다 훨씬 좋아.”“은경 씨가 예진보다 잘난 게 아니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뿐이에요. 예진이는 은경 씨하고 시작점부터가 다르다고요. 예진이가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이미 독립해서 회사를 차렸을 수도 있어요. 엄마, 저한테 이유를 묻지 마세요. 저도 이유를 모르니까. 그저 좋아할 뿐인데 이유 따윈 필요 없어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생각하실 필요도 없어요. 앞으로 계속 나아갈 테니 지켜보세요.”윤미라는 분노했다.“엄마, 혼자 돌아가실 거예요? 아니면 비서 시켜서 모셔다드리라고 할까요?”윤미라는 일어서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혼자 갈 거야.”“그러세요. 조심히 가시고요.”노동명은 분노하는 어머니를 배시시 웃으며 바라보았다.윤미라는 노씨 그룹을 나오며 손은경에게 전화를 걸었다.“은경아, 정남이가 오늘 혼인신고를 했대. 정남이가 오늘 저녁에 동명이한테 밥을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