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빈은 서현주가 생각났다. 엄마의 설명을 곰곰이 되새겨보았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아저씨는 결혼했어요?”“아니, 아저씨는 아직 결혼할 사람을 못 만나서 안 했어.”“왜 못 만났어요?”“그거야 아저씨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으니까.”주우빈이 두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듯 물었다.“아저씨 우리 엄마 안 좋아해요? 우리 이모랑 사촌 이모도 다 좋은 사람인데 아저씨는 전부 싫은 거예요?”“...”노동명은 실소를 터트렸다.“우빈의 이모는 좋은 사람이지만 이모부가 있잖니. 아저씨가 어떻게 우빈의 이모를 좋아할 수 있겠어. 사촌 이모도 좋은 분이지만 아저씨랑은 이성적인 감정이 없어. 우빈의 사촌 이모가 아저씨 스타일이 아니거든. 우빈의 엄마라면... 아저씨는 그저 친구로 생각해. 매일 이리로 오는 건 우빈이가 좋아서야.”주우빈은 알듯 말듯 아리송했다. 노동명이 그를 좋아한다고 하자 아이는 본능적으로 물었다.“그럼 아저씨 나랑 결혼할래요?”“우빈아, 우리 둘 다 남자라서 결혼 못 해. 아저씨가 비록 여자친구는 없지만 취향은 명확하단다. 오직 여자만 좋아해.”“방금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요.”“우빈이를 좋아하는 것과 여자를 좋아하는 건 의미가 다르지.”“다 좋아하는 거잖아요. 왜 나랑 결혼 못 해요?”“...”순진무구한 아이의 쉴 새 없는 물음에 노동명은 살짝 말문이 막히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우빈이는 아직 어려서 나중에 크면 다시 이 문제 토론할까? 자, 아저씨가 블록 쌓기 가르쳐줄게.”노동명이 화제를 돌렸다.앞으로 우빈이한테 무언가 캐내려 해도 신중하게 물어야 한다. 캐묻다가 되레 본인만 당할 테니까.“우빈이 아침 먹자.”하예정이 어묵과 토스트를 들고 와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이모가 먹여줄까?”“예정 씨는 가서 예진이 도와줘요. 내가 우빈이 먹일게요.”“고마워요, 동명 씨.”“괜찮아요. 우빈이만 먹어준다면 저는 더 바랄 것도 없어요.”다만 우빈이는 결국 노동명이 먹여
“하예진 쪽은 신경 쓸 거 없다. 찾아가지도 마. 너만 못나 보여. 아줌마가 알아서 할게. 난 우리 동명이 이혼녀 만나게 할 수 없어. 내가 이혼녀를 며느리로 들일 순 없잖니.”윤미라는 손은경이 하예진을 찾아가 소란을 피울까 봐 두려웠다. 괜히 노동명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을 테니까.“넌 앞으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동명이만 따라다녀. 예진이는 이 아줌마가 알아서 해결할게. 난 동명의 엄마야. 아무리, 동명이가 엄마인 나랑 얼굴 붉힐까.”손은경이 운전하며 말했다.“아줌마 지금 바로 하예진 씨 찾아가게요? 제가 볼 때 동명 오빠는 단지 하예진 씨 아들과만 가깝게 지낼 뿐 하예진 씨랑은 딱히 뭐가 없던데요. 우리가 괜한 오해한 거 아닐까요? 오빠는 단순히 하예진 씨 아들을 좋아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나도 그 아이가 똘망똘망하고 귀엽던데요. 예진 씨가 오빠네 건물에 세 들어서 가게 꾸리는 것도 별일 아니에요. 임대료 제때 지급하면 되죠. 누구한테 임대하든 결국 다 같은 의미잖아요. 게다가 하예진 씨는 전태윤 씨 처형이고 전태윤 씨랑 동명 오빠가 절친 사이라 태윤 씨 면을 봐서 도와준 걸 수도 있어요.”손은경은 속으로 하예진을 견제하긴 하지만 윤미라처럼 이렇게까지 충동적이진 않았다. 윤미라는 당장이라도 하예진을 찾아가 노동명한테서 멀리 떨어지라고 윽박지를 것만 같았다.“은경이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하예진이 우리 동명이랑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일단 예진이 찔러봐야 해. 괜한 생각 못 하게 말이야. 넌 신경 쓸 거 없다. 아줌마가 알아서 해.”윤미라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손은경을 찍었다.“아줌마, 나 왜 찍어요?”윤미라가 웃으며 말했다.“다 쓸데가 있어서 그러지. 사진관 가서 한 장 뽑아야겠어. 걱정 마. 아줌마가 널 해칠 리 있겠니. 이따가 나 저기 하루 토스트 앞에 세워주고 넌 바로 동명이 만나러 노씨 그룹으로 가.”손은경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윤미라의 분부를 따랐다.윤미라는 아들이 하루 토스트에서
