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주는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샀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날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우빈을 이용할 일도 없었어. 그리고 우빈이가 얌전히만 있으면 그 아이를 해치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낸다고 했어. 그년이 직접 만나러 가기만 하면 우빈이도 무사히 돌아올 거란 말이야. 하지만... 하예진이 우빈이 때문에 다칠 줄이야. 우빈인 절대 아무 일 없을 거란 말이야.’주형인은 그 자리에 서서 중얼거렸다.“어떻게 현주가... 아니야, 이건 뭔가 오해가 있어!”“주형인!”주경진은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부르더니 갑자기 뺨을 한 대 세게 후려쳤다.주위 사람들은 보기만 할 뿐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았다.“이게 다 네가 그 독한 년을 우리 집에 데려와서야! 그 천한 년 때문에 넌 아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집이 조용할 날 하나 없게 됐잖아! 우빈이는 예진이를 따라 떨어져서 살고 있는데... 어쩜 멀리 있는 아이에게까지 이런 음모를 꾸밀 수가 있어?! 참 독하다 독해. 이게 다 네놈 때문이야! 네가 눈이 멀어서 일어난 일이라고!”주경진은 아들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주형인은 얼얼한 얼굴을 감싸쥔 채 고개를 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을까?서현주가 우빈을 해치려 하다니...주우빈은 평소 엄마와 함께 살고 있어 그들 주씨 일가와 만날 기회가 드물었다.만약 그들이 먼저 우빈이를 보러 가지 않는다면, 우빈이는 절대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생활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현주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지? 우빈이 때문에 내가 예진이랑 재혼이라도 할까 봐 두려워서? 예진인 절대 그럴 여자가 아닌데... 한번 이혼한 이상 다시 돌아올 일 없을 거야.'현재 하예진의 삶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반면 그의 삶은 엉망진창으로 되었다. 반대로 하예진이 점점 더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고 해도, 그녀의 성격으로 다시 그의 곁에 돌아올 일은 없다
한참 후 김은희는 하예정에게 다가갔다.얌전히 이모에게 안겨있는 손자를 보고 그녀는 손을 내밀어 만지려다가 다시 움츠러들더니 미안한 듯 말했다.“예정 씨, 미안해요. 이게 다 우리 집에서 독한 년을 집에 들여서예요.”하예정은 차갑게 김은희를 쳐다보기만 하였다.경찰이 서현주를 데려간 것을 보고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언니는 이미 주형인과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했어요. 우빈이도 아주 잘 돌보고 있으니 당신 가족은 앞으로 우리 언니와 멀리 떨어져 있어요. 언니는 절대 주형인과 재혼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서현주도 얄밉지만 당신들도 마찬가지예요.”김은희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그들도 미운 짓을 적지 않게 하였으니까.하예진 자매에게 돈 많은 이모가 생기고, 하예정이 전씨 가문에 시집간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 그녀는 아들과 새며느리를 갈라놓고 하예진과 재혼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 때문에 새며느리가 원한을 품고 우빈이를 해치려 했을지도 모른다.“다시는 당신들을 보고 싶지 않으니 당장 여기서 떠나요.”경찰이 서현주만 데려가자, 하예정은 이번 일이 주씨 일가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빈이는 어찌 되었든 주씨 일가의 친손자이다. 비록 김은희가 외손자를 편애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 손잡고 친손자를 해칠 일은 없을 테니까.하지만 하예정은 지금 이 순간 주씨 일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예정 씨, 우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예진이가 걱정돼서 그래요. 이제 예진이가 깨어나거든 우리에게 메시지라도 보내서 무사하다는 것만 알려 줘요. 부탁할께요.”하예정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은희는 다시 한번 사과한 후 돌아서서 떠나기 싫어하는 아들을 강제로 끌고 남편과 함께 떠나갔다.주씨 일가가 떠난 후 하예정은 전태윤에게 물었다. “이게 다 서현주가 꾸민 일인가요?”“서현주도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야. 하지만 이번 일을 꾸민 그 사람도 도망칠 수 없을 테니 걱정마.
