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야! 서준태 이 남자 정말 독한 놈이었네!][진짜 딱 봐도 비열한 인간이야!][남자들은 왜 이렇게 여우 같은 년들한테 속아 정신을 못 차리는 걸까? 고작 저딴 년을 위해 자기 아내를 죽이다니! 대체 이런 놈은 몇 년을 선고받아야 적당할까?][어차피 부자들은 돈을 써서 금방 나오겠지.]온라인에서는 이미 사람들의 추측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확히 서준태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알아맞혔다.서준태는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번 사건을 단순히 부부간의 갈등으로 몰아갔다. 결국 그는 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정받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형량을 면할 수 있었다.게다가 막대한 보석금을 냈기에 그는 곧바로 석방되었다.나는 서준태를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는 내 유골함을 안고 묘지로 찾아왔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이 인간은 어떻게 내 비석에 ‘사랑하는 아내’라는 글을 새길 생각을 했을까?‘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너잖아!’‘서준태, 제발 내 묘비 앞에서 울지 마. 네 눈물이 내 환생길을 더럽힐까 두렵네.’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난 이미 죽었으니 상관없지.’ 난 이런 사소한 일로 신경을 쓸 생각은 없었다.서준태는 술 한 병을 내 앞에 부었다.“민아야, 미안해. 내가 너와 우리 아이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어. 내 그 짧은 생각 하나가 너를 죽게 만들 줄은 몰랐어! 이 죄는 다음 생에도 다 갚을 수 없을 거야.”나는 눈을 홉떴다.‘서준태, 넌 진짜 최악의 인간이야!’굳이 내가 욕하지 않아도 사람들 입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서준태는 핸드폰을 꺼내 내 묘비 앞에 두었다. 그 화면 속에는 우리 둘의 웨딩 사진이 담겨 있었다.나는 그걸 보자 조금 놀라고 말았다.‘아직도 그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니...’그러고 보니 웨딩사진을 찍던 날이 떠올랐다.서준태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은 뒤 전화를 받고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결국
서준태는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벌써 사흘째네. 진민아는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어?”“그 여자 정말 고집불통이네!”그때 서준태의 첫사랑 유혜선이 닭곰탕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준태야, 됐어. 민아 씨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사흘이나 지났으면 됐잖아.”유혜선을 보자 서준태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진민아가 너처럼 조금만 이해심이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나 때문에 너무 화내지 마. 민아 씨는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신 걸 거야.”그 말을 듣고 서준태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진민아가 잘못을 인정했어?”[아니요. 하지만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요?]“무슨 일이 생기겠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계속 가두고 있어!”전화를 끊은 그는 다시 차가운 표정을 지었고, 유혜선은 옆에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서준태, 넌 영원히 내 대답을 듣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난 이미 죽었으니까.’3일 전, 나는 이미 죽었다.그 폐기된 냉동창고는 그들이 떠난 뒤 전기가 들어와 작동하기 시작했다.나는 그 안에서 외치고 또 외쳤지만,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처음에는 문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며 애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대답뿐이었다.“대표님께서 안에서 반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 저희는 그저 대표님께서 내린 지시를 따르는 것뿐입니다.”“아니에요! 제발 부탁이에요, 냉동창고가 작동됐어요. 사람 좀 불러 주세요!”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비웠는지 문 밖은 매우 조용해졌다. 나는 처음에는 침착하게 탈출할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점점 온도가 낮아지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나는 체온을 유지하려고 계속 운동을 했지만, 나중에는 힘이 빠져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어 결국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이곳은 원래 해산물을 저장하던 냉동창고로,
나는 서준태가 유혜선을 객실로 데려가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지켜봤다.그때 하늘이 번쩍이며 번개가 내리치더니 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꺄악!” 유혜선은 비명을 지르며 서준태의 품에 뛰어들었다.서준태는 순간 몸이 굳어졌지만, 유혜선은 그의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준태야, 나 너무 무서워.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주면 안 돼?”서준태는 잠시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더니 말했다.“그래.”그 순간, 나는 스스로가 매우 우스웠다. 나도 번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내가 혼자 살던 시절,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던 날 밤이었다.집에 정전까지 되자 나는 무서워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서준태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이라도 위로받으려 했으나 서준태의 대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몇 살인데 아직도 번개가 무섭다는 거야? 