하예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가게는 노 대표님 겁니다. 대표님은 제가 전태윤 씨 처형인 걸 봐서 임대료를 한 달에 160만 원 받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합치면 거의 200만 원 가까이 돼요.”윤미라는 아들이 하예진의 돈을 받았다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적어도 그녀에게 공짜로 가게를 내주며 영업하게 하진 않았으니까.하예진은 전태윤의 처형이라 한 달에 임대료 160만 원만 받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그 녀석이 돈까지 받았어요? 예진 씨는 전태윤 씨 처형인데 왜 기어코 돈 받았대요?”윤미라가 일부러 떠보듯이 물었고 하예진이 재빨리 설명했다.“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대표님이 돈을 안 받으시면 저도 이 가게를 임대할 엄두가 안 났을 겁니다.”“임대료 주니까 동명이가 받던가요?”“그럼요. 지난달엔 현찰로 줬고 대표님은 바로 앞에서 액수를 세어본 후에야 가게를 나가셨어요. 이번 달엔 대표님 집사분께 드리면 된대요.”윤미라는 괜히 본인이 예민하게 군 것만 같았다.작은아들이 정말 하예진을 좋아한다면 그녀가 주는 임대료를 받지 않을 테니까.“그 녀석 참... 그래도 여기 유동 인구가 많아서 장사가 잘될 거예요. 임대료가 높긴 하지만 매출액도 오를 겁니다.”윤미라는 곧이어 그녀에게 물었다.“아드님은 왜 안 보이죠?”“예정이가 서점으로 데려갔어요.”윤미라는 알겠다며 대답했다.하예진 자매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이가 좋다.“아침 장사하기 힘들죠? 전보다 훨씬 살 빠진 것 같군요.”윤미라는 하예진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는데 애초에 볼 때보다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지금의 그녀는 전보다 얼마나 더 예뻐졌는지 모른다.중요한 건 그녀가 자신감을 되찾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노동명이 그녀를 좋아할 만도 했다. 하예진은 정말 변화가 너무 컸으니까.노동명은 그녀처럼 자신감 넘치는 여자를 매우 좋아한다.손은경이 바로 그런 여자이다.윤미라는 손은경과 노동명을 자주
“사모님.”하예진은 사진을 두어 번 훑어보다가 얼른 윤미라에게 건넸다.윤미라는 사진을 건네받고 가볍게 웃으며 하예진에게 물었다.“이 여자아이 어때요 예진 씨?”그녀는 물으면서 하예진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너무 이쁜데요. 똑똑하고 유능한 여강자일 것 같아요. 기질도 좋고 인상이 아주 환하네요.”윤미라는 태연하게 대답하는 하예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예진 씨 안목이 있네요. 은경이 여강자 맞아요. 대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경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신분을 숨긴 채 밑바닥부터 갈고 닦았어요. 이젠 회사 부대표직에 올랐고 사람들도 그제야 은경이가 회장님 딸이자 대표님의 여동생이란 걸 알게 됐죠. 여러모로 우수한 아이예요. 내 친구 딸이기도 하고요.”윤미라는 손은경의 신분을 밝힌 후 말을 이었다.“은경이랑 우리 동명이를 엮어주려고 하는데 예진 씨가 볼 땐 어때요? 두 사람 어울려요?”하예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대답했다.“신분과 지위로 볼 때 이분은 대표님과 아주 잘 어울려요. 집안 조건도 상당하니 강자들의 조합이죠. 외모라면... 대표님이 비록 전에 얼굴을 다쳐서 칼자국이 났지만 일단 흉터를 없애기만 하면 이 여성분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대표님도 이 여성분을 매우 좋아할 것 같은데요?”