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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작가: 기달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나는 얼굴에 광기 어린 감정을 드러낸 임기택을 바라보며 약간 의아해했다. 그는 두 팔을 벌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윤설아, 내 동생, 오빠가 드디어 다시 널 볼 수 있게 됐어.”

나는 혐오스럽다는 듯 몸을 돌렸다.

“임기택.”

“내가 말했잖아.”

“더 이상 너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고. 난 더 이상 네 여동생이 아니야.”

그의 눈에서 흥분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팔도 점차 내려갔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윤설아, 내가 죽으면 네가 조금이라도 기뻐할까?”

그의 목소리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아니.”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네가...”

그는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엔 거의 병적으로 보일 만큼의 경건함이 스쳐 갔다.

“오래오래 살아서...”

“외롭게 늙어가길 바래.”

그의 미소가 멈췄다.

“윤설아, 방금 뭐라고 했어?”

“네가 죽지 못했으면 좋겠어.”

“널 보고 싶지 않으니까.”

“임기택, 이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영원토록, 나는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아.”

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임시후와 임하늘을 찾아갔다.

그들은 내 무덤 앞에 서 있었다.

나를 추모하며.

바람이 불어오자 나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멀리 달려갔다.

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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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파에 앉아 있던 오빠의 딱딱한 얼굴에 마침내 미소가 번졌다.나는 여동생이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초등학교 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여동생이 우리 집에 왔다.돌아가신 엄마와 사뭇 닮았다고 이유로 오빠는 그녀를 유난히 예뻐했다.그래서 나도 엄마를 닮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최소한 아빠와 오빠가 지금처럼 나를 미워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임리아는 신이 나서 오빠의 차를 향해 뛰어갔다. 새하얀 공주풍 드레스를 입고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는 그녀는 코끝이 살짝 빨개진 채 환한 미소를 지었다.그 모습은 누가 봐도 애지중지 자란 공주님을 연상케 했다.오빠는 물론 아빠의 환심을 사는 데 능숙한지라 다른 사람의 호감도 쉽게 얻었다.물론 나처럼 말주변이 없고 겁이 많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왜냐하면 나는 감히 엄두가 안 났다.매번 딴지 걸거나 떼를 쓰면 오빠의 폭언과 폭력은 점점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오빠는 임리아를 끌어안고 허벅지에 앉히더니 볼을 비비적거렸다.“역시 우리 리아가 착하군. 재수탱이 임윤설은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데 말이야. 계집애가 자중할 줄도 모르고.”자중할 줄 모르다니.졸지에 난 방탕한 여자가 되었다.단지 오빠의 생일 파티에서 친구라는 남자가 내 몸을 쓰다듬을 때 무서워서 밀어내고 뺨을 한 대 때렸을 뿐인데...하지만 오빠는 즉시 나한테 따귀를 날렸다.“네 꼬락서니 좀 봐. 친구 말로는 네가 먼저 유혹했다고 하더라. 자중할 줄도 모르고 거짓말까지 해? 임윤설, 너만 보면 역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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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내 마음을 들은 듯, 오빠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내가 살던 텅 빈 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전혀 없는 듯 깨끗했다. 하긴, 임리아가 가진 것들을 나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윤설아, 너 아직 여기 있는 거지? 왠지 네가 아직도 여기 있는 것 같아.”오빠는 넋을 잃은 듯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이때 강 아주머니가 한쪽에서 나와 한숨을 쉬며 말했다.“기택아, 너도 몸 좀 챙겨야지. 윤설이도 네 걱정 많이 했어.”“네가 술에 취했을 때, 그 해장국이랑 죽은 전부 윤설이가 준비한 거야. 네 책상에 있던 눈 보호하는 물건들도, 네 셔츠랑 옷들도 다 윤설이가 다려준 거고.”임기택은 갑자기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을 때, 여동생이 방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그를 바라보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임윤설은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시기였고, 자신은 회사 일로 술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그때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가? 억지로 기억을 짜내려고 했다.“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잖아.” “네가 미워해, 임윤설.”그는 여동생의 맑고 큰 눈에 서서히 차오르는 눈물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고, 그 뒤에 약간의 죄책감이 밀려왔다. 임윤설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방으로 돌아갔고,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책상 위에 놓인 해장국을 보았다. 순간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그때 리아가 뛰어와 그의 목에 안겼다. “오빠, 돌아왔어? 많이 힘들지?”“응, 오빠 힘들었어. 해장국 준비해 줘서 고마워.”임기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거대한 고통이 몰려와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무엇이든 좋으니, 다시 한번 여동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그 순간, 문득 그는 죽음을 떠올렸고 다량의 수면제를 삼켰다.그리고 마침내, 허공에 떠 있는 임윤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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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후는 임하늘과 함께 내 유골을 돌려받으러 임기택을 찾아갔다. 두 사람 모두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나는 사람의 감정이 시간을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오빠와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오빠는 한 번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느낀 대부분의 사랑은 임하늘과 임시후로부터 온 것이었다.나는 새로운 삶을 향해 달려가던 그날 밤에 죽었다.“윤설이 유골을 돌려줘.”임하늘의 얼굴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윤설이는 네 곁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을 거야. 윤설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네 곁을 떠난 거잖아. 안 그래?”임하늘은 내 앞에서 오빠를 욕할 때처럼 노골적이지 않았고 최대한 품위를 지키려 노력했다. 내가 거칠게 말하는 임하늘과 친구라는 이유로 남들에게 무시당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임기택, 너도 윤설이를 미워했잖아. 아니야?”임하늘은 임기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깐 채, 내 유골을 안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임하늘은 그를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아니라면, 왜 네 의붓여동생 임리아와 함께 친여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어?”“이건 리아랑 아무 상관 없어. 리아까지 끌어들이지 마.”임기택은 무의식적으로 말하며 그녀를 변호했고, 이를 본 임하늘은 냉소를 지었다.“임리아가 학교에서 윤설이를 괴롭히는 걸 오빠인 너라도 막았더라면 윤설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죽지 않았을 거야. 설마 네 여동생이 겪은 일들이 너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니?”임기택이 대답하지 않자, 임하늘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때 임시후도 앞으로 나서서 유골을 빼앗으려 했다.“더 말해야 돼?”“임기택, 평생 기억해. 네 여동생은 네 손으로 죽인 거야.”‘네 여동생은’‘네 손으로’‘죽인 거야’그 말에 임기택은 온몸을 떨었고 유골 단지마저 땅에 떨어뜨렸다. 단지가 바닥에 닿으며 맑은소리가 울렸다