진민아, 자꾸 이런 식으로 내 관심을 얻으려고 하지 마. 너도 어른이니까 이런 것쯤은 혼자서 처리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서준태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나는 그날 밤 이불을 꼭 껴안고 핸드폰 불빛 하나로 밤을 보냈다.나는 해가 뜨고 나서야 간신히 잠들었다.지금 생각하면, 참 비참했다.서준태는 늘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비록 죽었지만, 천둥소리가 나자 여전히 무서웠다.나는 몸을 떨며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일 수 없었다.결국, 나는 그대로 남아 서준태가 유혜선을 달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유혜선은 서준태의 품에 안긴 채, 자랑스러운 눈빛을 보였다.나는 한숨을 쉬며 속으로 생각했다.‘유혜선은 서준태의 영원히 잊지 못할 첫사랑인데, 나는 도대체 서준태한테 뭐였을까?’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바라봤다.죽었음에도 여전히 번개가 두려운 내가 참 우스웠다.다행히 번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한 시간이 지나자 번개 소리가 멎었고, 서준태는 객실에서 나왔다.유혜선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서준태의 한마디 말에 감시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유혜선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서준태의 말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준태야, 이제 그만해. 벌써 이게 며칠째야. 게다가 난 보다시피 멀쩡하잖아.”“안 돼, 진민아가 널 사무실에 그렇게 오래 가뒀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해.”유혜선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계속 말했다.“준태야,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민아 씨는 네 아내잖아.”“민아 씨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건... 내 잘못이기도 해. 내가 계속 너한테 민폐를 끼쳤으니 당연히 질투하실 만해. 그러니까 이제 풀어줘.”유혜선은 겉으로는 나를 도와주는 척하며 사실은 잘못을 모두 내게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준태는 늘 그녀의 수작에 넘어갔다.“민아야, 마음이 너무 약한 것도 문제야. 됐어, 네가 풀어주라고 했으니 한번 기회를 줄게.”유혜선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태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서준태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괜찮아?”“아니야. 민아 씨가 며칠 동안 갇혀 있었으니, 혹시 모르니 의사를 데려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유혜선이 갑자기 호의를 베풀다니.나는 의심스러웠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의사를 데려가야 내가 이미 죽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안 그러면 일이 분명 더 복잡해질 것이다.‘서준태, 네가 진실을 알게 된 후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서준태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유혜선의 손을 잡고 말했다.“진민아가 네가 가진 이해심의 반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준태야, 어쨌든 인아 씨는 네 아내야.”유혜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서준태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해 보였다.나는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아내라니. 이 호칭이 이렇게 우스울 줄이야.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태였다. 더 이상 이런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었기
서준태는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말도 안 돼! 진민아가 죽다니, 그럴 리 없어!”그는 냉동창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몇 줄의 선반 뒤, 웅크린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서준태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내 죽음을 이미 받아들였음에도 내 시체를 마주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내 눈은 멀리 정면을 응시한 채 부릅떠져 있었고, 얼굴에는 얼음과 서리가 가득했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열 손가락은 말라붙은 피로 얼룩졌고, 바닥과 벽에는 내가 몸부림친 흔적들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죽은 나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서준태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나다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나를 만지려 했지만,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아니야... 이건 진민아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폐기된 냉동창고가 작동될 리가 없잖아!” “당장 CCTV를 확인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 서준태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벽에 선명히 찍힌 핏자국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그는 벽을 더듬다가 다시 내게로 다가와 내 손을 살폈다. 얼어붙은 손끝은 여전히 피투성이였고, 열 손가락 모두 살갗이 찢어져 있었다.서준태는 미친 듯이 앞으로 다가와 날 안았다.“진민아!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이거 다 연기잖아! 나를 놀라게 만들려고 그런 거잖아! 빨리 일어나! 일어나라고!” “네가 죽긴 왜 죽어! 얼른 일어나라고! 사과하지 않아도 돼, 다신 벌 안 줄 테니까 제발 일어나라고!”“진민아! 대답해! 말 좀 해 봐!”서준태는 나를 격렬히 흔들며 소리쳤지만, 얼어붙은 내 몸은 그의 손에 의해 그대로 땅바닥에 부딪혔다.‘쿵-’소리가 울려 퍼졌고, 서준태는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밖에 있던 유혜선은 이 광경에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곧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준태야, 민아 씨는 이미 죽었어. 아무리 슬퍼도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서준태는 뒤돌아 그녀를 쏘아보더니 곧 소리쳤다.“죽다니! 진민아가 죽을 리가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그