노동명은 홀로 기업을 일군 사람이라 분명 독립적인 여성을 좋아할 것이다. 윤미라가 말한 이 부잣집 따님은 노동명의 요구에 완전히 부합된다.하예진은 바로 알아챘다. 사모님께서 지금 이 부잣집 따님과 노 대표님을 엮어주려고 한다는 것을, 꽤 흥미진진한 일인 듯싶다.윤미라는 그녀가 대답할 때 전혀 눈길을 피하거나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아닌 아주 태연하고 담담한 기색을 보아냈다. 아무래도 본인만의 솔직한 생각인 것 같았다.하예진은 노동명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전혀 없다!윤미라는 하예진을 얕잡아보고 그녀가 며느리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설사 다이어트에 성공해 결혼 전 미모를 되찾는다고 해도, 창업 단계에 장사가 불티나게 잘 되고 조금만 더 견지하면 성공적으로 돈
말을 마친 윤미라는 또다시 하예진에게 물었다.“예진 씨는 평소에 동명이 만날 수 있죠? 걔가 예진 씨 제부랑 절친이니 자주 만날 수 있겠죠. 기회 되면 나 대신 동명이 좀 설득해 줘요. 그래 줄 수 있나요?”하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사모님, 저야 당연히 사모님 돕고 싶죠. 대표님은 참 좋은 분이세요. 평소에 자주 만나기도 하고요. 다만 대표님이 제 말을 들어줄지 모르겠네요. 대표님은 매일 아침 우리 가게로 와서 아침을 챙겨 드세요. 제 아들 우빈이랑도 제법 친하고요. 나중에 또 아침 드시러 오면 제가 한 번 사모님 대신 대표님 설득해 볼게요. 무조건 설득할 수 있다는 보장은 못 해요. 저랑 대표님은 단지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니까요. 사모님은 대표님 어머님인데도 설득이 어려우시니 제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윤미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일리 있는 말이에요. 내일도 동명이가 아침 먹으러 이리로 오면 수다 떨 듯이 은경이를 얼핏 언급해 봐요. 걔가 무슨 반응인지 보게. 나 내일 저녁에 은경이 데리고 관성 호텔에서 열리는 공씨 일가 연회에 참석할 예정인데 동명이도 함께 가줬으면 하거든요.”노동명도 실은 공씨 일가의 연회에 참석하지만 여자 파트너 없이, 엄마의 동반도 없이 홀로 참석한다.그는 이미 노씨 일가와 분리되어 홀로 그룹을 운영하고 있으니까.외부인들도 그와 노씨 일가를 갈라놓고 본다.하예진은 윤미라가 아들 혼사를 걱정하는 게 나름 이해됐다. 윤미라는 하예정의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고 또한 이경혜와도 친분이 있으니 노동명에게 한 번쯤 여쭤보라는 것은 그리 힘든 부탁이 아니다.하지만 노동명이 윤미라와 함께 연회에 참석하라는 부탁은 선뜻 들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노동명에게 어머님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라고 말할 능력이 없으니까.그건 오롯이 두 모자지간의 일이다.이때 야간 일을 마친 공인들이 아침 먹으러 가게로 들어왔다. 윤미라도 손은경의 사진을 가방에 다시 넣고 자리를 떴다.“예진 씨, 장사 바쁘네요. 저도 이만 나가볼게요
손은경은 운전하면서 말했다.“말했잖아요. 예진 씨네 두 자매는 다 괜찮은 분들이에요. 예진 씨는 이제 막 이혼한지라 당분간 재혼 생각이 없을 거예요. 창업으로 돈 버는 게 급선무이지 결혼은 아예 신경도 안 쓸걸요.”한 번 실패한 결혼생활을 겪은 사람은 또다시 사랑이 다가올 때 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질 따름이다.하예진은 지금 창업 단계라 재혼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윤미라가 말했다.“걔가 동명이한테 조금이라도 사심을 품었다면 당장 가게 문 닫고 꺼지라고 할 참이었는데, 거기서 토스트 가게 못 하게 조치하려고 했는데 그런 거 전혀 없는 거야. 근데 난 또 왜 이렇게 걔랑 동명이가 앞으로 꼭 무슨 일 생길 것만 같지? 경계해서 나쁠 건 없다지만 무례하게 굴 수도 없잖니. 예진이도 이젠 더 이상 아무런 뒷받침 없는 고아가 아니야. 