  • 나에게도 봄이 올까?   제19화

    경찰은 그 이후의 장면을 건너뛰고 도로변 CCTV에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차에 치여 쓰러진 나를 발견했다.이내 동정 어린 표정으로 임기택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무 말도 안 했다.임기택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멍한 얼굴로 넋을 잃고 말았다.마치 아주 오래전, 열 살밖에 안 됐던 어린 시절처럼.갓 태어난 여동생과 방금 돌아가신 엄마를 마주했을 때보다 결코 충격이 덜하지 않았다.임기택은 금세 내 시신을 찾았다.나는 잠자코 누워 있었다.핏기가 사라진 몸은 이미 차갑고 딱딱하게 굳었다.병원 관계자가 안쓰러운 말투로 말했다.“이제 겨우 18살이라던데 참 딱하네.”이내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글쎄 한참이 지나서야 가족이 찾으러 다녔다니까?”그리고 임기택을 위아래로 훑었는데 아마도 그가 못마땅한 듯싶었다.하긴, 내 삶은 대부분 임기택 때문에 망했고 일부는 임리아의 탓도 있었다.어쩌면 두 남매가 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임기택이 내 시신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윤설아, 오빠가 데리러 왔어. 많이 춥지?”그는 추위에 떨면서도 나를 놓지 않았고, 양손으로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연신 문질렀다.그러고 나서 다시 내 손을 잡았다.“윤설아, 몸이 왜 이렇게 차? 혹시 오빠가 늦게 데리러 와서 삐진 거야?”저 멀리 관계자가 정신이 반쯤 나간 그의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열었다.“이제 와서 후회하기 전에 진작에 잘해주지.”비록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오빠의 귀에 똑똑히 들렸고, 씁쓸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대뜸 시신을 껴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이제야 모든 게 실감이 났다.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자 핏줄로 이어진 여동생이 정말 죽었다.나는 공중에서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하지만 속으로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동안 나는 오빠가 조금이나마 살갑게 대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다.이제 죽은 이상 임기택도 나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는 빚진 게 없었다.

