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안녕히 계세요.”우빈이는 성소현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면서 뽀뽀를 날리는 제스처까지 해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전태윤이 직접 이경혜 모녀를 병원 건물 밖으로 배웅했다.“전 대표, 요즘 수고했어.”이경혜는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자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자네가 도와준 덕분에 예정 자매가 위기를 잘 넘기게 됐어. 고마워.”전태윤은 부드럽게 말했다.“예정이는 제 와이프고 예진 씨는 제 처형이에요. 모두 제 가족이니 제가 그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그가 하예정 자매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자매가 그와 만난 후부터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자네처럼 책임감 있는 남자에게 예정이를 맡기니 안심이야.”이경혜는 줄곧 전태윤이 관성의 걸출한 인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 딸의 안목은 이만저만 높은 것이 아니니까. 다만 인연이 없을 뿐.하지만 그녀의 조카사위가 되었으니 적어도 남의 집 사위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이경혜 모녀는 떠났다.전태윤은 그들이 차에 타는 것까지 보고서야 돌아갔다.“태윤아.”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노동명이 한 손에는 과일 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든 채 그에게 다가왔다.“동명아, 처형 병실에 지금 넘쳐나는 게 과일 바구니랑 꽃다발이야.”“그건 다른 사람이 준 거잖아.”노동명은 하예진의 병실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날도 어두워졌는데 또 와서 우리와 자리다툼 할 작정이야? 지금 처형은 깨어나서 네가 다시 남아서 밤을 지새우면 오히려 안정을 취할 수 없게 될 거야. 그러면 처형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거고.”어젯밤, 하예진은 아직 혼수상태라 노동명이 옆에서 밤을 새우며 지켜도 괜찮았다.이젠 그녀가 깨어났으니, 전태윤은 노동명이 다시 밤을 지키는 것을 반대했다.그의 처형은 노동명이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노동명은 그에 대답했다.“그냥 보러 온 거야. 안 보면 마음이 놓이지
“싫어. 네가 능력이 있으면 직접 처형에게 고백해. 성공하게 되면 나랑 예정이 지지할 거지만 실패한다면 다시는 치근덕거리지 마, 어쨌든 네 엄마가 동의하지 않으니까.”전태윤은 막지도 돕지도 않을 생각이다.“동명아, 우린 좋은 친구니까 네가 평생을 맡길 만한 남자라는 것을 나도 알아. 하지만 네 엄마는 처형을 깔보고 있고 너와 처형이 같이 있는 것을 찬성하지도 않잖아. 처형은 이미 실패한 결혼을 한번 경험했어. 나는 처형이 재혼해서 또 시댁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노동명은 황급히 말했다.“내가 어떤 성격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내 일을 언제 엄마가 대신 결정한 적 있어? 다 내 맘대로 해왔어. 엄마가 예진에게 편견이 있다는 걸 알아. 그건 엄마가 예진이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일 거야. 혹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진 못해. 난 부모님이랑 같이 살지 않을 테니, 예진 씨가 엄마 아빠한테서 괴롭힘 받을 일도 없어.”전태윤은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넌 아직 솔로라 많은 일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 실제로 부닥쳐 보면 어떤 문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만약 처형과 같이 있게 되면 부모님을 절대 안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해? 너의 친부모님인데. 내 생각엔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제 처형의 사업이 잘되면 네 엄마가 허락할 수도 있으니. 게다가 처형은 지금 재혼할 마음이 없고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어. 너에게도 마음이 없다고. 네가 지금 처형에게 고백하면 망설임 없이 너를 거절할 거야. 네 곁에 설 자신도 없을 거고. 처형에게 시간을 줘. 어차피 처형은 지금 네 눈 밑에 있으니까 다른 남자에게 뺏길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잖아.”노동명이 지금 하예진에게 구애하면 실패할 것이 뻔했다.노동명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다시 생각해 볼게. 지금 당장 고백하겠다는 말은 아니야. 먼저 몸이 낫길 기다려야지. 나도 기다리길 원해. 36년 동안 솔로로 살아왔는데
아직 몸이 허약한 하예진은 곧 다시 잠이 들었다.우빈이도 하예정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하예정은 조카를 침대에 눕히고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언니의 링거액이 곧 다 떨어지는 것을 보고 침대 머리맡의 벨을 눌러 간호사에게 와서 바꾸라고 알렸다.링거액을 바꾼 후 하예정은 몇 분 더 보고 나서야 돌아서서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고 들어온 전태윤은 아내가 홀의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다가와서는 그녀의 옆에 앉아 어깨를 감싸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러고 있어? 언니 잠들었어?”“우빈이랑 언니 다 잠들었어요.”그녀는 남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여보.”“응.”