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라는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그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녀가 들고 나간 아침 도시락을 노동명이 다 먹었는지 몹시 궁금했다.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윤미라는 재빨리 방에서 나왔다.“아줌마.”손은경이 차에서 내린 후 텅 빈 도시락통을 들고 윤미라를 향해 걸어왔다.활짝 웃는 손은경의 모습에 아들이 도시락을 깨끗이 비운 걸 바로 알아채곤 함께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손은경은 도우미에게 도시락통을 건넨 후 윤미라를 부축하며 소파에 앉았다.“동명이랑 좀 더 있지 그랬어?”“오빠가 회의가 있다고 해서 방해될까 봐 바로 왔어요. 아줌마, 내가 이 도시락 아줌마가 해준 거라고 했더니 오빠가 바로 먹는 거 있죠. 게다가 요리사가 바뀐 거 아니냐고 묻더라니까요. 내 요리 솜씨가 괜찮은가 봐요.”윤미라는 활짝 웃으며 손은경이 마치 진짜 며느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앞으로 동명이한테 아침 도시락 자주 만들어서 보내줘. 걔가 평소에 뭐가 부족하면 바로 챙겨주고. 그 녀석 얼음 같은 마음도 천천히 녹아내릴 거야. 은경이 화이팅. 아줌마는 너희 둘 좋은 소식만 기다린다.”이때 손은경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 속 서현주를 가리키며 윤미라에게 물었다.“아줌마, 이 여자 누구예요? 아시는 분이에요? 동명 오빠랑 아는 사이인 것 같더라고요. 두 사람 대화 나누는 걸 봤어요. 그리고 이 하루 토스트는 하예진 씨 가게래요. 오빠가 원래 여기서 아침 먹으려다가 하예진 씨가 오늘 마침 고향 마을에 볼일이 있어 내려간 바람에 가게 문을 닫았대요. 그래서 오빠도 배고픈 김에 회사에서 내가 준 도시락을 다 먹었어요.”안 그러면 노동명은 한 입도 안 먹었을 것이다.손은경은 원래 자신만만하여 하예진을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윤미라가 그녀에게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바로 하예진이라고 했다. 이혼녀에 뚱뚱하지 게다가 애까지 딸린 여자를 노동명이 눈이 멀었다고 좋아할까, 손은경은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인제 보니 아줌마의 조언이 나름대로 일리 있어 보였다.노동명은 하예진의 가
손은경이 계속 말을 이었다.“이것들도 다 아줌마가 나한테 알려준 거잖아요. 예정 씨랑 예진 씨는 친자매이고 예정 씨가 열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여읜 채 언니가 소녀 가장이 되어 힘겹게 동생을 키웠어요. 예정 씨는 보고 배운 게 언니뿐이라 예정 씨 성품을 보면 예진 씨 성품도 알 수 있어요. 난 예진 씨가 그런 여자가 아닐 거라고 믿어요. 어쩌면 나랑 라이벌이 될 수도 있겠죠. 다만 그건 절대 예진 씨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오롯이 동명 오빠한테 달렸어요.”손은경은 종일 궁궐에만 박혀있는 재벌 집 따님이 아니다. 그녀는 손정 그룹 임원이라 박학다식하고 많은 곳을 돌아다녀 윤미라보다 그릇이 좀 더 크다.“뭐 그래도 이런 일들을 미리 알아서 경계하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손은경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시작하기 전에 재빨리 노동명을 제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었다.만약...하예진에게 진다면...손은경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진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여러모로 하예진보다 몇 배는 더 훌륭하니 노동명이 눈이 멀지 않는 한 그녀를 내버려 두고 이혼녀 하예진을 선택할 리는 없으니까.동생과 함께 고향 마을로 내려온 하예진은 고향 친척들과 계약서를 다시 체결하는 내내 재채기를 해댔다.“언니 감기 걸렸어? 이따가 갈 때 성균 삼촌한테 들러서 한번 보여.”성균 삼촌은 근처의 몇몇 마을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의사이다. 의원을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은 두통이나 발열 증상이 있으면 전부 그를 찾아간다.하예진 자매도 어릴 때 성균 삼촌네 의원에서 적잖게 약을 처방받았다.“감기 기운은 아니야.”하예진이 귀를 어루만지며 동생에게 물었다.“예정아, 내 귀 좀 봐. 빨갛지 않아? 누가 내 욕하는지 타오를 것처럼 뜨거워.”하예정은 언니의 귀를 힐긋 봤는데 정말 빨갛게 달아올랐다.“언니가 오늘 가게 문을 닫아서 단골손님들이 헛걸음했다고 구시렁대는 거겠지.”진짜 언니 험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서현주 말곤 더는 생각나는 자가 없었다.
