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명의 얼굴에 걱정이 스쳐 갔다.그는 한참 후에야 시선을 거두고는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이를 안아오려고 손을 뻗었지만 꼬마는 그에게 안기려 하지 않았다.아이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는 이모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이에 노동명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는 본인이 아이를 잘 보호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우빈이가 많이 놀랐나 봐. 지금은 이모에게만 달라붙어 있으려 해.”보다 못한 전태윤이 한마디 설명했다.노동명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괜찮아, 얼마나 무서웠겠어. 태윤아, 내가 여기서 예진이를 지키고 있을테니, 너는 예정 씨와 우빈이를 데리고 돌아가서 좀 쉬어.”전태윤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했다.“그래.”그는 아내에게 우빈이를 데리고 함께 캠핑카로 가서 좀 쉬다가 이제 한밤중에 다시 와서 처형을 지키자고 설득했다.노동명이 여기 있으니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게다가, 그의 경호원 팀도 옆에서 지키고 있다.“여보, 당신은 버틸 수 있어도 우빈이는 아직 어린앤데, 이렇게 버티다가 무리가 올 수도 있어. 우빈이를 봐서라도 휴식 좀 해. 이건 당신 언니가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한 아이잖아. 당신이 잘 돌보고 있어야 처형도 안심하고 깨어날 수 있어.”노동명도 옆에서 우선 좀 쉬라고 권했다.하예정은 자신의 품에 꼭 안겨있는 아이를 바라보더니 결국 타협했다. 먼저 캠핑카에 가서 좀 쉬다가 알람을 맞춰놓고, 한밤중에 다시 와서 언니를 지킬 생각이었다. ... 주씨 일가.“현주가 어떻게... 이게 말이 돼?”부모에게 강제로 끌려온 주형인은 오는 내내 중얼거렸다.그는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서현주가 어떻게 어린 우빈에게 손을 댈 수 있는거지?그녀는 그가 전처랑 이혼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고, 애초에 그더러 아들의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한 것도 그녀이다.어머니와 누나는 항상 서현주와 이혼하고 하예진과 재혼하라고 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현주와 결혼식까지 올리기로 했다.또한 결혼식 후 신혼여행도 가
똑똑.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주경진이 문을 열자마자 주서인이 들이닥치더니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아빠, 예진이는 어때? 우빈이는? 나 전화 받고 바로 달려왔어.”“우빈이는 괜찮아. 그냥 많이 놀랐어. 지금은 예정이한테만 달라붙어 있어. 예진이는... 아직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데 의사가 며칠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 버텨내지 못하면... 아니지, 분명 버텨낼 수 있을 거야. 예진이는 착한 아이니까, 분명 하느님이 지켜줄 거야.”“맞아! 예진이는 착한 사람이니까 꼭 괜찮아질 거야!”주서인은 하예정 자매가 그녀의 아들을 구해준 후부터 그들 자매에 대한 태도가 확 달라졌다. 지금은 진심으로 하예진이 낫기를 바라고 있다.동생을 본 주서인은 달려들어 마구 때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형인아! 너 내 말 듣지 않고 독한 여자와 결혼하더니 우리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우빈이까지 해치려고 해?”“지난번 동물원에서도 납치범더러 우빈이를 데려가게 하더니... 독한 년 같으니라고. 내가 현주를 일부러 괴롭힌 건 맞아. 날 미워하고 원망해도 괜찮아. 나를 해할 목적으로 온 거라면 다 받아 들일 준비가 돼있어. 하지만 어떻게 무고한 아이를 해하려고 할 수 있지? 정말 독하기도. 난 내가 이미 충분히 나쁜 줄 알았어. 나보다 더 나쁜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어. 난 그렇다 쳐도 예진이는 현주에게 아무 짓도 안 했잖아? 그런데도 우빈에게까지 손을 써? 우리 가문의 핏줄을 끊으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주서인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김은희가 전화로 딸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말해줬기에 주서인은 오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주형인은 아내를 대신하여 변명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다시 서현주를 감쌌다간 자기를 찢어버릴 기세였다.게다가 그도 아들을 빼앗길 뻔한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그는 이제 더 이상 서현주의 편을 들 수가 없게 되었다. 부모님의 말처럼 만약 이번 일이 서현주와 관련이 없다면 경찰도 그녀를 데려가
