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방금 소정남에게 서현주를 조사해달라고 부탁했으니, 미움을 사는 일은 할 생각이 없었다.“미리 고맙다. 넌 참 배려심 깊은 좋은 상사야.”소정남이 아첨하기 시작하자 전태윤이 피식 웃었다.“됐어, 그만해. 우리 둘은 서로 너무 잘 알잖아. 어서 데이트하러나 가. 매일 알콩달콩하다 당도 초과로 당뇨병 걸리지 않게 조심해.”“네가 알콩달콩할 때는 당뇨병에 걸리는 걸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난 이제야 시작인데 뭐가 걱정이야. 이만 데이트하러 갈게. 우리 효진이는 샤부샤부를 좋아해서 데리고 샤부샤부를 먹으러 가야겠어.”소정남은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그와 심효진은 자주 나가서 샤부샤부를 먹었다.“여보, 두리안 먹을래요?”하예정은 두리안을 쪼개 안의 과육을 꺼내어 접시에 올려놓고 전태윤에게 다가가 물었다.두리안 냄새를 맡기도 싫어하는 전태윤은 일어서서 슬금슬금 도망가며 말했다.“여보, 나 두리안 냄새 싫어해. 저기 앉아서 당신 혼자 천천히 먹어.”하예정은 걸음을 멈추었다.“싫어요? 그럼 나 혼자 먹을게요. 사실 이 냄새에 적응이 되면 맛있어요. 나도 처음에는 이런 맛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좋아하게 됐어요.”그녀는 전태윤과 결혼한 후 두리안을 사 먹지 않았기 때문에 전태윤이 두리안을 좋아하지 않는걸 몰랐다.“냄새나.”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한다.하예정도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멀찍이 앉아 그에게 물었다.“방금 언니가 전화 와서 뭐라고 했어요?”그녀는 그가 처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그가 엄숙하게 존칭을 써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하예진 외에 성소현밖에 없었다.“처형은 서현주가 우빈이를 납치한 일당과 아는 사이일 거로 의심하고 있어. 그 사건, 서현주가 계획했거나 다른 사람과 손을 잡아서 벌인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어.”하예정은 멀리 앉아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서현주요?”“응, 이미 소정남에게 부탁해 조사하라고 했어. 이제 소식이 있으면 말해줄게. 예정아, 내
“비록 새엄마도 엄마라지만 우빈은 엄마라고 부르지 않을 텐데 그런 말을 하면 다들 기분만 나빠지잖아.”서현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하예진의 셋집이 있는 빌딩에서 나온 후 곧장 차에 올랐다.주형인도 따라 차에 오르며 물었다.“여보, 쇼핑하러 갈까?”“그럼 운전 안 하고 뭐 해요?”서현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한 건 다 오빠 때문이잖아요. 오빠랑 오빠 가족들이 모두 우빈이를 되찾고 싶어 하는 거 알아요. 만약 우빈이의 양육권을 빼앗아 오면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건데, 난 그저 일찍 엄마 역할에 적응하려 했을 뿐이에요.”차를 몰면서 주형인은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우빈이를 돌아오게 하고 싶어 하시는 건 맞아. 처음부터 우빈이를 집에못 남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셨어. 어르신들은 원래 그래, 하나뿐인 손자인데 마음이 안 아플 수 있겠어? 하지만 난 우빈이를 돌아오게 할 생각이 없어.”그는 서현주를 슬쩍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당시 나한테 우빈이의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던 사람은 너잖아. 지금 난 우빈이가 예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 예진의 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레벨이 아니야. 우빈이는 예진이를 따라 전 대표의 아내인 하예정을 만날 기회가 많아. 하예정도 또 우빈이를 친자식처럼 대하잖아. 재벌 집에 시집간 이모가 있는 한 앞날이 창창해. 난 비록 우빈이와 별로 지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내 아들인데, 앞날에 대해 매우 신경 쓰인단 말이야.”우빈이를 데려오면 그의 부모님 성격으로는 절대 예진 자매와 친하지 못하게 키울 것이틀림없다. 그러면 하예정이 조카를 도와주려고 해도 그럴 기회가 적을 거고, 우빈이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게 뻔했다.주형인은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현주야, 너 요즘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걸 거야.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가서 신나게 놀자. 