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의 전용차가 별장으로 들어왔다.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우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그는 주차한 뒤 성큼성큼 하예정에게 다가갔다.하예정은 언니와 함께 조카가 우는 걸 달래다가 전태윤을 보더니 얼른 아이에게 말했다.“우빈아, 이모부 돌아오셨어. 너희 이모부 엄청 대단하셔. 자전거를 금방 수리할 수 있을 거야.”노동명은 자전거를 만지다가 하예정의 말에 한마디 덧붙였다.“우빈아, 너희 이모부 도움 필요 없어. 아저씨가 자전거 잘 수리해 줄게.”자전거가 뒤집히면서 살짝 고장났을 뿐이니 바로 수리할 수 있다.전태윤이 다가오자 우빈이는 얼른 두 팔 벌려 안아달라고 했다. 번쩍 안아 올리자 아이는 울면서 물었다.“이모부, 우빈의 자전거 고장 났어요. 고쳐줄 수 있나요?”전태윤은 하예정에게 티슈를 건네 달라고 했다.하예정은 재빨리 티슈를 건넸고 전태윤은 친히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동명 아저씨가 이미 수리하고 있으니 걱정 마. 살짝 고장 난 거라 금방이면 다 고쳐. 울음 뚝, 우빈이는 사내대장부지. 이런 작은 일로 울면 돼 안돼?”아이는 눈물을 훌쩍이며 말했다.“근데 우빈이 속상해요. 울고 싶은 걸 어떡해요.”전태윤이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왜 속상해? 우빈의 자전거를 남들이 고장 냈어?”“아니요, 내가 손을 놔서 자전거가 뒤집혔어요.”“그럼 우빈의 문제잖아. 왜 속상한 거야? 이런 일로 자전거가 뒤집혔으니 앞으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명심하면 돼. 자전거 타다가 작은 고장이 나서 우리 어른들이 대신 수리해 주는 것도 되지만 정말 수리할 수 없어도 우빈이는 울 필요 없어.”“우리가 못 수리하면 전문수리점에 맡기면 되잖아. 그분들은 기술이 좋아서 우빈의 자전거를 고칠 수 있어. 만약 그분들도 못 고친다면 그땐 새 자전거로 사면 되지. 울지 마. 어떠한 문제에 부딪히든 엉엉 우는 게 아니라 우선 먼저 해결책부터 찾아야 해.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오히려 사람들이 우빈이를 약자로 봐. 무슨 일 부딪히면 울
“만약 무술을 배우면 자전거를 더 잘 탈 수 있어. 우빈이 무술 배우고 싶어?”“네.”전태윤은 아이를 안고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검은 옷 남자에게 걸어갔다. 그는 가면서 우빈에게 말했다.“우빈아, 이모부가 우빈이를 위해서 선생님 한 분 모셔 왔어. 저 선생님이 우빈이한테 무술을 가르쳐주실 거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무술 열심히 배워야 해.”다들 그제야 낯선 남자에게 시선이 쏠렸다.하예정이 언니에게 말했다.“태윤 씨가 우빈이한테 무술 선생님을 찾아줬어. 우빈이 몸도 튼튼해지고 앞으로 무술로 스스로 보호할 수 있게 말이야.”“제부가 신경 많이 썼네.”하예진은 감격에 겨웠다.지난번 동물원에서 뜻밖의 사고가 일어난 이후로 제부가 바로 얘기를 꺼냈고 하예진도 남자아이는 무술을 배워서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노동명이 옆에서 한마디 끼어들었다.“우빈이 무술 배우고 싶으면 나한테 말하지. 내가 직접 가르칠 수 있는데.”“대표님은 업무가 다망한데 귀찮게 해드릴 순 없죠.”하예진은 속으로 생각했다.‘대표님이 우리 우빈의 무술 선생님 하면 돈 엄청 많이 들 텐데. 내가 아무리 돈을 벌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대표님 모실 수준은 아니야.’전태윤이 모셔 온 선생님은 전에 그들 형제에게 무술을 가르쳤던 스승의 아들이다. 비록 그들의 스승보단 대단하지 않지만 우빈이를 가르치기엔 충분한 실력이다.노동명은 업무가 다망한 걸 생각하며 가볍게 웃을 뿐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처형, 오수혁 씨는 전에 우리 형제들을 가르쳐주신 오 선생님 아드님이에요. 무술 실력이 뛰어나서 지금 여러 무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분께 무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요.”전태윤이 처형에게 오수혁 선생님을 소개했다.하예진은 서둘러 오 선생님께 인사드렸다.오수혁은 노동명과 비슷한 나이에 외모가 단정하고 건장한 체구를 지녔다. 첫인상은 매우 진지하고 엄숙해 보였는데 하예진이 인사하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전태윤은 우빈이를
하예진은 재빨리 우빈이를 끌어와 선생님께 인사시켰다.“선생님, 안녕하세요.”아이는 나긋한 목소리로 오수혁에게 인사했고 오수혁은 웃으며 인사에 응했다.요 녀석은 무술을 배울 자질은 보통이지만 너무 귀엽게 생겨 오수혁도 아이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았다.“선생님, 안으로 드시죠.”전태윤과 하예정이 오수혁을 집안으로 모셨다.하예진은 우빈이와 노동명을 이끌고 따라왔다.“예진아, 오후에 차 뽑으러 가지?”노동명이 무심코 물었다.“네, 맞아요.”차 뽑을 생각에 하예진은 웃음꽃이 만개했다. 비록 값비싼 수입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녀 인생 첫 차이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나도 오후에 별일 없으니 같이 가.”하예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니에요, 대표님. 그냥 차 바로 가져오면 돼요. 복잡할 거 없으니 예정이랑 함께 가면 돼요.”노동명이 웃으며 말했다.