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인은 하예진이 점점 더 잘 사는 모습에 배알이 꼬여 자꾸 그녀를 귀찮게 굴고 싶었다.이번 일만 해도 그냥 그가 알아서 아들의 정장을 사주면 될 텐데 서현주의 이간질에 가스라이팅을 당했는지 하예진이 일부러 부자 사이를 떼어놓는 거라고 우긴다.그래서 기어코 가게까지 찾아와 우빈이를 데리고 정장 고르러 가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이 동의 안 하면 그녀와 난리 칠 작정이다.“우빈이 어디 있어? 아이 어디로 숨겼냐고?”주형인은 가게 안을 쭉 둘러보았지만 아이가 안 보였다.“예정이네로 숨긴 거야?”하지만 하예정의 서점도 요 이틀 문을 닫았다.주형인이 미리 가봐서 안다.“우빈이 수업하러 갔어. 돌아오려면 아직 좀 더 걸려.”하예진이 담담하게 말했다.“주형인, 나 당신 우빈이 못 만나게 막은 적 없어. 정말 우빈이 데리고 정장 고르러 가고 싶다면 오케이, 나도 곧 청소 마무리하니까 이따가 우빈이 수업 끝나고 돌아오거든 나도 같이 가.”주형인이 뭐라 더 말하려 할 때 서현주가 살며시 그를 꼬집더니 말을 가로챘다.“예진 씨, 정말 우리 따라가려고? 나 아직 드레스도 못 골랐는데 그럼 이따가 예진 씨가 건의 좀 내줄래?”하예진에게 본인이 예쁜 드레스를 입고 주형인의 아름다운 신부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한다.그녀가 과연 무슨 심정일까? 기분이 확 잡치겠지.“난 우빈이만 책임져.”하예진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서현주의 속내를 하예진이 모를 리 있을까.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다.주형인 같은 남자와 일찍 끝내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선택인 것을.서현주도 이젠 주형인과 주 씨네 가족이 어떤 인성인지 잘 알고 있을 텐데 기어코 결혼식을 치르겠다니 앞으로 눈물 흘릴 일만 남을 것이다.“우빈이가 무슨 수업을 해? 아이 유치원 보냈어?”주형인이 물었다. 하예진은 계속 청소하며 대답했다.“제부가 우빈이한테 무술 선생님을 찾아주셨어. 우빈이 지금 무술 선생님이 운영하는 무관에서 기본기를 배우는 중이야. 유치원은 9월에 보내기로 했어.”“누가 돈 냈는데
“엄마.”우빈이는 오 선생님이 나눠준 무관의 통일 복장을 갈아입고 쪼르르 달려왔다.“우빈이 왔어.”하예진은 활짝 웃으며 아들을 안았다.“어때? 힘들어? 안 울었어 우빈이?”아이는 고개를 내저었다.“안 울었어요. 근데 너무 힘들었어요.”“그래. 엄마가 뽀뽀해 주면 금방 다 나을 거야. 우빈이 끝까지 버텨야 해.”하예진은 아들이 중도 포기할까 봐 뽀뽀한 후 아이에게 당부했다. 전태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반드시 끝까지 견지해야 한다고 말이다.아이는 너무 힘들어 더는 안 가고 싶지만 이모부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약 무술을 배우면 나중에 나쁜 놈도 안 두렵고 엄마도 지켜줄 수 있다는 그 말, 우빈이는 엄마를 지켜주는 용감한 사나이가 되고 싶었다.엄마의 말을 들은 아이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우빈이 끝까지 버틸 거예요.”이때 강일구가 따라 들어오며 말했다.“예진 씨.”그는 하예진에게 인사했다.“고마워요, 일구 씨.”강일구는 웃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 괜찮습니다.”그는 지금 우빈의 무술 수업을 책임지고 데려다주고 있다.주형인 부부가 가게 안에 앉아 있자 강일구는 순간 경계심을 일으켰다. 우빈이를 하루 토스트로 데려다주면 바로 도련님 곁으로 돌아가는데 오늘은 자리를 뜨지 않고 주형인 부부만 노려보고 있다.“우빈아.”주형인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으며 아이에게 두 팔을 벌렸다.“우빈이 일로 와, 아빠 안아보자.”하예진이 아들을 내려주고 주형인이 다시 안아 올렸다.“아빠, 나 보러 왔어요? 나 오늘 수업하러 갔어요. 오 선생님이 무술을 가르쳐줘요. 나 너무 열심히 배워서 몸이 힘들어요.”아이가 어른 말투로 말하자 주형인이 실소를 터트렸다.전에는 아들이 종일 울기만 하여 우는 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났었다.그게 아니면 집안에 온통 아이 장난감뿐이다.그랬던 우빈이가 크면서 점점 철이 들었고 주형인도 아들이 너무 귀엽고 총명해서 양육권을 뺏어올 충동까지 생겼다.다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는 바
