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에서 나온 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다른 룸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음식을 주문한 후 그녀더러 밥을 사달라고 했다.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네 큰아버지에게 강요당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까 당연히 밥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여운초는 웃기면서도 어이없었다.“밥 안 사주겠다고 말한 적 없으니까 핑계 안대도 돼.”“밥 다 먹고 집까지 바래다줄 테니까 물건들 챙겨서 집에서 나와. 큰아버지가 너에게 못되게 굴까 봐 걱정돼.”“집에서 나오면? 갈 데도 없는데.”“우리 집에 와. 나 너희 집 근처에 집이 있으니까 우리 집으로 이사 와. 내가 도우미를 청해서 널 돌봐주도록 할게. 걱정하지 마, 난 그곳에서 살지 않을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결혼하기도 전에 동거한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이진아, 더 이상 결혼이라는 말 입에 담지 말았으면 해. 난 큰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을 거니. 그리고 점원에게 가게 안의 작은 방을 치워달라고 부탁할 거야. 잠시 가게에서 지내면 돼. 훨씬 편하기도 하고.”그녀는 큰아버지까지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 다시 여씨 집안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그전에는 나와서 사는 것이 확실히 더 안전했다.큰아버지가 급한 김에 그녀를 죽일지도 모를 일이니까.처음에 큰아버지와 엄마는 짜고 들어 그녀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녀는 두 눈을 대가로 목숨을 건졌다.“그래.”전이진은 자신의 명의하에 있는 별장으로 이사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어둠이 찾아왔다. 또 하루가 지났다.전태윤 부부는 우빈을 데리고 캠핑카를 타고 병원에 왔다.무당의 굿이 정말 유용한 건지, 아니면 엄마가 깨어난 것을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후에는 편히 잠들어 지금은 컨디션이 평소처럼 회복되었다.그에 비해 하예정의 컨디션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틀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두통이 심했다.집을 나서서 병원에 오기 전에 그녀는 전태윤 몰래 약효가 센 약을 먹었다. 머리가 아플 때는 계속 이 약을 먹었었다. 부작
“이모, 안녕히 계세요.”우빈이는 성소현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면서 뽀뽀를 날리는 제스처까지 해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전태윤이 직접 이경혜 모녀를 병원 건물 밖으로 배웅했다.“전 대표, 요즘 수고했어.”이경혜는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자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자네가 도와준 덕분에 예정 자매가 위기를 잘 넘기게 됐어. 고마워.”전태윤은 부드럽게 말했다.“예정이는 제 와이프고 예진 씨는 제 처형이에요. 모두 제 가족이니 제가 그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그가 하예정 자매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자매가 그와 만난 후부터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자네처럼 책임감 있는 남자에게 예정이를 맡기니 안심이야.”이경혜는 줄곧 전태윤이 관성의 걸출한 인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 딸의 안목은 이만저만 높은 것이 아니니까. 다만 인연이 없을 뿐.하지만 그녀의 조카사위가 되었으니 적어도 남의 집 사위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이경혜 모녀는 떠났다.전태윤은 그들이 차에 타는 것까지 보고서야 돌아갔다.“태윤아.”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노동명이 한 손에는 과일 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든 채 그에게 다가왔다.“동명아, 처형 병실에 지금 넘쳐나는 게 과일 바구니랑 꽃다발이야.”“그건 다른 사람이 준 거잖아.”노동명은 하예진의 병실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날도 어두워졌는데 또 와서 우리와 자리다툼 할 작정이야? 지금 처형은 깨어나서 네가 다시 남아서 밤을 지새우면 오히려 안정을 취할 수 없게 될 거야. 그러면 처형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거고.”어젯밤, 하예진은 아직 혼수상태라 노동명이 옆에서 밤을 새우며 지켜도 괜찮았다.이젠 그녀가 깨어났으니, 전태윤은 노동명이 다시 밤을 지키는 것을 반대했다.그의 처형은 노동명이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노동명은 그에 대답했다.“그냥 보러 온 거야. 안 보면 마음이 놓이지