“엄마.”성기현과 성소현이 거의 동시에 불렀다.성문철도 아내가 남아 기다리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병원에 남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다들 돌아가서 쉬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부터 처리해.”“안심이 안 돼요.”이경혜는 겨우 한마디를 하고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도 하예정이 언니를 걱정하는 만큼 조카딸을 걱정하고 있다. “이모, 먼저 돌아가서 쉬세요. 언니가 깨면 제가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하예정은 이모의 몸이 걱정되어 먼저 집에 돌아가라고 권했다.모두의 거듭된 권유로 이경혜는 비로소 병원을 떠났다.결국 전태윤 부부와 노동명만 병원에 남았다.“동명이 너와 정남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먼저 가. 걱정 마, 처형이 깨어나면 나도 문자 보내줄게.”친구가 처형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친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뒷처리는 너와 정남에게 부탁할게.”노동명은 중환자실 쪽을 바라보며 하예진의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중환자실에는 간호사가 계속 지키고 있어 딱히 옆에서 돌볼 필요가 없었다.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우빈이를 바라보았다.우빈이는 이미 이모의 품에 안겨 잠들었고, 작은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이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세 살짜리 꼬마에게 있어서,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른다.그는 꼬마가 매우 걱정되었다. “무슨 일 있으면 알려줘, 나 먼저 가서 뒷수습부터 하고 올게.”“그래.”노동명은 심호흡하고는 병실을 한번 둘러본 뒤 발길을 돌렸다.하예진 모자가 앞으로 안전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려면 뒷수습을 잘해야 한다.전태윤은 경호원에게 나가서 음식을 포장해 오라고 지시한 다음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가 아이에게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캠핑카를 병원으로 몰고 오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전태윤은 비로소 아내의 곁에 앉아 우빈이를 대신 안으려 하였으나,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아이는 겁에 질린 듯 두 손으로 이모의 옷을 움켜쥐었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번 일... 미리 알고 일부러 우빈이를 미끼로 그 사람들을 끌어낸 거 아니죠?”“그런 일 없어!”전태윤은 얼른 부인했다.“소씨 일가에서는 미리 사람을 시켜 추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어. 그러다 오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바로 나와 동명에게 알려준 거야. 그래서 우리도 처형과 우빈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했던 거고. 우빈이를 잠시 납치해 갔다고 해도 꼭 되찾아올 수 있어. 다만, 처형이 우빈이를 위해 그 정도일 줄이야. 아무래도 엄마로서의 아이 보호 본능을 과소평가했어. 처형이 너무도 빨리 달렸거든, 우리가 보낸 경호원도 뒤에 제쳐버리면서. 그러다 몇분도 안 되는 사이에 다쳐버렸고.”하예정은 잠든 우빈을 내려다보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우빈이는 언니가 열 달 동안 힘겹게 임신해서 낳은 아이에요. 언니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죠. 언니는 누군가 몰래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들이 대신 우빈이를 구해올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설사 안다고 해도, 엄마로서 끝까지 쫓아가서 자기 아이를 구해왔을 거예요.”“미안해, 다 내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탓이야.”그녀는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서현주가 이용당했다는 걸 알면서 왜 우리 언니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어요?”“처형은 이미 알고 있어. 처형이 먼저 서현주를 의심하고 나에게 전화로 알려준 거야. 처형도 서현주를 의심했기에, 오늘 우빈이를 데려가게 놔두지 않고 꼭 따라가겠다고 고집한 거야.”“...언니는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해줬죠?”전태윤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 처형이 말하지 않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그도 그 원인에 대해 짐작이 가지 않았다.“금방 소정남 씨는 이미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했죠?”“소지훈이 증거를 가지고 있어.”“증거가 있는데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요?”아내가 묻자 전태윤은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추미자의 수하들이 너무 흩어져 있어 한둘을 잡기만 하면 분명 다
