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쯤 지났을까, 한 남자가 파출소 문에 들어섰다.2년 반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단번에 이동우를 알아보았다. 여전히 비리비리하고 재수 없는 얼굴이었다.그가 오자 아줌마와 여자는 울면서 그에게 달려갔다.“아이고, 우리 사위! 드디어 왔구먼! 조금만 더 늦었으면 우리는 저년한테 맞아 죽을 뻔했어! 이 여자 미친년이야! 집이 자기 거라고 우기고 가짜 서류사진까지 만들어 왔잖아! 빨리 경찰한테 그 집은 자네가 산 집이라고 말해 줘!”나는 코웃음 쳤다.“어머. 방금 나랑 경찰을 사기꾼이라더니 이제는 내가 미친년이야?”“이 망할 년아, 입 닥쳐!”여자는 나를 향해 소리치고는 이동우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여보. 저년은 우리 집을 뺏으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엄마까지 때렸어! 당신이 좀 어떻게 해줘.”나는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좋아 좋아. 도둑놈이 뭘 어쩔 건지 어디 한번 봐야겠군!’이동우는 차갑게 두 여자를 밀어놓고 경찰에게 다가가 담배를 권했다.“죄송합니다, 형사님. 장모님이랑 아내가 철이 없어서 괜히 귀찮게 해 드렸네요.”담배를 권하고 나서 그는 내 앞으로 와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서진아, 오랜만이야.”나: ...“누가 너랑 만나고 싶대?”나는 혐오스럽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당장 네 가족 데리고 내 집에서 꺼져. 그리고 집수리비 내놔!”“2년 만에 보는데, 너 아직도 똑같이 구질구질하구나.”이동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러니까 네가 아직 결혼 못 하는 거 아니야. 난 이미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데.”...제길, 미친 거 아니야.“이동우, 너 돌았니?”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내가 결혼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 건 네가 내 허락도 없이 어떻게 내 집에서 결혼할 수 있어! 너 진짜 뻔뻔하다!”“그래서 뭐?”이동우는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너는 지금 결혼도 못 하고 있는데 인테리어도 다 돼 있는 집을 빈집으로 놔두는 것보다 내가 몇 년 사는 게 낫
“그래, 몰아붙일 거야! 그건 내 집이니까 내가 부수든, 남에게 주든 너한테는 절대 안 빌려줘.”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내일 저녁까지 내 집에서 꺼져! 그리고 집수리비도 물어내! 안 그러면 법정에서 보자!"이동우와 다른 두 여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나는 경찰과 함께 다시 801호로 가서 사진을 찍고 증거를 확보했다.전에는 제대로 못 봤는데, 집 안팎을 샅샅이 살펴보니 피해가 상상 이상이었다.거실 벽에는 스무 개도 넘는 못 자국에 온갖 흠집과 얼룩이 있었고 화장실 하수구는 막혀서 오수가 넘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거실과 작은방의 맞춤 커튼에는 담뱃불 자국이 숭숭 나 있었고 주방 창문은 깨져 있었으며 대리석 바닥도 여러 군데 갈라져 있었다.핸드폰을 꺼내 교체 및 수리 비용을 알아보니 최소 1600만은 들 것 같았다.나는 경찰이 사진 찍고 증거를 확보한 기록과 견적서를 이동우에게 보내며 돈을 보내라고 했다.하지만 그는 돈이 없다고 했다. 방금 결혼식을 올려서 배상할 돈이 없다는 것이다.“그럼 법정에서 보자.”나는 차갑게 말했다.“내 앞에서 꼴값 떨지 마! 무슨 수를 써서든 갚아. 대출을 받아서라도 돈 물어내라고!”집에 돌아와 나는 부모님께 집 상황을 말씀드렸다.아버지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놈 가족들을 쫓아내고 싶어 하셨다.“세상에 저런 파렴치한 놈들이 다 있나! 기가 막히는군!”한바탕 욕을 퍼부으신 후, 아버지는 곧바로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신신당부하셨다.“내일 너 혼자 가지 마라. 사촌 형제들 다 데리고 가. 그놈들이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집 안에 있는 물건 다 던져 버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다음 날 오후, 나는 180cm가 넘는 사촌 형제들을 7~8명 데리고 희망아파트로 향했다. 우리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조폭들 같았다.801호에 도착하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도 옮겨진 흔적 없이 그대로였다.“이동우,