하예정은 그저 한번 불렀을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여보,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전태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그녀는 그를 두 손으로 껴안고는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불러도 돼.”“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거, 봤어요.”“...여보, 그 파파라치들은 헛소리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파파라치가 뭐라고 했는지 못 봤어요. 전씨 그룹이 올린 당신의 해명 성명을 봤죠.”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것은 모두 철수됐고 하예정은 따로 찾아보지 않았지만 남편의 해명 성명을 보고 그녀는 자초지종을 짐작할 수 있었다.“여보, 날 그렇게 지켜줘서 고마워요. 남들이 믿든 안 믿든, 적어도 당신은 날 지켜줬어요.”남편은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떠맡았다.“당신은 내 아내야,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사이잖아. 내가 당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누구를 보호하겠어? 이 말도 내 진심이야, 난 그렇게 빨리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고 둘만의 생활을 충분히 즐긴 후에 아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해. 당신 정말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어.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어, 운명에 맡기라고. 그러니 재촉하시지 않을 거야. 엄마는 10년 안에는 우리한테 아이에 대해 재촉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하예정은 고개를 들
전태윤은 일부러 굳은 얼굴을 하며 말했다.“내가 벌을 받은 거야.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전화를 받았다니까. 심지어 준하까지 나를 신의에게 소개해 치료해 주겠다고 했어.”전태윤이 모두의 관심을 받는 장면을 상상하며 하예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웃음을 겨우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준하 씨 신의와 아는 사이라 당신에게 소개해 주려 하는 걸 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운초 씨의 시력이 회복할 기회가 있는지 신의에게 보여야 하는데.”“그걸 깜빡 잊어버렸어.”전태윤은 웃으며 말했다.“쏟아지는 관심에 너무 화가 나 이진네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지 뭐야. 운초 씨의 고모도 A 시에 가서 신의를 찾은 적이 있는데 찾지 못했대. 하지만 예준하의 넷째 형 예준영과 신의의 유일한 제자인 정겨울은 무조건 부부로 될 거니, 이제 정겨울이 예씨 가문의 넷째 사모님이 되면 여운초의 눈을 보일 기회도 훨씬 많아질 거야.”“무조건?”전태윤은 가볍게 응하고는 계속 말했다.“정겨울은 예준영을 구한 적 있어. 그 후 임신했는데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야. 다만 예씨 가문도 우리 전씨 가문처럼 책임감이 강한 타입이라 예준영은 정겨울이 임신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신의를 따라 정겨울을 찾아갔대. 예준하 말로는 아마 결혼할 거래. 정겨울은 아이를 낳기 전에 예준하를 따라 예씨 집안에 갈 거야. 다만 임신 중이라 진료하기가 불편할 테니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끝낼 때까지 몇 달 더 기다려야 할 거야.”하예정은 예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흥미진진하게 들었다.그들 부부는 원래 A 시로 여행을 가는 김에 예씨 집안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지금 하예진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하예정도 관성을 떠날 리가 없었다.여행 가는 일은 잠시 접어두었다.“당신 졸려? 먼저 가서 우빈이랑 함께 쉬어. 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싶으면 깨울게.”“우빈이 지금 엄청 깊이 잠들었어요. 그 무당 선생 말이에요, 정말 솜씨가 좋으신 것 같아요
성씨 집안 큰 사모님이 임신 후 고생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하예정도 그럴까 봐 걱정됐다.“진작에 생각 접은걸요. 스트레스 그만 받으려고요. 나 예전의 하예정으로 돌아가 내 삶을 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요.”굳이 말하자면 그녀는 남편의 신분이 자신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둘 사이의 차이는 너무 컸다.그녀는 투자한 프로젝트가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비록 남편과 같은 레벨에 서 있지는 못해도 최소한 차이를 줄일 수는 있을 테니.“잠깐 쉬러 갈게요.”“그래.”그는 아내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 아내가 꼬마의 옆에 눕는 것을 보고는 처형이 맞고 있는 링거병을 확인했다. 다음 것으로 바꾸기까지 이제 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는 다시 홀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시간이 이른 틈을 타서 작업 단톡방에서 일을 분배했다.하예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예정은 거의 매일 언니 곁을 지켰다.전태윤은 낮에는 회사로 돌아가 일 처리를 했고 밤에는 아내와 함께 밤을 새웠다.힘들게 보내는 남편이 마음이 아파 그녀는 몇 번이나 집에 가서 쉬라고 설득했지만 결국 남편의 고집을 당하지 못했다.