“예정아, 예진이는 어떠냐? 내가 셋째를 따라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어?”하예정에게 전화한 사람은 전씨 할머니셨다.할머니는 전호영을 따라 강성으로 출장을 갔다가 방금 하예진이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할머니...”할머니의 익숙한 목소리에 막 멎은 하예정의 눈물이 다시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언니가 다쳤어요.”“예정아, 울지 말고 할머니한테 언니가 지금 어떤지 알려줘. 할미가 이미 돌아가는 길이니 걱정하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이 할미가 버텨줄 테니.”할머니는 하예진이 다쳤다는 말을 듣고 셋째를 도와 기회를 만들어줄 겨를도 없이 급히 관성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마침 일도 거의 다 끝났고, 할머니 혼자 집에 보내는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 전호영은 남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는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관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일단은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중환자실에서 며칠 더 있어야 안전할 거래요.”“어느 병원이냐?”할머니가 물었다.하예정은 바로 병원 이름을 알려줬다.“괜찮은 병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언니는 곧 괜찮아질 거야. 혹시나 무슨 일이 있거든 이 할미가 신의를 찾아가 빌어서라도 네 언니를 구하마. 그러니 울지 말아, 곧 할미가 도착하니깐. 할미가 옆에 있는 한 넌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흑... 할머니.”“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너희 자매는 모두 부귀한 팔자야, 복이 많은 사람이라니까.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앞으로 행복한 날만 있을 거야.”할머니는 손자며느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관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내뱉었다.할머니의 위로에 하예정의 잔뜩 긴장해 있던 마음도 살짝 느슨해졌다.그녀도 언니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백 살까지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반면 전태윤은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장소민은 전화로 하예진과 우빈의 컨디션을 물은 뒤 아들에게 하예정을 잘 돌보라고 당부했다.“네, 엄마, 그럴게요.”그들 모자가 통
“우빈아.”전태윤은 아내의 품에서 아이를 안아왔다.깨어 있는 아이는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이모부의 품에 안겼다.그가 지금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은 이모와 이모부이다.“우빈아, 겁내지 마. 이모부가 이미 나쁜 놈들을 물리치고 경찰 아저씨한테 부탁해 잡아가라고 했어.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열심히 우빈이의 엄마를 구하고 있으니까,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면 엄마가 저 안에서 나올 수 있을 거야. 아마도 눈을 뜨고 우빈이를 부를지도 몰라.”꼬마는 이모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이모부, 금방 한 말 사실이에요?”“당연하지. 이모부가 언제 우리 우빈이를 속인 적이 있어?”전태윤은 꼬마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 “우빈아, 이모부가 우빈이를 데리고 가서 세수하고 손 씻을까?”우빈이는 자기 손이 더러운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전태윤은 꼬마를 안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과 손을 깨끗이 씻고 나왔다.마침 경호원이 포장한 음식을 가지고 도착했다.하예정은 입맛이 없어서 먼저 조카부터 먹였는데, 아이도 입맛이 없던지 먹으려 하지 않았다.전태윤은 또다시 달래기 시작했다.“여보, 우빈아. 뭐라도 먹지 않으면 어떻게 버텨?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이제 처형이 깨어나거든 괜히 걱정시킬 일 있어? 자, 우빈아, 이모부가 밥 먹여줄게. 우리 배불리 먹고 가서 샤워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엄마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때? 지금 이 옷을 입고 있으면 아마도 엄마가 깨어나서 놀랄걸.”우빈은 또 고개를 숙여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을 쳐다보았는데 매우 더러웠다.온통 피투성이였다.아이는 바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예정도 억지로 음식을 삼켰다. 이렇게 먹고 마시지 않으면 언니가 깨어나기도 전에 쓰러질지 모르니까. 그러면 언니를 돌볼 수도 없다.30분 후.기사가 캠핑카를 몰고 왔다.전태윤은 아내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서 목욕시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떠난 후에야 그는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정남아
