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방금 소정남에게 서현주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으니, 미움을 사는 일은 할 생각이 없었다.“미리 고맙다. 넌 참 배려심 깊은 좋은 상사야.”소정남이 아첨하기 시작하자 전태윤이 피식 웃었다.“됐어, 그만해. 우리 둘은 서로 너무 잘 알잖아. 어서 데이트하러나 가. 매일 알콩달콩하다 당도 초과로 당뇨병 걸리지 않게 조심해.”“네가 알콩달콩할 때는 당뇨병에 걸리는 걸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난 이제야 시작인데 뭐가 걱정이야. 이만 데이트하러 갈게. 우리 효진이는 샤부샤부를 좋아해서 데리고 샤부샤부를 먹으러 가야겠어.”소정남은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그와 심효진은 자주 나가서 샤부샤부를 먹었다.“여보, 두리안 먹을래요?”하예정은 두리안을 쪼개 안의 과육을 꺼내어 접시에 올려놓고 전태윤에게 다가가 물었다.두리안 냄새를 맡기도 싫어하는 전태윤은 일어서서 슬금슬금 도망가며 말했다.“여보, 나 두리안 냄새 싫어해. 저기 앉아서 당신 혼자 천천히 먹어.”하예정은 걸음을 멈추었다.“싫어요? 그럼 나 혼자 먹을게요. 사실 이 냄새에 적응이 되면 맛있어요. 나도 처음에는 이런 맛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좋아하게 됐어요.”그녀는 전태윤과 결혼한 후 두리안을 사 먹지 않았기 때문에 전태윤이 두리안을 좋아하지 않는걸 몰랐다.“냄새나.”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한다.하예정도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멀찍이 앉아 그에게 물었다.“방금 언니가 전화 와서 뭐라고 했어요?”그녀는 그가 처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그가 엄숙하게 존칭을 써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하예진 외에 성소현밖에 없었다.“처형은 서현주가 우빈이를 납치한 일당과 아는 사이일 거로 의심하고 있어. 그 사건, 서현주가 계획했거나 다른 사람과 손을 잡아서 벌인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어.”하예정은 멀리 앉아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서현주요?”“응, 이미 소정남에게 부탁해 조사하라고 했어. 이제 소식이 있으면 말해줄게. 예정아, 내
“비록 새엄마도 엄마라지만 우빈은 엄마라고 부르지 않을 텐데 그런 말을 하면 다들 기분만 나빠지잖아.”서현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하예진의 셋집이 있는 빌딩에서 나온 후 곧장 차에 올랐다.주형인도 따라 차에 오르며 물었다.“여보, 쇼핑하러 갈까?”“그럼 운전 안 하고 뭐 해요?”서현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한 건 다 오빠 때문이잖아요. 오빠랑 오빠 가족들이 모두 우빈이를 되찾고 싶어 하는 거 알아요. 만약 우빈이의 양육권을 빼앗아 오면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건데, 난 그저 일찍 엄마 역할에 적응하려 했을 뿐이에요.”차를 몰면서 주형인은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우빈이를 돌아오게 하고 싶어 하시는 건 맞아. 처음부터 우빈이를 집에못 남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셨어. 어르신들은 원래 그래, 하나뿐인 손자인데 마음이 안 아플 수 있겠어? 하지만 난 우빈이를 돌아오게 할 생각이 없어.”그는 서현주를 슬쩍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당시 나한테 우빈이의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던 사람은 너잖아. 지금 난 우빈이가 예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 예진의 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레벨이 아니야. 우빈이는 예진이를 따라 전 대표의 아내인 하예정을 만날 기회가 많아. 하예정도 또 우빈이를 친자식처럼 대하잖아. 재벌 집에 시집간 이모가 있는 한 앞날이 창창해. 난 비록 우빈이와 별로 지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내 아들인데, 앞날에 대해 매우 신경 쓰인단 말이야.”우빈이를 데려오면 그의 부모님 성격으로는 절대 예진 자매와 친하지 못하게 키울 것이틀림없다. 그러면 하예정이 조카를 도와주려고 해도 그럴 기회가 적을 거고, 우빈이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게 뻔했다.주형인은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현주야, 너 요즘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걸 거야.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가서 신나게 놀자. 어쩌면 임신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현주는 마음이 답답했다.그녀는 임신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주서인은 자신이 있는 한 서현주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서현주는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물었다.“뭔 일인데요?”주서인은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내려놓고는 일어섰다. 