어느덧 하예진이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되자 전태윤은 숙희 아주머니와 다른 도우미를 보내 아내 대신 처형은 돌보게 했다.우빈은 며칠 뒤 여전히 강일구의 배웅 하에 다시 오 선생님의 무관으로 돌아가 수업을 받았다.하예진이 하루하루 나아지는 사이 관성 상류사회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전해졌다.뜻밖에도 여씨 집안의 큰아가씨가 친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고소했다. 20여 년 전 집안의 재산을 위해, 둘이 떳떳하게 같이 살기 위해 여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 즉 큰아가씨의 친아버지를 해쳤다고.여운초는 자신의 녹음 펜을 경찰에 넘기는 것 외에 전이진의 도움을 받아 소씨 가문의 조사를 통해 여 대표와 추미자가 젊었을 적 몰래 함께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내 경찰에 넘겼다.소씨 일가도 원래 여 대표 부부의 세상에 내놓지 못할 증거를 손에 쥐고
하예진은 병상에 앉아있었다. 이젠 하루 종일 링거를 맞을 필요도 없고, 매일 오전에만 두 병 맞고 점심때가 가까워질 때면 다 맞을 수 있어 오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다친 손은 아직도 힘을 못 써서 아들을 안을 수도 없었다.그녀는 나중에 사업에 영향을 미칠까 봐 조금 걱정했다.의사가 잘 휴식하기만 하면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효정이랑은 오랜 친구인데 약혼식엔 무조건 참석할 거니 걱정하지 마.”하예정은 껍질을 다 깎은 사과를 네 조각으로 잘라 한 조각은 언니에게 주고 한 조각은 우빈에게 주고 나머지 두 조각은 숙희 아주머니와 도우미에게 주었다.“사모님 드세요.”숙희 아주머니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어서 드세요. 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하예진도 거들어 말했다.“예정이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아서 안 드시면 여기 둬도 이제 버리게 돼요.”두 자매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숙희 아주머니는 하예정이 건넨 사과를 받았다.“언니, 점심 뭐 먹고 싶어?”그녀는 사과를 깎은 칼을 내려놓고 언니에게 물었다.“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돌아가서 만들어 올게.”“내가 지금 먹는 하루 세 끼는 너랑 태윤 씨가 알아서 정하고 있잖아. 영양사에게 부탁해 만든 식단이 상처 회복에 좋다고 하더니... 굳이 물어봐서 뭐 하게?”영양사가 준비한 레시피 중 일부는 하예진이 좋아하는 요리가 아니었다. 하예정은 언니를 달래서 다 먹이느라 힘을 적지 않게 들였다.그녀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다른 거 먹고 싶으면 내가 해줄 수도 있어.”“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박씨 아저씨가 매일 가져다주시는 음식만 해도 배가 터질 지경이야. 이제 퇴원할 때면 너희들 덕분에 20킬로는 더 찔 것 같아.”겨우 살이 빠졌는데 병원에 한 번 입원한 것 때문에 살이 되레 찌게 될 셈이다.하예정 부부뿐만 아니라 큰이모네도 병문안만 오면 보양식을 가져다준다.이모는 피를 많이 흘렸으니 보양해야 한다고 하면서
전태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노동명은 감히 매일 하예진을 보러 오지 못했다.일주일에 두 번 정도 왔는데, 처음도 전태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날 밤이고 이제야 두 번째 방문이다.“동명 씨, 은경 씨.”하예진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일어났다.노동명은 먼저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이 꽃다발은 너에게 주는 거야.”“고마워요, 동명 씨. 뭘 이런 걸다.”꽃다발을 받은 하예진은 감사를 표했다. 병실에서 그녀는 매일 많은 과일 바구니와 꽃다발을 받았다.그녀는 보통 사람이지만 전씨 집안의 큰 사모님의 친언니이자 이경희의 조카딸인지라 매일 그녀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노동명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는 하예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관심 조로 물었다.“의사가 언제 퇴원할 수 있다고 했어?”“일주일은 더 입원해야 퇴원할 수 있다고 했어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손은경도 관심 조로 그녀에게 몇 마디 물었다.똑똑.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하예정에게 공손히 말했다.“주씨 집안 사람들이 또 왔습니다.”하예진이 정신을 차린 후 주씨 집안 사람들은 자기가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병원에 찾아왔다.하에정은 언니를 한 번 쳐다보고는 분부했다.“돌려보내요.”그녀는 서현주가 이용당한 것은 여씨 사모님이 서씨 집안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협박을 해 우빈이를 빼앗도록 강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서현주가 경찰에 연행된 후, 변호사를 제외하고 주씨 집안이든 서씨 집안이든 아무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판결이 난 후에야 가족이 면회할 수 있다.서현주는 변호사를 통해 하예진에게 사과하는 동시에 변명도 가득 늘어놓았다. 비록 그녀를 질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빈이를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자신도 여씨 사모님에게 협박받아 어쩔 수 없이 도와줬다고 해명했다.어떤 이유로든 그녀가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법의 처벌이다.