동생 예정이가 전씨 그룹 사모님이고 그 집안사람들은 팔이 안으로 굽기로 소문났어. 장소민은 예정이를 싫어하면서도 엄청 챙겨. 아무도 괴롭히지 못하게 말이야. 전씨 일가랑 우리랑 나름 사이가 좋아서 그 집 체면을 봐서라도 예진이를 내쫓을 순 없어. 걔네 이모 이경혜도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서 감히 건드리지 못해.”윤미라는 원래 하예진을 아들 상가에서 장사하지 못하게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노동명한테서 멀어지면 두 사람은 만날 일도 적고 윤미라가 걱정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다만 하예정은 노동명에게 전혀 이성적인 감정이 없다. 그럼에도 가게를 못 하게 가로막는다면 윤미라만 막무가내인 셈이 된다. 그와 동시와 전씨 일가와 성씨 일가 모두 미움을 사게 될 터이니 무의미한 노릇이다.만약 노동명과 하예진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을 때 손을 쓴다면 또 너무 늦어질 텐데.노동명의 성격은 엄마인 윤미라가 제일 잘 안다.사랑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일단 사랑에 빠지면 평생 간다.손은경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아줌마, 예진 씨 내쫓지 마세요. 이혼하고 창업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제 막 장사가 잘되고 돈을 바짝
“그래, 가.”심효진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꽂혀 있었다. 하예정은 그녀가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효진아, 우리 가게에 몇 안 되는 소설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는데도 그렇게 재미있어? 너 이참에 소설 써봐. 수년간 책 읽은 경험으로 분명 멋진 소설을 써낼 수 있을 거야. 출판해서 대박 터트리면 우리 서점 메인 코트에 보란 듯이 내놓을게. 우리 가게 간판 소설이지!“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난 보는 것만 좋지 쓰는 건 싫어.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음식 앞에서만 몸이 움직이지 책을 쓸 리가 있겠어? 너 소설 쓰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줄거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야.”하예정은 차 키와 아직 안 바꾼 지갑까지 챙기고 조카의 손을 잡고는 채소 사러 갈 채비를 했다.친구의 말을 들은 그녀는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너랑 정남 씨 러브스토리를 쓰면 무조건 베스트셀러가 되겠는데.”“나랑 정남 씨 이야기는 너무 무미건조해. 어떠한 우여곡절도 없고 라이벌조차 없어서 딱히 쓸 내용이 없다. 너랑 태윤 씨 스토리가 참 괜찮은데 내가 쓸 줄 모르네. 이참에 네가 자서전 낼래?”하예정도 피식 웃었다.“나도 그런 흥취가 없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어. 내일 밤엔 또 우리 그이랑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해. 너도 갈 거지?”“물론이지. 정남 씨가 진작 말했어. 아 참, 나랑 정남 씨 약혼식도 곧 다가오는데 너 태윤 씨랑 꼭 함께 와. 우리 결혼식은 5월 1일 전으로 정할 거야. 정남 씨는 뭐가 급하다고 부모님께 결혼 날짜를 5월 이전으로 받아오라고 하셨대.”“그거야 당연히 널 너무 사랑해서 빨리 집에 데려오고 싶어서겠지. 옆에 두면 매일 실컷 예뻐해 줄 수 있잖아.”심효진은 가볍게 웃었다. 소정남이 그녀에게 잘해주는 건 사실이니까.두 사람의 감정은 거창하고 우여곡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늘 안정적이고 담담하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왔다.인생은 가늘고 길게 가야 하는 법이니까.“우리 채소 사러 가. 금방 다녀올게.