“난 또 너 혼자 가는 줄 알았어. 예정 씨가 함께 가준다니 난 그럼 빠져야겠네. 너 처음 운전하는 거니까 꼭 조심해야 해. 그렇다고 또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어. 적응하면 운전 실력 금방 늘어.”“저 운전면허 진작 땄어요. 전에 회사 다닐 때 회사에서 차 한 대 붙여줘서 운전 실력이 나쁘지 않아요.”노동명은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일행이 집안에 들어와 이제 막 소파에 앉았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잠시 후 도우미가 걸어와서 하예정에게 깍듯이 말했다.“사모님, 손은경 씨가 찾아오셨습니다.”손은경?그녀는 냉큼 노동명에게 시선이 쏠렸다.노동명도 바로 눈치채고 그녀에게 물었다.“예정 씨 찾아왔다는데 왜 날 봐요?”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별 뜻 없어요.”그녀는 도우미에게 말했다.“들어오라고 해요.”도우미는 알겠다며 공손하게 대답하곤 자리를 떠났다.곧이어 손은경이 안으로 들어왔다.도우미는 그녀 뒤에서 대신 물건을 한가득 들고 왔다.하예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은경을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은경 씨도 참, 그냥 오시지 뭘 이렇게 많이 사 오셨어요.”손은경도 가볍게
‘그럼 이제 나한테 달린 거네.’이때 도우미가 차를 올렸다.손은경은 찻잔을 들고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하예정은 그녀가 들고 온 과자 박스를 하나 열어 맛보고는 맛이 괜찮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맛보라고 했다.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전태윤은 아내가 손수 만든 것 외에는 단것이라고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노동명도 단 음식을 싫어하지만, 다른 사람의 체면을 위하여 보통 한두 조각 맛보곤 한다.손은경이 손수 만든 과자를 맛본 노동명은 그 과자가 의외로 질리지 않는다고 느껴져 한 조각을 더 먹었다.그가 두 조각을 연거푸 먹자 손은경은 눈길 속의 웃음기가 더욱 깊어졌다.그녀가 하예정을 찾아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여기 있는 사람 중 오수혁과 우빈을 제외한 모두가 그녀가 노동명을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태도를 하예정은 느낄 수 있었다.전태윤과 노동명의 친한 관계에, 만약 손은경이 앞으로 노동명과 한 짝이 된다면, 그들과도 만날 기회가 아주 많을 거로 생각한 하예정은 다정한 태도를 보였다. 이모도 전에 상류 계층의 사모님들을 절대 얕잡아 보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다른 사모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많은 소식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업도 성사할 수 있다. 전씨 가문 미래의 안방마님으로서, 남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지만, 가능한 한 남에게 미움을 사는 일은 피해야 한다. 사귈만한 사람과는 가깝게 왕래하고, 깊이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면 그만이다.하예정은 이제 본인뿐만 아니라 전태윤, 심지어 전씨 일가를 대표하기도 한다.그녀는 속으로 늘 전씨 일가에 영광을 가져다주지 못할망정 발목을 잡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다.“도련님, 사모님,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박씨 아저씨가 작은 목소리로 귀띔해 주자 부부는 아주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식사를 초대했다.전태윤은 원래 우빈에게 무술 선생님을 초빙하여 단독으로 무술을 가르쳐줄 생각이었지만, 오수혁은
“말 타러 갈래?”전태윤이 차를 몰며 물었다.아내와 데이트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운전기사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기가 직접 운전했다.그리고 경호차가 멀리서 뒤따랐다.“나는 말을 탈 줄 몰라요.”하예정이 성실하게 말하자 전태윤은 웃었다.“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지금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 말타기에 딱 좋아. 우리 집 승마장으로 가볼까?”“당신 집에 승마장도 있어요?”“내 집일뿐만 아니라 당신 집이기도 하니 우리 집이라고 해야지. 우리 집 승마장에는 말을 많이 기르고 있어 승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우리 집 승마장에 가서 말을 타곤 해.”마장의 수입은 결코 적지 않다.전씨 일가의 마장에 가서 말을 타는 사람은 모두 부자니까.“넷째가 승마장 운영을 맡고 있는데 걔는 말을 자기 목숨처럼 아끼며 좋아하거든. 그래서 승마장 운영을 맡겼더니 잘하고 있어. 수익도 짭짤해.”하예정의 기억 속의 넷째 도련님은 웃는 것을 좋아하는 밝은 소년이다. 피부가 약간 검기는 하지만 아마도 승마장에서 자주 뛰어다녔기 때문일 것이다.“당신의 말을 들으니 정말 우리 집의 승마장을 한번 보고 싶네요. 이따가 내가 말을 잘못 타도 당신 나를 비웃으면 안 돼요.”“당연하지, 내가 당신을 데리고 천천히 탈 테니 걱정 마.”“알았어요.”