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영감 부부는 하예진 자매를 도와 등기부 등본 실소유주 변경도 해주었다.모든 수속을 마친 후 등본에 하예진 이름으로 변경됐고 두 자매는 하 영감 부부한테서 산 부동산 몫의 금액을 지급했다.하예정은 자신이 상속받은 그 목도 언니에게 전부 내주었다. 언니는 장녀이기에 당연히 언니가 상속받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언니가 마주한 역경이 그녀보다 더 많은 걸 고려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이 일은 아직 언니에게 알리진 않았다.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 마을 이장이 두 자매에게 말했다.“예진아, 예정아, 너희 집 텃밭은 임대했니? 어떤 사장이 우리 마을의 밭을 도급받고 싶대. 마을 회의를 열었는데 다들 찬성표였어. 밭을 임대하고 임대료를 받아서 밭 면적에 따라 돈을 나누는 거야. 모든 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거니까 너희도 만약 의향 있으면 누구 한 명 카톡 남겨줘. 계약서 체결하고 임대료 받거든 너희들한테 돈 입금해 줄게.”마을의 밭을 도급받는 사람은 바로 하예정이다.다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가볍게 웃었다.“고마워요, 이장님. 나랑 언니는 돌아와서 밭을 가꿀 일이 없으니 집에 있는 텃밭을 그대로 놔둬도 낭비인 것 같아요. 어떤 사장이 우리 밭을 욕심 내고 도급받겠다면 그렇게 해줘요. 임대 기간은 대략 어느 정도예요?”“적어도 15년이래.”이장이 대답했다.하예정은 자신이 작성한 계약서가 20년이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아직 마을 사람들과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이장이 정확한 기간이 20년인 걸 모르고 있다.“좋아요.”하예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동생이 언급하지 않자 그녀도 입을 꾹 다물었다.하예정은 언니더러 이장님께 카톡을 남겨주라고 했다.그때 가서 밭 임대료를 받으면 이장이 직접 언니에게 계좌 이체하면 된다.“띠리링...”이때 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태윤한테 걸려 온 전화였다.그녀는 한쪽 옆으로 가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여보.”하예정은 남들이 부부의 대화를 엿들을까 봐 나지막이 말했다.“예정아, 목소리 너무 낮아. 좀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사실 난 네가 취한 모습이 너무 좋아. 유난히 진취적이거든!”전태윤은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고 뒷말을 이어갔다.“...”얼음장처럼 차갑던 이 남자가 참 많이도 변했다. 전화에서까지 그녀를 유혹하고 있으니.“일은 잘돼가? 그 사람들 더 소란 피우지 않았지?”전태윤은 아직도 하 영감의 막장을 부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노인네가 또 행패를 부릴까 봐 걱정됐지만 이미 하예정에게 경호원도 붙였고 변호사 일행도 함께 갔으며 그녀가 주먹질에 능하여 굳이 속 태우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아주 잘 풀리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손자들이 했던 말을 할머니에게 말해줬나 봐요. 이번엔 할머니도 소란을 안 피우고 아주 잘 협조해요. 사람 시켜서 홍 씨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모셔 왔는데 우리 엄마 부동산을 안 갖겠대요. 전부 우릴 준대요.”“그래.”전태윤은 홍 씨네 가족들과 접촉이 없다.애초에 홍 씨네 가족들도 양심에 찔리는 일을 많이 했지만, 장모님을 키워준 은혜를 봐서 원망을 묻어뒀다.“홍가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그해 무자비하게 우리 자매를 받아주지 않아서 결국 우리가 그 고생을 했다고 말이에요. 하 영감네가 우릴 괴롭힐 때도 본인들은 선뜻 나서서 우릴 지켜주지 못했다고 너무 미안하대요.”하예정이 말했다.“난 그 사람들과 이런 걸 따지고 싶지 않아요. 어쨌거나 우리 엄마를 키워주신 분들이잖아요. 태윤 씨, 내가 너무 착한 척만 해서 재수 없죠?”“아니, 그건 애증이 분명한 거야. 또 태윤 씨라네.”하예정이 가볍게 웃었다.“여보.”“일 다 마치고 일찍 돌아와. 너무 보고 싶어.”“아침에 함께 나왔잖아요. 이제 고작 반나절인데.”“마음 같아선 널 옷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 일 초도 떨어지기 싫다고.”하예정은 달콤한 그의 속삭임에 마음에 달콤한 전류가 흘렀다.“오후에 자료 챙겨서 등기부 등본 소유주 변경까지 다 마치면 돌아갈 수 있어요.”말미에 하예정이 한마디 보탰다.“나도