그런데 아내의 입덧이 너무 심하다고 성기현이 글쎄 아이를 지우겠다고 한다.심효진은 아내 사랑이 지극한 남자를 많이 봐왔지만 성기현처럼 아내를 위해 아이까지 지우려는 사람은 처음이다.“새언니는 당연히 반대하죠. 언니도 설득해 보려 했는데 도통 말이 안 통해요. 오빠가 기어코 아이 지우라는 거 있죠. 임신하고 나서부터 언니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는 족족 토하니까, 심지어 담즙까지 토해내는 경우가 많아요. 얼굴이 다 반쪽이 돼서 오빠가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에요. 지금 엄마, 아빠도 집에서 새언니 지키고 있어요. 오빠가 또 불쑥 새언니 데리고 병원 가서 아이를 지울까 봐요.”어쩐지 이경혜가 요즘 잘 안 보이더라니...심효진이 관심 조로 물었다.“그 정도로 심하게 토하면 병원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의사가 먹는 약 처방해 주셨는데 효과가 딱히 없어요. 게다가 새언니는 태아 보호 차원에서 종일 집에 누워있어야 해요. 프로게스테론이 낮다고 하더라고요. 어휴, 엄마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엄마는 참 위대하다.심효진이 말했다.“예정이 보통 근처 슈퍼로 가서 채소 사니까 금방 올 거예요. 오는 대로 예정이한테 말하고 우빈이 데려가세요. 그 아이가 총명하고 귀여워서 소현 씨 오빠도 아이를 보면 마음이 바뀌실 거예요.”“네,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미 예진 언니한테 전화해서 동의 구했어요. 언니도 우리 오빠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고는 한바탕 욕하더라고요. 일 마무리하는 대로 새언니 보러 오겠대요.”금방 유청하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모두가 기뻐했고 하예진 자매는 영양제까지 사 보냈다. 전씨 일가에서도 하예정의 면을 봐서 영양제를 한가득 사 보냈는데 입덧이 이토록 심할 줄이야.“임신하면 신 음식 좋아한다던데 신 음식 좀 사서 구토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건 어때요?”성소현이 머리를 내저었다.“새언니한테는 아무 소용 없어요. 먹는 족족 토하긴 하지만 먹고 바로 토하는 게 아니라 한참 지나서야 구토가 올라와요. 입맛
“엄마, 저는 밖에서 낳은 딸이 없어요. 만약 밖에서 낳은 딸이 있다면 그 딸을 이씨 가문에서 인정하나요?”“네가 낳은 친자식이라면 당연히 인정하지. 네가 임신하고 아기를 낳을 때 가족 모두가 동행한다면, 그 아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사람들도 인정할 거야.”이윤미가 대답했다.“그러면 제가 왜 시집을 가야죠? 시집가지 않으면 그 쓰레기들이 재산을 가져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이은화는 말문이 막혔다.이은화는 정신이 나갔는지 갑자기 딸의 이상한 질문에 대답까지 해주었다.정군호의 배신 때문인지, 기분이 나쁜 탓인지 모른다.이윤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완벽한 대책을 세워도 빈틈이 생길 것 같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딸이 아빠를 두지 않으면 좋잖아요. 제가 결혼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부부로 되지 못하니 당연히 부부의 공동 재산이 될 리가 없을 테고 그 남자도 재산을 분할 받고 싶어도 못 받을 거고요.”이은화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이윤미를 설득했다.“윤미야, 내가 아무 말도 안 한 거로 생각해. 엄마는 네가 외롭지 않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제가 딸을 낳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 텐데 어떻게 외롭다니요? 가주 자리에 앉으면 스트레스가 심하고 일이 바빠서 매일 발이 땅에 닿지 못할 정도로 바쁠 텐데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요. 그런데 또 딸을 낳아 가주 자리를 물려주려면 예진 리조트의 넷째 사모님을 따라 배우면 되잖아요.”“이윤정은 어떻게 됐어?”이윤미의 생각에 놀란 이은화는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사상은 여전히 비교적 보수적이었다.“우리 별장 앞에서 밤새 울부짖었어요. 오늘 아침에 윤정이가 형수님 몇 분한테 괴롭힘을 당했는데 또 괴롭힐까 봐 도망쳤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우리 오빠들이 윤정에게 준 돈과 카드도 전부 형수님들이 빼앗아 갔어요. 엄마가 옷 외에 다른 물건은 전부 가져갈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형수님들도 엄마의 말씀을
이윤미는 더는 정군호를 쳐다보지 않고 이은화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이윤미는 보온 도시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도시락 뚜껑을 열어주면서 말했다.“만두 두 개도 포장해 가져왔어요.”이은화는 앉아서 이윤미가 가져온 흰죽과 반찬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너니까 나에게 진짜로 흰죽과 반찬을 가져오는구나.”정일범 형제와 이윤정이라면 흰죽과 반찬들이 이은화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은화의 요구대로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엄마,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이윤미는 양부모 집에서 자라면서 학대받았을 때 흰죽 한 그릇도 먹지 못했다.어렸을 때, 흰 죽 한 그릇도 그녀에게 사치였다.삶의 고달픔을 일찍 알아버린 이윤미는 커서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도 함부로 쓰지 않고 여전히 절약하며 살았다.이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으로 지갑이 두꺼워졌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았다.