“서진아, 너도 이제 스물여덟인데 나 말고 누가 널 데려가겠어? 네 꼬라지 좀 봐. 내가 널 데려가는 건 다 네 조상님 덕분인 줄 알아!”이동우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막무가내로 나왔다.“집은 네 거지만 난 안 나갈 거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경찰에 신고해 봐. 경찰이 날 강제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아?”“누가 우리 동생 데려갈 사람 없다고 했냐!”큰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다른 사촌 형제들도 뒤따라 들어왔다. 이내 거실이 가득 찼다.이동우는 순간 긴장하며 말을 더듬었다.“서진아, 너... 너 이 사람들을 왜 데려온 거야? 설마 날 때리려는 건 아니겠지! 폭행죄는 불법이야!”“난 쓰레기는 안 때려!”큰오빠는 주먹을 쥐고 손을 풀며 다른 형제들에게 손짓했다.“얘들아, 일 시작하자. 집 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몽땅 밖으로 던져 버려!”“알겠어요!”형제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그들은 벽에 걸린 사진, 거실의 노래방 기계, 침실의 이불, 침대 등 모든 것을 재빨리 접고 포장해서 밖으로 내던졌다.이동우는 거실에 서서 두 눈을 부릅떴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여기 커다란 쓰레기 하나가 더 있는데 치우는 거 까먹지 마.”내가 재빨리 말했다.모든 남자들이 우르르 이동우를 에워싸더니 하나같이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이동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폭행은 불법이야. 나... 가면 될 거 아니야.”말을 마치자마자 줄행랑을 치려는 그를 큰오빠가 붙잡았다.“돈도 안 갚고 도망가려고? 그렇게 쉽게 안 되지! 당장 내 동생에게 돈 보내! 안 그러면 우리가 가만 안 둬!”“보낼게요. 내가 언제 안 준다고 했어요...”이동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열어 카톡으로 200만을 보냈다. 곧 잔액 부족이 떴다. 그래서 카드로 160만을 계좌 이체했고 모바일 대출을 이용하고 또 두 군데에 전화까지 걸어 간신히 1600만을 채워 나에게 주었다.돈을 받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헛
그 일이 있고 나서 엄마는 이동우의 소식을 여기저기서 알아보셨다.얼마 후 집이 팔렸다.그 무렵 엄마가 이동우의 이혼 소식을 전해 주셨는데 꽤 시끄럽게 끝났다고 했다.“여자 쪽은 시골 사람인데 이동우가 도시에 집이 있다는 말만 듣고 결혼했대. 그런데 집이 가짜라는 걸 알고 여자 쪽에서 난리가 난 거지. 그래서 이사 나간 후 바로 이혼을 요구했대. 이동우 쪽에서는 이혼은 해 주겠지만 예물금 2000만 원과 패물값 600만 그리고 결혼식 비용과 친척 접대 비용까지 모두 돌려달라고 했대.”“여자 쪽은 기가 막혔지. 남자가 먼저 결혼 사기 쳤는데 왜 예물금을 돌려줘야 하냐고 말이야. 그러다가 양쪽에서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가 싸움까지 났고 결국 법정에서 만나 두 달 동안 소송을 벌였대. 최종 판결은 예물금 600만 원만 돌려주라고 판결했대. 이동우가 먼저 속였으니 결혼식 비용과 패물 값은 반환 의무가 없다고 판단된 거지. 그런데 이동우네는 그 판결이 맘에 안 들어서 법원 앞에서 여자 쪽 가족이랑 또 싸움을 벌였다잖아. 일이 꽤 커져서 그날 뉴스 헤드라인에도 나왔대.”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쌤통이야! 내가 판사였으면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해 주라고 했을 거예요!”“너 어떻게 알았냐! 그들이 법원 앞에서 싸웠다 했잖아. 여자 쪽 엄마가 넘어지면서 죽는소리를 해서 119를 불러 병원에 갔더니 진짜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잖아. 여자 쪽에서는 이동우네 때문에 병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그들은 또 2000만을 배상했대.”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웃음이 터졌고 그저 재미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일이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이동우는 미쳐버린 건지 악령처럼 끝없이 달라붙었다.한 달 뒤, 나는 야근을 하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전기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한 블록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누군가 골목에서 튀어나왔다.사람을 칠까 봐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