하 영감 부부는 하예진 자매를 도와 등기부 등본 실소유주 변경도 해주었다.모든 수속을 마친 후 등본에 하예진 이름으로 변경됐고 두 자매는 하 영감 부부한테서 산 부동산 몫의 금액을 지급했다.하예정은 자신이 상속받은 그 목도 언니에게 전부 내주었다. 언니는 장녀이기에 당연히 언니가 상속받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언니가 마주한 역경이 그녀보다 더 많은 걸 고려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이 일은 아직 언니에게 알리진 않았다.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 마을 이장이 두 자매에게 말했다.“예진아, 예정아, 너희 집 텃밭은 임대했니? 어떤 사장이 우리 마을의 밭을 도급받고 싶대. 마을 회의를 열었는데 다들 찬성표였어. 밭을 임대하고 임대료를 받아서 밭 면적에 따라 돈을 나누는 거야. 모든 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거니까 너희도 만약 의향 있으면 누구 한 명 카톡 남겨줘. 계약서 체결하고 임대료 받거든 너희들한테 돈 입금해 줄게.”마을의 밭을 도급받는 사람은 바로 하예정이다.다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가볍게 웃었다.“고마워요, 이장님. 나랑 언니는 돌아와서 밭을 가꿀 일이 없으니 집에 있는 텃밭을 그대로 놔둬도 낭비인 것 같아요. 어떤 사장이 우리 밭을 욕심 내고 도급받겠다면 그렇게 해줘요. 임대 기간은 대략 어느 정도예요?”“적어도 15년이래.”이장이 대답했다.하예정은 자신이 작성한 계약서가 20년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아직 마을 사람들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이장이 정확한 기간이 20년인 걸 모르고 있다.“좋아요.”하예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동생이 언급하지 않자 그녀도 입을 꾹 다물었다.하예정은 언니더러 이장님께 카톡을 남겨주라고 했다.그때 가서 밭 임대료를 받으면 이장이 직접 언니에게 계좌 이체하면 된다.“띠리링...”이때 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태윤한테 걸려 온 전화였다.그녀는 한쪽 옆으로 가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여보.”하예정은 남들이 부부의 대화를 엿들을까 봐 나지막이 말했다.“예정아, 목소리 너무 낮아. 좀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사실 난 네가 취한 모습이 너무 좋아. 유난히 진취적이거든!”전태윤은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고 뒷말을 이어갔다.“...”얼음장처럼 차갑던 이 남자가 참 많이도 변했다. 전화에서까지 그녀를 유혹하고 있으니.“일은 잘돼가? 그 사람들 더 소란 피우지 않았지?”전태윤은 아직도 하 영감의 막장을 부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노인네가 또 행패를 부릴까 봐 걱정됐지만 이미 하예정에게 경호원도 붙였고 변호사 일행도 함께 갔으며 그녀가 주먹질에 능하여 굳이 속 태우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아주 잘 풀리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손자들이 했던 말을 할머니에게 말해줬나 봐요. 이번엔 할머니도 소란을 안 피우고 아주 잘 협조해요. 사람 시켜서 홍 씨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모셔 왔는데 우리 엄마 부동산을 안 갖겠대요. 전부 우릴 준대요.”“그래.”전태윤은 홍 씨네 가족들과 접촉이 없다.애초에 홍 씨네 가족들도 양심에 찔리는 일을 많이 했지만, 장모님을 키워준 은혜를 봐서 원망을 묻어뒀다.“홍가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그해 무자비하게 우리 자매를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우리가 그 고생을 했다고 말이에요. 하 영감네가 우릴 괴롭힐 때도 본인들은 선뜻 나서서 우릴 지켜주지 못했다고 너무 미안하대요.”하예정이 말했다.“난 그 사람들과 이런 걸 따지고 싶지 않아요. 어쨌거나 우리 엄마를 키워주신 분들이잖아요. 태윤 씨, 내가 너무 착한 척만 해서 재수 없죠?”“아니, 그건 애증이 분명한 거야. 또 태윤 씨라네.”하예정이 가볍게 웃었다.“여보.”“일 다 마치고 일찍 돌아와. 너무 보고 싶어.”“아침에 함께 나왔잖아요. 이제 고작 반나절인데.”“마음 같아선 널 옷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 일 초도 떨어지기 싫다고.”하예정은 달콤한 그의 속삭임에 마음에 달콤한 전류가 흘렀다.“오후에 자료 챙겨서 등기부 등본 소유주 변경까지 다 마치면 돌아갈 수 있어요.”말미에 하예정이 한마디 보탰다.“나도