“우빈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용기 내어 싫다고 말해.”하예진은 아들을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우빈이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아빠를 쳐다보다가 한참 생각한 후에야 물었다.“엄마도 가요?”“가지 그럼. 아빠가 저번에 우빈의 엄마한테 청첩장 보냈잖아.”주형인의 말에 아이는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요, 우빈이 할게요.”주형인은 활짝 웃었다.‘역시 내 아들이라니까. 화동도 해주고.’“그럼 우리랑 함께 정장 고르러 갈래?”아이는 또 엄마를 바라봤다.주형인은 마지못해 하예진에게 말했다.“가려면 얼른 준비하던가.”하예진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은 채 일단 가게 전원과 가스를 다 껐는지 체크하고 안전을 재점검한 후에야 두 직원을 퇴근시키고 강일구에게 말했다.“일구 씨, 난 우빈이 데리고 정장 맞추러 가야 해요. 일구 씨는 먼저 돌아가세요.”우빈이는 오전에만 수업이 있다.아이가 아직 어려 오수혁은 감히 하루를 풀로 수업하지 않았다. 버티지 못하고 울며 포기할까 봐...매사에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야 하는 법이다.비록 무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건 아니지만 견지하다 보면 호신술 정도의 실력은 키울 수 있다.강일구는 하예진이 따라간다는 말에 안심하며 하루 토스트를 나왔다.서현주는 하예진 모자를 경호하는 사람이 없자 한숨을 돌렸다. 오늘 계획대로 움직이면 미션에 성공할 것만 같았다.하예진은 가게 문을 닫고 전남편의 품에서 아들을 안아오며 담담하게 말했다.“두 사람 앞에서 가. 내가 우빈이 태우고 뒤에서 따라갈게.”주형인은 이리로 올 때 문 앞에 세운 새 차를 보고 다른 사람 차인 줄 알았는데 하예진의 차였다.“차는 언제 뽑았어?”“최근에.”주형인은 그녀의 새 차를 훑어보더니 저렴한 국산 차인 걸 확인하고 기분이 내켰다.하예진이 몇억 대의 차를 몬다면 주형인은 배 아파 죽을 지경일 것이다.하예진의 말대로 주형인 부부가 앞에서 가고 그녀와 우빈이는 뒤따라갔다.하예진 모자가 주형인 부부와 함께 출발할 때
주형인은 후회했다. 실은 진작 후회했다.서현주와 공개적으로 함께한 이후로 그는 자신이 상상한 것처럼 원만하지 못한 삶에 후회가 밀려왔다.특히 가족들이 사사건건 서현주와 부딪히고 쉴 새 없이 다툴 때 그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바닥을 치며 후회했다.애인이 아내로 되니 결국 다 똑같았다.애초에 하예진을 잘해줬더라면, 그녀를 다이어트도 시켜주고 예쁘게 꾸미는 것도 신경 써줬더라면 애인 서현주에게 뒤처지지 않았을 텐데...“오빠, 왜 멍하니 서 있어?”서현주는 주형인이 하예진의 차를 보며 멍하니 넋 놓고 있자 그를 툭 치며 물었다. 주형인은 얼른 정신을 다잡고 그녀에게 대답했다.“아니야, 아무것도.”그는 감히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서현주가 길 한복판에서 그와 대판 싸울 테니까.주형인은 체면을 챙겨야 한다. 여기서 창피를 당하고 싶지는 않다.그렇게 되면 하예진도 비웃을 것이다.그는 앞으로 다가가 아들을 차에서 안아 내렸다.하예진이 내린 후 그는 우빈이를 내려주며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바로 이 샵이야.”하예진은 힐긋 볼 뿐 아무 말 없었다.이 웨딩드레스 샵은 그녀와 주형인이 결혼할 때 드레스를 대여한 곳이다.서현주는 참 그녀와 모든 걸 비기려 한다.하예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서현주, 너 대체 뭐가 그렇게 자신 없는 거야?’주형인과 하예진이 우빈의 손을 잡고 마치 한 가족 세 식구처럼 나란히 걸어갔다. 물론 한때 한 가족이긴 했지만서도...이를 본 서현주가 성큼성큼 다가가 하예진의 자리를 비집고 차지했다. 그녀는 다정하게 주형인의 팔짱을 끼며 하예진을 한쪽 옆으로 내팽개쳤다.하예진은 이 상황이 실로 우스울 따름이었다.이제 막 에돌아서 아들의 손을 잡으려 하는데 순간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낀 덩치 큰 남자가 나타나더니 재빨리 허리 숙여 주형인의 손을 잡은 우빈이를 낚아채 갔다.주형인이 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 남자는 이미 아이를 안고 잽싸게 도망쳤다.“우빈아.”하예진은 몸이 바로 반응했다. 그녀는