하예정은 다시 하품하고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여보, 나 눈 좀 붙일 거니 도착하면 깨워 줘요.”“응, 그래.”“요즘 자꾸 졸음이 쏟아지는데 환절기 때문인지 모르겠어요.”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전태윤은 갑자기 차를 옆으로 세웠다.“왜 그래요?”그가 차를 세운 것을 알아차린 하예정은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눈을 뜨고 몸을 바로 세워 밖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왜 갑자기 차를 세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당신 요즘 따라 피곤하고 잠도 많이 오고, 하루 종일 자도 자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아?”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별로 피곤하지는 않아요. 다만 요즘 졸음
진단 결과를 손에 쥔 하예정은 그 시각 자신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그들 부부는 이렇게 오랫동안 금슬이 좋았지만, 아직도 임신 소식이 없다. 지금 다시 병원에 온 이상 그녀는 검사를 받고 싶었다.반면 전태윤은 따로 검사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둘이 건강하니 아무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다만 아이와의 인연이 아직 닿지 않았을 뿐이다.“우리 그냥 온 김에 한 번 검사해 봐요. 만약 정말 숨겨진 문제가 있다면요? 그럼 빨리 발견하고 빨리 치료하는 게 좋잖아요.”그녀는 남편에게 함께 전면적인 검사를 받자고 설득했다.“난 몸이 멀쩡한 데다 반년에 한 번씩 종합검진을 받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당신도 마찬가지야. 당신은 감기도 잘 안 걸리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따로 검사받을 필요 없어. 아직 인연이 안 닿은 것뿐이야.”전태윤은 아내를 데리고 떠나려 했다.따로 검사받고 싶지 않았다.그는 그들 부부가 모두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겉은 건강해 보여도 검사만 하면 문제가 드러나는 사례가 얼마나 많아요. 여보, 혹시 무서워요? 검사해서 문제라도 발견할까 봐요?”이 말에 전태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난 아무 문제 없는데 뭐가 무서울 게 있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겨우 반년이니 임신못 한 건 매우 평범한 일이야, 그러니 헛된 생각하지 마. 10년 뒤에도 임신 못 하면 그때 다시 와서 검사해도 늦지 않아.”“그땐 늦어요. 10년 동안 임신 못 하고 다시 검사하러 오면 이미 늦었을걸요. 나 10년 뒤면 이미 서른이 넘었어요. 그 나이에 문제 발견하고 몇 년을 치료해 나았다고 해도, 고령의 산모로 아이 낳기 어려울 거예요. 우리 지금 이렇게 병원까지 왔는데 한번 검사받으면 어때서요? 당신 왜 반응이 이렇게 심해요? 만약 문제가 있다면, 빨리 치료해야죠. 그래야 우리만의 사랑의 결실을 가질 수 있잖아요.”“당신은 마치 내 몸에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내가 일부러 검사를 받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경호원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듯 하예정을 불렀다.“사모님.”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소변 검사 결과를 보고는 그걸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은 후 밖으로 나갔다.경호원들은 그녀의 뒤를 따라 병원을 나와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가는 동안 경호원들은 마음속으로 도련님이 차에서 기다리길 기도했다.도련님은 비록 성격이 좋지 않지만, 매번 사모님과 말다툼할 때마다 말만 딱딱하게 할 뿐 마음속으론 사모님을 걱정하고 있어 정말 혼자 두고 가지는 않을 것으로 그들은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실망하게 됐다.그들은 하예정을 따라 차를 주차한 곳까지 걸어갔는데, 그곳에는 전태윤의 차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두 대의 경호차만이 주차되어 있었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차 키 줘요.”경호원 한 명이 차 키를 꺼내자,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요구했다. 경호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차 키를 건네주었다.“따라오지 않아도 돼요.”“사모님!”경호원들이 자신을 부르자 하예정은 차에 오르면서 말했다.“난 괜찮으니 다들 태윤 씨한테 가요.”곧 그녀는 차를 몰고 떠났다.경호원들은 서서 사모님이 그들의 경호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하예정은 지금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병원을 나온 그녀는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따라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날이 점점 어두워졌다.얼마나 오래, 얼마나 멀리 달렸을까... 그녀는 고속도로에 올라갔다가 또다시 내려와 도로에 차가 점점 줄어들어서야 천천히 차를 멈췄다.길 양쪽은 작은 숲이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그녀도 차에서 내릴 생각 없이 그저 차 안에 멍하니 앉아만 있다가 한참 뒤 휴대폰을 꺼내 보았는데 전화도 메시지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남편이 아무런 연락도 없자 그녀도 먼저 연락할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그냥 건강검진 한번 받아보자는 게 뭐가 문제야? 검사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좋은
