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우빈이를 뺏어갔을 때 하예진과 주형인이 쫓아가지 않아도 경호원들이 알아서 우빈이를 구했을 것이다. 다들 진작 물샐틈없는 수사망을 펼쳐서 그 패거리를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다만 한가지 놓친 점이 있다면 엄마가 자식을 지키려는 그 마음,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선뜻 내놓을 수 있는 그 마음을 소홀히 했다.엄마로서 제 자식을 눈앞에서 뺏겼는데 쫓아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물론 그녀가 쫓아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놀라운 체력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입이 쩍 벌어졌다.검은 옷 사내가 발로 차고 칼을 찔러도 하예진은 끝까지 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전태윤의 경호원을 보고 나서야 안전하다는 걸 깨닫고 손을 놓아주었다.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우빈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노동명은 몸을 돌려 벽을 힘껏 내리쳤다.그러게, 그도 하예진 모자를 지켜주려고 경호원을 보냈지만 결국 그녀가 다쳤다.‘나도 책임이 있어.’이때 성기현과 이경혜 부부가 도착했다.“전 대표, 예진이 어떻게 됐어요? 예정이한테는 알렸어요?”성기현이 물었다.이경혜는 두렵고 긴장하여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막 돌아온 외조카가 동생을 따라갈까 봐 너무 두려웠다.수십 년 동안 동생을 찾아 헤맸고 드디어 소식을 얻었는데 십여 년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다행히 두 조카가 있어 그녀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는데 예진이까지 잘못된다면...“아직 구급 중이에요. 상태가 어떤지 아직 아무도 몰라요. 예정이한테도 알렸어요. 지금 돌아오는 길이에요.”성기현이 알겠다며 대답하곤 엄마를 위로했다.이때 서현주가 몰래 다가와 주형인 부자 옆에 서서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다.경적이 미친 듯이 울려댈 때 그녀는 경찰들이 엄청 많이 온 걸 알아챘다.또한 전태윤이 줄곧 암암리에서 하예진 모자를 보호하게 경호원을 파견한 일도 알게 됐다.그녀가 이름 모를 여자를 도와 우빈이를 뺏어가게 한 일은 진작 들켰을 것이다. 전태윤 일행은 지금 증거를 잡아 그 무리를 일망타진할 계획이다.하예진
하예정의 말에 이경혜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저 자신이 생각났다.그해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 보내졌을 때 옆엔 그래도 동생이란 존재가 있었다.하지만 나중에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 세상엔 결국 그녀만 남게 됐다. 동생의 마지막 모습조차 지켜주지 못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을 꼭 끌어안고 그녀를 다독였다.“예정아, 처형 괜찮을 거야. 이제 곧 깨날 거야.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우빈이를 신경 써야지. 아이가 많이 놀랐어.”하예정은 그의 위로에도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는데 우빈이를 언급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랬다. 그녀는 언니 대신 우빈이를 챙겨야 한다.한참 울고 난 후 하예정은 감정을 추스르고 전태윤이 건넨 티슈로 눈물을 닦더니 그의 품에서 나와 주형인에게 안겨있는 우빈에게 걸어갔다.“이모.”아이가 그녀에게 두 팔을 벌렸다.하예정은 우빈이를 꼭 안아주었다.“예정아, 미안해.”주형인이 괴로운 얼굴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우빈이를 안지도 않을 거면서 굳이 하예진한테서 아이를 끌어가더니 이 사달이 났다.하예진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는 평생 자책할 것이다. 우빈이가 놈들에게 잡혀갔어도 똑같이 평생 자책할 것이다.하예정은 조카를 안고 주형인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전태윤의 옆으로 돌아갔다.주형인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김은희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남편이 말렸다.지금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의 잘못이다.하예정은 지금 주형인이 이가 갈릴 정도로 미울 테니까.서현주는 더욱 겁에 질려 애써 저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들려 했다.“이모, 우리 엄마 죽어요?”아이가 두려움에 휩싸인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물었다.피투성이가 된 엄마를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이 벌벌 떨렸다.하예정은 파르르 떨고 있는 조카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우빈의 엄마는 꼭 오래오래 사실 거야. 절대 안 죽어. 엄마가 우빈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나중에 우리 우빈이 학교 다니고 커가는 걸 지켜보셔야지. 절대 우빈이 버리지 않아.”“