이동우는 갑자기 흥분하며 내 목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다 너 때문에 내가 마누라도 잃고 빚더미에 앉은 거잖아! 남한테 돈까지 물어줘야 한다고. 네가 쪼잔하게 나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됐겠어?!”나는 머리가 핑핑 돌고 속이 메스꺼웠지만 속으로는 욕이 절로 나왔다.‘네 마누라가 도망간 건 네가 사기 쳐서 그런 거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서진아, 너희 집은 돈도 많고 집도 많으면서 나를 잠깐 살게 해 주면 어디가 덧나? 왜 날 쫓아낸 건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그 집은 원래 나랑 결혼하려고 준비한 집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거기 살면 안 돼? 네가 뭔데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들까지 불러서 날 쫓아내! 이제 난 빈털터리에 혼자 남았어! 이제 속이 시원해? 기분 좋아?!”“난 너희 같은 금수저 여자들이 제일 싫어! 집에서는 아빠한테 빌붙어 살고 결혼하면 남편한테 빌붙어 살고! 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남자 피만 빨아먹잖아! X발, 결혼하는데 집, 차, 예단에 금까지 왜 다 남자가 해 와야 돼? 너희 여자는 뭘 하는데? 몸만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집안일도 다 나한테 시키면서! 너희들은 왜 그렇게 뻔뻔하냐고!”이동우의 눈은 핏줄이 터질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미친 듯이 나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혼으로 받은 충격 때문에 모든 여성을 향해 불만을 쏟아내며 화풀이를 하는 걸지도 몰랐다.이 남자는 이미 심리적으로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지금 나는 무서워서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했다가 자칫 잘못 건드리면 그는 나를 바로 목 졸라 죽일지도 모른다.어떡하지!내 머릿속은 미친 듯이 돌아갔다. 이 길에는 원래도 사람들이 드물었지만 한밤중이라 더더욱 인적이 끊겼다. 대체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이동우를 달래려고 시도했다.“나 알아, 네 마음 이해해... 사실 너를 쫓아내려 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냥 네가
“801호 주민분, 결혼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척 친구들을 불러 밤새도록 카드놀이하고 노래 부르는 건 너무하시네요! 벌써 며칠째 이러시는데, 주변 주민들 항의가 빗발칩니다. 새벽 두 시 반까지 거실에서 노래를 불러서 온 건물 사람들이 잠을 못 잤다고 하네요.”“다른 집들은 신혼집에서 밤늦게까지 놀아도 자정이면 다들 집에 가서 쉬는데, 왜 당신 집만 며칠씩이나 이러는 겁니까? 집은 당신이 샀지만, 공동주택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밤늦게까지 너무 시끄럽게 하면 주민들 불만이 폭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웃끼리 어떻게 얼굴 보고 살겠습니까? 저희 관리사무소도 중간에서 곤란합니다. 제발 자제 좀 부탁드립니다. 낮에 카드놀이 하는 건 괜찮지만 밤에는 조용히 해 주세요!”오늘은 쉬는 날이라 늦잠 좀 자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잠이 깨 버렸다.상대방의 꾸중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리둥절했다.“아, 뭐야. 누구세요? 전화 잘못 거셨어요!”그제야 전화 건 사람이 자기소개를 했다.“임서진 씨, 주군시 희망아파트 6동 801호 주민 맞으시죠? 저는 여기 관리사무소 직원입니다. 그때 소유권 이전 등기하실 때 제가 카톡을 추가했었고 관리사무소 단톡방에도 초대했었는데 거의 안 계신다고 안 들어오셨죠. 지금 결혼하신 건 좋은 일이지만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말씀드리는 겁니다.”그의 말에 나는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누가 결혼했다고? 내가?’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3년 전에 희망아파트에 집을 한 채 사놓은 것이 있었다.당시에는 신혼집으로 쓰려고 했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다.2년 동안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그 집을 팔까 고민도 했었지만 집값이 너무 떨어져서 너무 손해 보는 것 같아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근데 지금 내 집에서 누가 결혼식을 올렸다고?“분명히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저는 남자친구도 없는데 결혼할 리가 없잖아요!”