“큰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그 녀석이 갑자기?”전현림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물었다.“예정이도 같이 왔어?”“차가 두 대 왔는데 하나는 큰 도련님이 직접 운전하시고, 다른 하나는 경호차인 것 같습니다만 사모님은 차에 안 계신 것 같습니다.”“주방에 반찬 두 가지를 더 준비하라고 해. 이 시간에 찾아왔으니 밥은 먹여야잖아.”도우미들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여기는 큰 도련님의 집인데, 큰 도련님이 집에 오셔서 식사하시는 건 보통 일이 아닌가? 하지만 전현림은 자기 큰아들을 집에 찾아와 밥을 얻어먹는 손님 취급하였다.도우미가 떠나자 전현림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말했다.“당신 내 포위망을 뚫을 방법을 찾았어? 아직 못 찾았으면 나 계속 간다?”“좀 더 생각해 보게 방해하지 말아요. 참, 방금 아주머니가 뭐라고 했어요? 태윤이가 왔다고요? 어떻게 시간이 있어서 온 거죠?”“그 녀석을 누가 알아? 마누라가 생긴 뒤로는 리조트에 잘 돌아오지도 않고, 돌아온대도 그냥 한 바퀴 돌고 다시 가는데. 여기가 자기 집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장소민은 아들을 편들어 말했다. “태윤인 항상 당신을 본보기로 삼고 당신이 하는 대로 배우고 있는 거예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당신이랑 같은 부류인걸요.”다들 전태윤의 성격이 이미 세상을 떠난 친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았다. 전현림은 젊은 시절 지금의 전태윤과 다를 바 없었다.다만 이제 나이가 든 데다 은퇴까지 하니 편안하게 아내와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성격이 많이 온화해졌다.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전태윤이 마당으로 들어섰다.경호원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부모가 또 바둑을 두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예정이는?”장소민이 아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하지만 전태윤은 입을 굳게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그래? 또 싸웠어?”장소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묻더니 바로 남편에게 말했다.“바둑
노동명은 하예진이 가슴 아파할까 봐, 또 격려의 말들을 늘어놓을까 봐 자신이 폐인이라는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하예진은 호텔에 비치된 주전자를 씻고 주전자로 물을 끓였다. 그리고 컵을 씻어 녹차 한 봉지를 집어 들고 녹차 한 잔을 타서 가져다주었다.하예진은 찻잔을 침대 머리맡 카운터에 놓고 노동명에게 말했다.“지금은 물이 뜨거워서 좀 이따가 마셔요.”따르릉...하예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하더니 노동명에게 말했다.“예정이에요.”그녀는 하예정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며 서둘러 받았다.“예정아, 뭔 일 있어?”“엄마.”전화기 건너편에서 앳된 어린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빈아, 우빈이가 드디어 엄마가 생각났나 보네. 엄마한테 전화할 줄 다 알고.”하예진은 웃으며 우빈을 조롱했다.우빈이 입을 삐죽 내밀며 억울하다는 듯 다시 엄마를 불렀다.아들의 억울한 어조를 알아챈 하예진이 물어보았다.“왜? 기분이 안 좋아? 친구랑 싸웠어?”“아니요. 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에요. 정말 나빠요. 저 몰래 아무 말도 없이 엄마 보러 갔어요. 제가 제 친구를 아저씨한테 소개해 주려고 이모한테 부탁해 아저씨 찾으러 왔는데 글쎄 노 할머니께서 아저씨가 엄마 찾으러 가셨다고 한 거 있죠?”우빈 녀석은 너무 서러서 계속해서 말했다.“아저씨는 말도 없이... 제가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저하고 말 좀 하시지. 그럼 저도 아저씨 따라서 엄마한테 갔을 텐데. 아저씨는 약속을 어기는 나쁜 사람이에요.”하예진이 출장을 간 후 노동명은 분명히 우빈에게 나중에 하예진이 보고 싶으면 노동명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하예진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다.우빈은 그 당시 노동명이 그의 친아버지보다도 더 잘해준다고 생각했다.주형인은 매번 우빈을 볼 때마다 잘 대해주지만,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빈은 주형인이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여겼다.노동명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주형인과 주경진 부부 그리고