그는 병실에조차 들어갈 수 없는데 노동명이 있는 병실 안에서는 이따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이런 비교에 주형인은 상심했다.“형인아.”김은희는 매우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노 대표가 예진의 병실에 있어!”주서인도 동생을 쳐다보며 일깨웠다.“오든 말든 그건 남의 자유인데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 가, 우리.”주형인은 말하며 부모와 누나를 놔두고 먼저 발길을 돌렸다.그는 사 온 꽃다발을 경호원에게 가져다주는 대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형인아, 형인아.”김은희는 아들 뒤를 쫓아갔다.그녀는 쓰레기통을 지나가면서 버려진 꽃다발을 몇 번이나 쳐다봤다.‘아이고, 몇만 원짜리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다니.’주경진도 한숨을 쉬며 따라갔다.주서인만이 병실 입구에 남아 경호원에게 말했다.“귀한 손님이 와서 접대하는 걸 방해하지는 않을게요. 손님들이 다 간 후에 다시 들어갈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괜찮죠?”말하고는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경호원들은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병실에 강제로 들이닥치지 않는 한 경호원들도 상대하기에 귀찮았다.‘예전에는 그렇게도 하예진 씨를 괴롭히던 사람이 인제 와서 무슨 착한 척하는 거야?’30분 뒤 노동명과 손은경이 병실에서 나왔다.30분을 기다린 주서인은 벌떡 일어섰다. 노동명이 손은경과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머리를 숙여 휴대폰을 보며 노동명을 못 본 척했다.손은경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노동명에게 물었다.“왜 좀 더 있지 않고요.”노동명이 자기를 곁눈으로 보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나를 그렇게 볼 필요 없어요. 진심으로 말한 말이에요. 비꼬려는 뜻은 없어요.”“은경 씨, 어디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얘기 좀 해요.”그녀는 시원히 응했다.10분 후.두 사람은 커피숍에 들어갔다.노동명은 아메리카노 한 잔, 손은경은 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은경 씨,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편이라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준하 씨와 소현 언니가 바래다주러 가셨어요.”소정남이 말했다.“온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벌써 가셨어요? 제가 음식 대접할 시간도 없었네요.”하예정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시간 있을 때 A시에 가서 식사 초대하면 되죠. 준하 씨가 이번에 관성으로 온 이유는 단지 용정이가 우빈이와 함께 놀게 하려는 것뿐이에요.”소정남은 전씨 가문의 대표 부인 앞에서 그의 고통을 호소했다.“제가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태윤이가 결혼 휴가를 내서 오늘에야 출근했는데... 제가 너무 바빠서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태윤에게 말할 틈이 없었는데 내일 제가 휴가를 내야겠어요. 좀 이따가 태윤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정 씨가 저를 도와주셔야 해요. 제가 한 달 동안 푹 쉬지 못했거든요. 내일 휴가를 내는 것도 휴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효진이와 함께 임신 검사받으러 가기 위해서예요.”하예정이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태윤 씨가 정남 씨의 휴가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제가 도와서 말씀드릴게요. 요즘 정말 수고 많으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태윤 씨에게 휴가 이틀 내주라고 설득할게요. 차라리 휴가 낼 필요 없이 내일 효진이와 함께 검사받으러 가세요.”전태윤 부부가 결혼식 후 편안한 신혼여행을 보내게 되었다. 비록 관성을 떠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소정남이 전태윤의 업무량을 분담한 덕이다.이제 전태윤이 회사로 돌아왔으니 적절한 시기에 가장 바삐 돌아쳤던 소정남을 쉬게 해야 했다.소정남이 대답했다.“이틀 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죠. 날씨도 추워졌는데 효진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더라고요. 제가 줄곧 데리고 나갈 시간이 없었어요. 집에서 먹을 수는 있지만, 저의 사촌 누나가 자꾸 잔소리를 늘어놓으셔서 먹는다고 해도 효진이가 불편해해서 늘 나가서 먹고 싶다고 했거든요. 내일 함께 검사를 받고 저녁에 샤브샤브 먹으러 가야겠어요. 효진이가 임신한 뒤로 뭐 먹고 싶을 때마다 즉시 입에 넣고 싶어 하던데 예정 씨도 그