어쩌면 임신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현주는 마음이 답답했다.그녀는 임신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주서인은 자신이 있는 한 서현주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서현주는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물었다.“뭔 일인데요?”주서인은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내려놓고는 일어섰다. 그녀는 다가오면서 서현주가 들고 있는 쇼핑백들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뭘 샀는데 이렇게 많이 들고 온 거야? 돈 쓸 줄밖에 모르고. 올케랑 형인이는 지금 일도 안 하고 수입도 없는데, 돈 좀 아껴야 한다는 걸 몰라? 지금 올케가 먹고 쓰고 있는 돈들은 다 형인의 돈이야. 자기가 오래 일하면서 번 돈은 아까워하면서 왜 형인의 돈은 팍팍 쓰는 거야? 형인이의 돈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줄 알아?”주서인은 서현주를 돈 아낄 줄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들고 있던 쇼핑백들을 가로챘다.“누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주형인이 주서인을 향해 묻자,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이 누나가 한번 보는 것도 안 돼? 저리 비켜, 집에 들어와서 날 보고 인사도 하지 않고 말이야.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얘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잖아. 형인아, 이런 여자는 아끼면 안 돼. 아낄수록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앞으로 네가 고생하게 될 거야.”동생을 욕하며 쇼핑백들을 열어본 주서인은 서현주가 새로 산 옷 몇 벌을 꺼내 브랜드부터 살펴보았는데,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그녀는 그 옷들을 손에 들고 서현주를 비난했다.“올케는 자기가 아직도 스무 살 소녀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신 좀 차려, 이미 시집 간 유부녀란 말이야! 어머머, 이렇게 밝은색의 옷을 사다니,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형인이가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없으니 다시 다른 남자라도 낚으려고 그러는 거야?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어. 하긴, 올케는 돈을 쓰기만 하면 신부가 될 수 있는 그런 여자니까.”서현주는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녀의 눈에 주서인이야말로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천한 사람이었다.서현주는 새 옷을 빼앗아 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주서인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이 사이즈의 옷은 나도 입을 수
“네가 꺼지라고 하면 내가 꺼져야 해? 여기 네 집이야? 집세 냈어? 너 집세 내면 바로 나갈게. 더는 안 찾아와.”주서인도 만만치 않았다.서현주는 아직 어리고 전에 줄곧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다 보니 주서인을 맞설 힘이 없었다.그녀를 내쫓을 여력이 없자 서현주는 씩씩거리며 남편에게 소리쳤다.“형인 씨 뭐 하는 거예요? 형님이 나 괴롭히는 거 안 보여요? 당장 내쫓으란 말이에요. 똑똑히 들어요. 이 집에 형님이 있는 한 난 없어요!”“누나, 자기야, 제발 좀 그만 싸우면 안 돼? 지겹지도 않아? 종일 싸우는 게? 어우, 내가 다 지긋지긋하다.”주형인은 지금 이 상태에 지칠 대로 지쳤다. 집구석이 조용할 새가 없으니 말이다.집에만 돌아오면 엄마와 아내가 싸우거나 누나와 아내가 싸웠다.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찰싹!분노가 극에 달한 서현주는 주형인에게 싸대기를 날렸다.뺨을 맞고 얼얼해진 주형인은 얼굴을 감싸 안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내가 애초에 눈이 멀었지. 어떻게 당신한테 시집올 생각을 했을까! 당신 누나랑 엄마가 이렇게 날 괴롭히는데 나설 줄도 몰라?! 난 당신 위해서 예물도 많이 요구하지 않았고 부모님 몰래 혼인신고까지 했어. 그런 나한테 고작 이렇게밖에 못해?”서현주는 남편을 때리고도 되레 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집구석이 대체 왜 이 모양이지? 남편이란 자는 왜 또 이것밖에 안 되는 건데?!’애초에 시부모님과 형님이 그녀를 겨냥할 때 주형인은 그래도 선뜻 나서서 도와줬었다.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형인은 슬슬 부모님과 누나에게 마음이 기울었다.하긴, 그의 눈엔 부모, 형제만 가족일 뿐 아내인 서현주는 들어온 사람이라 주씨 가문과 어우러지지 못하니까!서현주는 문득 하예진이 부러웠다. 그토록 단호하게 이혼한 건 고생길에서 벗어난 셈이다.서현주는 자신이 시댁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녀는 절대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시댁 식구들도 전혀 손해 볼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중 끝판왕은 역시나 형님