“언니, 난 회사 가서 태윤 씨 퇴근하는 거 기다려야 해.”하예정이 운전하며 언니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 돌려 조카에게 물었다.“우빈이 이모랑 함께 이모부 퇴근 마중 갈래?”우빈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예진이 덥석 가로챘다.“얘 데리고 가면 제부가 괜히 방해된다고 귀찮아할 거야.”순간 우빈이는 전에 이모부한테 똑같은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모, 우빈이 방해 아니야. 우빈이는 우빈이라고.”“그래, 우빈이는 우빈이지 절대 방해되지 않아. 이모부가 했던 말 싹 다 잊어.”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둘 집 아래 세워주면 돼. 난 우빈이 데리고 마트 가서 내일 쓸 식자재도 사야 하거든.”“알았어.”하예정은 더 강요하지 않았다.그녀는 언니와 조카를 월세방까지 바래다준 후 두 모자가 집에 올라가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차 타고 떠났다.전씨 그룹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여운초와 마주쳤다.여운초는 홀로 전씨 그룹에 찾아왔는데 한 손에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들고 다른 손엔 꽃다발을 들고서 경비원의 지시를 따라 천천히 로비로 들어가는 중이었다.하예정은 그녀를 보자마자 차를 세우고 재빨리 달려갔다.“운초 씨.”하예정의 목소리를 들은 여운초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 나는 방향대로 고개 돌려 활짝 웃었다.“예정 씨군요.”“맞아요. 운초 씨 이거 누구 줄 꽃이에요? 가게 직원은요?”여운초는 가게 직원들이 꽃 배달을 하고 그녀는 가게만 지킨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다. 앞이 안 보여 손님들에게 꽃 배달하기가 엄청 불편하니까.“전이진 씨한테 드리는 꽃이에요. 무조건 제가 직접 배달해야 한다고 요구하더라고요.”여운초가 솔직하게 대답했다.전이진은 그녀가 직접 꽃 배달을 해주면 공씨 가문에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요 이틀 공씨 가문에서 관성 호텔에 연회를 여는데 그때 가서 호텔 직원들을 시켜 연회장 배치를 꽃필무렵에 의뢰하면 이 또한 한 건의 빅 오더이다.여운초는 이 주문을 받고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전이진에게 꽃 배달을
여운초는 하예정이 하는 말을 차분하게 들었다. 그녀는 기억력이 좋아 하예정이 한번 말하면 바로 기억한다.“운초 씨, 방금 말한 노선 기억할 수 있겠어요?”하예정이 관심 조로 묻자 여운초가 온화하게 대답했다.“고마워요, 예정 씨. 다 기억했어요.”“그럼 나 먼저 가요?”하예정은 맨 위층에 올라가 전태윤을 만나야 해서 여운초와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네, 이만 가보세요. 제가 천천히 찾아갈게요. 이진 씨가 딴 사람 도움 받지 말고 무조건 혼자 사무실까지 오라고 했어요.”‘도련님 진짜! 운초 씨 너무 모질게 구는 거 아니야?!’물론 여운초도 똑같은 생각이겠지.대체 전이진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것인지...전이진은 또 하필 그녀를 모질게 굴면서도 영악하게 미끼를 내던졌다.여운초의 꽃가게 장사가 요즘 줄곧 별로였다. 그날 누군가가 찾아와서 가게의 모든 장미꽃을 싹쓸이해 간 것 외엔 평상시 꽃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전이진이 공씨 일가의 연회 장소 배치를 여운초의 가게에 맡기겠다고 하니 그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관성 호텔은 규모가 큰 호텔이고 공씨 일가가 그곳에서 연회를 열면 관성 상업계 거물들이 다 참석할 터라 현장에 쓰일 화초가 꽤 많이 필요할 것이다.여운초가 이 주문을 성사하면 이번 달 매출도 달성하고 집세와 두 직원의 월급도 지급할 수 있으며 본인한테도 용돈이 남게 된다.바로 이 때문에 전이진이 아무리 까다로운 요구를 제기해도 앞이 안 보이는 여운초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은 채 바로 대답했다.아침에 외출할 때마다 전이진과 자주 마주치는데 그는 항상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가게까지 실어다 준다.여운초는 그런 그가 나쁜 사람인 것만은 같지 않았다. 하지만 꽃 배달 요구를 들었을 땐 대체 왜 이러는지, 일부러 그녀를 모질게 굴 작정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회의심이 들었다.“그럼 나 먼저 가요. 조심히 와요, 운초 씨. 노선이 생각나지 않으면 멈춰서서 주변 사람들한테 여쭤봐요.