우빈은 형이 될 사람이기 때문에 동생들을 사랑할 줄 알았다.“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서너 살밖에 안 되는데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하예정은 웃으며 우빈을 안았다.우빈은 뚱뚱하지 않다.녀석은 정말 졸렸는지 하예정에게 안긴 지 2분도 안 되어 금세 잠이 들었다.30분 후, 차 두 대가 전씨 그룹으로 들어섰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그를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저녁에 퇴근할 때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언제 올지는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앞당겨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나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다.심효진은 부부가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상대방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면 부부 감정을 두텁게 해준다고 말한 적 있다.소설을 많이 본 성소현은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능력이 하예정보다 더 대단했다.하예정은 성소현에게서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다.“사모님, 제가 우빈을 안아드릴게요.”경호원은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을 안아오려고 했다.그러나 하예정이 거절했다.“괜찮아요. 제가 안으면 돼요. 1층에서 기다리세요. 만약 볼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일을 보셔도 돼요. 태윤 씨가 퇴근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그녀는 남편의 차를 타고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경호원은 공손히 대답했다.“다른 개인적인 일은 없습니다. 큰 사모님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호원들과 함께 회사 안으로 건물로 들어섰다.들어가는 길에 하예정을 본 직원들은 전부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경호원들은 1층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하예정과 우빈을 싣고 곧장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빈은 너무 정신없이 놀고 피곤한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다. 아마 깨우지 않으면 어두워질 때까지 잘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다.전태윤의 비서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모연정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용정은 가끔 혼자 놀 때 아무도 그를 보고 있지 않고 인기척을 듣지 못할 때 용정을 찾아가 보면 분명 사고를 치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녀석이 제 립스틱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니까요.”성소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접하는 아이가 바로 우빈이였다.성소현은 우빈이가 항상 철이 들고 귀엽고 총명하다고만 느꼈지,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의 눈에는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사로 보였다.성소현의 친조카처럼 막 태어났을 때는 그다지 예뻐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그녀는 친조카의 성장 다큐멘터리를 찍어준다며 매일 조카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두었다.다만 눈물이 좀 많을 뿐이다.배가 고프면 울고 응가 해도 울었다. 말을 못 한 탓으로 아기는 입만 벌리면 울었다.모연정과 하예정은 잠시 아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예지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쌍둥이가 깨어난 것을 보자 모연정은 일어나서 아들을 안으러 갔다.딸은 이미 예준성에게 안겨 있었다.예준성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는데 예준하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말했다.“형,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연이 안아줄게.”예준성은 캐리어를 예준하에게 건네면서 말했다.“캐리어를 밖으로 끌고 나가서 차에 실어줘. 이따가 우리를 서원 리조트로 데려다줘.”그들의 개인 비행기는 서원 리조트에 주차되었다.예준하의 별장에는 예준하 부부의 개인 비행기를 주차할 수 있는 큰 공간이 없다.예준하는 입을 삐쭉 내밀면서 중얼거렸다.“지연이를 안고 싶은데 자꾸 캐리어만 끌게 하다니. 곧 돌아갈 거면서 지연이를 안지도 못하게 해. 살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중얼중얼하던 예준하는 결국 예준성을 도와 캐리어를 끌어갔다.예준성은 딸을 안고 하예정 자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모연정이 예지호를 안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모연정에게 말했다.“연정아, 가자. 용정은?”“밖에서 우빈이와 놀고 있어요. 나가서 불러오면 돼