노동명은 하예진의 손을 잡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하예진의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좋아했다.“예진아.”노동명은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가까이 가면서 떠보았다.“나... 뽀뽀해도 돼?”하예진은 얼굴이 갑자기 노을처럼 붉어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처녀가 아닌 결혼도, 이혼도 해본 아이가 있는 여자였지만, 이런 물음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결국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그 모습을 본 노동명의 마음은 더욱 설레었다.노동명은 하예진을 사랑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녀의 손밖에 잡아보지 못했다.더 깊은 접촉을 해보지 못했다.“예진아, 뽀뽀 해도 돼?”노동명은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잡으면서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도록 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노동명이 다가가니 그의 숨결이 하예진의 얼굴에 닿았다.하예진의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자 그도 그녀의 붉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고 그녀가 눈을 감은 것을 본 뒤에야 비로소 그녀를 껴안으며 키스했다.그들은 부드러운 입맞춤으로부터 거친 키스까지 이르렀다.하예진은 문득 눈을 뜨면서 노동명을 밀치고 일어나 말했다.“물이 끓었어요. 따뜻한 물을 드시겠어요? 아니면 차 한잔하실래요?”하예진은 애써 숨을 골랐다.노동명은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녹차 한 잔 줘. 비행기에서 잠시 쉬었으니 더는 쉴 필요 없어. 녹차 한 잔 마시면서 기운 내야겠어.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얼른 해. 내가 따라갈게.”“제가 할 일은 오전에 다 처리했어요. 이따가 이씨 가문에 가서 저 대신 돌아가신 경호원의 유가족을 보러 가려고 해요. 어쨌든 저 대신 차를 몰지 않았더라면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테니까요.”설령 이은화의 계략이 맞는다고 해도 증거가 없는 한 당분간은 사고라고 할 수밖에 없다.이씨 가문 경호원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하예진을 도와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였다.하예진이 가족을 찾아뵙고 고인을 방문해야
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쳐다보면서 말했다.“날 뭐로 보는 거야? 나도 예전에 공원 벤치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거든. 비록 사춘기 때 저지른 일이지만...”하예진은 노동명이 10대 때 반항하여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따라 사회에 뛰쳐 든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그의 할머니가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자 잘못을 뉘우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창업하여 노씨 그룹을 설립했다.이미 십여 년이 지난 일이다.그는 할머니가 그리울까 봐 하예진 앞에서 할머니에 관한 얘기를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듣자니 노동명은 형제중 막내라 할머니는 그를 가장 아꼈다.우빈은 노동명의 얼굴에 난 칼자국을 처음에 무척 무서워했다. 그는 당시 수술을 받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받지 않았다.칼자국을 남겨놓은 이유는 그의 반항 때문에 할머니가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사실을 명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노동명은 할머니에게 미안했다.“난 안 가려. 이런 룸도 얼마나 좋아.”노동명은 자신의 평소 출장할 때 로얄 스위트룸에 묵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그는 싱글이고 재산도 많기에 마땅히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다.아니면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이제 쉬시려고요?”“나 소파에 앉으면 돼.”노동명은 창가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하예진이 그를 밀고 소파 앞으로 다가가서 멈추었다.그녀는 노동명을 부축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혼자서도 일어설 수 있어. 이제 두 걸음은 걸을 수 있거든.”매일 재활을 하고 몇 걸음 걷다 보니 그의 다리는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더 멀리 가려고 하면 두 다리가 견딜 수 없이 지끈지끈 아파 났고 고통스러워 똑바로 서지 못하고 땅으로 넘어지게 된다.노동명의 두 다리는 넘어지고 부딪혀 멍이 들었다.그는 주위 사람들이 가슴 아파할까 봐 상처를 가리려고 매일 긴 바지를 입고 있고 다녔다.노동명은 누구의 동정심도 필요하지 않았다!하예진은 결국 부축하는 것을 포기했다.노동명은 스스로 일어서서 한 발짝 앞