이동우, 내 전 남자친구였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 약혼자였다. 헤어질 당시 우리는 이미 약혼한 상태였으니까.그는 시골 출신에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있어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운 사람이었다.몇 년 전, 어리고 철없던 시절, 나는 마치 홀린 듯 그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부모님은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를 따라 시골로 가서 고생할까 봐 먼저 시내에 있는 희망아파트 801호를 사 주셨다.집을 사고 난 후, 부모님은 이동우 측에서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하길 바라셨지만 그는 등기부 등본에 자기 이름도 없는데 왜 돈을 내냐며 거절했다.결국, 나는 졸업 후 2년 동안 모은 돈을 몽땅 털어 신혼집 인테리어를 했다.약혼 후, 이동우는 갑자기 등기부 등본에 자기 이름을 올려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다행히 부모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셔서 집을 부모님 명의로 사셨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명의 변경을 할 수 없었다.이동우는 나더러 부모님을 설득해서 집 명의를 우리 둘 이름으로 바꾸라고 했지만 나도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인테리어 할 때 너희 집에서 돈을 내면 네 이름을 넣어준다고 했잖아. 근데 네가 싫다고 해놓고 왜 이래!”“서진아, 너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결혼식 하는데 돈 안 드는 줄 알아? 너희 집에 160만 원의 예물금도 줬고 패물도 다 맞춰줬잖아?”이동우는 나를 꾸짖었다.“너도 알잖아. 우리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는데 1년에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어? 인테리어 비용은 수천만이 드는데 그럼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살라고!”“근데 집 살 때 너희 집에서 돈 낸 것도 아니고 인테리어도 나랑 울 엄마 아빠가 했잖아.”나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 돈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야. 힘들게 버신 돈이라고. 너희 집은 돈 한 푼 안 냈는데 어떻게 집 명의를 가져가겠다는 거야?”“서진아, 너 왜 이렇게 물질적이니? 우린 곧 결혼할 사이인데 뭘 이렇게 따져?”적반하장으로 이동우가 말했다.“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는 그와 다시는 엮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나는 즉시 침대에서 뛰어내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희망아파트 6동.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01호 앞에 도착했다.확실히 엉망진창이었다.간식 부스러기며 과일 껍질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복도까지 널브러져 있었고 더러운 발자국, 담뱃재, 침, 휴짓조각들이 바닥에 붙어 있어 역겨웠다.주민들이 항의할 만도 했다. 내가 이웃이었어도 당장 욕했을 것이다.801호 현관문 양쪽에는 리본들이 드리워져 있었고 문 앞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가까이 가서 보니 원래 달려 있던 도어록이 뜯겨 나가고 새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었다.그제야 비밀번호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나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나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온 작은 망치를 꺼내 문을 마구 두드렸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열 몇 번이나 두드리고 나서야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아이고, 세상에! 지진 난 줄 알았네!”쉰 살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대낮부터 왜 남의 집에 와서 문짝 부수고 난리야? 너 미쳤어?”“말 참 곱게 하시네. 누가 여기가 네 집이래?”나는 앞으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집 구조는 하나도 바뀐 게 없었지만 벽에는 이동우와 그의 아내의 웨딩 사진이 걸려 있었고 곳곳에 색색의 리본이 붙어 있어 신혼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너 누구야?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오래!”아줌마는 나를 따라 들어오며 욕을 퍼부었다.“누구 집 미친년이 밖으로 뛰쳐나왔나 보네!”나는 아줌마를 무시하고 세 개의 방을 샅샅이 뒤졌다. 베란다와 작은방에는 카드놀이를 하던 깔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과일 껍질이 널려 있었으며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났다.거실에는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노래 목록 화면이 아직 켜져 있는 걸 보니 밤새도록 놀았던 게 분명했다.나는