이은화는 묵묵히 죽을 먹으며 수십 년 전 그날 새벽의 이은숙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이은화는 자신의 맏언니와 여동생을 죽이고 가주 자리에 앉았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엄마, 아버지께서...”이윤미가 조용히 물었다.그녀는 정군호가 얻어맞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고 아마 이은화에게 칼에 찔렸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어젯밤 정군호가 병원으로 이송된 후 이은화는 자식들이 자신에게 정군호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윤미 또한 정말로 묻지 않았다.어쨌든 이은화는 정군호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이은화의 수단으로 분석해 보면 그녀는 정군호를 단번에 죽이지 않고 천천히 괴롭힐 것이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죽지는 않아. 단지 내시가 되었을 뿐이야. 감염되지 않고 상처가 다 나으면 퇴원할 수 있대. 네 아버지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은 없을 거야. 앞으로 미녀를 보게 되면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을걸.”이윤미는 잠시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몰랐다.“윤미야.”이윤미는 이은화를 바라보았다.이은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엄마
정군호는 잠깐 고통과 절망한 표정으로 이은화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그는 정말 아팠다.정군호가 이은화를 보지 않아도 이은화는 화를 내지 않았다.그리고 일어나 다시 창가로 걸어가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이은화의 생각은 이미 멀리 떠났다.만약 그 사람이 이은화와 함께 있었더라면, 그녀를 돕고 그녀와 결혼했다면, 그녀의 인생은 분명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영원히 이은숙에게 충성했다.이은숙이 시집가서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이은화와 함께하지 않고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이미 몇십 년이 흘러 이은화가 70세의 노인으로 되었는데, 그 사람은 아마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은화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다.따르릉...이은화의 핸드폰이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이윤미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이은화는 잠시 휴대전화를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엄마.”이윤미는 전화기 너머로 말을 건넸다.“엄마, 괜찮으세요?”그녀는 아버지의 부상이 어떤지 직접 묻지 않고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었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미 최악인데 뭐가 괜찮겠어? 너희도 어른이 되고 나도 할머니로 되었는데 네 아빠가 내연녀가 있다고 해도 난 이제 여의치 않아.”앞으로 정군호는 다시는 여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엄마, 오늘 밥 안 드셨을 텐데 드실 것 좀 갖다 드릴까요?”“필요 없어.”이은화는 거절하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그래, 너무 많이 가져오지는 말고. 흰죽에 반찬 조금만 갖다 줘.”이윤미가 대답했다.“엄마가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드실 텐데 그렇게 간단하게 드시면 쉽게 배고파요. 쉽게 체력도 떨어져서 안 돼요.”이은화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을 건넸다.“네 큰이모가 세상을 떠나신 날 아침, 큰이모가 이렇게 드셨거든. 산해진미를 많이 먹었다면서 가끔 흰죽에 반찬을 곁들이면 특별한 맛이 난다고 하셨어.”“알았어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이윤미는 더는 아무
“괜찮아요. 누나는 일 보러 나갔어요. 우리 예진 누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면 안 돼요. 누나는 이미 온갖 피바람을 겪은 사람이거든요. 15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사람 잡아먹을 정도의 친척들을 상대하면서 열 살짜리 여동생을 잘 가르치면서 살아오셨어요. 삶의 고초를 겪은 사람의 의지는 엄청나게 강한 법이죠.”전호영은 이경혜가 왜 하예진을 선택하고 강성으로 보내 이윤미와 경쟁하게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놀라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네요.”전호영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제 퇴근해도 될까요? 참, 현이 씨에게 선물을 준비했어요.”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케이스를 받아 열어 보지도 않고 일어나서 그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을 열어 서랍 안에 넣었다.“열어 보지 않을래요?”“볼 필요 없어요. 호영 씨가 준 물건은 모두 최고이기 때문에 제가 한가할 때 천천히 열어보면서 호영 씨의 사랑을 느껴볼게요.”전호영은 고현을 보면서 오늘의 그녀가 좀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고현은 전호영의 감정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전호영의 이 고된 사랑의 길에서 드디어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전호영은 너무 뿌듯했다.병원.어느 고급 병실에서 이은화가 창가에 서서 창밖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정군호였다. 정군호는 얼굴이 창백해 보였고 표정도 고통스러웠다.그는 눈을 감고 있다가 가끔 눈을 뜨고 그러다가 창가에 서 있는 이은화를 보더니 또 재빨리 눈을 감았다.아무도 정군호를 방문하러 오지 않았다.그가 칼을 휘둘러 그런 일을 저지른 소식을 이은화가 억눌러 소문이 퍼지지 않게 했다.그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이은화는 정군호가 아들딸 앞에서 그의 유일한 존엄을 잃지는 않도록 했다.시간이 한참 흘러 이은화가 돌아앉아 자는 척하는 정군호를 보며 말을 건넸다.“당신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알아.”그녀는 정군호가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진통제