부대표님이 대체 왜 시각장애인한테 꽃 배달을 시킨 거지?안내 데스크 직원은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지만, 겉으론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여운초에게 물었다.“여운초 씨,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고마워요, 저 괜찮아요.”여운초는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몇 미터 떨어졌는지 알고 있어 안내 데스크 직원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네, 그럼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저희 불러주세요.”직원이 미소 지으며 여운초의 손에 쥔 꽃다발과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훑어보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고 여운초가 멀어져간 후에야 데스크로 돌아갔다.“부대표님 대체 왜 시각장애인한테 꽃 배달을 시킨 걸까요?”그녀가 동료에게 물었다.“설마 여운초 씨한테 호감 있나? 우리 입사한 지도 2년이 다 돼가는데 단 한 번도 부대표님이 여자한테 관심 가지는 걸 못 봤잖아요. 젊은 여자가 부대표님 찾으러 회사 온 적도 없고요.”동료가 웃으며 답했다.“에이 설마요. 부대표님이 여운초 씨가 시각장애인인 걸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죠.”전이진은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으로서 신분이 고귀한데 어떻게 시각장애인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대표님의 일이지 그녀들관 상관없다.여운초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는데 안에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숫자 버튼을 더듬으며 한참 손의 촉감을 느낀 후에야 이 엘리베이터가 66층으로 직행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채고 맨 끝자리 숫자를 눌렀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한 후 그녀는 재빨리 안에서 내려왔다.입구에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들이 있어 그분들께 66층으로 직행하려면 어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지 물었다.여운초의 질문을 받은 사람은 그녀가 말할 때 얼굴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린 걸 보더니 손에 쥔 지팡이도 쭉 훑어보곤 바로 시각장애인이란 걸 알아챘다. 그 사람은 손을 들어 여운초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지만 당연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그제야 시각장애인이란 걸 확신하며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따라오세요, 제가 알려드릴게요.”그
전이진의 비서가 여운초의 손에 든 꽃다발을 보더니 자상하게 말했다.“잠시만요. 부대표님께 전화로 확인하고 올게요.”비서는 아무 소식도 못 받아 전이진의 동의를 구해야만 여운초를 안으로 들일 수 있다.“네.”여운초는 얌전히 서서 비서가 내선전화로 전이진에게 물을 때까지 기다렸다.곧이어 비서가 그녀 앞으로 다가와 친절하게 말했다.“저 따라오세요.”“고마워요.”여운초는 공손하게 대답하고 비서를 따라 걸어갔다.부대표이사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한 후 비서가 그녀 대신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가 대표님께 여운초 씨가 왔다고 먼저 알렸다.“들어오라고 해.”전이진은 업무가 한창이라 머리도 들지 않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비서는 여운초를 사무실 안으로 모신 후 자리를 떠났다.여운초는 비서와 전이진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들으며 전이진의 위치를 파악했다.사무실에 들어선 그녀는 바로 그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장애물은 피하면서 아주 천천히 다만 아주 정확하게 전이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책상 앞까지 다다른 걸 확인한 그녀는 지팡이로 더듬거리다가 전이진의 발을 건드렸고 이내 지팡이를 거두어들였다.지팡이에 발이 찔린 전이진은 그제야 고개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나 곧 있으면 퇴근인데.”전이진은 다짜고짜 그녀에게 왜 늦게 왔냐고 불만을 드러냈다.여운초는 주위를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그의 책상 옆에 내려놓고 미안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건넸다.“이진 씨, 제가 앞이 안 보여서 천천히 걸어오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어요. 이건 이진 씨가 전화로 주문한 꽃이에요.”“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한번 말해봐요.”전이진이 꽃다발을 건네받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는 꽃다발에 관심이 없다. 단지 이걸 빌미로 여운초를 회사에 데려오고 싶었을 뿐이다.“가게 직원이 스쿠터로 저를 전씨 그룹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다음은 스스로 걸어들어왔어요.”“옆에서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은 없었고요?”“네. 