서준태의 신분을 고려한 경찰은 그를 설득한 끝에 내 시신을 가져가 부검을 진행했다.처음에 반대했었지만, 서준태 역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어서 결국 동의했다.나는 그의 절망에 찬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서준태, 진실을 알게 되면 넌 분명 엄청나게 후회할 거야.’내 사망 소식은 금세 퍼졌다.서준태는 병원 복도에 앉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었다.그때 유혜선이 다가와 그를 꼭 끌어안았다.“준태야, 죽은 사람은 다시 되살아날 수 없으니까 너라도 힘내야 돼.”그는 중얼거리며 말했다.“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난 진민아를 죽일 생각은 없었어!”“난 그냥 진민아가 한 번만이라도 사과하길 바랐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데!”그 말에 유혜선은 눈을 번뜩이더니, 곧 고개를 숙이며 기절한 척 서준태의 품에 쓰러졌다.“혜선아, 괜찮아? 진민아가 떠난 마당에 너까지 쓰러지는 건 절대 안 돼!”“준태야, 나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유혜선은 힘없이 속삭이더니 서준태의 품 안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서준태는 당황하며 그녀를 안아 병실로 달려갔다. 그녀가 깨어나자, 서준태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유혜선이 그의 손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나를 두고 가지 마, 제발 부탁이야.”서준태가 유혜선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았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자기 아내는 지금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어 부검 중인데, 서준태는 다른 여자를 지켜주고 있었다.‘서준태, 넌 내가 죽었는데도 여유가 넘치네.’그때 창 밖에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서준태는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그날 밤, 너도 무서워하고 있었겠지?”유혜선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뭐라고?”“그날 밤, 천둥 번개가 칠 때, 민아도 냉동창고 안에서 무서워하고 있었겠지?”유혜선의 얼굴은 금세 굳어버렸다. 서준태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혜선아, 나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
“서준태, 네가 날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날 믿어줄 사람은 있을 거야.”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누군가 내 사망 소식을 유출해 버렸다.그날 서준태가 나를 안고 병원에서 울부짖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자, 네티즌들은 충격을 받았다.[서 대표 아내가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었다고? 이게 말이 돼?][아내가 죽으면 가장 의심 가는 건 남편이지. 형사님들, 꼭 제대로 조사해 주세요!][하지만 연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난 딱 봐도 연기라고 생각해. 아내는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었잖아!][헐! 나 그 냉동창고 어딘지 알아. 뒤편의 작은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누가 서 대표의 아내를 거기로 유인한 거야?][내부 소식에 따르면, 서준태가 첫사랑을 위해 직접 아내를 냉동창고에 넣었대!][그럼 저 남자가 살인자잖아?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보네. 감히 병원에서 소리를 지르다니.]네티즌들의 독설은 날카로웠고, 서준태에게 일말의 체면도 남겨두지 않았다.나는 그가 떨리는 손으로 댓글을 읽는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서준태, 이거 봐. 너 빼고는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잖아.’나는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아마 서준태에게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이 없었기에, 그가 괴로워하는 걸 보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그가 왜 나를 믿지 않았는지 고민했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서준태는 단 한순간도 나를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날 동정할 이유조차 없었던 것이다.서준태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냉동창고에 밀어놓고,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채 내가 사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경호원들이 몇 번이나 확인해보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날 내팽개쳤다.서준태는 그 영상을 이한빈에게 보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민아야, 이건 분명 단순한 사고였을 거야.”나는 그를 비웃으며 속으로 되뇌었다.‘사고라니? 이건 명백히 살인이었어. 그리고 살인
