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인이 말했다.“우빈의 정장을 산다고 해도 애를 데리고 가서 사야 할 거 아니야. 내가 우빈의 사이즈도 모르는데 덜컥 샀다가 안 맞으면 어떡해?”하예진은 곧장 우빈의 사이즈를 알려줬다.“내가 말한 사이즈대로 사면 무조건 입을 수 있어.”“예진아, 너 지금 나랑 우빈이 못 만나게 가로막는 거야? 이혼할 때 분명히 말했지. 우빈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다고. 지금 내 아들 보고 싶다는데, 애한테 새 옷 몇 벌 사주고 싶다는데 왜 안된다는 거야?”하예진은 아예 전화를 끊었다.서현주에게 의심이 생겨난 후부터 그녀는 더는 감히 주형인에게 아이를 보낼 엄두가 안 났다.주형인은 서현주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몰라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그녀가 우빈이를 결혼식 날 화동으로 쓰겠다고 하니 주형인은 고민 없이 바로 허락했다.그도 굳이 화동을 따로 찾을 필요 없이 제 아들을 세우면 될 거라고 여겼다.우빈이는 말도 잘하고 철도 들었으며 동년배보다 키가 커 화동으로 적합했다.주형인은 심지어 아들이 점점 더 멋지게 변해서 화동을 시키면 아빠인 본인도 면이 설 거라고 여겼다. 게다가 우빈이는 무려 전태윤의 외조카이다.“뭐래요?”서현주가 물었다.주형인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녀를 쳐다보며 씩씩거렸다.“예진이가 내 전화 껐어. 날 점점 안중에도 안 둬. 내 전화 받고 싶으면 받고 끄고 싶으면 상의도 없이 꺼버려.”서현주는 주형인의 말이 실로 우스웠다.그는 전에 하예진 앞에서 양반처럼 지내서 그녀가 쭉 떠받들어줄 거라고 믿었다.“형인 씨 이젠 예진 씨랑 이혼한 지가 몇 달인데 아직도 적응 못 했어요?”“...”“예진 씨랑 우빈이는 그래서 지금 어디 있대요? 이리로 안 보내면 우리가 직접 가서 우빈이 데려와요.”주형인이 말했다.“예정이네 집이래. 걔 발렌시아 아파트에 사는데 우린 못 들어가. 예진이가 나 우빈이 데리고 정장 맞추러 가는 거 반대해. 우빈이 화동 시키는 건 되지만 아이 정장은 나보고 알아서 사래. 옷 사이즈도 다 알
주형인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우빈이는 내 아들이야. 영원히 내 아들이라고. 예진이가 나 아들 안 보여주면 소송을 다시 걸어서라도 아이 입양권 가져올 거야.”서현주는 주형인이 입양권을 가져오게 내버려둘 리가 없다. 그녀는 재빨리 남편을 다독였다.“형인 씨 지금 콜택시 해서 수입이 불안정해요. 우리 결혼도 코앞이고 결혼식 끝나면 신혼여행도 떠나야 해서 입양권 뺏어오는 데 불리해요.”그녀는 주우빈을 이용하고 싶을 뿐 아이를 키우려는 건 아니다.나중에 둘만의 아이도 생길 텐데 우빈이를 데려오면 그녀의 아이와 함께 아빠 사랑을 다툴 게 뻔하다.“예진 씨가 오늘 일찍 가게 문 닫고 예정 씨네 집으로 갔으니 우리 그럼 내일 좀 더 빨리 하루 토스트로 와서 우빈이 데리고 정장 맞추러 가요. 하루 미룬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주형인이 씩씩거렸다.“하예정만 아니면 우리 둘 다 직업을 잃지도 않았어. 예진이가 이혼할 때 나누어 가진 2억 원을 금방이면 벌 수 있을 거로 여겼는데 이혼하자마자 우리 둘 다 직장에서 잘렸잖아. 이젠 일자리 찾기도 힘들어.”그래서 그는 콜택시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현재 수입은 전에 매니저 일을 할 때와 비교할 바가 못 된다.전에 한 달 월급이 보통 사람들의 연봉 수준이었는데 지금은...그의 가족들은 모든 게 하예진과 이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에 연봉도 오르고 매니저로 승진해 사장님의 신임을 얻은 건 하예진이 남편을 승승장구하게 해주는 복이 있다고 했다.서현주는 남편에게 승승장구도 못 시켜줄뿐더러 재수가 바닥을 쳐서 그녀와 결혼한 뒤로 일자리도 잃고 수입도 끊겨서 모아뒀던 적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게다가 하루하루가 바람 잘 날이 없다.하예진은 전에 자신의 적금을 깨서 신혼집 인테리어를 했고 진심으로 가정에 헌신했다.반면 서현주는 제 돈 아까워 일전 한 푼 꺼내지도 않아서 집안의 모든 지출은 주형인이 부담하고 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너무 피해를 본다고 하신다.하지만 이 모든 걸 초래한 사람이 바로 하