회사 로비에서부터 이진 씨 사무실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어쨌든 우리 여씨 가문의 재산은 운별 누나가 망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우리 두 큰고모도 틀림없이 운별 누나를 달래서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할거에요. 운별 누나는 사람 말을 너무 잘 믿어서 조금만 달래면 뭐든지 나누어 줄 거에요.”여천우가 이렇게 한 이유는 단지 여씨 가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다.추미자 부부가 그들의 명의로 된 재산을 여천우에게 물려주게 하고 또 여천우는 그 재산들을 모두 여운초에 돌려줄 셈이다. 여천우는 여운초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다.여천우는 여운초가 그녀의 재산이 아니면 탐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여운초도 그의 재산을 탐낼 필요가 없었다. 약혼자 전이진의 집에 재산이 엄청 많아서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인 여운초는 여천우의 그깟 재산을 손에 넣지 않을 것이다.“누나, 우리 부모님 명의로 된 합법적 재산이 얼마나 남았어?”여천우는 부모님이 이전에 하신 부분적인 사업들이 법에 어긋난 사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불법적인 사업들은 이미 차압되었고 따라서 그 수입도 이미 몰수되었다. 그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부모님의 합법적인 소득뿐이었다.여운초가 대답했다.“불법적인 사업과 모든 수익은 차압되거나 몰수됐어. 여씨 가문 기업은 법에 어긋난 사업을 하지 않았어. 다행히 네 아버지께서 여씨 그룹을 불법적인 사업에 손을 대지 않게 했지. 지금 여씨 그룹이 하는 사업은 모두 합법적인 사업이야.”“여씨 그룹의 주식은 우리 아버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 아버지께 대부분 주식을 나눠주셨지. 게다가 아버지 본인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주식의 절반을 차지하고 계셨거든. 그리고 나머지는 너의 아버지와 다른 소액주주들의 것으로 되었지. 현재 여씨 가문 주식 가격에 네 부모님 명의로 된 부동산 몇 채를 합치면 마침 200억 원 조금 넘을 거야.”여천우 친아버지 여태웅은 20여 년 전 추미자와 함께 친동생을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범죄 때문에 중형
틀림없이 누군가가 여운초를 건드려 자극했을 것이다.여운초는 오랜 한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폭발한 게 틀림없었다. 하여 추미자 부부의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비우려고 했을 것이다.또 하나, 여운초는 추미자 부부방의 비밀번호를 몰랐다. 심지어 여천우조차도 몰랐다.추미자는 여천우가 여운초의 편을 든다고 많은 일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여운초도 사실대로 여운별이 일찍 감옥에서 나와 오늘 아침에 여씨 가문의 별장에 쳐들어온 사실을 여천우에게 알려주었다.여천우가 그 사실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고 보니 사고뭉치였던 여운별이 나와서 사고를 친 것이다.여씨 가문은 또 시끄러워질 것이 뻔했다.여천우는 여운초에 말했다.“우리 부모님 방에 있던 물건들을 전부 내 방에 가져다줘. 그리고 운별 누나 물건은 운별 누나가 가져가게 해. 그리고 운별 누나 방도 깨끗이 치워.”여천우는 그 별장이 여운초의 별장이었기에 여운초가 여운별이 그 별장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으면 여운초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여천우는 여운별이 예전에 어떻게 여운초를 괴롭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운별을 도와 여운초에게 사정하지 못했다.여운별이 감옥 안에서 일찍 나온 것도 아마 감옥에서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실제 성격을 잘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누나, 운별 누나가 소송을 걸어 재산을 나누려고 하면 나에게 알려줘. 재산을 너무 많이 주면 다 써버릴 거야. 아무리 많은 재산일지라도 운별 누나는 분명 다 탕진 할걸.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질만 부리면서 돈만 쓰잖아.”여천우는 여씨 그룹을 여운초에게 맡기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말이지 밤새 뛰어와서 여운별을 막고 싶었다.여천우는 두 누나의 인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여운별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응석받이로 키웠기에 패가망신할 사람이었다.“절대로 운별 누나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 안 돼. 내가 지금 휴가를 내고 돌아갈게. 감옥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 그들의 명의 아래에 있는 재산을