서준태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경찰을 바라보는 그의 옆에서 유혜선이 과장된 몸짓으로 입을 막았다.“진민아가 임신했다고요? 말도 안 돼요! 형사님,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준태야, 너 진민아를 안 좋아한다고 말했었잖아. 진민아를 건드린 적조차 없다며!”“그럼 진민아의 아이는...”유혜선은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입을 더 세게 막으며 말했다. 그러자 서준태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아니야. 내 아이 맞아.”유혜선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래, 맞아. 이 아이는 분명히 서준태의 아이야.’나는 갑자기 그날 일이 떠올랐다.유혜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콘서트를 보러 가던 날 올린 SNS 사진을 본 서준태는 불같이 화를 냈다.그날 그는 술을 잔뜩 마시고 유독 거칠게 굴었다.나는 그의 거친 행동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완전히 지쳐버렸기에, 그만 약을 챙겨 먹는 것도 잊었다.결국, 그날 한 번으로 임신이 된 것이다.나는 정말 바보였던 것이다. 서준태는 나를 단순한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인데도, 나는 그의 곁에 남기를 원했던 것이다.그 순간, 서준태도 무언가 떠올랐는지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준태야, 왜 그래?”유혜선이 당황하며 달려가 그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유혜선을 거칠게 뿌리쳤다.유혜선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손대지 마! 혜선아, 미안하지만, 나는 더 이상 못 받아들이겠어.”서준태는 혼란스러워하며 경찰서를 떠났다.부검 결과를 손에 들고 비틀거리며 나가는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그때, 이한빈 쪽에서 연락이 왔다.[대표님, 범인을 잡았습니다.]서준태는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차에 올라타 엑셀을 힘껏 밟았다.나 역시 그를 따라갔다.우리가 도착한 곳은 익숙한 냉동창고였다. 그곳을 보자 나는 또다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이한빈은 창고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저 사람입니다! 이미 자백했습니
[역시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야! 서준태 이 남자 정말 독한 놈이었네!][진짜 딱 봐도 비열한 인간이야!][남자들은 왜 이렇게 여우 같은 년들한테 속아 정신을 못 차리는 걸까? 고작 저딴 년을 위해 자기 아내를 죽이다니! 대체 이런 놈은 몇 년을 선고받아야 적당할까?][어차피 부자들은 돈을 써서 금방 나오겠지.]온라인에서는 이미 사람들의 추측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확히 서준태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알아맞혔다.서준태는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번 사건을 단순히 부부간의 갈등으로 몰아갔다. 결국 그는 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정받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형량을 면할 수 있었다.게다가 막대한 보석금을 냈기에 그는 곧바로 석방되었다.나는 서준태를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는 내 유골함을 안고 묘지로 찾아왔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이 인간은 어떻게 내 비석에 ‘사랑하는 아내’라는 글을 새길 생각을 했을까?‘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너잖아!’‘서준태, 제발 내 묘비 앞에서 울지 마. 네 눈물이 내 환생길을 더럽힐까 두렵네.’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난 이미 죽었으니 상관없지.’ 난 이런 사소한 일로 신경을 쓸 생각은 없었다.서준태는 술 한 병을 내 앞에 부었다.“민아야, 미안해. 내가 너와 우리 아이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어. 내 그 짧은 생각 하나가 너를 죽게 만들 줄은 몰랐어! 이 죄는 다음 생에도 다 갚을 수 없을 거야.”나는 눈을 홉떴다.‘서준태, 넌 진짜 최악의 인간이야!’굳이 내가 욕하지 않아도 사람들 입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서준태는 핸드폰을 꺼내 내 묘비 앞에 두었다. 그 화면 속에는 우리 둘의 웨딩 사진이 담겨 있었다.나는 그걸 보자 조금 놀라고 말았다.‘아직도 그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니...’그러고 보니 웨딩사진을 찍던 날이 떠올랐다.서준태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은 뒤 전화를 받고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결국
서준태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법정에 서겠다고? 감옥에 가는 건 너무 관대한 처벌이지!”“집어넣어!”남자가 아무리 애원해도 서준태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남자를 냉동창고 안에 가둔 채 사람을 붙여 감시하게 했다.몇 시간 뒤, 안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얼어붙은 채 딱딱하게 굳어버린 남자를 바라보며, 서준태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명령했다.“유혜선을 데려와.”유혜선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예상치 못한 듯했다.그녀는 냉동창고에 끌려왔을 때, 온몸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혜선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 죽음에 그녀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준태야, 왜 이러는 거야?”서준태는 차갑게 물었다.“유혜선, 그날 네가 사무실에 갇혀 있었던 거, 정말 진민아가 한 짓이었어?”갑작스러운 질문에 유혜선은 놀란 표정을 보였다.유혜선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난 민아 씨를 탓하지 않아. 민아 씨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준태야, 그런데 왜 갑자기 이걸 묻는 거야?” 서준태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왜 묻냐고?”“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지.”“사람은 참 겉모습만 봐서는 안 되네. 네가 이런 사람일 줄이야.”“유혜선, 민아가 도대체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 유혜선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준태야, 갑자기 왜 그래?”“내 이름 부르지 마. 듣기 역겨우니까.”그 말에 유혜선의 눈빛이 변했다. 그녀는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듯 원래 모습을 드러냈다.“다 알게 된 거야?”“그래. 도대체 왜 그랬어?”“왜 그랬냐고? 모두 널 위해서였어! 그 여자는 너와 어울리지 않아!”유혜선은 비웃으며 말했다.“넌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들어 줬었잖아. 그 여자, 내가 널 위해 한 번에 처리해 준 거야. 어차피 말도 안 듣는 여잔데, 차라리 냉동창고에서 죽어버리는 편이 낫잖아. 너도 진민아가 사라지는 걸 바라고 있지 않았어?”“왜 이제 와서 갑자기 애틋한 척하는