하예진이 중환자실로 들어간 후 가족들이 옆에 남아 돌볼 필요가 없었다. 매일 잠깐 면회만 가능했다.병실에서 언니를 돌볼 수 없어도 하예정은 병원을 떠날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밖에서 언니가 깨날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언니는 반드시 깨어날 것이다.이때 경찰이 병원에 도착했다.다들 몇몇 경찰을 바라봤고 앞장선 경찰이 먼저 질문을 건넸다.“누가 서현주 씨죠?”다들 서현주에게 눈길이 쏠렸고 그녀는 당혹감에 휩싸인 표정으로 대답했다.“전데요.”그 경찰이 무언가 말한 후 곧장 두 여경이 앞으로 다가와 서현주를 연행했다.“저기요.”주형인과 김은희 부부가 재빨리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제 아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체포하는 겁니까?”주형인이 물었다.“서현주 씨가 이번 아동 납치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니 서로 가서 조사해야 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서현주는 순간 사색이 되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두 여경이 부축하지 않으면 바닥에 주저앉을 지경이었다.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몇 시간도 안 돼 경찰이 체포하러 오다니.이름 모를 여자가 보낸 사람들도 다 체포된 걸까? 그래서 그녀를 일러바친 걸까?사고 발생 당시, 많은 사람이 하예진이 아들을 쫓아가지 못하게 길을 막는 걸 보았다. 물론 그중 일부는 하예진을 도와주는 사람들이었고 양측 세력이 뒤엉켜 현장이 더 혼란스러워졌다.하예진을 쫓아가는 몇몇 사람들이 ‘예진 씨’라고 부르는 것도 똑똑히 들었는데 그들은 나쁜 놈이 아니라 하예진을 도와주는 사람들, 즉 전태윤이 보낸 경호원들이다.서현주는 그때 깨달았다. 전태윤은 줄곧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하예진 모자를 지켜주고 있었다.하예진은 우빈의 친엄마이다. 한 여자의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자식에게 사고가 났을 때 알아볼 수 있다.전태윤의 경호원들은 전문 트레이닝을 받아서 달리기 속도가 절대 느릴 수 없는데 그때 아무도 하예진을 따라잡지 못했다. 앞길을 막는 악당이 너무 많아서 속도가 제한됐을지도 모른
“저년이 우리 주씨 가문의 대를 끊으려 했어요! 우빈이도 해치고 예진이도 해치려 했어요. 독한 년, 사악한 년!”김은희가 목청이 터지게 욕했다.이번 사건이 서현주가 주도한 일이라면 지난번 동물원 사건도 의외의 사고가 아니라 서현주가 저지른 일이다.이 여자는 대체 왜 이토록 사악한 걸까?손자, 외손자 전부 유괴하려는 속셈일까?하예정은 서현주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말에 우빈을 전태윤에게 넘기고 잽싸게 달려가 그녀를 한바탕 두들겨 패려고 했다.“예정아.”전태윤이 그녀를 불러세웠다.“경찰에 맡겨. 법이 알아서 심판할 거야. 넌 손댈 필요 없어.”경찰이 왔으니 그들이 굳이 서현주를 혼낼 필요가 없다.소지훈이 증거를 단단히 수집했으니 이번에 서현주는 절대 벗어날 구멍이 없다.적어도 감방에서 몇 년은 썩을 것이다.추미자의 양아버지가 전에 키우던 부하들이 체포되면 다들 전과범이라 더 심한 형을 선고받을 것이다.그들은 깡패 조직이니까.추미자도 절대 벗어날 길이 없다.사실 경찰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출동했다. 일부는 병원에 와서 서현주를 연행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다른 일부는 여태웅의 별장으로 갔다.추미자의 부하들은 전씨, 소씨, 노씨 세 측 경호원들 덕분에 한 명도 빠짐없이 경찰에 체포됐다.우빈이를 뺏어가려고 추미자는 이번에 안달이 나서 남편과 상의도 없이 제멋대로 백 명 좌우 거느리고 이 음모를 꾸몄다. 다만 진짜 이 사태에 참여한 사람은 백 명뿐이 아니다. 그녀는 또 돈을 더 써서 건달들까지 끌어왔다.여운초가 말하길 추미자는 조바심이 나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했다.여태웅이 이 사실을 알면 기가 차서 피를 토할 것이다.아내가 너무 충동적이라고 비난할 게 뻔하다.딸 운별이도 너무 충동해서 감방에 들어갔는데 아내까지 이러니, 게다가 가겠으면 혼자 갈 것이지 그 많은 부하가 연루됐으니 여태웅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하예정은 전태윤이 말리자 곧장 걸음을 멈추고 서현주를 공격하지 않았다.서현주는 경찰에 연행됐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서현주는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샀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날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우빈을 이용할 일도 없었어. 