하예진이 관성을 떠나던 날, 노동명이 심술부린 탓으로 하예진을 공항까지 배웅조차 하지 않았다.심지어 하예진의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에 답장도 하지 않아 그녀가 걱정을 안고 강성 비행기에 오르게 했다.강성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하예진은 여전히 노동명을 걱정했고 전태윤 부부에게 우빈을 데리고 노동명의 집에 가서 그를 위로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그날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노동명은 얼굴이 붉어졌다.하예진은 그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저는 화도 안 났어요. 앞으로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제가 동명 씨를 싫어하고 저를 힘들게 할 것 같다면 저는 진작에 동명 씨를 멀리했을 거예요. 이렇게 가까이 지내지도 동명 씨를 믿지도 않을 거란 말이에요.”지난번 노동명이 하예진에게 고백했을 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하지 않았지만, 물처럼 유유하게 감정을 교류했다. 그들은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서로를 지지하고 의지하면서 지내왔고 두 사람 마음도 점점 가까워졌다.지금 노동명은 하예진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그녀도 노동명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하지 않지만 두 사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서로가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되였다.다른 사람은 이미 두 사람을 커플로 여기고 있다.요리가 나오자 하예진은 잘 먹지 않고 노동명에게 반찬을 집어주었다.미인 옆에서 자신을 잘 보살펴 주는 것을 본 노동명은 너무 행복했고 하마터면 배가 터질 뻔했다.노동명은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기에 하예진은 그를 호텔에서 쉬게 한 다음 저녁에 그에게 호텔 근처를 구경시켜주려고 했다.강일구는 노동명 일행에게 룸 세 개를 예약해 주었고 노동명이 하예진의 룸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 하자 강일구는 흔쾌히 노동명과 룸을 바꾸었다.어차피 노동명은 강성에서 하룻밤만 묵고 내일 오후 관성으로 돌아갈 계획이다.연말이 다가오면 노씨 그룹도 정신없이 바쁘기에 노동명은 회사 대표로서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쌓인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하예진은 노씨
노동명이 대답했다.“내가 갑자기 강성에 오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우빈은 아직 몰라. 우빈의 친구가 찾아오는 바람에 신나게 놀고 있거든.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을 정도인데 내가 어디로 갔는지 걱정할 겨를도 없어.”하예진이 웃었다.“동명 씨는커녕 엄마인 저조차도 생각하지 않나 봐요.”“우빈이 녀석이 예정 씨와 사이가 좋으면 예진이 네가 자유로워서 좋잖아.”“그건 그래요. 우빈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예정이가 늘 저를 도와 녀석을 봐줬거든요. 우빈이 아빠가 출근해야 해서 제가 산후조리 때부터 예정이가 늘 우리 모자를 돌봐줬죠. 제가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때야 우빈 아빠가 휴가를 냈거든요. 전 시부모님은 병원에서 우빈을 한 눈만 보고는 행방이 묘연해지고요. 이혼 전에는 심지어 저보고 둘째를 낳으라고 했는데 다행히도 제가 이혼했네요. 아니면 제가 평생 그 집안에 얽매여서 살아야 할지도 몰라요.”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3층으로 올라간 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고 하예진은 노동명을 부축해 앉힌 뒤 물어보았다.“뭐 드시고 싶어요?”“네가 주문해. 난 편식하지 않아. 아무거나 먹으면 돼.”하예진은 경호원들을 불러 앉힌 뒤 휴대전화를 꺼내 벽에 붙어 있는 주문 코드를 스캔하여 노동명이 좋아하는 요리 몇 가지를 시켰고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에게 물어보았다.“술 드실래요? 동명 씨는 제가 차로 모시면 되니까 다들 술 마시고 싶으면 한잔해도 돼요. 운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노동명의 경호원이 대답했다.“우리는 술 안 마셔요. 술을 주문하지 않으셔도 돼요.”노동명도 술 마시지 않았다.“그럼 술 주문하지 말아요.”하예진과 강일구 일행은 식사했지만 지금 또 노동명과 함께 식사하려고 한다.곧 하예진은 주문을 마쳤다.하예진 옆에 앉은 노동명은 그녀에게 가까이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예진아, 사실 난 형인 씨 무식함이 너무 감격스러워.”하예진은 바로 노동명을 노려봤고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가 안목이 뛰어났다면 내가 널 가까