이동우는 갑자기 흥분하며 내 목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다 너 때문에 내가 마누라도 잃고 빚더미에 앉은 거잖아! 남한테 돈까지 물어줘야 한다고. 네가 쪼잔하게 나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됐겠어?!”나는 머리가 핑핑 돌고 속이 메스꺼웠지만 속으로는 욕이 절로 나왔다.‘네 마누라가 도망간 건 네가 사기 쳐서 그런 거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서진아, 너희 집은 돈도 많고 집도 많으면서 나를 잠깐 살게 해 주면 어디가 덧나? 왜 날 쫓아낸 건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그 집은 원래 나랑 결혼하려고 준비한 집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거기 살면 안 돼? 네가 뭔데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들까지 불러서 날 쫓아내! 이제 난 빈털터리에 혼자 남았어! 이제 속이 시원해? 기분 좋아?!”“난 너희 같은 금수저 여자들이 제일 싫어! 집에서는 아빠한테 빌붙어 살고 결혼하면 남편한테 빌붙어 살고! 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남자 피만 빨아먹잖아! X발, 결혼하는데 집, 차, 예단에 금까지 왜 다 남자가 해 와야 돼? 너희 여자는 뭘 하는데? 몸만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집안일도 다 나한테 시키면서! 너희들은 왜 그렇게 뻔뻔하냐고!”이동우의 눈은 핏줄이 터질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미친 듯이 나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혼으로 받은 충격 때문에 모든 여성을 향해 불만을 쏟아내며 화풀이를 하는 걸지도 몰랐다.이 남자는 이미 심리적으로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지금 나는 무서워서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했다가 자칫 잘못 건드리면 그는 나를 바로 목 졸라 죽일지도 모른다.어떡하지!내 머릿속은 미친 듯이 돌아갔다. 이 길에는 원래도 사람들이 드물었지만 한밤중이라 더더욱 인적이 끊겼다. 대체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지?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이동우를 달래려고 시도했다.“나 알아, 네 마음 이해해... 사실 너를 쫓아내려 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냥 네가
그 일이 있고 나서 엄마는 이동우의 소식을 여기저기서 알아보셨다.얼마 후 집이 팔렸다.그 무렵 엄마가 이동우의 이혼 소식을 전해 주셨는데 꽤 시끄럽게 끝났다고 했다.“여자 쪽은 시골 사람인데 이동우가 도시에 집이 있다는 말만 듣고 결혼했대. 그런데 집이 가짜라는 걸 알고 여자 쪽에서 난리가 난 거지. 그래서 이사 나간 후 바로 이혼을 요구했대. 이동우 쪽에서는 이혼은 해 주겠지만 예물금 2000만 원과 패물값 600만 그리고 결혼식 비용과 친척 접대 비용까지 모두 돌려달라고 했대.”“여자 쪽은 기가 막혔지. 남자가 먼저 결혼 사기 쳤는데 왜 예물금을 돌려줘야 하냐고 말이야. 그러다가 양쪽에서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가 싸움까지 났고 결국 법정에서 만나 두 달 동안 소송을 벌였대. 최종 판결은 예물금 600만 원만 돌려주라고 판결했대. 이동우가 먼저 속였으니 결혼식 비용과 패물 값은 반환 의무가 없다고 판단된 거지. 그런데 이동우네는 그 판결이 맘에 안 들어서 법원 앞에서 여자 쪽 가족이랑 또 싸움을 벌였다잖아. 일이 꽤 커져서 그날 뉴스 헤드라인에도 나왔대.”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쌤통이야! 내가 판사였으면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해 주라고 했을 거예요!”“너 어떻게 알았냐! 그들이 법원 앞에서 싸웠다 했잖아. 여자 쪽 엄마가 넘어지면서 죽는소리를 해서 119를 불러 병원에 갔더니 진짜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잖아. 여자 쪽에서는 이동우네 때문에 병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그들은 또 2000만을 배상했대.”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웃음이 터졌고 그저 재미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일이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이동우는 미쳐버린 건지 악령처럼 끝없이 달라붙었다.한 달 뒤, 나는 야근을 하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전기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에서 한 블록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누군가 골목에서 튀어나왔다.사람을 칠까 봐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