서현주는 오늘 낯선 여자의 미션을 완성할 수 없어 상대가 친정 식구들을 해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그래서 주형인과 함께 친정으로 내려가 볼 생각이었다.그녀의 친정도 시골에 있다.주형인은 처가에 가는 걸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매번 다녀올 때마다 장모님은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집에 이것저것 부족한 게 많다고 하시니 듣노라면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어 장모님께 용돈을 드려야 했다.그리 많이 주는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이러니 주형인은 기분이 썩 달갑지 않았다. 왠지 처가는 그를 현금인출기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다행히 서현주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함께 잘살아 볼 생각이라 장모님이 거액의 예물 값을 요구할 때 확고하게 그의 편을 들어주며 몰래 호적을 훔쳐 와 주형인과 혼인신고를 했다. 그 뒤로 장모님은 더 이상 예물 값을 많이 요구할 수 없어 몇백만 원으로 낮췄다.비록 몇억 대에서 몇백만 원으로 낮추긴 했지만 관성 시골 사람들에게 몇백만 원의 예물 값도 높은 축이다. 일반인들은 부자가 아니니 재벌가와 비교할 수가 없다.한편 서현주네 가족은 예물 값을 받은 후 분명히 말해뒀다. 결혼식 날 서현주네 가족들 뷔페값은 주형인네 가족들이 물어야 한다고, 만약 안 물면 뷔페를 취소하고 한 무리 친척들을 데리고 주형인의 집으로 찾아가서 술상을 벌이겠다고 했다.주형인은 부모님과 상의한 후 서현주네 가족들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결혼식 날 두 집안의 식비는 전부 신랑 쪽에서 부담하기로 했다.예식장은 고급 호텔로 감히 정하지 못하고 수수한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고급 호텔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니.서현주네 집에선 딸에게 예단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신혼집 이불 세트 몇 개가 전부였다.서현주가 예단이 초라하게 느껴지면 남편 돈으로 알아서 예단을 준비하거나 혹은 그녀의 지갑을 열어 직접 준비하라고 했다.주 씨네든 서 씨네든 다들 서현주가 적금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주 씨네 가족은 서현주가 적금을 깨서 신혼집 리모델링을 하길 원했고 서 씨네 가족은 그녀가
“지금 날 호구로 보는 거야? 내가 돈이 엄청 많다고 생각하나 보지. 내 처지를 봐. 콜택시나 하고 있다고!”주형인은 하예진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후 내내 기분이 잡쳐 있었다.그 바람에 서현주네 가족만 쉴 새 없이 원망했다.그녀도 부모님이 갖은 수법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전에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친히 한 말이니까. 서현주는 월급의 절반을 집에 바칠 뿐 엄마가 더 많이 요구해도 돈이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뒤로 그녀의 엄마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하지만 주형인이 이토록 푸념하니 서현주도 기분이 언짢았다. 어쨌거나 부모 형제이고 한 가족인데 이런 식으로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우리 엄마, 아빠 그만 원망해요. 날 낳고 키워주신 분들이에요. 힘겹게 딸 키워서 당신한테 시집보냈다고요. 당신은 사위요. 사위는 절반 아들이라는데 병원비 좀 대주면 덧나요?”“당신 부모님은 돈 달라고 한 적 없어요? 그리고 그 인간쓰레기 같은 당신 누나, 파렴치함의 끝을 보이죠! 나 진짜 살다 살다 그렇게 뻔뻔스러운 형님은 처음 봐요. 시집간 지 십여 년이 됐는데 아직도 친정집 일에 간섭하다니!”“당신 부모님도 그래. 당신 누나랑 같은 편이잖아. 내 말 똑똑히 들어요 형인 씨. 내가 하도 형인 씨 사랑하니까 당신네 가족들 참아주는 거예요. 딴 여자라면 진작 도망갔다고요!”주형인은 차 시동을 걸었다가 그녀가 가족을 맹비난하자 또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반박에 나섰다.“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생활비 받는 게 뭐 어때서? 너만 낳고 키워준 부모가 있고 난 없냐? 우리 엄마, 아빠는 나 키우느라 고생 안 했어? 사위도 절반은 아들이라고? 그래서 너희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그러는 넌 이미 주 씨네 집안으로 시집왔어. 우리 집안 며느리란 말이야. 너도 우리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안 그래? 누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나 보고 어떡하라고? 그럼 누나랑 연 끊고 살아? 내겐 하나뿐인 누난데!”서현주가 말했다.“당신 지금 누나