그녀는 다가오면서 서현주가 들고 있는 쇼핑백들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뭘 샀는데 이렇게 많이 들고 온 거야? 돈 쓸 줄밖에 모르고. 올케랑 형인이는 지금 일도 안 하고 수입도 없는데, 돈 좀 아껴야 한다는 걸 몰라? 지금 올케가 먹고 쓰고 있는 돈들은 다 형인의 돈이야. 자기가 오래 일하면서 번 돈은 아까워하면서 왜 형인의 돈은 팍팍 쓰는 거야? 형인이의 돈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줄 알아?”주서인은 서현주를 돈 아낄 줄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들고 있던 쇼핑백들을 가로챘다.“누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주형인이 주서인을 향해 묻자,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이 누나가 한번 보는 것도 안 돼? 저리 비켜, 집에 들어와서 날 보고 인사도 하지 않고 말이야.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얘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잖아. 형인아, 이런 여자는 아끼면 안 돼. 아낄수록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앞으로 네가 고생하게 될 거야.”동생을 욕하며 쇼핑백들을 열어본 주서인은 서현주가 새로 산 옷 몇 벌을 꺼내 브랜드부터 살펴보았는데,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그녀는 그 옷들을 손에 들고 서현주를 비난했다.“올케는 자기가 아직도 스무 살 소녀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신 좀 차려, 이미 시집 간 유부녀란 말이야! 어머머, 이렇게 밝은색의 옷을 사다니,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형인이가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없으니 다시 다른 남자라도 낚으려고 그러는 거야?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어. 하긴, 올케는 돈을 쓰기만 하면 신부가 될 수 있는 그런 여자니까.”서현주는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녀의 눈에 주서인이야말로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천한 사람이었다.서현주는 새 옷을 빼앗아 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주서인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이 사이즈의 옷은 나도 입을 수
“네가 꺼지라고 하면 내가 꺼져야 해? 여기 네 집이야? 집세 냈어? 너 집세 내면 바로 나갈게. 더는 안 찾아와.”주서인도 만만치 않았다.서현주는 아직 어리고 전에 줄곧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다 보니 주서인을 맞설 힘이 없었다.그녀를 내쫓을 여력이 없자 서현주는 씩씩거리며 남편에게 소리쳤다.“형인 씨 뭐 하는 거예요? 형님이 나 괴롭히는 거 안 보여요? 당장 내쫓으란 말이에요. 똑똑히 들어요. 이 집에 형님이 있는 한 난 없어요!”“누나, 자기야, 제발 좀 그만 싸우면 안 돼? 지겹지도 않아? 종일 싸우는 게? 어우, 내가 다 지긋지긋하다.”주형인은 지금 이 상태에 지칠 대로 지쳤다. 집구석이 조용할 새가 없으니 말이다.집에만 돌아오면 엄마와 아내가 싸우거나 누나와 아내가 싸웠다.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찰싹!분노가 극에 달한 서현주는 주형인에게 싸대기를 날렸다.뺨을 맞고 얼얼해진 주형인은 얼굴을 감싸 안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내가 애초에 눈이 멀었지. 어떻게 당신한테 시집올 생각을 했을까! 당신 누나랑 엄마가 이렇게 날 괴롭히는데 나설 줄도 몰라?! 난 당신 위해서 예물도 많이 요구하지 않았고 부모님 몰래 혼인신고까지 했어. 그런 나한테 고작 이렇게밖에 못해?”서현주는 남편을 때리고도 되레 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집구석이 대체 왜 이 모양이지? 남편이란 자는 왜 또 이것밖에 안 되는 건데?!’애초에 시부모님과 형님이 그녀를 겨냥할 때 주형인은 그래도 선뜻 나서서 도와줬었다.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형인은 슬슬 부모님과 누나에게 마음이 기울었다.하긴, 그의 눈엔 부모, 형제만 가족일 뿐 아내인 서현주는 들어온 사람이라 주씨 가문과 어우러지지 못하니까!서현주는 문득 하예진이 부러웠다. 그토록 단호하게 이혼한 건 고생길에서 벗어난 셈이다.서현주는 자신이 시댁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녀는 절대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시댁 식구들도 전혀 손해 볼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중 끝판왕은 역시나 형님