“고마워요. 괜찮습니다.”노동명은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사실 노동명은 하루 호텔에 묵은 적 있지만, 횟수가 적은 탓으로 누구도 그가 노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노동명은 말할 것도 없고 전씨 가문의 대표 전태윤이 왔다고 해도 호텔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전씨 그룹의 모든 호텔을 관리하는 사람은 전호영이기 때문에 모든 호텔 직원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전호영이었다.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하러 나오는 길에 마침 안으로 들어가는 노동명을 만났다.“동명이 형.”전호영은 노동명을 보고 조금 놀랐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다.하예진이 오늘 노동명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노동명은 오후 2시 전에 도착한다고 했기에 전호영은 노동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줄 알았다.하예진이 방금 밖에서 돌아왔고 아직 노동명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경호원들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전호영은 좀 의외라는 듯 웃으며 노동명 앞으로 다가서며 인사했다.“형, 혼자 오셨어요?”“응, 내 개인 비행기를 공항에 세웠거든. 강성으로 오기 전에 차를 빌려놨어. 내리면 바로 차를 탈 수 있게 말이야. 다들 바쁜 거 알고 내가 미리 말 안 하고 왔거든.”노동명은 고현을 바라보았다.고현은 노동명의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면서 공손히 인사했다.“노 대표님.”노동명은 고현과 악수를 하고 나서 전호영에게 말을 건넸다.“호영아, 먼저 일 봐. 날 신경 쓰지 말고. 예진이가 호텔에 있다고 했어. 날 데리러 내려올 거야.”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걸어오는 하예진을 본 전호영은 노동명에게 웃으며 말했다.“예진 누나 오셨어요. 형,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전호영은 하예진에게 눈썹을 움직이며 개구쟁이 표정을 짓자 하예진이 그를 째려보았다. 전호영은 빙그레 웃으며 고현과 함께 밖으로 향했다.“식사하셨어요?”하예진은 노동명을 보자마자 배고프냐고 물었다.노동명은 배를 더듬으며 가여운 모습을 보였다.“너희들이 어젯밤에
“엄마...”“더 이상 엄마라고 부르지 마.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또 엄마라고 부르면 네 혀를 잘라서 밖에 던질 거야! 네 엄마는 촌에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이은화는 다시 병실 문을 닫았다.이윤정은 눈물범벅이 되었지만 더는 소리 내서 울지 못했다.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셈이다.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정군호는 이윤정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매우 아팠지만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발걸음 소리를 들려오자 정군호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이은화의 눈에 밟힐까 봐 무서웠다.정군호는 자신의 생활과 이윤정의 생활도 이제 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가 지금 이씨 가문에서 쫓겨나지 않았다고 해도 앞으로 이씨 가문에서 지낼 삶은 개만도 못할 것이다.하지만 정씨 집안을 위해 참을 수밖에 없다.정일범이 가주 자리에 오르지 않는 이상 정군호의 삶은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친딸 이윤미가 가주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정군호의 삶은 변할 것이 하나도 없다.정군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상처가 다 나아서 퇴원하면 정일범을 도와 자리를 가주 차지하여 이씨 가문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고 맹세했다.고급 렌터카 한 대가 하루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차 안에 앉아있던 노동명은 하예진에게 그가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아직 하루 호텔로 오는 중인 줄 알고 서둘러 그에게 전화했다.노동명이 전화를 받자 하예진이 물었다.“동명 씨, 지금 어디예요? 공항이에요? 기다리세요. 제가 지금 바로 떠날게요.”“아니야. 내가 렌터카를 타고 왔어. 지금 하루 호텔 앞인데 네가 지금 호텔에 있다면 지금 대문으로 나오면 나를 볼 수 있을 거야.”“알겠어요. 바로 내려갈게요.”하예진은 방금 밖에서 호텔로 돌아왔다.오늘 노동명이 그녀를 보러 온다는 생각에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노동명이 오늘 오후 2시쯤 하예진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호텔로 돌아가지도 않고 회사 설립을 위해 밖에서 뛰어다녔을 것이다.그녀는 고씨 그룹에 가서 고현을