우빈이는 힘껏 소리치며 남자의 품에서 몸부림쳤다.아이는 남자에게 발길질도 했지만 상대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어린아이의 힘으론 끄떡없었다.발길질해도 아무 쓸모가 없자 우빈이는 대뜸 손으로 검은 옷 사내의 눈을 찔렀다.이번엔 검은 옷 남자도 타격을 입고 시야가 흐려져 걸음을 비틀거리며 속도가 훨씬 느려졌다.하예진은 더 미친 듯이 달려갔다. 십 미터, 오 미터, 일 미터...검은 옷 남자가 버럭 화내며 우빈이를 기절시키려던 찰나 하예진이 달려들어 아이를 낚아챘다. 다만 그녀도 다리가 휘청거려 바닥에 넘어졌지만 그 와중에 아들이 땅에 닿지 않게 꼭 끌어안았다.위험한 순간에 엄마들은 항상 아이부터 지키는 듯싶다.검은 옷 남자는 이렇게 포기하긴 아쉬운지 그녀가 넘어졌을 때 우빈이를 뺏어가려 했지만 하예진이 호락호락하게 놓아줄 리가 있을까. 그녀는 아들을 꽉 안고 있었고 우빈이도 남자에게 안기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손을 때리다가 입으로 물기까지 했다.시끌벅적한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많은 사람이 곧장 쫓아왔는데 그 속엔 검은 옷 사내와 같은 편도 있지만 질서정연한 경호원들이 더 많았다.“가 빨리! 아이 안고 뛰란 말이야!”검은 옷 사내의 한패가 그를 향해 소리 질렀다.검은 옷 사내는 잽싸게 우빈이를 뺏어가려 했지만 하예진이 아이를 꼭 안고 놓아주지 않자 분노 하에 그녀를 발로 힘껏 차버렸다.하예진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우빈이는 절대 놓아줄 리 없다.“우리 엄마 때리지 말아요! 때리지 말라고요 우리 엄마!”아이는 엄마를 지켜주고 싶지만 아직 너무 어리고 엄마가 꽉 안고 있어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발길질해도 그녀가 놓아주지 않자 검은 옷 사내는 휴대용 칼을 꺼내 씌우개를 내던진 후 그녀의 손목을 그었다.손목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고 선홍빛 핏물이 주르륵 흘러 그녀의 옷을 빨갛게 물들였지만 아무리 아파도 절대 이 손만은 놓아줄 수 없었다.남자는 분노가 극에 달해 그녀에게 난도질했다. 부
무리하게 달렸든지 아니면 너무 크게 놀랐는지 주형인은 사지에 힘이 풀려 하예진을 안을 힘이 없었다.“예진 씨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전씨 일가 경호원이 주형인을 밀쳤다. 그가 하예진을 마구 건드리면 출혈이 더 심해질 테니까.119에 신고한 후 경호원은 하예진을 위해 지혈 방법을 찾아보며 전태윤 일행에게 연락했다.전태윤은 처형이 칼에 찔렸단 소식을 듣자 저도 몰래 고함을 질렀다.“그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면서 우리 처형 한 명 제대로 못 지켜!”이젠 하예정을 볼 면목이 없다.경호원은 감히 아무 말도 못 했다.많은 사람이 감시하고 있지만 상대가 파견한 인원수도 어마어마했다.그들이 몇 분 늦게 도착했을 뿐인데 그 몇 분 사이에 하예진이 칼에 찔렸다.사고 인근 구역의 119에서 최단 시간에 현장에 도착해 하예진을 응급실로 실어 갔다.“엄마...”아이는 눈물범벅이 되었고 몸에 온통 엄마의 피가 묻어 있었다.“우빈아.”주형인은 저 자신을 때려죽이고픈 심정이었다.왜 아들을 안고 걷지 않았을까?만약 그랬다면 우빈이를 뺏길 일도 없고 하예진도 아들을 구하기 위해 칼에 찔릴 일이 없겠는데.그녀가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주형인은 감히 더 생각할 엄두가 안 났다.‘아니야, 괜찮을 거야!’하예진은 착한 사람이라 하늘이 지켜줄 것이다. 절대 아무 일 없기를!주형인은 아들을 안고 함께 구급차에 올라탔다.의사와 간호사가 차 안에서 재빨리 하예진을 위해 지혈해 주었다. 몇 군데 찔리긴 했지만 요해 부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혈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 있다.우빈이도 온몸에 핏자국이 묻은 걸 보더니 아이가 다친 줄 알고 간호사가 얼른 다가와 처치하려 했다.“엄마 피에요.”아이는 울면서 말했다.간호사는 여전히 아이를 안고 꼼꼼히 체크한 후 아이가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의식을 잃은 하예진을 보며 의사와 간호사들 전부 숙연해졌다. 자고로 엄마는 위대하다고 하더니 제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엄마는 목숨도 내다 바칠 수 있었다.