주형인이 문을 사이에 두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누나 제발 입 닥치고 집에 가 좀! 앞으로 별일 없으면 여길 찾아오지도 마! 누나가 이 집구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하예진이 남편의 가정폭력에 반항할 땐 더 심했다. 아예 식칼을 들고 주형인 잡으러 골목을 몇 바퀴씩 쫓아다녔는데 누나는 정작 다 잊은 걸까?동생에게 비참하게 욕먹은 주서인도 울화가 치밀었다.“그래, 내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 난 저년이 제일 눈꼴사나워. 내가 친정에 오겠다는데 저년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야? 엄마, 아빠가 여기 있으니 나도 언제든 올 수 있어. 내가 쟤한테 빌붙어 살았니? 본때 있으면 쟤가 직접 돈 벌어서 집 사라고 해. 그럼 나도 저년 집에 한 발짝도 발 들이지 않을 테니까!”주서인은 서현주의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한 듯싶다!서현주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전에 하예진에게 외도 현장을 들켜서 한바탕 두들겨 맞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렇게 초라해진 적이 없다.그녀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고 서러움이 북받쳤다.주형인은 그녀가 구슬프게 우는 모습에 살짝 안쓰러우면서도 또 은근 짜증이 났다.마냥 살갑고 다정하며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릴 거라 믿었고, 거기에 젊고 예쁘기까지 하니 그녀와 결혼하면 엄청 행복할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이 집에 들여놓은 이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인제 보니 서현주는 썩 예쁘지도 않고 살갑지도 않으며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긴커녕 사사건건 따지고 들고 소심하기 짝이 없어 그의 가족들과 잘 지내는 법이라곤 모른다.외조카한테마저 불친절할 따름이다.더욱이 그녀는 밥할 줄도 모르고 집안일도 안 해서 부지런한 하예진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한참 후 주형인은 결국 허리 숙여 아내를 부축해서 침대 머리맡에 앉혔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여보, 울지 마. 우리 신혼집도 금방 장식 마치잖아. 장식 끝나면 결혼식 치르고 얼른 거기 들어가서 살자. 엄마, 아빠는 고향 내려가서 지내시라고 내가 말할게.”“
전남편은 이혼한 이후로 줄곧 불행하게 지냈지만 하예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니까.새벽 네 시 좌우에 일어나 아들을 깨워서 하루 토스트로 출발한다.그렇게 또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주우빈은 아직 어려서 가는 길에 또다시 잠들었다.가게에 도착한 후 하예진은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아들을 의자 위에 눕혀서 재웠다. 우빈이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 또 의자 몇 개를 더 놓았다.그녀가 고용한 두 종업원은 아침 여섯 시가 돼야 출근한다.보통 여섯 시부터 아홉 시 반 사이가 피크타임이다.하예정은 일곱 시 좌우에 우빈이 데리러 가게로 왔다.그 시각 주우빈은 잠에서 깼다.아이는 잠에서 깨도 울지 않고 얌전히 카운터에 앉아 블록을 계속 조립했다.“언니.”하예정이 들어오며 언니를 부르다가 가게에 꽉 찬 직장인들을 보고 서둘러 언니를 거들어줬다.“제부는 출근했어?”하예정은 머리를 끄덕인 후 손님의 야채 토스트 주문에 재빨리 가서 토스트를 만들었다.“언니, 우빈이 아침 먹었어?”하예진이 대답했다.“아직이야. 어묵 좀 끓여주려 했는데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네. 네가 좀 도와줄래?”어묵은 보통 손님들이 주문할 때 끓이지 미리 끓여놓지 않는다.하예정이 알겠다며 대답할 때 노동명이 가게로 들어왔다.“예진아, 예정 씨도 와 있네요.”노동명은 안에 들어와 먼저 인사하고는 주변을 쭉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앉을 자리도 없네.”“대표님, 포장해서 회사 가서 드시겠어요 아니면 좀 더 기다리실래요?”노동명이 대답했다.“급할 거 없어. 좀 기다리지 뭐.”그는 주우빈에게 다가갔다.“아저씨.”노동명을 보자 아이가 활짝 웃었다.그 모습에 노동명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우빈아.”아이가 신나게 반겨주니 노동명도 두 팔 벌려 안아주려 했는데 이때 우빈이가 말했다.“아저씨, 블록 쌓는 거 도와주세요. 나도 모르겠고 아빠는 더 몰라요.”노동명은 아이를 안으려던 손을 거둬들이고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번쩍
주우빈은 서현주가 생각났다. 엄마의 설명을 곰곰이 되새겨보았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아저씨는 결혼했어요?”“아니, 아저씨는 아직 결혼할 사람을 못 만나서 안 했어.”“왜 못 만났어요?”“그거야 아저씨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으니까.”주우빈이 두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듯 물었다.“아저씨 우리 엄마 안 좋아해요? 우리 이모랑 사촌 이모도 다 좋은 사람인데 아저씨는 전부 싫은 거예요?”“...”노동명은 실소를 터트렸다.“우빈의 이모는 좋은 사람이지만 이모부가 있잖니. 아저씨가 어떻게 우빈의 이모를 좋아할 수 있겠어. 사촌 이모도 좋은 분이지만 아저씨랑은 이성적인 감정이 없어. 우빈의 사촌 이모가 아저씨 스타일이 아니거든. 우빈의 엄마라면... 아저씨는 그저 친구로 생각해. 매일 이리로 오는 건 우빈이가 좋아서야.”주우빈은 알듯 말듯 아리송했다. 노동명이 그를 좋아한다고 하자 아이는 본능적으로 물었다.“그럼 아저씨 나랑 결혼할래요?”“우빈아, 우리 둘 다 남자라서 결혼 못 해. 아저씨가 비록 여자친구는 없지만 취향은 명확하단다. 오직 여자만 좋아해.”“방금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요.”“우빈이를 좋아하는 것과 여자를 좋아하는 건 의미가 다르지.”“다 좋아하는 거잖아요. 왜 나랑 결혼 못 해요?”“...”순진무구한 아이의 쉴 새 없는 물음에 노동명은 살짝 말문이 막히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우빈이는 아직 어려서 나중에 크면 다시 이 문제 토론할까? 자, 아저씨가 블록 쌓기 가르쳐줄게.”노동명이 화제를 돌렸다.앞으로 우빈이한테 무언가 캐내려 해도 신중하게 물어야 한다. 캐묻다가 되레 본인만 당할 테니까.“우빈이 아침 먹자.”하예정이 어묵과 토스트를 들고 와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이모가 먹여줄까?”“예정 씨는 가서 예진이 도와줘요. 내가 우빈이 먹일게요.”“고마워요, 동명 씨.”“괜찮아요. 우빈이만 먹어준다면 저는 더 바랄 것도 없어요.”다만 우빈이는 결국 노동명이 먹여