서준태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경찰을 바라보는 그의 옆에서 유혜선이 과장된 몸짓으로 입을 막았다.“진민아가 임신했다고요? 말도 안 돼요! 형사님,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준태야, 너 진민아를 안 좋아한다고 말했었잖아. 진민아를 건드린 적조차 없다며!”“그럼 진민아의 아이는...”유혜선은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입을 더 세게 막으며 말했다. 그러자 서준태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아니야. 내 아이 맞아.”유혜선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래, 맞아. 이 아이는 분명히 서준태의 아이야.’나는 갑자기 그날 일이 떠올랐다.유혜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콘서트를 보러 가던 날 올린 SNS 사진을 본 서준태는 불같이 화를 냈다.그날 그는 술을 잔뜩 마시고 유독 거칠게 굴었다.나는 그의 거친 행동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완전히 지쳐버렸기에, 그만 약을 챙겨 먹는 것도 잊었다.결국, 그날 한 번으로 임신이 된 것이다.나는 정말 바보였던 것이다. 서준태는 나를 단순한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인데도, 나는 그의 곁에 남기를 원했던 것이다.그 순간, 서준태도 무언가 떠올랐는지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준태야, 왜 그래?”유혜선이 당황하며 달려가 그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유혜선을 거칠게 뿌리쳤다.유혜선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손대지 마! 혜선아, 미안하지만, 나는 더 이상 못 받아들이겠어.”서준태는 혼란스러워하며 경찰서를 떠났다.부검 결과를 손에 들고 비틀거리며 나가는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그때, 이한빈 쪽에서 연락이 왔다.[대표님, 범인을 잡았습니다.]서준태는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차에 올라타 엑셀을 힘껏 밟았다.나 역시 그를 따라갔다.우리가 도착한 곳은 익숙한 냉동창고였다. 그곳을 보자 나는 또다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이한빈은 창고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저 사람입니다! 이미 자백했습니
“서준태, 네가 날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날 믿어줄 사람은 있을 거야.”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누군가 내 사망 소식을 유출해 버렸다.그날 서준태가 나를 안고 병원에서 울부짖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자, 네티즌들은 충격을 받았다.[서 대표 아내가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었다고? 이게 말이 돼?][아내가 죽으면 가장 의심 가는 건 남편이지. 형사님들, 꼭 제대로 조사해 주세요!][하지만 연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난 딱 봐도 연기라고 생각해. 아내는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었잖아!][헐! 나 그 냉동창고 어딘지 알아. 뒤편의 작은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누가 서 대표의 아내를 거기로 유인한 거야?][내부 소식에 따르면, 서준태가 첫사랑을 위해 직접 아내를 냉동창고에 넣었대!][그럼 저 남자가 살인자잖아?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보네. 감히 병원에서 소리를 지르다니.]네티즌들의 독설은 날카로웠고, 서준태에게 일말의 체면도 남겨두지 않았다.나는 그가 떨리는 손으로 댓글을 읽는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서준태, 이거 봐. 너 빼고는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잖아.’나는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아마 서준태에게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이 없었기에, 그가 괴로워하는 걸 보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그가 왜 나를 믿지 않았는지 고민했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서준태는 단 한순간도 나를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날 동정할 이유조차 없었던 것이다.서준태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냉동창고에 밀어놓고,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채 내가 사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의 경호원들이 몇 번이나 확인해보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날 내팽개쳤다.서준태는 그 영상을 이한빈에게 보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민아야, 이건 분명 단순한 사고였을 거야.”나는 그를 비웃으며 속으로 되뇌었다.‘사고라니? 이건 명백히 살인이었어. 그리고 살인