고진호도 고현이 여자였기 때문에 며느리가 아닌 사위가 필요했고 따라서 재벌가 딸들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막 빠져나오자마자 고현이 고객을 배웅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뒤에는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몇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고객의 비서일 것이다.전호영과 고객들은 서로를 잘 몰랐다.고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호영은 말없이 한쪽으로 비켜섰다.고현은 직접 고객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남 비서가 전호영을 쳐다보자 전호영은 눈빛으로 고현을 따라가라고 신호를 보냈다.전호영은 이미 고현의 사무실에 대해 매우 익숙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비서가 그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었다.고현의 사무실과 휴게실에 관해 전호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고현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전호영은 스스로 고현의 사무실로 갔고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사무실에 들어선 전호영은 먼저 커피 한 잔을 타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고현이 돌아왔다.“어젯밤 일은 어떻게 됐어요?”고현은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예진 누나를 대신해서 죽은 경호원 가족들이 와서 뒷일을 처리했어요. 이씨 가문도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고 보험회사에서도 가족들에게 보상해 줄 거예요. 이씨 가문의 모든 경호원은 거액 보험에 가입했거든요. 저도 이따가 예진 누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오후에 그 경호원의 가족들을 보러 가자고 해야겠어요. 그 경호원은 비록 이씨 가문의 희생 품이지만 그래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걸요.”현재, 그 차 사고는 잠시 의외 사고로 단정 지어졌다.이씨 가문의 음모라는 증거가 없어서 이씨 가문은 충분한 연기를 해야 만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죽은 그 이씨 가문의 경호원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이은화의 마음이 그토록 모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에 처음 초대한 당일에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하예진이 경계
다행히도 이 모든 악몽은 이미 끝났다.하예진은 이미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일으켰다.“호영 씨, 이만 가볼게요. 저도 나가서 일해야 하거든요. 회사를 설립하는 일을 아직 다 마치지 못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회사가 강성에 있어야 다른 회사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동명 형이 오시는 길일 텐데 더 기다리지 않으려고요?”전호영은 장난치고 싶었다.하예진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야 도착할 거에요. 동명 씨가 먼저 오면 저 대신 먼저 대접해 주세요. 호영 씨와 동명 씨가 더 친하잖아요.”“저도 좀 이따가 고씨 그룹에 갈 거예요.”“알겠어요. 그럼, 제가 빨리 돌아오죠. 미래의 아내가 더 중요한 법이죠. 호영 씨 둘째 형도 혼인신고 했다면서요. 호영 씨가 설을 쇠러 갈 때면 운초 씨는 아마 임신했을걸요. 힘내셔야겠는데요.”전호영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누나, 저도 필사적으로 힘을 내는 중이거든요. 우리 현이 씨는 둘째 형수님보다 따르기가 훨씬 어렵거든요.”여운초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하얀 꽃처럼 부드럽고 연약해 보였다.여운초가 여씨 그룹을 단단히 장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전호영도 여운초가 계략과 수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끈질긴 열정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요.”하예진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전호영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의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하예진은 마침 이경혜의 전화를 받았다.이경혜와 하예진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하예진이 떠난 지 30분 만에 전호영은 일을 끝내고 호텔을 떠나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호영은 이씨 가문의 뒷일을 고현에게도 알려주려고 했다.이번에 전호영은 꽃도, 보석도 사지 않았다. 고현은 비록 여자이지만,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성격도 남성적이라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에게 손목시계를 하나 사줬다.고씨 그룹의 사람들은