“하예진 쪽은 신경 쓸 거 없다. 찾아가지도 마. 너만 못나 보여. 아줌마가 알아서 할게. 난 우리 동명이 이혼녀 만나게 할 수 없어. 내가 이혼녀를 며느리로 들일 순 없잖니.”윤미라는 손은경이 하예진을 찾아가 소란을 피울까 봐 두려웠다. 괜히 노동명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을 테니까.“넌 앞으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동명이만 따라다녀. 예진이는 이 아줌마가 알아서 해결할게. 난 동명의 엄마야. 아무리, 동명이가 엄마인 나랑 얼굴 붉힐까.”손은경이 운전하며 말했다.“아줌마 지금 바로 하예진 씨 찾아가게요? 제가 볼 때 동명 오빠는 단지 하예진 씨 아들과만 가깝게 지낼 뿐 하예진 씨랑은 딱히 뭐가 없던데요. 우리가 괜한 오해한 거 아닐까요? 오빠는 단순히 하예진 씨 아들을 좋아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나도 그 아이가 똘망똘망하고 귀엽던데요. 예진 씨가 오빠네 건물에 세 들어서 가게 꾸리는 것도 별일 아니에요. 임대료 제때 지급하면 되죠. 누구한테 임대하든 결국 다 같은 의미잖아요. 게다가 하예진 씨는 전태윤 씨 처형이고 전태윤 씨랑 동명 오빠가 절친 사이라 태윤 씨 면을 봐서 도와준 걸 수도 있어요.”손은경은 속으로 하예진을 견제하긴 하지만 윤미라처럼 이렇게까지 충동적이진 않았다. 윤미라는 당장이라도 하예진을 찾아가 노동명한테서 멀리 떨어지라고 윽박지를 것만 같았다.“은경이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하예진이 우리 동명이랑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일단 예진이 찔러봐야 해. 괜한 생각 못 하게 말이야. 넌 신경 쓸 거 없다. 아줌마가 알아서 해.”윤미라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손은경을 찍었다.“아줌마, 나 왜 찍어요?”윤미라가 웃으며 말했다.“다 쓸데가 있어서 그러지. 사진관 가서 한 장 뽑아야겠어. 걱정 마. 아줌마가 널 해칠 리 있겠니. 이따가 나 저기 하루 토스트 앞에 세워주고 넌 바로 동명이 만나러 노씨 그룹으로 가.”손은경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윤미라의 분부를 따랐다.윤미라는 아들이 하루 토스트에서
“엄마, 저는 밖에서 낳은 딸이 없어요. 만약 밖에서 낳은 딸이 있다면 그 딸을 이씨 가문에서 인정하나요?”“네가 낳은 친자식이라면 당연히 인정하지. 네가 임신하고 아기를 낳을 때 가족 모두가 동행한다면, 그 아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사람들도 인정할 거야.”이윤미가 대답했다.“그러면 제가 왜 시집을 가야죠? 시집가지 않으면 그 쓰레기들이 재산을 가져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이은화는 말문이 막혔다.이은화는 정신이 나갔는지 갑자기 딸의 이상한 질문에 대답까지 해주었다.정군호의 배신 때문인지, 기분이 나쁜 탓인지 모른다.이윤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완벽한 대책을 세워도 빈틈이 생길 것 같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딸이 아빠를 두지 않으면 좋잖아요. 제가 결혼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부부로 되지 못하니 당연히 부부의 공동 재산이 될 리가 없을 테고 그 남자도 재산을 분할 받고 싶어도 못 받을 거고요.”이은화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이윤미를 설득했다.“윤미야, 내가 아무 말도 안 한 거로 생각해. 엄마는 네가 외롭지 않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제가 딸을 낳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 텐데 어떻게 외롭다니요? 가주 자리에 앉으면 스트레스가 심하고 일이 바빠서 매일 발이 땅에 닿지 못할 정도로 바쁠 텐데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요. 그런데 또 딸을 낳아 가주 자리를 물려주려면 예진 리조트의 넷째 사모님을 따라 배우면 되잖아요.”“이윤정은 어떻게 됐어?”이윤미의 생각에 놀란 이은화는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사상은 여전히 비교적 보수적이었다.“우리 별장 앞에서 밤새 울부짖었어요. 오늘 아침에 윤정이가 형수님 몇 분한테 괴롭힘을 당했는데 또 괴롭힐까 봐 도망쳤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우리 오빠들이 윤정에게 준 돈과 카드도 전부 형수님들이 빼앗아 갔어요. 엄마가 옷 외에 다른 물건은 전부 가져갈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형수님들도 엄마의 말씀을