서준태의 신분을 고려한 경찰은 그를 설득한 끝에 내 시신을 가져가 부검을 진행했다.처음에 반대했었지만, 서준태 역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어서 결국 동의했다.나는 그의 절망에 찬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서준태, 진실을 알게 되면 넌 분명 엄청나게 후회할 거야.’내 사망 소식은 금세 퍼졌다.서준태는 병원 복도에 앉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었다.그때 유혜선이 다가와 그를 꼭 끌어안았다.“준태야, 죽은 사람은 다시 되살아날 수 없으니까 너라도 힘내야 돼.”그는 중얼거리며 말했다.“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난 진민아를 죽일 생각은 없었어!”“난 그냥 진민아가 한 번만이라도 사과하길 바랐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데!”그 말에 유혜선은 눈을 번뜩이더니, 곧 고개를 숙이며 기절한 척 서준태의 품에 쓰러졌다.“혜선아, 괜찮아? 진민아가 떠난 마당에 너까지 쓰러지는 건 절대 안 돼!”“준태야, 나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유혜선은 힘없이 속삭이더니 서준태의 품 안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서준태는 당황하며 그녀를 안아 병실로 달려갔다. 그녀가 깨어나자, 서준태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유혜선이 그의 손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나를 두고 가지 마, 제발 부탁이야.”서준태가 유혜선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았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자기 아내는 지금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어 부검 중인데, 서준태는 다른 여자를 지켜주고 있었다.‘서준태, 넌 내가 죽었는데도 여유가 넘치네.’그때 창 밖에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서준태는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그날 밤, 너도 무서워하고 있었겠지?”유혜선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뭐라고?”“그날 밤, 천둥 번개가 칠 때, 민아도 냉동창고 안에서 무서워하고 있었겠지?”유혜선의 얼굴은 금세 굳어버렸다. 서준태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혜선아, 나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
서준태는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말도 안 돼! 진민아가 죽다니, 그럴 리 없어!”그는 냉동창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몇 줄의 선반 뒤, 웅크린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서준태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내 죽음을 이미 받아들였음에도 내 시체를 마주하는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내 눈은 멀리 정면을 응시한 채 부릅떠져 있었고, 얼굴에는 얼음과 서리가 가득했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열 손가락은 말라붙은 피로 얼룩졌고, 바닥과 벽에는 내가 몸부림친 흔적들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죽은 나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서준태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나다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나를 만지려 했지만, 끝내 손을 대지 못했다.“아니야... 이건 진민아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폐기된 냉동창고가 작동될 리가 없잖아!” “당장 CCTV를 확인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 서준태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벽에 선명히 찍힌 핏자국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그는 벽을 더듬다가 다시 내게로 다가와 내 손을 살폈다. 얼어붙은 손끝은 여전히 피투성이였고, 열 손가락 모두 살갗이 찢어져 있었다.서준태는 미친 듯이 앞으로 다가와 날 안았다.“진민아!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이거 다 연기잖아! 나를 놀라게 만들려고 그런 거잖아! 빨리 일어나! 일어나라고!” “네가 죽긴 왜 죽어! 얼른 일어나라고! 사과하지 않아도 돼, 다신 벌 안 줄 테니까 제발 일어나라고!”“진민아! 대답해! 말 좀 해 봐!”서준태는 나를 격렬히 흔들며 소리쳤지만, 얼어붙은 내 몸은 그의 손에 의해 그대로 땅바닥에 부딪혔다.‘쿵-’소리가 울려 퍼졌고, 서준태는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밖에 있던 유혜선은 이 광경에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곧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준태야, 민아 씨는 이미 죽었어. 아무리 슬퍼도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서준태는 뒤돌아 그녀를 쏘아보더니 곧 소리쳤다.“죽다니! 진민아가 죽을 리가 없어! 절대 그럴 리 없어!”그
서준태의 한마디 말에 감시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유혜선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서준태의 말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준태야, 이제 그만해. 벌써 이게 며칠째야. 게다가 난 보다시피 멀쩡하잖아.”“안 돼, 진민아가 널 사무실에 그렇게 오래 가뒀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해.”유혜선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계속 말했다.“준태야,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민아 씨는 네 아내잖아.”“민아 씨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건... 내 잘못이기도 해. 내가 계속 너한테 민폐를 끼쳤으니 당연히 질투하실 만해. 그러니까 이제 풀어줘.”유혜선은 겉으로는 나를 도와주는 척하며 사실은 잘못을 모두 내게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준태는 늘 그녀의 수작에 넘어갔다.“민아야, 마음이 너무 약한 것도 문제야. 됐어, 네가 풀어주라고 했으니 한번 기회를 줄게.”유혜선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태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서준태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괜찮아?”“아니야. 민아 씨가 며칠 동안 갇혀 있었으니, 혹시 모르니 의사를 데려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유혜선이 갑자기 호의를 베풀다니.