노동명의 얼굴에 걱정이 스쳐 갔다.그는 한참 후에야 시선을 거두고는 하예정의 품에서 우빈이를 안아오려고 손을 뻗었지만 꼬마는 그에게 안기려 하지 않았다.아이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는 이모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이에 노동명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는 본인이 아이를 잘 보호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우빈이가 많이 놀랐나 봐. 지금은 이모에게만 달라붙어 있으려 해.”보다 못한 전태윤이 한마디 설명했다.노동명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괜찮아, 얼마나 무서웠겠어. 태윤아, 내가 여기서 예진이를 지키고 있을테니, 너는 예정 씨와 우빈이를 데리고 돌아가서 좀 쉬어.”전태윤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했다.“그래.”그는 아내에게 우빈이를 데리고 함께 캠핑카로 가서 좀 쉬다가 이제 한밤중에 다시 와서 처형을 지키자고 설득했다.노동명이 여기 있으니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게다가, 그의 경호원 팀도 옆에서 지키고 있다.“여보, 당신은 버틸 수 있어도 우빈이는 아직 어린앤데, 이렇게 버티다가 무리가 올 수도 있어. 우빈이를 봐서라도 휴식 좀 해. 이건 당신 언니가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한 아이잖아. 당신이 잘 돌보고 있어야 처형도 안심하고 깨어날 수 있어.”노동명도 옆에서 우선 좀 쉬라고 권했다.하예정은 자신의 품에 꼭 안겨있는 아이를 바라보더니 결국 타협했다. 먼저 캠핑카에 가서 좀 쉬다가 알람을 맞춰놓고, 한밤중에 다시 와서 언니를 지킬 생각이었다. ... 주씨 일가.“현주가 어떻게... 이게 말이 돼?”부모에게 강제로 끌려온 주형인은 오는 내내 중얼거렸다.그는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서현주가 어떻게 어린 우빈에게 손을 댈 수 있는거지?그녀는 그가 전처랑 이혼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고, 애초에 그더러 아들의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한 것도 그녀이다.어머니와 누나는 항상 서현주와 이혼하고 하예진과 재혼하라고 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현주와 결혼식까지 올리기로 했다.또한 결혼식 후 신혼여행도 가
똑똑.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주경진이 문을 열자마자 주서인이 들이닥치더니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아빠, 예진이는 어때? 우빈이는? 나 전화 받고 바로 달려왔어.”“우빈이는 괜찮아. 그냥 많이 놀랐어. 지금은 예정이한테만 달라붙어 있어. 예진이는... 아직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데 의사가 며칠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 버텨내지 못하면... 아니지, 분명 버텨낼 수 있을 거야. 예진이는 착한 아이니까, 분명 하느님이 지켜줄 거야.”“맞아! 예진이는 착한 사람이니까 꼭 괜찮아질 거야!”주서인은 하예정 자매가 그녀의 아들을 구해준 후부터 그들 자매에 대한 태도가 확 달라졌다. 지금은 진심으로 하예진이 낫기를 바라고 있다.동생을 본 주서인은 달려들어 마구 때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형인아! 너 내 말 듣지 않고 독한 여자와 결혼하더니 우리 집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우빈이까지 해치려고 해?”“지난번 동물원에서도 납치범더러 우빈이를 데려가게 하더니... 독한 년 같으니라고. 내가 현주를 일부러 괴롭힌 건 맞아. 날 미워하고 원망해도 괜찮아. 나를 해할 목적으로 온 거라면 다 받아 들일 준비가 돼있어. 하지만 어떻게 무고한 아이를 해하려고 할 수 있지? 정말 독하기도. 난 내가 이미 충분히 나쁜 줄 알았어. 나보다 더 나쁜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어. 난 그렇다 쳐도 예진이는 현주에게 아무 짓도 안 했잖아? 그런데도 우빈에게까지 손을 써? 우리 가문의 핏줄을 끊으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주서인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김은희가 전화로 딸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말해줬기에 주서인은 오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주형인은 아내를 대신하여 변명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다시 서현주를 감쌌다간 자기를 찢어버릴 기세였다.게다가 그도 아들을 빼앗길 뻔한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그는 이제 더 이상 서현주의 편을 들 수가 없게 되었다. 부모님의 말처럼 만약 이번 일이 서현주와 관련이 없다면 경찰도 그녀를 데려가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