서현주는 참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파묻은 채 엉엉 울었다.한참 울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티슈를 꺼내 눈물, 콧물을 닦고 앞으로 걸어갔다.아직은 이혼할 타이밍이 아니다.덜컥 이혼해버리면 이름 모를 여자가 내린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큰일이다!친정집 식구들은 어떡하라고?주형인은 그녀가 하예진한테서 뺏어온 남자인데 이렇게 끝내버리면 다들 그녀가 벌 받은 거라고 엄청 놀릴 것이다.서현주는 이를 악물고 속으로 되뇌었다.‘절대 머리 숙일 순 없어. 물러서지 마. 주 씨네 가족을 반드시 제대로 다스려야 해. 난 두 번째 하예진이 될 수 없다고!’주형인 부부가 대판 싸운 일을 하예진은 아예 몰랐다. 그녀는 단지 주형인의 말투가 꼴 보기 싫어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을 뿐이다.전남편 따위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진심으로 우빈에게 옷을 사주고 싶다면 그녀가 아이의 사이즈까지 알려줬는데 왜 맞는 옷을 사지 못할까?어쨌거나 하예진은 그들 부부에게 우빈이를 절대 맡기지 않을 것이다.만약 그녀가 시간이 되면 함께 따라갈 순 있다.동물원 사건이 아직도 거대한 트라우마로 남아 그녀의 머릿속을 맴돈다. 생각만 하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지경이다.감히 그 뒷일을 상상할 엄두조차 안 난다.하예정이 배불리 먹은 후 노동명도 우빈의 자전거를 다 조립했다. 아이는 신나서 당장 나가 자전거를 탈 기세였다.노동명은 아이와 함께 마당으로 나가 자전거를 태워줬고 하예진도 따라 나갔다.하예정이 마당에 나왔을 때 우빈이는 벌써 자전거 타는 법을 다 배우고 콘크리트 바닥에서 쌩쌩 달렸다. 노동명이 사준 풍차를 자전거 앞머리에 꽂아두니 바람 따라 뱅글뱅글 돌아갔다.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온 마당에 주우빈의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하예진은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었다.이때 노동명이 다가와 그녀와 나란히 섰다.“자전거가 클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딱 맞네. 조금만 더 컸더라면 우빈이가 페달에 발이 안 닿아서 못 탔을 거야.”“고마워요, 대
“대표님?”노동명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빤히 쳐다보자 하예진이 의아한 듯 그를 불렀다.노동명은 정신을 가다듬고 웃으며 답했다.“매일 봐서 아무 느낌 없다가 방금 보니 살 엄청 빠졌네. 얼굴도 예쁘고, 손은경 씨 못지않아.”노동명은 문득 저 자신이 멍청해 보였다. 어떻게 하예진을 손은경에 비할 수 있지?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칭찬 고마워요 대표님. 저는 그저 평범한 얼굴이에요. 손은경 씨야말로 미인이죠.”“예진아, 은경 씨는... 우리 엄마 친한 친구 딸이야. 관성에 출장 왔다가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거야. 엄마가 딸처럼 예뻐하셔.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엔 아들만 넷이라 딸이 없는 게 엄마의 평생 한이야. 그래서 여자아이를 유난히 더 좋아해.”“전씨 할머니가 증손녀를 간절히 바라시는 만큼 우리 엄마도 여자아이를 원하셔. 두 분 실은 똑같아. 손은경 씨는 나보다 조금 어려. 어릴 때 봤는데 그다지 인상이 없어. 우리 집에서 지내는 한 손님이니 나도 가끔 함께해주는 거야. 아니, 함께하는 것도 아니지. 난 그저 엄마랑 함께 연회에 참석했고 엄마가 손은경 씨를 데려와서 춤 한 곡 같이 춘 거야.”노동명은 본능적으로 어젯밤에 손은경과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놨다.하예진이 그와 손은경을 커플로 부추기는 게 싫었나 보다.사실 하예진은 노동명과 손은경이 연회에 참석한 것도 몰랐고 함께 춤춘 건 더 몰랐다.하예정이 아직 언니에게 안 알렸고 알릴 기회도 없었으니까.눈 뜨자마자 언니가 왜 또 과음했냐며 나무랐고 그 뒤론 아래층에 내려가서 연회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노동명의 말을 들은 후 하예진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사모님께서 손은경 씨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대표님 말을 들으니까 은경 씨랑 두 분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두 분 잘해봐요. 손은경 씨는 성격도 좋으시고 워낙 야무져서 사업에 성공할 여강자 스타일인 것 같아요.”노동명과도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노동명이 솔직하게 말했다.“그건 그래. 손은경 씨는 여강자 스타일