이윤미는 더는 정군호를 쳐다보지 않고 이은화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이윤미는 보온 도시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도시락 뚜껑을 열어주면서 말했다.“만두 두 개도 포장해 가져왔어요.”이은화는 앉아서 이윤미가 가져온 흰죽과 반찬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너니까 나에게 진짜로 흰죽과 반찬을 가져오는구나.”정일범 형제와 이윤정이라면 흰죽과 반찬들이 이은화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은화의 요구대로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엄마,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이윤미는 양부모 집에서 자라면서 학대받았을 때 흰죽 한 그릇도 먹지 못했다.어렸을 때, 흰 죽 한 그릇도 그녀에게 사치였다.삶의 고달픔을 일찍 알아버린 이윤미는 커서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도 함부로 쓰지 않고 여전히 절약하며 살았다.이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으로 지갑이 두꺼워졌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았다.이은화는 묵묵히 죽을 먹으며 수십 년 전 그날 새벽의 이은숙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이은화는 자신의 맏언니와 여동생을 죽이고 가주 자리에 앉았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엄마, 아버지께서...”이윤미가 조용히 물었다.그녀는 정군호가 얻어맞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고 아마 이은화에게 칼에 찔렸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어젯밤 정군호가 병원으로 이송된 후 이은화는 자식들이 자신에게 정군호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윤미 또한 정말로 묻지 않았다.어쨌든 이은화는 정군호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이은화의 수단으로 분석해 보면 그녀는 정군호를 단번에 죽이지 않고 천천히 괴롭힐 것이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죽지는 않아. 단지 내시가 되었을 뿐이야. 감염되지 않고 상처가 다 나으면 퇴원할 수 있대. 네 아버지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은 없을 거야. 앞으로 미녀를 보게 되면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을걸.”이윤미는 잠시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몰랐다.“윤미야.”이윤미는 이은화를 바라보았다.이은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엄마
정군호는 잠깐 고통과 절망한 표정으로 이은화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그는 정말 아팠다.정군호가 이은화를 보지 않아도 이은화는 화를 내지 않았다.그리고 일어나 다시 창가로 걸어가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이은화의 생각은 이미 멀리 떠났다.만약 그 사람이 이은화와 함께 있었더라면, 그녀를 돕고 그녀와 결혼했다면, 그녀의 인생은 분명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영원히 이은숙에게 충성했다.이은숙이 시집가서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이은화와 함께하지 않고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이미 몇십 년이 흘러 이은화가 70세의 노인으로 되었는데, 그 사람은 아마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은화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다.따르릉...이은화의 핸드폰이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이윤미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이은화는 잠시 휴대전화를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엄마.”이윤미는 전화기 너머로 말을 건넸다.“엄마, 괜찮으세요?”그녀는 아버지의 부상이 어떤지 직접 묻지 않고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었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미 최악인데 뭐가 괜찮겠어? 너희도 어른이 되고 나도 할머니로 되었는데 네 아빠가 내연녀가 있다고 해도 난 이제 여의치 않아.”앞으로 정군호는 다시는 여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엄마, 오늘 밥 안 드셨을 텐데 드실 것 좀 갖다 드릴까요?”“필요 없어.”이은화는 거절하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그래, 너무 많이 가져오지는 말고. 흰죽에 반찬 조금만 갖다 줘.”이윤미가 대답했다.“엄마가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드실 텐데 그렇게 간단하게 드시면 쉽게 배고파요. 쉽게 체력도 떨어져서 안 돼요.”이은화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을 건넸다.“네 큰이모가 세상을 떠나신 날 아침, 큰이모가 이렇게 드셨거든. 산해진미를 많이 먹었다면서 가끔 흰죽에 반찬을 곁들이면 특별한 맛이 난다고 하셨어.”“알았어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이윤미는 더는 아무