“이 대표님께서도 크게 노하셨을 거예요. 정군호 씨는 잘 모르지만, 이윤정 씨는 그날 밤 쫓겨났어요. 한밤중에 정군호 씨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실려 갔다고 들었는데, 이 대표님은 아무도 병원에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정군호 씨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대요.”전호영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하예진은 아직 다 마시지 못한 물잔을 들고 두 모금 더 마시더니 다시 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전호영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어나갈 때까지 기다렸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사람을 보내 병원에 가서 알아보게 했어요.”“이모할아버지의 부상 상황은 어떻게 되셨대요? 이모할머니가 벌인 일이래요?”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이 대표님께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정군호 씨가 스스로 그 부위를 자른 거래요.”전호영은 정군호가 벌인 일이 이은화의 핍박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는 절대로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이은화가 아마도 정군호에게 두 가지 길을 준 것 같았다.정군호 배후의 정씨 집안은 여전히 이씨 가문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했기에 정군호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면 정군호는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없기에 칼을 휘둘러 스스로 그런 짓을 해야만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하예진이가 깜빡이며 의아했다. 그녀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전호영도 정군호의 부상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고 그냥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정군호 씨는 죽지 않았어요. 정군호 씨의 부상은 알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이 대표님께서 엄밀하게 숨기고 있거든요. 남자들에게는 특히 데릴사위인 정군호 씨에게는 존엄 없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요.”하예진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데릴사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재벌 가문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 아닌가요?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죠.”전호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잠시 후, 전호영이 말했다.“누나, 우리 동명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과거의 일은 지나
하예진이 위험에 처해 사고가 일어나야만 경호원들이 주동적으로 노동명에게 보고했다.“괜찮으면 됐어. 그럼 됐어. 너무 놀랐잖아. 예진아, 내가 이따가 강성으로 갈 건데 아마 오후 2시 전에 도착할 것 같아.”하예진이 대답했다.“전 괜찮아요.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요.”노동명이 외출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하예진은 늘 그를 걱정했다.“내 두 눈으로 네가 멀쩡한 모습을 보고야 말겠어. 네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해야 내가 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저는 정말 괜찮아요. 경호원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우린 다 괜찮아요. 동명 씨가 외출하기 불편하실 텐데 너무 멀리 오면 안 돼요.”노동명은 기어코 가겠다고 고집했다.“네가 보고 싶어서 그래. 너무너무 보고 싶어. 네가 괜찮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하예진은 반박하지 못했다.“그럼 조심히 오세요. 만약 몸이 불편하면 고집하지 마시고. 동명 씨, 우리는 각자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아시겠죠?”노동명은 부드러운 어조로 나지막이 대답했다.“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몸이 불편하면 외출하지도 않아.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오후에 봐.”“네, 오후에 봐요.”하예진은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노동명이 하예진에게 주고 있는 것은 전남편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어쩌면, 노동명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주형인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적 있었겠지만, 나중에 복잡한 일들이 많이 끼는 바람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하예진이 지금 묵고 있는 호텔은 강성에 있는 전씨 가문의 사업 중 하나이며 전호영이 맡은 부분이다.하예진은 쉽게 전호영을 만날 수 있었다.그녀는 잠을 더 자려고 해도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약을 몇 알 먹은 하예진은 이내 두통이 사라지게 되었고 휴대전화를 들고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더니 전호영의 사무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