이은화는 한참 동안 이윤미를 올려다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엄마는 네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 난 네 마음속에도 강한 힘이 있다는 것도 잘 알아. 젊었을 적 날 닮았지. 그런데 넌 좀 착해.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공평함은 없다는 것만은 알아야 해.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야.”이윤미는 말을 잇지 않았다.“돌아가.”이은화는 이윤미가 이윤정보다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윤미가 자신의 말을 전부 듣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친딸 이윤미는 그녀만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이은화는 어느 땐가 그녀가 애써 얻은 모든 것이 맏언니 이은숙의 후손에게 돌아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이은화가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일한 것들이 전부 헛수고로 될 테니까.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이은화는 아마 죽어서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이윤미는 이은화에게 스스로를 잘 돌보라고 당부한 뒤 병실을 나섰다.이은화는 딸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 뒤 다시 병실로 돌아와 침대 옆에 앉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윤미가 돌아갔어.”“네.”정군호가 대답하며 맘속으로 불효녀 이윤미를 욕했다.방문하러 왔으면서 그에게 관심 어린 말도 건네지 않는다고 원망했다.‘내가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나? 그래도 나한테 와서 관심 정도는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야?’“내가 윤정을 내쫓았어. 앞으로 윤정이는 우리 이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윤정이한테 준 모든 것을 전부 되돌려 받을 거야. 그 애는 단지 집사의 딸일 뿐인데 우리 윤미의 자리를 이십여 년 동안 차지하면서 윤정의 몫이 아닌 부귀영화를 누렸지. 그거면 충분해.”앞으로 이윤정은 거지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이은화는 예전에 이윤정을 아끼던 만큼 지금 그녀를 미워했다.이윤정과 정군호가 남의 음모에 말려들었다 할지라도 이은화는 용서하지 못했다.이은화는 그녀의 분노를 전부 정군호와 이윤정에게 쏟아부었다.정군호는 이은화를 미치광이라고, 수단이 악랄한 여편네라고 욕하고 싶었
“엄마, 저는 밖에서 낳은 딸이 없어요. 만약 밖에서 낳은 딸이 있다면 그 딸을 이씨 가문에서 인정하나요?”“네가 낳은 친자식이라면 당연히 인정하지. 네가 임신하고 아기를 낳을 때 가족 모두가 동행한다면, 그 아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사람들도 인정할 거야.”이윤미가 대답했다.“그러면 제가 왜 시집을 가야죠? 시집가지 않으면 그 쓰레기들이 재산을 가져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이은화는 말문이 막혔다.이은화는 정신이 나갔는지 갑자기 딸의 이상한 질문에 대답까지 해주었다.정군호의 배신 때문인지, 기분이 나쁜 탓인지 모른다.이윤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완벽한 대책을 세워도 빈틈이 생길 것 같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딸이 아빠를 두지 않으면 좋잖아요. 제가 결혼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부부로 되지 못하니 당연히 부부의 공동 재산이 될 리가 없을 테고 그 남자도 재산을 분할 받고 싶어도 못 받을 거고요.”이은화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이윤미를 설득했다.“윤미야, 내가 아무 말도 안 한 거로 생각해. 엄마는 네가 외롭지 않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제가 딸을 낳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 텐데 어떻게 외롭다니요? 가주 자리에 앉으면 스트레스가 심하고 일이 바빠서 매일 발이 땅에 닿지 못할 정도로 바쁠 텐데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요. 그런데 또 딸을 낳아 가주 자리를 물려주려면 예진 리조트의 넷째 사모님을 따라 배우면 되잖아요.”“이윤정은 어떻게 됐어?”이윤미의 생각에 놀란 이은화는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사상은 여전히 비교적 보수적이었다.“우리 별장 앞에서 밤새 울부짖었어요. 오늘 아침에 윤정이가 형수님 몇 분한테 괴롭힘을 당했는데 또 괴롭힐까 봐 도망쳤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우리 오빠들이 윤정에게 준 돈과 카드도 전부 형수님들이 빼앗아 갔어요. 엄마가 옷 외에 다른 물건은 전부 가져갈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형수님들도 엄마의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