“괜찮아요. 누나는 일 보러 나갔어요. 우리 예진 누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면 안 돼요. 누나는 이미 온갖 피바람을 겪은 사람이거든요. 15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사람 잡아먹을 정도의 친척들을 상대하면서 열 살짜리 여동생을 잘 가르치면서 살아오셨어요. 삶의 고초를 겪은 사람의 의지는 엄청나게 강한 법이죠.”전호영은 이경혜가 왜 하예진을 선택하고 강성으로 보내 이윤미와 경쟁하게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놀라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네요.”전호영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제 퇴근해도 될까요? 참, 현이 씨에게 선물을 준비했어요.”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케이스를 받아 열어 보지도 않고 일어나서 그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을 열어 서랍 안에 넣었다.“열어 보지 않을래요?”“볼 필요 없어요. 호영 씨가 준 물건은 모두 최고이기 때문에 제가 한가할 때 천천히 열어보면서 호영 씨의 사랑을 느껴볼게요.”전호영은 고현을 보면서 오늘의 그녀가 좀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고현은 전호영의 감정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전호영의 이 고된 사랑의 길에서 드디어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전호영은 너무 뿌듯했다.병원.어느 고급 병실에서 이은화가 창가에 서서 창밖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정군호였다. 정군호는 얼굴이 창백해 보였고 표정도 고통스러웠다.그는 눈을 감고 있다가 가끔 눈을 뜨고 그러다가 창가에 서 있는 이은화를 보더니 또 재빨리 눈을 감았다.아무도 정군호를 방문하러 오지 않았다.그가 칼을 휘둘러 그런 일을 저지른 소식을 이은화가 억눌러 소문이 퍼지지 않게 했다.그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이은화는 정군호가 아들딸 앞에서 그의 유일한 존엄을 잃지는 않도록 했다.시간이 한참 흘러 이은화가 돌아앉아 자는 척하는 정군호를 보며 말을 건넸다.“당신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알아.”그녀는 정군호가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진통제
고진호도 고현이 여자였기 때문에 며느리가 아닌 사위가 필요했고 따라서 재벌가 딸들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막 빠져나오자마자 고현이 고객을 배웅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뒤에는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몇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고객의 비서일 것이다.전호영과 고객들은 서로를 잘 몰랐다.고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호영은 말없이 한쪽으로 비켜섰다.고현은 직접 고객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남 비서가 전호영을 쳐다보자 전호영은 눈빛으로 고현을 따라가라고 신호를 보냈다.전호영은 이미 고현의 사무실에 대해 매우 익숙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비서가 그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었다.고현의 사무실과 휴게실에 관해 전호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고현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전호영은 스스로 고현의 사무실로 갔고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사무실에 들어선 전호영은 먼저 커피 한 잔을 타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고현이 돌아왔다.“어젯밤 일은 어떻게 됐어요?”고현은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예진 누나를 대신해서 죽은 경호원 가족들이 와서 뒷일을 처리했어요. 이씨 가문도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고 보험회사에서도 가족들에게 보상해 줄 거예요. 이씨 가문의 모든 경호원은 거액 보험에 가입했거든요. 저도 이따가 예진 누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오후에 그 경호원의 가족들을 보러 가자고 해야겠어요. 그 경호원은 비록 이씨 가문의 희생 품이지만 그래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걸요.”현재, 그 차 사고는 잠시 의외 사고로 단정 지어졌다.이씨 가문의 음모라는 증거가 없어서 이씨 가문은 충분한 연기를 해야 만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죽은 그 이씨 가문의 경호원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이은화의 마음이 그토록 모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에 처음 초대한 당일에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하예진이 경계