주형인이 문을 사이에 두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누나 제발 입 닥치고 집에 가 좀! 앞으로 별일 없으면 여길 찾아오지도 마! 누나가 이 집구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하예진이 남편의 가정폭력에 반항할 땐 더 심했다. 아예 식칼을 들고 주형인 잡으러 골목을 몇 바퀴씩 쫓아다녔는데 누나는 정작 다 잊은 걸까?동생에게 비참하게 욕먹은 주서인도 울화가 치밀었다.“그래, 내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 난 저년이 제일 눈꼴사나워. 내가 친정에 오겠다는데 저년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야? 엄마, 아빠가 여기 있으니 나도 언제든 올 수 있어. 내가 쟤한테 빌붙어 살았니? 본때 있으면 쟤가 직접 돈 벌어서 집 사라고 해. 그럼 나도 저년 집에 한 발짝도 발 들이지 않을 테니까!”주서인은 서현주의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한 듯싶다!서현주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전에 하예진에게 외도 현장을 들켜서 한바탕 두들겨 맞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렇게 초라해진 적이 없다.그녀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고 서러움이 북받쳤다.주형인은 그녀가 구슬프게 우는 모습에 살짝 안쓰러우면서도 또 은근 짜증이 났다.마냥 살갑고 다정하며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릴 거라 믿었고, 거기에 젊고 예쁘기까지 하니 그녀와 결혼하면 엄청 행복할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이 집에 들여놓은 이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인제 보니 서현주는 썩 예쁘지도 않고 살갑지도 않으며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긴커녕 사사건건 따지고 들고 소심하기 짝이 없어 그의 가족들과 잘 지내는 법이라곤 모른다.외조카한테마저 불친절할 따름이다.더욱이 그녀는 밥할 줄도 모르고 집안일도 안 해서 부지런한 하예진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한참 후 주형인은 결국 허리 숙여 아내를 부축해서 침대 머리맡에 앉혔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여보, 울지 마. 우리 신혼집도 금방 장식 마치잖아. 장식 끝나면 결혼식 치르고 얼른 거기 들어가서 살자. 엄마, 아빠는 고향 내려가서 지내시라고 내가 말할게.”“
전남편은 이혼한 이후로 줄곧 불행하게 지냈지만 하예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니까.새벽 네 시 좌우에 일어나 아들을 깨워서 하루 토스트로 출발한다.그렇게 또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주우빈은 아직 어려서 가는 길에 또다시 잠들었다.가게에 도착한 후 하예진은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아들을 의자 위에 눕혀서 재웠다. 우빈이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 또 의자 몇 개를 더 놓았다.그녀가 고용한 두 종업원은 아침 여섯 시가 돼야 출근한다.보통 여섯 시부터 아홉 시 반 사이가 피크타임이다.하예정은 일곱 시 좌우에 우빈이 데리러 가게로 왔다.그 시각 주우빈은 잠에서 깼다.아이는 잠에서 깨도 울지 않고 얌전히 카운터에 앉아 블록을 계속 조립했다.“언니.”하예정이 들어오며 언니를 부르다가 가게에 꽉 찬 직장인들을 보고 서둘러 언니를 거들어줬다.“제부는 출근했어?”하예정은 머리를 끄덕인 후 손님의 야채 토스트 주문에 재빨리 가서 토스트를 만들었다.“언니, 우빈이 아침 먹었어?”하예진이 대답했다.“아직이야. 어묵 좀 끓여주려 했는데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네. 네가 좀 도와줄래?”어묵은 보통 손님들이 주문할 때 끓이지 미리 끓여놓지 않는다.하예정이 알겠다며 대답할 때 노동명이 가게로 들어왔다.“예진아, 예정 씨도 와 있네요.”노동명은 안에 들어와 먼저 인사하고는 주변을 쭉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앉을 자리도 없네.”“대표님, 포장해서 회사 가서 드시겠어요 아니면 좀 더 기다리실래요?”노동명이 대답했다.“급할 거 없어. 좀 기다리지 뭐.”그는 주우빈에게 다가갔다.“아저씨.”노동명을 보자 아이가 활짝 웃었다.그 모습에 노동명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우빈아.”아이가 신나게 반겨주니 노동명도 두 팔 벌려 안아주려 했는데 이때 우빈이가 말했다.“아저씨, 블록 쌓는 거 도와주세요. 나도 모르겠고 아빠는 더 몰라요.”노동명은 아이를 안으려던 손을 거둬들이고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번쩍