하예정은 갑자기 점쟁이가 자신과 전태윤의 결혼을 지지하면서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아들딸을 낳을 거라는 말을 떠올렸다.만약 하예정이 딸을 낳으면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만약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처럼 딸을 낳아도 잘 키울 수 없다면 그녀는 아이를 낳지 않을지언정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서원 리조트의 풍수에 문제가 있는 건가!그러나 점쟁이는 리조트의 풍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점쟁이는 서원 리조트의 풍수 구조가 사업과 자식들이 번창할 것이라고 말했다.“예정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하예정의 안색이 변한 것을 유심히 본 성소현이 걱정스레 물었다.“내가 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낳은 딸이 세상을 뜨는 일을 언급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네 뱃속의 이 아이는 틀림없이 아들일 거야. 우빈이가 말했듯이 네 배 속의 아기는 남자 아기일 거야. 게다가 네가 딸을 낳았다고 해도 현재 의학이 발달하고 임신 중에 그렇게 많은 임신 검사를 받을 수 있어서 분명 건강하게 자랄 거야. 태윤 씨 조상들의 일은 옛날얘기잖아. 청나라 말기 때 의학 기술이 얼마나 뒤처졌는데, 감기에 걸리기만 해도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시기잖아.”고대 궁안의 생활도 아주 좋았지만 죽은 아기들도 얼마나 많았던가!말을 마친 성소현은 일부러 하예정의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너도 태윤 씨에게 딸을 낳을 만큼 그렇게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걸. 너희들은 아들을 낳을 운명인 거지. 안 좋은 일은 생각하지 마. 너 놀란 것 좀 봐. 잘 들어. 내가 아기에게 준비한 선물들은 전부 남자아이 물건들이니까 꼭 아들을 낳아야 해.”하예정은 겨우 마음을 안정시켰다.아직 딸을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필요 없었다.게다가 점쟁이는 하예정이 아들딸을 낳을 운명이라고 했기에 그녀가 딸을 낳는다고 해도 반드시 건강하게 키워 안전하게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혹은 둘째를 가
하예정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용정을 예준하 곁으로 먼저 보냈다. 예준성 부부는 관성에 온 뒤로 줄곧 예준하의 별장에 머물렀다.예준하의 집에 도착하여 용정을 모연정 부부의 손에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의 긴장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했다.“아줌마, 저 여기서 좀 더 놀 수 있을까요?”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우빈은 아쉬워하며 용정과 한 시간이라도 더 놀고 싶어 했다.우빈이가 입을 열었다.“용정이가 이번에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저랑 놀 수 있거든요.”하예정은 모연정을 쳐다보았고 모연정이 말을 건넸다.“저희도 짐을 정리해야 해서 30분 정도 있다가 집으로 갈 거예요. 두 아이를 30분만 더 놀게 해요. 용정도 우빈이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만 이렇게 계속 놀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신나게 놀면 마음을 거두어들이기 어려워져요.”“그러게요.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자꾸 놀 생각만 하고 유치원은 가기 싫어질 거예요. 용정과 비교되지 않았다면 우빈은 아마 그의 사촌 이모처럼 강제적으로 차에 태워야 했을걸요.”성소현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꺼린 사실이 언급되자 모연정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예준성 부부를 배웅하러 왔는데 하예정이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하예정을 가볍게 때렸다.“예정아, 너 정말 못된 것만 배운 거 아니야? 누가 어릴 때 유치원에 가고 싶었겠어?”하예정은 히죽히죽 웃었다.“저는 아마 가기 싫어한 적 없을걸요.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는 말씀하신 적 없었어요. 우리 언니도 말 한 적 없는걸요.”하예정은 유치원에 간 기억이 없지만, 하예진이 5살 연상이라 하예정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한 경험이 있으면 그녀에게 말했을 것이다.“우빈아, 얼른 놀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 우리 모 아줌마를 배웅해 드려야 해. 그리고 이모부 회사로 가서 이모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가서 밥 먹자. 오늘 실컷 놀고 내일부터 유치원에 가