여미란은 추미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여미란은 마음속 깊이 추미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여씨 가문의 사모님 추미자는 먼저 여미란의 남동생에게 시집간 뒤로 그 남동생을 죽이고 또 여미란의 오빠에게 시집갔지만 지금 그 오빠마저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미란의 동생이 죽었다고 해도 그녀의 오빠와 관계가 없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화근은 역시 추미자였다.여미란의 오빠가 추미자와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기 위해 동생을 죽인 것이다.여운초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여운초는 지금 전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었고 전씨 가문이 그녀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여미란 일행은 감히 여운초를 찾아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여미란은 마음속으로 여운초를 수천 번, 수만 번 욕하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여운초는 여운별이 여씨 가문을 떠나 어디로 갈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최씨 집안과 김씨 집안이 여운별의 피를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예전에 여미란 자매의 집에 재산이 많았지만 늘 친정집에서 이득을 보려고 애썼다.이제 최씨와 김씨 집안은 부귀한 생활에 익숙해져 꿈에서라도 부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찰나에 여운별이 스스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게 되었기에 그녀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그때가 되면 여운별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디적은 재산을 가지고 두 집안에 의해 피를 빨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여운초는 곁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지켜만 보면 되었다.여운초가 여천우와 말했듯이 여운초는 자신의 재산을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을 것이지만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은 전부 그들에게 돌려줄 것이다.추미자는 예전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큰 방에서 살았지만 정작 별장 주인인 자신이 가정부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기억을 떠올린 여운초는 집사에게 지시했다.“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 방을 다시 새로 꾸밀 거예요.”이 큰 방이 바로 주인의 방이다.여운초는 먼저 금고를 그녀가 지금 사는 방으로 옮기라
정현숙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자 여운별은 자신의 큰고모 여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미란이 전화를 받지 여운별이 입을 열었다.“큰고모, 제 물건을 돌려받았어요. 제가 지금 돈이 있으니 고모께서 저에게 아파트 한 채를 찾아 세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운초에게 소송을 걸어 재산을 많이 분배받으면 그때 큰 별장을 구매할 거예요.”여운별이 그녀의 물건을 가져갔다는 말에 여미란은 바로 물었다.“들어갔어? 들어갔으면 왜 그 집에서 살지 않고. 별장에 살면 얼마나 좋아. 세 들어 살면 돈도 따로 나가야 하는데.”여운별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제야 말을 이었다.“우리 일단 만나요.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제가 지금 차에 기름 넣으러 가야 해요. 그리고 고모 찾으러 갈게요. 둘째 고모와 사촌 오빠들에게 점심에 제가 밥을 사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요 이틀 동안 사촌 오빠들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성격이 나쁘고 제멋대로지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저에게 잘해주신 사람들을 모두 마음에 담아두거든요.”“지금 제가 좀 초라하긴 하지만 제가 우리 재산을 되찾으면 절대로 고모들께 푸대접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반드시 고모들을 도와 지난날처럼 부자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도울 거에요.”그림의 떡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었다.여운별도 그림의 떡으로 두 고모를 달래려고 했다.그리고 그녀가 정말 소송에서 이겨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수백억의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두 고모의 집안에 돈을 조금 주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촌 오빠들을 도와 일자리를 하나 더 마련해주겠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회사에 관한 일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씨 그룹으로 돌아가면 지인에게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해야 했다.두 고모 댁의 사촌 남매는 항상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 심지어 사촌 남매들이 그녀에게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녀에게 잘해줄지라도 여씨 그룹을 그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사촌 형제들은 여씨 그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