노동명은 자신이 하예진을 그 정도로 신경 쓰고 있는 줄 몰랐다.그는 항상 자신은 우빈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그녀에게도 잘 대해 준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하지만 나쁜 놈이 그녀를 몇 번 이나 칼로 찌른 것을 안 순간, 그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이로써 아무리 감정에 무딘 그라도 본인이 진작부터 그녀를 좋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떻게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을까?그도 잘 몰랐다.어쩐지 친구들이 항상 그와 하예진을 엮으려 하더니... 역시 당사자보다는 옆 사람들이 더 잘 본다.그는 우수한 손은경을 마주할 때도 설레기는커녕 피할 생각만 들었다. 손은경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하예진에게 마음을 둔 것이다.주서인 부부와 김은희가 병원에 찾아갔을 때 마침 노동명이 병실 밖에서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주서인 부부가 찾아온 것을 보고 어두운 얼굴로 차갑게 그들을 쳐다보았다.“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예요?”주서인이 먼저 참지 못하고 그에게 따져 물었다.그에 노동명은 차갑게 되물었다.“내가 여기 있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지?”주서인은 말문이 막혔다.하예진은 독신인 데다가 다이어트에도 성공했으니 구애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노동명은 하예진에게 항상 잘 대해줬다.그들 일가 모두 노동명이 하예진에게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빈에게도 잘해준 것으로 생각했다.하예진이 아직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했을 때, 주씨 일가는 노동명이 회사 대표인 데다 억만장자라 이혼녀에 뚱뚱하고, 세 살배기 아들까지 데리고 있는 그녀를 절대 좋아할 리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지금 노동명이 병실 밖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명은 정말 하예진을 좋아한다.아니면 밤늦게까지 병실 밖에서 지키고 있을 리가 없다.주씨 일가의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한밤중에 안 자고 뭐 하러 뛰어온 거야?”그는 차가운 얼굴로 주
“아까부터 계속 질문만 하는데... 내가 왜 대답해야 하지?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당신은 내 일에 간섭할 자격이 없으니 신경꺼. 그리고 예진이가 어떤지 묻지도 마. 예진이가 지금 이렇게 누워 있는 건 당신의 그 잘난 동서 때문이니까.”“그 못된 년을 언급하지도 말아요. 난 그년을 동서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내 동서는 오직 예진이 한사람 뿐이니까요.”“하! 나참 어이가 없어서.”노동명은 웃기다는 듯이 말했다.“당신이 예진에게 했던 일을 다 잊었어? 예진이는 안정을 취해야하니 여기서 당장 떠나. 그리고 예진이도 주씨 일가의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을거야. 그러니 당장 나가!”노동명은 전씨 가문의 경호원에게 주서인 모녀와 임수찬을 함께 쫓아내라고 지시했다.주씨 일가는 그가 본 사람 중 가장 이상하고 못된 부류에 속한다.주서인은 결국 헛걸음을 하였다. 노동명이 문 앞에 막아서서 가까이할 기회조차 없었으니까.김은희는 속으로 이젠 하예진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다.노동명은 그들 주씨 일가 때문에 하예진이 지금 저렇게 누워있다고 한다.주형인이 우빈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더라면, 서현주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주씨 일가가 떠난 후 노동명은 다시 창문을 통해 병실 안의 하예진을 바라보았다.“걱정 마, 저 사람들이 당신을 괴롭히고 귀찮게 하면 내가 대신 혼내줄테니까. 그러니 당신도 잘 버텨야 해. 겉만 달콤한 말에 속지 마, 저들은 지금 당신과 주형인이 재혼하길 바라고 있어. 당신의 가게와 예정 씨의 신분을 보고 혜택을 받고 싶어서.”노동명은 그녀에게 많은 말을 했다.원래 전태윤 부부와 반나절씩 나눠 지키기로 약속했지만 그는 떠나지 않고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켰다.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를 편히 쉬게 하려고 몰래 알람을 껐다.노동명은 날이 밝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느라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초췌해졌다.“날이 곧 밝으려 하네. 오늘 해가 뜰 것 같아? 평소 이맘때쯤이면 당신은 가게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을 텐데