“언니, 난 회사 가서 태윤 씨 퇴근하는 거 기다려야 해.”하예정이 운전하며 언니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 돌려 조카에게 물었다.“우빈이 이모랑 함께 이모부 퇴근 마중 갈래?”우빈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예진이 덥석 가로챘다.“얘 데리고 가면 제부가 괜히 방해된다고 귀찮아할 거야.”순간 우빈이는 전에 이모부한테 똑같은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이모, 우빈이 방해 아니야. 우빈이는 우빈이라고.”“그래, 우빈이는 우빈이지 절대 방해되지 않아. 이모부가 했던 말 싹 다 잊어.”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둘 집 아래 세워주면 돼. 난 우빈이 데리고 마트 가서 내일 쓸 식자재도 사야 하거든.”“알았어.”하예정은 더 강요하지 않았다.그녀는 언니와 조카를 월세방까지 바래다준 후 두 모자가 집에 올라가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차 타고 떠났다.전씨 그룹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여운초와 마주쳤다.여운초는 홀로 전씨 그룹에 찾아왔는데 한 손에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들고 다른 손엔 꽃다발을 들고서 경비원의 지시를 따라 천천히 로비로 들어가는 중이었다.하예정은 그녀를 보자마자 차를 세우고 재빨리 달려갔다.“운초 씨.”하예정의 목소리를 들은 여운초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 나는 방향대로 고개 돌려 활짝 웃었다.“예정 씨군요.”“맞아요. 운초 씨 이거 누구 줄 꽃이에요? 가게 직원은요?”여운초는 가게 직원들이 꽃 배달을 하고 그녀는 가게만 지킨다고 전에 말한 적이 있다. 앞이 안 보여 손님들에게 꽃 배달하기가 엄청 불편하니까.“전이진 씨한테 드리는 꽃이에요. 무조건 제가 직접 배달해야 한다고 요구하더라고요.”여운초가 솔직하게 대답했다.전이진은 그녀가 직접 꽃 배달을 해주면 공씨 가문에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요 이틀 공씨 가문에서 관성 호텔에 연회를 여는데 그때 가서 호텔 직원들을 시켜 연회장 배치를 꽃필무렵에 의뢰하면 이 또한 한 건의 빅 오더이다.여운초는 이 주문을 받고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전이진에게 꽃 배달을
여운초는 하예정이 하는 말을 차분하게 들었다. 그녀는 기억력이 좋아 하예정이 한번 말하면 바로 기억한다.“운초 씨, 방금 말한 노선 기억할 수 있겠어요?”하예정이 관심 조로 묻자 여운초가 온화하게 대답했다.“고마워요, 예정 씨. 다 기억했어요.”“그럼 나 먼저 가요?”하예정은 맨 위층에 올라가 전태윤을 만나야 해서 여운초와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네, 이만 가보세요. 제가 천천히 찾아갈게요. 이진 씨가 딴 사람 도움 받지 말고 무조건 혼자 사무실까지 오라고 했어요.”‘도련님 진짜! 운초 씨 너무 모질게 구는 거 아니야?!’물론 여운초도 똑같은 생각이겠지.대체 전이진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것인지...전이진은 또 하필 그녀를 모질게 굴면서도 영악하게 미끼를 내던졌다.여운초의 꽃가게 장사가 요즘 줄곧 별로였다. 그날 누군가가 찾아와서 가게의 모든 장미꽃을 싹쓸이해 간 것 외엔 평상시 꽃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전이진이 공씨 일가의 연회 장소 배치를 여운초의 가게에 맡기겠다고 하니 그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관성 호텔은 규모가 큰 호텔이고 공씨 일가가 그곳에서 연회를 열면 관성 상업계 거물들이 다 참석할 터라 현장에 쓰일 화초가 꽤 많이 필요할 것이다.여운초가 이 주문을 성사하면 이번 달 매출도 달성하고 집세와 두 직원의 월급도 지급할 수 있으며 본인한테도 용돈이 남게 된다.바로 이 때문에 전이진이 아무리 까다로운 요구를 제기해도 앞이 안 보이는 여운초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은 채 바로 대답했다.아침에 외출할 때마다 전이진과 자주 마주치는데 그는 항상 갖은 방법으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가게까지 실어다 준다.여운초는 그런 그가 나쁜 사람인 것만은 같지 않았다. 하지만 꽃 배달 요구를 들었을 땐 대체 왜 이러는지, 일부러 그녀를 모질게 굴 작정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회의심이 들었다.“그럼 나 먼저 가요. 조심히 와요, 운초 씨. 노선이 생각나지 않으면 멈춰서서 주변 사람들한테 여쭤봐요.