“서진아, 너도 이제 스물여덟인데 나 말고 누가 널 데려가겠어? 네 꼬라지 좀 봐. 내가 널 데려가는 건 다 네 조상님 덕분인 줄 알아!”이동우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막무가내로 나왔다.“집은 네 거지만 난 안 나갈 거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경찰에 신고해 봐. 경찰이 날 강제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아?”“누가 우리 동생 데려갈 사람 없다고 했냐!”큰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다른 사촌 형제들도 뒤따라 들어왔다. 이내 거실이 가득 찼다.이동우는 순간 긴장하며 말을 더듬었다.“서진아, 너... 너 이 사람들을 왜 데려온 거야? 설마 날 때리려는 건 아니겠지! 폭행죄는 불법이야!”“난 쓰레기는 안 때려!”큰오빠는 주먹을 쥐고 손을 풀며 다른 형제들에게 손짓했다.“얘들아, 일 시작하자. 집 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몽땅 밖으로 던져 버려!”“알겠어요!”형제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그들은 벽에 걸린 사진, 거실의 노래방 기계, 침실의 이불, 침대 등 모든 것을 재빨리 접고 포장해서 밖으로 내던졌다.이동우는 거실에 서서 두 눈을 부릅떴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여기 커다란 쓰레기 하나가 더 있는데 치우는 거 까먹지 마.”내가 재빨리 말했다.모든 남자들이 우르르 이동우를 에워싸더니 하나같이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이동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폭행은 불법이야. 나... 가면 될 거 아니야.”말을 마치자마자 줄행랑을 치려는 그를 큰오빠가 붙잡았다.“돈도 안 갚고 도망가려고? 그렇게 쉽게 안 되지! 당장 내 동생에게 돈 보내! 안 그러면 우리가 가만 안 둬!”“보낼게요. 내가 언제 안 준다고 했어요...”이동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열어 카톡으로 200만을 보냈다. 곧 잔액 부족이 떴다. 그래서 카드로 160만을 계좌 이체했고 모바일 대출을 이용하고 또 두 군데에 전화까지 걸어 간신히 1600만을 채워 나에게 주었다.돈을 받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헛
“그래, 몰아붙일 거야! 그건 내 집이니까 내가 부수든, 남에게 주든 너한테는 절대 안 빌려줘.”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내일 저녁까지 내 집에서 꺼져! 그리고 집수리비도 물어내! 안 그러면 법정에서 보자!"이동우와 다른 두 여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나는 경찰과 함께 다시 801호로 가서 사진을 찍고 증거를 확보했다.전에는 제대로 못 봤는데, 집 안팎을 샅샅이 살펴보니 피해가 상상 이상이었다.거실 벽에는 스무 개도 넘는 못 자국에 온갖 흠집과 얼룩이 있었고 화장실 하수구는 막혀서 오수가 넘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거실과 작은방의 맞춤 커튼에는 담뱃불 자국이 숭숭 나 있었고 주방 창문은 깨져 있었으며 대리석 바닥도 여러 군데 갈라져 있었다.핸드폰을 꺼내 교체 및 수리 비용을 알아보니 최소 1600만은 들 것 같았다.나는 경찰이 사진 찍고 증거를 확보한 기록과 견적서를 이동우에게 보내며 돈을 보내라고 했다.하지만 그는 돈이 없다고 했다. 방금 결혼식을 올려서 배상할 돈이 없다는 것이다.“그럼 법정에서 보자.”나는 차갑게 말했다.“내 앞에서 꼴값 떨지 마! 무슨 수를 써서든 갚아. 대출을 받아서라도 돈 물어내라고!”집에 돌아와 나는 부모님께 집 상황을 말씀드렸다.아버지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놈 가족들을 쫓아내고 싶어 하셨다.“세상에 저런 파렴치한 놈들이 다 있나! 기가 막히는군!”한바탕 욕을 퍼부으신 후, 아버지는 곧바로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신신당부하셨다.“내일 너 혼자 가지 마라. 사촌 형제들 다 데리고 가. 그놈들이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집 안에 있는 물건 다 던져 버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다음 날 오후, 나는 180cm가 넘는 사촌 형제들을 7~8명 데리고 희망아파트로 향했다. 우리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조폭들 같았다.801호에 도착하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도 옮겨진 흔적 없이 그대로였다.“이동우,
30분쯤 지났을까, 한 남자가 파출소 문에 들어섰다.2년 반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단번에 이동우를 알아보았다. 여전히 비리비리하고 재수 없는 얼굴이었다.그가 오자 아줌마와 여자는 울면서 그에게 달려갔다.“아이고, 우리 사위! 드디어 왔구먼! 조금만 더 늦었으면 우리는 저년한테 맞아 죽을 뻔했어! 이 여자 미친년이야! 집이 자기 거라고 우기고 가짜 서류사진까지 만들어 왔잖아! 빨리 경찰한테 그 집은 자네가 산 집이라고 말해 줘!”나는 코웃음 쳤다.“어머. 방금 나랑 경찰을 사기꾼이라더니 이제는 내가 미친년이야?”“이 망할 년아, 입 닥쳐!”여자는 나를 향해 소리치고는 이동우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여보. 저년은 우리 집을 뺏으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엄마까지 때렸어! 당신이 좀 어떻게 해줘.”나는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좋아 좋아. 도둑놈이 뭘 어쩔 건지 어디 한번 봐야겠군!’이동우는 차갑게 두 여자를 밀어놓고 경찰에게 다가가 담배를 권했다.“죄송합니다, 형사님. 장모님이랑 아내가 철이 없어서 괜히 귀찮게 해 드렸네요.”담배를 권하고 나서 그는 내 앞으로 와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서진아, 오랜만이야.”나: ...“누가 너랑 만나고 싶대?”나는 혐오스럽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당장 네 가족 데리고 내 집에서 꺼져. 그리고 집수리비 내놔!”“2년 만에 보는데, 너 아직도 똑같이 구질구질하구나.”이동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러니까 네가 아직 결혼 못 하는 거 아니야. 난 이미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데.”...제길, 미친 거 아니야.“이동우, 너 돌았니?”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내가 결혼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 건 네가 내 허락도 없이 어떻게 내 집에서 결혼할 수 있어! 너 진짜 뻔뻔하다!”“그래서 뭐?”이동우는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너는 지금 결혼도 못 하고 있는데 인테리어도 다 돼 있는 집을 빈집으로 놔두는 것보다 내가 몇 년 사는 게 낫