그녀는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길 얼마나 바라고 바랐는지 모른다.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당했는지 아무도 모른다.동생이 슬플 땐 그녀에게 기대어 울 수 있지만 그녀가 슬플 땐 누구한테 기대어 울어야 할까?“엄마, 난 돌아가지 않을래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요.”하예진은 어머니 품에서 머리를 흔들며 부모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어머니는 그녀를 밀어냈다.“예진아, 예정이와 너의 아들 우빈이를 생각해야지. 그들 모두 네가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니까 말 들어, 빨리 돌아가.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빨리 가!”어머니는 말하면서 그녀를 밀쳐냈다.하예진은 그제야 동생과 아들이 생각났다.‘맞아, 나에겐 아들과 동생이 있어. 내가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우빈이는 어쩌지?’그리고 동생도 의지할 친정 식구를 잃게 된다.“예진아, 돌아가라.”잠자코 있던 아버지도 입을 열었다.부모님은 그녀를 재촉했다.부모는 심지어 함께 그녀를 반대편으로 밀기까지 했다. 그녀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앞에 밝은 빛이 보이자 부모님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걸어가...”부모님의 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하예진은 눈물을 머금고 빛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병실 밖의 노동명은 하예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것 같았다.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정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일구야, 빨리 와서 예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좀 봐봐.”그는 자신이 잘못 봤을까 봐 강일구에게 도움을 청했다.강일구가 다가오자 그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강일구도 눈을 몇 번 비비고 찬찬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노 대표님, 정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곧 깨어날 것 같은데요? 바로 의사를 불러올게요.”강일구는 의사를 부르러 달려갔다.다른 경호원들은 즉시 전태윤 부부에게 알렸다.캠
하예진은 아들이 무사한 모습과 동생이 온 것을 보고 아직 말하지는 못했지만, 씩 웃으며 동생을 위로하려 했는데, 눈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또 힘든 선택을 했다.부모님이 아닌 동생과 아들의 곁에 남는 것을 택했다.“의사 선생님, 환자 몸은 어때요?”전태윤이 의사에게 물었다.“이미 의식이 돌아왔고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이젠 중환자실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이 말에 주위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걱정을 잠시 내려놓았다.하예진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전태윤은 조용하고 상처 회복에 적합한 VIP 병실로 예약했다.비록 깨어났지만 아직 몸이 허약한 그녀는 병실을 옮긴 지 얼마 안 돼서 이내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하예정은 우빈이를 안고 침대 옆에 앉아 언니를 지켰다. 가끔 손가락을 언니의 코끝에 대고 호흡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날이 밝아서야 전태윤은 비로소 이경혜와 다른 사람들에게 하예진이 위험에서 벗어나 잠시 깨어났었다고 알렸다.어젯밤 할머니가 아주 늦은 시간에 관성에 돌아와서 일부러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할머니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급히 달려왔다.“할머니.”할머니의 모습을 본 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일어나 인사를 했다.할머니는 가볍게 응하고는 먼저 하예진을 보러 갔다. 할머니는 하예진이 창백한 얼굴로 아직 혼수상태인 것을 보고 가슴 아픈 듯 말했다.“가슴 아파 죽겠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여자와 아이조차도 보호하지 못했다니!”전태윤과 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들이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게 사실이니까.“의사가 뭐라고 하던?”할머니는 하예정에게 물었다.“이젠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하네요. 날이 밝자마자 중환자실에서 나왔는데 잠시 깨어나더니 곧 다시 잠들었어요”할머니는 알겠다는 듯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됐어. 이 할미가 걱정돼서 밤새 잠도 잘 못 잤거든.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말했잖아, 너희 자매는 모두 큰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언니는 곧 좋아질 거야.”할머니는 우빈이를 안으려