그리고 우빈이가 얌전히만 있으면 그 아이를 해치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다고 했어. 그년이 직접 만나러 가기만 하면 우빈이도 무사히 돌아올 거란 말이야. 하지만... 하예진이 우빈이 때문에 다칠 줄이야. 우빈인 절대 아무 일 없을 거란 말이야.’주형인은 그 자리에 서서 중얼거렸다.“어떻게 현주가... 아니야, 이건 뭔가 오해가 있어!”“주형인!”주경진은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더니 갑자기 뺨을 한 대 세게 후려쳤다.주위 사람들은 보기만 할 뿐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이게 다 네가 그 독한 년을 우리 집에 데려와서야! 그 천한 년 때문에 넌 아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집이 조용할 날 하나 없게 됐잖아! 우빈이는 예진이를 따라 떨어져서 살고 있는데... 어쩜 멀리 있는 아이에게까지 이런 음모를 꾸밀 수가 있어?! 참 독하다 독해. 이게 다 네놈 때문이야! 네가 눈이 멀어서 일어난 일이라고!”주경진은 아들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주형인은 얼얼한 얼굴을 감싸쥔 채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을까?서현주가 우빈을 해치려 하다니...주우빈은 평소 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 그들 주씨 일가와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만약 그들이 먼저 우빈이를 보러 가지 않는다면, 우빈이는 절대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생활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현주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우빈이 때문에 내가 예진이랑 재혼이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 예진인 절대 그럴 여자가 아닌데... 한번 이혼한 이상 다시 돌아올 일 없을 거야.'현재 하예진의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반면 그의 삶은 엉망진창으로 되었다. 반대로 하예진이 점점 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고 해도, 그녀의 성격으로 다시 그의 곁에 돌아올 일은 없다
한참 후 김은희는 하예정에게 다가갔다.얌전히 이모에게 안겨있는 손자를 보고 그녀는 손을 내밀어 만지려다가 다시 움츠러들더니 미안한 듯 말했다.“예정 씨, 미안해요. 이게 다 우리 집에서 독한 년을 집에 들여서예요.”하예정은 차갑게 김은희를 쳐다보기만 하였다.경찰이 서현주를 데려간 것을 보고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언니는 이미 주형인과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했어요. 우빈이도 아주 잘 돌보고 있으니 당신 가족은 앞으로 우리 언니와 멀리 떨어져 있어요. 언니는 절대 주형인과 재혼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서현주도 얄밉지만 당신들도 마찬가지예요.”김은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들도 미운 짓을 적지 않게 하였으니까.하예진 자매에게 돈 많은 이모가 생기고, 하예정이 전씨 가문에 시집간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 그녀는 아들과 새며느리를 갈라놓고 하예진과 재혼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때문에 새며느리가 원한을 품고 우빈이를 해치려 했을지도 모른다.“다시는 당신들을 보고 싶지 않으니 당장 여기서 떠나요.”경찰이 서현주만 데려가자, 하예정은 이번 일이 주씨 일가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빈이는 어찌 되었든 주씨 일가의 친손자이다. 비록 김은희가 외손자를 편애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 손잡고 친손자를 해칠 일은 없을 테니까.하지만 하예정은 지금 이 순간 주씨 일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예정 씨, 우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예진이가 걱정돼서 그래요. 이제 예진이가 깨어나거든 우리에게 메시지라도 보내서 무사하다는 것만 알려 줘요. 부탁할께요.”하예정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은희는 다시 한번 사과한 후 돌아서서 떠나기 싫어하는 아들을 강제로 끌고 남편과 함께 떠나갔다.주씨 일가가 떠난 후 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물었다. “이게 다 서현주가 꾸민 일인가요?”“서현주도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야. 하지만 이번 일을 꾸민 그 사람도 도망칠 수 없을 테니 걱정마.