“엄마, 아무나 들이면 어떡해!”여자는 휴대폰을 들고 나를 찍으며 인상을 썼다.“요즘 세상에 미친 사람들 많잖아. 이 여자가 우리 집 물건을 부수거나 난동이라도 피우면 어쩌려고 그래!”그 말을 듣고 아줌마는 빗자루를 들고 나를 위협했다.“당장 나가! 안 그러면 이걸로 때릴 거다!”아줌마는 빗자루를 휘두르며 위협했다.지금은 내가 뭐라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었다.어쨌든 증거 영상은 확보했으니 일단 나가서 경찰에 신고하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그들을 무단 침입으로 고소할 것이다.그런데 현관문까지 갔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내 머리를 쳤고 아줌마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역시 미친년이네! 좋은 말로 할 때 안 나가? 우리 쉬는 데 방해하지 말고! 안 나가면 가만 안 둬!”순간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빗자루를 빼앗아 아줌마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죽고 싶어? 내 집을 불법 점거해 놓고 나를 때려?”끼리끼리 만난다더니! 진짜 어이없었다.원래는 둘 다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아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지만 나를 때리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아줌마는 바닥에 쓰러져 머리를 감싸고 뒹굴며 소리를 질렀다.“사람 살려. 사람 살려! 딸, 얼른 경찰에 신고해. 우리 집에 무단침입해서 날 때리기까지 했다고 말이야!”젊은 여자는 뒤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다가 내가 반격하자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아줌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나한테 엿 먹이려고? 좋아. 내가 신고할 필요도 없겠네.’곧 두 명의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누가 신고했죠?”“형사님, 저요!”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여자가 황급히 문을 열고 나오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제가 신고했어요! 이 여자가 갑자기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사생활을 촬영하고 우리 엄마를 폭행했어요!”아줌마도 머리를 감싸 쥐고 나오며 신음 소리를 냈다.“맞아요, 형사님. 빨리 이 사람 잡아가세요! 저의 치료비랑 우리 딸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반드시 받아내야겠어요!”경찰은 나를 보며
나는 그와 다시는 엮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나는 즉시 침대에서 뛰어내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가방을 챙겨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희망아파트 6동.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801호 앞에 도착했다.확실히 엉망진창이었다.간식 부스러기며 과일 껍질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복도까지 널브러져 있었고 더러운 발자국, 담뱃재, 침, 휴짓조각들이 바닥에 붙어 있어 역겨웠다.주민들이 항의할 만도 했다. 내가 이웃이었어도 당장 욕했을 것이다.801호 현관문 양쪽에는 리본들이 드리워져 있었고 문 앞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가까이 가서 보니 원래 달려 있던 도어록이 뜯겨 나가고 새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었다.그제야 비밀번호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나는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나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온 작은 망치를 꺼내 문을 마구 두드렸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열 몇 번이나 두드리고 나서야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아이고, 세상에! 지진 난 줄 알았네!”쉰 살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대낮부터 왜 남의 집에 와서 문짝 부수고 난리야? 너 미쳤어?”“말 참 곱게 하시네. 누가 여기가 네 집이래?”나는 앞으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집 구조는 하나도 바뀐 게 없었지만 벽에는 이동우와 그의 아내의 웨딩 사진이 걸려 있었고 곳곳에 색색의 리본이 붙어 있어 신혼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너 누구야? 누가 우리 집에 들어오래!”아줌마는 나를 따라 들어오며 욕을 퍼부었다.“누구 집 미친년이 밖으로 뛰쳐나왔나 보네!”나는 아줌마를 무시하고 세 개의 방을 샅샅이 뒤졌다. 베란다와 작은방에는 카드놀이를 하던 깔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과일 껍질이 널려 있었으며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났다.거실에는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노래 목록 화면이 아직 켜져 있는 걸 보니 밤새도록 놀았던 게 분명했다.나는