부대표님이 대체 왜 시각장애인한테 꽃 배달을 시킨 거지?안내 데스크 직원은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지만, 겉으론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여운초에게 물었다.“여운초 씨, 도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고마워요, 저 괜찮아요.”여운초는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몇 미터 떨어졌는지 알고 있어 안내 데스크 직원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네, 그럼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저희 불러주세요.”직원이 미소 지으며 여운초의 손에 쥔 꽃다발과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훑어보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고 여운초가 멀어져간 후에야 데스크로 돌아갔다.“부대표님 대체 왜 시각장애인한테 꽃 배달을 시킨 걸까요?”그녀가 동료에게 물었다.“설마 여운초 씨한테 호감 있나? 우리 입사한 지도 2년이 다 돼가는데 단 한 번도 부대표님이 여자한테 관심 가지는 걸 못 봤잖아요. 젊은 여자가 부대표님 찾으러 회사 온 적도 없고요.”동료가 웃으며 답했다.“에이 설마요. 부대표님이 여운초 씨가 시각장애인인 걸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죠.”전이진은 전씨 가문 둘째 도련님으로서 신분이 고귀한데 어떻게 시각장애인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대표님의 일이지 그녀들관 상관없다.여운초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는데 안에 아무도 없었다.그녀는 숫자 버튼을 더듬으며 한참 손의 촉감을 느낀 후에야 이 엘리베이터가 66층으로 직행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채고 맨 끝자리 숫자를 눌렀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한 후 그녀는 재빨리 안에서 내려왔다.입구에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들이 있어 그분들께 66층으로 직행하려면 어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지 물었다.여운초의 질문을 받은 사람은 그녀가 말할 때 얼굴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린 걸 보더니 손에 쥔 지팡이도 쭉 훑어보곤 바로 시각장애인이란 걸 알아챘다. 그 사람은 손을 들어 여운초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지만 당연히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그제야 시각장애인이란 걸 확신하며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따라오세요, 제가 알려드릴게요.”그
전이진의 비서가 여운초의 손에 든 꽃다발을 보더니 자상하게 말했다.“잠시만요. 부대표님께 전화로 확인하고 올게요.”비서는 아무 소식도 못 받아 전이진의 동의를 구해야만 여운초를 안으로 들일 수 있다.“네.”여운초는 얌전히 서서 비서가 내선전화로 전이진에게 물을 때까지 기다렸다.곧이어 비서가 그녀 앞으로 다가와 친절하게 말했다.“저 따라오세요.”“고마워요.”여운초는 공손하게 대답하고 비서를 따라 걸어갔다.부대표이사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한 후 비서가 그녀 대신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가 대표님께 여운초 씨가 왔다고 먼저 알렸다.“들어오라고 해.”전이진은 업무가 한창이라 머리도 들지 않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비서는 여운초를 사무실 안으로 모신 후 자리를 떠났다.여운초는 비서와 전이진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들으며 전이진의 위치를 파악했다.사무실에 들어선 그녀는 바로 그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장애물은 피하면서 아주 천천히 다만 아주 정확하게 전이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책상 앞까지 다다른 걸 확인한 그녀는 지팡이로 더듬거리다가 전이진의 발을 건드렸고 이내 지팡이를 거두어들였다.지팡이에 발이 찔린 전이진은 그제야 고개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나 곧 있으면 퇴근인데.”전이진은 다짜고짜 그녀에게 왜 늦게 왔냐고 불만을 드러냈다.여운초는 주위를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그의 책상 옆에 내려놓고 미안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건넸다.“이진 씨, 제가 앞이 안 보여서 천천히 걸어오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어요. 이건 이진 씨가 전화로 주문한 꽃이에요.”“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한번 말해봐요.”전이진이 꽃다발을 건네받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는 꽃다발에 관심이 없다. 단지 이걸 빌미로 여운초를 회사에 데려오고 싶었을 뿐이다.“가게 직원이 스쿠터로 저를 전씨 그룹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그다음은 스스로 걸어들어왔어요.”“옆에서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은 없었고요?”“네. 회사 로비에서부터 이진 씨 사무실