다행히도 이 모든 악몽은 이미 끝났다.하예진은 이미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일으켰다.“호영 씨, 이만 가볼게요. 저도 나가서 일해야 하거든요. 회사를 설립하는 일을 아직 다 마치지 못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회사가 강성에 있어야 다른 회사와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동명 형이 오시는 길일 텐데 더 기다리지 않으려고요?”전호영은 장난치고 싶었다.하예진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야 도착할 거에요. 동명 씨가 먼저 오면 저 대신 먼저 대접해 주세요. 호영 씨와 동명 씨가 더 친하잖아요.”“저도 좀 이따가 고씨 그룹에 갈 거예요.”“알겠어요. 그럼, 제가 빨리 돌아오죠. 미래의 아내가 더 중요한 법이죠. 호영 씨 둘째 형도 혼인신고 했다면서요. 호영 씨가 설을 쇠러 갈 때면 운초 씨는 아마 임신했을걸요. 힘내셔야겠는데요.”전호영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누나, 저도 필사적으로 힘을 내는 중이거든요. 우리 현이 씨는 둘째 형수님보다 따르기가 훨씬 어렵거든요.”여운초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고 하얀 꽃처럼 부드럽고 연약해 보였다.여운초가 여씨 그룹을 단단히 장악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전호영도 여운초가 계략과 수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끈질긴 열정을 이기는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요.”하예진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전호영의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의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하예진은 마침 이경혜의 전화를 받았다.이경혜와 하예진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하예진이 떠난 지 30분 만에 전호영은 일을 끝내고 호텔을 떠나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전호영은 이씨 가문의 뒷일을 고현에게도 알려주려고 했다.이번에 전호영은 꽃도, 보석도 사지 않았다. 고현은 비록 여자이지만,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성격도 남성적이라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에게 손목시계를 하나 사줬다.고씨 그룹의 사람들은
“이 대표님께서도 크게 노하셨을 거예요. 정군호 씨는 잘 모르지만, 이윤정 씨는 그날 밤 쫓겨났어요. 한밤중에 정군호 씨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실려 갔다고 들었는데, 이 대표님은 아무도 병원에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정군호 씨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대요.”전호영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하예진은 아직 다 마시지 못한 물잔을 들고 두 모금 더 마시더니 다시 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전호영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어나갈 때까지 기다렸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사람을 보내 병원에 가서 알아보게 했어요.”“이모할아버지의 부상 상황은 어떻게 되셨대요? 이모할머니가 벌인 일이래요?”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이 대표님께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정군호 씨가 스스로 그 부위를 자른 거래요.”전호영은 정군호가 벌인 일이 이은화의 핍박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는 절대로 스스로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이은화가 아마도 정군호에게 두 가지 길을 준 것 같았다.정군호 배후의 정씨 집안은 여전히 이씨 가문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했기에 정군호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이혼하지 않으면 정군호는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없기에 칼을 휘둘러 스스로 그런 짓을 해야만 이은화를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하예진이가 깜빡이며 의아했다. 그녀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전호영도 정군호의 부상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지 않았고 그냥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정군호 씨는 죽지 않았어요. 정군호 씨의 부상은 알아보기 어려울 거예요. 이 대표님께서 엄밀하게 숨기고 있거든요. 남자들에게는 특히 데릴사위인 정군호 씨에게는 존엄 없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요.”하예진은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데릴사위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재벌 가문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 아닌가요? 성별이 바뀌었을 뿐이죠.”전호영은 순간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잠시 후, 전호영이 말했다.“누나, 우리 동명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과거의 일은 지나