노동명은 침묵에 잠겼다.다들 하예진을 보고 난 후 할머니는 그녀가 휴식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다들 먼저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전태윤 부부의 다크서클도 꽤 심했다.하예진이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고 성씨 일가와 심씨 일가 모두 그녀를 보러 왔다.이경혜는 병원에서 하예진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을 본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경호원은 모두에게 아침을 준비해 주었다.아침 식사 후 전태윤은 노동명에게 말했다.“먼저 가서 쉬어. 어젯밤에 반나절만 지키기로 했는데 혼자 하룻밤을 지켰잖아.”“괜찮아, 졸리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아.”그는 지인들에게 둘러싸인 하예진을 보고 있었다.다시 정신을 차린 그녀는 말할 때도 아직 허약했지만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 정신이 훨씬 좋아졌다.그녀는 노동명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녀가 그를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는 키가 커서 사람들 밖에서도 그녀를 볼 수 있다.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만 있어도 기뻤고 조금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따르릉!이때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영향을 줄까 봐 병실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어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동명아.”윤미라는 전화에서 단도직입으로 물었다.“너 지금 병원인 거야?”경찰이 많은 사람들을 잡아갔기 때문에 어제 일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많은 사람은 어제 관성의 대부분 경찰을 출동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을 잡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아이를 뺏길 뻔한 일이라는 것을 안 후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를 옆에 꼭 데리고 다녔다. 아직 어린아이는 아예 안고 다니고, 커서 안을 수 없으면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윤미라도 당연히 이 일에 대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뒤에서야 납치당한 아이가 하예진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고 하예진이 다친 것도 후에 알게 되었다.막내아들이 어젯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특별히 아들 명의하에 있는 집들을 일일이 찾아갔지만 아들을 찾지 못했고, 회사에 찾아가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아마
윤미라는 한참을 침묵에 잠겼다가 물었다.“예진이는 지금 깨어났고 위험에서 벗어났다며. 너 언제 돌아와? 병원에서 밤새워 간호하느라 피곤할 건데 어서 돌아와서 쉬어.”“피곤하지 않아요, 버틸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그녀는 아들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전화를 끊었다.어머니가 전화를 끊자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사람들 밖에 서서 하예진을 바라보았다.비록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매우 허약했다. 의사는 너무 많은 가족이 병실에 모여있으면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게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들은 하예진이 괜찮은 것을 확인한 후 병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결국 병원에 남은 사람은 전태윤 부부와 노동명 세 사람이었다.하예진은 다시 잠들었다. 이제야 좀 편안히 잘 수 있게 되었다.아직 살아있는 데다가 아들도 무사하고, 게다가 나쁜 사람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여보, 이젠 괜찮아. 처형도 잠들었으니 우빈이 데리고 침대에서 좀 쉬어.”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우빈이를 데리고 옆 침대에서 쉬라고 권했다.“어젯밤에도 잠을 못 자서 다크서클이 생긴 것 봐.”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침대 옆에 앉아 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나 안 졸려요. 당신 졸리면 가서 쉬어요.”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노동명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같이 병실을 나섰다.“너 여기서 하룻밤을 새웠으니까 이만 돌아가서 쉬어. 처형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너까지 쓰러지지 말고.”“나도 아직 떠나고 싶지 않아. 마음이 놓이지 않거든. 예진이가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는 것을 봐야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전태윤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따르릉!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소정남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전화 건너편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누가 몰래 찍었는지 조사하고 어떻게든 순위를 내려.”말을 마치고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