“아니요. 우리가 통근 몇 번 봤다고 불편하게 할 리가 있겠나요?”설사 불편하게 했다 해도 전이진은 다 보듬어줄 것이다. 그가 평생 배려하며 살아가야 할 여자니까 절대 그녀에게 사사건건 맞설 일은 없다.“근데 왜 꼭 나한테 꽃 배달을 시키고 딴 사람들 도움도 못 받게 하는 거죠?”전이진이 말했다.“운초 씨는 앞으로 자주 와야 하니까 나 찾아오는 노선을 기억해야 빨리 익숙해져서 쉽게 올 수 있죠.”“...”‘내가 왜 그쪽을 찾아와야 하지? 그것도 자주 와야 한다고?!’“우리 회사 화분들이 꽤 많이 시들었어요. 컴퓨터가 너무 많아 방사선이 많다 보니 식물들도 빨리 죽는 것 같아요. 직원들 새 화분으로 바꿔줄 생각인데...”전이진은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여운초를 쳐다봤다.‘이건 엄청난 오더야!’“좋아요. 다음엔 제가 직접 버스 타고 전씨 그룹으로 찾아올게요. 회사 문 앞까지 도착하면 한번 와봤던 곳이라 노선을 기억해요. 다음엔 더 빨리 찾아올 수 있으니 이진 씨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아요. 이진 씨 회사에서 화분을 새로 바꿀 생각이면 저희 꽃필무렵에 한 번 와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저희 가게에 사무실에 놓을 화분 종류가 다양하거든요.”전이진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내일 사무실에 놓기 좋은 식물들을 전부 이리로 가져오세요. 얼마든지 가져오는 대로 다 사들일 테니 큰 식물도 좋아요. 로비 앞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거기 놔두면 되니까요.”여운초가 대답했다.“네. 이진 씨...”“우리 편하게 말 놓죠. 운초 씨랑 존댓말 하려니까 살짝 불편하네요.”여운초는 멍하니 넋 놓고 있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래...”그녀는 소심하게 먼저 말을 놨다.전이진은 두 사람이 아직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확 다가가진 않고 일단 일정한 거리를 둬야겠다고 다짐했다.“저기 공씨 일가의 연회는 어떻게 됐어?”전이진이 대답했다.“네가 요구대로 꽃 배달을 왔으니까 당연히 약속 지켜야지. 이따가 호텔 매니저한테 연락해서 너희 가게로
“전이진...”여운초가 의아한 듯이 그를 불렀다.“난 꽃도 안 좋아하고 여자친구도 없어. 너한테 꽃 배달을 시킨 건 나 찾아오는 노선을 기억해서 다음에 더 편하게 오라고 그런 거야.”전이진이 웃으며 해명했다.“근데 너 어리바리한 모습이 꽤 귀엽다? 나 즐겁게 해줬으니까 밥은 내가 살게. 가자 얼른.”여운초가 속으로 구시렁댔다.‘누가 어리바리하다는 거야?’그가 자꾸 예상 밖으로 나오니 여운초도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그녀는 겉으론 담담한 척 전이진을 따라 나왔지만 걸어가면서 그의 초대를 완곡하게 거절했다.“어차피 너 돌아가서도 배달 음식 시켜 먹을 거잖아. 그런 거 많이 먹으면 안 좋아. 그냥 내가 밥 살게. 아니면 네가 사도 돼. 내가 너희 가게로 오더 두 개나 내렸는데 당연히 밥은 네가 사야지.”여운초는 말문이 막혀 한참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나 지금 몇만 원밖에 없어. 너 밥 사줄 돈이 안 될 것 같아.”전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인데 평상시에 관성 호텔 같은 곳에서 밥을 먹겠지, 게다가 거긴 전이진네 집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라 제집에서 밥 먹는 거나 다름없다.사실 여운초도 실명하기 전에 관성 호텔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있기에 그곳의 가격대를 잘 알고 있다. 단돈 몇만 원으론 전이진에게 밥을 사기에 어림도 없다.“괜찮아. 내가 돈 빌려줄 테니까 그 돈으로 밥 사줘.”“...”전이진은 고개 돌려 한심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미소 지었다.“선택해, 내가 밥 사줄까 아니면 네가 살래?”아무튼 그는 반드시 그녀와 함께 밥을 먹을 생각이다.빨리 친해지면 앞으로도 즐겁게 보낼 테니까.그리고 그녀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알아갈 수 있다.“사실 우리 둘이 먹기엔 음식을 너무 많이 주문할 필욘 없어. 국 한 그릇에 음식 네 개면 돼. 관성 호텔이라고 모든 음식이 다 비싼 건 아니야. 가격이 적당한 요리들도 꽤 많아.”여운초는 그의 말을 듣더니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내가 살게. 네가 우리 가게 장사를 도와줬잖아. 덕분에 주문 건이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