“싫어. 네가 능력이 있으면 직접 처형에게 고백해. 성공하게 되면 나랑 예정이 지지할 거지만 실패한다면 다시는 치근덕거리지 마, 어쨌든 네 엄마가 동의하지 않으니까.”전태윤은 막지도 돕지도 않을 생각이다.“동명아, 우린 좋은 친구니까 네가 평생을 맡길 만한 남자라는 것을 나도 알아. 하지만 네 엄마는 처형을 깔보고 있고 너와 처형이 같이 있는 것을 찬성하지도 않잖아. 처형은 이미 실패한 결혼을 한번 경험했어. 나는 처형이 재혼해서 또 시댁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노동명은 황급히 말했다.“내가 어떤 성격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내 일을 언제 엄마가 대신 결정한 적 있어? 다 내 맘대로 해왔어. 엄마가 예진에게 편견이 있다는 걸 알아. 그건 엄마가 예진이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일 거야. 혹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진 못해. 난 부모님이랑 같이 살지 않을 테니, 예진 씨가 엄마 아빠한테서 괴롭힘 받을 일도 없어.”전태윤은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넌 아직 솔로라 많은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 실제로 부닥쳐 보면 어떤 문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만약 처형과 같이 있게 되면 부모님을 절대 안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너의 친부모님인데. 내 생각엔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제 처형의 사업이 잘되면 네 엄마가 허락할 수도 있으니. 게다가 처형은 지금 재혼할 마음이 없고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어. 너에게도 마음이 없다고. 네가 지금 처형에게 고백하면 망설임 없이 너를 거절할 거야. 네 곁에 설 자신도 없을 거고. 처형에게 시간을 줘. 어차피 처형은 지금 네 눈 밑에 있으니까 다른 남자에게 뺏길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잖아.”노동명이 지금 하예진에게 구애하면 실패할 것이 뻔했다.노동명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다시 생각해 볼게. 지금 당장 고백하겠다는 말은 아니야. 먼저 몸이 낫길 기다려야지. 나도 기다리길 원해. 36년 동안 솔로로 살아왔는데
아직 몸이 허약한 하예진은 곧 다시 잠이 들었다.우빈이도 하예정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하예정은 조카를 침대에 눕히고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언니의 링거액이 곧 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침대 머리맡의 벨을 눌러 간호사에게 와서 바꾸라고 알렸다.링거액을 바꾼 후 하예정은 몇 분 더 보고 나서야 돌아서서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고 들어온 전태윤은 아내가 홀의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다가와서는 그녀의 옆에 앉아 어깨를 감싸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러고 있어? 언니 잠들었어?”“우빈이랑 언니 다 잠들었어요.”그녀는 남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여보.”“응.”하예정은 그저 한번 불렀을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여보,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전태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그녀는 그를 두 손으로 껴안고는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불러도 돼.”“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거, 봤어요.”“...여보, 그 파파라치들은 헛소리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파파라치가 뭐라고 했는지 못 봤어요. 전씨 그룹이 올린 당신의 해명 성명을 봤죠.”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것은 모두 철수됐고 하예정은 따로 찾아보지 않았지만 남편의 해명 성명을 보고 그녀는 자초지종을 짐작할 수 있었다.“여보, 날 그렇게 지켜줘서 고마워요. 남들이 믿든 안 믿든, 적어도 당신은 날 지켜줬어요.”남편은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떠맡았다.“당신은 내 아내야,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사이잖아. 내가 당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누구를 보호하겠어? 이 말도 내 진심이야, 난 그렇게 빨리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고 둘만의 생활을 충분히 즐긴 후에 아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해. 당신 정말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어.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어, 운명에 맡기라고. 그러니 재촉하시지 않을 거야. 엄마는 10년 안에는 우리한테 아이에 대해 재촉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하예정은 고개를 들