주우빈은 서현주가 생각났다. 엄마의 설명을 곰곰이 되새겨보았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아저씨는 결혼했어요?”“아니, 아저씨는 아직 결혼할 사람을 못 만나서 안 했어.”“왜 못 만났어요?”“그거야 아저씨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으니까.”주우빈이 두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듯 물었다.“아저씨 우리 엄마 안 좋아해요? 우리 이모랑 사촌 이모도 다 좋은 사람인데 아저씨는 전부 싫은 거예요?”“...”노동명은 실소를 터트렸다.“우빈의 이모는 좋은 사람이지만 이모부가 있잖니. 아저씨가 어떻게 우빈의 이모를 좋아할 수 있겠어. 사촌 이모도 좋은 분이지만 아저씨랑은 이성적인 감정이 없어. 우빈의 사촌 이모가 아저씨 스타일이 아니거든. 우빈의 엄마라면... 아저씨는 그저 친구로 생각해. 매일 이리로 오는 건 우빈이가 좋아서야.”주우빈은 알듯 말듯 아리송했다. 노동명이 그를 좋아한다고 하자 아이는 본능적으로 물었다.“그럼 아저씨 나랑 결혼할래요?”“우빈아, 우리 둘 다 남자라서 결혼 못 해. 아저씨가 비록 여자친구는 없지만 취향은 명확하단다. 오직 여자만 좋아해.”“방금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요.”“우빈이를 좋아하는 것과 여자를 좋아하는 건 의미가 다르지.”“다 좋아하는 거잖아요. 왜 나랑 결혼 못 해요?”“...”순진무구한 아이의 쉴 새 없는 물음에 노동명은 살짝 말문이 막히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우빈이는 아직 어려서 나중에 크면 다시 이 문제 토론할까? 자, 아저씨가 블록 쌓기 가르쳐줄게.”노동명이 화제를 돌렸다.앞으로 우빈이한테 무언가 캐내려 해도 신중하게 물어야 한다. 캐묻다가 되레 본인만 당할 테니까.“우빈이 아침 먹자.”하예정이 어묵과 토스트를 들고 와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이모가 먹여줄까?”“예정 씨는 가서 예진이 도와줘요. 내가 우빈이 먹일게요.”“고마워요, 동명 씨.”“괜찮아요. 우빈이만 먹어준다면 저는 더 바랄 것도 없어요.”다만 우빈이는 결국 노동명이 먹여
“하예진 쪽은 신경 쓸 거 없다. 찾아가지도 마. 너만 못나 보여. 아줌마가 알아서 할게. 난 우리 동명이 이혼녀 만나게 할 수 없어. 내가 이혼녀를 며느리로 들일 순 없잖니.”윤미라는 손은경이 하예진을 찾아가 소란을 피울까 봐 두려웠다. 괜히 노동명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을 테니까.“넌 앞으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동명이만 따라다녀. 예진이는 이 아줌마가 알아서 해결할게. 난 동명의 엄마야. 아무리, 동명이가 엄마인 나랑 얼굴 붉힐까.”손은경이 운전하며 말했다.“아줌마 지금 바로 하예진 씨 찾아가게요? 제가 볼 때 동명 오빠는 단지 하예진 씨 아들과만 가깝게 지낼 뿐 하예진 씨랑은 딱히 뭐가 없던데요. 우리가 괜한 오해한 거 아닐까요? 오빠는 단순히 하예진 씨 아들을 좋아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나도 그 아이가 똘망똘망하고 귀엽던데요. 예진 씨가 오빠네 건물에 세 들어서 가게 꾸리는 것도 별일 아니에요. 임대료 제때 지급하면 되죠. 누구한테 임대하든 결국 다 같은 의미잖아요. 게다가 하예진 씨는 전태윤 씨 처형이고 전태윤 씨랑 동명 오빠가 절친 사이라 태윤 씨 면을 봐서 도와준 걸 수도 있어요.”손은경은 속으로 하예진을 견제하긴 하지만 윤미라처럼 이렇게까지 충동적이진 않았다. 윤미라는 당장이라도 하예진을 찾아가 노동명한테서 멀리 떨어지라고 윽박지를 것만 같았다.“은경이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하예진이 우리 동명이랑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일단 예진이 찔러봐야 해. 괜한 생각 못 하게 말이야. 넌 신경 쓸 거 없다. 아줌마가 알아서 해.”윤미라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손은경을 찍었다.“아줌마, 나 왜 찍어요?”윤미라가 웃으며 말했다.“다 쓸데가 있어서 그러지. 사진관 가서 한 장 뽑아야겠어. 걱정 마. 아줌마가 널 해칠 리 있겠니. 이따가 나 저기 하루 토스트 앞에 세워주고 넌 바로 동명이 만나러 노씨 그룹으로 가.”손은경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윤미라의 분부를 따랐다.윤미라는 아들이 하루 토스트에서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