  • 나에게도 봄이 올까?   제18화

    임기택은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만약 그날 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여동생을 찾으러 나갔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하지만 문 앞까지 와서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그는 임윤설이 언젠간 돌아올 거로 생각했다.아무리 구박하고 욕을 해도 피를 나눈 여동생으로서 이 세상의 유일한 가족이지 않은가?집이 아니면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임기택은 경찰서에 가서 실종 신고했다.경찰은 메뉴얼에 따라 물었다.“실종된 지 며칠 됐죠?”그는 제 발 저린 듯 말했다.“일주일이요.”“친오빠 맞아요? 여동생이 실종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이제야 경찰에 신고하다니?”경찰이 위아래로 훑어보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불길한 예감이 점차 그의 마음속에서 퍼져나갔다.이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귓가에 임하늘의 목소리만 계속 맴돌았다.‘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공중에서 오빠를 지켜보던 나는 무지성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냥 새롭게 느껴졌다.나 때문에 이렇게 초조한 적은 처음이지 않은가?심지어 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아니면 오빠한테 붙잡히게 되면 가장 먼저 따귀부터 맞았을 테니까.경찰이 근처에 있는 CCTV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임기택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그날 밤 나는 오빠와 말다툼하고 나서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와 연락처와 카톡을 차단한 다음 눈물을 닦느라 바빴다. 결국 길에서 수상한 남자가 몰래 미행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곧이어 나는 남자에게 골목으로 끌려 들어갔다.경찰 몇 명과 임기택은 내 옷을 뜯겨내는 범인의 모습을 CCTV를 통해 지켜보았다.나는 눈물로 얼룩진 채 집이 있는 방향을 간절하게 쳐다보았다.이내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영상이 중지되었고, 한 여경이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정지 버튼을 눌렀다.임기택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임하늘이 떠난 이후로 시종일관 같은 모습이었다.마치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마음속을 가득 채운 공포가 거센 파도를 일으켜 무방비 상태의 그를 덮쳤다.

  • 나에게도 봄이 올까?   제17화

    하지만 임하늘이 우리 집에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는 오빠를 진심으로 싫어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날 집으로 데려다주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 외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벌써 일주일째 연락 두절이 되었다.임기택이 문을 여는 순간 쇄골에 새겨진 문신과 개성 넘치는 드레드락을 한 여자를 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윤설을 어디에 감금한 거지?”임기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쪽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닌가?”경멸이 담긴 말투는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오빠는 나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날 비하할 수는 있어도 친구, 심지어 언니를 모독하는 건 용납이 불가했다.임하늘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안색이 점점 싸늘하게 변했다.“임기택, 당신 사람 맞아? 여동생이 실종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찾지도 않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문고리를 잡고 있던 임기택의 손에 핏기가 사라졌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고 곧바로 다시 냉정함을 되찾았다.“일은 무슨, 이참에 그냥 밖에서 살라고 해.”임하늘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질했다.“이런 오빠가 있으니 자살하고 싶어 할 만도 하네.”임하늘은 다 알고 있었다.내가 우울증에 시달린 것도, 그리고 그날 육교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던 것도...그녀는 괜히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게 아니었다.단지 나중에 노래 불러주겠다고 같이 가자고 제안했을 때 초조한 얼굴로 애원하다시피 말하는 모습을 내가 간과했을 뿐이었다.“뭐? 윤설이가 자살하다니? 그럴 리가...”하긴, 내가 어떻게 자살할 수 있겠는가?멀쩡히 살아서 매일 같이 반복되는 굴욕과 고문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마땅했다.하지만 나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다.오빠를 위해 한 번 죽은 이상 두 번은 불가능했다.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느닷없이 집을 뛰쳐나갔다.이내 근처를 샅샅

  • 나에게도 봄이 올까?   제16화

    사망한 지 일주일되는 날.임기택은 처음으로 나를 찾으러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임리아가 그를 막아섰다.“오빠, 언니는 남자친구네 집으로 간 게 확실해요. 지금 찾으러 갔다가 언니 남자친구랑...”그녀는 기가 막히게 치고 빠졌다.임기택은 다시 가죽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BMW 차 키를 내동댕이쳤다.그리고 날 찾으러 갈 마음을 깔끔하게 접었다.나는 임리아의 입가에 번진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았다.잠시 후, 임기택은 친구한테 연락해서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임윤설이 어디서 뭘 하는지 벌써 일주일째 집에 안 들어왔어.”“아, 한동안 클럽에서 네 여동생을 자주 본 적이 있었는데 주변에 딱 봐도 나쁜 놈들밖에 없던데? 지금쯤 남자의 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나는 싸늘한 얼굴로 오빠와 친구들이 중상모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동안 날 이런 여자로 생각한 건가?반면, 오빠에게 임리아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는 존재였다.나는 곧바로 멀리 날아올랐다.아득히 먼 곳에 불빛이 훤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더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내 머릿속으로 임하늘과 임시후가 떠올랐다.이 세상에는 아직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그러나 곧이어 슬픔이 밀려왔다.만약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가슴 아파하기 마련이다.솔직히 나를 위해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착한 사람은 늘 행복해야만 했으니까.나는 임하늘은 물론 임시후도 그리웠다.하지만 죽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록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다시는 앞에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들이 내 사망 소식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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