윤미라는 노동명이 우빈의 계부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적어도 노동명의 가정에는 아이가 있다.어쩌면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하예진이 또 아이를 낳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우빈은 늘 여동생을 원했다.하예정의 배 속에 있는 아기도 다들 아들이라고 여겼다.우빈이가 여동생을 갖고 싶어 하면 아마도 하예진에게 여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를 것이고 노동명에게도 친자식이 생기게 될지도 모른다.그 자식이 딸일지라도 노동명의 핏줄이기만 하면 윤미라는 엄청나게 기뻐할 것이다.물론, 윤미라는 이런 생각들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노동명의 교통사고는 윤미라 부부의 전통관념을 약화시켰던 것이다.“이만 가볼게요. 시간이 나면 또 올게요. 우빈이는 아마 자주 오게 될걸요.”하예정이 여전히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고집하자 윤미라도 어쩔 수 없이 영양제를 억지로 하예정에게 쑤셔 넣어주었다.“아주머니, 저의 허리를 보세요. 더 몸보신했다가 허리가 더 굵어질 것 같아요.”하예정이 지금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보양식이다.그녀의 집에는 보양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윤미라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예정 씨가 뚱뚱한 게 아니라 임신하니까 허리둘레가 변한 거예요. 정상인걸요. 임신 말기로 되면 배가 뽈처럼 통통해져 허리가 더 굵어질 거예요. 아기가 나오면 서서히 살이 빠질 테니까 얼른 가져가세요. 이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보양식 외, 우빈이가 좋아하는 간식도 들어있어요. 예정 씨와 우빈을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라고 하고 싶은데 급히 떠나려고 하시길래 이렇게 포장해 드렸어요.”윤미라는 또 돈 봉투 두 개를 꺼내 용정과 우빈에게 건네주었다.두 아이 모두 그 봉투를 받을 엄두를 못 냈다.윤미라는 웃으며 용정에게 돈 봉투를 쥐여주면서 말을 건넸다.“용정아, 네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돈 봉투를 주는 거야. 얼른 받아.”용정이가 하예정을 바라보자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받으라고 했다. 용정은 그제야 감히 받아들이며 윤미라에게 고맙다고 인
우빈은 무척 실망했다.우빈은 용정이가 벌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용정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책을 베껴 쓸 줄 알아? 힘들지 않아?”용정과 우빈은 나이가 비슷했다. 우빈은 지금도 간단한 숫자 몇 개와 시 몇 수밖에 외우지 못했다.하예진 자매는 우빈이가 어릴 적엔 주로 잘 먹고 잘 놀아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우빈에게 너무 많은 학업적인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하여 우빈은 유치원에 가는 것이 너무 쉽고 너무 즐거웠다.우빈도 한동안 유치원에 가기 싫어 맨날 입만 삐죽삐죽 내밀면서 유치원 생활이 너무 재미없다고 느꼈다.“이해하지는 못해요. 사부님께서 의학책을 외우라고 가르쳐 주셔서 외우고는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 베끼지 못해도 베껴야 하거든요. 아니면 사부님께서 맛있는 음식도 주지 않으세요. 그리고 저에게 책을 베끼어 쓰라고 벌할 때면 저는 한 페이지를 아주 오랫동안 베껴야 겨우 완성할 수 있어요.”비록 용정은 총명하고 아는 글자가 우빈보다 훨씬 많으며 쓸 줄도 알지만 어쨌든 겨우 서너 살 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수많은 글씨가 박힌 책 한 페이지를 베끼라고 하니, 용정에게는 아주 무거운 임무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한 번 벌을 받아 본 용정은 겁에 질렸다.사부님은 용정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의학책을 베끼어 쓰게 하겠다는 말을 꺼내곤 했다. 그러면 용정은 감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하예정은 용정의 머리를 가여운 표정으로 쓰다듬으며 위로했다.“수고했어.”우빈은 아직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용정은 지옥의 훈련을 받아야 했다.다행히 신의 일행은 “도”를 잘 장악하고 있어서 용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그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게 되면 용정에게 며칠 휴가를 주었다. 그리고 그를 A시로 돌려보내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묵게 하면서 긴장을 풀게 했다.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면 역효과를 볼 것이다.윤미라는 용정을 처음 보았다. 용정의 말을 듣던 윤미라는 하예정에게