전태윤은 일부러 굳은 얼굴을 하며 말했다.“내가 벌을 받은 거야.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전화를 받았다니까. 심지어 준하까지 나를 신의에게 소개해 치료해 주겠다고 했어.”전태윤이 모두의 관심을 받는 장면을 상상하며 하예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웃음을 겨우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준하 씨 신의와 아는 사이라 당신에게 소개해 주려 하는 걸 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운초 씨의 시력이 회복할 기회가 있는지 신의에게 보여야 하는데.”“그걸 깜빡 잊어버렸어.”전태윤은 웃으며 말했다.“쏟아지는 관심에 너무 화가 나 이진네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지 뭐야. 운초 씨의 고모도 A 시에 가서 신의를 찾은 적이 있는데 찾지 못했대. 하지만 예준하의 넷째 형 예준영과 신의의 유일한 제자인 정겨울은 무조건 부부로 될 거니, 이제 정겨울이 예씨 가문의 넷째 사모님이 되면 여운초의 눈을 보일 기회도 훨씬 많아질 거야.”“무조건?”전태윤은 가볍게 응하고는 계속 말했다.“정겨울은 예준영을 구한 적 있어. 그 후 임신했는데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야. 다만 예씨 가문도 우리 전씨 가문처럼 책임감이 강한 타입이라 예준영은 정겨울이 임신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신의를 따라 정겨울을 찾아갔대. 예준하 말로는 아마 결혼할 거래. 정겨울은 아이를 낳기 전에 예준하를 따라 예씨 집안에 갈 거야. 다만 임신 중이라 진료하기가 불편할 테니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끝낼 때까지 몇 달 더 기다려야 할 거야.”하예정은 예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흥미진진하게 들었다.그들 부부는 원래 A 시로 여행을 가는 김에 예씨 집안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지금 하예진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하예정도 관성을 떠날 리가 없었다.여행 가는 일은 잠시 접어두었다.“당신 졸려? 먼저 가서 우빈이랑 함께 쉬어. 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싶으면 깨울게.”“우빈이 지금 엄청 깊이 잠들었어요. 그 무당 선생 말이에요, 정말 솜씨가 좋으신 것 같아요
성씨 집안 큰 사모님이 임신 후 고생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하예정도 그럴까 봐 걱정됐다.“진작에 생각 접은걸요. 스트레스 그만 받으려고요. 나 예전의 하예정으로 돌아가 내 삶을 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요.”굳이 말하자면 그녀는 남편의 신분이 자신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둘 사이의 차이는 너무 컸다.그녀는 투자한 프로젝트가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비록 남편과 같은 레벨에 서 있지는 못해도 최소한 차이를 줄일 수는 있을 테니.“잠깐 쉬러 갈게요.”“그래.”그는 아내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 아내가 꼬마의 옆에 눕는 것을 보고는 처형이 맞고 있는 링거병을 확인했다. 다음 것으로 바꾸기까지 이제 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는 다시 홀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시간이 이른 틈을 타서 작업 단톡방에서 일을 분배했다.하예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예정은 거의 매일 언니 곁을 지켰다.전태윤은 낮에는 회사로 돌아가 일 처리를 했고 밤에는 아내와 함께 밤을 새웠다.힘들게 보내는 남편이 마음이 아파 그녀는 몇 번이나 집에 가서 쉬라고 설득했지만 결국 남편의 고집을 당하지 못했다.어느덧 하예진이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되자 전태윤은 숙희 아주머니와 다른 도우미를 보내 아내 대신 처형은 돌보게 했다.우빈은 며칠 뒤 여전히 강일구의 배웅 하에 다시 오 선생님의 무관으로 돌아가 수업을 받았다.하예진이 하루하루 나아지는 사이 관성 상류사회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전해졌다.뜻밖에도 여씨 집안의 큰아가씨가 친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고소했다. 20여 년 전 집안의 재산을 위해, 둘이 떳떳하게 같이 살기 위해 여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 즉 큰아가씨의 친아버지를 해쳤다고.여운초는 자신의 녹음 펜을 경찰에 넘기는 것 외에 전이진의 도움을 받아 소씨 가문의 조사를 통해 여 대표와 추미자가 젊었을 적 몰래 함께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내 경찰에 넘겼다.소씨 일가도 원래 여 대표 부부의 세상에 내놓지 못할 증거를 손에 쥐고