노동명은 말문이 턱 막혔다.“정말 내가 손은경 씨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은경 씨가 내 신분을 노린다는 생각은 안 들어?”“손은경 씨도 회사를 운영하는 분이에요. 게다가 집안에서 운영하는 회사 부대표직을 맡고 있는데 돈이 부족할까요? 대표님도 신분과 지위가 있지만 손은경 씨도 마찬가지예요. 절대 대표님 신분을 노린 게 아닐 거라고요. 두 분 잘되시면 최강 조합이겠네요.”하예진은 마치 괴물 보듯 노동명을 쳐다봤다. 그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으니까.윤미라처럼 거만한 사람은 며느리에 대한 요구가 엄청 까다로울 테니 그런 분의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분명 우수한 사람일 것이다.“그러니까 내 말은 손은경 씨가 알고 있는 남자 중에 내 조건이 제일 좋아서 나랑 만나보려고 하는 거지 진심으로 내가 좋아서 그런 건 아니란 뜻이야. 내 얼굴에 난 칼자국을 싫어하지 않겠어? 무서워하지 않겠냐고?”하예진이 그를 쳐다보며 웃었다.“나중에 은경 씨를 사랑하게 되면 은경 씨가 먼저 얘기를 꺼내기 전에 대표님이 알아서 성형수술을 하실 거예요. 뒤뚱거리며 칼자국 없애러 갈 거라고요.”“예진아, 뒤뚱이란 말은 삼가 줄래? 나 펭귄 된 것 같잖아.”하예진은 순간 실소를 터트렸다.노동명은 사랑에 대해 꽉 막힌 사람이거나 혹은 여자에게 경계심을 가진 게 틀림없다. 손은경 같은 재벌가 따님에 사업도 잘하는 여강자도 의도가 불순하다며 의심하는 걸 보면 이성에 대한 경계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싶다.여자에게 경계심을 잔뜩 세운 탓에 여태껏 솔로로 지냈겠지.‘하긴, 돈 많은 사람들 속셈을 나 같은 가난뱅이가 이해할 리 없지.’“엄마, 동명 아저씨.”이때 우빈이가 자전거를 타고 오며 그들을 불렀다. 자전거 앞머리에 꽂은 풍차가 뱅글뱅글 돌자 주우빈은 신나서 풍차를 뽑아 손에 들고 흔들었다. 결국 자전거가 뒤집히고 아이는 길옆의 풀숲에 자빠졌다.“우빈아.”다들 우르르 몰려갔다.키 큰 노동명이 다리도 길다 보니 제일 빨리 달려가 우빈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녀석은
전태윤의 전용차가 별장으로 들어왔다.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우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주차한 뒤 성큼성큼 하예정에게 다가갔다.하예정은 언니와 함께 조카가 우는 걸 달래다가 전태윤을 보더니 얼른 아이에게 말했다.“우빈아, 이모부 돌아오셨어. 너희 이모부 엄청 대단하셔. 자전거를 금방 수리할 수 있을 거야.”노동명은 자전거를 만지다가 하예정의 말에 한마디 덧붙였다.“우빈아, 너희 이모부 도움 필요 없어. 아저씨가 자전거 잘 수리해 줄게.”자전거가 뒤집히면서 살짝 고장났을 뿐이니 바로 수리할 수 있다.전태윤이 다가오자 우빈이는 얼른 두 팔 벌려 안아달라고 했다. 번쩍 안아 올리자 아이는 울면서 물었다.“이모부, 우빈의 자전거 고장 났어요. 고쳐줄 수 있나요?”전태윤은 하예정에게 티슈를 건네 달라고 했다.하예정은 재빨리 티슈를 건넸고 전태윤은 친히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동명 아저씨가 이미 수리하고 있으니 걱정 마. 살짝 고장 난 거라 금방이면 다 고쳐. 울음 뚝, 우빈이는 사내대장부지. 이런 작은 일로 울면 돼 안돼?”아이는 눈물을 훌쩍이며 말했다.“근데 우빈이 속상해요. 울고 싶은 걸 어떡해요.”전태윤이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왜 속상해? 우빈의 자전거를 남들이 고장 냈어?”“아니요, 내가 손을 놔서 자전거가 뒤집혔어요.”“그럼 우빈의 문제잖아. 왜 속상한 거야? 이런 일로 자전거가 뒤집혔으니 앞으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명심하면 돼. 자전거 타다가 작은 고장이 나서 우리 어른들이 대신 수리해 주는 것도 되지만 정말 수리할 수 없어도 우빈이는 울 필요 없어.”“우리가 못 수리하면 전문수리점에 맡기면 되잖아. 그분들은 기술이 좋아서 우빈의 자전거를 고칠 수 있어. 만약 그분들도 못 고친다면 그땐 새 자전거로 사면 되지. 울지 마. 어떠한 문제에 부딪히든 엉엉 우는 게 아니라 우선 먼저 해결책부터 찾아야 해.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오히려 사람들이 우빈이를 약자로 봐. 무슨 일 부딪히면 울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