“이번 주 금요일에 네가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아저씨가 널 데리고 강성으로 올게.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갈 거야, 알았지?”노동명은 우빈에게 약속했다.이렇게 되면 금요일에 노동명은 우빈과 함께 떳떳하게 강성으로 올 이유가 생기게 된 셈이다.“정말? 아저씨, 거짓말 아니죠?”“난 어린이를 속이지 않거든. 아저씨가 성실하다는 생각 안 들어?”우빈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노동명이 정말 성실하다고 느꼈고 이내 대답했다.“그럼 아저씨 믿을게요. 우리가 엄마를 찾아가는 것을 엄마가 허락하셨어요? 우리가 가면 엄마의 일을 방해하지 않을까요?”하예정은 우빈에게 하예진이 요즘 바쁘다고 말했다.우빈은 하예진이 이렇게 바쁜 이유가 바로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을 잘살게 하고 싶다는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우빈은 자신의 현재 생활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녀석은 자신의 엄마가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다.그런데 하예진이 직장을 다니면서 돈 벌어야 한다고 했기에 철이 든 우빈은 늘 하예진을 지지했다.“괜찮아. 주말에 오면 네 엄마도 쉴 거야. 마침 우리가 네 엄마를 모시고 산책하면서 기분 전환도 해줄 수 있잖아. 그러면 다음 주에 출근할 때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우빈은 여전히 걱정하며 말했다.“아저씨, 어머니께서 정말 동의하시는지 잘 물어봐 주세요.”노동명은 웃으며 휴대전화를 하예진에게 돌려주었다. 그렇게 하예진 모자가 전화로 의논하다가 결국 하예진은 아들 우빈의 고집에 못 이겨 그가 금요일에 찾아오는 것에 동의했다.사실 하예진도 우빈이가 보고 싶었다.그녀는 노동명이 곁에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하예진의 허락을 받은 우빈은 무척 즐거워하며 얼마 안 가서 통화를 끝냈다.우빈은 핸드폰을 하예정에게 돌려주었다.하예정은 웃으며 물었다.“이제 괜찮아졌지? 서럽지 않지?”우빈은 기뻐하며 대답했다.“금요일에 엄마를 찾아갈 수 있어요. 이모,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월요일이야.”우빈은 또 물었다.“월요일부터 금
노동명은 하예진이 가슴 아파할까 봐, 또 격려의 말들을 늘어놓을까 봐 자신이 폐인이라는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하예진은 호텔에 비치된 주전자를 씻고 주전자로 물을 끓였다. 그리고 컵을 씻어 녹차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녹차 한 잔을 타서 가져다주었다.하예진은 찻잔을 침대 머리맡 카운터에 놓고 노동명에게 말했다.“지금은 물이 뜨거워서 좀 이따가 마셔요.”따르릉...하예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더니 노동명에게 말했다.“예정이에요.”그녀는 하예정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며 서둘러 받았다.“예정아, 뭔 일 있어?”“엄마.”전화기 건너편에서 앳된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빈아, 우빈이가 드디어 엄마가 생각났나 보네. 엄마한테 전화할 줄 다 알고.”하예진은 웃으며 우빈을 조롱했다.우빈이 입을 삐죽 내밀며 억울하다는 듯 다시 엄마를 불렀다.아들의 억울한 어조를 알아챈 하예진이 물어보았다.“왜? 기분이 안 좋아? 친구랑 싸웠어?”“아니요. 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나빠요. 저 몰래 아무 말도 없이 엄마 보러 갔어요. 제가 제 친구를 아저씨한테 소개해 주려고 이모한테 부탁해 아저씨 찾으러 왔는데 글쎄 노 할머니께서 아저씨가 엄마 찾으러 가셨다고 한 거 있죠?”우빈 녀석은 너무 서러서 계속해서 말했다.“아저씨는 말도 없이... 제가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저하고 말 좀 하시지. 그럼 저도 아저씨 따라서 엄마한테 갔을 텐데. 아저씨는 약속을 어기는 나쁜 사람이에요.”하예진이 출장을 간 후 노동명은 분명히 우빈에게 나중에 하예진이 보고 싶으면 노동명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하예진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다.우빈은 그 당시 노동명이 그의 친아버지보다도 더 잘해준다고 생각했다.주형인은 매번 우빈을 볼 때마다 잘 대해주지만,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빈은 주형인이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여겼다.노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주형인과 주경진 부부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