하예진이 위험에 처해 사고가 일어나야만 경호원들이 주동적으로 노동명에게 보고했다.“괜찮으면 됐어. 그럼 됐어. 너무 놀랐잖아. 예진아, 내가 이따가 강성으로 갈 건데 아마 오후 2시 전에 도착할 것 같아.”하예진이 대답했다.“전 괜찮아요.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요.”노동명이 외출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에 하예진은 늘 그를 걱정했다.“내 두 눈으로 네가 멀쩡한 모습을 보고야 말겠어. 네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해야 내가 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저는 정말 괜찮아요. 경호원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우린 다 괜찮아요. 동명 씨가 외출하기 불편하실 텐데 너무 멀리 오면 안 돼요.”노동명은 기어코 가겠다고 고집했다.“네가 보고 싶어서 그래. 너무너무 보고 싶어. 네가 괜찮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하예진은 반박하지 못했다.“그럼 조심히 오세요. 만약 몸이 불편하면 고집하지 마시고. 동명 씨, 우리는 각자가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해요. 아시겠죠?”노동명은 부드러운 어조로 나지막이 대답했다.“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몸이 불편하면 외출하지도 않아.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오후에 봐.”“네, 오후에 봐요.”하예진은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노동명이 하예진에게 주고 있는 것은 전남편이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어쩌면, 노동명이 그녀에 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주형인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적 있었겠지만, 나중에 복잡한 일들이 많이 끼는 바람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하예진이 지금 묵고 있는 호텔은 강성에 있는 전씨 가문의 사업 중 하나이며 전호영이 맡은 부분이다.하예진은 쉽게 전호영을 만날 수 있었다.그녀는 잠을 더 자려고 해도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약을 몇 알 먹은 하예진은 이내 두통이 사라지게 되었고 휴대전화를 들고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더니 전호영의 사무
게다가 노동명은 하예진 모자한테 진심으로 잘해줬고 그는 우빈이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그녀가 노동명을 거부하고 재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단지 재혼하면 다시 불 구덩이에 빠질까 봐 걱정됐고 또한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노동명은 그녀를 도와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다. 노씨 가문은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녀가 노동명과 결혼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우빈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다. 노동명은 친아빠인 주형인보다 우빈이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만약 그녀가 다시 결혼한다면 노동명이 가장 적합한 후보일 것이다.“동명 오빠도 언니한테 피해 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야. 언니한테 피해보다 행복을 주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언니가 좀 더 기다려줘. 동명 오빠가 곧 일어설 거라고 난 믿어.”“알아. 그래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 사람을 기다릴 거야. 기다리는 동안 내 사업도 열심히 발전시키는 중이야.”지금의 그녀는 관성의 3대 재벌 가문의 투자, 후원 및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이익보다도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언니 화이팅! 우리 언니가 최고야. 난 항상 언니가 자랑스러워.”하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가 많이 힘낼게.”“언니, 수다 그만 떨고 얼른 잠 좀 자.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꼭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걱정만 할 테지만 알려 주면 적어도 우리가 해결 방법을 같이 생각하고 모두가 같이 부담하면 훨씬 더 편해지잖아.”“그래 알았어.”자매가 통화를 마친 후 하예진은 계속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그녀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뭐 좀 먹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이 시간에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그녀는 밖으로 나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침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하예진은 여전히 머리가 아파서 캐리어에서 진통제를 꺼냈다.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