나는 의심스러웠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의사를 데려가야 내가 이미 죽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안 그러면 일이 분명 더 복잡해질 것이다.‘서준태, 네가 진실을 알게 된 후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서준태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유혜선의 손을 잡고 말했다.“진민아가 네가 가진 이해심의 반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준태야, 어쨌든 인아 씨는 네 아내야.”유혜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서준태의 눈빛은 여전히 복잡해 보였다.나는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아내라니. 이 호칭이 이렇게 우스울 줄이야.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태였다. 더 이상 이런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었기
나는 서준태가 유혜선을 객실로 데려가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지켜봤다.그때 하늘이 번쩍이며 번개가 내리치더니 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꺄악!” 유혜선은 비명을 지르며 서준태의 품에 뛰어들었다.서준태는 순간 몸이 굳어졌지만, 유혜선은 그의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준태야, 나 너무 무서워.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주면 안 돼?”서준태는 잠시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더니 말했다.“그래.”그 순간, 나는 스스로가 매우 우스웠다. 나도 번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내가 혼자 살던 시절,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던 날 밤이었다.집에 정전까지 되자 나는 무서워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서준태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이라도 위로받으려 했으나 서준태의 대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몇 살인데 아직도 번개가 무섭다는 거야? 진민아, 자꾸 이런 식으로 내 관심을 얻으려고 하지 마. 너도 어른이니까 이런 것쯤은 혼자서 처리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서준태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나는 그날 밤 이불을 꼭 껴안고 핸드폰 불빛 하나로 밤을 보냈다.나는 해가 뜨고 나서야 간신히 잠들었다.지금 생각하면, 참 비참했다.서준태는 늘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비록 죽었지만, 천둥소리가 나자 여전히 무서웠다.나는 몸을 떨며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일 수 없었다.결국, 나는 그대로 남아 서준태가 유혜선을 달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유혜선은 서준태의 품에 안긴 채, 자랑스러운 눈빛을 보였다.나는 한숨을 쉬며 속으로 생각했다.‘유혜선은 서준태의 영원히 잊지 못할 첫사랑인데, 나는 도대체 서준태한테 뭐였을까?’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바라봤다.죽었음에도 여전히 번개가 두려운 내가 참 우스웠다.다행히 번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한 시간이 지나자 번개 소리가 멎었고, 서준태는 객실에서 나왔다.유혜선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서준태는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벌써 사흘째네. 진민아는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어?”“그 여자 정말 고집불통이네!”그때 서준태의 첫사랑 유혜선이 닭곰탕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준태야, 됐어. 민아 씨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사흘이나 지났으면 됐잖아.”유혜선을 보자 서준태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진민아가 너처럼 조금만 이해심이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나 때문에 너무 화내지 마. 민아 씨는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신 걸 거야.”그 말을 듣고 서준태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진민아가 잘못을 인정했어?”[아니요. 하지만 안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요?]“무슨 일이 생기겠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계속 가두고 있어!”전화를 끊은 그는 다시 차가운 표정을 지었고, 유혜선은 옆에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서준태, 넌 영원히 내 대답을 듣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난 이미 죽었으니까.’3일 전, 나는 이미 죽었다.그 폐기된 냉동창고는 그들이 떠난 뒤 전기가 들어와 작동하기 시작했다.나는 그 안에서 외치고 또 외쳤지만,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처음에는 문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며 애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대답뿐이었다.“대표님께서 안에서 반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모님, 저희는 그저 대표님께서 내린 지시를 따르는 것뿐입니다.”“아니에요! 제발 부탁이에요, 냉동창고가 작동됐어요. 사람 좀 불러 주세요!”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비웠는지 문 밖은 매우 조용해졌다. 나는 처음에는 침착하게 탈출할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점점 온도가 낮아지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나는 체온을 유지하려고 계속 운동을 했지만, 나중에는 힘이 빠져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어 결국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이곳은 원래 해산물을 저장하던 냉동창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