이동우, 내 전 남자친구였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 약혼자였다. 헤어질 당시 우리는 이미 약혼한 상태였으니까.그는 시골 출신에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있어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운 사람이었다.몇 년 전, 어리고 철없던 시절, 나는 마치 홀린 듯 그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부모님은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를 따라 시골로 가서 고생할까 봐 먼저 시내에 있는 희망아파트 801호를 사 주셨다.집을 사고 난 후, 부모님은 이동우 측에서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하길 바라셨지만 그는 등기부 등본에 자기 이름도 없는데 왜 돈을 내냐며 거절했다.결국, 나는 졸업 후 2년 동안 모은 돈을 몽땅 털어 신혼집 인테리어를 했다.약혼 후, 이동우는 갑자기 등기부 등본에 자기 이름을 올려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다행히 부모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셔서 집을 부모님 명의로 사셨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명의 변경을 할 수 없었다.이동우는 나더러 부모님을 설득해서 집 명의를 우리 둘 이름으로 바꾸라고 했지만 나도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인테리어 할 때 너희 집에서 돈을 내면 네 이름을 넣어준다고 했잖아. 근데 네가 싫다고 해놓고 왜 이래!”“서진아, 너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결혼식 하는데 돈 안 드는 줄 알아? 너희 집에 160만 원의 예물금도 줬고 패물도 다 맞춰줬잖아?”이동우는 나를 꾸짖었다.“너도 알잖아. 우리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는데 1년에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어? 인테리어 비용은 수천만이 드는데 그럼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살라고!”“근데 집 살 때 너희 집에서 돈 낸 것도 아니고 인테리어도 나랑 울 엄마 아빠가 했잖아.”나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 돈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야. 힘들게 버신 돈이라고. 너희 집은 돈 한 푼 안 냈는데 어떻게 집 명의를 가져가겠다는 거야?”“서진아, 너 왜 이렇게 물질적이니? 우린 곧 결혼할 사이인데 뭘 이렇게 따져?”적반하장으로 이동우가 말했다.“네가 날 사랑한다면
“801호 주민분, 결혼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척 친구들을 불러 밤새도록 카드놀이하고 노래 부르는 건 너무하시네요! 벌써 며칠째 이러시는데, 주변 주민들 항의가 빗발칩니다. 새벽 두 시 반까지 거실에서 노래를 불러서 온 건물 사람들이 잠을 못 잤다고 하네요.”“다른 집들은 신혼집에서 밤늦게까지 놀아도 자정이면 다들 집에 가서 쉬는데, 왜 당신 집만 며칠씩이나 이러는 겁니까? 집은 당신이 샀지만, 공동주택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밤늦게까지 너무 시끄럽게 하면 주민들 불만이 폭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웃끼리 어떻게 얼굴 보고 살겠습니까? 저희 관리사무소도 중간에서 곤란합니다. 제발 자제 좀 부탁드립니다. 낮에 카드놀이 하는 건 괜찮지만 밤에는 조용히 해 주세요!”오늘은 쉬는 날이라 늦잠 좀 자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잠이 깨 버렸다.상대방의 꾸중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리둥절했다.“아, 뭐야. 누구세요? 전화 잘못 거셨어요!”그제야 전화 건 사람이 자기소개를 했다.“임서진 씨, 주군시 희망아파트 6동 801호 주민 맞으시죠? 저는 여기 관리사무소 직원입니다. 그때 소유권 이전 등기하실 때 제가 카톡을 추가했었고 관리사무소 단톡방에도 초대했었는데 거의 안 계신다고 안 들어오셨죠. 지금 결혼하신 건 좋은 일이지만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말씀드리는 겁니다.”그의 말에 나는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누가 결혼했다고? 내가?’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3년 전에 희망아파트에 집을 한 채 사놓은 것이 있었다.당시에는 신혼집으로 쓰려고 했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다.2년 동안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그 집을 팔까 고민도 했었지만 집값이 너무 떨어져서 너무 손해 보는 것 같아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근데 지금 내 집에서 누가 결혼식을 올렸다고?“분명히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저는 남자친구도 없는데 결혼할 리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