“언니.”통화가 연결된 후 한창 고향 마을 인근에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점검하던 하예정은 언니의 전화인 줄 알고 활짝 웃으며 받았다.전태윤은 병원 가는 길에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우빈이가 한발 앞섰다.“이모...”아이는 이모의 목소리를 듣더니 왈칵 울었다.하예정은 얼른 조카를 달랬다.“우빈이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수업 많이 힘들었어? 울지 마. 우리 우빈이 사내대장부인데 쉽게 울면 되겠어? 눈물 뚝. 이모가 돌아가면 우빈이 데리고 마트 가서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이모, 엄마가 피 흘려요. 엄청 많이 흘려요... 이모, 얼른 돌아와요. 엄마 거의 죽어요... 흐엉!”우빈은 울면서 말을 더듬거렸다.전화기 너머의 하예정은 사색이 되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트렸다.옆에 있던 성소현이 허리 숙여 휴대폰을 주웠다.하예정은 휴대폰을 뺏어와 조카에게 소리쳤다.“우빈아, 뭐라고? 똑똑히 말해봐. 엄마가 왜? 우빈아, 주우빈! 똑똑히 말해보란 말이야.”아이는 엉엉 울기만 했다.이때 주형인이 휴대폰을 가져와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너희 언니 사고 났어. 누가 또 우빈이를 뺏어가려는 걸 예진이가 지키다가 칼에 찔렸어. 지금 병원 응급실이야. 너 지금 어디야? 얼른 돌아와. 예진이가 만약... 너희 언니 마지막 모습이라도 봐야지.”하예정은 또다시 휴대폰을 떨어트리며 손발이 굳어지고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아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예정아.”“예정아, 왜 그래?”심효진과 성소현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언니가...”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언니가 왜?”성소현이 초조하게 물었다.“가... 가요 얼른! 돌아가요 우리.”하예진은 애써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오늘 왜 고향에 내려온다고 했을까? 집에서 언니랑 조카를 지키지 않고 왜 굳이 여기로 내려온 걸까?“그래, 가. 당장 돌아가자. 예정아, 진정해. 괜찮아. 괜찮을 거야!”성소현이 그녀를 달래며 심효진과 함께 겨우 부축해서 주차장까지 걸어갔다.하예진에게 무
전화기 너머로 심효진의 비명을 들은 전태윤도 끊임없이 외쳤다.“예정아, 하예정!”성소현은 하예정의 휴대폰을 주워서 전태윤에게 버럭 소리쳤다.“전태윤, 너 예정이한테 뭐라고 한 거야? 예진 언니가 어떻게 됐냐고?”“소현 씨, 일단 예정이 데리고 돌아와요. 처형이 다쳐서 지금 응급실에 있어요. 다른 건 돌아와서 얘기해요.”“예진 언니 상태는 어떤데요?”성소현도 안색이 돌변했다.하예진에게 사고가 나서 하예정이 이토록 식겁한 것은 알겠지만 아직 하예진이 대체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전혀 몰랐다.전태윤의 말을 들으니 성소현도 덜컥 겁이 나고 긴장했다.이경혜는 하예진 자매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친자식처럼 대하는데 만에 하나 하예진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상심이 무척 클 것이다.“나도 잘 몰라요. 칼에 몇 번 찔려서 지금 응급실에서 구급 중이에요. 우리 다 병원 도착했어요. 소현 씨도 효진 씨랑 함께 얼른 예정이 데리고 돌아와요. 운전 조심하고요.”전태윤은 마음 같아선 아내 곁으로 날아가 직접 데려오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떠날 수 없다.하예진 옆에 가족이 한 명은 있어야 하니까. 병원을 옮기거나 큰 결정을 내릴 때 그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주형인과 서현주에겐 감히 하예진을 맡길 수가 없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예진 언니한테 제일 좋은 의사를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어요. 반드시 예진 언니 살려내야 해요!”성소현이 말하지 않아도 전태윤이 이미 최선을 다해 그녀를 구하고 있다.통화를 마친 후 하예정이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허겁지겁 운전석으로 가서 직접 운전하려 했다.성소현과 심효진은 그런 그녀를 필사적으로 말렸다.하예정이 운전하면 무슨 큰일이 날지 모르니까.“언니!”하예정은 핸들 대에 손이 닿지도 못하니 좌석을 마구 내리치며 대성통곡했다.‘난 언니까지 잃을 수 없어! 내게 남은 건 언니뿐이야! 하늘은 이제 언니까지 뺏어가는 건가? 엄마, 아빠도 데려갔으면서 언니까지 욕심내는 거냐고? 이럴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