하예진은 병상에 앉아있었다. 이젠 하루 종일 링거를 맞을 필요도 없고, 매일 오전에만 두 병 맞고 점심때가 가까워질 때면 다 맞을 수 있어 오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다친 손은 아직도 힘을 못 써서 아들을 안을 수도 없었다.그녀는 나중에 사업에 영향을 미칠까 봐 조금 걱정했다.의사가 잘 휴식하기만 하면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효정이랑은 오랜 친구인데 약혼식엔 무조건 참석할 거니 걱정하지 마.”하예정은 껍질을 다 깎은 사과를 네 조각으로 잘라 한 조각은 언니에게 주고 한 조각은 우빈에게 주고 나머지 두 조각은 숙희 아주머니와 도우미에게 주었다.“사모님 드세요.”숙희 아주머니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어서 드세요. 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하예진도 거들어 말했다.“예정이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아서 안 드시면 여기 둬도 이제 버리게 돼요.”두 자매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숙희 아주머니는 하예정이 건넨 사과를 받았다.“언니, 점심 뭐 먹고 싶어?”그녀는 사과를 깎은 칼을 내려놓고 언니에게 물었다.“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돌아가서 만들어 올게.”“내가 지금 먹는 하루 세 끼는 너랑 태윤 씨가 알아서 정하고 있잖아. 영양사에게 부탁해 만든 식단이 상처 회복에 좋다고 하더니... 굳이 물어봐서 뭐 하게?”영양사가 준비한 레시피 중 일부는 하예진이 좋아하는 요리가 아니었다. 하예정은 언니를 달래서 다 먹이느라 힘을 적지 않게 들였다.그녀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다른 거 먹고 싶으면 내가 해줄 수도 있어.”“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박씨 아저씨가 매일 가져다주시는 음식만 해도 배가 터질 지경이야. 이제 퇴원할 때면 너희들 덕분에 20킬로는 더 찔 것 같아.”겨우 살이 빠졌는데 병원에 한 번 입원한 것 때문에 살이 되레 찌게 될 셈이다.하예정 부부뿐만 아니라 큰이모네도 병문안만 오면 보양식을 가져다준다.이모는 피를 많이 흘렸으니 보양해야 한다고 하면서
전태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노동명은 감히 매일 하예진을 보러 오지 못했다.일주일에 두 번 정도 왔는데, 처음도 전태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날 밤이고 이제야 두 번째 방문이다.“동명 씨, 은경 씨.”하예진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일어났다.노동명은 먼저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이 꽃다발은 너에게 주는 거야.”“고마워요, 동명 씨. 뭘 이런 걸다.”꽃다발을 받은 하예진은 감사를 표했다. 병실에서 그녀는 매일 많은 과일 바구니와 꽃다발을 받았다.그녀는 보통 사람이지만 전씨 집안의 큰 사모님의 친언니이자 이경희의 조카딸인지라 매일 그녀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노동명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는 하예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관심 조로 물었다.“의사가 언제 퇴원할 수 있다고 했어?”“일주일은 더 입원해야 퇴원할 수 있다고 했어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손은경도 관심 조로 그녀에게 몇 마디 물었다.똑똑.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하예정에게 공손히 말했다.“주씨 집안 사람들이 또 왔습니다.”하예진이 정신을 차린 후 주씨 집안 사람들은 자기가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병원에 찾아왔다.하에정은 언니를 한 번 쳐다보고는 분부했다.“돌려보내요.”그녀는 서현주가 이용당한 것은 여씨 사모님이 서씨 집안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협박을 해 우빈이를 빼앗도록 강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서현주가 경찰에 연행된 후, 변호사를 제외하고 주씨 집안이든 서씨 집안이든 아무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판결이 난 후에야 가족이 면회할 수 있다.서현주는 변호사를 통해 하예진에게 사과하는 동시에 변명도 가득 늘어놓았다. 비록 그녀를 질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빈이를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자신도 여씨 사모님에게 협박받아 어쩔 수 없이 도와줬다고 해명했다.어떤 이유로든 그녀가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법의 처벌이다.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