“엄마.”성기현과 성소현이 거의 동시에 불렀다.성문철도 아내가 남아 기다리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병원에 남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다들 돌아가서 쉬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부터 처리해.”“안심이 안 돼요.”이경혜는 겨우 한마디를 하고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도 하예정이 언니를 걱정하는 만큼 조카딸을 걱정하고 있다. “이모, 먼저 돌아가서 쉬세요. 언니가 깨면 제가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하예정은 이모의 몸이 걱정되어 먼저 집에 돌아가라고 권했다.모두의 거듭된 권유로 이경혜는 비로소 병원을 떠났다.결국 전태윤 부부와 노동명만 병원에 남았다.“동명이 너와 정남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먼저 가. 걱정 마, 처형이 깨어나면 나도 문자 보내줄게.”친구가 처형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친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뒷처리는 너와 정남에게 부탁할게.”노동명은 중환자실 쪽을 바라보며 하예진의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중환자실에는 간호사가 계속 지키고 있어 딱히 옆에서 돌볼 필요가 없었다.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우빈이를 바라보았다.우빈이는 이미 이모의 품에 안겨 잠들었고, 작은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이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세 살짜리 꼬마에게 있어서,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른다.그는 꼬마가 매우 걱정되었다. “무슨 일 있으면 알려줘, 나 먼저 가서 뒷수습부터 하고 올게.”“그래.”노동명은 심호흡하고는 병실을 한번 둘러본 뒤 발길을 돌렸다.하예진 모자가 앞으로 안전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려면 뒷수습을 잘해야 한다.전태윤은 경호원에게 나가서 음식을 포장해 오라고 지시한 다음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가 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캠핑카를 병원으로 몰고 오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전태윤은 비로소 아내의 곁에 앉아 우빈이를 대신 안으려 하였으나,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아이는 겁에 질린 듯 두 손으로 이모의 옷을 움켜쥐었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번 일... 미리 알고 일부러 우빈이를 미끼로 그 사람들을 끌어낸 거 아니죠?”“그런 일 없어!”전태윤은 얼른 부인했다.“소씨 일가에서는 미리 사람을 시켜 추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어. 그러다 오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바로 나와 동명에게 알려준 거야. 그래서 우리도 처형과 우빈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했던 거고. 우빈이를 잠시 납치해 갔다고 해도 꼭 되찾아올 수 있어. 다만, 처형이 우빈이를 위해 그 정도일 줄이야. 아무래도 엄마로서의 아이 보호 본능을 과소평가했어. 처형이 너무도 빨리 달렸거든, 우리가 보낸 경호원도 뒤에 제쳐버리면서. 그러다 몇분도 안 되는 사이에 다쳐버렸고.”하예정은 잠든 우빈을 내려다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우빈이는 언니가 열 달 동안 힘겹게 임신해서 낳은 아이에요. 언니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죠. 언니는 누군가 몰래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들이 대신 우빈이를 구해올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설사 안다고 해도, 엄마로서 끝까지 쫓아가서 자기 아이를 구해왔을 거예요.”“미안해, 다 내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탓이야.”그녀는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서현주가 이용당했다는 걸 알면서 왜 우리 언니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어요?”“처형은 이미 알고 있어. 처형이 먼저 서현주를 의심하고 나에게 전화로 알려준 거야. 처형도 서현주를 의심했기에, 오늘 우빈이를 데려가게 놔두지 않고 꼭 따라가겠다고 고집한 거야.”“...언니는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해줬죠?”전태윤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처형이 말하지 않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그도 그 원인에 대해 짐작이 가지 않았다.“금방 소정남 씨는 이미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했죠?”“소지훈이 증거를 가지고 있어.”“증거가 있는데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요?”아내가 묻자 전태윤은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추미자의 수하들이 너무 흩어져 있어 한둘을 잡기만 하면 분명 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